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앤 매드 (10)화 (10/319)

“아억!”

황조롱이가 갑작스러운 타격에 제대로 신음도 내지 못하고 축 늘어졌다. 

눈앞에서 별들이 반짝거렸다. 

새로 변하면 인간 모습일 때에 비해 무게가 훨씬 가벼워지기 때문에 그만큼 작은 충격에 민감했다.

황조롱이가 황금색 눈동자를 뱅글뱅글 돌리며 입에 게거품을 물었지만 이예주의 눈은 전혀 풀리지 않은 채 여전히 형형한 광기로 번득였다.

“하하, 하하하! 어때. 염통이 좀 쫄깃 거리지? 응?!”

“으으…… 어어…….”

“이제 마른하늘에 날벼락 맞고 뒈지기 직전이었던 내 심정이 느껴지냐고!”

이예주는 정신을 못 차리는 새를 보며 희열에 찬 얼굴로 히죽히죽 웃어 댔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여실히 느껴지는 그녀의 광기에 황조롱이가 움찔움찔 몸을 떨었다.

“어어…… 인님이…… 해서…… 없었떠여…….”

“뭐라구? 난 너같이 옹졸한 참새가 아니니 변명 정도는 들어 줄게. 하핫.”

“……인님이…….”

그녀는 마치 큰 인심을 베푸는 사람처럼 제 귀를 황조롱이의 부리에 바짝 가져다 댔다. 

황조롱이의 입에서 연신 신음 소리가 쏟아졌다.

“어어…… 님이…… 인간 여자를 죽이라고 부, 분노…….”

“응? 뭐라고?”

“아아…… 주인님이…… 인간 여자를 보면…….”

“뭐라는 거야. 네 주인이 뭘 어쨌다고! 똑바로 말 안 하면 또 꿀밤 날라 간다?”

이예주가 옳다구나 기회를 잡았다는 듯 재빨리 주먹을 움켜쥐고 하늘 높이 팔을 쳐들었다. 

그 섬뜩한 꼴을 본 황조롱이가 기절한 척을 하다가 허겁지겁 금안을 치떴다.

“아, 주인님이 인간 여자를 보면 죽이겠다고 분노하셔서 어쩔 수 없었다구여!”

“……주인님?”

가차 없이 새를 향해 다시 날아가려던 이예주의 주먹이 공중에서 딱 멈췄다. 

그녀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주인, 황조롱이의 주인. 황조롱이의 주인이 누구더냐.

“네, 주인님이엽! 주인님! 주인님이 인간 여자를 죽이겠다고 하시는데 신인류 주제에 제가 뭘 어떻게 해여! 그래도 약도 발라 주고 다 했잖아여!”

황조롱이가 억울함을 잔뜩 담은 목소리로 종알거렸다. 

그러나 이예주의 귀엔 그 애처로운 외침이 들리지 않았다. 

잊고 있었다. 

이 얄밉기 짝이 없는 촉새의 주인이 누군지. 

그것은 바로. 

“헉.”

빨간 눈깔.

시뻘건 눈에서 뿜어져 나오던 살기가 떠오르자 이예주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하얗게 탈색됐다. 

말하는 새가 여기 있다면 이 주변에 그 남자도 있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인데. 

어젯밤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일어났다. 

빨간 눈깔이 자신을 죽이러 찾아왔다. 

기어이 번갯불에 콩 튀겨 먹듯 튀겨 죽이려고 찾아온 거야. 

그녀는 휙휙 고개를 돌려 사방을 훑어보았다. 

주변은 어제 뱀을 피해 ‘문’을 넘어 도착한 숲의 모습 그대로였다. 

폭이 꽤 넓은 시냇물과 그 주위를 울창하게 둘러싼 나무들까지. 

“왜, 왜 그래여.”

아까와는 다른 의미에서 뒤집힌 안광을 바라보던 황조롱이가 다시 겁에 질려 말을 걸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대꾸 없이 목이 돌아갈 만큼 고개만 휙휙 돌릴 뿐이었다.

이예주는 ‘문’을 찾았다. 그러나 어디에도 환히 빛나는 곳은 없었다. 

그것으로 보아 그 미친놈은 아직 주변에 없다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그러나 안심하긴 일렀다. 

까마귀도 소름 끼치고 초대형 돌뱀도 진저리가 났지만 그녀에게 있어 가장 끔찍한 건 바로 시뻘건 눈을 가진 놈이었다. 

그 남자는 땅을 마구 가르고 날벼락을 내리치는 초능력자다. 

속히 그 미친놈이 오기 전에 도망가야 된다. 

그때, 이예주가 찾는 것이 제 주인인 것을 눈치챈 듯 황조롱이가 우물거렸다.

“저, 저기여. 주, 주인님은…….”

“닥쳐!”

“아악! 아구구구!” 

