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앤 매드 (36)화 (36/319)

조롱이가 이예주의 입에 넣은 것은 ‘소과’라고 불리는 알사탕만 한 과일이었다. 

소과는 쓴맛으로 끊임없이 침을 유발하고, 짠맛으로 탈수 증세를 방지한다. 

또한 박하처럼 시원한 수분을 머금고 있어 조금이나마 더위를 가라앉혀 주는 역할을 했다. 

물이 귀한 중앙 사막을 횡단하는 여행자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소지품이었다. 

사막에 들어선 지 30분도 안 돼서 빌빌대기 시작하던 그녀는 소과를 무려 세 개나 건네며 살뜰히 보살펴 주는 조롱이에게 너무나 감동한 나머지, 제 핸드폰을 잃어버리게 만든 괘씸죄도 모두 없는 셈 치기로 했다. 

그쯤 멈췄으면 좋았으련만, 이예주의 띄워 주기에 으쓱한 조롱이가 소과는 딱따구리 종의 새가 소금 나무의 열매를 먹고 그 가지 위에 싼 배설물이란 장황한 설명을 덧붙였다. 

그 바람에 그녀의 입에서 녹다 만 소과 파편들이 ‘푸웁!’ 하고 뱉어짐은 물론이요, 발칙한 새대가리의 정수리에 꿀 주먹이 쿵 하고 들이박힌 것은 덤이었다. 

결국 이예주는 시뻘건 미친놈으로부터 ‘신인류 구타 및 모독죄’로 벌을 받아야 했다. 

빌어먹을 똥을 세 개나 뱉었으니 그녀에게 물은 금지라는 것이다. 

하루에 딱 두 번 쥐꼬리만큼 먹게 해 주겠다던 그 물을. 

이예주는 그때 귀신이 있다면 제발 저 미친놈 좀 잡아가 달라고 읊조리고 또 읊조렸다. 

“하…….”

그녀가 다시 우울한 얼굴로 신음을 내뱉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자 저도 헥헥거리는 주제에 잔뜩 젠체하던 조롱이가 그녀 곁으로 다가와 매를 버는 소리를 찍찍 지껄였다.

“왜여? 소과 또 줄까여? 주인님이 하나 이상은 주지 말라고 했는데…….”

이예주는 말도 섞기 싫다는 듯 풀어헤쳤던 히잡(아랍권의 이슬람 여성들이 머리에 쓰는 두건)을 끌어 올려 얼굴을 덮었다. 

그 모습을 보고 조롱이가 “어차피 곧 또다시 풀어 헤칠 거면서.” 하고 구시렁거리며 멀어졌다. 

오기가 생겨서라도 계속 눈 밑까지 천을 덮고 싶었지만 얼마 못 가 천을 풀어 헤칠 것은 그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사막이란 통탄할 정도로 지독한 곳이었다. 

내뱉는 숨마다 뜨거움과 모래가 뒤섞여 나왔다. 

그렇다고 남자가 처음 매어 준 것처럼 얼굴 위로 천을 뒤집어쓰자니, 천 안에서 빠져나가지 못한 뜨거운 날숨 때문에 숨이 턱턱 막혀 왔다. 

낮은 어찌나 길고 뜨거우며 밤은 또 어찌나 짧고 차가운지, 이 미친 환경에 비하면 시원시원하고 해가 짧았던 숲은 천국에 가까웠다. 

아침부터 계속해서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해가 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꼭 달궈져 있는 거대한 프라이팬 위를 계속해서 걷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들었다. 

폭격하듯 내리쬐는 더위에 삐질삐질 땀이 흐르다가도, 후끈한 열기에 의해 다시 그 땀이 증발되는 현상이 되풀이되었다. 

하지만 더위보다 더욱 참을 수 없는 것은 차가운 모래 바닥 위에서의 노숙이었다. 

딱딱하고 버석거리는 모래 위에서 잠을 자려니 좀체 잠이 오질 않았다. 

춥기는 또 어찌나 추운지, 오죽하면 덜덜덜 떨어 대다가 미운 조롱이의 등 뒤에 딱 붙어서 잔 그녀였다. 

