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안에서 반대편 주차장을 나오는 엄마가 보였다.
거친 경적 소리가 고막을 찢을 듯 바로 귀 옆에서 울리자 그녀는 망설임 없이 봉구를 들고 ‘문’을 넘었다.
차들이 쌩쌩 달리는 차도 한가운데에서 선택지는 그것 하나뿐이었다.
게다가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에게 ‘문’을 넘는 능력이란 생존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으니 그녀의 행동은 나름 정당성이 있었다.
하지만 정당성이 모든 변명이 되어 주지 않듯, 생존을 위한 수단이 저주가 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이예주는 주차장에서 빠져나오는 엄마의 앞에 우뚝 서 있었다.
“……예주?”
엄마가 이예주를 발견하고 뛰어오다가 그녀 너머의 뒤를 바라보았다.
그녀 또한 뒤를 바라보았다.
사고는 이미 발생한 후였다.
반대편 차도 한가운데에 소나타 하나가 정차해 있었고 차 주인이 밖으로 나와 바닥을 보며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그가 바라보는 바닥에 피투성이가 된 무언가가 놓여 있었다.
피로 물든 하얀 털이 하늘하늘 바람에 날렸다.
“에잇, 재수 없게!”
……목격자들 말로는 개가 무언가에 묶인 듯 도로 한복판에서 멈춰 움직이지 않았다고 했다.
개를 친 운전자는 웬 여자아이 귀신이 나타나 개를 들어 올렸다고 진술했다.
워낙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목격자와 운전자 양쪽 다 이예주를 보지 못한 듯했다.
이예주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그녀가 아닌 그녀의 ‘개’가 죽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예주는 자신이 봉구를 죽였음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봉구를 데리고 ‘문’을 넘지 않았다면 봉구는 반대편 차선으로 뛰어가 살았을지도 모른다.
봉구를 잡지만 않았으면.
아니, 애초부터 봉구를 놔두고 여자애들과 조잘대지만 않았으면.
길을 가다가 봉구만 한 흰 강아지를 보면 가슴을 짓누르는 죄책감에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문’이 열리는 능력은 생존의 수단도 뭣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녀를 미치게 만드는 저주이자 조잡한 핑계에 불과했다.
“끼이이익.”
괴물이 마침내 이예주 찾기를 포기했는지 마저 도망가는 인간을 찾아 ‘문’이 있는 쪽으로 육중한 다리를 움직였다.
괴물의 시점에서 보니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 위에서 필사적으로 도망가는 삐쩍 곯은 인간이 얼마나 느려 터졌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람이 서 있는 모래 언덕을 쳐다보았다.
괴물이 일으킨 먼지바람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굳이 자세히 보지 않아도 그의 얼굴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버러지만도 못한 것이 객기 부린다고 여기겠지.
어쩌면 자신 따윈 죽든 말든 신경 쓰지 않을지도 모른다.
인간 박멸을 소원할 정도로 인간을 증오하는 남자니까.
그래도 울컥 원망이 치솟지 않는 건 아니었다.
남자는 그녀를 바라볼 때마다, 인간을 바라볼 때마다 눈이 시뻘게졌다.
그 시뻘건 눈에서 뿜어져 나온 살기와 증오가 얼마나 깊을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가끔은 조롱이한테 하는 것처럼 다정하게 대해 주는 것 같아도, 남자는 항상 자신을 증오하고 있다.
그러니 남자에게 더 이상의 도움을 바랄 수 없었다.
이예주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환영하듯 환하게 빛나는 ‘문’을 바라보았다.
봉구의 죽음 이후로 ‘문’은 항상 그녀의 목을 졸라 왔다. 문은 그저 저 혼자 살기 위한 자신의 비열함을 대신해서 보여 주는 수단이 되었다.
더러웠다.
봉구를 죽이고 살아남은 자신이, 엄마를 죽이고 같은 반 친구들이 죽을 줄 알면서도 혼자 살아남은 자신이 더러웠다.
