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빌드업
찬영은 안개가 낀 것처럼 흐려진 화면을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데스 아이가 소환한 잡몹에게 피격당했을 때 걸리는 상태 이상 중 하나인 ‘암흑’이었다.
암흑도 정화 물약으로 쉽게 해제할 수 있는 상태 이상 중 하나였지만, 회복 포션처럼 정화 물약에도 삼십 초라는 쿨 타임이 존재했다. 그리고 찬영은 이십 초 전 유혹에 걸려 제 발로 사지로 걸어 들어가는 캐릭터를 보고 정화 물약을 써 버린 채였다.
가뜩이나 익숙하지 않은 보스에서 시야까지 제한되니 생각보다 훨씬 스트레스가 심했다. 원래라면 뻔히 피했을 패턴에도 죽고. 지금처럼.
찬영은 눈을 질끈 감고 긴 숨을 내쉬었다. 중요한 패턴이었으면 화가 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걸 이렇게 죽는다고? 샌드백이세요? 더 잘 때려 달라는 것도 아니고 피해야 할 걸 굳이 굳이 점프까지 해서 가까이 가고. 암흑이라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변명이다. 그럼 암흑에 걸리지를 말든가.
노말 데스 아이 첫 클리어의 기억은 강렬하게 남았다. 버스를 받은 건데도 그렇게 좋았는데 솔플에 성공하면 더 뿌듯할 것 같았다. 물론 사격이 먼저 시간이 많다고 했고, 못하겠으면 언제든 같이 깨 주겠다고도 해 줬지만 찬영은 노말 데스 아이 정도는 혼자 힘으로 깨 보고 싶었다.
게다가 사격은 원래 하드 솔플 스펙 유저인데 다시 노말을 같이 가 달라는 것도 민폐였다. 정 안 되면 최후의 수단으로 연습을 도와 달라는 것 정도는 말할 수 있더라도.
주 스탯인 힘을 올려 주는 스킬에 대상의 방어력을 약화시키는 스킬을 누르고, 신념의 굴레, 데스 아이 공격해서 버프 리필하고, 속박 스킬 쓰고, 키다운 극딜 스킬 누르고, 끝나면 연계해서 주력기 네 개 번갈아 가면서 쓰고….
아니, 누를 게 뭐 이렇게 많아? 이거 완전 미친 거 아냐?
집중하느라 저도 모르게 입속말을 하고 있던 찬영이 질린 얼굴을 했다. 레벨 때문에 아직 배우지도 못한 각성 스킬까지 포함하면 나중엔 각성 스킬을 다 누르기도 전에 앞 버프 적용 시간이 끝날 것 같았다.
물론 레비아는 대기업에서 만든 게임이었기 때문에 다 생각이 있었다. 캐시샵에서 ‘펫 스킬 자동 사용 적용 쿠폰’을 구매 후 데리고 다니는 펫에 적용하면 직접 스킬을 클릭하거나 단축키를 누르지 않아도 자동으로 스킬이 사용됐다.
다만 쿨 타임이 없는 스킬 한정이었고 대부분 쿨 타임이 존재하는 각성 스킬 버프, 예를 들면 신념의 굴레 같은 스킬은 적용 대상이 아니었다. 추가 패치가 없는 이상에는 돈을 얼마나 주든 간에 일일이 다 눌러야 한다는 얘기다.
사격 치트키 덕에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던 데스 아이는 실제 찬영의 딜로 도전하려 하니 아주 태산 같았다. 온갖 버프와 도핑이 포함된 보스 딜은 스무 배는 넘게 차이 날 테니 당연한 거겠지만. 그래도 그동안 몇 대만 때려도 클리어되는 보스들만 잡다가 딜찍누가 안 되는 보스를 잡으니 재미는 있었다. 찬영의 눈으로도 영 클리어가 불가능해 보이지도 않았고.
서너 번의 도전 끝에 찬영은 노말 데스 아이 3페이즈까지 혼자 힘으로 와 있었다. 이제 데스 아이의 체력도 얼마 남지 않았다. 속박 스킬 쿨 타임이 돌 때를 기다릴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찬영의 남은 데스 카운트도 1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래도 처음 여기까지 왔으니까 안전하게 가는 게 낫지. 간만에 멈춰 있는 데스 아이의 밑으로 설치 스킬을 깔았다. 몇백 타는 들어가니까, 이제 반대쪽에 피해만 있으면….
노말 데스 아이 처치 1/1
‘꼼짝 마! 눈 뜨면 쏜다’ - 노말 데스 아이 1인 최초 처치 업적 클리어
나이스! 깼다!
파티 격도 무서워서 못 가고 있었던 보스를 생각보다 쉽게 솔플로 깼다.
지금 사격 님 접속해 계시려나? 들뜬 찬영이 친구 창 목록을 켰다. 사격은 주말 이 시간이면 언제나 그랬듯 접속 중이었다.
[귓속말] 사격<< 사격님 혹시 계신가요?
[귓속말] 사격<< 저 노말 데스 아이 솔플 성공했어요
[귓속말] 사격<< 지난번에 도와주신 게 생각 나서 말씀 드리고 싶어서
냅다 귓속말을 걸긴 했지만, 말하고 보니 솔직히 사격이 지금 이 대화를 TMI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별생각 없이 뉴비 도와준 건데 갑자기 깼다고 친한 척 귓속말을 해대면 ‘그래서 어쩌라고’ 싶지 않을까?
그래도 길드 가입까지 권했으니 오히려 좋아할지도 모른다. 사실 고맙다는 인사를 한 번 더 하고 싶었다.
[귓속말] 사격>> 연습 모드요? 아니면 찐판?
[귓속말] 사격<< 연모 세 번 정도 가고 마지막에 클리어요
[귓속말] 사격>> 오!
[귓속말] 사격<< 진짜 다 사격님 덕분인 듯ㅠ 전엔 가볼 생각도 안 해봤는데
[귓속말] 사격>> 제가 뭘 해드렸다고 ㅋㅋㅋㅋ
[귓속말] 사격>> 그냥 맑음님이 열심히 연습하셔서 그런 거죠
외쳐 갓격 진짜….
MMORPG에서, 레비아에서 아주 많은 사람을 만나 본 건 아니었지만 찬영은 분명 사격이 어디에도 없는 유저일 거라 자신했다. 손 좋아, 스펙 좋아, 인성 좋아. 온갖 수식이 얽혀 있는 스킬 개선안을 쉽게도 풀어 쓴 걸 보면 분명 머리도 좋을 거다.
[귓속말] 사격<< 진짜 제가 게임하면서 만난 사람 중에
[귓속말] 사격<< 사격님이 제일 착하신 것 같아요...
[귓속말] 사격<< 저도 알피지 하루 이틀 해본 건 아닌데
[귓속말] 사격>>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에요 저 안 착함
[귓속말] 사격>> 너무 띄워주셔서 민망하네요
[귓속말] 사격>> 잠시
잠시? 뭘 하고 계셨나. 설마 보스신데 말을 걸었던 건 아니겠지. 아차 싶었던 찬영이 친구 창을 열어 사격의 위치 맵을 확인하고 있을 때였다.
[메가폰] 사격: 앞으로맑음<< 노말 데스 아이 첫 솔격 축하드립니다 고생하셨어요
[친구] 앞으로맑음: 헐
[친구] 사격: ㅎㅎ
[친구] 빨강색: 오 이번 주에 바로 솔플하셨나보네ㅋㅋ 축하드려여
[친구] 빨강색: 데아 깨셨으면 샐러맨더도 당연히 가능하실 듯
[친구] 또치와양치: ;;
[친구] 앞으로맑음: 감사합니닼ㅋㅋㅋㅋ 안 그래도 샐러맨더도 혼자 가보게요
축하 사이 또치와양치의 땀땀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아 그냥 무시했다. 뭐라 하면 또 빡치게 굴 테니까.
[친구] 사격: 이제 다음 목표는 보이드로 잡죠
[친구] 앞으로맑음: ㄷㄷ 보이드...될지 모르겠지만 도전해보겠습니다
[친구] 사격: 걔도 별거 없어요ㅋㅋ 화이팅
보이드는 데스 아이와 체력이나 요구 스펙이 비슷해 같은 티어에 묶이는 보스였다. 다만 노말 솔플 기준으로 데스 아이보다 패턴이 조금 더 거지 같았고 공중에 떠 있는 시간이 많아 직업별로 스펙 편차가 많이 갈렸다. 아수라는 보이드가 쉬운 직업 중 하나라고 했으니 데스 아이와 그리 차이 날 것 같지는 않았다.
[친구] 갓말이: 와씨 님들 님들
[친구] 사격: 넌 또 왜
[친구] 갓말이: [+18 잊히지 않는 약속의 대검] 별생각 없이 무지성 강화했는데 18 성공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
+18 잊히지 않는 약속의 대검
전설 등급
요구 레벨 150
직업 버서커
거래 5회 가능
힘 +225
민첩 +190
HP +2000
MP +2000
물리 공격력 +472
보스 공격 시 데미지 +10%
방어력 관통 +10%
추가 옵션
보스 공격 시 데미지 +20%
보스 공격 시 데미지 +15%
물리 공격력 +10%
초월 옵션
물리 공격력 +13%
물리 공격력 +10%
연마 Lv.3 효과 적용
물리 공격력 +4%
[친구] 빨강색: ㅊㅊㅊ
[친구] 빨강색: 오 연마는 언제 3렙 찍음?
[친구] 갓말이: 진작했죠 그건
[친구] 갓말이: 나도 이제 18강 약속 대검 오너^-^
[친구] 도텐: 이대로 25 ㄱ
[친구] 갓말이: ㅗ 형 선이요
[친구] 도텐: ㅠ
[친구] 사격: 요즘 열심히 하네
[친구] 갓말이: 나메 가고 싶어서요 ㅋㅋ
[친구] 갓말이: 열심히 하려고 수 공강도 만들어놨음
벌써 대학생들 수강 신청 시즌인가. 졸업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까마득하다. 매주 수요일은 레비아의 정기 점검일이었다. 점검이 끝나고 나면 일정 시간 사냥 경험치 버프를 받을 수 있었는데, 나이트메어 레벨 뻥[37]을 받으려고 레벨 업에 집중하려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단순히 패치를 빨리 보려는 걸 수도 있고.
[친구] 도텐: ㄷㄷ 모범생이네
[친구] 갓말이: 이게요?
[친구] 도텐: 난 대학생 때 걍 수업 째고 피방 갔음
[친구] 갓말이: 그건 좀;;
[친구] 사격: ㅋㅋ 파티원은 길드에서 데려가? 전엔 용병만 몇 번 뛴 거 같더만
[친구] 갓말이: 아직 완전 확정은 아닌데 거의 길드 파티일 것 같긴 함
[친구] 사격: 누구누구 가는데? 직업 좀
[친구] 갓말이: 저랑 마죽님, 도텐 형, 딜하는프리님 이렇게요
[친구] 갓말이: 직업은 비스트테이머 어쌔신 버서커 프리스트
[친구] 사격: 파티 구성 괜찮네
[친구] 갓말이: 그쵸 보조도 있고 극딜주기 다 3분이라 딱 맞아여 ㅋㅋㅋ
[친구] 갓말이: 근데 마지막 한 명을 어떡할지 모르겠음 길드에 스펙 되는 사람들은 이미 다 파티 있거나 하드 다녀서ㅠ
[친구] 빨강색: 넷이서 안 됨?
[친구] 갓말이: 쪼오끔 애매함 진짜 쪼끔
[친구] 빨강색: 노말 나메는 딜 애매한 트팟이면 ㄹㅇ 지옥일텐데
나이트메어는 레벨 170, 오멘 평판 100부터 입장 가능한 괴수형 보스 몬스터였다. 이름답게 가불기로 죽을 수밖에 없는 악몽 같은 패턴을 여럿 보유하고 있었다. 하드 기준 퍼스트 클리어에만 일 년 가까이 소요된 악명 높은 최강의 보스였지만, 그것도 최근 세에레가 업데이트되면서 예전 얘기였다.
