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앤 매드 (8)화 (8/319)

*       *       *

입을 열면 그대로 영혼까지 쏟아져 바스러질 정도로 지친 이예주가 미래로 이동했을 때, 하늘은 해가 쨍쨍 내리쬐는 화창한 날이었다. 

언제 천둥 번개가 쳤냐는 듯 구름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적응할 새도 없이 시차가 쉴 새 없이 바뀌고 있는 탓에 지금이 오전인지 오후인지조차의 시간 개념도 없었다. 

“하아…….” 

어딘지도 모를 곳에 우뚝 서 있던 이예주는 멍하니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능력도 그녀를 가엾게 여겼는지 그녀가 서 있는 곳은 끔찍한 숲속이 아니었다. 

이예주의 주변은 장활한 바위 더미들로 뒤덮여 있었다. 

그녀가 서 있는 발아래 또한 기울어진 돌무더기였다. 

그녀가 남자를 피해 ‘문’을 지나 도착한 이곳은 돌산이었다. 

“으흑…….”

그러나 그 지랄 맞은 숲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까마득한 저 멀리, 숲의 초입인 듯 나무 몇 그루가 무성히 자라 있는 것이 보였다. 

‘죽어도 저 지옥 같은 숲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기엔 이곳이 훨씬, 훨씬 더 나빴다. 

적어도 숲에는 뜨거운 태양을 피할 그늘과 간간히 앉아서 쉴 곳이라도 존재했으니. 

바위산은 말 그대로 울퉁불퉁한 바위투성이었다. 

그녀는 괴상한 소리를 신음처럼 내뱉으며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왜 이래…….”

자신을 죽이려는 것들만 득실대는 저 숲에서 나온 것까진 좋았다. 

그런데 왜. 지금도 충분히 고난과 역경을 겪고 있는 자신에게 왜 더한 고난과 역경이 주어져야 하느냐 이 말이다.

“대체 나한테 왜 이러냐고오—!”

이예주가 피 같은 절규를 내뱉었다. 

나름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자신은 그동안 너무 안일한 삶을 살아왔던 걸까? 

그래서 ‘능력’이 너 한번 엿 좀 먹어보라고 이런 시련을 주는 걸까? 

그녀는 꼬질꼬질하고 너덜너덜하기 짝이 없는 제 몰골을 힘없이 내려다보았다. 

안 그래도 용암의 열기 때문에 후드티셔츠 소매가 반쯤 타들어 갔는데 미친놈이 마구잡이식으로 내리꽂던 벼락에 스치기라도 했는지 팔 부분이 완전 걸레 쪼가리가 되어 있었다.

어디 소매뿐이랴. 얼마나 뛰어다녔는지 다리에 딱 맞던 청바지가 헐렁하게 느껴질 정도였고 3개월 전에 산 운동화는 3년은 족히 신은 것처럼 너저분했다. 

그 꼴이 그녀의 심신과 대단히 일치했다. 

“하, 진짜 미치겠다…….”

돌산의 경계가 그렇게 가파르진 않았다. 

다른 때 같았으면 ‘한번 걸어 볼 만한 색다른 경험이오.’ 하고 애써 스스로를 세뇌했을 이예주였다. 

그러나 그녀를 좀비처럼 움직이게 했던 생존 욕구도, 최소한의 체력도 이미 한참 전에 바닥나 버렸다.

이 비탈을 올라가자니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고, 그렇다고 다시 숲으로 내려가자니 자신을 죽이기 위해 벼르고 있는 미친놈이 생각나 온몸이 으슬으슬 떨려 왔다. 진퇴양난이다. 

그녀의 얼굴이 절망으로 일그러졌다. 

그때 작은 새 무리가 그런 그녀를 비웃듯 ‘짹짹!’ 하고 머리 위를 지나갔다. 

//―주인님! 저기 있어요! 저기. 저기 도망간다!//

마치 황조롱이가 귓가에 속삭이듯 그 발랄한 목소리가 어디선가 생생히 들려왔다. 

이 망할 숲에 와서 맨 처음 만난 말하는 참새, 그리고 두 번째 만난 소년. 

그 둘은 제 주인에게 고자질하는 그 야비한 목소리와 ‘주인님’이라며 그 미친놈을 칭하는 말투가 똑같았다. 

강한 기시감이 들었다. 

새와 사람이 어떻게 동일 인물일 수가 있는지. 

