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앤 매드 (40)화 (40/319)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여?”

“……아니야. 생각은 무슨…….”

이예주의 가장 달라진 점은 바로 이것이다. 

그녀는 포니를 만난 이후 부름도 듣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생각에 잠기곤 했다. 

어느 날은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며 사색에 잠겼고, 또 어느 날은 앞서 가는 람의 뒤통수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걷느라 발치에 걸린 암석을 피하지 못해 넘어진 것도 여러 번이었다. 

그런 그녀의 행동이 조롱이의 눈에 괴이쩍게 여겨지는 것은 실로 당연한 일이었다. 

걱정스러운 빛을 띠는 황금안을 바라보며 그녀가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이예주는 눈 밑까지 두른 천을 손으로 잡아끌었다. 

검은 천에 숨겨져 있던 얼굴이 볕 아래 드러났다. 태양을 쬐지 않아서 그렇다기에는 혈색이 지나치게 파리했다. 

이마에 식은땀까지 송골송골 맺힌 것을 보자 조롱이가 조금 더 염려 깊은 목소리로 물었다.

“예주 누나, 많이 힘들어여? 주인님께 조금만 쉬었다 가자고 할까여?”

“아니야. 조금만 더 걸으면 내리막길일 텐데 뭐.”

그들은 꽤 높은 모래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사막은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지역인지 모르겠으나 고지대임에도 티끌 같은 바람 한 점 불지 않을 때가 많았다. 

저질 체력의 그녀가 쌍욕을 내뱉을 정도로 혐오스러운 지역이었다. 

그러나 이예주는 입을 놀려 불평불만을 내뱉기보단, 좋지 않은 안색으로 묵묵히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 모습이 꼭 폭풍 전야 같아서 오히려 더 불안한 조롱이었다.

“그래도 예주 누나 안색이 너무 안 좋은데여. 주인님께 물이라도 달라고 해 볼까여?”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이예주를 보며 안절부절못하던 조롱이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그가 보기에 이예주는 포니를 만난 이후부터 극심한 우울함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딱히 그녀의 표정이나 말투가 우울하거나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그날 이후 힘이 완전히 빠져 버린 듯했다. 

전의 밥 달라고 난리를 치던 그녀가 그리워질 지경이었다. 

조롱이가 계속해서 말없이 걷는 이예주의 눈치를 조심스레 살필 때였다. 

그들보다 훨씬 앞서 모래 언덕의 정상 가까이에 올라선 람이 우뚝 걸음을 멈춰 섰다. 

마치 사막 여우를 뜯어 먹고 있던 인간들을 발견했을 때처럼. 

이예주에게 무어라 말을 걸까 고민하던 것도 잊고 조롱이가 제 주인에게로 뛰어갔다. 

그녀 또한 서둘러 조롱이를 뒤따라 걸음을 재촉했다.

“어! 인간들이에여!”

조롱이가 모래 언덕으로부터 한참 떨어진 아래를 손으로 가리키며 외쳤다. 

과연 그 말이 사실이었다. 열 명 남짓한 인간들이 모래 위에 쭈그려 앉아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어린아이 두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성인 남녀로 보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모래 위에서 이상행동을 하고 있었다. 

어떤 이는 흙을 팠고 어떤 이는 판 흙을 덮는 것을 반복했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비렁뱅이처럼 다 떨어진 남루한 행색이었다. 

바람 한 점 불면 모두 쓸려 날아갈 정도로 하나같이 삐쩍 말라 있었다. 

티브이에서나 보던 아프리카 난민처럼 까맣고 작은 여자아이 하나가 제 엄마를 뒤따라 휘청휘청 자리를 옮겨 다시 땅을 팠다. 

한눈에 봐도 고되어 보이는 아이의 움직임에 이예주의 이맛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저 사람들이 과연 부락을 이룬 인간들이 맞는 건가.

“조롱이 네가 말한 인간 부락이 여기야?”