새벽녘에 들어서야 간신히 선잠에 빠졌다 일어나면 주변이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분명 잠들기 직전 대략적인 지형과 모래 언덕, 능선 등을 파악하고 잤는데 일어나면 위치가 다른 것은 물론이고 바로 앞의 언덕조차 사라져 있었다. 

안 그래도 길치, 몸치인 그녀에겐 엄청난 방향 감각 상실과 충격을 주는 기현상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환장할 일이 남아 있었다. 

람이란 이름의 미친놈이 그녀에게 금지한 물을 가지고 했던 이상 행위였다. 

그는 어디서 주워 왔는지 해골바가지를 쪼개 그 안에 귀하디귀한 물을 담았다. 

그리고 품에서 나뭇잎 한 장을 꺼내 물 위에 둥둥 띄웠는데, 그 쪼그만 이파리로 북쪽과 남쪽의 척도를 잡더니 그대로 밀고 나갔다. 

정말 믿을 수 없을 만큼 무식하기 짝이 없는 방향 잡기였다.

잠시간 지난 하루를 돌이키며 히잡 속에서 코를 쿨쩍거리던 이예주는 새삼 이 일의 모든 원인인 람의 까만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지치지도 않는지 그는 첫날과 변함없는 모양새로 무지막지하게 걸어 댔다. 

처음 몇 번은 그래도 헥헥 대는 이예주를 향해 “쓸모없는 것.” 하고 혈압을 부추기는 독설을 해 대어 그녀를 움직이게 만들었지만, 어느 순간 그조차 통하지 않자 이제는 말도 걸지 않고 방관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앞에서 약 올리듯 물을 훌쩍훌쩍 마실지언정, 탈진한 이예주를 버리고 가진 않는다는 것이다. 

나귀를 모는 악덕 주인처럼 남자는 무섭게 이예주를 채찍질해 댔다. 

차오르는 불만과 억울함, 체력의 한계에 대한 고통으로 몸부림치면서도 그녀는 악착같이 남자의 뒤를 쫓을 수밖에 없었다. 

제발 자신을 버려 줬으면 했던 숲과는 달리, 이 척박한 사막에서 남자마저 놓친다면 하루도 버틸 자신이 없는 탓이었다.

“헉헉…… 저기요. 저 이제 진짜 못 가요…….”

모래 능선을 따라 비척비척 걷던 그녀가 털썩하고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30분에 한 번꼴로 주저앉는 그녀에게 이미 익숙해진 조롱이가 능숙하게 소과가 담긴 주머니를 품에서 꺼내며 다가왔다. 

이예주는 히잡 안의 얼굴을 험악하게 일그러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딴 똥을 먹고 다시 참을 인(忍) 자를 새기며 발걸음을 재촉할 수준이 아니었다. 눈앞이 어질어질했다. 

그녀에게로 오는 조롱이의 주변에 아지렁이가 피어올라 꿈틀거렸다. 

허억 허억, 거친 숨을 내쉬며 그녀가 통탄했다. 

이러다가 신기루라도 보는 거 아니야…….

“아직 해 지려면 멀었다.”

그때, 옆에서 불쑥 듣기 싫은 목소리가 고막을 자극했다. 

그녀가 기름칠 안 한 로봇처럼 삐거덕거리며 고개를 틀자 소리 소문 없이 다가온 남자가 시뻘건 눈을 빛내며 이예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숲이었다면 그의 행동에 소스라치게 놀라 가슴을 쓸어내릴 그녀였지만, 이제는 놀랄 힘조차 소강된 상태였다. 

열 때문에 붉게 달아오른 눈으로 멍하니 남자를 올려다보던 이예주는 문득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목이 바짝바짝 말라 꼭 죽기 직전인 자신과는 다르게 람의 얼굴은 지나치게 멀쩡했다. 

터번이나 천 같은 것을 뒤집어쓰지 않은 하얀 얼굴이 작렬하는 태양빛 아래 그대로 노출되어 있음에도, 어디 하나 붉게 달아오르거나 벗겨지지 않았다. 

이예주는 그런 람의 얼굴을 바라보며 평범한 자신과 그의 차이를 새삼 다시 한 번 절감할 수 있었다.

“게으름 그만 피우고 일어나. 네가 번번이 꾀병을 부리는 탓에 가는 길이 늦춰지고 있다.”

