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앤 매드 (3)화 (3/319)

불이 꺼지자 탄내가 더욱 진동을 하며 코를 찔렀다.

“이놈의 머리카락! 미리 잘랐어야 했는데…….”

망할 용암. 

낮은 욕지거리를 내뱉은 이예주는 흉하게 타들어 끝이 바스라진 머리카락 뭉텅이를 쥐고 울먹였다. 

목을 근질거리는 것이 성질머리를 자극해서 그렇지, 4개월간 기른 머리카락이 아깝지 않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반 뭉텅이가 사라진 머리카락을 부여잡고 울상을 짓던 그녀는 목이 아려 오자 머리카락을 내팽개치듯 손에서 놓았다. 

그제야 이예주의 눈에 그녀가 존재하고 있는 장소가 보였다. 

애써 평온을 찾은 것이 무색하게 그녀의 얼굴이 다시 일그러졌다. 

사방이 고요했다. 

고요하다뿐일까. 생명체란 자신뿐임이 분명한데. 

어둠, 회명(晦冥), 무(無). 그녀의 눈앞에 펼쳐진 공간을 설명하는 것은 세 단어로도 충분했다. 

말 그대로 끝없는 암흑이었다. 

이예주는 자신이 암경(暗境, 어두운 공간) 속에 들어왔다는 것을 알아차림과 동시에 자신의 왼쪽 손목에 차고 있던 손목시계를 풀고 손목을 들여다보았다. 

손목과 손의 경계를 구분해 주듯 가는 손목 끝에서 끝까지 일자로 그어진 불그죽죽한 흉터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꿈이 아닌 것이다. 

그녀는 우울한 얼굴로 다시 손목시계를 채웠다. 그리고 끝없이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어둠과 손목을 번갈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홀로 덩그러니 놓여 있었으나 제 몸만은 빛 속에 있는 것처럼 환하게 빛이 났다. 

이 끔찍한 암경 속에서 유일하게 마음에 드는 점을 굳이 찾자면 아이러니하게도 제 몸뚱이만은 선연히 보인다는 점뿐이었다.

만일 자신의 손발조차도 볼 수 없는 장님이 된 채 이 고요한 곳에 갇혔다면 이예주는 애초에 미쳐 버렸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검은 크레파스 칠이 돼 있는 공간에 들어오는 것은 때때로 시각 장애인들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제길, 닥쳐! 아니, 아니야! 이딴 것을 장점이라고 애써 찾아 들먹이는 자신에게 환멸을 느끼며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가만히 앉아 있어 봤자 해결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 이 빌어먹을 암경에 처음 갇혔을 때의 경험에서 뼈저리게 얻은 교훈이었다. 

이예주는 걸었다. 딱히 길이 보이거나 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저 걷다 보면 문이 나오겠지 하는 심정에서 우러나온 행위였을 뿐이다. 

이예주가 처음 암경 속에 들어온 것은 엄마가 죽고 나서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 손목을 그었을 때였다. 

그녀는 당시 엄마를 죽인 것이 자신이라는 지독한 죄책감에 몸부림쳤다. 

스물을 넘기고 나서는 그것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는 자각을 하게 되었지만, 그때는 원망할 대상이 스스로와 자신의 능력뿐이었다. 

엄마는 이예주가 ‘능력’을 자각하게 된 10살 때 이후로 단 한 번도 미래를 보지 못했다. 

이것은 엄마의 입에서 나온 사실이었다. 자신을 구한 대가로 엄마는 미래를 보는 능력을 상실한 것 같았다.

과거로 돌아가서 뭐 대단한 일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이예주는 과거로 돌아가 엄마에게 그 능력을 돌려주고 싶었다. 

될 수 있으면 오래전으로 돌아가고 싶었으나, 그게 안 된다면 그저 엄마가 죽기 전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어떻게 돌려주는지 따윈 몰랐다. 그녀의 능력은 지독히도 이기적이어서 타인의 미래까지는 구할 수 없었으니. 