그래도 여전히 현질을 하지 않거나 뉴비인 유저들에게는 노말도 어렵게 느껴지는 보스기도 했다. 입장 레벨과 별개로 적정 레벨은 180이라 레벨 뻥을 다 받고 가려고 한다면 제법 하드하기도 하고.
[친구] 사격: 친창에는?
[친구] 갓말이: 전 아싸라서 친창=길드임 ㅎㅎ;; 주변에 적당한 분 있으시면 추천 좀
[친구] 도텐: 흠
[친구] 도텐: 맑음 어떰?
그런데 거기서 제 이름이 나올 줄은 몰랐다.
[친구] 갓말이: 오 그러네 맑음님 계시네
[친구] 갓말이: 맑음님이 아수라셨나요
[친구] 앞으로맑음: ?? 저요?
[친구] 앞으로맑음: 아수라는 맞긴 한데
평화로운 마음으로 일일 평판 퀘스트를 하러 가려던 찬영에게는 당황스러운 대화 흐름이 이어졌다.
이제 갓 노말 데스 아이 잡았는데 나이트메어요? 그동안 찬영이 가 본 파티는 얼마 전의 하드 샐러맨더, 노말 데스 아이 두 개가 다였다. 심지어 둘 다 버스팟이다. 그런데 갑자기 격수로 가는 파티라니.
[친구] 사격: 아수라도 극딜 쿨 맞아서 조합 괜찮을 듯 파티 버프도 있고
[친구] 앞으로맑음: 저 근데 저 탑도 안 쳐봤고
레비아에서는 보스 파티를 구성할 때, 아이템 전체를 줄줄 꿰고 있는 지인 사이가 아니라면 보통 한계의 탑 기록으로 스펙을 확인했다. 한계의 탑은 최고층이 70층인데, 현 시점 최고 기록은 파이터 유저의 63층이 끝이었다.
각성 스킬 추가 같은 대형 패치가 있지 않은 이상에는 실질적으로 70층 달성이 불가능하다는 게 정론이었다. 한계의 탑은 층별로 광역기나 다수기가 유리한 경우도 있었고 단일기가 유리한 경우도 있었다. 클리어가 아닌 생존부터가 문제라 정화 물약이나 무적기가 필요한 층도 있었고. 당연히 고층으로 갈수록 직업도 많이 탔다.
노말 나이트메어 5인 풀 파티 스펙 기준은 대략 45~47층 정도였다. 찬영은 그 층수는 고사하고 한계의 탑 자체를 해 본 적이 없었다. 필요하지도 않았지만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한계의 탑 기록은 서버에 따라 직업별 50위까지 인게임에서 바로 확인이 가능했는데, 시골 서버에서 그런 걸 했다간 바로 이름 박제였다. 애초에 직업별로 탑을 오르는 사람이 오십 명도 채 안 되니까. 아무도 관심 없겠지만 아직은 남들에게 스펙을 공개하는 게 꺼려졌다.
[친구] 사격: 내가 봤을 때 맑음님 한 46-47층 정도
[친구] 갓말이: 그 정도면 딜 충분한데
[친구] 도텐: 걍 내일부터 같이 가
[친구] 갓말이: 탑 오르는 거 때문에 부담 느끼시는 거면 굳이 안 하셔도 됨
[친구] 갓말이: 저 형 보증이면 충분해여
한계의 탑도 부담이긴 했지만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하나. 찬영이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귓속말] 사격>> 혹시 파티격은 부담스러우신가요
그래서 적당히 둘러댈 수 있는 사격의 질문이 반가웠다. 먼저 제가 원래부터 이러지는 않았는데요, 예전에 하던 게임 사사게에서 욕을 하도 처먹어서 격수로 사람들이랑 보스 같이 가는 게 꺼려지네요 좀…. 이렇게 구구절절 사정을 설명할 수도 없고. 그건 진짜 아무도 안 물어봤고 하나도 안 궁금한 TMI다.
[귓속말] 사격<< 그냥 격수로 파티도 처음이고
[귓속말] 사격<< 노데아도 이제 깼는데 가도 될지 모르겠네요
[귓속말] 사격<< 민폐 안 되면 다행일 듯...
[귓속말] 사격>> 진짜 안 가고 싶으신 거면 안 가셔도 돼요
[귓속말] 사격>> 거절 힘드시면 제가 알아서 잘 말해놓을게요
[귓속말] 사격>> 근데 그냥 안 해봐서 걱정되시는 거라면 한 번은 해보셔도 괜찮을 것 같아서
[귓속말] 사격<< ㅠㅠ 노말 나메 체력 보니까 1페부터 장난 아니던데 1인분 할 수 있을까요
[귓속말] 사격>> 저 파티에 그런 걸로 뭐라 할 사람 아무도 없어요 ㅋㅋ 어차피 다 초행이고
[귓속말] 사격>> 그래도 누가 막 뭐라 하면 어차피 다 제 길드니까 저한테 찌르세요
[귓속말] 사격<< 길마님 보호 든든하네요
[귓속말] 사격<< 근데 사실 안 그러실 분들이긴 함 ㅋㅋㅋㅋㅋㅋㅋ
[귓속말] 사격>> 그것도 맞음 ㅎㅎ
[귓속말] 사격>> 그리고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딨겠어요
[귓속말] 사격<< ㅠ
[귓속말] 사격>> 시간 될 때 연습도 같이 해드릴게요
[귓속말] 사격<< 그렇게까지 말씀해주시니 도전은 해봅니다ㅠㅠ
[귓속말] 사격>> 좋습니다
[친구] 사격: 보은아 맑음님 하신대
[친구] 갓말이: 오
[친구] 갓말이: 근데 저희 다 나메 처음이라 보코하려는데
[친구] 갓말이: 그건 괜찮으심?
[친구] 갓말이: 마이크는 굳이 안 키셔도 되고 듣기만 하셔도 괜찮아영
[친구] 갓말이: 미리 말씀 드리는 걸 잊음 ㄷㄷ
[친구] 앞으로맑음: 넵 전에 다른 게임할 때 깔았어서 ㅋㅋ 마이크도 괜찮습니다
[친구] 앞으로맑음: 바로바로 피드백 받아야죠
[친구] 도텐: 뭔 또 피드백이야 ㅋㅋ 모르는 거 여기 다 똑같음 걍 ㄱㄱ
사실 에이나인에서는 보이스 코드를 할 때 듣기만 했다. 생각해 보면 마이크 켜는 게 뭐 별 거였다고. 진작 썼으면 적어도 길드원들에게는 넷카마라고 오해받지 않았을 텐데. 그럼 손이탁도 그런 이상한 변명은 못 했을 거다.
[친구] 사격: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저도 처음엔 서툴렀어요
[친구] 빨강색: ㅈㄹ ㄴ
[친구] 갓말이: 맑음님 파티원들 저 빼고는 완전 초행이라 무서워하지 않으셔도 되는 건 맞는데
[친구] 갓말이: 저 말은 뻥입니다 아시죠?
[친구] 사격: ;;
[친구] 비테마죽: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개웃김
[친구] 앞으로맑음: 넵 원래 안 믿었어요 ㅋㅋㅋ
[친구] 사격: ㅠ 이렇게 맑음님한테 신뢰가 없었네..
[친구] 도텐: 오늘부터 감?
[친구] 갓말이: ㄴㄴ 낼부터 가죠
[친구] 갓말이: 패턴 안보신 분도 있을 거고 저도 일 생겨서 바로 나가야 할 듯
[친구] 도텐: ㅇㅋ
[친구] 갓말이: 오픈라톡은 만들어놨음 레전드서버 갓말이<< 검색하심 돼영
[친구] 갓말이: 비번은 오늘 날짜니까 미리 들어와주세요
[친구] 갓말이: 이만 들어갑니다 ㅃㅇ
[친구] 앞으로맑음: 들어가세요
그럼 이제 나이트메어 패턴도 봐 둬야 하고, 샐러맨더나 보이드도 연습하고….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하던 것만 해 왔는데 갑자기 할 게 늘었다. 격수로 다른 사람들과 가는 건 에이나인 이후로 몇 달 만이다. 처음 보는 사람도 있고, 부담도 됐지만 그것보다는 솔직히 좀… 설렜다. MMORPG는 당연히 혼자 하는 것보다는 다 같이 하는 게 훨씬 재밌으니까.
월요일은 항상 그랬지만, 내일은 퇴근이 더 기다려질 것 같았다.
* * *
「문자 보내놓은 거 처리 좀 해줘.」
뚝. 소속도, 인사말도, 하다못해 그 흔한 ‘여보세요’도 없는 전화는 찬영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끊겼다. 헛웃음부터 났다. 아니, 아무리 내가 당신이 김 과장인 걸 알고 직급이 아래라고 해도 사람이 기본 예의라는 게 있지. 같은 부서조차 아닌데.
진짜 그냥 확 퇴사해?
직장인 열이면 열 모두 고민해 봤을 충동이 오늘도 일었다. 원래 저 정도 직급을 달고 나면 다들 뻔뻔해지고 거지 같아지는 건가? 아니라기엔 이 회사의 과장급 이상들이 다 저랬다.
마음 같아서는 팀장에게 퇴근 인사 대신 ‘안녕히 계세요 팀장님, 전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제 행복을 찾아 떠납니다!’를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게임을 하려면 계속 돈을 벌어야 했다. 오전 내내 가지각색으로 별로인 인간들에게 시달려 이미 파리해져 있던 찬영이 굽은 등과 어깨를 세우고 키보드에 다시 손을 올렸다.
[나...는...사회...인...이다. 저런...저 따위...인간에게도...굴...하지...않는다.]
요즘은 월마다 따박따박 꽂히는 급여명세서 메일을 받아도 화병이 낫질 않아 메모장에 꼭 저걸 쓰고 남들한테 메시지를 보내야 했다.
[정찬영: 과장님, 전화로 말씀 주셨던 건 기안 먼저 부탁드립니다. 구두나 메신저로는 절차상 처리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김근우: 그냥 먼저 해줘 어차피 나중에 승인 받을 건데]
[김근우: 현장에다가는 바로 해준다 했는데 이러면 곤란하지]
[김근우: 내 체면도 있는데]
‘그거 이미 지난주 안 차장님이 쓰신 멘트입니다. 다른 멘트로 다시 와 주세요.’라고 회신 보내고 레비아나 하러 가고 싶다 진짜. 오늘부터 나이트메어 트라인데. 찬영이 한숨을 푹푹 쉬었다.
이런 유형들은 어디 공장에서 찍어내는지 레퍼토리도 똑같았다. 쌩 신입 때는 대응 방법도 잘 모르고 직급으로 깔아뭉개면 그대로 깔려서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이곤 했다. 그러다 뒤에 가서 팀장한테 개깨졌지.
팀장도 사정은 알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빠꾸시켜야 한다고 했다. 대한민국 신입 누구나 억울함에 몇 번 이를 까득 물고 나면 회사원으로서의 또 다른 자아가 생기고 싸우지 않고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체득한다.
[정찬영: 저도 과장님 요청은 처리해 드리고 싶어서 한 번 더 확인했습니다.]
일 번. 나는 상대의 요청을 들어주고 싶지 않아 이러는 것이 아니며, 무시하지 않고 나름대로 해 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지 확인해 보았다 어필하기. 물론 누구에게 어떻게 확인했는지 구체적인 내용은 쓰면 안 된다. 항상 두루뭉술하게.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둬야 하니까.
[정찬영: 그런데 제가 다른 분들도 그렇고 예전에 몇 번 선처리 해드린 게, 나중에 문제가 터졌던 적이 있어서...]
[정찬영: 기억나시죠? 저 보고 좀비가 다 됐다고 놀라셨던 때요]
[정찬영: 물론 그게 과장님 건은 아니지만]
당신 얘기다. 이 번. 과거에 상대의 말대로 해 줬을 때 문제가 생겼고, 내가 피해를 봤다는 사실을 들어 은근히 압박하기.
[정찬영: 그리고 바로 지난 주에 본부장님이 선진행 건 없게 하라고 여러 번 말씀하셔서요.]
[정찬영: 정말 죄송하지만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삼 번. 상대보다 높은 직급을 가진 사람의 말을 적극적으로 인용하기. 이런 인간일수록 윗선의 말은 하늘로 여긴다.
