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왜! 어차피 죽으면 모든 게 다 끝인데!”
“…….”
“난 절대 안 죽을 거야!”
이예주가 처절한 절규처럼 외쳤다.
“난 살 거야. 기필코 살아남아서 과거로 돌아갈 거야! 과거로, 과거로 돌아가서! 쓰레기 같은 내 인생을 바로잡을 거라고!”
남자가 곱게 둘러 주었던 검은 천이 그녀의 손에 거칠게 벗겨졌다.
천이 펄럭거리며 허공을 가르고 떨어질 때.
“끼긱, 기기기긱―!”
“예, 예주 누나!”
이예주는 달렸다. 능선 아래로, 아래로 달렸다.
멍청하게 주저앉아 있는 아이 앞에서, 괴물이 하늘하늘 흔들리던 아이 엄마의 다리까지 우둑우둑 씹어 먹는 중이었다.
“헉, 헉…….”
능선을 타고 미친 듯이 뛰어 모래 언덕을 거의 다 내려왔을 때쯤엔 이예주의 입에서 거친 신음 소리가 절로 터져 나왔다.
어느새 아이의 엄마를 찢어 삼킨 수천 개의 손이 멍하니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아이에게까지 마수를 뻗치기 시작했다.
“얘!”
이예주가 입을 열어 찢어지는 고음을 내질렀다.
“야, 야! 멍청하게 앉아 있지 말고 일어나!”
그러나 “기기기긱.” 하고 고막을 괴롭히는 소리에 묻혀 아이에게까지 전달되지 않은 건지 아이는 여전히 미동 없이 앉아 있었다.
수십 개의 손이 허공에서 아이를 찾아 손을 휘저었다.
금방이라도 아이를 잡아 찢을 듯 수많은 손이 움직일 때마다 햇빛에 반사된 손톱들이 섬뜩하게 빛났다.
맨 아래층에 달려 있는 수백 개의 다리들이 덩달아 미친 듯이 허공을 움직여 댔다.
괴물의 몸통에 붙어 있지만 않았으면 당장이라도 달려갈 기세였다.
“기기긱, 끼기기긱.”
아이를 발견한 맨 꼭대기 층의 대가리들이 마치 환호하듯 입을 벌려 괴상한 비명 소리를 질렀다.
아이가 워낙에 작아서 괴물은 한참이나 그 역겨운 몸뚱이를 바닥에 가까이 숙여야 했다.
그러나 그 행동은 여의치 않았는데, 괴물의 반대편에 달린 손들도 도망가는 인간들을 향해 수백 개의 손을 뻗어 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괴물은 쉬이 중심을 잡지 못했다.
하나의 몸에 붙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개체에 개별적인 의지가 깃들어 있는 듯한 몸짓이었다.
수천 개의 머리도, 팔도, 다리도 인간과 매우 흡사했지만 그것들이 살아 있는 것처럼 각각 움직여 대니 오히려 더 역겹고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양쪽으로 손을 뻗어 대는 탓에 괴물을 지탱하고 있는 거대한 다리가 비틀비틀 거렸다.
괴물이 한 번 커다란 발을 움직일 때마다 그 주위로 뿌연 모래 먼지가 피어올랐다.
가까이서 본 괴물은 3층 건물을 웃돌 만큼 거대했다.
멀리서 볼 때와는 차원이 다른 끔찍한 괴물의 모습에 그 지척까지 다가와 서서히 발을 멈추던 이예주는 반사적으로 몸을 덜덜 떨었다.
꽤 조심스럽게 다가갔으나 수천 개나 다닥다닥 달려 있는 머리들이 그녀를 발견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기기기긱, 기기긱!”
머리 중 하나와 이예주의 눈이 마주치는가 싶더니 이어서 수십, 수백 개의 희번덕한 눈빛들이 그녀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쿵, 쿵.
넘어질 듯 말듯 비틀대던 괴물의 거대한 다리가 다시 균형을 잡고 땅 위에 바로 섰다.
아이도 모자라 그녀까지 가세된 마당에 이쪽으로 무게가 쏠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끼기기긱.”
