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앤 매드 (2)화 (2/319)

발인이 끝날 때까지 장례식에는 단 한 사람도 찾아오지 않았다. 사건을 담당하던 형사 두엇과 담임 선생님만이 간간이 이예주를 들여다보러 왔다. 

그러나 대답 한마디 하지 않는 그녀 때문에 어색한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여 잠시 앉아 있다 가는 것뿐이었다. 

영정 사진 속의 환히 웃는 엄마의 얼굴을 들여다보던 이예주는 끝내 울지 않았다. 

엄마가 자살한 게 아니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생활고 비관이라니, 말도 안 됐다. 순직으로 인해 국가에서 나오는 아버지의 연금이 얼만데. 

아버지가 남긴 집만 해도 엄마와 자신, 단둘이 먹고살기에 충분했다. 

엄마가 그들에게 죽임당했다는 것을, 이예주는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7년 전 자신이 범람한 강물에 죽다 살아 나와 능력을 각성했을 당시 엄마가 말했던, 엄마의 일족이라는 작자들의 손에. 

이예주는 엄마의 죽음에 슬퍼하는 대신 몇 번이고 정신을 집중해서 과거로 돌아가려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이 필요했다. 

그녀는 수면제를 잔뜩 집어 먹거나 겁도 없이 손목을 긋고 쌩쌩 달리는 차 앞에 뛰어들어 ‘문’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나 막상 기다리던 문이 나타나 그 안으로 들어가면, 자신은 어느 순간 엉망이 된 몸을 이끌고 병원 응급실 앞에 도달해 있거나 혹은 생판 모르는 길거리 한복판에 우뚝 서 있었다. 

뜬금없는 곳에서 겨우겨우 집을 찾아 되돌아갈 때마다 겪었던 그 난감함과 짜증이란. 

그 짓거리가 너무 싫어서 과거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드문드문 들 정도였다. 

‘문’ 안으로 들어가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과거는 흘러가 있었고 자신은 어김없이 미래에 있었다. 

과거로 돌아갈 순 없었다. 

이예주가 갈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절망스럽고 좌절스러운 미래일 뿐, 과거로 돌아가 살아 있는 엄마를 만날 수 있는 능력 따윈 그녀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그 사실이 그녀를 미치게 했다.

이예주는 ‘미래로 가는 능력’을 각성한 후 7년 만에 혼자가 되었다. 

그제야 엄마의 도움이 얼마나 컸는지 깨달았지만 이미 늦어 버린 후였다. 

그 후 능력이 실현될 때마다 이예주는 즐거움보단 막막함을 느꼈고 점점 사회에서 고립되어 갔다. 

그리하여 23살이 되었을 적에는 완전한 낙오자가 되어 있었다. 

*       *       *

“이예주 양, 그렇게 홉뜨고 노려볼 거면 30분 남은 내 수업에는 오지 않는 게 서로의 심신에 더 좋았을 텐데요.”

문득 날카로운 목소리가 이예주의 상념을 깨웠다. 

“어, 어……!”

멍하니 턱을 괴고 있던 이예주가 허둥대다가 책상 위에 있던 필기도구와 책을 손으로 쓸었다. 

얼마나 세게 쓸었는지 우당쾅쾅 소리와 함께 심리학 교재와 그녀의 철제 필통이 그녀가 앉아 있던 계단식 강의실 맨 앞 층까지 굴러 갔다. 

마지막 계단에 부딪치며 멈춘 철제 필통이 속에 들어 있던 필기구를 사방으로 토해 냈다. 

얼떨결에 교재와 필통을 집어 던진 셈이 되었다.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예주가 고개를 들자 저 멀리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표독스럽게 그녀를 노려보는 마녀가 보였다. 

“죄, 죄송…….”

“이…… 예주양.”

이예주가 얼른 고개를 숙였지만 마이크 너머에서 이를 갈며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망했다. 

그녀는 한심한 제 머리를 두 손으로 쾅쾅 내리치는 망상을 하며 다시 한 번 고개를 조아렸다.

“모두 박수 세 번 쳐 주세요.”

“…….”

“얼른.” 

뜬금없는 교수의 말소리에 이예주가 다시 고개를 들자 사십여 명의 학생들이 머뭇거리며 박수를 쳤다. 

박수가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마녀 교수가 말을 이었다.

“중간고사 보기도 전에 심리학 과목 탑이 나왔네요.”

“…….”

“물론 F 탑이요. 저기 있는 이예주 양을 축하하며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할게요.”

여기저기서 킥킥대는 웃음이 쏟아져 나왔다. 이예주의 붉어진 얼굴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이예주는 계단 위에 주저앉아 꿈지럭거리며 필통에서 쏟아져 나온 연필과 펜 따위를 주웠다. 