그렇게까지 하고 나니 분명히 메시지를 읽었을 과장은 더 이상 답이 없었다. 아마 혼자 혹은 다른 누군가와 어디 욕이라도 퍼붓고 있겠지만 찬영의 알 바는 아니었다. 원래 자기 마음대로 안 되면 답이 없는 인간이니까.
어쨌든 생떼 같은 요청을 오늘도 잘 버텼다. 곧 구매요청서 기안이 올라오면 출력해서 검토하고, 그걸 토대로 다시 품의서를 만들면 된다. 물론 아무리 잘 설명해도 이걸 왜 사야 하냐고 임원급에서 컷 당하는 건 찬영이 알 바는 아니고.
이제 연락 올 곳도, 급하게 처리해 줘야 할 것도 없는데 PC 버전 라잇톡이 자꾸 울렸다. 어제 들어만 가 뒀던 오픈 라톡이었다. 멤버는 갓말이, 도텐, 비테마죽… 딜프리? 이 사람이 프리스트라던 딜하는프리인 모양이다.
그런데 대화 상대 목록에는 사격도 있었다.
갓말이: 맑음님은 일하시는 중인가봄
비테마죽: 다들 일이나 하시져
도텐: 이미 일하는 중
갓말이: 전 학생임 ㅅㄱ
도텐: 갑자기 현타 ㅈㄴ 오네
갓말이: ㅋㅋㅋㅋ
딜프리: 와 세상에서 제일 부럽다 진짜... 저도 집가고 싶음
앞으로맑음: 안녕하세요
앞으로맑음: 라톡 지금 확인했습니다 ㄷㄷ
딜프리: 맑음님 하여
앞으로맑음: 넵 안녕하세요
앞으로맑음: 근데 여기 사격님도 계시네요 ㅋㅋ
도텐: ?
도텐: 그러고 보니 넌 왜 있는 거임?
사격: 형 말투가 좀 그렇다?
사격: 섭섭하네 ㅠ
갓말이: ㄹㅇ 이거 트라이팟인데 형이 왜 와요? 형은 하드 솔플도 되자늠
사격: 맑음님 패턴 봐주기로 했음
사격: 그리고 여기 다 클리어 경험 없어서 재밌을 거 같아서 ㅎㅎ
사격: 나중에 화면 공유해줘 구경하게
패턴을 봐준다고? 그런 약속을 했었나. 시간이 나면 같이 연습하자는 말은 들어본 것 같은데….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 봐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결론은 대충 이 파티가 재밌을 것 같아 놀러 왔다는 얘기니 중요한 건 아니었다.
갓말이: 거절함
사격: 고민하는 척이라도 좀 해줘
도텐: ㅋㅋㅋㅋㅋㅋ 내가 해줌 보코로 해주면 되지?
사격: 오 ㄱㅅㄱㅅ
사격: 응 나중에 마이크는 꺼둘게
앞으로맑음: 저 근데
앞으로맑음: 탑 기록 없는 거 진짜 괜찮나요?
앞으로맑음: 쳐오라 하면 당장 쳐오겠습니다
딜프리: ㄷㄷ 당장 적장의 목을 쳐올 기세
딜프리: 오히려 믿음직합니다
사격: ㅋㅋㅋ 괜찮아요
사격: 이따 다들 나메 가기 전에 이거 한 번씩 보고 ㄱㄱ
사격: https://www.outven.co.kr/
board/labia/tip/46154
사격: https://www.outven.co.kr/
board/labia/tip/47539
갓말이: 온튜브는 이게 젤 괜찮은 듯?
갓말이: https://www.ontube.com/
watch?v=dkdADddf
사격: 보은아 하다가 연습 막히면 알려줘
사격: 연습하고 싶은 데까지 버스 태워줄게
갓말이: 와우...
갓말이: 감사합니다 필요하면 말씀드릴게영
갓말이: 아까 다른 분들하고는 다 얘기했는데
갓말이: 맑음님은 오늘 아홉 시 괜찮으심?
앞으로맑음: 네 시간 충분함
갓말이: 그럼 아홉 시 확정
도텐: 원트클 쌉가능
사격: ㄹㅇ 그러면 형 소원 들어준다 내가
도텐: 봤지? 저거 다 캡처해놔라
딜프리: 보자마자 따놨죠 당연함
딜프리: 설마가 사람 잡는 거 보여드림
사격: ;;길드원 중에 믿을 사람 하나 없네
비테마죽: 일관성 있게 잘 뽑으신걸지도 모름
앞으로맑음: ㅋㅋ
사격: 근데 원트클은 힘들 걸 형
사격: 빨리 깨면 진짜 좋긴 한데 하다가 스트레스만 받지 마
다들 생각 이상으로 자신만만했다. 아직 나이트메어 패턴도 보지 못한 찬영만 마음을 졸이고 있는 것 같았다.
찬영은 사격이 보내 준 링크들을 클릭했다. 대부분 아웃벤 팁과 노하우 게시판 글이었다.
[팁과 노하우] 노말 나메 1페 ㅆ극혐 패턴 정리 [114]
나이트메어를 좀 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바닥에 깔리는 안개 장판, 레이저(즉사기) 패턴은 생각보다 별거 아님. 물론 그것도 뒤에 서술하는 다른 패턴이랑 겹치면 경우에 따라서 빡칠 때가 있긴 한데 그건 사실 그 패턴 문제고... 적응만 되고 나면 차라리 힐링임.
진짜 문제는 두 개임 악몽 게이지 폭발이랑 망할 토끼쉑들
1. 악몽 폭발
나이트메어 본체에 피격될 때마다 악몽 게이지가 쌓이는데 이게 다 차면 캐릭터 머리 위에 3, 2, 1 이렇게 숫자가 뜸. 가만히 두면 폭발하면서 갑자기 죽음. 트라이 파티에서 파티원이 갑자기 아니 왜 죽은 거임?? 이러면서 물음표 치고 있으면 대부분은 이거 때문임. 심지어 폭발 전이된다... 노 프리스트 팟이거나 프리스트 있어도 아직 패턴 적응 못했으면 트롤 ㅆㄱㄴ
2. 토끼 인형 개XX
그럼 어떻게 해야 되냐. 처음 메시지 뜨는 거 보면 [나이트메어가 당신을 영원히 깨어날 수 없는 꿈에 가두려고 합니다. 자명종을 부수고 꿈에서 깨어나세요.] 이런 말이 있을 거임. 이게 파훼법임. 악몽 게이지 다 차기 전에 맵 오른쪽 끝에 있는 자명종 깨러 가줘야 함. 근데 문제가 뭐다? 이제 실밥 터진 토끼 인형 같이 생긴 잡몹 새끼들이 등장하기 시작함. 그리고 길막 ㅈㄴ 함. 얘네 안 죽이면 응 못 지나가~ 쫄리면 뒤지시든가
움짤.gif
바로 이렇게. 무슨 이동기를 쓰든 못 넘어감. 이 새끼들이 제일 개새끼임. 어느 정도냐면 얘네를 얼마나 빨리 잡느냐가 1페를 넘길 수 있는지를 좌우할 정도. 트팟 데카 박살과 멘탈 붕괴를 든든하게 책임지고 있음.
제목에 내가 그냥 나메 1페 패턴이라고 안 쓰고 노말이라고 썼는데 그 이유도 얘네 때문임
이 악랄한 놈들은 체력도 극혐 수준으로 많은데 패보면 심지어 고정 뎀임. 한 번 때릴 때 10만씩 들어가는데 얘 체력이 얼마냐 무려 2억. 타수 많은 직업들도 있는데 그 정도면 할 만하지 않냐고? 한 번 나올 때 두 마리씩 나오고 나메 체력 10줄 남을 때부터 미친 듯이 리젠되는데?
나메는 1페 한정으로 유독 노말이 하드보다 빡치기로 유명한데 그 이유가 다 얘네 때문임. 하드는 체력은 훨씬 많아도 고정 뎀이 아니고 유저 딜 그대로 박혀서 바로 녹일 수 있음
+물어보는 사람이 있어서 추가. 대신 하드는 2페 오르골 연주 패턴이 노말이랑 비교도 안 되게 어렵고 1, 2페 악몽 게이지도 훨씬 빨리 참
심지어 이것들은 단순 길막만 하는 게 아니라 몸빵에 밀격[38]도 한다. 부딪힐 때마다 30%씩 체력 날아가고 동시에 내 캐릭터도 날아감
만약에 파티가 인형 못 잡아서 자명종 위치까지 못 넘어가면 답은 게이지 보고 폭발 타이밍 맞춰서 무적기 쓰는 거밖에 없음
제일 최악은 파이터 집중처럼 극딜 때 한 마리만 때리는 스킬 있는 직업임. 인형이랑 나메 섞이면 내가 인형을 잡으러 온 건지 나메를 잡으러 온 건지도 모름. 49층 파이터로 나메 파티 처음 구할 때 맨날 거절 당했는데 이유 물어보면 다 인형 때문이래. 근데 파이터 “노말 나메 한정”으로 개쓰레기직업 맞음. 나도 본캐로 갈 땐 파이터 칼거절했었다
두 줄 요약: 1. 나메는 두 가지만 조심하면 생각보다 할 만하다
2. 인형 좆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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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ㅍ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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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팁게용 글인가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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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ㅍㅁㅍ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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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지성 파밍 아웃벤 신고 사유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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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팁게용이 아니면 뭐가 팁게용 게시글임? 파밍하고 싶으면 멀쩡한 글에 시비 털지 말고 출석체크나 똑바로 하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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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형 얘기밖에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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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폭발은 거들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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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은 한 줄 요약: 인형만 없으면 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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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ㅇ 인형만 없어도 직업 격차 훨씬 덜해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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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이터 살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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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걸로 파이터가 약코[39]를 하네 ㅋㅋㅋㅋㅋㅋㅋㅋ 양심 좀 챙겨라 파이터 단점 집중 하나뿐이고 극딜 씹넘사에 보스 개사기 직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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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하나가 너무 치명적이니까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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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니까 그게 파이터만이냐고 빡대가리야 당장 프리스트 나이트 엘레나 다 공유하는 단점임 걔네는 파이터에 비해 장점도 없음 멍청한 아군짓 하지말고 걍 다물고 있으셈 밸패 때 박제돼서 욕 먹기 싫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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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따옴표까지 달아놨는데 ㅈㄹ하는 거 보면 쟤 파이터 아님 어그로 ㅁ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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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엘레나가 뭘 장점이 없음 약코 역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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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그로 먹금 좀 하라고 병신들아 아직 밸패 시즌도 아닌데 자연 발화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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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길막 때 무적기 없는 윈런 같은 직업은 폭발 어떡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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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적기 없는 게 직업임? 쓰레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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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레기 비하 발언 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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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런도 무적기 줘 ㅠ 윈런도 무적기 쓸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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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1. 프리스트는 신이다 복창하면서 프리스트 파티원 쫓아다니기(굳은 의지 스킬로 막아짐)
2. “그 시골섭 유저” 급 신컨이 되어 한 대도 안 맞기
3. 걍 뒤져야지 뭐
세 개 중에 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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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섭이라 프리스트 없어서 강제 3번 가야함 2번 존나 자신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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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습하다보면 생각보다 할 만함 하드 솔플 이런 게 어려운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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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격컨 연전연승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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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은 계속 오른쪽 끝에 있으면 사는 거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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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이 나메를 한 번도 안 해봤다는 건 아주 잘 알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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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메가 레이저 쏠 때 왼쪽에서 쓸 때도 있고 오른쪽일 때도 있어여 딱 그 지점만 안전해서 방향 보고 ㅈㄴ 뛰어야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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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적기 쓰고 싶다!” 윈런이 아웃벤에 남긴 글... 가슴 아프고 안타깝다... 딜도 안 되고 속박 스킬도 없는 개쓰레기 직업이 무적기조차 없다라는 것이... 아무리 버프용 강돌벌이 취급이 ㅈ같아도 비테는 무적기 있으니까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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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ㅁㅊ 이걸 이렇게 패러디하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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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똥 묻은 직업이 겨 묻은 직업 저격ㅋㅋㅋㅋ 윈런이 지금보다 더 구려져도 비테는 안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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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테 뒤에도 사람 있어요 비테도 직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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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테가 직업임? 유사직업 수준
[팁과 노하우] 노말/하드 나이트메어 2페이즈 핵심 공략 [97]
피격 당하면 악몽 게이지가 상승하고 / 게이지 100% 채워지면 폭발 / 파훼법은 자명종 부수기 이 기본 패턴은 1페이즈와 거의 동일합니다.
