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앤 매드 (26)화 (26/319)

“대체 왜요? 왜 멀쩡한 밥 놔두고 인간 다리를, 그것도 자기 아버지 다리를…….”

“식인이야 뭐 검은 파편에 쫓기는 시간족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해 보았을 일이 아니겠는가. 저보다 약한 자를 피식자로 만들어서 데리고 다니는 게야. 먹을 게 정 없거나 혹은 내킬 때 피식자를 야금야금 잡아먹으면서 포식자가 되는 거지. 검은 파편에게 쫓기고 쫓겨서 이곳저곳 도망 다니다 보면 부모고 자식이고 아무것도 안 보이기 마련이라네. 누구라도 포식자가 될 수 있어.”

“아니요, 아니요. 제 말은…….”

이예주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제 나름의 판단을 내리는 노인을 막으며 그녀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가 충격을 받은 것은 굶주려서 식인 행위를 한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어떻게, 한 명도 아니고 세 명이나 되는 자식 놈들이.

“어떻게 아버지의 다리를 먹느냔 소리예요. 아버지잖아요? 아무리 배고파도 그렇지, 제 약지를 잘라 부모를 먹이진 못할망정 어떻게 아버지를 먹어요?”

이예주로선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엄마가 죽은 후 그녀는 자신의 어느 한 곳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무언가 그녀의 속에서 엄마와 이어져 있던 것이 칼로 베인 듯 뚝 끊어졌다.

 말로 설명할 수 없었지만 이예주는 알았다. 

그것이 끊어지던 순간을 그녀는 잊지 못한다. 

학교에서 수업을 듣던 와중, 이유 모르게 가슴이 덜컥 내려앉던 그 느낌. 

엄마가 죽은 지 1년, 2년…… 6년이 지나도 아직도 이렇게 눈에 그릴 듯 생생한데. 

그런데 어떻게 부모를 잡아먹을 수가 있지? 

자신을 낳아 준 아버지를. 

노인의 말에 따르자면 그것도 같이 도피 생활을 하던 아버지를. 

전혀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그녀의 표정을 알아차렸는지 노인이 다시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이 조금 쓸쓸해 보였다.

“클클클, 다른 사람들과 갈라지기 전에 시간족을 잡아먹으면 그 힘을 빼앗을 수 있다는 헛소리를 들었겠지. 아니라면 갑자기 제 애비 다리를 개처럼 뜯어먹을까?”

“힘을 빼앗아요?”

“그래. 시간족의 힘이 담긴 부위의 인육을 먹으면 그자의 힘을 빼앗을 수 있지. 그렇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간족에 한해서일세. 멀쩡한 시간족도 힘을 갖지 못하는 일이 태반인데 하물며 돌연변이인 내 아들들이 내게서 다리족의 힘을 뺏을 수 있을 리가.”

“다리족이요? 할아버지, 다리족이셨어요?”

다리족이란 소리에 이예주의 눈이 토끼같이 둥그레졌다. 

시뻘건 눈의 미친놈에게서 말로만 듣던 그 다리족이었다. 

계속해서 다리족, 뭔족 하기에 인간과는 다른 괴생물체라고 생각했는데 노인은 그녀와 별다를 바 없는 같은 인간이었다. 

아무래도 힘이 담겼다는 부위가 다리여서 다리족이라고 불리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힘이 담긴 다리를 잃은 이 노인네야말로 자신과 다를 바 없는 그냥 평범한 인간이란 말 아닌가? 

……그럴 리가. 

자문자답을 하며 이예주는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능력’을 가지지 않은 이상 절대로 노인이 그녀와 같은 인간일 리 없었다.

“그렇다네. 내 자랑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리를 잃기 전까진 다리족 내에서도 아주 강한 힘을 가진 자였지, 클클클.”

“그렇군요…….” 

한숨처럼 대답을 하며 이예주는 측은한 눈으로 병색이 완연한 노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 눈빛을 다르게 해석한 건지 이번에는 노인이 눈을 빛내며 그녀에게 질문했다.