아까 필통을 집어 던진 일이 떠올라 자꾸만 한숨이 터져 나왔다. 

어쩌자고. 강의 30분 남기고 도착했으면 조용히 입 다물고 찌그러져 있을 생각은 안 하고 대체 어쩌자고 그따위 짓을 했을까. 

지독한 자괴감에 그녀가 우울한 얼굴로 필통 뚜껑을 닫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국 가장 비싼 2500원짜리 펜은 찾지 못했다. 한정판 노랑색이었는데. 그걸 또 알아보고 어떤 망할 놈이 주워 갔는지도 모르겠다. 

이예주가 다시 등을 돌려 가방이 놓여 있는 맨 뒷자리로 올라가려던 차였다. 

뒤에서 그녀를 향한 빈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쟤 또 저러네.” 

“쟤 고등학교 때도 유명했다던데. 쟤랑 고등학교 같이 다녔던 내 친구 있는데, 고2때 수학여행 사고에서 혼자만 멀쩡하게 돌아왔다고 하더라. 무당 딸이라고 소문이 아주 장난 아니던데.”

“너도 그 소문 들었냐? 난 쟤가 멍하게 바라볼 때마다 내 뒤에 귀신이라도 있을까 봐 무섭다, 무서워.”

‘닥쳐! 네 몸에 붙어 있는 귀신은 나도 보기 싫으니까.’라고 거세게 외치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 참으며 이예주는 맨 위층 계단까지 올라갔다. 

최대한 고등학교와 멀리 떨어진 대학교에 지망했음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남자애 한 명과 같은 대학, 같은 과에 오게 되었다. 

어쩐지 대학 합격 발표 전날, 길을 걸어가다가 노숙자에게 오물과 쓰레기를 맞는 아주 개 같은 꿈을 꾸더라니. 

이름도 잘 기억 안 나는 저놈과 같은 대학에 들어와 대학 생활 3년을 오물과 쓰레기 맞는 기분으로 보내고 있는 이예주는 어쩐지 자신의 예지몽에 소름이 돋았다. 

그녀는 더 이상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서둘러 가방을 들고 뒷문으로 강의실을 나섰다. 

터덜터덜 힘없는 발걸음으로 대학교를 빠져나오던 이예주는 정처 없이 거리로 발걸음을 놀렸다. 

집으로 돌아갈까 했지만, 어차피 혼자인 건 텅 빈 원룸이나 밖이나 매한가지였다. 

목적 없이 번화가를 걷던 그녀는 자신의 인생이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심각하게 되돌아보았다. 

엄마가 죽었을 때부터였던가? 

엄마의 죽음에 이예주는 슬퍼할 자격조차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엄마가 죽을 이유는 자신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이따위 쓸모없는 능력을 기꺼워하는 사이, 엄마는 뼈 빠지게 자신의 뒤처리를 하고 다녔을 테니. 

엄마가 말한 일족이란 놈들이 엄마의 행실을 괴상히 여겼음이 분명했다. 

그러니 엄마의 죽음조차 이예주의 능력이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다. 

그럼 13년 전, 10살이던가? 능력이 각성되었을 적부터 자신의 인생은 꼬이기 시작했단 말인가? 

그 생각이 미치자 이예주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13년이나 꼬인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니 정말로 통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대체 언제부터였을까? 자신이 사회에서 도태되어 혼자 남겨진 것은.

이예주는 문득 아까 자신의 뒤에서 빈정거리던 남자애의 목소리를 기억했다.

— 쟤 고등학교 때도 유명했다던데. 

— 쟤랑 고등학교 같이 다녔던 내 친구 있는데, 고2때 수학여행 사고에서 혼자만 멀쩡하게 돌아왔다고 하더라. 

— 무당 딸이라고 소문이 아주 장난 아니던데.

확실히 그 사건 이후로 주위에 사람을 만들지 않았던 건 사실이었다. 

그전에는 속은 썩어 문드러질지언정 겉으로는 친구도 사귀고 원만한 대인관계를 형성하면서 사람 행색을 하고 다녔으니. 

고등학생이 된 이후에는 어렸을 적보다 예지몽을 꾸는 횟수가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거사를 앞두곤 항상 무슨 꿈이든 꾸기 마련이었다. 

엄마가 있을 때는 기억나지 않는 토막 꿈만 꿨다 말해도 학교행사에 참여할 수 없었다. 학교행사는 물론이고 학교도 수시로 빠졌다. 

그런데 이상하게 수학여행 전날에는 아무런 꿈도 꾸지 않았다. 

그 때문이었다. 그것에 또 마음 놓고 칠락팔락 수학여행을 쫓아간 것이 잘못이었다. 