현대라면 상상도 못할 환상에 가까운 일이 분명했지만 이예주는 확신했다. 

그 똥색 머리가 바로 이곳으로 떨어져서 만난 새 놈이 분명하다고.

새라면 이제 지긋지긋하다 못해 치가 다 떨렸다. 

새 떼가 날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여태껏 너무 놀라 잊고 있었던 울분이 갑작스럽게 마구 샘솟았다. 

이예주는 주변에 널려 있는 돌 중 적당한 것을 들고 날아가는 새 떼를 향해 힘껏 던졌다.

“야! 개똥 같은 새 새끼! 넌 진짜 내가 죽인다! 꼭 죽인다! 두 번 죽인다! 할 짓이 없어서 사람을 팔아먹어?!”

팔아먹어…… 팔아먹어……!

그러나 되돌아오는 것은 자신의 메아리 소리뿐이었다.

“에라이, 천벌 받을 새대가리야! 너 인생 그렇게 사는 거 아니야, 인마! 내가 사는 시대엔 너 같은 새 새낀 똥 한 번 잘못 싸도 죽어!”

똥 한 번 잘못 싸도…… 똥 한 번 잘못 싸도…….

“그리고 니가 무슨 신이야?! 지진도 막막 일으키고! 벼락도 마구마구 내리치고! 니가 무슨 토르냐고! 먼치킨 막 그런 거냐고! 어허엉…….”

어허엉…… 어허엉…….

“멀쩡하게 생겨 가지고 왜 생판 처음 보는 사람한테 그러고 지랄이야, 왜! 이딴 곳으로 온 것도 서러워 죽겠는데…….”

시작은 새대가리였지만 결국 잘생겼지만 눈이 시뻘겋게 변하는 미친놈으로 끝이 났다. 

아직도 번쩍번쩍 내리치던 번개만 생각하면 온몸이 오싹해졌다. 

다시 한 번 내리막길 끝에 보일 듯 말 듯 한 숲의 초입을 한 번 내려다본 이예주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절대로 저 지옥 속으로, 그 미친 남자 앞으로 다시는 나타나지 않으리. 

목숨을 내건 도박은 두 번이면 충분했다. 

몇 번이고 각오를 다지며 그녀는 애써 숲 쪽을 향한 고개를 돌려 울퉁불퉁한 돌산 너머를 아득하게 바라보았다. 

당장이라도 자리에 앉아서 주인 잘못 만나 고생하고 있는 다리를 쉬게 해 주고 싶었지만 천근만근 무거운 발걸음을 뗄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목적은 일단 인간을 만나는 것이다. 

지진과 번개를 마구 일으키는 미친놈이 아니라 멀쩡히 자신을 도와줄 사람 말이다. 

일단 누구를 만나야지 한국으로 돌아가건 말건 할 게 아닌가. 

가만히 있다가는 숲도 모자라 풀 한 포기 없는 이 돌산에서 조난당하고, 결국은 굶어 죽을 것이다. 

“하…….”

한숨을 푹 내쉰 이예주는 정말로 걷기 싫은 얼굴로 터덜터덜 걷기 시작했다.

*       *       *

“무, 물…….”

이예주가 임종 직전의 노인처럼 물기가 바싹 빠진 입술로 가쁜 숨을 내쉬었다. 

누가 그러던가. 

고통은 하늘이 준 기회라고. 

기회는 개뿔, 이것이 정녕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라면 누군가 강제로라도 이 기회를 앗아 가 주었으면 했다.

별로 가파르지 않다고 애써 자신을 다독이며 걷기 시작한 돌산이었으나 노을이 질 때까지 걸었음에도 산꼭대기는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았다. 

울퉁불퉁한 돌들 위를 걷느라 발바닥에 불이 났다. 

필히 커다란 물집들이 이곳저곳에 잡혔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녀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멀리 떨어진 돌산의 정점을 올려다보았다. 

잠시 쉬었다 비척비척 걷는 것을 반복하다 보니 꽤 높은 곳까지 올라온 상태였다. 

중간중간 커다란 바위 때문에 돌아서 걷느라 시간을 많이 지체했지만, 바닥난 체력을 가지고 여기까지 온 데에는 그녀의 정신력이 대단히 큰 몫을 했다.

제기랄, 이 정신력으로 공부를 했으면 다른 지역의 국공립대에 갈 수 있었을 텐데. 

