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앤 매드 (9)화 (9/319)

“쉭, 쉭 캬악!”

“꺄아악—!”

양옆으로 고개를 까딱거리던 거대한 뱀이 돌연 아가리를 쩍 벌리고 그녀에게 돌진했다. 

이예주가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며 미친 듯이 몸을 움직였다. 아니, 본능에 따라 제 몸을 집어 던졌다. 

“어흑!”

울퉁불퉁하고 단단한 돌 더미들 위에 부딪친 몸에 엄청난 충격이 강타했다. 

그러나 통증을 느끼기도 전에 바로 옆에 있던 바위에 뱀의 아가리가 콱 박혔다. 

이예주의 키보다 두 배는 커다란 바위가 산산조각이 났다. 

자욱한 먼지가 피어오르면서 사방으로 튕겨져 나간 파편 중 하나가 그녀의 너덜너덜한 소매를 날카롭게 스쳐 지나갔다. 

소매가 완전히 찢어진 것도 모자라 시뻘겋게 속살을 드러낸 팔의 상처가 질질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이예주는 심장이 덜컹 내려앉고 절로 몸이 떨렸다. 

조금만 덜 뒹굴었으면 저 독니에 찢겨 죽을 뻔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이 뭔지 정리할 새도 없이 벌떡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피 냄새를 맡고 흥분했는지 섬뜩한 노오란 눈깔의 파충류가 먼지를 가르고 다시 그 거대한 위용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쉬익, 쉬익―.”

한참 위에서 들려오는 혀 날름거리는 끔찍한 소리에 엉거주춤 일어난 이예주가 벌벌 떨었다. 

“캬악!”

“아아, 아악!”

뱀 대가리가 다시 그녀를 향해 내리꽂혔고 그 뱀의 우람한 몸통 뒤로 빛나는 ‘문’이 열렸다. 

아, 문이 열린 것을 보니, 기어이 여기서 죽을 운명이구나. 

이예주는 다시 몸을 날렸다. 

“어, 억!”

이번에는 손부터 땅에 닿는 바람에 거친 자갈들에 손바닥이 쓸려 너덜너덜해졌다. 

그러나 바로 코앞에 박힌 전봇대만 한 흰 송곳니 때문에 아픈 줄도 모르고 혼비백산 괴성을 지르며 오뚝이처럼 튀어 올랐다. 

“캭! 크악! 쉬익, 쉬익.”

“어헉, 흐흑!”

뱀 요괴가 다시 대가리를 쳐들고 이예주를 쫓기 위해서 움직이려 했다. 

그러나 송곳니가 땅에 깊게 박혔는지 쉽게 이빨을 뽑아내지 못했다. 

그 때문에 광분한 괴물이 쉬익쉬익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몸통을 꿈틀거렸다. 

머리맡에서 단단한 뱀의 몸뚱이가 생생하게 꾸물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경기를 일으킬 것 같은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비명을 지르며 ‘문’을 향해 달려갔다. 

“아아, 아아악!”

“쉬익, 쉬이, 슈욱.” 

문 주위로 뱀의 나머지 몸통이 똬리를 튼 채 비늘을 바짝 세우고 있었다. 

꽤 먼 길이임에도 불구하고 똬리를 틀 정도니, 대체 얼마나 길다는 소리일까. 

이 정도의 괴물 돌뱀은 소설에서도 본 적이 없었다. 

“캬악!”

휘익! 필사적으로 뛰고 있는 그녀의 등 뒤에서 엄청난 돌풍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뱀이 송곳니를 빼낸 모양이었다.

“아아아악—!”

이예주는 졸도할 것만 같은 심정을 느끼며 얼마 남지 않은 ‘문’ 안으로 온 힘을 다해 도약했다.

그녀가 입고 있던 후드가 뱀의 독니에 걸리기 바로 직전 아슬아슬하게 그녀는 ‘문’ 안으로 뛰어들었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먹잇감을 쫓던 뱀은 사라진 이예주 대신 똬리를 틀고 있던 제 몸뚱이에 독니를 박았다.

“캭, 캬악!”

눈을 뜨니 다시 한낮이었다. 

그리고 다시 숲속이었다. 

마치 돌뱀을 만난 게 한여름 밤의 꿈 같았다. 

이예주는 졸졸졸 흐르는 시내 바로 옆에 혼이 나간 채로 널브러져 있는 상태였다. 