“아가씨와 아가씨의 포식자는 무슨 족인가? 굶은 지 오래 되어 보이지는 않는데. 포식자가 무척이나 강한가 보군!”

“예? 아니요. 그게…….”

“다리족은 아니지? 아가씨 다리는 얇아서 달리는 다리로는 안 보이니 말이야. 팔족인가? 아니, 아니야. 어린데도 이렇게 어디 하나 상한 데가 없는 것을 보면 아가씨도 무시 못할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나 보군그래! 원래 나이가 어릴수록 살이 야들야들하니 맛있어서 인기가 좋거든. 흠, 그렇다면…….”

“…….”

“옳지! 아가씨가 검은 파편에게 도망칠 수 있는 뭔가를 포식자에게 줄 수 있는 모양이로군! 그래, 아가씨는 무슨 족인가?”

혼자서 답을 구하며 물 흐르듯 제멋대로 추측하던 노인이 이예주를 바라보았다. 

탁하고 흐리멍덩한 노인의 회색 동공에 기괴한 빛이 번들거렸다. 

왠지 모를 오싹함에 그녀가 어색하게 웃으며 노인의 눈에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제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얇은가? 하긴, 학창 시절 체력장의 오래달리기마저 걸어서 완주한 그녀였다. 

오래 걷는 것과 뛰는 것이 죽기보다 싫어서 최대한 그것들을 피해 가며 살아와 그런지 다리가 빈약하긴 했다. 

시뻘건 미친놈을 속인 것처럼 그저 다리족이라고 대꾸하려던 이예주는 노인의 꽤 날카로운 눈썰미에 강제로 답을 잃었다. 

그래서 그녀는 노인이 원할 만한 대답을 해 주는 대신에 자꾸만 걸리적거리던 단어에 대한 질문을 선택했다.

“저기, 할아버지. 그런데 검은 파편이 뭐예요? 뭐길래 아까부터 자꾸 검은 파편을 피한다느니, 검은 파편에게서 도망친다느니…… 그게 누군데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묻는 이예주의 말에 노인이 헉, 숨을 들이켰다. 

그 소리에 놀라 돌아보자 두 눈을 커다랗게 홉뜬 채 굳어 있는 노인이 보였다. 

“왜, 왜요? 뭐 잘못 말한 거예요? 아니면 누구 있어요?”

이예주가 지레 겁을 집어먹고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노인이 커다랗게 뜬 눈을 천천히 원상 복귀시키며 고개를 저었다. 

그와 동시에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에 번뜩 이채가 서렸다.

“자네…… 이 세계 사람이 아니구만.”

“예, 예?”

“여기 사람이 아니야. 검은 파편을 모르다니…… 아가씨, 어디서 온 거지? 응?”

“…….”

“시, 신탁이 현실이 되었어! 아가씨, 이곳 사람 아니지? 그렇지? 그러고 보니 옷차림도 그렇고…… 이곳 사람이 아니야. 어디서 온 거야, 응? 어디야. 어디서 온 거지?”

대답 없는 그녀를 보고 제 추측을 확신했는지 노인이 두 손을 땅에 짚고 나무에 기댄 몸을 일으키기까지 하며 채근했다. 

노인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당황하던 이예주는 왠지 모르게 드는 이질감 때문에 그럴듯한 거짓말을 내놓기 위해서 머리를 굴렸다. 

그나마 말이 통하고 ‘다리족’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상대였으나, 본능이 쉽게 믿어선 안 된다는 경고를 했기 때문이다.

“어…… 무슨 소리예요? 이곳 사람이 아니라뇨. 하하, 저 이곳 사람 맞아요. 다만, 그…… 시간족이 아니에요, 저는.”

“으잉?”

“전 그냥 평범한 인간이에요. 평범한 인간요. 인간 여자.”

거짓과 진실이 적당히 반반 섞인 대답이었다. 

썩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이예주는 노인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계속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노인이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사실인지 아닌지 가늠하는 듯싶었다. 

그러나 끝까지 잡아떼는 이예주의 말이 거짓말 같진 않은 모양인지 금세 실망스러운 얼굴로 팽 고개를 돌렸다.