더러워 죽을 것 같으면서도 환하게 빛나는 ‘문’을 넘어 목숨을 부지하는 데엔 언제나 망설임 따윈 없었다.
“……너 나 믿어?”
이예주가 그때까지 제 품에서 멍하니 허공만 쳐다보고 있는 아이를 향해 조용히 속삭였다.
당연하게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난 나 못 믿어.”
“…….”
“너무 억울해하지 마. 못 미덥겠지만 그래도 널 구해 주러 이런 나라도 왔잖아?”
그녀가 종잇장처럼 가벼운 아이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크아아악!
몇 발자국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괴물이 도망가는 남자를 쉽게 잡았다.
그러고는 그를 몇십 조각으로 찢어서 나누어 먹었다.
끼기기기긱.
위치가 바뀌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수백 개의 머리통들이 아이를 들고 있는 이예주를 발견했다.
곧 팔이 그녀와 아이를 잡기 위해 공중을 사납게 허우적거렸다. 그 모습을 보며 이예주는 이를 악물었다.
“난 우리 엄마 죽을 때.”
그녀가 중얼거리며 아이를 바닥에 내려놨다.
아이를 안고 푹푹 발이 빠지는 모래 위를 뛴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끼기, 기긱.
그녀와 아이를 발견하고 비명을 지르는 머리통들이 점점 더 많아졌다.
쿵, 쿵.
그에 따라 괴물이 그녀 쪽으로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었어, 씨발.”
“끼기, 기이익.”
“뛰어―!”
이예주가 비명을 지르며 아이 손을 잡고 ‘문’의 반대편으로 뛰기 시작했다.
‘문’에게서 뒤를 돌자 당장이라도 그녀를 집어삼킬 듯하던 빛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애초부터 저런 거대한 괴물을 두고 계획 따윈 없었다.
괴물에게 잡혀 죽을 걸 생각하면 지금도 다리가 후들거리고 자리에 주저앉고 싶을 만큼 두려웠지만, 어차피 이예주의 삶이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죽음의 연속이었다.
끼기기긱! 쿵쿵.
소름 끼치는 칠판 긁는 소리와 땅을 울리는 거대한 진동 소리가 반복됐다.
아이는 뛰는 게 아니라 그녀에게 잡혀 억지로 끌려왔다.
괴물을 피해 도망가던 다른 인간들처럼 몇 발자국 걷지 않았는데도 아이의 뒤에 금세 수십 개의 팔이 따라붙었다.
두 개의 손이 날카로운 손톱을 바싹 세우며 아이의 뭉친 머리채를 잡으려 들었다.
이예주가 성급히 아이를 제 쪽으로 휙 강하게 잡아당기며 몸을 틀어 뒹굴었다.
“아, 아악!”
하지만 이번에는 운수가 따르지 않았다.
어설프고 둔한 몸놀림에 아이는 무사했으나, 몸을 트는 와중에 그녀의 팔은 괴물의 손톱을 피하지 못했다.
아이를 잡아채려고 갈고리 모양으로 잔뜩 힘을 줬던 손이 시멘트 반죽에 철근 박히듯 쉽게 이예주의 팔에 박혔다.
그녀의 말랑한 팔뚝에 깊게 박힌 손톱이 왼쪽 어깨 근처부터 팔꿈치까지를 사선으로 찢었다.
후두둑, 이예주의 피가 공중에 흩뿌려졌다.
그녀는 아이를 안은 채 다시 몇 번을 뒹굴었다.
이예주가 뒹군 자리에 찢어진 팔로부터 흘러나온 다량의 핏물이 모래 안으로 스며들어 자국을 만들었다.
“콜록, 콜록! 으…… 흐윽.”
거센 움직임으로 피어오른 먼지 구덩이에서 그녀가 거센 기침을 내뱉으며 모래투성이인 몸을 힘겹게 들었다.