칠판 긁는 소리가 다시 한 번 사막을 가득 메우더니 괴물의 몸뚱아리가 아이 쪽으로 빠르게 기울어졌다.
그와 동시에 팔들이 내뻗어지자 이예주는 앞뒤 볼 것 없이 아이 쪽으로 있는 힘껏 몸을 날렸다.
“끼긱, 끼이이익.”
소름 끼치는 괴물의 초고음파가 울려 퍼지고 이예주의 두 손이 아이를 낚아챌 때, 섬뜩한 손톱들이 그녀의 휘날리는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꼭 슬로우 모션을 구경하는 것처럼 느리게 흘러갔다.
이예주의 머리카락을 스친 수많은 손들 중 하나가 그녀의 머리 끝자락을 쥐어 잡았지만, 부드득 하는 밧줄 끊기는 소리와 함께 머리칼 한 움큼만 손에 쥔 채 그녀를 놓치고 말았다.
“악! 아! 아윽!”
아이를 품에 안은 이예주는 모래 바닥에 세게 부딪혀 몇 번이나 뒹굴었다.
얼마나 온 사력을 다해 몸을 내던졌는지 돌뱀을 만났을 때나 식인을 하는 외눈박이 삼 형제들을 만났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온몸이 부서지는 충격이 그녀를 강타했다.
헐렁한 후드티 안으로 까슬까슬한 모래가 물밀듯 들어왔다.
입까지 범람하는 모래에 정신을 차릴 틈이 없던 그때, 목표를 놓친 괴물이 “끼이이익!” 하고 약이 바짝 오른 괴성을 지르며 그녀와 아이를 찾아 쿵, 쿵 몸을 움직였다.
움직이는 거대한 괴물의 발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엉망이 된 그녀가 간신히 몸을 일으켜 앉았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이때 나오는 것인가.
수천 개의 사람 대가리들이 다행히도 맨 밑이 아니라 맨 위층에 달려 있었기 때문에 괴물의 다리 근처에 있던 이예주와 아이는 아직 포착되지 않았다.
“아흑, 으……. 야, 괜찮아?”
구르는 와중에 긁혔는지 오른쪽 볼이 불에 닿은 듯 화끈거리더니 주룩하고 무언가 흘러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안 봐도 그것이 뭔지 뻔해 굳이 손을 들어 확인하지 않았다.
그보다 이예주는 모래에 반쯤 파묻히듯 박혀 있는 아이를 들어 올리는 것을 선택했다.
제대로 못 먹고 자랐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정말 놀라울 정도였다.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아이가 가볍게 모래 속에서 뽑혔다.
아이의 마른 몸은 이예주의 꼴보다 더 심하면 심했지 결코 괜찮지 않았다.
천 쪼가리 하나 걸친 비루하고 까만 몸에 힘이라곤 하나도 없자 그녀가 빠른 어조로 아이를 얼렀다.
“괜찮아? 어디 다친 데 없어? 왜 대답을…….”
혹시나 다친 데가 있을까 싶어 아이를 채근하던 이예주의 말이 뚝 멈추었다.
격하게 몸을 굴렀음에도 아이는 표정 하나 없이 멍한 그 얼굴 그대로였다.
초점 없는 아이의 눈이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빛이라곤 하나도 없는 그 눈이, 아무 생각도 들지 않은 그 모습이 너무나도 익숙했다.
천장에 달린 실링 팬으로부터 이어진 전선줄에 목이 매달려 덜렁덜렁 흔들리던 엄마.
반드시 과거로 돌아가겠다고 독하게 손목을 긋던 자신. ‘과거’로 돌아가는 방법을 포기할 때까지 얼마나 지겹도록 보아 왔던 제 눈이었던가.
그래서 이예주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아이의 엄마는 곱게 죽은 것도 아니고, 눈앞에서 괴물에게 수천 조각으로 찢겨 죽었다.
“……하긴. 미치지 않을 리가 없겠지.”
그녀가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더 이상 아이를 채근하지 않고 손을 들어 제 뒷머리를 매만졌다.
