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선 남자가 그대로 이예주가 있는 쪽으로 빠르게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그녀는 점차 얼굴에 핏기가 가시는 것을 느꼈다.
호, 혹시 들었나? 속으로만 다짐했던 것 같은데! 아니, 이 망할 놈의 입이 주인도 모르게 지껄였을지도 모른다. 들었나? 정말 들었나?
혹시나 남자가 자신의 중얼거림을 들었을지도 모른단 불안감 때문에 이예주의 눈동자가 갈 곳을 잃고 정처 없이 흔들렸다.
그 사이, 남자는 순식간에 나무 그늘 아래로 되돌아왔다.
“역시 못 믿겠다.”
“예, 예?!”
저도 모르게 펄쩍 뛰며 그녀가 평소보다 커다란 소리로 반문했다. 남자가 과장된 그녀의 행동에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입을 뗐다.
“눈빛이 불손해.”
“…….”
“혀가 간사한 인간이니 도망가지 않겠다고 해도 신뢰가 도통 안 가는군.”
남자의 폭언에 이예주는 표본실 개구리처럼 꼼짝달싹 못한 채 움찔움찔 몸을 떨었다.
워낙에 무표정한 그였기에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치챌 수가 없었다.
마른침을 꼴딱꼴딱 삼키며 몇 번 주저주저 입을 뗐다 다물기를 반복하던 그녀는 이내 보는 사람조차 손이 오그라드는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하하. 도, 도, 도망이요? 저 진짜 도, 도망 안 갈 건데. 절대, 절대요!”
“말을 더듬는데.”
“하하하! 말을 더듬다니요! 하하하!”
속고만 살았나. 이 귀신같은 놈.
등에서 식은땀이 나는 것을 느끼며 이예주는 계속 웃었다. 웃는 것만이 살길이라는 듯 계속.
가느다래진 눈으로 한동안 그녀를 살피던 남자가 이내 탐색하는 눈을 풀었다.
“뭐, 좋다.”
그러더니 제 품에서 무언가를 뒤적뒤적 꺼내 들었다. 이내 그의 품속에서 짤그랑거리는 기다란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남자가 한 손에 그것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이예주의 손목을 낚아챘다.
“어, 어…….”
철컥.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눈 깜짝할 새 그녀의 오른쪽 손목을 차가운 금속이 감쌌다. 남자가 곧바로 그녀의 손목이 벌레인 양 털어 냈다.
이어서 그는 쩔그럭거리며 그녀의 손목으로부터 이어진 것을 잡고 나무 밑동으로 가서 그것을 나무에 칭칭 감았다.
쩔컹쩔컹.
손을 조금만 움직여도 금세 사슬이 팽팽해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이예주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물었다.
“……이게, 이게 뭐예요?”
“사슬이다.”
늑대족을 몰 때 고삐로 쓰던 거지. 남자가 그렇게 덧붙이며 다시 이예주의 앞까지 걸어왔다.
내가 사슬이 뭐냐고 물어봤겠니?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쌍욕을 삼키며 그녀가 다시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제 손목을 감싼 수갑, 나무까지 연결된 사슬 그리고 그것을 채운 미친놈을 번갈아 보았다.
그니까 이게 대체.
“신뢰가 안 가니 미리 예방할 수밖에.”
“허, 허. 저기요. 그니까 이게 무슨…….”
기가 막히다 못해 코까지 다 막혀 버벅거리는 사이 남자는 이예주가 들고 있던 그의 겉옷을 빼앗아 그녀의 어깨에 잘 둘러 주었다.
그의 붉은 입술이 이마께에 훅 다가왔다 사라졌다.
겉옷의 앞섶을 거의 목 조르다시피 여며 주며 남자가 여상히 말했다.
“검독수리 발톱으로 만든 것이라 손목을 자르지 않는 이상 끊을 수 없다.”
“아니, 이건요. 아니…….”
“말썽 부리지 말고 여기서 잘 기다리고 있어라. 이틀 전에 고목 들판에서 기다렸던 것처럼.”