얼마나 깊게 찢어졌는지는 모르겠으나 왼팔엔 뜨거움 이외엔 아무런 감각도 들지 않았다.
둑 터진 것처럼 계속해서 피가 흘러나와 옷과 모래를 흠뻑 적셨다.
쳐다만 봐도 아찔한 피의 향연에 그녀는 도저히 제 왼팔을 돌아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끼이이익!”
쿵쿵.
다 잡은 이예주와 아이를 놓친 괴물이 다시금 다가왔다.
뿌연 연기 사이로 거대한 3층짜리 괴물의 형상이 보였다.
샤샤샷, 샤샤샥.
이미 이예주를 잡은 것처럼 쥐었다 폈다 하는 팔들의 소리가 귓가에서 울리듯 커다랗게 들려왔다.
아이는 아까처럼 일어날 생각도 안 하고 그대로 모래 속에 파묻혀 있었다. 욕 나올 정도로 수동적이었다.
쿵.
드디어 괴물의 두꺼운 다리가 그들의 앞에 멈춰 섰고 수천 개의 팔이 일제히 눈앞에 쏟아졌다.
그녀는 쌍욕 대신 몸을 움직여 아이를 감싸 안았다.
“기긱, 기기기긱!”
“흐으윽!”
곧 닥쳐올 고통에 덜덜 떨면서 눈을 꾹 감았던 때였다.
“……어디까지 하나 지켜봤더니. 고작 이건가?”
몸을 찢는 끔찍스러운 팔들 대신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그녀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익숙한 그 목소리에 이예주가 천천히 고개를 쳐들었다.
“끼기기긱.”
코앞에 수십 개의 손이 멈춰져 있었다.
그 팔들 위로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검은색 가죽신이 가볍게 놓여 있었다.
이예주는 고개를 조금 더 쳐올렸다. 온
통 검은색으로 뒤덮여 있는 커다란 인영이 보였다.
태양의 역광 때문에 얼굴이 보이지 않았으나, 이젠 그 차가운 목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정신 나간 것.”
“…….”
“제 동족에게 산 채로 뜯어 먹힐 뻔한 것을 불쌍히 여겨 살려 놨더니.”
“…….”
“감히 내 앞에서 이런 발칙한 짓거릴 해?”
뜨겁게 내리쬐는 역광 사이로 형형히 빛나는 시뻘건 눈이 보였다.
제 피에 젖은 모래를 더덕더덕 묻힌 이예주의 얼굴이 왈칵 일그러졌다.
앞니가 찝찔한 맛을 내며 기어이 아랫입술을 찢고 파고들었을 때, 그녀가 누워 있는 모래 위로 투둑 투둑 물방울이 떨어졌다.
이내 걷잡을 수 없이 많은 양의 물들이 그녀의 눈에서부터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남자는 여전히 냉철한 표정으로 이예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도와 달라고 했잖아요.”
짠 눈물이 다친 뺨을 타고 흘러 따끔거렸지만 그것도 모를 정도의 서러움이 울컥울컥 눈을 타고 쏟아져 나왔다.
저만 보면 빨간색으로 변하는 남자의 시뻘건 눈부터 시작해서, 포니를 만질 때 차갑게 내쳐진 손, 아이를 구해 달라는 자신을 벌레처럼 바라보던 시선까지.
서러워. 어느 하나 서럽지 않은 게 없었다.
“저들을 보아라.”
남자는 그런 그녀의 울음을 신경 쓰지 않고 도망쳐서 간신히 살아남은 인간들을 냉정하게 가리켰다.
“자세히만 봤어도 성한 데 없는 병신들이란 것을 알아챘겠지.”
“…….”
“죽음을 목적으로 같은 인간들에게서도 버려진 자들이다. 포악한 히카톤을 잠재우기 위한 제물들이지. 먹이만 먹고 바로 잠들 괴물이 흥분해서 이젠 멀쩡한 인간 부락까지 쓸어 버릴 것이다, 멍청한 네 행동 때문에!”