달라지는 패턴은 아래와 같습니다.
1. 토끼 인형
2페이즈에서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1페이즈보다 악몽 게이지가 좀 더 빨리 차긴 하는데, 인형이 없다보니 폭발로 죽을 일은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2. 안개 장판
밟으면 피격 데미지가 들어오는 것은 1페이즈와 동일합니다. 2페이즈에서는 암흑 상태 이상이 추가됩니다. 역시나 할 만한 패턴이지만 여러 번 밟으면 암흑 상태 이상도 중첩되니 그것만 주의하시면 됩니다.
3. 탄막
나이트메어가 사방으로 탄막을 날립니다. 소싯적에 오락실 좀 다녀보신 분들이라면 한 손가락으로도 피할 만한 난이도입니다. 안 다녀보셨어도 한 대 맞는다고 죽는 게 아니기 때문에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단 넉백[40] 효과가 있어 재수 없게 바닥 끄트머리에서 맞으면 낙사할 수도 있습니다. 넉백 저항 있는 직업은 더더욱 크게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4. 오르골 연주
맵 전체 캡처.jpg
2페이즈 공략 핵심입니다. 나이트메어의 체력이 20줄 남았을 때 나오는 패턴입니다. 시스템 메시지로 ‘나이트메어의 심복인 불안이 오르골 연주를 시작합니다. 연주가 끝나기 전에 오르골을 찾아 파괴하세요.’라는 문구가 뜨며, 파티원들 모두가 미로 공간으로 들어갑니다. 오르골 연주는 노말 3분 하드 5분 동안 진행되고 하드가 노말보다 미로의 크기가 훨씬 큽니다.
오르골의 위치는 랜덤인데 찾으면 일반 공격으로 부수면 됩니다. 체력이 많지 않아서 파티원들과 같이 움직이는 것보다 다른 방향으로 가서 빨리 찾아내는 게 훨씬 효율적입니다. 성공하면 나이트메어가 있는 원래 맵으로 돌아오고, 실패하면 파티원의 남은 데카와 상관없이 클리어 실패가 뜹니다.
근래 나왔던 보스 중 가장 어려웠지만 그만큼 가장 재미있었던 보스입니다. 연습하면 생각보다는 어렵지 않으니 다들 도전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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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ㄹㅇ 재밌어보임 이거 하나 하려고 스펙업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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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실제로 해보면 보이는 것보다 훨씬 재밌습니다. 꼭 해보시길
- 이거 보니까 또 ptsd 오네 하드 오르골 연주 처음 가면 개어려움 지금이야 적응했어도; 왜 하드 퍼클이 그렇게 오래 걸렸는지 알 것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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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금한 게 오르골 부수는 거 실패하면 타이밍 맞춰서 무적기 써도 실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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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건 미충족으로 클리어 실패 뜨는 거라 무적기 쓰는 거랑은 아무 상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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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테스트 서버에서는 일부 파티원이 무적기 사용 시 클리어 실패가 뜨지 않는 버그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본섭 넘어올 때 고친 걸로 알고 있어요.
- 아니 그럼 하드 나메 솔격도 아니고 솔플한 놈들은 대체 뭐하는 놈들이냐? 저 미로 혼자 다 찾은 거임? 도랏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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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하드 3인 다니지만 솔플은 그냥 미친 놈들이라고 보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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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드 3인 ㄷㄷㄷ 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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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 보스들은 파티원 숫자에 따라서 패턴 수정도 해줬었는데 나메는 그런 거 없는 거 보면 원래 솔플하지 말라는 의도로 만든 보스임ㅋㅋㅋㅋㅋ 깬 사람들은 그걸 무시하고 어거지로 깬 거고... ㅅㄱ 영상 보면 솔직히 운빨도 있어야 함 제한시간 똑같은데 몇 칸 안에 없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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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킹텐츠 갓모 속도 조절이지 뭐
게시글 댓글과 갓말이가 보내 준 온튜브 영상까지 보고 나자 왜 하드 퍼스트 클리어에 일 년이 넘게 걸렸는지, 왜 사격이 원트클은 어려울 거라고 말했는지 충분히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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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시다. 정시 퇴근 후 저녁을 후딱 먹고 치우고, 그날의 일일 퀘스트를 하고 나면 아슬아슬한 시간. 찬영은 소풍 전날의 어린애처럼 트라이 예정 시간보다 한 시간은 일찍 자리에 앉았다. 긴장을 풀 시간이 필요했다.
예전에 비싸게 주고 샀던 큐세어 게이밍 헤드셋을 꺼내고 보이스 코드 로그인을 했다. 간만에 로그인했으니 ‘로봇이 아닙니다’를 체크하고 그놈의 신호등과 자동차 이미지가 있는 칸을 찾아 누르고….
에이나인을 접은 이후로 한 번도 들어가지 않고 방치했던 계정이다. 메인 화면에서는 에이나인을 같이 하던 사람들이 지금 무슨 게임을 하는 중인지 보여 주고 있었다. 오프라인 중이긴 하지만 기분 더럽게 이탁의 이름까지 보였다.
이것도 다 지워야지. 친구도 삭제하고.
그러고 나선 찬영은 그냥 가만히 기다렸다. 길드 파티는 아니니까 갓말이가 따로 방을 파서 초대 링크를 보내 줄 거였다.
[파티] 갓말이: ㅠㅠ 죄송한데 저 오늘은 보코 못할 듯 헤드셋 고장남
그런데 여덟 시 반쯤 들어온 갓말이는 헤드셋이 고장 나 마이크 사용이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그럼 좀 아쉽긴 해도 꺼냈던 헤드셋은 도로 치워야 할 것 같다. 어차피 메인 오더인 갓말이가 말을 못 하는 상황이라면 보이스 코드를 해 봐야 별 의미가 없으니까.
[파티] 도텐: ㄱㅊ 그럼 굳이 보코 안 해도 될 듯?
[파티] 딜하는프리: 어차피 첫 트라이니까 가볍게 ㄱ하죠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파티] 도텐: 사격만 내가 따로 길드 보코에서 화공해줌
[파티] 갓말이: ㅇㅋㅇ 안 그래도 전 보고 피드백 달라고 했음
[파티] 도텐: 원트클 자신 있지?
[파티] 갓말이: 당연함 사격 소원권 써야댐
[파티] 딜하는프리: 전 이미 재비도 썼음
[파티] 비테마죽: ㄷㄷ 그건 사냥에 쓰시지... 노말에 쓰기엔 좀 아까운 듯
[파티] 딜하는프리: 오늘 뜨는 거 함 보고요ㅋㅋㅋ
[파티] 갓말이: 준비 다 되셨으면 도핑하고 출발할게요
그렇게 찬영을 제외한 모두가 김칫국부터 마시고 자신만만하게 출발하나 싶었는데.
경험자가 제일 확실하다고, 사격이 그렇게까지 말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분명 패턴 설명 글과 공략 영상에서는 그렇게 얌전했고 별것 아니라던 자잘한 패턴들은 여러 개가 겹치니 은근히도 아니고 대놓고 거슬렸다.
[파티] 갓말이: 와씨 안개 장판 딜 은근 쎄네요 용병 다닐 땐 몰랐는데
[파티] 딜하는프리: 힐 없으면 저도 몇 번 죽었을 듯;; 프리조아
[파티] 도텐: 포션 풀로 돌리는 중
[파티] 딜하는프리: 다들 약 드실 시간입니다
힐링 패턴 수준이라던 게 그 정도니 악몽 게이지 폭발과 토끼 인형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사격은 처음의 링크 말고도 나이트메어 공략 글을 몇 개 더 보내 줬는데, 어떤 글이든 수위의 차이는 있어도 그 두 패턴의 욕은 빠지지 않았다. 직접 겪어 보니 그럴 만하다고밖에 못하겠다. 여기저기 실밥이 터져 있는 토끼 인형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릴 때마다 키보드를 누르는 소리가 점점 더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파티] 비테마죽: 아니 미1친 게임 진짜
[파티] 비테마죽: 어이가 없네
[파티] 도텐: 난 대체 왜 죽은 거임?
[파티] 갓말이: 방금은 게이지 터지신 듯
[파티] 비테마죽: 제가 전이시켰음 ㅈㅅ
[친구] 사격: ㅋㅋㅋ 나메는 머리 위 계속 보고 있어야 함
일단 왜 죽었나 싶으면 그냥 죄다 게이지 폭발인 건 기본이고.
[파티] 앞으로맑음: 아 이 나쁜 아이 진짜
[파티] 갓말이: 아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파티] 갓말이: 아 웃으면 안 되는데 죄송요 방금 맑음님 날아간 거 너무 홈런 같았음
[파티] 앞으로맑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ㅠ 웃으셔도 돼요 저도 죽어놓고 순간 어이없어서 찐 웃음 터짐
[파티] 도텐: 아수라 넉백저항 있지 않음?
[파티] 앞으로맑음: 있는데 풀유지가 안 됨 ㅜㅜㅠ
[파티] 딜하는프리: 저게 저렇게까지 날아가네
[파티] 도텐: 아 넉백 ㅈ같네 나도 맞음
[파티] 도텐: 도적은 왜 넉백 저항 안 주냐
[파티] 딜하는프리: ㄹㅇ 법사도 왜 안 줌? 전사궁수님들 꿀 빠시네요
[파티] 도텐: 그냥 저것들 다 너프해야되
[파티] 딜하는프리: ㅇㅈ 윈런도
[파티] 갓말이: 꼬우면...아시죠? ㅎㅎ
[파티] 딜하는프리: 이걸 꼬님키[41] 시전 ㄷㄷㄷ
[친구] 사격: 윈런은 또 왜죠
인형은… 그냥 욕밖에 안 나왔다. 이걸 개XX라고 한 단어로만 끝낸 사람들이 더 대단했다. 밀격 한 방에 캐릭터가 축구공마냥 맵 저 끝까지 날아가질 않나. 들어오는 데미지도 절대 적지 않았다.
나이트메어한테 죽었으면 쪽팔리지라도 않겠다. 어그로는 어그로대로 인형으로 다 끌리지, 왼쪽 인형이 넉백 하면 날아가서 오른쪽 인형에 몸박뎀 맞고 뒤지지, 길막이란 길막은 다 해서 반대쪽에서 쓰는 레이저는 피하지도 못하지.
심지어 연계 직업인 아수라는 서버 렉이나 컨트롤 미스로 연계 실패라도 했다간 바로 앞으로 튀어 나가 인형 몸박뎀에 맞고 죽기 일쑤였다.
[파티] 앞으로맑음: 아니 예상은 했는데 인형 정리 생각보다 더 안되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파티] 도텐: 지금 화면 봐봐 걔네 때릴 자리도 없어
[파티] 도텐: 나 진짜 열심히 패고 있는데 이거 맞는 거임?
[파티] 갓말이: 저도임 엄청 타수 적은 직업 구성도 아닌데 뭐가 문제지
[파티] 도텐: 데카 두 개 남은 거 실화냐...
[파티] 갓말이: 지금 죽은 거 다 비슷할 걸요? 1-2개
[파티] 갓말이: 전 일단 1개임
[파티] 비테마죽: ㄴㄴ 도텐님 빼고 다 1일 듯
[파티] 도텐: ㅇㅎ
남은 체력은 아직도 열일곱 줄이다. 마흔 줄에서 이제 절반 넘게 깐 셈이었다. 아무래도 인형이 문제인 것 같았다. 열 줄을 남겼을 때부터 인형 리젠이 더 악랄해진다는 걸 고려하면 절반이라는 수치가 크게 의미 있는 것도 아니었다.
