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예주는 슬쩍 눈을 돌려 조롱이를 바라보았다.
고작해야 15, 16살쯤 돼 보이는 조롱이는 제 신세에 대해 불평불만만 하고 있는 그녀보다 훨씬 늠름하고 능숙하게 모래 위를 걷고 있었다.
“넌 여기 와 봤어?”
“에, 에?”
“부락이 어디쯤에 있는지도 알고. 사막에 능숙한 것 같아 보이는데.”
조롱이는 그녀의 말을 듣고 과거를 더듬어 보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모습이 꼭 부엉이 같았다.
“네, 왔었어여. 그땐 사막이 이렇게 크진 않았었는데. 인간들 때문에 숲이 갈수록 작아지고 사막이 갈수록 커지고 있어여.”
“인간들 때문에?”
이예주는 눈살을 찌푸렸다.
어쩐지 1000년 후의 세상에서 모든 해악한 일은 꼭 인간들이 자행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리쳐를 만났던 호수 근처에서 람이 말했던, 인간들이 근처의 모든 먹이를 잡아먹는다는 이야기와 신인류를 양육해서 산 채로 뜯어 먹는다는 조롱이의 말.
식인을 자행하는 외눈박이 삼 형제와 자신의 눈에 집착하던 미친 노인까지.
신인류인 조롱이의 입장에서 볼 때 인간은 어느 하나 사악하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사막화 현상.
이것은 1000년 전, 2017년에서도 대두되던 심각한 환경문제였다.
그런데 그것이 1000년 후에도 계속해서 문제가 되고 있다니 왠지 모르게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과학을 발달시켜 사막화 현상이나 각종 환경문제를 축소시킬 대체 에너지 혹은 대체 물품들을 개발한다는 것이 현대의 유일한 대책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상상하고 예측하던 미래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예주의 무지한 눈으로 보기에도 과학의 발달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굉장한 오지에 떨어졌고 아직 인간들이 사는 도시로 가 보지 않았다며 애써 자위했지만, 사실 생각을 거듭할수록 괴의한 곳이었다.
허기가 가신 그녀는 조금 더 맑은 눈으로 사막을 쭉 둘러보았다.
사방이 모래, 모래뿐이었다.
풀 한 포기는 물론이고 사막에서 생식한다는 선인장 하나 보이지 않았다.
이곳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척박한 땅이었다.
이런 곳이 무려 1000년 후의 미래라고?
“가뭄과 기아 현상으로 굶주린 인간들이 모든 것을 먹어 치우고 있어여. 인간 부락 하나면, 일주일 만에 주변이 사막으로 변해 버리는 걸여. 번식은 또 얼마나 잘하는지 주인님도 그 수를 줄이느라 엄청 고전하고 계시다구여.”
가뭄, 기아 현상, 굶주림. 꼭 티브이 속에 나오던 아프리카 지역 주민에게나 들을 법한 소리에 이예주의 머릿속은 더욱더 복잡해졌다.
‘제3차 세계대전은 결국 식량 전쟁일 것이다.’라는 소리는 현대의 뉴스에도 자주 나오는 화젯거리였다.
그런데 1000년이나 지난 미래에서 가뭄과 기아라니.
대체 식품이 1000년간 단 하나도 개발되지 않았다는 소리란 말인가?
“왜?”
“예?”
“왜 굶주려? 고기는 먹기 힘들다 쳐도, 먹을 게 정 없으면 농사지어서 재배하면 되지. 사람들이 그런 시도도 없이 무조건 주변에서 나는 것들만 먹어 치운다고?”
좀체 이해가 안 가는 얼굴로 이예주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조롱이가 꽤 놀란 얼굴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따뜻한 색의 금안에는 왠지 모르게 등골이 서늘할 정도의 차가움이 감돌고 있었다.
이예주는 당황했다.
