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앤 매드 (28)화 (28/319)

“아빠! 에니오는 배고프다! 먹이, 당장 먹겠다! 당장 먹어서 배에 저장하겠다!”

히익! 면전에 훅 풍겨 오는 고얀 악취에 이예주가 괴상한 소리를 내며 슬금슬금 엉덩이로 뒷걸음질 쳤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쩔그럭거리는 사슬 소리가 나 기괴한 눈을 하고 있는 노인의 주의를 끌었다. 

노인이 힐끗 이예주가 있는 쪽을 돌아보더니 켈켈켈 하고 기분 나쁘게 웃었다. 

아까의 사람 좋아 보이던 너털웃음과는 차원이 다른 비소였다.

“기다려라. 먹는 것에도 다 때가 있는 법이니.”

“먹고 싶다! 당장 먹고 싶다! 검은 파편 없다! 데이노가 못 봤다! 먹어도 된다!”

“주변에 검은 파편이 없었단 말이냐? 흐음…… 그렇단 말이지.”

“그렇다! 그러니까 당장 먹겠다! 먹이! 배고프다! 헤헤헤! 난 팔! 팔을 뜯어 먹고 싶다! 헤헤헤!”

눈도 없는 놈이 정확히 이예주를 휙 돌아보며 침을 질질 흘렸다. 

온몸을 내리 덮치는 악취와 두려움 때문에 그녀가 끽 소리도 못한 채 움찔움찔 몸을 떨었다. 

툭 건들면 그대로 비명이 터질 것처럼 굉장히 겁에 질린 얼굴이었다.

“팔! 팔을 내놔, 먹이!”

“때가 있다지 않았어, 멍청아! 네 형들이 불을 피워야 먹든가 말든가 하지! 저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데 자칫 죽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귀한 거? 이거 귀한 거냐, 아빠?”

“그럼, 그럼! 클클클, 귀한 것이니 먹는 동안 죽지 않게 잘 살려 두어야 한다. 죽은 것을 먹어 봤자 힘을 뺏을 수 없으니 말이야.”

“힘? 힘! 알았다! 에니오 그럼 참겠다! 참을 수 있다!”

참을 수 있다던 외눈박이 놈이 뒤에 몇 번 더 ‘힘’이라는 단어를 덧붙이더니 쿵쾅거리며 제 형제들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크고 투박한 손으로 벌써 쏟아진 나뭇가지를 긁어모은 외눈박이 형제들은 완전히 고전적인 방법으로 불을 피우고 있었다. 

바로 부싯돌로 추정되는 돌을 부딪혀 불똥을 일으키는 방법이었다.

“하, 할아버지. 무슨 소리예요? 힘이요? 누가 누굴 먹고 불은 또 왜…….”

이예주가 새파래진 입술을 벌벌 떨며 노인에게 물었다. 

노인은 그녀를 바라보며 바로 대답하는 대신, 일으킨 상체를 앞으로 픽 쓰러뜨려 땅바닥에 몸을 엎었다. 

그러더니 두 팔을 이용하여 그녀의 근처로 엉금엉금 기어 왔다. 

노인의 얼굴에는 전에 볼 수 없었던 비열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클클클, 아가씨. 아까 내 눈족 아내가 어떻게 되었는지 물었지?”

“…….”

“어디 보자……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가물가물한 이야기인데…… 저런 멍청한 것들을 낳은 후에 그 모질이 계집은 방구석에 틀어박혀 통 나오질 않았지. 그때 부족 내에 내 아들들처럼 팔족과 다리족 혼혈로 태어난 비루먹은 노인네가 하나 있었는데, 글쎄 그놈이 찾아와서 내 아내를 자기에게 팔라고 통사정을 하더군. 그 쓸모란 쥐뿔도 없는 것에 금화를 다섯 개나 지불한다기에 내 장로로서 관용을 베풀어 은화 다섯 개로 헐값에 넘겨주었지.”

“…….”