남자가 마치 아이 다루듯 이예주의 목을 앞섶으로 한 번 더 조이고 허리를 폈다.
말이 좋아 아이 다루듯 다루는 것이지, 그 시뻘건 눈동자에 스쳐 지나간 조롱을 그녀가 눈치 못 챌 리 없었다.
이 남자, 자신이 기다리고 있던 게 아니란 걸 알고 있었나?
“아니 아니, 저, 저기요. 저기요!”
그의 붉은 입술이 삐뚜름하게 올라갔다. 이예주가 뭐라 지껄이던 잠시 웃는 낯을 하던 남자는 그녀를 그대로 내버려 둔 채 휘적휘적 나무 그늘을 벗어났다.
다시 빗물이 갈라지는 기적이 행해지자 이예주는 다급함에 남자의 뒤를 따랐다.
하지만 쩔컹하는 소리와 함께 더 이상 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쇠사슬이 그녀의 오른손을 단단히 잡아당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기요! 저, 그게요. 이건 풀어 주고 가요…….”
그녀가 몇 번 더 오른쪽 손목을 잡아당겼지만 팔만 시큰하게 아플 뿐, 독수리 뭐시기로 만들었다던 사슬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사이 남자의 뒤통수가 조막만 해졌다.
“저기요! 저기요!”
“…….”
“저기요! 이건 풀고 가요!”
“…….”
“저기요! 야! 야! 이건 풀고 가!”
남자는 계속해서 멀어졌다.
정말로 그녀를 이렇게 키우는 애완견처럼 묶어 둔 채 어딘가로 가 버리려는 것이다.
사슬이 쩔그럭거릴 때마다 이예주는 묶여 있는 자신의 처지로 인해 부들부들 떨다 못해 뒷목을 잡고 넘어갈 지경이었다.
“야! 야! 이거 풀고 가라고!”
우렁찬 그녀의 고함 소리가 들릴 법도 한데 놈은 한 번을 뒤돌아보지 않았다.
“야—!”
“…….”
“야 이 미친놈아아악—!”
남자가 사라진 숲, 그로부터 한참 동안 이예주의 처절한 발악만이 빗물 사이를 맴돌 뿐이었다.
* * *
그로부터 한참을 더 사슬을 흔들어 대며 괴성을 지르던 이예주는, 비가 그치고 쨍쨍한 햇빛이 축축이 젖은 몸을 다 말려 준 후에야 목을 혹사시키는 짓을 관뒀다.
그녀는 지친 몸을 나무 밑동에 누였다.
소나기 소리에 묻힌 건지 아니면 완전히 그녀의 주변에서 멀리 떠나 버린 건지, 꽤 오랜 시간 동안 발악을 했음에도 남자는 오지 않았다.
“하…….”
우울한 얼굴로 한숨을 쉬던 그녀는 손에서부터 쩔그럭거리는 사슬 소리 때문에 또 한 번 부아가 치밀었지만 애써 화를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더욱이 몸이 뽀송뽀송해지자 화보다 졸음이 정신을 점령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요 며칠간 그녀는 끊임없이 ‘문’을 넘고 걷는 것을 반복했기 때문에 제대로 잠을 푹 잤던 기억이 없었다.
노곤함을 인식하자 둑 터지듯 잠이 쏟아져 내렸다.
이예주는 도리질을 쳐 잠을 몰아내면서 멍하니 오른쪽 손목에 고이 장착한 수갑을 내려다보았다.
대체 이게 무슨 행색일까. 언제 괴물 뱀이 나타날지도 모르는 와중에 애완동물처럼 사슬에 묶여 주인을 기다리는 꼴이 되다니.
이젠 조롱이조차 놀릴 수 없게 되었다. 자신 역시 그와 같은 애완동물 처지가 되었으니까!
“씨이, 언제 와…….”
뱀 생각에 그녀는 남자가 준 겉옷을 꾹 부여잡으며 불안한 눈으로 사방을 훑어보았다.