이예주가 조롱이에게 시선을 던지자 그가 고개를 휙휙 내저었다.

“아니에여. 농사를 짓고 있는 걸 보니 저 인간들은 포니가 말한 버려진 인간들이에여. 부락을 이룬 인간들은 모두 퉁퉁하고 힘이 센 인간들인걸여. 부락에는 시간족도 섞여 있어여. 저들은 시간족 같아 보이지 않아여. 돌연변이거나 그냥 힘없는 약한 인간들로 보이는데여.”

“농사를 짓는다고? 물도 없이 사막에서 농사를 어떻게…….”

골이 깊게 파인 이예주의 미간이 한층 더 짙어졌다.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중얼거린 그녀의 말에 드디어 람이 입을 열었다.

“저것들은 사막의 현자인 사막 여우가 죽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들이다. 그저 씨를 심으면 사막 여우가 물을 내려 주기 때문에 계속해서 저 짓거릴 반복하고 있는 거겠지.”

제 어미를 따라 모래를 헤집던 작은 아이가 아슬아슬하게 비틀거리더니 끝내 털썩 쓰러졌다. 

10살 내외로 보이는 아이였다.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 

저렇게 비쩍 곯은 것으로 보아 제대로 된 발육 상태일 리가 없었다.  

사막보다 더 황폐하고 삭막한 인간들을 이예주가 망연자실하게 바라보고만 있던 그때였다. 

쾅! 

엄청난 굉음이 울리더니 인간들이 모여 있는 장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의 모래가 갑작스레 폭발했다. 

여파가 얼마나 거세던지 꽤 먼 거리에 서 있는 이예주의 무리조차 휘청거릴 정도로 커다란 진동이 울렸다. 

“아아아악!”

“끄아아아악!”

“사, 살려, 살려 줘!” 

인간들이 한순간에 괴성을 지르며 혼비백산 흩어졌다. 

폭발이 일어난 장소에서 뿌연 안개가 몽글몽글 피어올라 원인이 무엇인지 잘 보이지 않았다. 

다만 왠지 모르게 기괴한 소리가 안개로부터 뿜어져 나올 뿐이었다.

“끼기, 끼기기긱.”

마치 고등학교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소리가 퍼져 나오자 이예주가 귀를 틀어막았다. 

“꺄아아악!” 

어디선가 여자가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기기기긱, 끼기익.”

괴상한 소리가 끊이질 않고 이어지는 와중에 드디어 뿌연 연기가 가셨다. 

“히, 히카톤! 히카톤이에여!”

조롱이가 허옇게 질린 얼굴로 소리 질렀다. 

연기가 가신 자리에, 그녀로선 상상도 못했던 거대한 괴물이 모래 위로 솟아올라 있었다. 

이예주가 지금껏 숲에서 만난 그 어떤 괴물들도 저것에 비하면 모두 귀여운 수준일 터였다. 

“끼이이이익―!” 

웬만한 전봇대 열 개를 합친 것보다 두꺼운 두 다리 위 괴물의 몸통에 수백, 수천의 다리가 달려 있었다. 

그 위로는 층이 나눠진 것처럼 다시 수백, 수천의 팔이 달려 있었고, 맨 위의 꼭대기 층엔 수천 개의 사람 머리통이 다닥다닥 달려 있었다. 

어느 머리는 눈을 희번덕하게 뒤룩뒤룩 굴리고 있었고 또 어느 머리는 혓바닥을 길게 내뺀 채 날름거렸다. 

또 다른 머리는 귀까지 찢어진 입술로 낄낄 웃으며 목을 한 바퀴 도로록 굴렸다. 

쿵. 

괴물을 지탱하는 굵직한 다리가 한 발자국 움직이자 맨 위층에 달려 있는 수천 개의 머리가 괴성을 지르고, 두 번째 층의 팔들이 허공을 휘휘 휘저어 댔으며, 마지막 층의 다리들이 지네 다리처럼 샤샤샤샥 움직여 댔다.