입을 떼면 바로 구토를 할 것 같았다. 

그녀는 최대한 구역질을 참으며 물 가까이로 기어갔다. 

그녀가 덜덜 사시나무 떨듯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시냇물을 떠다 입을 적셨다. 

손에 살랑살랑 닿는 물이 시원했다. 

뼛속까지 시린 것 같기도 했지만 혼이 나간 이예주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이렇게 손이 시린 걸 보니 꿈은 아니었다. 

물론 왼쪽 손목에 선연히 있는 흉터가 이미 꿈이 아님을 예전부터 증명해 주고 있었지만. 

실제로 차가움 촉감을 느끼니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소용돌이치듯 이예주를 덮쳤다. 

여기 뭐 뫼비우스의 숲, 그런 건가? 

생명을 위협하는 미친놈을 피해 드디어 지긋지긋한 숲에서 빠져나왔다 싶었더니 초대형 돌뱀을 만났다. 

그 초대형 돌뱀에게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해 도망쳤더니 또다시 숲이다. 

또 숲, 다시 숲. 숲, 숲. 

이제 언제 다시 빨간 눈을 한 미친놈이나 식인 까마귀들을 만날지 모를 일이다. 

숲 밖으로 나가면 초대형 뱀이 도사리고 있고 숲 안에는 언제 자신을 죽이러 달려올지 모를 초능력 정신병자가 배회하고 있다. 

미친, 미친, 미친. 

멍하니 욕을 중얼거리며 이예주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달그락하고 오른손에 무언가 걸렸다. 시선을 내리자 그 정신없는 상황에서 대체 언제 챙긴 건지, 주인 잃은 휴대폰이 손아귀에 꽉 쥐어진 상태였다.

어찌나 꽉 쥐고 있었던지 손의 마디마디가 다 얼얼했다. 휴대폰이 부서지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였다. 

이예주는 여전히 배터리와 분리되어 있는 기기를 멍한 손길로 합체시켰다. 

그리고 당연한 수순처럼 전원을 켰다. 

도로롱― 

방금 전까진 그녀를 환희에 가득 차게 했던 소리였으나 이제는 정말로 이것이 최선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이제 그녀는 여기가 과연 지구 위가 맞는지 의심했다. 

근원적인 부분에서부터 혼란이 찾아왔다. 

그런 혼란을 배제하더라도 이곳은 숲속이었다. 

고지대도 아니고 ‘통신 불가 지역’이 확실했던 그 저주받은 평지 말이다.

얼마 안 가 스마트폰 화면이 밝아졌다. 

어느새 88퍼센트로 배터리 칸이 줄어 있는 것이 깨진 액정 틈으로 보였다. 

바탕 화면에 휴대폰 주인이 일부러 써 놓은 게 아닐까 싶은 ‘통신 불가’ 문구가 깜박거리는 것 또한 잘 보였다. 

이예주는 신경 쓰지 않고 무작정 통화 버튼을 터치해 신들린 사람처럼 911을 찍은 후 귓가에 휴대폰을 가져다 대었다. 

과연 이곳이 지구가 맞을까 의심하면서도 혹시 북미일지 몰라 911을 기억해 누르는 자신의 모습이 우스웠다.

뚜뚜뚜뚜뚜―

통신이 불가하다는 메시지도 무시하고 억지로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 연결음이 들리기는커녕 반갑지 않은 소음만이 빠른 간격으로 울려 퍼졌다.

그렇게 열네 번을 반복했다. 

어느새 이예주의 눈가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흐흑, 어헝…….”

다시 한 번 911을 휴대폰에 찍으며 그녀가 괴상한 울음소리를 내었다. 

그러나 발신이 먹통인 건 여전했다. 수신이 가능할 리 또한 없을 터였다. 

약 1시간을 그렇게 반복했으나 휴대폰만 뜨거워질 뿐, 주운 휴대폰으로 걸려 오는 전화는 단 한 통화도 없었다.

“어헝, 어흐흑!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

“아악! 이 쓰잘데기 없는 것아! 이럴 거면 왜 발견돼서 나한테 희망 고문을 줘!”

열일곱 번째 답 없는 통화를 마친 이예주가 드디어 참지 못하고 휴대폰을 물속으로 내던졌다. 

풍덩 하는 소리와 함께 폭이 꽤 넓은 강줄기 속으로 휴대폰이 금방 잠겼다. 