“하긴 이렇게 어리고 멍청한 계집이 구원자일 리가…….”

노인이 고개를 돌린 채 작게 무어라 중얼거렸다. 

그녀가 ‘네?’ 하고 되물었으나 그사이 감정을 추스른 듯 실망한 기색을 지운 노인이 “아닐세.” 하고는 다른 것을 재차 물었다.

“아가씨는 대체 어디서 살았기에 검은 파편도 몰라. 그래서 그렇게 냄새도 안 숨기고 깨끗한 꼴이었군. 이런 바보 같으니!”

노인이 그녀의 행색을 지적하며 쯧쯧 하고 혀를 찼다. 

내 꼴이 어때서? 그래도 물에 더러운 건 대충 씻어 낸 후 말렸기에 뽀송뽀송하고 깔끔하기만 하구만. 

노인의 원색적인 비난에 입을 삐죽이던 이예주는 불퉁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워낙 오지에 살아서 말이에요. 제가 살던 곳은 시간족이니 검은 파편이니 이런 거 아는 사람이 별로 없거든요.”

“쯧쯧, 아무리 모르더라도 죽은 동물의 피 정도는 묻히고 다녀야 해! 검은 파편은 생명의 기척을 느끼고 인간들을 죽이러 쫓아와, 아가씨. 내 아들들도 그래서 매번 동물을 잡아먹고 죽은 동물의 내장이나 배변을 온몸에 묻히고 다니지. 죽음의 냄새를 몸에 배게 하기 위해서라네. 그렇게 해야 검은 파편이 생명의 기척을 쉬이 알아채지 못하거든. 하지만 그것도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아. 조금이라도 사체의 썩은 내가 옅어지면 놈이 곧바로 알아채기 때문이지.” 

“……할아버지는 왜 안 묻히는데요? 할아버지의 멍청…… 아니, 아들들에 비해 할아버지는 썩은 내가 안 나는데요?”

말실수를 할 뻔한 제 혀를 꾸욱 앞니로 누르며 그녀가 노인에게 물었다. 

그러자 노인이 쓸쓸한 눈빛으로 먼 곳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나같이 죽어 가는 노인의 뒤는 쫓지 않을 게다. 예전엔 검은 파편 그놈이 나를 포함한 장로들을 죽이기 위해 몇 년간 뒤를 쫓았었지만…… 그것도 다 다리가 있을 때 얘기지.”

장로라는 말에 이예주의 귀가 번쩍 트였다. 

그러면 이 노인네가 그 남자의 말로만 듣던 다리족 장로? 

노인은 자신이 죽어 가고 있기 때문에 검은 파편이 자신의 뒤를 쫓을 리 없다고 아예 단정 지은 듯했다. 

이예주는 그런 노인이 안쓰러워졌다. 

그럴 리가요, 할아버지. 그놈은 노인이고 어린아이고 상관없이 인간 박멸 자체가 꿈이자 목표인 미친놈인걸요. 

이로써 노인이 말하는 검은 파편이 그 시뻘건 눈의 남자라는 것이 확실해졌다. 검은 파편이 그 남자다. 

그럼 검은 파편이 이름이란 말이야? 대체 이름을 왜 그따위로 지었지? 

그때 그녀의 궁금증을 노인이 먼저 나서서 해결해 주었다.

“아가씨, 검은 파편이 무엇이냐 물었지? 놈은 신의 아이야.”

“예? 신의 아이요?!”

“그래. 신이 유일하게 자신의 힘을 사용하도록 허락한. 그렇지만 그놈은 배반을 선택했어. 신의 힘을 이용해 우리 인간들을 죽이면서 여신을 조롱하고 타락했지……. 놈은 그래서 불길한 검은색이 되었다네. 더러움이 물들어 지워지지 않는 검은색 말이야. 우리 시간족은…… 참, 아가씨는 시간족도 뭔지 잘 모른다 했지?”