화가 난 건지 남자의 시뻘건 두 눈이 형형하게 이예주를 노려보았다.
그녀의 멍청함을 비난하듯 그 눈 안에는 살기와 혐오감이 잔뜩 서려 있었다.
“그렇게 죽고 싶나?”
“…….”
“죽고 싶어서 환장했냐고 물었다.”
“흑, 흡…… 죽고 싶긴 누가 죽고 싶어요…….”
“그런데 대체 왜 이따위 정신 나간 짓을……!”
“그럼! 그럼 어떡해요!”
이예주가 남자의 말을 막고 잔뜩 쉰 목소리로 소리 질렀다.
“죽을 걸 알고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순 없잖아요! 당신이 얼마나 끔찍하고 잔인한 인간들만 보고 살아서 날 그렇게 미워하는지 모르겠지만, 평범한 인간이라면 아이가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모르는 척하지 않아요. 그렇게 더럽고 미친 인간들만 있는 건 아니라고요!”
“닥치고 그것이나 이리 내.”
남자가 더 듣기 싫다는 듯 그녀의 품에 있던 아이에게 손을 뻗었다.
“안 돼요!”
그녀는 아이를 안은 채 몸을 와락 돌렸다.
다친 팔을 격하게 움직여서 그런지 다시 환부에서 뜨끈한 피가 쏟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죽고 싶지 않으면 내놔라.”
“…….”
“당장.”
람이 험악하게 미간을 찌푸리며 윽박질렀다.
그와 만난 이래 이처럼 화를 낸 적은 처음이라 더럭 겁이 나면서도 이예주는 끝내 아이를 건네지 않았다.
“죽일 거잖아요.”
“어차피 죽을 목숨이야.”
“……왜요?”
“쓸데없는 말장난할 시간 없다. 환부를 확인해야 하니 그것 이리…….”
“왜 죽을 목숨이냐고요!”
그녀가 다시 절규를 토해 내듯 비명 질렀다.
“살아야지. 하루하루가 지옥 같아도. 진짜 더럽고 거지 같아도 살아야지. 살아남아서!”
눈물이 다친 뺨에 닿으면서 피가 섞여 흘러내렸다. 꼭 피눈물을 흐르는 것처럼.
벌겋게 눈에 핏발이 선 이예주의 얼굴이 눈에 띄게 창백했다.
“살아남아서, 엄마를 되살려야지!”
그녀의 입술이 어느새 시퍼렇게 변색되어 있었다.
이예주는 그것 하나 때문에 지옥 같은 삶을 계속해서 연명하고 있었다.
포기하는 척했을 뿐이지, 실제로 포기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과거로 갈 수 있다는 희망 하나 때문에, 그 하나 때문에 끔찍한 일들의 연속인 인생에서 미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과거로 가서 엄마를.
신이 더 허락한다면 수학여행에서 죄 없이 죽어 버린 친구들을, 그보다 더 허락된다면 자신 때문에 죽어 버린 봉구를.
이예주는 엄마를 잃어버린 이 여자아이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
저에겐 아무도 주지 않았던 살아남을 기회를, 살아남을 동기를.
“살아, 살아남아서. 언젠간 엄마를…… 악!”
“예, 예주 누나!”
그때 언제 다가왔는지 모를 조롱이의 걱정 어린 외침이 들렸다.
그녀는 불현듯 팔을 타고 엄습하는 엄청난 고통에 눈앞이 새하얘졌다.
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고통 속에서 한참을 헤매다가 간신히 시야가 돌아왔을 때는, 람이 험악한 손길로 그녀의 다친 팔을 왁 물고 있던 아이의 머리채를 잡아 내던진 이후였다.
남자의 억센 손아귀에 종잇장처럼 가벼운 아이가 손쉽게 괴물의 육중한 다리 사이로 날아가 반대편 모래 위로 털썩하고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