그저 과거로 돌아가서 엄마가 그 일족이란 놈들에게 죽임당하는 것만 피할 수 있게, 그렇게 하고 싶었다.

차에 뛰어드는 것도 여의치 않자 두 번이나 손목을 그었다. 

처음 엄마의 장례식장에서 그은 손목은 멍청하게도 동맥이 어딘지 헷갈려 정맥을 그었기에-그것도 쥐꼬리만큼- 미래로 갈 필요도 없이 바로 장례식장 위층 응급실로 끌려가 치료를 받았다. 

발인이 끝나고 엄마의 유골이 납골당에 안치된 이후에는 사전 지식을 조금 더 습득했다. 

그래 봤자 문구점에서 새로 산 커터 칼이 준비물로 추가되었다 뿐이지만. 

세게. 아주 세게 손목을 긋는 것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피부가 찢기는 고통을 뛰어넘어 힘줄이 서걱 썰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능력 또한 시도의 성공을 예감했는지 그 순간 눈앞에 두 개의 ‘문’이 나타났다. 

이예주는 망설임 없이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눈을 뜨니 끝없는 어둠이었다. 

처음에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두려워 오랜 시간을 벌벌 떨며 제자리에 엎어져 있었다. 

그 당시에는 자신의 미래가 어둠에 갇힌 상황이라는 생각에 꽤 패닉 상태로 오열했던 것 같다. 

자의로 실행되는 것도 아닌 능력을 가진 것도 박복한데, 기껏 문 안으로 몸을 날렸더니 제 앞에 펼쳐진 거라곤 암담한 어둠뿐이었다. 

이 얼마나 두렵고 서러운 일이란 말인가. 

자신이 그토록 삶에 집착했었나 싶을 정도로 이예주는 눈물, 콧물, 물이란 물은 다 빼면서 울어 젖혔다. 

그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흘러서야 제 몸이 빛난다는 사실과 피로 젖어 들었던 흉물스러운 손목이 더 이상 피를 내뿜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불어 아프지도 저리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보다 더 한참의 시간이 지나자 이것이 과거로 가는 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그래, 과거. 

이예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심스럽게 손목에 박힌 커터 칼을 빼내었다. 

고통이 밀려오거나 피가 솟구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으으…….’ 하고 절로 신음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그것이 무색하게 정말 손목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얼마나 세게 칼을 박았는지 벌어진 상처에서 희끄무레한 뼈가 보여 구토가 치민다는 시각적 괴로움을 제외하곤, 딱히 아프지도 피가 솟구치지도 않았다. 

손에서 떨어뜨린 커터 칼은 줍기도 전에 어둠이 울컥 삼켰다. 

흉함을 뛰어넘어 잔인하기까지 한 자신의 손목을 멍하니 들여다보던 이예주는 돌연 웃으면서 달리기 시작했다. 

암경에 들어온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기에 그녀는 이 상황이 과거로 돌아가는 방법일 것이라 확신했다. 

‘문’ 속으로 들어가면 미래에 도착했던 지난 경험들과는 너무나도 달랐으니까. 

그녀는 암흑 속을 실실 웃으면서 기쁘게 달렸다. 

과거로 돌아가서, 10년도 더 지난 한참 전의 과거로 돌아가서 엄마에게 능력을 돌려주면 모든 것이 해결될 테니까. 

지치지도 않고 끝없는 어둠을 달렸다. 그러자 그 수고를 치하해 주듯 먼 어둠의 끝에서 빛나는 ‘문’이 나타났다. 

‘문’ 안에서 집 앞에 있는 익숙한 가로수 길이 보였다. 아직 오전인지 환한 햇빛 아래 가로수 길이 한산했다. 

엄마가 죽기 전 과거로 돌아왔구나. 

이예주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다시 눈을 떴을 땐 천만다행히도 지긋지긋한 어둠을 헤쳐 나온 직후였다. 

“꺄악! 이봐요. 괘, 괜찮아요?”