그렇다면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 또다시 귀신 보는 외톨이가 되어 오물과 쓰레기를 맞는 기분으로 대학을 다니지 않아도 되었을 거 아냐.

“어, 어……!” 

허튼 생각을 하며 비척거리던 이예주는 발에 차이는 무수한 돌에 걸려 넘어지듯 자리에 주저앉았다. 

“콜록, 콜록!”

몸에 다닥다닥 붙어 있던 먼지들이 쓰러질 때의 충격으로 풀썩 일어났다. 

기침을 연신 내뱉은 그녀는 처량 맞게 양손으로 허공을 휘휘 저었다. 

널브러진 그대로 이예주는 아련한 눈을 하고 얼마 남지 않은 꼭대기를 바라보았다. 

꼭대기에는 붉게 타오르고 있는 노을이 몇 겹이나 걸려 있었다. 

꼼짝 없이 이 돌산에서 밤을 보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한 발 자국도 뗄 수 없을 만큼 지쳤다. 

남들은 젊은 사람이 야트막한 산을 고작 반나절 오르고 뭐가 그리 힘들어서 골골대느냐고 욕할지 모르겠지만 이예주에게는 고작 반나절이 아니었다. 

서울 한복판에 용암이 나타난 이후로 그녀는 끊임없이 ‘문’을 넘었다. 

본래 암경을 건넌 후에는 몸을 조금 쉬어 주어야 한다. 

그녀의 능력이 아무리 제 의지로 실현되는 게 아니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숙주의-그녀는 능력을 기생충에 자주 빗대어 생각하곤 한다-심신을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것은 아니었다. 

이전에도 미래로 이동하고 나면 꼭 한 달은 쉬어야 했다. 

즉, 자신의 몸이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고 받아들여 진정되기까지는 적어도 한 달 이상이 걸린다는 얘기였다.

온갖 상황 속에서도 ‘문’을 넘어 살아남았지만 미래는 어디까지나 미래고, 문을 넘기 전까지 죽기 직전이었던 그녀의 신체와 정신은 문을 넘어도 똑같았다. 

결국 다른 사람들이 가진 시간의 흐름에 그녀가 끼어드는 것이 전부일 뿐, 정작 그녀 자신의 시간은 흐르지 않았다. 

그게 이예주가 가진 ‘능력’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쉴 틈을 갖기도 전에 말하는 새를 만나고 또 그 새의 주인이라는 초능력자를 만나서, 죽기 직전에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것도 모자라 연달아 계속해서 ‘문’을 넘었다. 

어렸을 때부터 위험에 단련된 그녀가 아니었다면 진작 용암에 녹아 죽거나 벼락에 튀겨졌을 것이다.

“……엄마.”

이예주는 멍하니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고독하게 엄마를 찾았다. 

아무것도 모르고 무작정 ‘문’을 넘었을 때 자신을 기다려 주는 이가 필요했다. 

그래야 지금이 대체 몇 신지, 얼마만큼의 시간을 건너뛴 건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죽고 난 후에는 난감한 일들이 너무 많았다. 

불쑥불쑥 학교나 사람이 많은 거리 한복판에 나타날 때마다 얼마나 진땀을 뺐던지. 

그에 비하면 계속해서 인적 없는 서양 땅을 헤매고 다니는 지금이 훨씬 나은 걸까?

아냐! 이 미친것아! 그딴 걸로 위로하지 마! 

그녀가 다중 인격자처럼 고개를 흔들며 자신을 채찍질했다. 

이예주는 저도 모르게 슬슬 눈을 감은 채 말하는 새를 떠올렸다. 

사흘 전의 그 여자라고 했다. 암경을 넘어서 이 환장할 숲에 들어온 날로부터 사흘 후에 그 미친놈 일당을 다시 만난 것이다. 

그리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어쨌든 남자가 내리친 벼락을 피해 다시 한 번 ‘문’을 넘었으니 또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시뻘겋게 물든 눈동자로 자신을 향해 태연히 벼락을 내리꽂던 남자. 

설마 마법은 아닐 테고, 초능력자 막 그런 거겠지? 

수능이 끝난 후 학교에서 틀어 주던 영화들이 떠올랐다. 

여러 영화 제목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지만 잘생긴 배우들이 초능력자 컨셉으로 나온다는 것 빼곤 내용들이 생각나지 않았다. 

