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앤 매드 (29)화 (29/319)

국자를 든 외눈박이 반대편에서 또 다른 외눈박이가 이예주를 향해 뛰어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혼비백산하여 비명을 질렀다.

“아아악! 이 미친놈들아아!”

철썩! 철썩! 뒤에서 끊임없이 뜨거운 물이 쏟아졌고 이예주는 아주 간발의 차이로 그것을 피하며 나무 주위를 뱅뱅뱅 돌았다. 

멀리서 보면 마치 커다란 어른들과 작은 아이 한 명이 술래잡기하는 듯한 광경이었다. 

물세례가 아슬아슬 그녀를 스치며 더운 열을 뿜어 낼 때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뻘건 눈을 한 남자를 처음 만났던 날, 들끓는 용암 속으로 빠져들 때에도 이렇게 공포심이 들지는 않았다.

“아악! 아아악! 이 미친놈들아! 그만해! 그만해!”

“팜레드! 조심해서 물을 뿌려! 눈! 눈이 익으면 아무 소용없단 말이야! 저 계집의 눈은 내 꺼다, 이 멍청한 것아!”

“먹이! 먹이다! 먹이!”

작은 이예주를 잡기 위해 두 명의 거인 또한 빙글빙글 나무 주위를 맴돌았다. 

그녀가 놈들의 다리 사이를 오가며 간발의 차이로 피하는 사이, 그녀를 붙잡아 놓던 사슬이 나무 밑동에 뱅뱅 감겼다. 

점점 이동 거리가 짧아지고 있음에도 혼이 나갈 것 같은 상황 때문에 이예주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같은 곳을 삥삥 도느라 얼마 안 가 그녀는 헛구역질이 치밀어 오르고 눈앞이 빙글빙글 돌았다. 

제대로 뛰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달리고 있었지만 남이 볼 때 그녀는 위태위태하게 휘청거리며 지그재그로 걷고 있었다. 

이예주가 외눈박이 놈들에게 잡히지 않은 것은 어지럼증이 그녀에게만 찾아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에헤헤! 하늘이 빙글빙글 돈다! 빙글빙글…….”

국자를 꼭 쥔 외눈박이가 술에 취한 것처럼 비척거렸다. 한 명은 이미 나가떨어진 듯 제자리에서 홀로 빙빙 돌고 있었다. 

멀리서 두 팔로 몸을 지탱하고 있던 노인이 혀를 한 번 차더니 쟁반 깨지는 소리를 냈다.

“팜레드! 그것이 네 코앞에 있지 않느냐! 당장 잡지 않고 뭐해!”

“어허, 먹이. 먹이가 두 개, 아니 세 개다! 먹이! 먹이! 안 놓친다!”

흔들리는 몸 때문에 뜨거운 물이 국자에서 반 이상이나 질질 흘러 넘쳤다. 

그것을 들고 있는 외눈박이 놈은 똑바로 걷지도 못하는 주제에 먹이에 대한 집착 하나만은 누구보다 강한 듯 휘청거리면서도 용케 이예주에게로 다가갔다. 

“흐흑!”

이예주는 팽글팽글 눈앞이 돌아 이를 악물고 고개를 세차게 휘저었다. 

죽기 싫어. 차라리 시뻘건 미친놈이 내리친 벼락 맞고 깔끔하게 죽든지 아니면 논개처럼 강물 같은 용암 속으로 스스로 몸을 던지겠다. 

공중화장실 찌든 냄새를 풀풀 풍기는 저런 놈들에게 산 채로 잡아먹히긴 정말 죽기보다 싫었다. 

그녀가 다가오는 외눈박이를 보며 뒷걸음치다가 이내 몸을 돌렸다. 그리고 다시 달렸다. 

“먹이! 움직이지 마! 안 놓친다, 먹이!”

쿵쿵거리며 미친 듯이 내달려 오는 놈을 피해 커다란 나무 밑동을 반 바퀴 정도 돌았을 때였다. 

쩔컹! 이예주를 붙잡은 사슬이 나무를 칭칭 감고 더 이상의 여분이 없어 그녀를 강하게 잡아당겼다. 

“어억! 으아악!”

더 내달리려는 몸과 그녀의 오른손을 꽁꽁 묶어 두는 사슬의 힘이 부딪치면서 이예주의 몸은 속수무책으로 나무를 향해 쓰러졌다. 

쿵! 

커다란 굉음이 울렸다. 

나무가 부르르 진동하며 나뭇잎을 마구 흩뿌렸다.

털썩, 이예주가 쓰러지듯 바닥에 엎어졌다. 어이없게도 나무에 정면으로 이마를 처박고 말이다. 

뜨끈한 핏줄기가 그녀의 이마를 타고 내리흘렀다. 

“어어…… 어어…….”

이예주가 말과 비슷한 신음을 중얼거렸다. 

그녀가 나무와 박치기를 한 충격으로 의식과 무의식의 아찔한 경계를 헤매고 있을 때, 다행인지 불행인지 국자를 들고 쫓아오던 외눈박이는 그대로 그녀를 지나쳐 계속해서 나무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헤헤! 헤헤! 먹이다! 먹이!”

