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여자야말로 주인님 속이고 계속 도망갈 궁리만 하면서! 영악해여! 만날 남 속일 생각만 하고!”
“뭐? 내가 언제! 참나! 참나!”
황조롱이가 황금색 눈동자에 원망을 한껏 담고 새초롬히 그녀를 째려보았다.
전적이 있어 뜨끔한 이예주가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말을 버벅대며 손 부채질을 했다.
“인간이 우리한테 어떻게 했는데여!”
“아, 내가 뭘 어쨌다고!”
“진짜! 뭐든 다 할 테니 살려 달라고 싹싹 빌어도 웃으면서 막 잡아먹고! 영양가 있다고 막 태어난 애들을 산 채로 삶아 먹고! 그 때문에 멸종한 동물들이 얼마나 많은데여?”
“…….”
“신인류는 더 해여!”
거의 비명 지르다시피 하는 조롱이의 모습에 이예주가 깜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자신을 향한 황금안에 지금껏 보지 못했던 짙은 원망이 가득 담겨 있었다.
“신인류는 잡아서 사육당해여. 그중 능력이 특출 난 신인류는 태어나자마자 잡아먹혀여. 능력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여. 태어날 때 인간 모습으로 태어나는 경우도 있어여. 근데 어떻게 제 종족의 모습을 했는데도 산 채로 뜯어 먹을 수가 있어여? 애기가 막 우는데. 막 우는데 정말……. 정말 이해가 안 가…… 어떻게 그래여? 인간들은 정말 어떻게 그래여……?”
“…….”
“근데 그게 그렇게 억울해여? 우리가 죽어 갈 때 아무도 안 도와줬는데…… 주인님이, 주인님만이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 움직여 주셨는데. 그게 그렇게 억울하냐구여!”
“……누, 누가 억울하대?”
인간에 대한 모든 증오의 화살이 자신을 향하자 이예주가 잔뜩 당황하여 말을 더듬었다.
아니, 저게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난리야. 내가 뭐라 했나. 난 듣도 보도 못한 소리구만 왜 나한테 저래.
갑작스런 조롱이의 비난에 그녀가 버벅대는 사이 잔뜩 씩씩거리던 황조롱이가 ‘펑!’ 하고 인간에서 새로 변했다.
“야. 조, 조롱아! 어디 가!”
그러더니 이예주가 잡을 새도 없이 발톱으로 제 옷을 쥐고 훌쩍 날아가 버렸다.
난데없이 욕을 왕창 먹은 당사자보다 제가 더 화가 나서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황당한 새에게 그녀는 참지 못하고 불만을 중얼거렸다.
“내, 내가 그런 것도 아니고…….”
“스읍, 그만 입 다물어라.”
남자가 그녀의 억울함마저 묵살했다. 황망히 황조롱이가 떠난 자리를 바라보던 그녀는 들려오는 목소리에 문득 화가 치솟아 휙 고개를 돌렸다.
아니, 내가 대체 뭐라 했길래! 억울한 걸로 치면 이 세상에서 나만큼 억울한 인간이 또 어디 있다고 나한테만 왜 이래, 이 자식들아!
분에 가득 차 저도 한마디 내뱉기 위해 입을 벌린 이예주는 남자의 시뻘건 눈과 마주치자 바로 입을 꾹 닫았다.
크리쳐 때문에 잠시 착각하고 있었나 보다. 남자가 약간은 자신을 받아들여 주었다고.
남자의 눈은 처음 그녀와 마주쳤을 때처럼 서늘한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 지독한 혐오는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정확하게 자신을 가리켰다.
남자마저 자신을 비난하는 듯한 눈빛을 보내자 그녀는 목 끝까지 억울함이 치솟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한 마디만 더 내뱉었다간 목이 달아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녀는 잠자코 나무 그루터기 쪽으로 갔다.
어둠에 몸을 묻으며 이예주는 자신이 생각보다 황조롱이에게 많이 의지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혈혈단신의 몸으로 이곳에 떨어져 얼마나 두려움에 떨었던가.
얄밉긴 해도 갈색 머리 소년과의 아옹다옹은 그나마 차올랐던 걱정과 두려움을 완화시켜 주곤 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착각이었다. 처음 보는 황조롱이의 적대가 그녀의 기분을 완전히 깔아뭉갰다.
이예주는 제가 뭘 잘못한 건지 도저히 알지 못해 억울해서 돌아가실 정도였지만 황조롱이에게 사과를 건네기 위해 밤늦게까지 그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녀가 피곤에 지쳐 잠에 빠지기 전까지 황조롱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 * *
치익, 치익.
어떤 소리와 함께 단백질 타들어 가는 구린내가 이예주의 코끝에 다가왔다.
더운 기운이 그녀의 얼굴가에서 간질거렸다.