하, 진짜 영화에서나 보던 이기적인 외모의 초능력자가 있긴 있나 보구나. 

그것도 촉새같이 고자질 잘하는 새까지 데리고 다니는.

그 미친놈은 필히 인간 여자에게 배신당하고 차였음이 분명했다. 

그게 아니라면 그렇게 잘난 얼굴과 능력을 가지고 살인 같은 짓이나 하며 숲속을 배회하고 돌아다닐 이유가 없었다. 

진짜 얼굴이 아까운 놈. 

눈 하나 깜짝 않고 자신을 향해 번개를 내리꽂던 남자의 얼굴이 눈앞에 훤히 그려지자 뒷덜미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그나저나 참 이상도 하다. 

말하는 새도 그렇고, 그 미친놈도 그렇고 한국 사람이 아님이 분명한데 대체 어떻게 말이 통하는 걸까? 

다시 한 번 되새겨 봐도 자신은 또박또박 표준어를 구사했고 들리는 소리 또한 한국어와 같았다. 

안 그랬다면 그 남자가 하는 살 떨리는 소리를 그녀가 알아들었을 리 만무했다. 

설마 진짜 신? 

에비, 에비. 그런 고어물 같은 생각은 심신에 매우 좋지 않았다. 

그녀가 금방 도리질을 쳤다. 

이제 잊을 것이다. 어차피 돌산만 넘으면 그놈들을 다시 보지 않을 테니. 

치를 떨던 이예주의 눈꺼풀이 슬그머니 내려앉았다. 

안 그래도 저질 체력인데 몸을 너무 혹사시켜서 그런지 눈만 감아도 순식간에 잠 속으로 빠져들 것만 같았다. 

안 돼, 이예주. 여기서 잠들면 너 죽어. 

그녀는 스스로에게 중얼거리며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그러나 추라도 매달아 놓은 것처럼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아…… 근데 잠이 너무 쏟아지는데? 안 돼. 안 돼. 안 돼. 돼. 돼…….

그때, 감기기 일보 직전이던 그녀의 눈에 반짝 빛나는 무언가가 포착되었다. 

얼마 남지 않은 돌산 꼭대기쯤이었다. 황혼에 반사된 무언가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저게 뭐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보느라 그녀의 눈이 가느다랗게 좁혀졌다. 그러다 문득 스치는 생각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혹시 꼭대기에 누가 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왜 한국에서도 티브이에 종종 나오는 사람들 있지 않은가. 

사업에 파산하고 자연과 물아일체의 삶을 택하는 사람들! 

그래, 여긴 더군다나 외국인데 이런 돌산에 몸을 의탁하는 사람 한 명쯤 있는 게 뭐가 대수일까. 

저건 인간의 흔적이 분명했다. 

예를 들면 거울 같은 것. 

“저기요! 누구 있어요?!”

이예주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다 죽어 가던 사람 같지 않게 힘차게 달렸다. 

그녀의 힘찬 발짓에 거칠게 차인 돌멩이가 엄지발톱을 아프게 찧어도 알 바 아니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느냐 마냐의 기로인데 이런 아픔쯤이야 얼마든 참을 수 있었다. 

“저기요! 혹시 누구 있나요?”

그렇게 멀게만 느껴졌던 꼭대기까지 한달음에 올랐다. 

헉헉, 얼마 달리지도 않았는데 금방 숨이 차올랐다. 

그러나 그녀는 벅차오르는 기분을 억누르지 못했다.

“어? 어!”

이제야 하늘이 그녀를 돕기 시작했다. 

돌바닥 위에 살포시 누워 노을에 반짝이던 물건은 다름 아닌 휴대폰이었다. 

그것도 메이드 인 코리아 스마트폰! 

제 휴대폰과 같은 익숙한 로고에 이예주의 얼굴이 환해졌다. 

반질반질하니 별로 생활 기스도 없이 보관된 휴대폰이었다. 

역시 이 주위에 사람이 있는 게 확실했다. 

그것이 아니라면 누구라도 이 돌산을 오르내렸다는 증거였다. 

역시 위대한 반도체 1위 국가, 대한민국 만세! 

이예주는 없던 애국심이 마구 솟아남을 느끼며 떨어져 있는 휴대폰을 들고 만세 삼창을 했다.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은 제 휴대폰을 생각하던 그녀는 서둘러 주운 휴대폰의 전원을 켰다. 