까무룩 의식이 꺼질 것만 같았다. 나무 주위를 몇 번 돈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현기증과 고통이 엄습했다. 

“으으, 으으…….”

도망가야 되는데, 가야 되는데, 가야 되는데…… 제게 뭔 일이 생긴지도 잘 모른 채 이예주는 끙끙 앓는 소리로 도망을 외쳤다. 

“이런 한심한 것들 같으니라고! 눈은 절대 다치게 하지 말랬지 않아! 눈! 눈은 내꺼다! 눈! 하악! 미래를 보는 눈!”

가물가물한 시야 사이로 노인이 괴성을 지르며 그녀를 향해 파바파박 기어 왔다. 

손을 이용해서 나머지 하체를 끌고 오는 그 모습이 꼭 일본의 다리 없는 귀신처럼 경악스럽기 짝이 없었다.

“눈, 눈을 내놔! 눈!”

노인이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쓰러져 있는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마치 눈만 빼먹으면 모든 사명이 끝나는 사람처럼 그녀의 눈에 시선을 고정한 늙은이의 얼굴은 광기로 뒤덮여 있었다. 

이예주의 근처로 다가온 노인이 그녀의 눈가를 향해 힘껏 손을 뻗던 바로 그때.

퍽! 

그녀의 코앞에서 노인의 머리가 터져 버렸다. 

그리고 그 앞에 있던 그녀는 아까 자신이 흘린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엄청난 양의 피를 모두 뒤집어썼다. 

노인의 터진 머리 사이로 희끄무레한 죽 같은 것이 뚝뚝 흘러 나오는 것이 보였다. 

이예주는 비명을 질렀다. 

무슨 상황인지는 몰랐지만 제 눈앞에 흐르는 시뻘건 피와 뇌수를 보고 무조건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를 뿐이었다. 

“으으…… 으으! 으으읍!”

정작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끙끙 앓는 소리였지만. 

이건 꿈이 아닐까? 꿈이지? 꿈일 거야…… 

이미 외눈박이 놈들과 식인 노인 때문에 충격을 받을 대로 받아서 정신이 너덜너덜해진 그녀는 그 참담한 장면을 보고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다. 

이예주는 뚜벅뚜벅, 등 뒤에서 다가오는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면서 까마득한 무의식의 세계로 정신을 내던졌다. 

정신을 놓은 그녀를 누군가 가볍게 들어 올렸다. 

그와 동시에 그녀가 그토록 끊기길 애원하던 오른쪽 손목의 수갑이 너무나도 쉽게 풀려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남자가 시뻘건 노인의 피를 뒤집어쓴 이예주의 얼굴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쓰다듬었다. 

주인의 성격만큼 깨끗한 손이 그녀의 얼굴에 더덕더덕 붙어 있던 이물질들을 털어 냈다. 

쓰다듬는다고 보기엔 성의 없을 정도로 거칠었지만 그 억센 손길에도 꾹 감긴 그녀의 두 눈은 뜨이지 않았다.

“깨끗이 씻겨 놨더니 도로 더러워졌잖아.”

누가 누구를 깨끗이 씻겼는가. 

이예주가 깨어나서 들으면 기함을 토할 만한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지껄이던 남자는 앞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소리에 인간 여자의 얼굴에서 시선을 뗐다.

“먹이! 그 먹인 내꺼다! 내꺼! 내 먹이!”

“먹이 어디 있냐! 눈! 팜레드! 눈!”

“아아! 데이노 아직도 아프다! 아빠! 아빠!” 

마치 더러운 것들을 바라보는 것처럼 남자의 두 눈동자 가득 혐오감이 담겼다. 피보다도 더 짙은 그 시뻘건 동공이 위험하고 음습하게 들끓고 있었다.

“버러지 같은 것들.”

남자의 나지막한 중얼거림에 쩌렁쩌렁 소리치던 세 명의 입이 거짓말처럼 다물렸다. 

이예주를 바라볼 때와는 차원이 다른, 바라보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는 짙은 살기가 남자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쥐새끼처럼 숲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는 것으로도 모자라 주인 있는 것에까지 손대는 네놈들의 행동이 너무 뻔해. 뻔하다 못해 지루하기까지 하다.”

정말로 지긋지긋하다는 듯 남자가 느른하게 눈을 내리깔았다. 

그러나 여전히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는 무시무시해서 조금만 움직여도 날카롭게 살이 베일 것 같았다. 

세 형제 중 유일하게 눈을 가지고 있는 외눈박이가 남자의 시뻘건 눈을 마주하고 흠칫 몸을 굳혔다. 

이내 그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아아. 사리 분별 못하고 덤벼드는 것도 여전하군. 이것의 주인이 누구인지 생각해 조금만 더 가려 가며 건드렸더라면 그 알량한 명줄을 조금 더 연명할 수 있었을 텐데.”

“거, 검은 파편……!”

“……버러지 같은 네놈들이.”

남자의 새빨간 눈이 정확히 세 형제에게 향했다. 

