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룸뿐만이 아니다.
한 번 자각하자 그녀는 물 밀 듯이 예전이 그리워졌다.
밤늦은 시각에도 한산할 틈이 없는 거리, 자동차 소음, 별이 없어도 환하게 밤하늘을 빛내던 도시의 마천루, 어두운 방구석에 퍼질러 앉아 공포 영화를 보면서 먹던 맥주 혹은 소주 한 잔.
그중에서도 가장 그리운 건 사람 냄새다.
어딜 가도 마주칠 수 있던 사람이 이곳에는 그녀를 쌀 포대처럼 멘 이 남자 말고 단 한 명도 없었다.
아, 그나마 있는 이 남자마저도 사람이 아니란다.
척추를 타고 흐르는 시린 외로움이 이예주를 서글픔 속으로 끌어 내렸다.
“숲은 혼자 헤매고 다니기에 위험하다. 특히 너처럼 어리고 약하고 생각 없이 이곳저곳 들쑤시고 다니는 것들에겐 더욱.”
곧바로 들리는 남자의 목소리에 우울함의 극치를 달리던 그녀의 표정이 파삭하고 깨졌다.
이 인간이 대체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아니, 어리긴 누가 어려요? 저번부터 자꾸 저보고 어리다고 하는데. 저도 나이 먹을 만큼 다 먹은 성인이에요. 그리고 생각 없이 이곳저곳 들쑤시긴, 누가요!”
“그럼 아닌가?”
“그럼요!”
이예주가 거의 고함치듯 남자의 말을 부정했다.
“그렇다면 까마귀는 대체 왜 때려 죽인거지?”
도통 이해가 안 간다는 의문이 가득 담긴 질문에 그녀는 입을 딱 벌린 채 굳었다.
까마귀라니, 설마.
“……그, 그거 어떻게 알았어요? 봤어요?!”
“까마귀들은 동료애가 무척 강한 동물이다. 널 죽이고 눈알을 파먹겠다고 난리를 치더군.”
“헉!”
눈알! 식인 까마귀! 남자의 친절한 설명에 이예주는 까마귀 트라우마 속으로 속수무책 끌려 들어갔다.
인간 눈깔! 마치 근방에 까마귀들이 울고 있는 것처럼 그 소리가 귓가에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그녀는 순식간에 핏기가 가신 얼굴로 남자의 등허리를 꽉 부여잡았다.
그로도 모자라 제 두 팔로 남자의 허리를 껴안다시피 해서 남자의 등에 거꾸로 찰싹 매달렸다.
달달달 몸을 떨며 이예주는 남자의 등에 다시 얼굴을 파묻었다.
“아악! 까마귀 너무 싫어! 으흑, 어떡해요? 따라와요? 어떡해! 흐허엉.”
“걷기 힘드니 놓아…….”
“아아악! 싫어요! 저 까마귀 밥으로 내던질 생각이죠! 그렇죠! 으어억, 안 돼! 죽어도 못 놔!”
그녀는 발악을 하며 더욱 세게 남자를 끌어안았다. 난감한 듯 남자가 한동안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히려 대답 않는 남자에게 더 불안함을 느낀 이예주가 괴성을 지르며 발버둥을 쳐 대자 결국 그는 짜증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일갈했다.
“까마귀가 털끝 하나 건들지 못하게 해 주겠다.”
“거짓말! 그래 놓고 사슬로 묶어 놓으려고 그러죠! 어헝헝! 진짜 차라리 그냥 벼락으로 날 죽여요! 죽이라고요…….”
“약속하지.”
남자가 드물게 약속이란 단어를 입에 올렸다.
이예주는 그제야 발버둥 치는 것을 멈춘 채 훌쩍, 코를 들이마시며 남자의 등에 파묻었던 얼굴을 들어 올렸다.
“진짜요? 진짜 까마귀 밥으로 안 던질 거죠?”
“가는 곳까지 절대, 절대 안전하게 해 주기. 절대 절대 안 위험하게.”
남자가 감흥 없이 무언가를 죽죽 읊어 댔다.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그게 뭐예요?”