꿈을 꾼 것은 버스를 타고 친구들과 신나게 놀다가 잠깐 선잠에 든 그 짧은 사이였다. 

자신이 탄 버스가 반대편 차선에서 졸음운전을 하며 달려오던 트럭과 부딪쳐 전복됐다. 

그 생생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눈앞에 ‘문’이 열려 있었다. 

매번 두세 개는 되던 문의 개수가 오로지 단 하나만 보인 것은 능력이 각성된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꿈에서 깨어나자마자 바로 눈앞에 문이 열린 경우 또한. 

평소와는 다르게 ‘문’ 건너편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문은 당장 이예주를 끌어들여야 성에 찰 것처럼 눈부시게 빛나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잠시 갈등했다. 

친구들은 여전히 수학여행에 대한 기대감으로 조잘대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 누구도 이예주의 좁은 좌석 앞에 열린 문 따윈 보이지 않는 듯했다. 

그녀는 흔들리는 얼굴로 배를 감싸고 있던 안전벨트를 풀었다. 

달칵하는 소리에 짝꿍이었던 친구가 의아한 얼굴로 돌아보았다.

“예주야, 안전벨트는 왜 풀어?”

그와 동시에 ‘쾅!’ 하는 굉음이 앞쪽에서 쏟아졌다. 

이예주는 그 순간 본의 아니게 몸이 앞으로 기울어져 문 속으로 튕기듯이 들어갔다. 

이예주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그 자세 그대로 병원 안에 자빠져 있었다. 

응급실은 온통 아수라장이었다. 

익숙한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피를 흘리고 괴로워하며 울고 있었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이예주를 거칠게 치고 뛰어갔다. 

같은 반 아이들은 하나같이 다치거나 엉망이 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자신만이 동떨어진 채 이질적인 존재처럼 멀쩡하게 서 있는 것이다.

멀리서 피가 흐르는 이마에 거즈를 붙인 채 다친 아이들 사이를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담임 선생님이 멍청하게 서 있던 이예주를 발견했다.

“너, 너, 이예주?! 너 대체 어디 있다……!”

담임 선생님은 생채기 하나 나지 않은 이예주를 보고 휘둥그레진 얼굴로 말을 잇지 못했다. 

버스 기사와 트럭 기사, 남자아이 한 명, 여자아이 두 명이 즉사했다. 

그중 여자애 한 명은 창문으로 튕겨져 나가 사고 현장에서 몇 미터 떨어진 장소에서 끔찍한 몰골로 발견되었다. 

수술실에 들어간 세 명의 아이들은 목숨이 경각에 달렸고, 나머지 아이들도 저마다 중경상을 입었다. 

멀쩡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 아비규환 속에서 이예주는 실종자로 처리되었다. 

경찰들이 그녀의 시체를 발견하기 위해 사건 현장 근처를 3시간 동안 이 잡듯이 뒤지고 있을 때, 그녀는 보란 듯이 제 발로 병원까지 걸어온 셈이 되었다. 

괴물 보듯 하던 담임 선생님과 아이들의 눈빛.

이예주는 다시 상념에서 깨어나며 깨달았다. 

아, 그때부터 인생이 꼬인 거구나.

이후 학교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재수 옴 붙은 년에서부터 무당 딸, 신내림 받은 년, 저주를 부르는 마녀. 

짝꿍의 말이 더해져 안전벨트를 풀고도 살아남은 괴물 소리까지. 

살기 위해 미래로 간 것뿐인데 그녀는 괴물이 되어 있었다. 

길거리 위에 우뚝 선 이예주를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며 지나갔다. 퇴근 시간이 다 되어 그런지 길거리가 번잡했다. 

그녀는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문득 자리에서 멈춰 선 상태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 빼고 모두들 행복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무리를 지어 지나가는 고등학생들, 엄마와 손잡고 다정히 지나가는 남자아이, 전화 통화를 하며 바쁘게 길을 건너는 양복 입은 아저씨, 지나가는 행인에게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호떡을 팔고 있는 아줌마까지.

저주받은 ‘능력’을 가진 자신만이 불행했고 재수도 없었다. 

그때 맞은편 빌딩 꼭대기의 전광판에서 오후 6시를 알리는 광고가 뜨더니 뉴스 속보 자막이 흘러나왔다. 

지나가는 노인 몇몇이 이예주처럼 호기심에 멈춰 서서 뉴스를 바라보았다. 

(주)미래를 보는 회사, 더 볼보가 지구 내핵까지 뚫는 굴착 신기술 Core1을 공개. 남극에서 10개월 전 내핵 작업 이미 착수.

멀뚱히 서서 전광판을 바라보던 이예주는 이내 시큰둥하게 고개를 돌리고 다시 길을 걸었다. 