정신 사납게 눈알을 굴리던 그녀가 부여잡고 있던 황조롱이를 집어 던지다시피 바닥에 패대기쳤다. 

바닥에 부딪힌 충격으로 인해 펑 소리와 함께 황조롱이가 벌거벗은 소년의 모습으로 변했다. 

“아구구! 나 죽네! 아이고, 황조롱이 죽네! 아구구구!” 

“도, 도망가야 돼!”

“아, 왜 집어 던지고 그래여! 아 진짜, 인간 주제에! 아야야, 아구구구!”

다시 인간 모습으로 변한 황조롱이가 떨어진 제 옷가지를 주워 입으며 입을 삐죽거렸으나 이예주는 듣지 않았다. 

제 눈앞에서 새가 벌거벗은 소년으로 변했다는 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사방을 훑어본 그녀가 서둘러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눈곱 잔뜩 낀 얼굴이라도 시냇물로 대강이나마 씻고 도망치고 싶었으나, 지금은 그럴 여유가 전혀 나질 않았다. 

“어디 가려구여! 주인님 찾아여?”

서두르는 이예주를 보며 갈색 머리 소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신 보지 말자. 지긋지긋한 새 자식. 니네 주인한텐 나 봤다는 소리하지 마. 나 간다!” 

“엥? 주인님…….”

이예주는 소년의 말을 다 듣지 않고 빠르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사실 맘 같아서는 미친 듯이 뛰어서 이 지대를 벗어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몸이 너무 엉망이었다. 

상처 때문인지, 야외에서 노숙을 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신열이 오른 것처럼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물집 잡힌 발도 화끈거렸다. 

하긴 저질 체력으로 그렇게 몇 날 며칠을 ‘문’을 넘고 뛰어다니고 도망 다니길 반복했으니, 지금 서 있는 것도 용한 거지. 

그녀는 보폭을 넓게 잡고 빠르게 걸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걸어도 걸어도 걷는 것 같지가 않았다. 

마치 누가 뒤를 잡아당겨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처럼. 

뭐지? 열이 너무 많이 올랐나. 이게 왜……. 

이예주는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고 손을 제 뒤로 넘겨 머리를 더듬거렸다. 

그리고 조금 더 내려가 후드티도 더듬거렸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후드가 위를 향해 팽팽하게 솟구친 감촉이 느껴졌다. 

그녀는 여전히 어벙한 얼굴로 더듬더듬 손을 더 위로 뻗었다. 

무언가 후드를 단단히 움켜쥐고 있었다. 

무언가 부드러운데 딱딱한 것. 

사람 손? 

사람 손이 제 후드를 단단히 움켜쥐고 있다는 것을 그녀가 간신히 깨달았을 무렵이었다. 

입고 있던 후드가 번쩍 끌어 올려져 그녀의 몸이 공중으로 치솟기 시작했다.

“아아악!”

신발에 닿아 있던 풀숲이 순식간에 멀어지자 이예주는 저도 모르게 새된 비명을 질렀다. 

이게 무슨 봉변이지? 

그러나 그녀는 현실을 자각하기도 전에 공중에서 달랑거렸다. 

잊고 있던 두려움이 금세 그녀를 덮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고소공포증이었다. 

“주인님, 위에 있어여.”

훌쩍 멀어져 아득해진 정신 사이로 언뜻 황조롱이의 말이 들려왔으나 이예주의 얼굴은 하얗다 못해 안쓰러울 정도로 시퍼레졌다. 

그러나 고소공포증은 차라리 약과였다. 

그보다 더 환장할 면상이 그녀의 코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어딜 그리 바쁘게 가는 거지?”

피를 온전히 담아 주입하면 이렇게 시뻘건 색의 눈동자가 나올까? 

그토록 피하고 싶던, 그토록 징글징글 맞던, 그토록 끔찍스러운 남자의 면상이 바로 앞에 보였다.

남자의 강렬한 빨간색 눈과는 대비되게도 이예주의 얼굴은 색 하나 없이 희멀건 했다. 

그녀는 호흡이 점점 가빠지는 것을 느꼈다. 

왜, 왜? 어째서? ‘문’도 나타나기 전에 잡힌 건가? 이건 너무하잖아. 난 죽기 싫어. 난 죽기 싫어, 아악! 

이예주가 미친 듯이 눈동자를 굴리며 유일한 희망을 찾아 댔다. 

그러나 시선이 닿는 족족 무성한 나뭇가지와 나뭇잎뿐이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제 상황을 파악했다. 

자신은 허공에 달랑달랑 매달려 있었다. 

후드티가 배까지 올라가 그녀의 부끄러운 속살이 휑하니 드러났다. 

애타게 ‘문’을 찾던 눈을 또르르 위로 올리니 남자의 손에 잡힌 알량한 후드가 보였다. 

