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앤 매드 (18)화 (18/319)

“……으헉!”

남자의 품에 안기다시피 있다는 것을 인식하자마자 그녀가 사색이 되어 확 남자의 품에서 떨어졌다.

“왜, 왜, 왜, 여, 여기!”

“……뭘 하고 있는 거냐고 물었다.” 

“그, 그, 그.”

“대답.”

“……보, 봉구. 봉구…….”

“봉구?”

이예주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봉구를 열심히 외치며 강아지 쪽으로 손가락질하자 남자가 그 쪽으로 슬쩍 눈을 흘기며 그녀의 말을 따라 했다. 

눈 흘기는 그의 모습이 미치도록 색정적이어서 그녀는 남자의 손아귀에 잡혀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잠시 멍하니 얼굴 감상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미친놈이 혹시라도 강아지에게 해를 가할까 하는 생각에 애써 그에게서 시선을 돌린 그녀가 봉구라고 명명한 짝퉁 강아지를 바라보던 차였다.

“……헐. 저게 뭐야?”

이예주는 매번 끔찍한 것들을 만날 때마다 왔던 충격이 또 한 번 찾아오는 것을 느꼈다.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 같았다.

하얀 강아지는 그녀가 교육시키던 자세 그대로 앉아 있었다. 괴상할 정도로 커다랗게 입을 벌린 상태로. 

마치 얼굴과 얼굴 끝을 열어 버릴 기세로 쩍 벌어진 입안에 강아지 것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날카롭고 커다란 이빨들이 송곳처럼 매달려 있었다. 

이빨 모양조차 일반 동물과 달랐다. 꼭 상어의 겹니처럼 안쪽, 바깥쪽으로 징그러운 그것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달려 있었다. 

도저히 강아지라 볼 수 없는 그 외양에 이예주는 등골부터 소름이 쫘악 돋았다. 

게다가 미동도 없이 입을 벌린 채 앉아 있는 그 모습이 괴기스러움을 더욱 가중시켰다. 

저 괴물 같은 이빨에 손이라도 물렸다가는 그냥 물린 정도가 아니라 그대로 절단이다. 

만약 이 남자가 제 뒷덜미를 잡아끌지 않았더라면…….

“크리쳐다.”

“…….”

“키우던 동물인가? 개는 인간과 가장 상극인 동물 중 하나인데 개에게 정을 다 주다니. 참, 넌 볼수록 신기한 인간이군.” 

그녀가 경악해 질린 채 덜덜 떠는 것을 눈치챘는지 남자가 한결 가라앉은 목소리로 무어라 말했다. 하지만 그것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개가 인간과 가장 상극인 동물이라니? 그건 또 무슨 개 짖는 소리요, 따위를 말을 하고 싶었으나 강아지의 엄청난 반전 때문인지 자꾸만 혀가 굳었다. 

그녀는 그저 입을 붕어처럼 뻐끔뻐끔 거렸다.

남자가 옅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만 떨어라. 내가 있는 한 더 이상 다가오지 않을 테니.”

“…….”

“신인류도 아닌 것을 괴롭힌다 싶더니, 쯧.”

“저, 저게 뭔데요? 저는 봉구, 봉구…….”

남자가 혀를 찼다. 이예주가 끔찍한 봉구 짝퉁의 몰골을 한 번 더 바라보고 울먹였다. 

그럼 그렇지. 봉구에 대한 환상이나마 추억으로 만들 생각이었던 자신에게, 이 음침한 숲이 그런 호사를 선사해 줄 리 없었다. 

그래도 그렇지. 봉구의 낯짝을 어떻게 저리도 끔찍하고 흉물스럽게 만들 수 있을까? 진짜 이 망할 숲. 

“크리쳐는 먹이가 생각하거나 혹은 알고 있는 모습으로 신체를 변형해 먹이를 유인한다.”

남자가 저 끔찍한 모양새의 봉구 짝퉁에 대해 설명했다. 크리쳐? 게다가 신체 변형? 그딴 동물이 있었던가?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 예전에 자주 시청했던 동물 다큐멘터리에 대해 떠올려 보아도 저런 말도 안 되는 동물을 본 적은 없었다.

“저것은 본래 토끼나 사슴의 어린 새끼 같은 약한 것을 잡아먹는 온순한 생물체다.”

“……저게요?”

“인간을 해치지 않는 기준으로 본다면 온순한 생물이지.”

이예주는 아까 전부터 부동자세로 입을 쩍 벌리고 있는 봉구 짝퉁의 살벌한 이빨들을 바라보며 몸서리를 쳤다. 

저게 온순한 생명체라고? 

“먹을 것이 부족해진 너희 인간들이 급기야 동물의 숲까지 침범해서 근방의 어리고 약한 것들을 싹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이 근래는 이미 인간들이 습격하고 지나간 탓에 저것이 먹을 만한 것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지.”