[친구] 사격: 님들 원트클 각은 보이시나요
[친구] 딜하는프리: 놀랍게도 도텐님 빼고 다 데카 1임
[친구] 도텐: 나도 방금 1됨
[친구] 도텐: 이거 깰 수는 있는 거임? 1페만 해도 이 정도면
[친구] 도텐: 2페가 더 어렵다던데
[친구] 사격: ㅋㅋㅋㅋㅋㅋ 처음엔 다 그럼
[친구] 사격: 그러니까 원트클하면 형 소원 들어준댔지
[친구] 사격: 노말 나메는 1페만 넘기면 쉬워 ㄱㅊ 그리고 보코 없이 들어갔잖음
[친구] 갓말이: 너무 쉽게 생각했나봄 ㅠㅠ
[분노한 나이트메어가 모두에게 악몽을 선사합니다.]
채팅을 보고 웃고 있는데 시스템 메시지로 또다시 즉사기 예고가 떴다. 아 안 돼. 아까 전에도 이걸로 우수수 죽었는데. 남은 데스 카운트는 파티원들 모두 1이었다.
[파티] 갓말이: 님들 레이저여
[파티] 딜하는프리: 제발 오른쪽 제발 오른쪽 ㅈㅂㅈㅂ
[파티] 비테마죽: ㅋㅋㅋㅋㅋ ㅈ댓다...ㄹㅇ 악몽
[파티] 앞으로맑음: ㅠ 너무함 진짜
나이트메어는 정말 야속하게도 왼쪽에 자리를 잡았다. 파티원들은 찬영을 포함해 죄다 오른쪽에 있었고. 가운데 인형들이 들어차 있어 바로 왼쪽으로 넘어갈 수도 없다. 이 악물고 인형을 패 봐야 이미 늦었다.
[파티] 딜하는프리: 아니 하필 왼쪽이냐고 왜
[파티] 딜하는프리: 나메 인성 실화냐?
일 초… 이 초…. 아껴 둔 무적기도 순간일 뿐이었다. 오 초간 지속되는 공격에 더는 못 버티고 찬영의 캐릭터가 전사했다.
[파티] 앞으로맑음: 저 아웃요ㅠ
[파티] 딜하는프리: 주님 한 놈 더 갑니다
[파티] 비테마죽: ㅋㅋㅋㅋ 다 비슷하게 나갈 듯여
[파티] 도텐: 얘들아 20분 동안 수고했고 지옥에서 보자
[파티] 갓말이: 지옥불이 아주 따뜻하네요
파티원들 모두 비슷하게 아웃당했기 때문인지, 나와 보니 다들 보스 대기 맵으로 이동한 상태였다.
[친구] 도텐: 이걸 이렇게 다 죽네
동명이 허무하다는 듯 말했다.
[친구] 갓말이: 그 와중에 다섯 명 다 오른쪽에 있던 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개웃기네여 ㄹㅇ
[친구] 딜하는프리: 절대 터져죽고 싶지는 않은 의지...
[친구] 사격: ㅋㅋㅋㅋㅋ 다들 고생했음
[친구] 도텐: 어감부터 별로임 폭발사
[친구] 도텐: 이게 전체이용가 겜이 맞긴 하냐
[친구] 사격: 그래서 원트클 쌉가능하시다고 한 도텐님은 어디 감?
[친구] 도텐: ;;야 그래도 내가 젤 오래 살았어
[친구] 사격: 보은이랑 2초 차이 아님? ㅋㅋㅋㅋㅋㅋㅋㅋ 다 비슷하게 나온 것 같은데
[친구] 도텐: 어허
[친구] 도텐: 2초면 세상을 바꿀 수도 있는 시간이지
[친구] 갓말이: 고건 인정
[친구] 도텐: 쟤 아까 보코하면서 ㅈㄴ 웃더라
[친구] 갓말이: 그거 형 보고 웃은 거래요
[친구] 도텐: 아 그런 거야? ㅇㅋ
[친구] 사격: ㅋㅋㅋㅋ ㅇㅇ
[친구] 앞으로맑음: 와 근데 진짜 너무 재밌었음 홈런 당해도
악몽 게이지도 계속 차고, 전이에, 인형은 인형대로 안 잡히고. 그래서 레이저 패턴이 뜰 때마다 전멸당하고. 개판이었다는 게 초행 입장에서도 보이는데 스트레스나 부담이 느껴지기보다는 그냥… 웃기고 즐거웠다. 게임 시스템 문제로 보스 하루 입장 제한이 있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경매장에서 물약을 또 사 먹더라도 이 파티 멤버라면 바로 다시 가고 싶은데.
[친구] 갓말이: 저도 전에 갔을 땐 걍 그랬는데 이 파티가 훨 재밌는 듯
[친구] 사격: ㅎㅎ 맑음님도 같이 가시길 잘했네요
[친구] 앞으로맑음: 그러게요 ㅋㅋㅋ 또 가고 싶음
[친구] 도텐: 내일 바로 다시 ㄱㄱ
[친구] 갓말이: 내일부터는 연습 모드도 가보죠
그 생각을 찬영만 했던 건 아닌 모양이다. 내일은 연습 모드도 갈 테니 오늘처럼 한 번 만에 끝나지도 않겠지. 그게 더 좋았다.
예상했던 대로 다음 날 다시 간 트라이는 첫날보다 훨씬 나았다. 파티원들끼리 인형도 생각보다 별 거 아니라거나, 좀 있으면 충분히 깰 것 같다고 허세 섞인 말도 나올 정도였으니까.
“잘 들리세요?”
<네, 완전요.>
그리고 세 번째 트라이부터는 보이스 코드를 시작했다. 참여 멤버는 파티원 다섯을 포함해 어느새 당연하다는 듯 껴 있던 사격까지 여섯이었다. 마이크에서 자꾸 튀는 소리가 난다는 비테마죽이나 조용히 공유되는 화면만 보겠다는 사격을 제외하고는 마이크도 전부 켰다.
[친구] 사격: 맑음님은 왜 이렇게 바로 살아나세요 ㅋㅋㅋㅋㅋㅋ
[친구] 사격: 거의 오뚜기
마이크를 쓰는 건 처음이라 목소리가 어떻게 들릴지 신경이 쓰였는데, 나중엔 화면 공유로 플레이하는 게 바로바로 보인다는 게 더 긴장됐다. 물론 시점은 동명이나 갓말이의 화면이라 떨어져 있으면 자세히 보이지도 않는 데다가, 무엇보다 사격이 요청하지 않은 피드백을 멋대로 하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아 곧 마음을 놓았지만.
“계속 딜 넣으려고요. 죽어 있으면 딜 못 넣으니까.”
찬영이 머쓱하게 말했다.
에이나인에서는 죽어 있으면 욕을 먹었다. 사실 레비아와 여러 가지로 상황이 달라 예민하게 굴 수밖에 없기도 했다. 부활이야 남은 라이프 개수에 한해 언제든지 할 수 있었지만, 부활 장소와 보스가 있는 곳이 너무 멀어 파티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죽자마자 부활해서 뛰어오는 것이 당연한 매너였다. 그러다 보니 레비아에서도 바로 살아나는 게 맞는 줄 알았고.
<진짜… 맑음님이 제가 이 서버에서 본 뉴비 중에 제일인 것 같아요. 사격님이 왜 그러시는 줄 알겠음.>
<이쯤 와서 솔직히 시간 꽉 채워서 살아난 적 있다, 손?>
<난 쉰다 생각하고 가끔 손 놓는데?>
<사실 저도 가끔 그래요.>
그런데 갓말이와 동명의 말을 듣고 있자니 레비아는 그런 문화가 아닌 것 같았다. 아니, 그럼 나만 혼자 계속 신경 쓰고 있었던 건가? 찬영은 어리둥절해졌다.
[친구] 사격: 원래 초반 트라이 때는 생존이 우선이고 극딜 때만 딜 넣어도 돼요 ㅋㅋㅋ
뒤이은 사격의 말이 종지부를 찍었다.
“아, 진짜요? 다른 게임도 그렇고 딜 안 하고 눕클[42]하는 날먹 욕 엄청 하길래….”
[친구] 사격: 아직 트라이라... 패턴 좀 느긋하게 보고 계셔도 괜찮아요 대신 극딜 때는 빡딜 연습
하기야 에이나인과 레비아는 같은 MMORPG 장르여도 그 스타일이나 유저의 성향이 완전히 다른 게임이었다. 레비아에 에이나인의 룰을 자꾸 갖다 대 봐야 의미도 없을 것이다.
<맞아요. 저희 솔직히 딜도 좀 넘쳐서 상관없음. 그리고 그냥 노말 나메잖아요. 하드팟도 아닌데 무조건 깨야 하는 것도 아니고.>
<쟨 지금 혼자 뭔 소리냐? 깨는 건 무조건 깨야지.>
<아, 또 우리만 진심이었네. 앞으로는 갓말이 님 보고 딜 좀 더 넣으시라고 해야 할 듯.>
찬영의 부담을 덜어 주려다 나온 말이라는 건 알 텐데, 다들 건수 잡았다 싶었는지 모른 척 갓말이를 놀려댔다. 갓말이가 질 수 없다는 듯 딜하는프리에게 반격했다.
<딜프리 님 얼마 전에 쌍전 스태프 사셨다는 소문이 있던데요.>
<힐러는 힐러답게 힐이랑 보조 해야죠. 전 지력 둘둘 하고 심판자 열심히 쓰겠습니다.>
이쪽은 어림도 없지 모드다.
찬영도 파티 플레이를 하면서 알게 됐지만 심판자는 프리스트의 밥줄이자 트라이 파티의 기적 그 자체인 각성 스킬이었다. 심판자를 사용하면 빛나는 진이 프리스트의 주변에 생기는데, 이 구역 안에 들어간 파티원은 보스 공격 시 데미지나 치명타 확률, 치명타 데미지 같은 버프를 받을 수 있었다.
다만 버프의 구체적인 수치는 프리스트의 지력 스탯에 비례했기 때문에, 스펙이 낮은 프리스트 중에는 무기류 추가 옵션을 마법 공격력이나 보스 공격 시 데미지, 방어력 관통 같은 것들 대신 지력으로 두르는 경우도 있었다. 닉네임만 봐도 딜하는프리에겐 해당 사항 없을 것 같은데 시치미를 뗀다.
[친구] 사격: ㅋㅋㅋㅋㅋㅋ 닉값 못하시네요 딜하셔야지
<지금은 힐만 하기도 벅차더라고요.>
<레비아에 딜탱힐이 어디 있음? 다 딜러지.>
<그럼 힐도 못하고 딜도 안 되는 딜러는 어떡함?>
<그거 비테 얘기임?>
여기서 비스트테이머는 또 왜 나와? 아무리 웃음 벨이라고 불릴 정도로 장점이 거의 없는 직업이라지만. 이런 얘기를 하면 또 어디선가 비테마죽이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친구] 비테마죽: ?
[친구] 비테마죽: 지금 누가 비테 소릴 내었어?
[친구] 딜하는프리: ㄷㄷㄷㄷㄷ 거의 마죽님 소환 버튼
혹시나가 역시나다. 진짜 알림 같은 거라도 해 뒀나? 레비아 채팅에 키워드 알림 기능이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반응 속도였다.
[메가폰] 비테마죽: 비테 상향 기원 제발
[메가폰] 빨강색: 어림도 없지 바로 5연속 너프 가즈아
[친구] 갓말이: 비테 이미 너프만 3연속 아닌가?
[친구] 사격: 처음에 성능 괜찮긴 했는데 3연속이 좀 심했음
[친구] 빨강색: 세번째 너프 때 관짝행 가고 부캐 바로 손절함
어쩐지 평소에는 조용한 사람이 비스트테이머 얘기에는 유독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더라니. 애정으로 키우는 본캐 직업이 3연속 너프만 당했다면 보살이라도 고슴도치마냥 예민한 사람이 될 법하다. 찬영처럼 아수라 같은 적폐 직업을 키우고 있다면 더더욱 입을 다물고 상향 응원만 해 줘야 마땅했다.