하루 빨리 괴물 뱀으로부터 멀어져야 하는데 이도 저도 못하고 나무에 묶여 꾸뻑꾸뻑 졸기나 하고 있으니 자신도 참 답이 없다.
“언제 와. 빨리 오라고, 빨리…….”
애처럼 칭얼대며 이예주는 편한 자세로 몸을 웅크렸다.
그녀가 생각해도 자신이 참 답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갑작스레 시체 썩는 냄새를 찾아 나선 남자만큼 답 없는 인간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대체 그 남자는 썩은 내의 근원지를 찾아 어디까지 간 걸까? 아니, 애초에 썩은 내의 근원을 찾는 것부터가 문제다.
그깟 구린내 찾아서 뭐하려고. 설마 페티쉬라도 있는 걸까?
더러운 냄새를 킁킁대며 찾다가 히죽 웃는 남자의 모습이 떠오르자 그녀는 몸서리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렴 그렇게까지 미쳤을까.
아직까진 남자의 잘생긴 얼굴에 대한 환상을 깨고 싶지 않은 이예주는 고개를 돌려 남자의 커다란 겉옷에 얼굴을 파묻었다.
킁킁. 그녀가 옷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았다.
혹시 그 자식이 제 몸에서 나는 냄새를 잘못 맡고 엄한 사람에게 뒤집어씌운 게 아닐까?
한참 냄새를 맡던 그녀는 잠시 옷에서 얼굴을 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네.”
중얼거리는 그녀의 눈은 이미 반쯤 감긴 후였다.
남자의 옷에선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아무 냄새도. 그 흔한 땀 냄새, 혹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날 법한 체향조차 맡아지지 않았다.
그저 무취, 그게 다였다.
옷 또한 너덜너덜한 그녀의 후드티에 비해 굉장히 깨끗했다.
참 이상한 노릇이다. 분명 함께 걸을 동안 남자가 씻거나 옷을 빠는 모습은 못 보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문’을 넘었던 이틀 사이 빨기라도 했나?
잠이 너무 쏟아져서 냄새를 분간 못하는 건가 싶어서 이예주는 다시 옷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얼굴을 묻었다.
킁킁, 최대한 숨을 크게 들이쉬며 남자의 냄새를 쫓았지만 끝내 아무 냄새도 맡을 수 없었다.
밀려드는 수마를 이기지 못하고 남자의 겉옷에 코를 처박은 채 그대로 졸도하듯 잠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 * *
“……자다.”
“당장…… 한다!”
“……검은 파편이……!”
이예주가 잠에서 깬 것은 그녀의 위에서 두런두런 들리는 말소리 때문이었다.
사실 말소리 때문이 아니라 스멀스멀 콧속으로 기어 와 박히는 엄청난 악취 때문에 원치 않아도 잠에서 깰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더 정확했다.
어디 공중화장실에서나 맡을 수 있는 오래 묵은 지린내, 쉰내, 음식 썩은 내. 그보다도 더 고차원적인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온갖 냄새들이 뒤섞여 코를 찔렀다.
우욱 하고 헛구역질이 치솟는 것을 간신히 참을 수 있었던 것은 그때까지도 열심히 그녀의 앞에서 열띤 토론을 하는 커다란 목소리들 때문이었다.
“피식자! 피식자가 확실하다! 피식자! 피식자!”
“먹어야 한다! 당장 씹어서 배에 넣어 놔야 한다!”
“사슬 검은색! 옷 검은색! 불길하다! 검은 파편!”
이예주는 슬쩍 실눈을 떴다.
나무 아래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그녀의 앞에 엄청난 덩치의 남자 셋이 서서 열심히 무언가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세 명의 꼴이 어느 하나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똑같이 더럽고 지저분했다.
그들은 어떤 동물이었는지 가늠조차 안 될 만큼 퇴색된 동물 가죽을 대충 걸쳐 입고 있었다.
말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면 구석기 혹은 신석기 시대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만한 외향들이었다.
이 끔찍한 냄새는 바로 세 남자들에서 풍겨져 나오는 것 같았다.