그녀를 책망하는 듯하면서도 그보다 더 커다란 의미 모를 감정을 품고 있는 듯한 그 눈이, 스산함을 내뿜으면서 그녀의 아둔함을 냉정하게 잘라 내는 것 같았다.
“인간들은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어여. 그들의 생존을 돕는 모든 것들을 주인님이 금지하셨으니까.”
그 서늘한 두 눈과 마주치는 순간, 이예주는 왠지 모르게 무언가에 쫓길 때처럼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땀조차 증발해 버릴 정도로 따가운 태양 아래임에도 불구하고 오싹한 한기가 그녀의 등골을 덮쳤다.
금지. 조롱이가 말한 금지라는 말이 머릿속에 콱 들어박힌 듯 계속해서 눈앞에 떠올랐다.
농사를 금지했다니. 그게 무슨…….
혼란스러운 이예주를 내버려 둔 채 조롱이는 언제 차가운 기운을 품었냐는 양, 어느새 다시 따뜻한 황금안을 빛내며 제 주인의 뒤를 쫓았다.
이예주가 두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다시 생각에 잠길 즈음이었다.
앞서 휘적휘적 걸어가던 람이 불현듯 우뚝 걸음을 멈춰 섰다.
“주인님! 왜 그러세여? 무슨 일…… 어?”
빠릿빠릿하게 제 주인을 뒤쫓던 조롱이 또한 남자의 근처에 도달하자 덩달아 우뚝 멈춰 섰다.
그들의 시선이 내리막길 너머 능선 아래에 못 박힌 듯하자 이예주도 서둘러 그들이 있는 곳까지 달려갔다.
그리고 그녀 또한 그들처럼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헐. 저게 뭐야?”
그녀가 멀리서 보이는 형태에 경악한 얼굴로 내뱉었다.
능선 너머 꽤 멀리 떨어진 곳에 사람들로 추정되는 인영 셋이 바닥에 주저앉아 무
언가를 미친 듯이 뜯어 먹고 있었다.
숲에서 보았던 외눈박이 삼 형제만큼 더러운 행태에 거의 다 찢겨진 거적때기를 걸친 성인 남자 둘과 긴 머리칼의 여자였다.
걸신들린 것처럼 바닥에 놓여 있는 무언가에 집중하는 그들의 입과 손이 온통 피로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뭘 먹고 있는 걸까여?”
불쑥 조롱이가 남자를 올려다보며 질문했다.
이예주로선 전혀 궁금하지도, 절대 알고 싶지도 않은 주제였다.
이럴 때 보면 이 쪼그마한 황조롱이는 겁도 없이 잔인한 말들을 서슴없이 내뱉는 경향이 있었다.
그사이 핏물처럼 붉은 람의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쿠우우웅.
문득 무언가 진동하는 거대한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모래 아래가 꿈틀거렸다.
“어, 어!”
안 그래도 푹푹 빠지는 모래 때문에 자주 넘어졌던 이예주가 그에 휩쓸려 덩달아 휘청거리자 람이 손을 뻗어 가볍게 그녀의 팔을 틀어쥐었다.
그와 동시에 발밑이 꿈틀거리더니 모래 더미가 무언가를 정신없이 뜯어 먹고 있는 인간들에게로 스스스스 움직여 갔다.
그것은 모래 뭉치의 꿈틀거림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이건 또 무슨 일이야?
모래 뭉치가 근처에서 사라져 안전해졌음에도 람이 제 팔을 놓지 않자 그녀가 그를 휙 치뜨고 보다가 바로 딴청을 부렸다.
남자의 두 눈동자가 시뻘겋다 못해 흡사 눈에서 피라도 철철 흘릴 듯이 형형히 빛나고 있었다.
마치 이예주를 처음 만났던 그때처럼.
등골에 소름이 쫙 끼치면서 반사적으로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눈빛만으로도 찢어 죽일 수 있는 살기가 이런 것일까.
남자의 눈에서 철철 넘쳐흐르는 분노와 냉기가 자신을 향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이예주는 그저 안도했다.