으응. 이예주는 잠결에 어디서 더운 바람이 부는가 보다 싶어 얼굴을 찌푸리며 몸을 뒤척였다. 그러나 힘을 주고 뒤척이는데도 몸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으응……! 조금 더 꾹 힘을 주며 몸을 움직이기를 재차 반복하던 그녀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어? 몸이 왜 이러지? 왜 이렇게 안 움직이고…….
“으윽!”
그때, 온몸이 숨 쉴 수 없을 만큼 무언가로 꽉 조였다. 그녀가 반사적으로 신음하며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쉬익―.”
눈앞에 거대하고 날카로운 이빨이 있었다. 그 끝에서 허연 점액질이 뚝뚝 떨어져 이예주의 머리카락과 후드 근처로 떨어졌다.
치익, 치이익.
연달아 타들어 가는 소리와 함께 구린내가 피어올랐다.
그 액체가 닿았는지 목뒤가 따끔거렸다. 후욱― 더운 기운이 다시 한 번 그녀의 얼굴을 덮쳤다.
더운 바람이 아니라 입김이었다. 그녀의 머리는 뱀의 아가리 속으로 반쯤 들어가 있는 상태였으니.
“억.”
제 몸을 조이는 힘이 더 거세지자 이예주는 뼈가 부서지는 듯한 고통에 신음을 흘리며 아래를 내려 보았다.
자신의 몸은 보이지 않고, 목 아래서부터 끔찍스러운 비늘로 뒤덮인 뱀의 몸뚱이가 똬리를 틀고 있는 게 보였다.
그제야 그녀는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알아차렸다. 초대형 돌뱀이었다.
뱀이 자신을 죽이려고 기어코 따라온 것이다.
이예주는 다시 고개를 들다 노오란 파충류의 눈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등허리부터 쫙 올라오는 소름에 그녀가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아아아악—!”
“쉬익, 쉬익. 캬악!”
뱀이 아가리를 더욱 크게 벌렸다. 독을 뚝뚝 떨어뜨리는 날카로운 송곳니가 그녀를 찢어발길 듯 다가왔다.
“……아악, 헉!”
그녀가 번쩍 눈을 뜨며 몸을 휙 일으켰다.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그녀는 두려움이 가득한 얼굴로 제 몸을 마구 더듬어 댔다.
온몸을 터뜨릴 것 같은 엄청난 악력이었다.
아직도 제 몸을 조이는 듯한 그 압박감에 이예주는 몇 번이고 제 몸을 더듬는 걸 멈추지 못했다.
“무슨 일이지?”
앞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에 퍼뜩 고개를 들자 조롱이가 떠나기 전과 변함없는 자세로 앉아 있던 남자가 꽤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의 시뻘건 눈과 마주치자 초점 없던 이예주의 눈이 점점 현실로 돌아왔다.
그러나 눈을 감아도 잊히지 않는 뱀의 선명한 잔상에 희게 질린 그녀의 안색은 쉬이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꿈이…….”
꿈이었나? 그 생생함이 꿈이었나?
그녀가 정신없이 꿈과 현실을 되새기다가 문득 옆얼굴을 찌르는 빛에 눈을 돌렸다. 그녀와 남자가 있는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문’이 열려 있었다.
환히 빛나는 문 한 개가.
이예주는 반사적으로 생각했다. 예지몽이구나.
이런 적이 한 번 있었다.
고2, 수학여행을 떠나던 도중, 생생한 꿈에서 깨어나자 눈앞에 ‘문’이 열려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근방에 돌뱀이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았다. 아니, 확신했다. 이제 곧 꿈이 현실이 된다.
직감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에 남자와 ‘문’을 번갈아 보던 이예주의 얼굴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일그러졌다.
그를 놓치지 않고 주시하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
“…….”
“뭘 본 거지?”
남자가 물었다.
까마귀로 변한 크리쳐를 보고 떨어 댈 때는 오히려 귀찮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밀쳐 내던 남자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녀의 얼굴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라도 감지한 걸까.
아무렴 심상치 않은 기운이겠지. 이제 곧 초대형 돌뱀에게 먹히기 일보 직전인 꿈을 꿨는데.
“……저기요, 저 진짜 도망가는 거 아니에요.”
이예주가 남자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문’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남자의 새빨간 눈이 집요할 정도로 그녀를 쫓았다.
엄마야. 진짜 저 미친놈 어떡해. 이예주는 속으로 통곡을 하며 ‘문’ 근처에 멈춰 섰다. ‘문’ 안쪽에 미래가 보였다.
깊은 밤인 현재와는 다르게 ‘미래’의 어느 날은 훤한 대낮이었다.
재빨리 무언가 특징 잡을 거리를 훑은 그녀가 다시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의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그러나 이예주의 행동을 필히 괴이하게 여기고 있을 것이다.