이렇게 끔찍한 악취라면 그녀를 버리고 떠난 시뻘건 미친놈이 냄새난다고 난리를 피울 만도 했다.
태어난 후로 씻은 적은 있는 걸까.
그들의 온몸에 더러운 오물과 때가 덕지덕지 껴 있는 것을 확인한 이예주가 다시 한 번 우욱 하고 구역질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필사적으로 참았다.
그래도 일단은 미친놈이 아닌 말이 통하는 다른 사람, 인간, 휴먼(Human)을 만났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올랐기 때문이다.
“피식자! 피식자다!”
“먹어야 한다! 먹어야 한다!”
“사슬은 검은색! 옷 검은색! 검은 파편의 색이다!”
커다란 덩치의 남자들이 아까와 별다를 바 없는 내용을 가지고 침을 튀기며 서로에게 자기주장을 내세웠다.
하나같이 어눌한 어투로 멍청한 소리만 내뱉는 것을 보니 형제인 듯싶었다. 이예주로선 당최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피식자. 먹다. 사슬 검은색. 옷 검은색. 검은 파편.
사슬과 옷이 검은색인 건 자신을 향한 말인 것 같은데, 피식자와 먹는 것은 뭐고 검은 파편은 또 뭐란 말인가?
알아들을 수 없는 남자들의 토론을 흘려들으며 조금 더 실눈을 크게 떠서 그들의 얼굴을 확인한 이예주는 그대로 숨이 멎었다.
“눈을 내놔라! 우린 냄새만 맡는다! 우리도 확인을 해야겠다!”
“맞다. 눈을 내놔라!”
“알겠다.”
그들은 눈이 없었다. 아니, 눈이 있는 자가 한 명 있었는데 그자 또한 이마에 커다란 눈 하나가 달랑 박혀 있는 상태였다.
커다란 포대 하나를 어깨에 지고 “사슬은 검은색! 옷 검은색!” 하며 이예주의 인상착의에 대해 주장하던 남자였다.
털썩.
남자가 포대를 그녀의 옆에 집어 던지다시피 내려놓고는 그 지저분한 손을 자신의 얼굴로 가져다 대었다.
그 이후에 일어난 상황은 몇십 년이 지나도 한순간의 기억으로 취급할 수 없을 괴기스러운 장면이었다.
남자가 손으로 제 이마에 박힌 외눈을 잡아 빼기 시작했다.
질척질척, 낙지 움직이는 소리와 비슷한 소리가 들리더니 얼마 안 가 ‘뽁!’ 하고 남자의 이마에서 눈이 빠져나왔다.
남자는 그것을 제 옆에 있던 또 다른 남자에게 건넸다. “피식자! 피식자다!”를 외치는 남자였다.
커다란 눈알을 건네받은 남자가 다시 그 더러운 손으로 제 이마를 더듬거리며 만진 후 눈꺼풀로 추정되는 눈구멍을 벌렸다.
그리고 그 사이로 건네받은 눈알을 뿌득뿌득 끼워 넣었다.
“……히익!”
이예주가 저도 모르게 신음 소리를 흘렸다가 화들짝 놀라 두 눈을 꾹 감았다.
다행히 눈에 정신이 팔린 세 남자는 그 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눈을 받은 남자를 필두로 다시 알 수 없는 토론을 시작했다.
“옷 검은색이다! 어? 사슬도 검은색이다!”
“그렇다. 내가 봤다!”
“나도! 나도 보겠다! 눈을 내놔라!”
눈을 건네주려는지 다시 눈알을 헤집는 질척질척한 소리와 ‘뽁!’ 하곤 눈알이 빠지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비록 보이진 않아도 눈에 선한 그 장면에 이예주가 목구멍까지 치오른 비명을 꼴딱꼴딱 삼켰다.
“진짜다! 검은 파편의 색이다! 으으, 무섭다! 검은 파편이다!”
“아니다! 인간 여자다! 검은 파편 아니다!”
“피식자다! 사슬에 묶여 있다! 피식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