“네가 내건 계약 조건이다.”
그러더니 “계약 이행 동안에는 최대한 지켜 주지. 그 후에는 모르겠지만.” 하고 무뚝뚝하게 덧붙였다.
그 정떨어지는 소리에 이예주가 남자의 허리를 감고 있던 손을 팩 풀었다.
하여간에 조금 괜찮다 싶다가도 한순간에 그 생각들을 쓰레기로 만들어 버리는 데 일가견이 있는 놈이다.
욕설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그녀는 끝내 마음속에 화병을 키우는 것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 그것이 약자의 숙명이었으니.
“그럼 지금 까마귀들 안 따라오는 거죠? 그렇죠?”
“죽은 버러지들의 시체 찌꺼기를 파먹느라 정신없을 것이다. 인간치곤 눈깔이 커다란 게 하나 있다며 좋아하더군.”
“우욱!”
남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떠오르는 외눈박이들의 하나뿐인 커다란 눈알 생각에 이예주가 참지 못하고 구역질을 해 댔다.
남자의 살벌한 기세에 다급히 입을 틀어막았지만, 올라온 토기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허윽! 헉, 헉. 저 혈액 공포증 있는 것 같아요.”
그녀의 심각한 우환을 남자가 신랄하게 비웃었다.
“고소 공포증, 혈액 공포증. 또 뭐.”
“음…… 사슬 공포증?”
이어지는 헛소리에 기가 막힌 듯 남자가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것에 오기가 생겨 곰곰이 제 공포증에 관해 고찰하던 이예주가 조심스레 “그럼…… 번개 공포증……?” 하고 운을 땠지만 차가운 대답만 되돌아올 뿐이었다.
“살 만한가 보군. 잘도 지껄여 대는 것을 보면.”
“그러면 이건 어때요? 용암…….”
“걷고 싶으면 말해라. 당장 내려 줄 테니.”
“아니요! 아니요! 안 걷고 싶어요, 절대요!”
“그럼 그만 입 다무는 게 좋겠군.”
결국 입 다무는 것으로 합의 아닌 합의를 본 두 사람은 그 후로 한동안 조용히 걷기만을 반복했다.
걷는 것은 물론 남자뿐이었다.
이예주야 그의 어깨에 대롱대롱 매달려 남자가 발걸음을 뗄 때마다 찰방찰방 움직이는 물보라를 신기한 눈으로 구경하기에 바빴기 때문이다.
무거울 법도 한데 남자는 숨소리 하나 거칠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가만히 매달려 있는 그녀가 더 무안할 정도였다.
오랜 침묵 끝에 남자의 눈치를 슬슬 살피던 이예주가 조심히 입을 열었다.
“저기 있잖아요. 저기 그게…….”
“…….”
“음…… 그게요. 저기…….”
“스읍― 입 다물라 했을 텐데.”
하지만 입을 떼자마자 돌아오는 남자의 타박에 그녀가 왈칵 성을 냈다.
“아 진짜! 살려 줘서 고맙다구요! 고맙다는 말도 못해요?!”
“…….”
이예주는 비록 제 신세가 사냥당한 산짐승 혹은 쌀 포대, 짐 더미같이 느껴졌지만 남자가 둘러메 준 것에 감사했다.
머리에 총을 맞지 않은 이상 남자가 그럴 리는 없겠지만 괜히 앞으로 공주님 안기를 했다간, 시뻘게진 얼굴을 틀림없이 들켰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버리고 간 줄 알았어요. 개처럼 사슬에 묶어 놔서 당신 정말 미웠는데…….”
“…….”
“그래도 구하러 와 줘서 고마워요, 람.”
마지막 말은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고맙다는 말에 남자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예주는 서운하거나 섭섭함 없이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선 남자가 무슨 말을 하든 간에 기분만 잡칠 게 분명했다.
괜히 올라오는 부끄러움에 그녀가 몸서리를 치며 남자의 등에 푹 얼굴을 박았다.