도로롱,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전원이 환하게 켜졌다. 

얼마 안 가 화면에 뜬 배터리 칸 옆에 90이라는 숫자가 보였다. 

“악! 이제 돌아가는구나, 예주야!”

벅차오르는 감격에 이예주는 휴대폰을 꽉 쥐고 그동안 뼈 빠지게 고생하기만 한 자신의 몸을 격하게 껴안아 주었다. 

눈앞이 뿌예지더니 금세 눈물이 글썽글썽해졌다. 

그녀는 자리에 벌떡 일어나 휴대폰을 쳐들고 노을 진 하늘을 향해 이곳저곳 가져다 대며 발신 가능한 장소를 찾았다. 

‘통신 불가’라는 문구가 휴대폰 화면에서 두어 번 반짝거렸지만 이예주는 더 이상 실망하지 않았다. 

그동안 말하는 새에, 그 주인 놈에, 식목(食目) 까마귀들까지. 

두려움에 벌벌 떨며 고생했던 지난날들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이제 이 짓도 끝이다. 

한국으로 돌아가기만 한다면, 침 한 번 퉤 뱉고 재수 옴 붙었다며 잊어버릴 기억들이 되리. 

이예주는 실실 입술을 비집고 나오는 웃음을 참지 않았다. 

오로지 자유의 여신상처럼 번쩍 쳐든 휴대폰에만 시선을 못 박았다. 

고지대이니 신호를 잘만 잡으면 전화 통화가 가능할지도 모른다. 

“어, 어어! 억!”

그때, 미처 보지 못한 돌덩이에 발이 걸린 그녀가 휴대폰을 놓치며 속절없이 넘어졌다. 

딱딱한 돌에 무릎을 세게 찧자 이예주는 흉악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아! 아야야! 아이 씨…….”

넘어질 때 덩달아 놓친 휴대폰이 그녀가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굴러 떨어져 있었다. 

“내 휴대폰!”

혹시라도 넘어짐의 충격으로 인해 문제라도 생겼을까 봐 그녀는 기어가다시피 달려가 휴대폰을 주웠다. 

다행히 기기와 배터리가 분리됐을 뿐인 것 같았다. 그러나 흠이 없던 휴대폰 액정에 금이 가 있었다. 

이예주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누군지 모를 휴대폰의 주인에게 잠시 애도하는 마음을 가졌다. 

물론, 만약 주인을 만나더라도 저 때문에 휴대폰이 이리됐다는 소리는 입 밖에 내지 않을 작정이었지만. 

휴대폰보다 조금 더 멀리 떨어져 있는 배터리를 발견한 그녀가 서둘러 다가가 마저 주웠다. 

그 순간이었다. 

휘융―! 

그녀의 머리 위로 롤러코스터만큼 엄청 빠른 무언가가 휙 지나갔다. 

돌풍 같은 바람이 안면을 강타하자 안 그래도 숱 없는 머리가 뒤로 훌렁 까뒤집어졌다. 

태풍을 정면으로 맞은 듯 얼얼하기까지 한 강풍 때문에 숨을 멈추던 이예주가 어리바리한 얼굴로 대체 방금 뭐가 지나간 건가 싶어서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쉬이, 쉬이익— 캬악!”

그녀의 뒤엔 차 한 대 크기만큼 거대한 바위로 이루어진 뱀 대가리가 그녀를 향해 시퍼런 독니를 드러내며 고개를 위협적으로 까딱거리고 있었다. 

“……저게 뭐야?”

이예주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바위가 쉭쉭거리며 움직인다. 

목뼈가 고꾸라질 정도로 올려다보아야 간신히 보이는 노오란 파충류 눈깔과 독으로 추정되는 흰 점액질이 뚝뚝 떨어지는 상아 크기의 송곳니. 

그것이 저 생명체가 바위가 아님을 정확하게 보여 줬다.

한눈에 봐도 단단한 바위로 이루어져 있는 몸통의 비늘이 일제히 바짝 일어선 채였다. 

뱀이 ‘스스스’ 하고 스산한 소리를 내었다. 

그 거대한 뱀 앞에서 한낱 작은 크기의 인간인 그녀는 멍청히 서 있을 뿐이었다. 

이예주는 온몸에 소름이 돋고 눈앞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이, 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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