“…….”

“그러니 녀석이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무얼 사냥하겠나.”

뭘 사냥하는데? 그녀가 남자의 질문과도 같은 말에 멍하니 그를 올려다보았다. 

새빨간 눈동자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올곧게 이예주를 바라본다. 뭐야? 설마, 나?

“저, 저요?”

그녀가 저를 가리키며 어이없다는 듯 되묻자 남자가 그제야 주름 잡힌 미간을 폈다. 아, 답답하다는 표정이었구나.

“그래. 이제 너같이 어린 인간들을 잡아먹더군.”

“저 안 어린데요?”

이예주가 전혀 처음 듣는 소리라는 듯 생경하게 남자를 바라보았다. 

대체 누가 어리단 말인가. 주민등록증에 잉크 마른 지가 언제인데. 

투표도 당당히 하는 어엿한 성인이건만 대체 어딜 보고 어리다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그러나 남자는 그녀의 반응이 가소롭다는 듯 한 번 흘겨보고는 무시했다. 그런 태도에 이예주는 발끈했다. 

“저기요. 저 근데 진짜 안 어린…….”

“호수 근처는 포식자들이 많이 돌아다닌다. 다리족 인간이라면 크리쳐 정도는 쉽게 피했을 텐데.”

“……네?”

“저것을 데리고 뭘 하나 싶어서 지켜봤더니 영 몰랐던 눈치군.”

“…….”

“대체 왜 여기까지 와 있는 거지?”

어느덧 남자의 새빨간 눈이 추궁하듯 서슬 퍼런 빛을 띠었다. 

덜컥 잊고 있었던 제 잘못이 떠올라 이예주가 숨을 집어삼켰다.

“여, 여긴 어떻게 알고…….”

“황조롱이가 말해 주더군. 데리고 온다는 것을 혼자 잘 놀고 있기에 내버려 두라 했다.”

“잘 놀고 있다니요! 내가 얼마나! 얼마나…….”

남자의 잘 놀고 있다는 말에 그녀가 순간 울컥 치밀어 오르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내비쳤다.

잘 놀고 있다니. 저 흉측한 봉구 짝퉁 때문에 잠시 잊고 있었으나 1000년의 충격이 사라질 리 없었다. 

이제 다신 집에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르는 마당에 이 남자가 대체 뭐라는 거야. 

“노는 게 아니면 여기까지 와서 뭘 하고 있던 거냐.”

“……그거야!”

당연히 지금이 몇 년 몇 월 며칠인지 확인하러 온 거지, 이 자식아! 

하마터면 우렁차게 외칠 뻔했던 사실들을 목구멍으로 꿀떡 삼키며 이예주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의미심장한 행동에 남자의 한쪽 눈썹이 솟아올랐다. 어디 더 해 보라는 것처럼.

“하하. 그, 그거야 당연히. 어, 어…….”

이예주가 어색하게 웃으며 남자의 빨간색 눈을 피했다. 

볼이 다 따끔따끔했다. 집요할 정도로 그녀의 의중을 살피는 시선이었다.

“황조롱이가 꼼짝 말고 있으라 했을 텐데.”

헉. 그녀가 짧게 숨을 들이켰다. 귀신같은 놈, 그건 또 어떻게 안 거야? 

“그, 그랬죠. 네, 그랬는데…….”

“그랬는데? 여기까지 온 걸로 봐선 혹시.”

남자의 눈이 가느다래졌다. 의심이 더덕더덕 붙어 있는 그 얼굴이 느리게 그녀의 얼굴 앞으로 고개를 숙여 다가왔다. 

이예주가 펄쩍 뛰며 저도 모르게 커진 목소리로 미친 듯이 고개를 저었다.

“저, 저 도망간 거 아닌데요?!”

“…….”

“진짜 아니에요! 진짜!”

강한 부정을 외치는 입과는 별개로 그녀의 두 눈동자가 하염없이 떨렸다. 그러나 당장 눈앞의 시뻘건 동공에 온 신경이 쏠린 그녀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진짜 정말 아닌데요! 진짜예요. 진짠데…….”

빨간 동공이 뚫어 버릴 심산인 것처럼 날카롭게 그녀의 얼굴을 훑었다. 

그녀가 그 눈빛에 잔뜩 졸아서 거의 울먹거릴 즈음이 돼서야, 이윽고 남자가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뭐, 네가 감히 도망갈 것이라곤 생각 안 했다.”

“…….”

“그래도 네가 굳이 도망갈 마음을 먹는다면…….”

“…….”

“네 도망 길은 오직 죽음뿐이다. 인간.”

인간이란 말을 끝으로 남자의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갔다. 

비웃음이 분명했지만 그녀를 향한 그 눈빛이 하도 차가워 농담하지 말라고 웃어 넘길 수조차 없었다. 