그러다 문득 그녀는 남자가 겉옷을 입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제 또 이걸 다시 주워 입은 거지? 분명 개처럼 묶어 놓은 남자에 대한 분노로 짓밟고 또 짓밟았던 옷인데.
남자의 겉옷은 발자국은 물론이고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기만 했다.
킁킁. 등에 얼굴을 박은 이예주가 변태처럼 냄새를 들이켰다.
그러나 나무 밑에서 맡았을 때처럼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다.
새삼 남자의 겉옷이 깨끗한 것을 자각하고 나니, 자신이 노인의 피를 흠뻑 뒤집어썼던 것이 생각났다.
분명 시뻘겋고 끈적끈적한 피가 속눈썹을 타고 눈앞에 주르륵 흘렀었는데.
꿈? 아니면…… 남자가 닦아 준 것인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내심 제 얼굴을 닦아 주는 남자의 모습이 떠오르자 순간 기분이 묘해졌다.
왠지 모르게 간질간질하니 웃음이 나오는 게…….
그러나 이예주는 ‘에비!’ 하고 금방 그 생각들을 떨쳐 냈다.
기절한 사이, 미친놈이 살인 욕구를 잠재우며 제 얼굴을 더듬었을 생각을 하니 춥지도 않은데 으슬으슬 몸이 떨렸다.
어찌 됐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지금 씻어야 될 것도 아니니 말이다. 그녀는 다시 남자의 등에 코를 박았다.
킁킁. 왜 냄새가 안 날까? 어떻게 해서든 기필코 냄새를 맡으리란 오기까지 다 치솟을 정도였다.
반드시 남자의 체향을 맡고야 말겠다는 다짐으로 이예주가 연달아 숨을 들이쉬었다.
이렇게 물을 걷기까지 하는 남자니, 냄새라도 맡아 놓지 않으면 큰일이다.
나중에, 혹여나 나중에 남자를 잃어버리면 냄새로라도 찾아야 하니…….
람은 아주 뒤늦게야 이예주의 말에 답했다.
“고마워할 것 없다.”
“…….”
그러나 종알대던 아까와는 다르게 요상할 정도로 인간 여자가 조용했다.
남자가 미미하게 눈살을 찌푸리다가 다시 한 번 말을 꺼냈다.
“어차피 계약 기간이 끝나면 죽을 목숨이니 그때 가서 원망이나 하지 마.”
“…….”
“그러니 고마워할 것…… 이봐, 인간.”
여전히 대답 없는 이예주를 남자가 불렀다. 그러자 고로롱 하는 얕은 숨소리가 쫑알거림 대신 들려왔다.
남자가 우뚝, 자리에 멈춰 섰다. 찰박하고 물 튀기는 소리가 났다.
멈춰 섰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았다.
감히 누구의 어깨 위인지도 자각 못하는 인간이 발칙하기 짝이 없어 ‘하.’ 하고 혀를 차면서도, 남자의 붉은 입꼬리가 스리슬쩍 위로 올라갔다.
“가지가지 하는군.”
맑은 강물 위로 달이 휘영청 떠올랐다.
물 위에 우뚝 선 두 개의 엉킨 그림자가 발밑에 떠오른 달을 밟으며 다시금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헉, 헉, 헉!”
이예주는 뛰었다. 숨이 턱에 차오를 때까지 미친 듯이 뛰었다.
너무 오랫동안 계속 뛰기만 해서 금방이라도 다리가 허물어질 것 같았다.
당장 주저앉고 싶은 마음을 추스르며 그녀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주위를 둘러볼 새도 없이 무작정 앞만 보고 달리던 이예주는 불현듯 ‘내가 지금 왜 뛰고 있는 거지?’ 하는 아주 기본적인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헤아리기도 전에 소름 끼치는 짐승 울음소리가 잠시간의 잡생각을 찢어발겼다.
“쉬익, 쉬익. 캬악!”
바로 등 뒤에서 풀숲에 몸을 비비며 자신에게로 사사샥 기어 오는 무언가의 기척이 들렸다.
“아, 아아악!”
이예주가 무심결에 뒤를 돌아보다가 바로 제 코앞에 있는 거대한 송곳니를 발견하곤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숙였다.