그녀는 곧 고인이 될 인간 셋의 명복을 빌었다.
남자가 모래 더미를 일으키는 것이 분명한지 그녀의 팔을 틀어쥔 손의 악력이 점점 거세졌다.
아파하는 티를 내면 남자의 들끓는 살기가 저에게로 튈지 몰라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이를 악물고 통증을 참던 그때.
팟! 남자가 그녀의 팔을 뿌리쳤다.
쿠우훠억!
마치 동굴 속에서 누군가 악을 지르는 듯한 소리가 천지 사방에 진동했다.
그와 동시에 땅에서 치솟은 모래 뭉치가 세상모르게 무언가를 나눠 먹고 있던 세 인영을 덮쳤다.
“으, 으아아악!”
“아아아악!”
잘 먹다가 날벼락을 맞은 세 사람에게서 끔찍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도 얼마 가지 않아 뚝 끊겼다.
모래 더미가 그들을 더 깊은 모래 속으로 끌고 들어갔기 때문이다.
눈 깜짝할 새에 인간들은 종적 없이 사라졌고 그들이 있던 자리엔 뿌연 먼지만 풀썩 피어오르고 있었다.
모래가 그들을 삼켜 버렸다.
어안이 벙벙해서 입을 떡 벌린 채 서 있는 이예주를 놔두고 남자가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갔다.
그런 남자의 행태를 멍청히 바라보고만 있자 조롱이가 그녀를 힐끗 돌아보며 덧붙였다.
“아직 안 죽었어여.”
“……뭐, 뭐?”
“용암만큼 뜨겁게 달궈진 모래 속에 파묻혀서 천천히 죽어 갈 거예여. 으으, 아프겠다. 차라리 한 번에 소멸되는 용암 구덩이가 낫져! 저러면 온 구멍이란 구멍으로 날카로운 모래가 파고들잖아여. 뜨겁고 날카롭고, 흐엑!”
괴상한 소리를 쏘아 댄 조롱이는 서둘러 제 주인의 뒤를 따랐다.
남은 것은 조롱이가 장난처럼 던진 말에 딱딱하게 굳어 버린 이예주뿐이었다.
그사이 람은 인간들이 뜯어 먹고 있던 무언가가 있는 곳까지 도착했다.
그의 발치에 시뻘겋다 못해 꺼먼 피를 먹은 모래가 밟혔다.
“헉! 멸종하다시피 한 사막 여우네여? 게다가 신인류!”
그의 뒤를 헐레벌떡 쫓아온 조롱이가 휘둥그레진 금안을 반짝이며 소리쳤다.
남자는 조롱이의 말에 반응하지 않고 묵묵히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예주가 그들의 근처까지 느릿느릿 걸어올 때까지 미동도 않고 말이다.
“뭐야? 뭔데?”
그녀가 전혀 궁금하지 않은 영혼 없는 목소리로 예의상 물었다.
조롱이가 휙 돌아보며 고개를 저었다.
“보지 마여, 예주 누나.”
그러나 조롱이보다 키가 큰 탓에 그의 만류는 너무 늦어 버렸다.
무심결에 그것을 확인한 이예주는 조롱이와 몇 발자국 남지 않은 상태에서 우뚝 멈춰 섰다.
“이, 이게…….”
그것은 도저히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처참하고 끔찍한 살해 현장이었다.
역한 피비린내가 물씬 피어올라 그녀의 얄팍한 비위를 자극했다.
인간들이 뜯어 먹은 것은 사막 여우였다.
머리는 먹지 않은 건지 눈을 꾹 감고 있는 얄쌍한 얼굴과 삐쭉 솟은 귀가 피 한 방울 튀지 않은 채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그것이 인간들에게 뜯겨 먹힌 무언가가 사막 여우임을 알리는 유일한 증거였다.
턱 아래부터는 너무나도 잔인해서 눈을 내려 확인하기가 두려울 지경이었다.