그녀는 악에 받쳐 소리 질렀다.

“으헝, 으흐헝! 집에 가고 싶어…… 집에! 이게 뭐 게임 아이템이야? 왜 내 앞에 나타나서! 네가 반짝거리지만 않았어도 그 괴물 만날 일은 없었을 거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지긋지긋한 숲속에 지긋지긋한 메아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푸드드득― 

멀리서 이예주의 토해 내는 듯한 절규에 놀라 새 떼가 날아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왜 이래? 대체 왜 이래! 내가 뭘 잘못했다고 또 숲이야! 어허헝, 어흑, 흐흑! 왜 또 숲…… 아! 아아, 아파! 아야야…….”

굵은 눈물방울이 그녀의 볼을 타고 뚝뚝 흘러 떨어졌다. 

소금기 담긴 눈물방울이 볼의 어떤 부위를 스치자 그녀는 정색을 하고 제 볼을 움켜쥐었다. 

광대뼈 부분이 화끈화끈하게 아팠다. 

“으흑…….”

이예주가 끅끅 대며 시냇물을 내려다보았다. 

깨끗한 물에 산발을 한 미친년이 비춰졌다.

흉터 하나 없던 얼굴에 벌건 생채기가 이리저리 나 있는 것이 보였다. 

특히나 광대뼈 쪽은 날카로운 것이 스치고 지나간 건지 꽤 길게 긁혀 있었다. 

한 번 아픔을 느끼기 시작하자 걷잡을 수 없이 몸 이곳저곳이 쑤셔 댔다. 

휴대폰을 꽉 쥔 상태였던 오른쪽 새끼손톱은 어딘가에 부딪혀 깨져 버렸고 손바닥과 손등이 홀랑 까져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러나 그 정도 상처는 약과였다. 

후드티의 소매가 양쪽 모두 찢어져 너덜너덜 해어진 채로 속살을 여실히 드러내자 한눈에 봐도 심각한 상흔들이 나타났다. 

뱀을 피해 돌바닥에 아낌없이 몸을 날렸기 때문인지 곳곳에 푸르스름한 멍이 자리했다. 

파편이 팔을 긋고 지나간 자리엔 꽤 깊고 길게 난 상처가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빨간 속살에서 방울방울 피가 새어 나와 후드티에 스며들었다. 

몇 방울은 잡초 위로 떨어지기도 했다. 

정신이 나가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프진 않았다. 

다만, 타의에 의해서 큰 상처가 생긴 일은 처음이라 덜컥 심장이 내려앉았을 뿐. 

제 몸에 난 상처를 보고 겁에 질린 이예주가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흐, 흐, 흐어엉! 어, 어떻게…… 어떻게…… 으허엉, 흐흑, 흐엉엉! 아야, 아야야…….”

그러나 짠 눈물이 얼굴의 생채기들을 스쳐 고통을 자아내자 곧 다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흐흡, 끄흑!”

애써 눈물을 참아 내며 끅끅거리던 그녀는 물가에서 떨어져 가까운 곳에 위치한 나무 근처로 기어가 나무 기둥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눈물을 억지로 참느라 눈이 뻐근하게 아파 왔다. 

어디에 위협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입을 다물어야 했지만 자꾸만 터져 나오는 울음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자신의 울음소리를 들은 미친놈이 기어이 자신을 죽이려 찾아온다 해도 더 이상은 도망가지 못할 것 같기도 했다. 

단시간에 너무 많은 ‘능력’을 남발했고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했다. 

이젠 곧 죽는다 해도 단 한 발자국조차 움직일 수 없었다. 

엄마 잃은 아이처럼 하염없이 훌쩍이던 이예주는 잠시 후 퉁퉁 부은 얼굴로 기절하듯 잠에 빠졌다. 

수렁 속으로 자신을 풀어놓기 전에 그녀는 울며불며 신에게 빌었다. 

제발 눈을 떴을 때 이 끔찍한 곳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       *       *

입을 쩍 벌리고 그대로 졸도한 이예주는 무엇인가가 툭툭 간질이듯 팔의 다친 부분을 건드리자 잠결에 오만상을 찌푸렸다.

“으응…… 아파…….”

자신을 건드리던 기척이 후다닥 멀어지는 게 느껴졌다. 

잠시 뒤척이던 이예주가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리고 잠의 수렁 속으로 다시 빠져들 때쯤이었다. 