“끼긱, 끼기기긱.”

느리지만 한 발자국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도망가는 인간들의 바로 뒤까지 접근할 수 있는 거대하고 끔찍한 괴물이, 괴성을 지르며 달리고 있던 인간 남자 하나를 수천 개의 팔 중 몇 개의 팔로 쉽게 잡아챘다. 그리고 그다음은…….

“끄아아악―! 끄윽.”

찌이익, 우둑, 우두둑. 수십 개의 팔에 몸이 잡힌 남자가 버둥댈 틈도 없이 순식간에 여러 조각으로 찢어졌다. 

붉은 피가 분수처럼 허공에 쏟아졌다. 

팔들은 각자 잡은 남자의 몸통들을 맨 위층, 수천 개의 얼굴들에 가져다 댔다. 

얼굴들이 남자의 조각조각을 미친 듯이 씹어 먹기 시작했다. 

우둑, 우두둑. 

“으, 우욱.”

이예주가 그 역겹고 끔찍한 광경을 보며 저도 모르게 헛구역질을 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괴물의 몸 뒤편에도 똑같이 달려 있던 팔들이 계속해서 도망치는 인간 몇몇을 잡아챘다. 

그들은 앞의 남자와 같은 과정을 거쳐 수백 개의 머리통들의 입속으로 사라졌다. 

괴물에게서 시선을 떼 고개를 돌리던 그녀의 눈에, 한 모녀가 포착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아까 엄마를 뒤따르다 쓰러진 여자아이와 아이의 엄마가 괴물로부터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가 힘이 없어서 자꾸만 쓰러졌다. 

아이의 엄마가 애 타는 몸짓으로 아이를 들어 올리려고 했지만, 그녀 또한 힘이 부치는지 자꾸만 도망길이 늦춰졌다. 

“끼기기긱, 끼긱.”

쿵, 쿵. 괴물은 육중한 몸을 움직여 순식간에 모녀의 뒤를 따라잡았다. 

문어 다리처럼 이리저리 움직이던 팔들 중 하나가 아이를 잡아채기 직전인 절체절명의 순간. 

아이의 엄마가 아이의 몸을 확 하고 세게 밀쳤다. 

곧이어 아이를 잡아채던 팔이 아이 대신 어미의 머리채를 잡아 쥐었다. 

아이가 엄마에게 밀쳐진 채로 멍하니 주저앉아 제 앞의 거대한 괴물을 올려다보았다. 

우둑, 우두둑. 엄마의 상체가 피를 흩뿌리며 사라져 갔다. 

아이의 머리 위에서 엄마의 두 다리가 하늘하늘 흔들린다. 

영혼이 빠져나간 텅 빈 눈. 고작 10살 남짓 되어 보이는 아이가 그것을 바라보더니 입을 들썩였다.

“……엄마.”

―……엄마.

고등학교 들어가 처음으로 사귄 친구들이 같이 시내를 가자는 것도 뿌리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이예주가 제일 먼저 발견한 것은 천장에서 흔들리는 엄마의 두 다리였다. 

짝, 그녀가 갑자기 멀쩡한 제 볼을 후려갈겼다. 그리고 다시 앞을 보았다. 

변함없었다. 

엄마의 두 다리는 여전히 공중에서 춤을 추듯 하늘하늘 흔들리고 있었다.

“엄마, 엄마, 엄마…….”

그녀는 다시 눈을 떴다. 

천장에 매달린 엄마의 다리를 멍하게 바라보고 있는 17살의 자신이 있던 자리에, 괴물에게 엄마가 잡아먹히는 장면을 멍하니 보고 있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도와주세요.”

이예주가 번뜩 람의 옷자락을 부여잡았다. 남자가 무표정하게 그녀를 돌아보았다. 

시뻘건 눈동자가 사막 여우를 보았을 때완 다르게 무심한 빛을 띠고 있었다. 