군데군데 붉은 살점이 붙어 있는 목뼈와 갈비뼈가 보였다.
내장까지 파헤쳐져 있는 그 참혹한 모습에 아까 먹었던 육포 조각이 역류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흰 뼈가 드러난 배 밑은 그나마 온전했지만, 기이하게도 사막 여우의 몸통 아래에 인간 다리가 달려 있었다.
한쪽 발목에 날카로운 덫이 깊게도 파고들어 있었다. 그 때문에 도망도 못 가고 산 채로 인간들에게 뜯어 먹힌 것 같았다.
어린아이만치로 작고 가는 발목과 발이 눈이 시릴 정도로 아프게 들어와 박혔다.
도망치려고 얼마나 버둥댔는지 덫이 없는 다른 쪽 발은 거친 모래에 쓸려 피부가 온통 벗겨져 있었다.
인간의 다리를 가지고 있는 사막 여우.
기괴한 생물체임에도 처참한 그 모습에 그러한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고작해야 자신의 팔뚝 길이밖에 안 되는 작은 동물이었다.
그것도 하체는 인간 다리를 가지고 있는 아이를.
“인간들에게서 도망치려고 인간으로 변성(變性)하다가 덫에 걸렸나 봐여. 아직 어려서 변성도 제대로 못할 나이인 것 같은데여.”
이예주의 앞에서 조롱이가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꽤 냉정하게 말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어깨가 축 처져 있었다.
이예주는 얼어붙었던 발걸음을 옮겨 사막 여우가 죽어 있는 곳으로 조금 더 다가갔다.
주변이 온통 피 난장이었다. 핏자국이 난 자리가 너무 커서 저 작은 몸에 다 담겨 있던 피라고 믿기지 않았다.
저 작은 생물을 먹으려고 세 명이나 되는 인간들이 그렇게 악귀처럼 달라붙어 있었던 것인가.
나이도 다 차지 않은 저 어린 것을 먹고 얼마나 더 연명할 수 있다고. 얼마나 더.
“주, 주인님. 심장이 아직 뛰고 있어여!”
그때 조롱이가 비명처럼 외쳤다.
그 소리에 놀라 이예주가 완전히 드러난 갈비뼈 사이로 심장이 있는 위치를 허둥지둥 바라보았다.
정말이었다. 주먹보다 약간 더 작은 붉은색 덩어리가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뛰고 있다기보다는 그저 간신히 숨만 붙어 있는 듯 움찔움찔 대는 것에 불과했지만.
어쨌든 규칙적인 움직임을 확인한 그녀가 휙 람을 돌아보자, 그때까지 묵묵히 여우를 내려다보고 있던 그가 빠르게 여우의 근처에 주저앉았다.
그 때문에 까만 바지 천에 뜨뜻한 피가 스며들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남자가 파리하게 눈을 감고 있는 사막 여우의 이마 위로 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을 일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남자의 손으로부터 검푸른 색의 투명한 빛이 쏟아져 나오더니 사막 여우의 이마에서 얼굴로, 그리고 허옇게 드러난 몸통의 뼈들로 꾸물꾸물 번져 나갔다.
뼈 주위에 덕지덕지 남아 있던 살점들을 중심으로 그 주위에 세포분열 하듯 붉은 살점들이 번졌다.
그리고 등가죽에 닿을 정도로 끌려 나와 있던 내장이 스르륵 배 속으로 빨려 들어가더니 느릿느릿 자리를 잡았다.
번식하고 또 번식하던 붉은 살점들이 점점 속도가 붙어 금세 뼈를 덮고 그 위로 근육과 혈관들을 생성해 냈다.
이윽고 생성된 혈관이 꿈틀꿈틀하자 사막 여우 주위에 퍼져 있던 핏물들이 스펀지에 빨려 들어가듯 여우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꿈틀거리는 혈관 속을 힘차게 내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