소설리스트

레드 앤 매드 (43)화 (43/319)

그러나 아픔도 느끼지 않는 건지 이예주의 품에선 죽은 듯이 있던 아이가 벌떡 일어나 그대로 괴물을 향해 뛰어오기 시작했다. 

“아, 안 돼…….”

“예주 누나 안 되여!”

이예주가 아이를 향해 달려가기 위해 자리에서 비척비척 일어났다. 

그러나 조롱이의 걱정스러운 손길에 의해 다시금 자리에 앉혀졌다. 

안 돼, 안 돼. 그녀는 절박하게 외쳤다. 

그런 그녀를 비웃듯 남자의 딱딱하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다시금 쏟아졌다.

“저 계집아이의 어미는 이미 히카톤의 일부가 되었다. 이미 죽은 것들은 어떻게 해도 되살릴 수 없다.”

되살릴 수 없다. 람이 말이 천둥처럼 쾅 하고 이예주의 귓가에 쑤셔 박혔다.

“끼기기기긱.”

괴물은 움직이려고 발악하며 아이를 향해 팔을 뻗었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그도 모자라 이예주를 잡기 위해 몸을 땅 가까이로 숙인 그 자세로 멈춰 있었다. 

땅으로부터 솟은 모래가 마치 밧줄처럼 괴물의 온몸을 칭칭 감고 있었기 때문이다. 

람이 그렇게 만든 것 같았다.

하지만 움직일 수 없는 괴물이라도 모래 사이로 얼기설기 뻗어져 있는 팔에 아이가 닿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엄마, 엄마.”

아이가 엄마를 외치며 팔을 타고 필사적으로 기어올랐다. 아이는 정확히 한곳을 바라보며 움직이고 있었다. 

이예주는 멍하니 그 애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움직였다. 

그 시선의 끝에 눈에 익은 얼굴이 하나 있었다. 

바로 아이 대신 괴물에게 잡아먹힌 아이 엄마의 얼굴이었다. 

절박하게 아이 대신 몸을 내던지던 그 얼굴이 이제는 기어 올라오는 아이를 내려다보며 입꼬리가 찢어져라 웃고 있었다. 

기, 끼기기긱! 벌어진 입술 사이로 소름 끼치는 괴물의 괴성이 튀어나왔다.

“엄마, 엄마.”

계속해서 팔을 타고 기어오르던 아이는 얼마 못 가 섬뜩하게 뻗어진 팔 하나에 다리를 잡혔다. 

“아, 안 돼!”

그다음은 이예주의 비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일어났다. 

팔, 다리, 머리, 몸. 아이를 붙잡는 팔이 하나, 둘, 수십까지 늘어났다. 

분수처럼 허공에 피가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역한 비린내와 함께 후드득 핏빛 비가 내렸다. 

뜨끈한 핏방울이 이예주의 얼굴에도 몇 방울 튀었다. 

“끼익, 끼기긱.”

아이의 신체를 쥔 수십 개의 팔들이 제 주인의 머리통에 그것을 쑤셔 넣기 위해 있는 힘껏 팔을 뻗었지만, 괴물을 휘감고 있는 모래 밧줄 때문에 그것을 머리가 있는 꼭대기 층까지 올리지 못했다.

“왜…… 왜…….”

이예주가 입술을 벌벌 떨며 말을 잇지 못하고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이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제 ‘미래’를 포기하며 살려 낸 아이였다. 

그런데 대체 왜. 

왜 죽음을 향해 자발적으로 몸을.

“그래도 히카톤의 일부가 되지 않았으니 운이 좋은 계집아이군.”

“…….”

“안타까워할 것도, 불쌍히 여길 필요도 없다. 저것은 인간들이 스스로를 가두기 위해 만든 감옥이나 마찬가지이니.”

넋이 나간 듯 멍하니 괴물이 하는 양을 바라보고 있는 이예주를 힐끗 바라보며 남자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내게서 검은 안개를 훔쳐 간 시간족 혹은 그 후손이 검은 안개를 더럽힐 짓거리를 하고 죽어 버리면 저런 괴물이 되어 되살아나지. 검은 안개를 저 지경까지 더럽힐 짓거리라는 것은 이미 살아생전 인간으로서의 삶을 포기했다는 뜻이다. 제가 죽은지도 모르는 저 더러운 것은 끝도 모르고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잡아먹지. 저것 때문에 사막에는 아무것도 살지 못한다.”

“…….”

“잡아먹힌 인간들은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상태로 동화되어 히카톤의 일부가 된다. 괴물에게 달린 수많은 역겨운 것들 중 하나가 되어 또 다른 제 종족을 잡아먹고 사는 거지. 더럽혀진 검은 안개 때문에 남은 것은 먹어도 먹어도 채워지지 않은 허기와 독기뿐이니.”

“…….”

“저것들은 자연으로 다시 되돌아갈 수 없다. 히카톤 안에서 다른 에너지들과 뒤섞여 뭉쳐진 쓰레기 덩어리가 되지. 서로가 서로를 옥죄어 빠져나갈 수 있는 틈 따윈 없다.”