거미줄에 걸린 먹이처럼 외눈박이들이 옴짝달싹 못하는 사이, 남자의 입술이 비릿하게 열렸다.

“감히 누구의 것을 건드린 것인지.”

“…….”

“똑똑히 알게 해 주마.”

*       *       *

머리 한구석이 윙윙 간질거렸다. 

마치 머릿속을 작은 벌레가 헤집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처음에는 분명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아주 미미하게 윙윙거리던 그것은 대체 무엇일까 하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점점 정도가 거세졌다. 

위잉, 윙윙, 귓가에서 벌이 날아다니듯 머릿속을 간질이던 것이 점차 간지럼을 넘어설 때쯤 회명(晦冥) 속을 부유하던 이예주의 의식도 같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지금껏 간지럼 태우던 것은 준비운동이었다는 듯 격통이 두개골을 쪼갤 듯 덮쳐 왔다. 

“으으…… 으으……!”

고통에서 좀체 벗어나지 못한 채 끙끙 앓는 소리를 내던 그녀가 불현듯 번쩍 눈을 떴다. 

“헉!”

그리고 눈을 뜨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것은 찰랑이는 물이었다. 

물, 흐르는 강물. 

이예주는 물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공중을 빠른 속도로 부유하고 있었다. 

물론 제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공중인 것을 자각하자마자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파랗게 질렸다.

“아아…… 이, 이게! 으아악!”

이예주가 미친 듯이 발버둥 쳤다. 

안 그래도 고소공포증 때문에 높은 곳은 질색하는 그녀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물, 빠지면 꼼짝 없이 가라앉을 강 한복판 위를 부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 사실이 두통마저 현기증으로 바꿨다.

그도 모자라 숨조차 쉬기 힘들 정도로 아찔한 두려움 속에 그녀를 몰아넣었다.

“으흣! 으헉!”

“그만 발버둥 쳐.”

“으으…… 무서워! 무섭다고……!”

“집어 던진다.”

허리 쪽에서 누군가 속살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집어 던진다. 그 한마디에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이예주의 입이 ‘헙!’ 하고 다물렸다. 

그녀는 벌벌 떨리는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제 몸은 여전히 한참 높은 공중에 떠 있었다. 

“여, 여긴…….”

그렇다. 

이예주는 남자의 어깨에 둘러메어져 있는 상태였다. 

사냥꾼이 포획한 산짐승을 메고 하산하는 것처럼.

“내, 내려 주세요. 내려 주세요. 내려……!”

“내려 주면 물에 그대로 처박힐 텐데.”

남자의 말에 가까스로 이성을 되찾은 그녀는 제 처지에 대해 고민해 볼 새도 없이 그의 말이 뜻하는 바를 깨달았다. 

철벅철벅, 물 위를 걷는 발이 보였다. 

물 위. 남자가 다름 아닌 물 위를 걷고 있었다. 이예주의 입이 절로 떡 벌어졌다.

“저기요, 혹시 예수님이세요?”

“그게 뭐지?”

“아니면 어떻게 무, 물 위를…….”

인간이 어떻게 물 위를 걸을 수 있냐고 꽥 소리를 지르려던 그녀는 때마침 뇌리에 번뜩이는 생각에 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 보니 이 미친놈은 인간이 아니었다. 

그 노인네가 남자를 지칭하며 신의 아이니 뭐니 한 게 떠올랐다. 

속으로 말 같지도 않은 소리라고 웃어 넘겼던 그녀지만 막상 이런 기적과도 같은 상황을 직면하고 보니 왠지 모르게 오한이 다 들 정도로 무서워졌다. 

대박, 진짜 인간이 아니란 말이야? 말도 안 돼. 무슨 판타지 영화도 아니고 21세기에…… 

아니, 정정한다. 무슨 31세기에 신인지 뭔지가 나타난단 말인가. 

마냥 초능력자 중 하나라고 치부하고 싶어도 지금껏 남자가 해 왔던 갖가지 미친 짓들을 떠올리면–예를 들면 지진을 일으키고 번개를 내리치는 등–이미 공상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범주에서 한참이나 벗어나 있었다.

21세기에도 없던 이런 일이 왜 하필 1000년이나 지난 31세기에 일어난 것일까. 

그리고 자신은 왜 하필 이런 미친놈이 날뛰는 시대로 넘어와서……. 

깊게 고뇌하던 이예주는 문득 잊고 있었던 두통이 다시 스멀스멀 기어 오는 것을 느꼈다. 

이마가 후끈 달아오르자 그녀가 끄응 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아아, 머리야…… 머리 아파 죽겠어요…….”

“세게도 박았더군. 두골의 강도를 시험해 보고 싶으면 나무가 아니라 돌을 이용해 보지그래.”

그녀의 앓는 소리에 남자가 태평하게 지껄였다. 

이예주의 두 눈에서 번쩍 불똥이 튀었다.

“뭐라고요?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그 망할 놈의 사슬 때문에 내가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뭐.”

“얼마나 무서웠는데요! 으헝헝! 그 미친놈들이 날 산 채로 뜯어먹으려고 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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