“캬악!”
쾅―!
머리 위에서 무언가가 휘이익 스쳐 지나가 그녀의 앞에 있는 땅에 처박혔다.
무른 땅도 아니건만, 마치 케이크 위에 초가 박히듯 두 개의 엄청난 송곳니가 반 이상 땅속으로 사라졌다.
“쉬익, 쉬익.”
잔뜩 약이 오른 뱀 대가리가 노오란 눈깔을 뒤룩뒤룩 굴리며 오직 이예주만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뒤에서부터 머리 위로 쭈욱 뻗어 있는 뱀의 회색 몸뚱아리가 미친 듯이 꿈틀거렸다.
가만히 있으면 그저 좀 거친 화석같이 보였을 것이 결 따라 선명하게 비늘을 세우며 요동치자 그녀의 얼굴에 핏기가 쫘악 가셨다.
그녀가 딱딱하게 얼어붙어 포식자 앞의 쥐새끼처럼 벌벌 떨고 있을 때였다.
‘쿠우웅, 쿠웅’ 하고 땅이 진동했다.
뱀 대가리가 땅에 박힌 이를 뽑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몸을 베베 꼬아 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쉬익, 쉬익. 쉬이, 크윽. 크으으―.”
이예주는 사색이 된 얼굴로 도망갈 구멍을 찾았다.
뱀이 송곳니를 땅에서 거의 뽑아낸 듯하자 그녀는 즉시 뻣뻣한 몸을 억지로 움직여 다시 뒤로 돌아 달리려고 했다.
그러나 괴물 뱀이 더 빨랐다.
“캬아악!”
뱀이 주둥이를 짜악 벌리고 그녀를 향해 독을 잔뜩 품은 대가리를 내리꽂았다.
그녀의 몸통 반만 한 송곳니가 그대로 이예주를 꿰뚫어 찢을 듯이 한 치 앞으로 다가왔고.
“아악, 아아아악—!”
“아 갑자기 왜 이래여!”
“헉!”
이예주는 짜증이 가득 담긴 남자아이의 목소리에 번쩍 두 눈을 떴다.
“무거우니까 버둥대지 좀 마여!”
식은땀에 폭 젖은 그녀의 몸이 저도 모르는 사이 계속해서 발버둥 치고 있었나 보다.
낯설지 않은 어린애 말투에 정신이 든 그녀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주위를 휙 둘러보았다.
훤한 대낮이었다. 그리고 제 몸은 자신보다 작은 조롱이의 등에 매달려 거의 끌려가다시피 하고 있었다.
“뱀은? 배, 뱀은 어디 있어?”
“뱀은 무슨 뱀! 잘 자다가 무슨 봉창 두드리는 소리하는 거예여! 헥, 헥.”
이미 그녀를 업고 걸음을 옮긴 지 한참 됐는지 조롱이의 얼굴이 땀투성이였다.
힘겹게 숨을 몰아쉬는 소리에 이예주는 맹한 얼굴로 다시 한 번 주위를 돌아보았다.
까만 뒤통수가 그들보다 앞서 휘적휘적 걸어가고 있는 게 보였다. 어느 사이에 물 위를 걷는 기교는 때려치웠나 보다.
그렇다면 방금 그 선명한 뱀 대가리는 꿈? 꿈인가?
이예주는 불안감이 역력히 드러난 눈알을 굴려 대었다.
그들의 양옆으로 펼쳐진 무성하고 거대한 나무, 나무 사이를 샅샅이 훑으며 자신을 덮치던 생생한 뱀 대가리에 대해 생각했다.
왜, 왜 이런 재수 옴 붙은 꿈을 두 번씩이나…… 흐읍!
그러나 어두운 나무 사이에서도 제 존재를 환하게 부각시키는 빛 무리를 보고 그녀는 날카롭게 숨을 들이마셨다.
‘문’. 앞서 휘적휘적 걸어가는 남자의 옆쪽으로 ‘문’이 이예주를 반기듯 환하게 열려 있었다.
덜컹하고 그녀의 심장이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