남자의 눈엔 ‘문’이 보이지 않을 테니 당연한 소리겠지만.
“흐흑…… 저 진짜 도망가는 거 아닌데요.”
이예주가 울먹였다. 남자는 변함없는 새빨간 눈으로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다.
“저, 나무는 별로 없는데 엄청 커다란 미루나무 같은 게 있어요. 옆에 큰 바위도 있고요. 어, 또…… 또, 나무 주위로 들판이 있어요. 숲이 아닌가 봐요. 낮이고 해도 쨍쨍하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거기서 기다릴게요!”
이예주에게는 사실 남자나 돌뱀이나 별 차이 없었다.
그렇지만 이것도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니 남자가 너무 자신에게 분노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예를 들면 벼락을 내리치는 그런 끔찍한 일은 피하고 싶다.
“안 믿기겠지만 진짜 도망가는 거 아니에요, 진짜!”
“…….”
“제가 어헝…… 제가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건 아니에요.”
“인간, 대체 무슨 소릴…….”
남자는 완전히 미간을 구긴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예주는 금방 뱀 대가리가 독을 쉭쉭 내뿜으며 나타날까 봐 두려움에 떨면서도 그에게 미안하다고 중얼거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무슨 소리긴. 도망간다는 소리다, 이 자식아.
남자가 잡을세라 그녀는 재빠르게 ‘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훗날 남자의 분노가 두렵긴 했지만 당장의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그녀로선 더 먼저였다.
제발 이토록 간절한 자신의 마음이 남자에게까지 닿길.
“그럼 기다리고 있을게요!”
“이봐, 인……!”
곧 환한 빛이 이예주를 감싸 안았고 남자가 채 부르기도 전에 그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 *
눈을 떴을 때 이예주는 거짓말처럼 ‘문’을 넘은 장소에 도착했다.
조롱이를 연상케 하는 참새 떼가 짹짹거리며 커다란 나무 위를 지나갔다.
아, 진짜 외국에 왔구나.
‘문’을 넘기 전에 이미 본 광경이지만 한국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푸른 초록이 넘실대며 그녀의 앞에 펼쳐져 있었다. 하늘은 티 한 점 없이 새파랬다.
위험천만한 숲속에서 몇 날 며칠을 헤매고 다녔던 게 꿈같이 느껴질 정도로 평화롭기 짝이 없는 광경이었다.
이예주는 쨍쨍하게 내리쬐는 햇빛을 피해 눈앞에 있는 거대한 나무 밑의 그늘 속으로 들어가 철퍼덕 주저앉았다.
자다 깬 상태에서 정신없이 ‘문’을 넘어와서 그런지 묘하게 몸이 나른하고 눈앞이 멍했다.
시간이라는 단서만 빼면 정말 공간 이동이라고도 믿을 만한 능력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사실 여기에 온 이후만큼 이렇게 공간이 천양지차로 달라진 적도 없었다.
기겁할 만한 괴물 뱀이 있는 미친 숲에, 인간 박멸이 장래 희망인 시뻘건 눈의 미친놈.
그 남자, 설마 죽이려고 달려들진 않겠지? 그래도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도망가지 않겠다고 피력을 했는데.
엄마에게도 그렇게 자세하게 미래를 설명해 준 적이 없을 것이다.
이예주는 가을 하늘처럼 티 한 점 없이 새파란 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보며 우울한 얼굴로 한숨을 폭 내쉬었다.
여기서 그 남자가 올 때까지 마냥 기다리기만 해야 하는 걸까? 설마 나 따윈 잊어버리고 제 갈 길 가 버린 건 아니겠지?
그러면 그걸 기회로 거짓말이 들통나기 전에 지금이라도 먼저 남자에게서 벗어나야 하나?
지금이 바로 도망갈 기회란 생각에 그녀가 주저앉아 있던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래, 도망!”
남자가 죽이기 위해 쫓아다니는 인간들에 대한 정보를 알기는커녕 쥐뿔도 모르는 걸 들킨다면…… 생각만으로도 온몸이 덜덜 떨렸다.
그녀는 도망갈 길을 가늠하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사방이 풀뿐인 이 들판 지형에서 오지의 ‘오’ 자도 잘 모르는 그녀가 방향을 가늠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이예주의 얼굴이 다시 우울하게 일그러졌다.
“하, 여긴 또 어디야…….”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겠거니와 방향을 안다손 치더라도 또 남자를 만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냥 초능력자도 아니고 무려 자신의 기척을 느낀다는 초능력자라지 않는가.
게다가 남자도 남자지만 문제는 그 괴물 뱀 대가리였다.
망할 돌뱀이 자신을 뒤쫓아오고 있었다.
이번에는 얼떨결에 잘 피했으나 다음번에도 과연 잘 피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