한눈에 봐도 굉장히 위태로웠다.

“살 구멍을 찾는 건가.”

“…….”

“아쉽게도 쥐새끼처럼 도망가기 전에 잡혀 버렸군.”

“…….”

그걸 내가 몰라서 이렇게 잡혀 있겠냐. 그것도 허공에!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절규를 차마 내뱉을 수 없어 꾹 삼킨 이예주는 필사적으로 이 빨간 미친놈에게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어쩌지? 어떡해야 돼. 이 남자는 언제부터 나무 위에 있던 거지? 어떡해, 어떡하냐고!

“이젠 어떻게 도망칠 거지?”

“…….”

“대답.”

“…….”

“하는 게 좋을 텐데.”

남자가 그 말을 끝으로 그녀가 황조롱이를 족쳤던 것처럼 그녀의 후드를 두어 번 달랑달랑 흔들었다. 

팔다리가 제 의지와는 상반되게 허공에서 덜렁거리자 그녀가 경기를 일으켰다.

“아, 아악!”

“대답.”

“어흑! 대, 대답할게요! 흐, 흔들지 마요! 흔들지 마요!”

다리 밑으로 보이는 땅이 생각보다 멀었다. 아찔한 높이에 이예주는 공포에 질렸다. 

문득 고층 빌딩에 세 번이나 올랐음에도 결국엔 뛰어내리지 못하고 도로 내려온 지난날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애써 담담한 척한 것이 무색하게 고소공포증이 엄습했다. 

토할 것 같아. 

여러모로 궁지에 처한 그녀가 후들거리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도망가려는 거 아니에요.”

“…….”

그녀의 대꾸에 남자의 숱 많은 검은 눈썹이 위로 삐쭉 솟아올랐다. 

다른 때와 같았으면 ‘참으로 얼굴이 아깝도다.’ 하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그를 동정했을 테지만 지금은 그런 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허공에서 알량한 천 쪼가리 하나로 버티고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이 그녀를 두려움의 극으로 몰아붙였기 때문이다.

“그, 그쪽! 그쪽이 불편해할까 봐 자리를 피하는 거예요. 예?”

“…….”

“저 그냥 놔주시면 진짜 조용히 사라질게요. 그럼 저 같은 거 잡으려고 숲 뒤지는 고생도 안 해도 될 테고요. 제, 제가 뱀한테 잡아먹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숲속으로는 앞으로 얼씬도 안 할게요! 하루 만에! 하루 만에요! 놔, 놔주시기만 하면…….”

“놔주기만 하면?”

남자가 의아하다는 듯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자 그녀는 되는 대로 지껄였다. 

죽기보단 제 운과 능력을 믿어 보기로 했다. 

“아니, 1시간! 아니 1분! 놔주기만 하면 진짜 그냥 사라질게요!”

“너, 정체가 뭐지?”

“…….”

“정체가 뭐길래, 감히 내 앞길에 족족 나타나느냐 이 말이다.”

그건 내가 할 소리야! 

이예주가 애써 울분을 참으며 다음 대답을 하기 위해 다시 머리를 굴렸다. 

그러나 그새를 못 참고 놈이 그녀의 후드를 달랑달랑 흔들어 댔다. 

“다리족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는데. 단시간에 기척을 감추는 것만은 봐 줄 만한 능력이다. 어떤 종족끼리 붙어먹었기에 너 같은 돌연변이가 나왔지? 눈족인가?”

“어악! 으윽! 어헉!”

“그래. 그나마 도망치는 능력 하나 출중해서 내 친히 지금 널 살려 두는 것이니 이야기해 보거라.”

“어헉, 어흑!”

남자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흔드는 것 같았으나 이예주가 느끼는 파급력은 대단했다. 

휘익휘익, 바람이 귀를 가르고 나무 기둥이 부딪힐 듯 말듯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그녀의 입에서 새된 비명 소리가 쏟아졌다.

“저, 전 그냥 인간이에요! 인간, 인간 여자!”

그녀는 제 입으로 그렇게 듣기 싫어했던 ‘인간 여자’임을 인정했다. 

남자가 그 말에 감동받았는지 흔들기를 멈췄다.

“너만 한 능력을 가진 인간이 몇이나 더 있지?”

“…….”

“다리족 장로 놈들도 너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나? 어쩐지 사막까지 건너서 잘도 빠져나가더군. 쥐새끼 같은 놈들.”

가쁘게 숨을 쉬던 이예주는 남자의 말에 왈칵 울음이 쏟아질 것 같았다. 

이 저주 받을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또 있을 리가 없잖아. 

저와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 여러 명이라면 자신이 이렇게 홀로 개고생을 겪을 일도 없을 테다. 

게다가 그녀는 남자가 저번 만남부터 지껄여대던 다리족이니 눈족이니 하는 말들을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예주가 울먹거렸다.