“꾀, 꾀병……?”

“그래, 꾀병. 아니면 아직도 이무기 일로 꽁해 있는 건가.”

제발 닥쳐. 이예주는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그 말을 끝끝내 내뱉지 못했다. 

폐를 짓누르는 답답함에 거칠게 얼굴을 감싼 천을 끌어 내렸다. 

그 안에서 애써 화를 참느라 발갛게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이 쑥 드러났다. 

네놈 눈엔 어떻게 이게 꾀병과 삐짐으로 보일 수가 있는 거지? 너무 지치다 못해 따져 물을 힘조차 일지 않았다. 

이예주는 자신을 한심하게 내려다보고 있는 남자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며 모기만 한 목소리로 반항했다.

“……밥이라도 제때 먹이든가요…….”

“뭐?”

남자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그녀가 기다렸다는 듯 좀 더 힘 있게 답답함과 불만을 토해 냈다.

“밥! 밥! 어제부터 왜 밥은 쥐꼬리만 한 육포만 주는데에!”

“…….”

“배고파! 아침 먹고 아무것도 안 줬잖아요! 배고파서 못 움직이겠어요!”

그녀가 마지막 힘을 끌어 올려 폭발한 후 다시금 흐물흐물 사막 위로 늘어졌다. 

주저앉은 모래 위로부터 열기가 후끈후끈하게 올라와 엉덩이를 뜨겁게 달궜지만 도저히 일어날 힘이 나지 않았다. 

밥을 쥐꼬리만큼 준다는 것은 전혀 과장되지 않은 온전한 사실이었다. 

이 미친놈이 대체 무슨 억하심정이 있는지 첫날은 정말로 조롱이와 저에게 자기 전에 검지만 한 육포 두 조각을 준 것이 다였다. 

게다가 소과를 세 개나 뱉은 벌로 자신에게는 물도 주지 않는 게 아닌가! 

그러고 나서 오늘 아침 육포 한 조각을 던져 준 것을 끝으로 이예주에겐 새똥 말고 더 이상 주워지는 음식은 없었다. 

고로 이렇게 30분에 한 번꼴로 주저앉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차오르는 불만을 삐죽이는 사이, 깔고 앉은 모래 때문에 엉덩이가 따끔따끔할 정도로 익어 갔다. 

천이 있더라도 모래에 오래 주저앉아 있으면 화상을 입을 수 있으니 첫날에 남자가 쉬더라도 서서 쉬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걸음을 멈추지 말라는 명령과 동일했기 때문에, 이예주는 엉덩이가 쓰라릴 때까지 앉아 있는 것을 선택했다. 

슬슬 일어나야 함에도 그녀는 꿋꿋이 모래 위에 엉덩이를 붙였다. 

기필코 손가락만 한 육포 한 조각이라도 얻어먹어야 이 분이 풀릴 것 같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람이 고집스러운 이예주의 머리 위로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손이 많이 가는 계집이군.”

“아직 어려서 그런 걸까여?”

말없이 이예주의 행태를 바라보던 조롱이가 람의 말에 옳다구나 하고 받아쳤다. 

그녀의 눈이 희번덕하게 뒤집어졌다. 

“이게, 어리긴 누가! 죽고 싶어서 환장…… 으허억!”

람이 불쑥 그녀의 팔을 잡아채어 어린이 다루듯 가뿐하게 일으켜 세웠다. 

이예주가 짧은 비명을 지르며 휘청거리는 사이, 남자의 단단한 손이 그녀의 어깨를 억세게 휘어잡아 고정시켰다.

“모래 위에 자빠져 있으면 화상 입는다고 했지 않나.”

“마, 말 좀 하고 일으켜요! 그리고 먹은 것이 있어야 움직일 거……!”

“자.”

람에게 반쯤 몸을 기댄 채 찡찡대는 그녀를 달래듯이 그가 품에서 육포 한 조각을 꺼내 입에 물려 주었다. 

정말 배가 고팠기에 이예주는 체면도 잊은 채 육포 끄트머리를 넙죽 받아 물었다. 

현대 같았으면 술안주가 아니면 거들떠도 안 봤을 육포가 어찌나 입에서 살살 녹는지. 