슬슬 원룸으로 돌아가서 어떻게든 마녀의 마음을 돌릴 작전을 생각해 보긴 해야겠다. 

한 번도 말 섞은 적 없는 과대한테 전화해 심리학 교수가 무슨 음료수를 좋아하는지도 좀 알아보고……. 

그녀는 다시금 우울한 한숨을 쉬었다. 그때였다.

“아악! 도망쳐요!”

“으악, 크아악!”

“아아아, 뜨거워!”

뒤쪽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들은 점차 가까워졌다. 이내 사람들이 나타나 그녀를 거세게 밀치고 달려갔다.

그 이상행동에 이예주는 물론이고 그녀의 곁을 지나가던 사람들 모두 멀뚱히 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문득 어디선가 더운 기운이 훅 몰아친다고 생각했다. 

이상하다. 아무리 늦여름이 무섭다지만 해도 다 져 가는 마당에 어디서 이렇게 더운 바람이…….

“으아악!”

그 와중에 누군가 또다시 그녀를 거칠게 치고 지나갔다. 

퇴근하는 길인 듯 남자는 양복을 입고 있었는데 남자의 양복바지 밑단에 불이 붙어 있었다. 

헛것을 보았나 싶어 인상을 찌푸리며 그것을 주의 깊게 바라보던 이예주는 그제야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 차렸다. 

그 남자뿐이 아니었다. 

경악에 질린 채로 자신을 지나쳐 달려가는 사람들 모두 그을린 자국이 보이거나 몸 위로 불길이 치솟아 있었다.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던 이예주는 마치 자신에게도 불이 붙은 것처럼 주위가 덥고 홧홧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불현듯 주변이 어두워졌다. 방금 전만 해도 노을이 진 상태라 그리 어둡지 않았는데. 

마치 자신의 뒤로 거대한 물체가 나타나 그림자를 만들어 낸 것처럼…….

무언가 타는 냄새가 강렬히 코를 찌르자 이예주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것은 거대한 파도였다. 

방금 전만 해도 내핵 어쩌구 속보가 떠 있던 전광판을 삼킨 파도. 

그것에 덮쳐진 빌딩이 녹아내렸다. 빌딩뿐 아니라 사람, 자동차, 거리에 있던 모든 것들이.

자신이 미치지 않았다면 빌딩보다 높은 저 거대한 파도는 이글이글 불을 뿜는 용암이 분명했다. 

이예주가 입을 떡 벌렸다. 

훅― 

더운 바람이 다시 그녀의 얼굴로 불어닥쳤다. 

이제는 그냥 더운 것뿐 아니라 얼굴 가죽이 홀랑 벗겨질 것 같은 뜨거움이 느껴졌다. 

“저, 저게 뭐……!” 

누군가 이예주처럼 멍청하게 그것을 올려다보다가 뒷걸음질 쳤다. 

꿀렁꿀렁 느릿하게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그녀에게로 다가오던 용암 파도가 ‘핏―’ 소리를 내며 용암 덩어리를 떨어뜨렸다. 

코앞에 있는 차도 위에 멈춰 있던 자동차가 지글지글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녹았다. 

하늘을 덮을 듯 커다란 용암 파도를 바라보던 이예주는 문득 고개를 내렸다. 

언제부터였는지 눈앞에 버젓이 ‘문’이 있었다. 다른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다는 양 문은 단 하나뿐이었다. 

그 안은 마치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미래의 상황을 모르고 문으로 들어가는 것은 왠지 모르게 꺼림칙했다. 

하얀 문에서 뿜어져 나오는 눈부신 빛이 그녀의 눈을 찔렀다.

“……미친.”

이예주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서울 한복판에 화산이라도 터진 걸까? 어째서 용암이 코앞에 있는 거지? 

강물 범람에 뒈질 뻔한 것도 모자라, 이제 용암에 깔려 죽을 판이라니. 

픽― 

그때 용암 덩어리가 떨어져 그녀의 바로 옆에 거대한 구덩이를 만들었다.

“으아아아악—!”

마치 자신이 녹는 것과도 같은 후끈한 열기에 이예주는 기겁을 하고 문으로 달려갔다. 

하얗게 질린 그녀를 반기듯 문이 환하게 빛났고 그 눈부신 빛에 이예주는 현실을 외면하듯 눈을 감았다.

어째 한동안 꿈자리가 잠잠하다 싶었다. 

조용하다가 이렇게 뒤통수를 로우킥으로 날려 버릴 생각이었으니 능력 새끼가 숨을 죽이고 있었던 거겠지. 

이예주가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개 같은 꿈을 꾸니, 오늘 하루도 개똥이 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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