“…….”

“영원히 사막에 갇혀 허기와 독기로 몸부림칠 것이다. 내가 굳이 손댈 필요조차 없지. 히카톤은 인간들이 스스로 내리는 원죄다.”

남자가 멍한 얼굴로 모래 위에 앉아 있는 그녀의 앞에 몸을 굽혀 앉았다. 

한참 위에서나 보이던 빨간 눈동자가 코앞에서 그녀와 눈을 맞췄다.

그가 한 손을 뻗어 그녀의 다친 뺨을 조심스레 어루만졌다. 

그 행동이 남자의 눈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다정해서 이예주는 잠시 멈췄던 눈물이 다시 왈칵 쏟아졌다. 

“……히카톤의 손에는 독기가 묻어 있다. 스치기만 해도 위험한 맹독이지. 그러니 어서 치료를 해야 한다, 인간.”

젖은 그녀의 눈동자가 남자를 올려다보더니 다시 뜨거운 물을 뚝뚝 내뱉었다. 

이예주는 남자와 같은 신의 영역에 있지 않아서 도저히 묵묵한 남자를 이해할 수도, 이해하려는 노력도 들지 않았다. 

람은 그녀의 손에서 벗어난 아이가 제 어미를 찾아 불속으로 뛰어드는 나방처럼 괴물에게 뛰어들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막지 않았다. 

단지 어차피 죽을 운명이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살 수 있는 아이를.

“왜…… 왜요? 당신이 저 괴물을 죽이고 구해 주면 안 되는 거였어요?”

“…….”

“왜요? 살면 안 돼요? 죄 없는 사람들인데. 괴물만 죽이면…… 괴물만 죽이면 살 수 있는 사람들인데…….”

이예주가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매달리듯 남자를 바라보자 그가 그녀의 얼굴 위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자리에서 불쑥 일어나 모래에 묶인 괴물 쪽으로 몸을 틀었다. 

끼이이이익. 남자가 뒤로 돌아서자마자 괴물에 달려 있는 머리통들이 끔찍한 비명을 내질렀다. 

뿌드득, 뿌득뿌득. 

마치 몸통을 잘라 낼 것처럼 얼기설기 괴물의 몸을 휘감고 있던 모래 밧줄이 무서운 기세로 괴물의 온몸을 옥죄었다. 

그 힘에 따라 괴물의 몸이 팽창하듯 부풀었다. 

쾅―! 

괴물이 나타나던 때와 비교도 안 되는 엄청난 굉음이 사방 천지에 울려 퍼짐과 동시에 모래의 압박을 견디지 못한 괴물의 몸이 풍선 터지듯 펑 터져 버렸다. 

3층 건물만 하던 거대한 괴물이 제가 잡아먹던 인간들처럼 순식간에 수천 개의 조각이 되었다. 

후드드득. 괴물의 파편이, 아니 수백, 수천의 인간의 파편이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털썩털썩, 가끔 육중한 무게의 살덩이가 커다란 소리를 내며 위협스럽게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귀신이 곡할 노릇으로, 람의 뒤에 있는 조롱이와 이예주 주변으로는 아주 작은 부스러기조차 떨어지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힘이 그들 주위를 휘감고 있는 것처럼 파편이 허공에서 튕겨져 나갔다. 

폭발하듯 터진 괴물의 몸에서 피 대신 검고 투명한 젤리 같은 것들이 같이 쏟아져 내렸다. 

이예주의 곁에서 한 발자국 떨어진 채 그것들을 바라보던 조롱이의 입에서 “세상에.” 하고 경악에 가득 찬 신음 소리가 튀어나왔다.

“누나도 저거 보이져? 저 검은 안개여. 검은 안개가 눈에 보일 정도로 저렇게 더러워지다니여. 어떤 인간인지 저 히카톤의 본 주인이 살아 있을 때 정말 지독한 인간이었나 봐여…….”

조롱이가 끔찍하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며 탄식했다. 

파편에 붙어서 바닥으로 철퍽철퍽 떨어진 그 젤리 같은 것들이 살아 있는 유동체처럼 꾸물꾸물 바닥을 움직였다. 

그것들은 바닥을 기면서 떨어진 괴물의 살 조각들에 달라붙었고, 다시 꾸물꾸물 움직여 다른 살 조각에 달라붙어 있는 것들과 빠른 속도로 합쳐졌다. 

몸뚱이들이 다 떨어지기도 전에 팔 하나가 완성되었다.

“죽여도 소용없다. 이렇게 온몸을 못 쓰도록 터뜨려 놔도 그때뿐이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원래의 제 몸을 찾을 것이다.”

람이 충격에 젖은 이예주를 돌아보며 짧게 설명을 덧붙였다. 

조각들이 살덩이로, 살덩이가 다시 팔 혹은 다리, 혹은 머리통으로 빠르게 뭉쳐지는 모습을 바라보던 그녀의 눈이 문득 한곳을 향해 고정되었다. 

그것은 이예주가 포기한 ‘문’이었다. 