“그런데 그놈이 모질이 계집을 산 채로 삶아서 먹을 줄 누가 알았겠나? 그 후로 글쎄, 그 노인네가 미래를 본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는 게 아닌가! 내가 그 소문을 듣고 그 노인네를 잡으러 찾아 갔을 땐 이미 제 미래를 보고 도망친 후였어, 젠장! 그렇지만 다리족 장로인 내가 그것을 놓칠쏜가? 그놈은 부족에서 도망친 후 몇 년간은 평범한 인간 사이에 숨어들어 그 능력을 팔아먹으며 떵떵거리고 잘 살았지만, 결국 나에게 잡혀 산 채로 살집이 뜯어 먹히곤 뒈져 버렸지.”

이예주가 노인의 말에 ‘흐읍!’ 하고 짧은 비명을 질렀다. 노인은 그런 그녀의 반응이 웃긴지 한참을 껄껄대며 웃었다. 

아까 그녀에게 차분히 검은 파편에 대해 설명해 주던 동네 할아버지와 같은 모습은 꿈만 같았다. 

어쩌면 원래 이런 할아방구였을지도 모른다. 

검은 파편이 없다는 소리를 들은 후 노인네의 눈이 노골적으로 변했다. 

그것도 모르고 자신은 인자한 모습에 깜빡 속아 넘어가 버린 것이다.

“힘을 빼앗으려면 살아 있는 상태의 것을 잡아먹어야 한다는 것은 몰랐는데, 고맙게도 아내를 산 채로 끓여 먹은 그 병신 덕에 잘 알게 되었지. 한데 에노이 저 멍청한 놈이 보자마자 흥분해서 팔다리를 죄다 뜯어 먹는 바람에 간신히 잡은 능력을 빼앗기도 전에 놈이 죽어 버렸지 뭔가!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피가 거꾸로 솟아올라서 내 에노이 놈을 그냥……! 크흠, 그렇지만 이렇게 미래를 보는 자네가 나타났으니 이제 됐어. 이제 된 게야. 죽기 전에 드디어 여신이 내게 은총을 내려 준 게 틀림없어. 그렇지, 아가씨? 클클클…….”

“무, 무슨 소리예요? 저 미래 못 본다 했잖아요. 그, 그리고 곧 제 동료가 올 거거든요? 제 동료 어, 엄청 세요. 진짜요!”

이예주는 저를 이렇게 개처럼 묶어 둔 동료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 말이 먹힐 리 없었다.

“아가씨의 포식자는 오지 않을 거라네. 주변을 둘러보고 온다더니 꽤 멀리 갔나 보군. 근처에 있었다 하더라도 내 아들들에게 바로 잡아먹혔을 테지만.”

노인이 비릿하게 웃으며 이예주에게 조금 더 기어 왔다. 

그녀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슬금슬금 노인을 피하며 고개를 마구 저었다.

“그, 그럴 리가…….”

“클클클, 아프지 않게 금방 해치울 테니 그리 겁먹을 것 없어. 네 동료가 단단한 사슬을 준비해서 다행이군. 발버둥 치다가 끊어지기라도 하면 곤란해질 테니…….”

“아빠! 물 다 끓었다! 다 끓었다!”

그때 노인의 말을 끊는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체 언제 준비한 건지 세 외눈박이 형제가 펄펄 물이 끓는 커다란 솥 앞에서 열심히 노인에게 두 손을 흔들고 있었다. 

“국자와 함께 이리 가져와!”

노인이 소리치자 세 거인이 다시 착실히 말을 들었다. 

쿵, 쿵. 놈들이 사이좋게 솥을 나눠 들고 걸어오는 모습을 보며 이예주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쩔컹쩔컹! 

덩달아 쩔그럭거리는 사슬을 그녀가 힘 있게 잡아당겼다. 역시나 끊어지기는커녕 그녀의 팔목만 부서져라 아파 왔다. 

삼 형제가 점점 다가올 때마다 이예주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그녀는 공포에 질려 조급하게 사슬을 잡아당겼지만 시끄러운 소리만 울릴 뿐이었다.