안 그래도 불에 그슬려 돼지 털처럼 까슬하던 뒷머리가 뜯겨져 목 위로 훌쩍 올라와 있었다.
손에 닿는 감촉이 사포처럼 거칠거칠했다.
다른 머리는 어깨 정도의 길이인데 뒷머리만 목 위로 깡똥 올라와 있으니 제 꼴이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흉측할진 안 봐도 훤히 보이는 일이었다.
“생긴 것도 개 같은 게 감히 내 머리채를 잡아 뜯어?”
이예주가 울상을 짓고 중얼거렸다.
“기이이익.”
마치 그 욕설을 들은 것처럼 괴물이 괴성을 지르자 그녀는 곧바로 퍼드득 몸을 떨며 입을 다물었다.
쿵, 쿵. 아직 제 밑에 몸을 숨긴 이예주를 찾지 못한 건지 괴물이 이리저리 둔중하게 몸을 움직였다.
그때마다 온 천지가 진동해 아이와 그녀의 몸 또한 움찔움찔하고 움직였다.
그녀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위를 올려다보았다.
자, 이제 네 몸 가는 대로 질렀으니 이젠 어떻게 할 거니, 예주야.
괴물 밑에 있는 그녀의 눈에 그것의 육중한 다리 사이가 들어왔다.
생식기 대신 빽빽하게 달려 있는 수백 개의 인간 다리들이 보였다.
죽은 사람의 다리들처럼 핏기라곤 하나도 없는 허옇고 창백한 그것들이 공중을 내달리듯 머리 위에서 휙휙 움직여 댔다.
그 위는 얼마나 더 끔찍한지 너무 잘 알고 있어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무섭다. 무서워 죽을 것 같다.
하마터면 아이의 엄마처럼 수백, 수천 조각으로 찢겨 죽을 뻔했다.
괴물의 손에 잡혀 뒷머리가 부드득하고 뜯기는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했다.
간담이 서늘하고 심장이 발광하듯 쿵쾅거렸다.
서울에서 용암을 피할 때 불에 뒷머리가 그슬려 약해진 일은 이 날을 대비한 액땜이었을지도 모른다.
“……미친년.”
그녀는 이번엔 괴물이 아닌 자신을 욕했다.
다시 하라고 하면 곧 죽어도 다시 하지 않을 미친 짓거리를 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이 정신 나간 짓을 한 건지 저조차도 모를 일이었다.
봉구도, 엄마도 아닌 생판 모르는 여자아이 하날 위해 이렇게 몸까지 내던지다니.
이 세계에서 너무 충격적인 일이 계속 반복되어 자신의 머리 한구석이 어떻게 돼 버린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제 목숨 유지하는 것을 삶의 지표로 삼고 있는 자신이 여기까지 뛰어들 리 없었다.
미쳤다. 정신이 완전히 나갔다.
이를 악물며 그렇게 읊조리면서도 그녀는 아이의 손을 놓지 않았다.
정말 통탄스럽게도 이제 막 자신이 미쳤다고 깨달았지만 이미 늦어 버린 후였다.
자신은 벌써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든 후였다.
아이를 놓든, 놓지 않든 괴물을 피해 살아남을 수 있을지, 없을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 지금 그녀가 처한 상황이었다.
괴물은 아직도 이예주와 아이를 찾고 있었다.
그 와중에 도망가다 잡힌 여자 하나가 괴성을 지르며 수천 개로 찢겼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위에서 후드득 떨어지는 핏물을 보자 위의 정황 따윈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이대로 괴물 밑에 수그리고 있어도, 아이를 품에 안고 전력을 다해 람과 조롱이가 있는 모래 언덕으로 뛰어도, 어느 것을 선택하든 간에 괴물에게 잡아먹힐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모래 언덕으로 뛰어간다 한들, 람이 도와줄지도 미지수다.
아마 아까의 차가운 기세로 봐서는 도와주긴커녕 그녀가 괴물 밥이 되는 틈을 타 조롱이와 함께 제 갈 길을 가 버릴 확률이 더 컸다.