[메가폰] 쑵읒: 비테는 웃고 있다.. 비테는 몇초 늦게 출발하더라도 우월한 차이로 따돌릴 수 있는... 아예 종자가 다른 놈이다. 아수라가 적폐라고 아무리 날뛰어봐야 비테 앞에서는 한낱 경주견일뿐... 결국 최강 직업은 비테가 된다
[메가폰] 함만드셔보세요: 이제 그만 웃고 출발 좀 해라 경주 한참 전에 끝났다
[메가폰] 비테마죽: -이상 다음 너프 직업 명단-
[메가폰] 비테가최고야: 비.테.조.아.비.테.채.고.
[메가폰] 비테가최고야: 상향 안 해도 조아♥ 평생 함께 해
[친구] 비테마죽: ;;
[친구] 비테마죽: 제가 졌음... 아무리 해도 조아충은 못 이김
[친구] 앞으로맑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ㅠㅠ
그래도 분통을 터뜨리다 항복 선언을 하고 있는 비테마죽을 보고 있자니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 * *
그 뒤로도 나이트메어 트라이는 내내 즐겁기만 했다.
보스 레이드로만 치면 여러 가지 기믹[43]이 많은 에이나인도 재미있었지만, 에이나인의 보스 레이드는 공대원 중 단 한 명이라도 실수하면 클리어에 실패하거나 다른 공대원도 위험해지는 패턴이 너무 많았다. 어쩌다 보니 거의 이탁의 공대만 따라다녔던 찬영은 이미 빡숙인 사람들 사이에서 매번 눈치를 살펴야 했다.
생각해 보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이탁이 뭐라 말하든 간에 다른 길드원들과 헤딩팟이나 트라이팟도 다녀 보고, 대화에도 자주 참여했어야 했는데.
그에 비하면 지금 파티원들은 다들 클리어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아니면 길드 위주 파티여서 그런지 실수해도 웃고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찬영을 제외하고는 모두 같은 아군 길드였는데, 사격의 제안대로 넘어갈까 고민할 만큼 즐거웠다.
“새삼 파티에 저 빼고 다 아군 길드네요.”
[친구] 사격: 그런 김에 올 길드팟 어떠세요
[친구] 사격: 잘해드릴 수 있어요
[친구] 사격: 파티 스크린샷 찍을 때 길드명도 통일돼서 깔끔하게 보이고
게다가 사격은 은근히 틈새 영업을 잘했다. 혹시 영업 쪽으로 일하시는 분인가 잠깐 의심했을 정도였다.
<맑음님 디자인 쪽 일하시면 바로 넘어왔다 이거.>
아, 이러면 진짜 고민된다니까…. 찬영은 모르는 척 대꾸했다.
“근데 아군은 추천제 아니에요?”
[친구] 사격: 길마 프리패스 언제든 가능합니다 ㅎㅎ
<근데 형이 이렇게 찍어서 대놓고 영업하는 건 진짜 처음인 것 같은데.>
“그럼 제가 선택받은 건가요?”
<어…. 선택이라 해도 되나, 이걸?>
<그냥 개미지옥에 더 가깝지 않나요?>
갓말이의 말이 진짜인지 단순 띄워 주기용인지 모르겠지만 기분은 좋았다. 개미지옥일 뿐이라고 딜하는프리가 겁주듯 말했지만, 이런 지옥이라면 나쁘지 않지.
아군 길드원들과 친해지는 것과 별개로 찬영이 몸담고 있던 뉴비 길드와는 점점 사이가 나빠졌다. 정확히는 또치와양치와.
또치와양치는 이제 kin이 문제가 아니라 그냥 찬영이 싫은 것 같았다. 아니면 반대로 너무 좋아서 돌아 버렸거나.
사냥도 안 하고 하루 종일 메가폰만 보는지 파티원들이 메가폰으로 찬영을 언급할 때마다 ‘아군 길드원들이랑 친하시네요’ 하며 따박따박 비꼬질 않나.
딜을 측정하고 싶어서 빨간 허수아비를 깔아 줄 사람을 찾았는데, 지원하고 나서길래 웬일인가 했더니 뜬금없이 ‘딜 넣는 연습 좀 많이 하셔야겠어요’ 같은 말이나 하질 않나. 파티원들도 내내 지켜보고 있던 사격도 지적하지 않는 딜 사이클을 또치가 뭐길래 평가하는지 몰랐다. 같은 직업조차 아닌데.
그런 상황에도 찬영은 침묵했다. 길드야 없다 치면 그만이고, 길드 스킬만 대충 쓰다가 정말 최악으로 치닫는다면 그때는 kin이 걸리더라도 길드를 나오면 된다.
물론 kin은 발이 넓었으니 새로운 길드를 구할 때 뒷말이 좀 나올 수도 있겠지만…. 찬영도 충분히 버틸 만큼 버텼다. 이 정도면 kin에 대한 의리는 지킨 셈이다. 한참 어린 애니 이해해 주자 싶어서 또치와양치를 말없이 뒀어도 이 이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는 않았다.
[길드] 또치와양치: kin님 저 보조 샀어요 ㅎㅎ [다크니스 오브]
또치와양치가 보조 무기를 새로 샀는지 띄엄띄엄 올라오던 길드 채팅 목록에 얘기가 보였다. 찬영이 아이템 링크 창을 클릭했다.
다크니스 오브
전설 아이템
워록 착용 가능
지력 +15
마법 공격력 +5
추가 옵션
마법 공격력 +13%
방어력 관통 +15%
보스 공격 시 데미지 +15%
초월 옵션
마법 공격력 +7%
지력 +4%
옵션 색깔과 수치를 보니 위는 전설이고 아래는 희귀다. 초월 옵션이 희귀 등급 이하면 보통 첫 줄 물리 공격력이나 마법 공격력만 보는데 지력까지 나름 야무지게 챙긴 것 같았다. 두 줄 다 마법 공격력이었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원래 초월 옵션 유효 두 줄은 등급을 막론하고 극악의 확률로 유명하니까. 무자본 대학생으로 알고 있는데 그동안 골드를 열심히 모았나 보다.
[길드] kin: 축하드려요 또치님
[길드] 두치팡: ㄷㄷ 전설보조
[길드] 또치와양치: 큰맘먹고 14억 주고 전설 삼 데아 도전하려고 ㅋㅋㅋ
[길드] 또치와양치: 그러고 보니 맑음님 보조도 전설 아니셨나
…?
시큰둥하게 길드 채팅을 보고 있던 찬영이 의자를 앞으로 당겼다. 또치와양치는 kin이 볼까 봐 무서워서인지 평소 길드 창에서는 절대 찬영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왜 이름을 꺼내지?
게다가 찬영의 보조 무기는 시작할 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직접 만들었기 때문에 전설 등급도 아니다. 예전에 몇 번 말한 적이 있기 때문에 또치도 모르진 않을 거였다. 미심쩍은데. 설마.
촉이 온다. 단번에 느꼈다. 이건 찬영을 후려치고 스스로를 띄우기 위한 고도의 계략이다. 또치와양치가 이다음엔 무슨 말을 할지도 대충 예상이 갔다.
[길드] 앞으로맑음: 아
[길드] 앞으로맑음: 전 아직 보조는 영웅이어서 ㅎ
그런데도 또치와양치의 의도대로 움직여 줄 수밖에 없는 이 상황이 정말 싫다….
[길드] 또치와양치: 첨부터 전설 사시지 왜 그러셨음; 비효율적이게
[길드] 또치와양치: 무기류는 전설로 갖고가야 하는 것 같아요
[길드] 또치와양치: 저 이제 줄당 3억씩 뜨던데 ㅋㅋ
그래, 바로 이렇게.
또치는 후려치기와 빙썅 자랑질을 시전하고도 진심으로 안타까운 척 연기를 했다. 정말 지랄도 가지가지 한다…고 밖에 말이 나오지 않았다. 존나 씨발 어쩌라고다. 찬영은 파르르 떨리며 한쪽만 올라가는 입꼬리를 내리려 애썼다. 어디 아직 민증 잉크도 덜 말랐을 갓 스무 살 말랑이가 말이야. 암만 게임 안이라지만 대한민국은 유교 국가 아니었나? 저도 모르게 내재되어 있던 꼰대 끼가 멋대로 튀어나오려 했다.
[길드] 앞으로맑음: 네 안 그래도 보고 있습니다. 사려고요
일부러 딱딱하게 대꾸했다. 보고 있긴 뭘 보고 있어. 이제부터 보기 시작할 거다. 엔드급 보조 가격이 얼만지는 모르지만 비싸 봐야 몇백만 원 안에서 끊기겠지. 그동안은 더 세질 필요도 욕심도 없어 내버려 뒀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려 또치가 전설 보조를 샀다는데 찬영이 고작 영웅인 건 자존심이 상했다.
유치한 기 싸움이라는 건 안다. 그러나 또치에게만큼은 나잇값 못하는 어른이 되더라도 직장인이 원한을 품으면 어떤 짓까지 할 수 있는지는 보여 주고 싶었다.
경매장에는 깔끔한 매물이 없어 일단 골드 마켓에서 100억 골드부터 거래했다. 현금으로 백만 원이 훌쩍 넘어가는 돈이었다. 아수라는 인기 직업인데 신 캐릭터이기까지 해서 보조 무기 매물이 없고 비싸기로 유명했다. 적어도 70억 이상은 있어야 쌍 전설 정 옵션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메가폰] 앞으로맑음: 아수라 쌍전 보조 삽니다 링크 귓
[귓속말] 전섭매물매입51>> [타임리스 펜던트] 95억
[귓속말] 프리베>> 보공공도 사시나요 [타임리스 펜던트] 64억입니다
귓속말로 아이템 링크와 가격이 걸려 왔다. 위쪽은 닉네임만 봐도 시골 서버에서 드물다는 장사꾼이다. 아래쪽은 아마 접으려는 일반 유저 같고.
타임리스 펜던트
전설 등급
요구 레벨 100
직업 아수라
힘 +15
물리 공격력 +5
추가 옵션
보스 공격 시 데미지 +20%
보스 공격 시 데미지 +15 %
물리 공격력 +10%
초월 옵션
물리 공격력 +13%
보스 공격 시 데미지 +15%
타임리스 펜던트
전설 등급
요구 레벨 100
직업 아수라
힘 +15
물리 공격력 +5
추가 옵션
물리 공격력 +13%
물리 공격력 +10%
보스 공격 시 데미지 15%
초월 옵션
물리 공격력 +13%
방어력 관통 +15%
급하게 메가폰을 올린 것 치고 문의가 온 보조들의 옵션은 엄청나게 좋았다. 특히 95억짜리가. 마음 같아선 장사꾼 매물은 사 주고 싶지 않았지만 추가 옵션과 초월 옵션의 차이가 너무 컸다.
원래 레비아 무기류 전설 옵션에서 정 옵션은 보스 공격 시 데미지, 방어력 관통, 물리 공격력/마법 공격력 이 세 가지였다. 게임 시작 후 플레이어가 일정 이상의 스펙을 갖추면 그중에서도 상위 옵션이 나뉘었다. 가장 좋은 옵션은 보스 공격 시 데미지, 다음이 물리 공격력/마법 공격력, 마지막이 방어력 관통 순이었다.
방어력 관통은 아예 없는 옵션과 마찬가지로 취급하는 사람도 있었다. 실제로는 방어력 관통도 나쁘지 않다고들 하지만, 교환이 가능한 MMORPG에서 한번 인식이 생기고 시세까지 굳어져 버리면 실제 효율이 얼마나 좋은지는 별 의미가 없는 법이다.
그러니까 결국 프리베의 보조도 나쁘진 않지만, 비교하자면 장사꾼의 보조가 종결 옵션이라는 뜻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95억은 좀 비싼데…. 장사꾼 매물인 걸 감안했을 때 정가보다 최소 5~10% 이상은 비싸겠지.
[귓속말] 전섭매물매입51<< 90억 가능한가요
[귓속말] 전섭매물매입51>> ㄴㄴ 안 됨 저 카드값 갚아야 함
[귓속말] 전섭매물매입51<< ㄷ
카드값 얘기는 너무 TMI 아닌가? 어쨌든 협의 불가란 소리였다. 찬영이 고민하는 낌새를 보이자 급했는지 장사꾼이 한 번 더 말했다.