문이 아직도 환한 빛을 내며 열려 있었다. 

문과 꽤 멀리 떨어져 있는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폭발 덕에 문 주변에 많은 시체 조각들이 떨어져 있었다. 

그녀의 동공이 순간 커다랗게 확장되었다. 

‘문’ 주변의 그 검은색 젤리 같은 것들이 꾸물꾸물 움직이면서 이예주가 포기한 문으로 기어 들어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우연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정확히 ‘문’이 목적이라는 듯 붙어 있던 살 조각까지 내버리고 환하게 빛나는 문 너머로 계속해서 기어갔다. 

그러는 도중, 아무것도 투영하지 않고 하얗게 빛나던 문 안에 무언가 장면이 떠올랐다.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보기 위해 이예주가 눈물로 흐릿한 눈을 비벼 내곤 다시 바라보았다. 

문 안에 덫에 걸려 있는 작은 사막 여우가 보였다. 

괴로운지 뜨거운 모래 바닥에 몸을 비비며 발버둥 치는 사막 여우의 검은 눈 안에 고통이 가득 차 있었다. 

“……포니?”

이예주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작은 사막 여우는 분명 포니였다. 

동물의 숲으로 향하던 포니가 다시 덫에 걸린 것일까? 

아니다. 그녀는 곧바로 자신의 생각을 부정했다. 

람이 포니를 되살리면서 새로 생긴 까만 털이 ‘문’ 안의 사막 여우에겐 없었다. 

하지만 그 사막 여우는 분명 포니였다. 

이예주가 문을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물을 닦아 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앞이 흐렸다가 선명해지길 반복했다. 

“예, 예주 누나.”

위태롭게 휘청거리는 그녀를 조롱이가 걱정스럽게 불렀지만, 그녀는 굴하지 않고 한 발자국 움직였다. 

그 작은 움직임에도 속이 메스껍고 머리가 어질거렸다.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처럼 비틀거리던 그녀를 누군가 강하게 잡아챘다.

“결계 밖으로 나가면 위험하다.”

“이, 이거 놔요. 문으로 가야 돼…….”

이예주가 창백한 얼굴로 중얼거리며 다시 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을 때, 환한 빛을 뿜으며 열려 있던 문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문이…… 문이…….”

그녀가 사라지는 ‘문’을 바라보며 두 팔을 허우적거리자 람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무슨 문을 이야기하는 거지. 네가 바라보는 쪽엔 아무것도…….”

“헉! 주인님, 저쪽만 검은 안개가 다시 합쳐지지 않고 있는데요?”

이예주의 ‘문’이 있는 쪽이었다. 

남자가 조롱이의 말을 듣고 한층 더 인상을 찌푸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빛이 더러워진 검은 안개를 삼키고 있군. 인간, 네가 한 짓인가.”

하지만 이예주는 람의 뜻 모를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갑작스레 무너지듯 쓰러졌기 때문이다.

“인간!”

“예주 누나!”

람과 조롱이가 동시에 이예주를 불렀다. 

그녀는 무어라 대답하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그 순간 불쑥 치솟는 구역질에 다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머리가 핑핑 돌고 눈앞이 샛노랬다. 

“왜…… 왜…… 살아야지…….”

이예주는 구역질 때문에 입을 꾹 다물고 싶었으나 그녀의 입은 방언 터진 사람처럼 제멋대로 헛소리를 지껄여 댔다. 

괴물에게 찢긴 팔이 불에 타는 듯 뜨겁게 화끈거렸다.

“살아서, 살아서…….”

“헛소리 그만 지껄이고 어서 팔을 이리 내라.”

“엄마를…… 엄마를…….”

남자는 이예주가 쉴 새 없이 내뱉는 말들을 모조리 묵살한 채 우악스럽게 다친 그녀의 왼팔을 잡아챘다. 

시뻘건 피가 멈추지 않고 꾸역꾸역 쏟아져 나와 그녀의 팔을 온통 붉게 적시고 있었다. 

남자가 서둘러 손을 잡더니 지그시 힘을 주었다. 

사막 여우를 되살렸을 때처럼 그의 손에서 검푸른 색의 어두운 빛이 쏟아져 나왔다. 

간질간질하고 시원한 빛무리가 이예주의 팔을 타고 환부로 기어갔지만 그녀는 눈앞이 팽글팽글 돌아 그것을 느낄 틈이 없었다. 

이윽고 검푸른 빛이 팔을 모조리 감쌌다. 

벌어진 상처에서 쉴 새 없이 쏟아지던 피가 스펀지에 빨리듯이 다시 상처로 스르르 스며들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사막 여우보다는 비교적 양호한 상처임에도 불구하고 사막 여우의 뼈와 살을 순식간에 이어 붙인 힘이 그녀에겐 더 이상 먹히지 않았다.

“독 때문일까여? 더 이상 치료가 안 돼여, 주인님.”

조롱이가 이예주의 머리맡에서 울상을 짓고는 훌쩍거렸다. 

“사막 여우를 치료할 때 페어리니틀도 다 써 버렸는데. 히잉,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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