그 현저한 차이에 이예주의 표정이 절박하게 일그러졌다.

“도와줄 수 있잖아요.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남자가 무뚝뚝하게 내뱉었다. 

그녀가 비명처럼 소리 질렀다.

“어린아이잖아요!”

“같잖은 동정심 이야기는 이틀 전에 끝냈던 걸로 아는데.”

심드렁한 남자의 목소리에 남자의 옷자락을 부여잡았던 이예주의 손이 힘없이 떨어져 나갔다. 

그녀의 고개가 죄인처럼 아래로 떨궈졌다. 

그 위로 람의 차가운 목소리가 가차 없이 쏟아졌다.

“만약 구한다 쳐도 어미를 잃은 새끼를 어떻게 감당할 거지. 네가 데려가 키우기라도 할 건가? 아니면, 제 목숨도 부지하지 못하고 도망치는 저 인간들에게 다시 맡기기라도 할 건가. 언제 또다시 히카톤이 나타나 쓸어 버릴지도 모르는 저 인간 무리에게로 말이다. 저 계집아이가 너에게 퍽이나 고마워하겠군그래.”

“…….”

“내가 힘을 쓴다 쳐도 저 계집아이가 살려 주었다고 너를 은인 취급이라도 해 줄 것 같나? 쥐뿔도 없이 약해 빠진 너를?”

“…….”

“힘도 없는 네가 내 힘을 빌려 제 목숨을 구제해 준 것을 알면 저 계집아이는 오히려 너를 조롱하고 비웃을 것이다. 동정심은 약한 것들의 특징이지. 제 앞가림도 하지 못하는 것들이 꼭 저보다 약한 것들을 보면 안쓰러이 여기더군.”

남자의 신랄한 어조에 검은 천을 뒤집어쓴 그녀의 어깨가 눈에 띌 정도로 부들부들 떨렸다. 

조롱이가 그런 이예주의 눈치를 보며 “예, 예주 누나…….” 하고 애처롭게 불렀지만 떨림은 점점 거세지기만 했다.

“동정……?”

이예주가 혼잣말처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누가 누굴 동정해? 나도 매일 죽음 속에서 살고 있는데…….”

“…….”

“꿈을 꾸고 일어날 때마다 기도가 턱턱 막혀. 오늘은 또 어떤 일이 내 숨통을 죌까, 오늘은 과연 문을 통과할 수 있을까. 그렇게 벌벌 떨고 있는 내가 동정을 해?”

“…….”

“당신 말이 맞아. 난 힘도 없고 약해 빠져서 누군가 도와줄 처지도 못 돼. 그래서 엄마 잡아먹고 살았는데도 쓰레기보다 못한 인간처럼 살았는걸. ……그런데 동정?”

단 하루도 남의 눈치를 보지 않은 적이 없었다. 언제 ‘문’이 나타날까. ‘문’이 나타나더라도, 그걸 넘으면 그 뒤엔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문’을 넘느라 갑자기 사라진 이예주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여길까. 

엄마가 죽은 후 이예주는 능력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하루하루 피폐해졌다. 

웃음이 사그라지고 말이 없어졌다. 

고2부터 대학생이 된 이후까지 사람들은 그녀를 ‘무당년’ 혹은 ‘친구들 죽이고 살아남은 년’ 혹은 ‘저주받은 신들린 년’이라 불렀다. 

그랬다. 저 때문에 애완동물이었던 봉구와 엄마를 죽이고, 수학여행에서 곧 죽을 친구들을 외면한 채 저 혼자 살아남고. 

그렇게 진흙탕을 뒹굴며 악착같이 살아남은 게 쓰레기 같은 이예주의 인생이었다. 

그녀가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람을 노려보는 그녀의 눈빛이 제법 사나웠다. 

사납다 못해 부글부글 끓는 감정이 피를 토하듯 그녀의 눈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딴 걸 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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