노인의 자상한 물음에 이예주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족은 여신의 축복을 받은 인간들이야. 크게 팔족, 다리족, 눈족으로 나뉘는데 팔족은 팔을 휘둘러 시간을 멈추고 다리족은 다리를 저어 시간의 구애에서 벗어나 재빠르게 달릴 수 있고 눈족은 눈을 떠서 과거를 볼 수 있지. 하지만 그도 얼마 안 남았어. 검은 파편이 우리의 씨를 말리고 있거든.” 

이예주는 노인의 입에서 들려오는 판타지 영화 같은 소리에 입을 떡 벌렸다. 

신의 아이는 또 뭐고, 시간족은 또 뭐란 말인가. 팔을 휘둘러서 시간을 멈추고, 다리를 저어 뭐? 

그 말 같지도 않은 소리에 그녀는 머리가 아파 왔다. 

그러나 이 치매 걸린 것 같은 노인은 그 이상한 소리를 진지한 얼굴로 이어 설명했다.

“검은 파편에 대항하기 위해 한때는 우리 시간족끼리도 뭉쳤었지. 시간족끼리 결합을 해서 자식을 낳으면 그 자식들이 부모보다 훨씬 강한 힘을 가진다더군. 그때에는 시간족 내에서도 이렇게까지 식인 풍습이 널리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시간을 멈추는 팔족의 증언이 있었어. 세기말 용암 폭발에서도 살아남았다는 팔족의 말이니 우리는 믿을 수밖에! 난 그래서 눈족에게 미래를 보는 어린 신부를 달라고 했지. 아, 눈족은 대부분 과거를 보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아주 드물게 미래를 보는 여자아이가 태어난다네. 무려 미래를 보는 여자아이 말이야. 시간족의 결합을 들먹이니 그렇게 미래를 보는 아이를 싸고돌던 눈족도 아이를 순순히 내주었어.” 

문득 이어지는 노인의 말에 이예주의 몸이 차갑게 굳었다. 

아주 드물게 태어나는 미래를 보는 아이. 어디서 들어 본 얘기였다. 

엄마, 엄마였다. 

―예주야, 잘 들어. 엄마 일족은 대부분 과거를 보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아주 드물게 미래를 보는 능력을 가진 아이들이 태어난단다. 엄마 또한 미래를 보는 능력을 가졌지만 완전하지 못하고 아주 가까운 미래밖에 볼 수 없어서 일족에게 버림받았지. 그런 나를 보듬어 준 게 너희 아버지란다.

노인이 말한 그 일족이 바로 엄마의 일족이었다. 

엄마가 바로 눈족이다. 

그녀는 목 뒤부터 등허리를 타고 오소소 돋는 소름에 노인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노인의 입을 타고 나오는 계속해서 엄청난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그런데 어디 하나 상할세라 남쪽에서 고이 모셔 온 미래를 보는 계집이 쓸 데라곤 쥐뿔도 없는 모질이일 줄이야!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눈족 놈들이 날 속인 게야! 가까운 제 미래 말고는 아무것도 못 보는 불완전한 눈족 계집에게서 태어난 것들이라곤 저런 눈도 없는 멍청한 것들뿐이었어! 다리족의 위대한 장로인 내 자식들이 돌연변이라니. 믿을 수 없는 일이지. 아가씨, 그렇지 않은가?”

“…….”

이예주는 노인의 질문에 대답 없이 딱딱한 태도를 고수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지금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중이었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엄마가 눈족이라면 1000년 전에도 이런 시간족이니 뭐니 하는 것들이 있었다는 소리인데. 

“이런. 내가 흥분해서 너무 내 말만 했나 보오. 그저 다 지난 얘기들이니 그렇게 인상 쓸 것 없어, 아가씨. 세기말 용암 폭발 이후 이런 사정 하나 없는 사람들이 어디 있겠나. 그러니…….”

“저기, 할아버지! 혹시 세기말 용암 폭발 이전에 대해서 아는 사람 있어요?”

“으잉?”

“그 세기말 용암 폭발 이전 시대요! 그 시대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들이나 연구하는 사람…… 뭐 그런 계통의 사람에 대해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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