“대답.”

남자가 조소하며 명령하자 이예주가 창백해진 얼굴로 미미하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대답하지 않는다면 이 자리에서 도망 길이 뭔지 보여 주겠다는 듯한 강압적인 분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저건 악귀야. 살아 있는 악귀. 

계획이 강제로 대폭 수정되었다. 

당장의 도망은 잠시 미뤄 둬야겠다. 

일단은 다른 사람들을 만난 후, 저 악귀가 자신이 내세운 거래가 거짓임을 알아채기 전에 튀는 걸로 계획을…….

그렇게 재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생존에 대한 계획을 다시 세우던 이예주는 문득 꾸르륵꾸르륵, 무언가 녹아내리는 소리에 소리의 근원지로 고개를 돌렸다.

“으으…… 봉구야!”

봉구가 녹고 있었다. 아니, 봉구 짝퉁이 살벌한 이빨들만 남긴 채 아이스크림 녹듯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 광경이 하도 기이해 있는 대로 인상을 구기며 그것을 바라보던 것도 잠시, 속절없이 녹아내리던 크리쳐가 꾸물거리며 다시 어떤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불투명하고 흐물거리는 젤리 모양의 덩어리가 꿈틀꿈틀 역동적으로 움직여 형상을 만들더니, 금세 전혀 다른 동물로 변모했다. 

그것은 바로 생각만 해도 넌더리가 나는 까마귀.

까마귀로 변한 크리쳐가 봉구였을 때처럼 이빨을 숨기고 부리를 벌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꿈에 나올까 두려운 단어가 흘러나왔다. 

“인가악! 눈까악! 깍, 까악!”

“엄마아악!”

이제는 정확히 들리는 ‘인간 눈깔’ 소리에 그녀가 기겁을 하고 남자를 덥석 껴안아 얼굴을 숨겼다. 

이 숲에서 일어난 일들이 모두 트라우마로 남을 건 당연한 일이었으나, 그 어떤 것도 인간 눈깔을 외치는 수백 마리의 까마귀보다 충격적이진 않을 것이다. 

차라리 이 미친놈이나 초대형 돌뱀은 ‘문’을 찾느라 정신이 나가서 드문드문 기억이 끊기기라도 했지. 

저 까마귀 새끼들은 기억이 끊길 새도 없이 빠르고 집요하게 자신을 공격했었다. 

놈들이 끊임없이 갈망하던 ‘인간 눈깔’ 소리가 금방이라도 재연될 것처럼 생생하게 다가오자 그녀의 얼굴이 공포로 뒤덮였다.

이예주는 제가 껴안고 있는 자가 누군지도 모르고 무조건 필사적으로 얼굴을 가렸다.

“인간! 눈까악! 까알! 까악!”

“아악! 망할 놈의 까마귀! 내 눈깔은 절대 안 돼!”

“까악! 까악!”

푸드덕푸드덕, 몇 번의 날갯짓이 이어지더니 주위가 곧 잠잠해졌다. 

그러나 제 눈을 사수하려는 이예주의 악다구니는 멈추지 않았다.

“절대 안 돼! 하고많은 눈깔 중에 왜 인간 눈깔이야!”

“…….”

“내 눈은 절대 안 뺏겨!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절대……!”

“크리쳐는 내장만 먹을 뿐 인간 눈깔은 먹지 않는다.”

바로 위에서 쏟아지는 삐딱한 목소리에 그녀가 마침내 악다구니를 멈추고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다시 코앞에서 시뻘건 동공이 아른거린다. 왜 이 남자가 여기…….

“그러니 그만 놓지.”

“…….”

남자의 눈이 슬쩍 제 목을 꽉 부여잡은 그녀의 팔을 가리켰다. 

제가 씻지도 않은 얼굴을 콱 들이박고 있는 것이 외간 남자의 가슴팍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이예주가 “으헉!” 하며 파다닥 뒤로 물러섰다.

“내, 내가 왜! 죄, 죄송…….”

그녀가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횡설수설 말을 더듬었다. 

정신이 나가도 단단히 나간 게 틀림없다. 제 손으로 이 미친놈을 끌어안는 것도 모자라 엄청난 추태를 부리다니. 

이 내가!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모태 솔로인 이 내가……! 

제 손으로 복수해야 할 대상을 껴안았다는 사실에 크나큰 수치심을 느끼며 그녀가 홀로 괴로워할 동안, 남자는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그녀에게서 휙 등을 돌렸다.

“밤이 깊었으니 이제 그만 싸돌아 다녀라.”

남자는 그 한마디 성의 없이 툭 내뱉고 오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는 듯 저 먼저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엄청난 비매너에 이예주는 자신의 추태를 괴로워하는 것도 멈추고 멀어지는 남자의 뒤통수를 보며 조심스럽게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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