[귓속말] 전섭매물매입51>> 앞으로 이 서버에 이 정도 매물 절대 안나올걸요
[귓속말] 전섭매물매입51>> 저도 이거 레전섭 아니면 이 가격에 안 팔았음
당연히 그렇겠지. 존버 해도 안 팔린다는 걸 아니까. 역시 장사꾼들도 포기한 시골 서버다웠다.
[귓속말] 전섭매물매입51<< 흥정은 아예 안 받으시나요
[귓속말] 전섭매물매입51>> 네 안 받아요
[귓속말] 전섭매물매입51<< ㅇㅋ 그럼 교환 ㄱ
그래. 어차피 지를 거. 몇억 싸게 사겠다고 레전드 서버에서 이 정도 매물을 또 기다리는 것보단 호구가 되는 게 나았다.
인벤토리에 들어온 쌍 전설 보조 무기를 본 찬영이 친구 채팅창을 켜 아이템 링크로 올렸다.
[친구] 앞으로맑음: 저 보조 삼 [타임리스 펜던트]
[친구] 비테마죽: ?
[친구] 사격: 나이트메어 때문에요?
[친구] 앞으로맑음: 그냥 보스 다니는 거 재밌어서 열심히 하려고요 ㅋㅋㅋ
‘길드원이 보조 무기 가지고 빡치게 해서요….’라고 대답할 순 없으니 대충 둘러댔다. 정작 보여 주려 했던 또치와양치는 자리를 비웠는지 아니면 이 악물고 외면하는 중인지 아무 말이 없다.
[친구] 딜하는프리: 오 이제 맑음님 캐리 ㅆㄱㄴ
[친구] 도텐: 보조 산 김에 오늘 바로 ㄱ 어떰
[친구] 갓말이: 헐 전투력 얼마나 오르심? 추옵 초옵 다 깔끔한데
[친구] 딜하는프리: 일단 보조로만 보뎀 50% 오른다는 게 미쳤음
[친구] 앞으로맑음: 영웅고급에서 쌍전설로 바꾼 거라 좀 많이 오르긴 했을 듯요
[친구] 앞으로맑음: 근데 보뎀이 대부분이라... 허수아비나 보스 쳐봐야 알 것 같아요
[친구] 갓말이: 그 보조면 세에레도 가실 것 같은데
[친구] 갓말이: 멀지 않았다 맑음님이 세에레 트라이하실 날
[친구] 사격: 생각만 있으시면 모시러 가지
[친구] 앞으로맑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헉
[친구] 앞으로맑음: 근데 다른 템이 없어서 ㅋㅋㅠ
보조 무기만 있다고 당장 엔드 콘텐츠가 되나. 방어구는 둘째치고 무기도 바꿔야 하는 수준이었다.
[친구] 도텐: 좀 그렇긴 해 이게 겜이냐
[친구] 사격: ㅠㅠ
[친구] 갓말이: 그래도 그 보조는 진짜 잘 사신 듯 매물 있을 때 무조건 업어오는 게 맞는 거임
[친구] 비테마죽: 맞음 비주류직업 보조 괜찮은 거 사려면 몇 주는 봐야 함
[친구] 갓말이: 서버가 문제긴 함
[친구] 비테마죽: 전 직업도 문제임
[친구] 딜하는프리: 반박불가ㄷ
[친구] 비테마죽: ㅋㅋㅋ
잘… 산 게 맞겠지? 휑해진 은행 앱 속 급여 통장 잔고를 보자니 가슴까지 휑해졌다. 그래도 적금은 다 하고 있으니까. 내일부터는 팀장이 뭐라 하든 보조 무기를 생각하며 돈 벌어야지. 찬영이 다짐했다.
그렇다고 바로 다음 날부터 이러는 건 너무한데.
정해진 출근 시간 삼십 분 전부터 출근한 자리는 분위기가 영 좋지 않았다.
[정찬영: 혹시 팀장님 무슨 일 있으셨어요?]
눈치를 보던 찬영이 맞은편에 앉아 있는 오 대리에게 슬쩍 사내 메신저를 보냈다.
[오재원: 글쎄]
[오재원: 암튼 오늘 팀장님 분위기 안 좋으니까 적당히 사리는 게 좋을 듯]
[정찬영: 저 얼마 전에 인상 건 메일 보내드린 거 확인해달라고 말씀 드려야 하는데...]
[오재원: 괜찮겠어?ㅋㅋ]
[정찬영: 일단 부딪혀 보겠습니다 ㅠ]
[오재원: 화이팅 ㅎ]
본인 일은 아니라고 웃는다. 그렇다고 검토 요청을 마냥 미뤄 둘 수도 없었다. 당초 통보받은 가격 인상 적용 시점보다 한 달이나 지났으니까.
[정찬영: 팀장님. 정찬영 사원입니다. 잠깐 괜찮으실까요?]
읽음 표시가 뜬 지 오래인데 대답도 안 했다. 일부러 기다렸는데. 찬영이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정찬영: PE 인상 공문 온 건 관련해 보고 드린 대로 처리해도 될까요?]
[이상욱: 갑자기 무슨 공문]
[정찬영: SL케미칼에서 온 인상 건입니다.]
[이상욱: 난 그런 소리 못 들었는데]
[정찬영: 지난 주 목요일에 최종 자료 정리해 메일로 보내달라고 하셔서 송부드렸습니다.]
이럴 줄 알았지. 그래서 메일과 라잇톡, 메신저를 모두 남겼다. 하나로는 안심할 수 없다. 맨날 못 봤다고 하는 인간이니까.
[이상욱: 안 왔어 다시 보내]
[이상욱: 인상 건은 별도 보고 했어야지]
혈압이 오른다. 안 오긴 뭐가 안 와. 셋 다 안 왔을 리도 없고. 게다가 분명 그때 바쁘다고 나중에 읽겠으니 메일로 남겨 놓으라고 하는 소릴 들었다. 그리고 언제는 중요한 건은 메일로 하라더니. 대체 메일도 안 볼 거면 왜 맨날 그런 소리를 하는 건지.
[정찬영: 네. 다시 메일 전달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마음속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찬영은 건물주도 대표의 아들이나 손자도 아니니까. 의미 없겠지만 다음부터는 녹음도 해야지. ‘언젠가 진짜 때려치운다….’ 하면서도 찬영은 고개를 숙였다. 보조 무기까지 샀으니 입 다물고 열심히 벌어야 했다.
* * *
살얼음 같던 오전을 지나 점심시간이었다. 홀로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던 찬영의 앞으로 경영지원팀 동기, 수연이 앉았다. 인사도 전에 대뜸 소리를 낮추고 ‘그 팀 분위기 요즘 별로죠?’ 묻는다.
무슨 의도로 물어보는 거지?
회사에서 말을 할 때는 항상 신중해야 한다. 찬영은 일단 씹고 있던 음식을 목 안으로 넘기고, 최대한 느리게 대답했다.
“그냥…. 오늘 팀장님 기분은 좀 안 좋으신 것 같더라고요.”
“그쪽 팀장님 아마 며칠 전에 본부장님한테 깨져서 그러실걸요.”
“아.”
그럼 그렇지. 관리 본부장이 구매팀 팀장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갈군다는) 얘기는 원래 회사에서 유명했다. 이번에도 어떤 이유로든 한 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주위를 슬쩍 보던 수연이 좀 더 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그런 거 있잖아요. 비슷한 분야 기업 임원들끼리 모이는 자리.”
“네.”
“저번 주말에 그 자리에서 원가 관련해서 얘기가 나왔는데, 그때 본부장님이 좀 창피당하신 모양이에요. 어떻게 됐을지는 사원님도 대충 예상 가시죠? 알고 보니 오해가 있던 거더라, 구매팀은 잘하고 있더라. 뒤늦게 그런 말 들어 봐야 이미 팀장님 기분은 다 상하신 거죠.”
‘근데 그걸 왜 아래 직원한테 화풀이하신대요? 만만해서?’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사회인은, 더군다나 어제 백만 원 넘게 게임에 지른 사회인은 더더욱 인내해야 한다. 수연이 가끔 눈치 없이 굴 때가 있긴 하지만 당사자도 아니고.
그래서 찬영은 밥을 먹는 내내 ‘네…. 네…. 그랬군요….’ 같은 주인공 대각선 자리 직장인 4 같은 대답밖에 할 수 없었다.
어쨌든 오늘은 빠르게 퇴근해야 했다. 갓말이가 이번 주는 오늘 일곱 시 반에만 트라이가 가능할 것 같다 했기 때문이었다.
팀장한테 메일 다시 보내서 이번엔 확실히 컨펌 받았고, 잡다한 데이터 정리도 다 끝냈고.
그러나 오늘따라 유난히 엉덩이가 무거워 보이는 팀장은 퇴근 시간에서 삼십 분은 지났는데도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 더 이상 지체됐다간 뭘 타고 가든 트라이 지각이었다.
갈등하던 찬영이 눈치를 보며 몸을 슬쩍 일으켰을 때였다. 팀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저 움직임은… 라떼는 말이야 시전하기 직전의 신호인데. 마음이 불안하다.
“찬영이는 벌써 퇴근하나?”
“네?”
“에이, 화장실 다녀오려나 보죠.”
“그렇지?”
이게 다 뭔 소리지.
“예에…. 그냥 물 마시려구요.”
찬영은 이를 아득바득 물고 한숨 같은 말을 내뱉었다. 들었던 가방을 소리 없이 내려놓고 정수기로 가 물을 가득 떠 왔다. 이럴 때마다 진심으로 퇴사하고 싶다. 서두를 꺼낸 팀장보다 원하지 않은 대답을 대신 해 준 오 대리가 더 얄미웠다.
찬영은 벌써 수백 번은 읽어 볼 것도 없는 회사 인트라넷 공지를 보고 또 보다가 PC버전 라잇톡을 켜서 한 자 한 자 썼다.
앞으로맑음: 님들 저 죄송한데
앞으로맑음: 오늘 트라이 못 갈 것 같습니다
앞으로맑음: 제가 아직 퇴근을 못했어요ㅎ....
점 하나에 슬픔과,
점 하나에 아쉬움과,
점 하나에 분노와,
점 하나에 팀장 개새끼.
갓말이: 헐
앞으로맑음: 애초에 남아서 일할 게 없는데 팀장... 또 기분병 도졌나봄
앞으로맑음: 퇴근시간 지나서 일어났는데 벌써 퇴근하냐네요ㅋㅋ
도텐: 사무실에 꼭 그런 인간들 있음
딜프리: 기분병(X) 지랄병(O)
갓말이: 담에 가여 괜히 저 때문에 죄송ㅠ
앞으로맑음: ㄴㄴ 아니에요
사격: 팀장님은 집에 안 가신대요?
앞으로맑음: 원래 집 안 좋아하시는 분이라
앞으로맑음: 회사에서 하는 거 보면 댁에서도 환영은 못 받으실 듯
딜프리: -꼰- 특
앞으로맑음: 아니면 다른 시간 말씀해주시면 맞추겠습니다
갓말이: ㅇㅋ요
비테마죽: 얼른 퇴근하시길
이제 다들 인형에 슬슬 적응하기 시작해서 2페이즈도 진입했고, 연습만 좀 하면 클리어 각도 보일 텐데. 그렇다고 트라이를 위해 회사를 당장 때려치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어쩔 수 없었다.
* * *
[길드] 앞으로맑음 님이 187레벨을 달성했습니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레벨 업 이펙트가 사라지자마자 찬영은 미련 없이 재물의 비약과 경험치 버프 효과들을 껐다. 며칠간 몇 시간씩 사냥을 반복하다 보니 손목이 나갈 것 같았다.
[친구] 갓말이: 맑음님이 지금 렙 몇이셨지?
[친구] 앞으로맑음: 저 187이요
[친구] 앞으로맑음: 방금 업했어요 ㅋㅋ
[친구] 갓말이: ㄷㄷ 바로 얼마 전에 184셨던 거 같은데
[친구] 앞으로맑음: 요즘 퇴근하자마자 재비 먹고 계속 달리는 중
보조까지 샀으니 좀 더 열심히 해야겠다 싶어서 달린 것도 있다. 이제는 콘피니움도 왔고 나이트메어 레벨 뻥도 어느 정도 받으니 당분간은 쉬어도 될 것 같았다.