행인 한 명이 뼈가 보일 정도로 벌어진 손목에서 피를 흘리며 실실 웃는 여자를 발견하곤 괴성을 지르며 응급차를 불렀다. 

이예주는 그때까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도 몰랐다. 

그저 과거로 왔다는 착각에 빠져서 피가 흐른다는 자각도 못하고 집으로 뛰어갔을 뿐이다.

“엄마! 엄마, 어디 있어? 엄마!”

암경 속에 갇히기 전 자신이 서 있었던 마룻바닥 위에 검붉게 굳어 있는 핏자국은 애써 외면했다. 

“엄마, 엄마.”

신고를 접수하고 핏자국을 따라온 응급 대원이 아니었다면 이예주는 용을 써서 암경을 헤치고 나온 보람도 없이 황천길에 오를 뻔했다. 

뒤늦게 연락을 받고 달려온 담임 선생님이 대체 열흘간 어디 갔었냐고 경악에 가득 찬 신음을 내뱉었다. 

수술 직후에도 정신 못 차리고 엄마를 찾는 그녀를 측은하게 바라보던 의사 선생님이 휴대폰으로 엄마의 발인 날짜 후 10여 일이 지났음을 깨우쳐 주었을 때야 비로소 이예주는 입을 다물었다.

동맥이 반이나 잘려 나갔다. 

두 팩이나 수혈할 정도로 많은 피를 흘렸는데도 아프지 않았다. 

하도 어이가 없는 나머지 암경에 갇혔을 때는 잘도 흘렸던 눈물조차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담임 선생님이 정신병자를 바라보는 듯한 눈으로 조심스레 그녀에게 상담을 권했다. 

손목에 끔찍한 흉터가 남았고 그것은 후에 쪄 죽을 것 같은 여름에도 긴팔을 입거나 손목시계를 속옷처럼 착용하는 데 크게 일조하게 되었다…….

과거. 

과거로 왔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산전수전 다 겪고 드디어 과거로 왔다고, 엄마를 살릴 수 있다고. 

끔찍하게 무서웠지만 암경은 차라리 희망이었다. 

이 역경만 지나면 무언가 변화가 기다릴 거라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소설 속 주인공들의 흔한 레퍼토리 같은 것. 

그러나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예주의 ‘능력’은 어김없이 나타났고 자신은 홀로 미래에 왔다. 

암경은 과거로 가는 것도 뭣도 아니었다. 

열흘이 넘는 꽤 긴 시간의 미래를 뛰어넘을 적에는 언제나 이 암흑 속을 지나야 한다는 법칙이 추가됐을 뿐이다. 

그로부터 몇 번 더 암경에 갇힌 이후 이예주는 자연히 그것을 깨달았다. 

그전까진 보통 길어 봐야 일주일 이내의 미래만 뛰어넘던 자신이 짧게는 열흘, 길게는 수십 일의 미래까지 건너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을 깨달음과 동시에 그녀는 자신이 엄마의 능력을 완전히 빼앗았음을 알았다. 

누가 따로 일러 주거나 꿈이 그것을 말해 준 것은 아니었다. 

그냥 자연히 알았다. 

자신의 능력이 엄마의 능력을 삼켰음을. 

그것은 ‘능력’이 자신에게 있어 저주를 뛰어넘는 ‘천벌’이라고 자각하게 되는 아주 중요한 계기였다. 

제법 익숙해졌기에 더 이상 두려움에 떨며 질질 짜는 행동은 하지 않았지만 처음 암경에 갇힌 충격은 트라우마로 남아 이예주는 종종 꿈에서도 암흑을 헤치고 다녔다. 

사실 처음 몇 번은 그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하지 못하고 한참 동안 어둠을 헤매고 다니는 끔찍한 경험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 안 가 꿈과 현실을 구분하는 꼼수를 터득하면서 끝이 났다. 

희한하게도 꿈속의 자신은 엄마가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 건지 손목에 자상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후로 암경과 관련된 악몽은 일종의 ‘자각몽’이 되었다. 

“하…….”

예지몽도 모자라 자각몽이라니. 