“……자, 얘야.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
“…….”
아이는 답하지 않았다.
굳이 답을 바라고 한 질문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녀는 실망하지 않았다.
그때, 눈이 시리도록 환한 빛이 그녀의 다친 뺨을 따갑게 찔렀다.
이예주는 고개를 돌렸다.
“……미치겠다.”
거짓말처럼 ‘문’이 열려 있었다.
아무것도, 미래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하얗게 빛나는 ‘문’이.
마치 삼류 드라마같이 돌아가는 이 환장할 상황에 이예주는 통탄했다.
그녀는 환하게 빛나는 ‘문’을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내려 제 품에 힘없이 안겨 있는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초점 없는 눈동자를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이 위태롭게 일그러졌다.
그날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봉구를 산책시켜 준 날이자 이예주의 열다섯 번째 생일이었다.
마트 옆에 있는 공원에 그녀를 내려 주면서 엄마가 봉구의 목줄을 꼭 쥐어 주었다.
장 보고 올 테니 봉구랑 공원 몇 바퀴 돌고 있어. 봉구 자식은 내 말 듣지도 않는데 어떻게! 그럴 리가 있나. 우리 봉구가 예주 누나를 얼마나 잘 따르는데?
그 짧은 대화가 아직도 생생했다.
그날만큼은 봉구도 이예주의 귀빠진 날이란 걸 알았는지 거짓말처럼 잠잠하게 그녀를 따랐기 때문이다.
공원을 도는 내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봉구는 아무런 말썽 없이 산책을 즐겼다.
쳇바퀴처럼 공원을 뱅뱅 도니 지겨워진 것은 오히려 이예주였다.
그런 그녀의 앞에 공원으로 놀러 온 같은 학교 친구 몇 명이 나타났다.
소심하고 주변머리 없는 탓에 협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이예주에게 그 관심은 메마른 땅에 내리는 단비와도 같았다.
—어, 이예주? 너 강아지 키웠어? 예쁘다. 만져 봐도 돼?
여자아이들은 하얀 털이 뭉글뭉글한 작고 귀여운 봉구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그러자 왕 짖으며 바르르 털을 떠는 봉구의 재롱에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반면에 야구공을 두어 번 주고받던 남자아이들은 이예주의 애완견 훈련에 열성을 냈다.
얘 공도 물어 와? 가서 이거 물어 와!
그녀의 손에 감겨 있던 목줄이 스르륵 부드럽게 풀렸다.
공을 따라 봉구가 헥헥 거리며 뛰어가자 여자아이들은 강아지에 대한 관심을 끊고 화장품 이야기나 호감 가는 남자아이에 대한 이야기, 혹은 학교 이야기로 금세 화제를 전환했다.
그때만 해도 능력의 심각함을 전혀 모르던 이예주는 그저 평범한 여자아이 중 하나였다.
친구들의 조잘댐에 휩쓸려 열심히 떠들어 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한참 수다를 떨던 도중 문득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이예주가 봉구를 다시 찾았을 땐, 봉구는 굴러 가는 야구공을 쫓아 열심히 공원 끄트머리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봉구야!”
엄마 목소리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봉구가 왜 항상 자신의 말에는 듣는 시늉도 안 했는지.
그녀는 아직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그런 봉구를 바라보며 그녀 또한 어떤 힘에 이끌리듯 뛰었단 사실이다.
공이 멈출 줄 모르고 계속해서 데굴데굴 굴러 갔다.
그 뒤를 봉구가, 그 뒤를 이예주가 쫓았다.
이윽고 주먹만 한 야구공이 멈췄을 때, 봉구는 차도 한가운데 서 있었다.
빠앙―
시끄러운 경적이 울렸고.
“봉구야!”
봉구를 쫓던 그녀 또한 차도로 뛰어들었다.
빵, 빠앙.
자동차 경적 소리가 그녀의 정신을 흩뜨렸다.
그 아수라장 한가운데에서 왕왕 짖어 대는 봉구를 간신히 잡아 들어 올렸을 때, 이예주의 앞에 ‘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