순식간에 육포 하나를 다 먹어 치운 그녀가 다시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람을 바라보았다. 

그는 단호하게 그녀의 어깨에서 손을 떼고 뒤돌아섰다. 

“가지.”

매정한 남자의 뒷모습에 이예주가 입을 삐죽거리며 뒤를 쫓았다.

“하나 더 주면 안 돼요?”

“하나 이상은 안 된다.”

“아 그럼 물배라도 채우게 해 주든가요!”

“물은 금지라고 했을 텐데.”

“아아악! 진짜!”

이 말 안 통하는 기계 같은 새끼야! 뒷말이 기어이 튀어나오기 직전, 그녀와 남자의 행태를 바라보던 조롱이가 슬쩍 곁에 다가와 제 주인을 두둔했다.

“주인님은 예주 누나 생각해서 그런 거니까 너무 열 내지 마여.”

“뭐? 넌 좋은 말 할 때 조용히 있어!”

“칫. 좋은 말 한 적도 없으면서.”

“…….”

이예주는 더 열 뻗치기 전에 차라리 무시로 일관했다. 

그러나 그것이 제 말을 들어 주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는지 조롱이가 다시 조잘거렸다.

“건조 음식이라 많이 먹으면 오히려 수분을 빼앗겨여. 그렇다고 물을 주면 예주 누나는 무식하게 한꺼번에 들이켤 거잖아여!”

맞는 말이라 그녀는 다시 한 번 침묵했다.

“물을 많이 먹으면 날이 더워서 소변도 금방금방 나올 텐데. 그러면 기운이 딸려서 또 육포 먹을 테고, 또 물 먹고. 그렇게 반복하면 음식도 금방 동나겠지만 배탈 나는 것도 식은 죽 먹기에여. 물은 되도록 조금씩 나눠 마시고 탈수 방지를 위해 소과를 먹는 게 더 좋구여. 사막에서 아프면 얼마나 위험한데여. 의원도 없구 그냥 굶어 죽어야 되는데.”

“…….”

“좀만 참아여, 예주 누나. 한 이틀만 더 가면 인간 부락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거기 가면 좀 더 편하게 밥도 먹구 물도 마실 수 있을 거예여.”

답지 않게 조근조근 설명해 주며 소과를 다시 건네는 조롱이 때문에 이예주는 방금 전까지 패악을 부리던 자신이 민망해져 더 이상 투덜대지 않고 조용히 소과를 받아 들었다. 

하기야 이런 척박한 사막에서 새똥이고 뭐고 제가 가릴 처지는 아니었다. 

그녀는 모래를 질질 끌다시피 걸으면서 앞서가는 람의 까만 뒤통수와 옆에서 그녀와 같이 지친 발걸음을 떼고 있는 갈색 머리의 조롱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면 햇빛을 피하기 위해 천을 뒤집어쓴 것은 자신뿐이었다. 

남자도 조롱이도 작열하는 자외선 따윈 상관없다는 듯 당당히 모래 위를 걸어 대고 있었다. 

또한, 자신 때문에 매번 걸음이 늦춰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예주의 표정이 조금 우울해졌다. 

하루 반나절 동안 사막을 걷는 내내, 이 지옥 같은 곳으로 데리고 온 능력에 대한 분노와 스스로가 람과 조롱이에게 짐이 되는 것 같다는 자괴감이 번갈아 가며 그녀를 괴롭혔다. 

배가 너무 고파 밥을 달라고 난리를 쳤지만 마음이 그리 편치만은 않았다.

어느덧 그들은 능선을 따라 모래 언덕을 넘어 내리막길에 들어섰다. 

하지만 내리막길이라고 해서 어느 하나 수월한 것은 없었다. 

힘들다. 괴롭다. 

사막은 너무 무덥고 끔찍하고 짜증 났다. 운동화 안에 모래 가루가 들어가 끊임없이 발바닥을 괴롭혔고, 헐렁한 후드티 사이로 들어간 모래 알갱이가 브래지어까지 침투한 상태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딱 달라붙는 청바지 덕에 모래가 팬티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뿐이었다. 

빌어먹을! 전생에 대체 무슨 죄를 지었던가. 

팔자에도 없는 사막 횡단까지 하려니, 화를 내지 않는다면 금방이라도 입에서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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