이예주는 왠지 자신이 꿈이란 꿈은 모두 섭렵하고 있다는 암담한 생각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곧 우울함을 털어 내고 걸음을 재촉했다. 

꿈이든 현실이든 간에 암경이 끔찍하다는 사실 하나만은 변함없었기 때문이다.

*       *       *

암경 속에선 시간도 배고픔도, 신체적 결함도 무의미했다. 

아무리 걸어도 시간이 흘렀다는 자각이나 육체적 피로가 없었다. 

이예주는 그저 미래로 당도하는 ‘문’이 나올 때까지 걷고 또 걸을 뿐이었다. 

유일하게 느끼는 신체적, 정신적 문제는 지루함뿐이었다.

“아오! 대체 언제 나오냐고, 쫌!”

한참을 걸었는데도 ‘문’이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 정도 걸었으면 ‘문’이 나올 법도 한데 문의 미음 자도 보이지 않았다. 

대체 얼마나 더 지긋지긋한 어둠을 헤매야 하는 걸까.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지나쳐 미래로 가는 걸까.

암경 속에서 유일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이 암흑에 오래 갇혀 있을수록 더 많은 시간을 지나친다는 사실뿐이다. 

시간을 지나친다는 기분에 이예주는 뒷전으로 미뤄 두고 있던 용암에 대해 떠올렸다. 

문득 재작년에 한참 유행했던 지구 종말설이 생각나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정말로 지구가 멸망을 하려는 걸까? 

지긋지긋한 ‘능력’에서부터 벗어나게 해 준다면야 이예주는 지구 종말이든 뭐든 두 팔 벌려 환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보란 듯이 ‘문’이 나타났고 자신이 이렇게 암경을 헤매고 있으니 미래는 여전히 존재할 테다. 지구도 여전히 둥글 테고.

암경을 지나면 자신은 또다시 오물, 똥물 맞아 가는 기분을 여실히 느끼며 대학교로 향해야겠지. 

다시 야금야금 정신을 잠식해 오는 우울함을 떨치기 위해 이예주는 고개를 번쩍 쳐들고 달리기 시작했다. 

현실 속에서 그녀는 정말 통탄할 정도의 몸치였다. 

몸이 약한 건 아니었다. 다만 더위와 운동에 약할 뿐. 

그러나 암경 속에선 더위도 운동도 이예주를 막을 수 없었다. 

빨리 좀 나타나라, 문아. 빨리빨리.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그녀는 달렸다. 

얼굴을 스치는 시원한 바람은 없었지만 그래도 침전돼 있던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다. 

멀리서 희미하게 반짝거리는 게 보였다.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아무것도 변할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암경 속에서 ‘문’을 향해 달려가는 심정은 뭐랄까, 기대감에 가까웠다. 

그래도 자신의 암담한 미래에 한 줄기 빛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이예주는 어둠 속에서 자신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빛나는 그곳을 향해 뛰었다. 

희미한 반짝임은 곧 환한 빛을 쏟아 내는 ‘문’이 되어 그녀에게로 더욱더 가까워졌다.

생각보다 너무 오랫동안 암경을 헤매서 그런 것일까. 그녀는 그저 어둠에서 벗어났다는 기쁨에 힘차게 ‘문’ 안으로 뛰어들었다. 

암경에서 나갈 출구에 그 어떤 장면도 보이지 않는 건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그렇게 이예주는 또다시 똥밭으로 아끼지 않고 몸을 던졌다.

*       *       *

“인간…….”

“…….”

“주인님…… 말…….”

“으음…….”

푸드덕푸드덕! 

날개 푸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예주는 짧은 신음과 함께 눈을 떴다. 

‘문’을 향해 몸을 던진 후 진절머리 나는 빛 속에서 두 팔을 미친 듯이 허우적대던 것까지만 기억이 났다. 

그 후로 졸도하듯 잠에 빠진 것인가. 

눈앞에 작은 새 한 마리가 푸드덕푸드덕 날갯짓을 해 대는 것이 보였다. 