“소용없네. 검독수리 발톱으로 만든 것은 팔을 잘라 내지 않고서야 끊어지지 않는 사슬로 유명하지.” 

“닥쳐!”

이예주가 예의범절 따윈 집어치우고 험악하게 욕설을 내뱉었다. 

그사이 다가온 삼 형제가 나무 근처에 김이 모락모락 솟아나는 솥을 내려놓았다. 그와 동시에 어디서 환한 빛이 그녀의 옆얼굴을 찔렀다. 

설마. 이예주는 심장이 내려앉는다는 것을 실감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있는 커다란 나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문’이 열려 있었다. 

이건 진짜다. 자신이 곧 저들에게 산 채로 잡아먹힌단 소리다.

“흐으, 어떡해! 어떡해, 이 개자식아! 개자식아!”

쩔컹쩔컹, 쩔컹! 그녀는 누구한테 하는지 모를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미친 듯이 사슬에 묶인 손을 잡아당겼다. 

당장 문으로 뛰어 들어가야 했다. 그래야 살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사슬에 묶여서 어떻게? 

식인 까마귀와 괴물 뱀을 피해 미친 듯이 달려 문을 넘어 본 적은 있어도 이렇게 묶인 상태에서 문이 열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녀의 의식은 반 실성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아빠. 먹이 움직인다! 먹이 도망가려나 보다!”

“어디? 어디? 안 보인다! 먹이 어디로 도망가냐!”

“어디! 어디!”

“사슬에 묶였으니 걱정 말아라! 팜레드, 국자는 몇 개지?”

노인의 물음에 아까 다른 놈에게서 눈을 건네받은 외눈박이가 등 뒤에서 ‘짠!’ 하고 국자를 꺼내 보였다. 

커다란 손에 들린 국자가 그들에겐 꼭 장난감 같았다.

“국자 세 개다. 그런데 먹이가 움직이는 것을 형들은 못 볼 텐데, 헤헤헤. 그럼 나 혼자만 먹는다! 헤헤헤!”

“안 돼! 팜레드! 나부터 먹겠다!”

“안 돼! 에노이는 배고프다! 눈! 눈 내놔라! 눈!”

눈을 가지고 있는 외눈박이의 말에 나머지들이 이예주가 있는 쪽으로 손을 허우적거리며 다가왔다. 

“아아악! 오지 마!”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문’이 열린 쪽으로 달려가다가 ‘쩔컹!’ 하고 손을 잡아당기는 사슬의 반동으로 휘청거렸다. 

그러나 움직임에 효과는 있던 듯 요란스러운 사슬 소리를 따라 이쪽저쪽 묵직한 발을 옮기던 덩치들이 각각 휘청거리다가 큰 소리를 내며 넘어졌다.

“피식자! 나도 피식자 먹고 싶다!”

“눈! 안 보여서 모른다! 눈 내놔라, 팜레드!”

“헤헤헤, 헤헤헤. 나만 먹을 수 있다. 헤헤헤.”

나무 아래는 뒤섞인 거대한 몸뚱이들로 금세 아수라장이 되었다. 

커다란 발 중 하나가 노인이 엎드려 있는 곳을 스쳐 밟자 그가 경기를 하며 악다구니를 질렀다.

“이런 멍청한 것들! 당장 그만두지 못해!”

“아빠! 팜레드 혼자 피식자를 먹으려고 한다!”

“아빠! 나도 먹고 싶다!”

눈이 없는 두 형제들이 이예주를 먹고 싶다는 내용을 담은 불만을 연달아 내뱉었다. 

노인이 그 답답한 행동에 시뻘게진 얼굴로 노발대발 소리쳤다.

“기다리면 팜레드와 내가 어련히 알아서 나눠 줄까! 네놈들이 눈도 없이 덜떨어지게 움직이다가 저것을 밟아 죽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어! 바, 밟아 죽이면 안 된다! 데이노 잘못했다. 기다리겠다.”

“안 돼! 힘을 빼앗아야 한다! 에노이도 잘못했다! 기다린다!”