“저, 저기요. 그게 중요한 거예요? 전 그냥 저만 놔주면 그쪽도 저도 다 좋을 것 같은데요…….”

“묻는 말에나 대답해.”

“아악!”

협박이 목적인 게 뻔히 보였지만 제 후드를 움켜쥔 남자의 손이 느슨해지자 그녀가 경악하며 위로 손을 뻗어 덥석 남자의 팔을 움켜쥐었다. 

그가 눈썹을 기이하게 꿈틀거리며 이예주를 바라보았다. 

소름 끼치는 시뻘건 눈동자 색과 마주치자 그녀는 얼른 고개를 푹 수그렸다.

“……죄송한데요. 저 진짜 몰라요.”

“오호.”

무표정하게 일자로 다물어져 있던 남자의 입꼬리가 매력적으로 휘었다.

“동족의 미래가 제 목숨보다 귀하다는 건가? 인간들의 언어로 그런 것을 뭐라 하지?”

“…….”

“인간들의 언어로…… 그래, 의리.”

“…….”

“똑바로 답하면 다리족 놈들을 다 잡을 때까지는 목숨을 부지하게 해 줄 생각이었는데, 안타깝군.”

남자가 전혀 안타깝지 않은 듯한 얼굴로 무표정하게 읊조렸다. 

이예주는 이제 울먹거림을 떠나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정신이 붕괴되는 것 같았다. 

의리는 무슨 국 끓여 먹을 의리. 

“저, 저기요. 그게…….”

“뭐, 굳이 네가 아니더라도 서쪽으로 가면 아는 인간들을 만날 수 있겠지.”

안절부절못하던 그녀가 인간들을 만난다는 남자의 말에 번쩍 고개를 쳐들었다. 

그러나 채 무언가를 소리치기도 전에 옷 때문에 죄이던 목이 가뿐해졌다. 

그리고 그녀의 몸은 허공에서 추락하기 시작했다. 

“아아악! 말할게요! 말한다고요!”

“…….”

염통이 쫄깃쫄깃해졌다. 

그녀의 몸이 추락하는 도중 머리가 바닥 쪽으로 휙 고꾸라졌다. 

훅훅 땅이 가까워졌다. 이대로라면 아무리 풀숲 위라도 분명 목뼈가 부러져 황천길에 오르리. 

“아악! 말할게요! 말한다고, 미친놈아!”

이예주가 엉엉 울며 소리쳤다. 땅에 거꾸로 얼굴을 처박고 죽기 바로 직전. 

그녀의 몸이 무언가에 턱 가로막히나 싶더니 지상 위에서 1센티미터도 안 남은 거리에서 뚝 멈췄다. 

한껏 커진 눈꺼풀을 타고 또르르 땀이 흘러내렸다. 

헉, 헉. 살아난 건가? 

막혔던 숨을 가까스로 내쉬던 이예주는 살았다는 자각을 하기도 전에 퍽 하고 땅바닥에 얼굴을 처박았다.

“억!”

짧은 비명을 내지르며 한가득 풀을 집어 먹은 그녀는 곧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벌떡 일으켜졌다. 

다시 후드를 잡는 거칠고 무식하기 짝이 없는 손길에 의해.

“이제 말할 기분이 좀 드나?”

대체 어느 틈에 그 높은 나무에서 내려온 건지 눈앞에 잘생긴 남자의 얼굴이 바짝 다가와 있었다. 

아악, 미친놈. 진짜 뭐 신이야? 

이예주는 덜덜 떨리는 오금을 다잡으며 애써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금방 그런 헛생각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웃음기 하나 없는 남자의 표정을 보자 왠지 모르게 다음번엔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덜컥 심장이 내려앉았다.

“네, 말할게요! 진짜 말할게요!”

“그래. 능력을 가진 장로는 몇이나 되지?”

“대신!”

“…….”

“서쪽까지 데려다주면! 다른 사람들 만난 후에! 그때 말해 줄게요!”

이예주는 눈을 질끈 감고 냅다 질렀다. 

이건 직감이다. 

말해도 죽고 안 해도 죽을 것이다. 

알지도 못하는 이야기를 지어내며 주절댈 깡은 없었다. 

다만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거, 일단 거래를 제시할 깡만 존재할 뿐이다.

“뭐?”

인간 여자의 외침을 듣고 기가 차다는 듯 남자의 한쪽 눈썹이 또 삐죽 올라갔다. 

그 모습을 아주 가까이서 보던 이예주는 속으로 달달달 떨며 다시 한 번 정확히 제 주장을 펼쳤다. 

마치 웅변 대회에 나온 초등학생처럼.

“저를 다른 인간들에게 데려다주면 뭐든, 뭐든 다 말해 주겠다, 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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