자꾸만 감기는 눈을 억지로 홉뜨며 이예주가 중얼거렸다.

“……뭐야.”

“‘인간 여자 발견. 주인님께 보고할지 말지 고민 중.’까지 말했떠엽!”

“참새가 말을 하네?”

아직 꿈이 덜 깼나 싶어 손을 뻗어 눈을 비비던 그녀는 그 순간 번쩍하고 코를 강타하는 아픔에 ‘아악!’ 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푸드덕푸드덕!

“참새 아니에엽! 용맹한 황조롱이를 감히 참새 따위와 견주다니! 인간 주제에!” 

“아악! 이게 미쳤나!”

참새가 말을 하는 것도 어안이 벙벙할 지경인데, 그 말하는 참새가 날개를 퍼덕이며 부리로 그녀를 미친 듯이 쪼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머리를 감싸 안으면서 이예주는 입을 떡 벌렸다. 

꿈이 너무 생생했다. 참새 새끼가 쪼는 족족 눈물 나게 아팠던 것이다.

“인간 주제에! 인간 주제에!”

“아파! 아악! 야! 미쳤냐! 아!”

펄럭이며 안면을 공격하는 날개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고 허우적대던 그녀는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불쑥 손을 뻗었다. 

푹신한 깃털에 싸인 작고 따끈한 몸통이 손바닥에 닿는 순간, 이예주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그대로 손에 꽉 힘을 주었다.

“이거 놔여! 이거 놔여!”

“에, 에취!”

“으아악! 인간 체액! 썩은 내! 썩어여! 몸 썩어 들어가여!”

흩날리는 깃털 탓에 이예주가 크게 재채기를 하자 손에 잡힌 새대가리가 기겁을 하며 퍼덕거렸다. 

따끔하더니 날카로운 발톱에 손등이 긁혔다. 

그 자리에서 곧 몽글몽글 핏자국이 돋자 그녀의 얼굴이 휴지 조각처럼 구겨졌다. 

이예주의 눈에서 불길이 일었다. 

그녀는 참새를 잡고 있지 않은 반대편 손으로 새의 머리를 향해 아주 세게 알밤을 날렸다. 

“딱!”

“악! 아구구구! 황조롱이 죽네! 아구구구!”

“스읍― 쪼그만 게 가만 안 있어? 황조롱이고 뭐고 참새 대가리만큼 작아질 때까지 맞고 싶냐?”

“…….”

이예주의 서슬 퍼런 기색에 푸드덕푸드덕 날뛰던 새가 곧바로 잠잠해졌다. 

흉악하게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는 손에 잡힌 새를 바라보았다. 

말을 하고 보니 정말로 참새는 아닌 듯싶었다. 참새보다 몸집도 꽤 컸고 부리와 발톱도 날카로웠다. 

이예주를 바라보는 동그란 눈이 황금색으로 반짝였다. 그 커다란 금안은 약간 겁에 질린 듯도 했다. 

이예주는 주변을 휙휙 둘러봤다. 

그녀를 둘러싼 배경은 눈이 시리도록 넘실거리는 초록이었다. 

어딜 봐도 사방팔방에 온통 울창한 나무와 풀뿐이었다. 

평생을 도시에서만 살아온 그녀가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은 거대한 나무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영화에서조차 본 적 없던 광활한 숲 한가운데서 참새 한 마리와 사이좋게 말을 주고받는 설정인 것이다. 

참, 꿈 한번 요란하다.

“야, 여기 어디야?”

그래 봤자 꿈속이겠지만. 

이예주는 손에 잡혀 있는 새가 제대로 답하지 않으면 콧속을 간질이는 갈색 깃털을 하나하나 뽑아 주겠다고 마음먹었다.

“인간이 한 질문에는 답하지 않……!”

“또 처맞고 싶지?”

“부, 북쪽 대륙에 있는 동물의 숲이에엽!”

반항하는 새를 향해 다시 눈을 부라리자 즉각 대꾸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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