언제 다시 다가온 것인지 그 무언가가 또다시 상처 부위를 건드렸다. 

이번엔 꽤나 화끈한 아픔이 느껴지자 그녀가 곧바로 얼굴을 찡그렸다.

“아아…….”

팔을 건드리는 무언가로부터 팔을 치우고 싶은데 가위라도 눌린 것처럼 온몸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톡톡톡, 팔 부근으로부터 따끔따끔하고 시원한 촉감이 계속해서 느껴졌다. 

그녀는 다시 꿈지럭거렸다. 

깊숙한 곳에 처박혀 있던 의식이 물 위로 서서히 올라오는 것 같았다. 

눈꺼풀을 움찔거리며 이예주는 가만히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가늠해 보았다.

최근 자신의 인생 23년을 통틀어 가장 끔찍스럽고 재수 옴 붙은 최악의 꿈을 꾸었던 것 같은데. 

얄팍한 그녀의 상념은 무의식과 의식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며 좀체 선명해지지 못했다.

톡톡, 그 와중에 팔의 상처를 건드리던 무언가가 옆으로 자리를 옮겨 까진 무릎에 머물렀다. 

간질간질, 따끔따끔. 

모호한 통증이 올라오자 이예주가 다시 꿈지럭거리며 신음했다. 

아, 모기한테 뜯기는 건가. 뭐가 이렇게 근질근질하고 따가워? 

그녀는 베개 깊숙이 고개를 묻었다. 

피곤해. 피곤해 죽겠으니까 건드리지 마라. 

그런데 아무리 고개를 돌려도 베개의 폭신한 감촉은 느껴지지 않고 메마르고 딱딱한 감촉만이 볼에 닿았다. 

자세 또한 앉은 상태와 같이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팔과 다리를 건들이던 따끔거림이 이번에는 광대뼈 부근을 건들이기 시작했다. 

톡, 톡톡. 

가만…… 앉은 상태? 앉은 상태라고? 

이예주의 상념이 드디어 무의식에서 발을 뺐다. 

그와 동시에 그녀는 두 눈을 번쩍 치켜떴다.

“으, 으악!” 

낯선 목소리가 이예주의 면전에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눈을 뜬 그녀가 본 것은 기절하기 전까지 저주하던 낯설지 않은 황금색 눈이었다.

필히 자신의 앞에 퍼질러 앉아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렷다. 

그렇지 않다면 저렇게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덜덜 떨지 않겠지. 도둑도 제 발 저린다지 않는가. 

“일어났으면 말을 해야져! 가, 갑자기 그렇게 눈을 마, 막 휘까닥 뜨면 어떻게여!”

“……똥 대가리?”

그녀는 가만히 왼쪽 손을 들어 눈앞에 가져다 대었다. 

그런 조그만 움직임에도 “아, 아아.” 하며 앓는 소리가 절로 터져 나올 정도로 온몸이 삐걱거렸다.

굳이 소매를 걷어 올리는 수고는 할 필요도 없었다. 이미 소매가 다 찢어져 없어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흉측한 흉터 자국이 꿈틀거렸다. 

더불어 흉터 아래 드러난 맨살에 듬성듬성 새겨진 멍 자국들도. 

꿈이 아니구나. 한국, 서울, 원룸, 땀 냄새 밴 침대 안도 아니었다.

“저, 저기여, 인간 여자. 아직 눈 밑에는 약 안 발랐어여…….”

“…….”

“눈 좀…… 저기여, 팔 좀 치워 주시면…….”

갈색머리 소년이 조심스럽게 이예주의 왼팔을 잡아 내렸지만 그녀는 미동도 안 하고 소년을 멍청하게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분명 이 촉새 같은 놈과 이놈의 주인을 피해 문을 넘었다. 그것만은 확실했다. 

그러자 연달아 번개, 뱀, 촉새, 미친놈이 뭉실뭉실 떠올랐다. 그리고. 

―주인님! 인간 여자 여기 있어요!

―주인님! 저쪽이여!

―주인님! 저기여, 저기!

그녀의 머리가 어느 한곳에 멈췄다. 

정신이 나간 상태 같은 인간 여자의 팔을 조심스럽게 치우자 황금색 눈동자에 살벌하게 얼굴을 구긴 악마의 얼굴이 보였다.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낀 갈색 머리 소년은 재빨리 몸을 뒤로 빼려 했다. 