피식자를 밟아 죽을 수 있다는 노인의 말이 퍽이나 걱정되었는지 두 멍청이들이 사색이 되어 고개를 뒤흔들었다. 

그제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은 노인이 눈을 가진 외눈박이에게 이예주를 가리키며 명령했다.

“팜레드.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가르쳐 줬지? 귀한 것이니 조심히 해야 한다.”

“응! 팜레드 잘 안다! 뜨거운 기름을 끼얹어서 산 채로 익혀 먹는다! 안 익히면 기생충 생긴다! 익혀 먹는다! 기름 없다! 그래서 물 뜨겁게 했다!”

그 소리를 멀찍이서 듣고 있던 이예주의 얼굴이 단순히 공포에 질린 것을 넘어 당장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파리해졌다. 

당장 도망가야 하는 다급한 제 의지와는 다르게 몸은 제자리에서 부들부들 떨기만 했다. 

그사이 눈을 가진 외눈박이가 국자 하나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솥에서 물을 가득 퍼 올렸다. 

나머지 놈들이 그녀가 있는 곳을 바라보며 침을 질질 흘렸다.

쿵, 쿵. 

커다란 덩치의 외눈박이가 펄펄 끓는 물이 가득 담긴 국자를 들고 이예주가 있는 쪽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쩔컥! 쩔컥! 그녀는 금방이라도 졸도할 것만 같은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팽팽히 잡아당겨진 사슬이 더 이상의 움직임을 허용하지 않았다.

“오, 오지 마! 오지 마!”

“헤헤. 먹이다! 힘 있는 먹이! 난 다리 먹고 싶다! 여자 다리는 맛있다. 질기지 않다!”

국자를 든 외눈박이의 한 손이 높이 위로 쳐들렸다. 

그 안에 담긴 끓는 물이 그녀에게 쏟아질 것이라는 데에 한 치의 의심도 들지 않았다. 

“아아악!”

외눈박이의 손이 빠르게 공중을 가로지르는 순간, 이예주는 괴성을 지르며 마치 액션 영화를 찍는 할리우드 배우처럼 나무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철퍽, 치이익― 

그녀가 방금 전까지 바들바들 떨며 서 있던 자리에 뜨거운 물이 철퍽 쏟아졌다. 그 자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땅바닥에 제 몸을 내팽개치듯 굴려 간신히 물세례를 피한 이예주는 허옇게 들뜬 얼굴로 방금 전 자신이 서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풀들이 익어서 숨이 죽고 있었다. 

간담이 서늘했다. 조금만 덜 움직였어도 펄펄 끓는 물이 튀어서 화상을 입었으리라.

“에에? 아빠! 먹이가 없다. 녹았나? 풀만 있다!”

“이것아! 얼른 물 또 안 푸고 뭐해! 저것이 저쪽으로 도망갔잖아!”

노인이 이예주가 있는 자리를 들여다보며 답답한 소리를 지껄이는 제 아들에게 목이 찢어질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 

아비의 말을 납득한 외눈박이가 다시 솥에서 물을 가득 펐다.

“팜레드 새 소화 다 됐다. 배고프다! 이제는 안 놓친다, 피식자!”

어떠한 결의를 다짐하듯 중얼거리던 외눈박이 놈이 재밌는 놀이를 하는 것처럼 헤죽 웃더니 그대로 국자를 쳐들고 쿵쿵쿵, 뛰어오기 시작했다. 

그녀가 괴성을 지르며 다시 몸을 날렸다.

“아아아악!”

철썩! 치이익. 끓는 물 공격이 아슬아슬하게 그녀를 스쳐 나무를 후려쳤다. 

“으아악! 뜨겁다! 데이노 아프다!”

뜨거운 물이 이예주 대신 멀뚱히 서서 기다리던 눈 없는 외눈박이 한 명에게 튀자 노인이 다시 꽥꽥 소리쳤다.

“에노이! 저것을 잡아!”

“우어어! 먹이! 먹이! 먹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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