그러나 그 전에 덥석 멱살이 잡혔다. 

방금 전까지 통증에 신음하던 여자는 대체 어디로 갔는지 벌떡 일어난 이예주가 엄청난 힘으로 소년을 들어 올렸다.

“어억! 왜, 왜 그러…….”

“너! 너! 이, 이! 너 이 미친 새대가리 새끼! 너지? 새대가리가 너 맞지?! 날 팔아먹어, 네가?!”

“억! 억! 화, 황조롱이 살려여! 억!”

비명을 지르는 소년의 말투에서 이예주는 이 소년이 자신을 그 미친놈에게 고자질한 새대가리임을 다시 한 번 확신했다. 

새가 사람이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분명했다. 

이 자식이 자신을 무려 두 번씩이나 죽음으로 몰아넣은 그 망할 놈의 부하 새라는 것을!

눈을 희번덕하게 뜬 그녀는 저보다 작은 소년의 목을 거의 조를 듯이 부여잡고 흔들었다. 

그러자 펑 하는 폭발음과 함께 작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옷 더미들이 눈앞에 쏟아져 내렸다. 

어느새 이예주는 갈색 머리 소년 대신 작은 새를 부여잡고 짤짤 흔들어 대고 있었다. 

“아, 아아! 어, 어지러워여! 아악!”

“그래! 이 황금 눈깔, 참새 새끼! 너였어! 이 자식아, 팔아먹을 게 없어서 사람 목숨을 팔아먹어?! 내가 너 때문에 어? 눈깔 파먹는 까마귀도 만나고! 돌산만 한 뱀도 만났어! 알아? 아냐고!”

“악! 힉! 아!”

이예주가 그동안의 고생에 대한 울분을 손에 담아 힘껏 황조롱이를 흔들 때마다 펄럭펄럭 사방으로 갈색 깃털이 휘날렸다. 

다른 때와 같았으면 힘껏 재채기부터 하고 볼 그녀였으나 어찌나 광기에 휩싸였는지 재채기조차 나오지 않았다. 

황조롱이가 반쯤 넋이 나간 표정으로 그녀를 향해 애원했다. 

“이, 이거 놓고. 이, 일단 이거 놓고 말해여, 인간 여자!”

“놓고? 놓고 말해?! 너 같으면 너 죽이려고 한 놈이랑 차분하게 놓고 말하니? 응?! 우리나라에선 잘못한 놈보다 고자질한 놈이 더 개새끼거든? 아, 넌 개가 아니고 새구나. 망할 새 새끼!”

“어억, 억! 제, 제가 죽이려던 거 아니잖아여!”

“그래그래. 이해해! 나도 뭐, 꼭 널 죽이려고 그러는 건 아니야. 대신 죽을 때까지 맞자. 너 같은 놈은 먼지 날 때까지 맞아 봐야 사람 목숨 귀한 줄 알 거야, 하하!”

조금 전까지 희번덕 빛나는 눈으로 황조롱이를 갈구던 인간 여자가 금방 또 태도를 바꾸고 미친 사람처럼 웃었다. 

황조롱이의 황금색 눈동자에 짙은 공포가 스며들었다. 

이 인간 여자, 제대로 미쳤다. 

어쩐지, 주인님이 그 인간 여자가 다시 나타났다고 해서 와 봤더니 상거지 뺨치는 꼴로 나무 밑에 자빠져 자고 있더라니. 

이런 인간에게 또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고 열심히 날개를 퍼덕여 약초를 물어 가지고 왔는데 역효과였다. 

인간 여자가 한쪽 손을 치켜들었다. 

분위기로 봐서는 그대로 자신을 후려칠 듯싶었다. 

황조롱이는 부리를 아래위로 다다닥 부딪히며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자, 잠깐만여! 이,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여! 진짜! 진짜여!”

“하하. 이 쪼그만 게 또 약을 파네? 사람을 호구로 봐도 유분수지.”

“전 그냥 이, 인간 여자가 안 아프게 죽었음 해서…….”

“그래 그래. 결국 내가 빨리 죽길 바라서 그랬다는 거지? 이해해. 이해한다고, 이 자식아!”

황조롱이의 변명에 말을 자근자근 씹으며 내뱉은 이예주가 주먹을 야무지게 움켜쥐고 바람을 가르며 손을 휘둘렀다. 

퍽! 

처음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강력한 알밤이 황조롱이 정수리를 강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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