[메가폰] 사격: 앞으로맑음<< 187 축하드립니다 사냥 화이팅 ㅎㅎ
[친구] 앞으로맑음: 헉
내내 아무 말씀이 없으셔서 자리를 비우신 줄 알았는데.
[메가폰] 갓말이: 맑음님 187 ㅊㅊㅊㅊㅊㅊㅊ
[메가폰] 도텐: 앞으로맑음 187 ㅊㅋ 담주 190 가즈아~~~~
[메가폰] 빨강색: 맑음님 1877 축하드려여
[친구] 사격: 전섭 최초 1877 ㄷㄷ
[친구] 빨강색: 오타임 ㅡㅡ
[친구] 빨강색: 그걸 또 보네 귀신같이
[친구] 딜하는프리: 빨강님을 놀릴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이건 못 참지
[친구] 사격: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친구] 앞으로맑음: ㅋㅋㅋ 다들 감사합니다 쉬려고 했는데 얼른 190 찍어야겠네요
그전까지만 해도 계속 스크롤이 올라가고 있던 길드 채팅창은 레벨 업 알림 메시지가 뜨자 놀랍도록 조용해졌다.
[친구] 또치와양치: 맑음님 저도 업함
[친구] 앞으로맑음: 넵 축하드려요
[친구] 또치와양치: 메가폰 좀 써 주세요 어차피 많으실 텐데
슬슬 왜 안 튀어나오나 했지. 또치와양치는 마치 찬영이 당연히 자기 말대로 해 줘야 한다는 듯한 말투였다.
[메가폰] 앞으로맑음: 또치와양치<< 180 ㅊㅊ
아무리 쓸 일이 없어 메가폰이 남아돌고 분쟁은 피하는 게 좋다지만 이쯤 되면 호구가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았다. 얼마나 우습게 보였으면 친구 채팅창에서 저런 식으로 띠껍게 말할까 싶기도 하고.
사실 또치와양치는 언제든 친구 목록에서 지워 버리면 그만이다. 지금껏 조심스럽게 굴었던 것은 단 하나 kin과 연결돼 있다는 이유였다. 길드를 가입하기 전에는 kin에게 고마웠던 것도 많았고, 좁아터진 서버에서 가능하면 오래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서. 그런데 또치와양치 때문에 분노의 역치가 점점 낮아지는 것 같았다.
역시나 또치와양치는 짧은 감사 인사조차 없었다. 진짜 조만간 엿 먹으라 하고 삭제하고 길드도 런 해 버릴까.
[메가폰] 또치와양치: 뉴비 영혼 달래기[44] 무료 캐리해주실 분 찾아요ㅠㅠ
[길드] kin: 또치님 영달 가세요?
[길드] 또치와양치: 앗 넵
[길드] kin: 제가 해드릴게요 그것만 하면 되나요
[길드] 또치와양치: 헉 감사합니다!!!!
[길드] 앞으로맑음: ㅋㅋ
메가폰이… 있네? 오늘도.
원래 찬영은 메가폰으로 레벨 업 축하를 해 준 상대방이 다시 되돌려주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VVIP 보상 때문에 남아도는 게 메가폰인 데다 기간 내 사용하지 못하면 사라지기까지 하는 걸 가지고 난 써 줬는데 넌 안 써 줬다느니 따지는 것도 우스웠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이 게임 플레이에 있어 찬영에게 중요한 요소도 아니고. 해 주면 고맙고 아니면 말지. 물론 누군가에겐 중요할 수도 있겠지만.
다만 그건 또치와양치처럼 맡겨 놓은 것마냥 뻔뻔하게 굴지 않았을 때의 얘기였다.
또치는 참… 사람을 치졸하고 치사하게 만들었다. 찬영이 레벨 업 했을 때 써 줄 메가폰은 없어도 캐리 구걸에 쓸 메가폰은 항상 있는 모양이다.
사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평소와 같은 대화인데 그동안 쌓인 것 때문인지 오늘따라 유독 마음에 들지 않았다. kin에게만 사근사근 구는 것도 꼴 보기 싫을 정도로.
[길드] 앞으로맑음: 메가폰 있으셨네요
[길드] 또치와양치: ?
[길드] 또치와양치: 네 돈 모아서 샀어요 ㅋㅋㅋ
[길드] 또치와양치: 근데 왜요?
[길드] 앞으로맑음: 그냥 제가 업했을 땐 한 번도 메가폰으로 축하해주신 적 없으신 것 같아서 ㅎㅎ
짜증은 폭발하기도 전에 줄줄 샜다.
정신을 차려 보니 찬영은 또치와양치에게 대놓고 빈정거리고 있었다. 사실 메가폰은 고사하고 채팅창으로 축하해 준 적도 없다. 생각보다도 말이 더 유치하게 나간 것 같아 망했다 싶었지만 이미 저지른 이상에야. 차라리 잘된 건지도 모른다.
[길드] 또치와양치: ? 맑음님
[길드] 또치와양치: 설마 저한테 뭐라하시는 거임?
[길드] 또치와양치: 다른 것도 아니고 고작 메가폰 하나 때문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고작? 고작이라기엔 그 본인이 먼저 목숨 건 것처럼 굴지 않았나. 단 한 번만이라도 써 줬으면 이렇게 말할 일도 없었을 거다. 물음표 살인마도 아니고 왜 자꾸 되묻는지도 모르겠다.
[길드] kin: 두 분 왜 그러세요
[길드] 앞으로맑음: 저희 처음 만났을 때부터 또치님 렙업만 하시면 계속 저한테 메가폰 써달라고 하셨잖아요
[길드] 앞으로맑음: 그게 158이었나 ㅋㅋ 별 건 아니지만 얘기 한 번 해본 적도 없어도 꼬박꼬박 다써줬는데
[길드] 앞으로맑음: 사람이 받는 게 있으면 주는 것도 있어야지
[길드] 앞으로맑음: 아니면 매번 무례하게 요구하질 마시든가... 솔직히 기분이 좋진 않네요
[길드] kin: 맑음님도 그만하세요
[길드] 또치와양치: ㅋㅋㅋ
[길드] 또치와양치: 어이없네 누굴 거1지로 보고 그딴 식으로
[길드] 두치팡: 말이 좀
kin이 끼어들어 말리기 시작했지만 솔직히 찬영은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다. 또치와양치도 나름대로 쌓인 게 있었던 모양인데 언제 터지든 터졌을 테니까. 그 시점이 지금이었을 뿐이다.
이제 둘 중 하나는 나가게 되겠지. 쫓겨나게 되든, 자발적으로 나가든.
[길드] 또치와양치: 님은 vip니까 메가폰 남아도실 것 같아서 말한거고
[길드] 또치와양치: 전 저거 안 쓰면 안되니까 사서 한거고요
[길드] 또치와양치: 내용 안 보심? 맨날 일퀘 내용밖에 없는데
[길드] 또치와양치: 오늘도 그렇고
[길드] 앞으로맑음: 저번에 다른 분한테 써주시는 거 봤습니다
[길드] 또치와양치: ㅋㅋㅋ 됐어요 ㅈㄴ 꼬투리잡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허파에 바람이 들었나. 자꾸 ㅋ을 남발하며 웃어댄다. 할 말이 없거나 오해가 있었다면 사과하면 되지 왜 센 척하며 자음만 날리는지 모를 일이었다. kin이 안절부절못하는 게 느껴져서 조금은 자제하려고 했는데 또치는 말하는 싸가지부터가 틀려먹었다.
[길드] 앞으로맑음: 제가 불편하신 거면 차라리 뭐 때문에 불편하다고 말씀을 하세요
[길드] 앞으로맑음: 평소에 자꾸 비꼬지 마시고
[길드] 또치와양치: 뭔 ㅋㅋ
[길드] 또치와양치: 님이 더 꼬운 것 같으니 걍 친삭하세요
[길드] 앞으로맑음: 넵~
그렇게 말하면 누가 못할 줄 알았나. 찬영은 냅다 친구 목록 창을 켜 또치와양치를 삭제했다. 또치와양치와 대놓고 싸운 건 처음이라 심장이 빠르게 뛰면서도 나름 후련했다. 이렇게 삭제가 쉬웠던 걸.
다만 좀 진정되고 나자 남들 다 보는 곳에서 싸운 것도 그렇고, kin을 비롯해 말리는 사람들의 말까지 무시했던 건 마음에 걸렸다.
결말이 어떻게 나더라도 kin이나 두치팡에게는 따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귓속말] kin>> 맑음님 계세요?
[귓속말] kin<< 있습니다
[귓속말] kin<< 무슨 일이세요?
[귓속말] kin>> 조금 조심스러운데
[귓속말] kin>> 또치님이랑 그 뒤에 뭐 없으셨죠
[귓속말] kin<< 아 넵
얼마 되지 않아 kin이 귓속말로 먼저 찾아왔다. 분위기를 보니 둘 중 내쳐지는 사람은 찬영으로 결정된 모양이다.
[귓속말] kin>> 솔직히 예전부터 두 분 사이 안 좋으신 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는데
[귓속말] kin>> 오늘 또치님이 저보고 맑음님이랑 도저히 더는 같이 못하겠다 하더라고요
[귓속말] kin>> 별건 아니지만 그래도 재밌게 게임하고싶어서 다들 데리고 다니는건데
[귓속말] kin<< 네
[귓속말] kin>> 이렇게까지 사이 틀어지면 솔직히 저도 부담이라서
[귓속말] kin>> 죄송합니다
구구절절 말을 붙이지만 결국은 길드를 나가라는 얘기였다.
또치와양치가 길드에 더 오래 있었던 데다 kin과도 더 친했으니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수순이었다. 심지어 길드 채팅창에서 싸우기까지 했으니까. 암만 누가 뒤에서 욕을 했건 정치질을 했건 남들 봤을 때 나이도 훨씬 많은 게 유치하게 급발진한 것처럼 보였을 거란 것도 알고. kin도 길드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어느 쪽이 나은 선택일지 생각이 많았을 것이다.
그래도 당연히 기분이 좋지는 않다. 찬영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며 한숨을 쉬었다.
그놈의 데스 아이를 같이 가지 않았다면 괜찮았을까? 또치와양치는 그때도 버스팟에서 죽으면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며 비아냥대긴 했다. 그 뒤로 찬영은 말없이 길드 파티에서 빠졌다. 찬영만 끼면 싸해지는 채팅 분위기를 견디기 힘들어서였다. 저만 빠지면 다 괜찮았는데. 딱 저만 빠지면.
[귓속말] kin<< 넵 알겠습니다
[귓속말] kin<< 그동안 여러가지로 감사합니다
[귓속말] kin>> 네
[귓속말] kin>> 죄송하지만 친삭할게요 저도 즐거웠어요
[귓속말] kin>> 맑음님이 나쁜 게 아니란 건 잘 아니까 걱정마시고요
그런 걸 안다 해서 의미가 있나. 그나마 다른 길드를 구할 때 말이 덜 나올 거란 정도? kin과는 어차피 다시 만나면 인사조차 하기 힘들 사이인데. 일정 레벨이나 스펙을 넘기면 한 다리 건너기도 전에 서로 다 알고 있다는 시골 서버라면 오다가다 한두 번은 마주칠 게 틀림없었다. 그때마다 어색하게 다른 채널로 옮기기나 하겠지.
[길드] kin 님이 앞으로맑음 님을 길드에서 추방하였습니다. 약 24시간 동안 길드 가입 및 생성이 제한됩니다. (남은 시간 23:59:59)
노란색 볼드체로 시스템 알림이 뜨고 한순간 캐릭터 아래의 길드 마크와 길드 이름이 사라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 아군으로 오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진작 길드를 탈퇴하고 가 버릴 걸 그랬다. 적어도 지금보다는 모양새가 훨씬 좋았을 텐데.
뉴비 길드 채팅에도 찬영이 추방되었다는 메시지가 떴겠지. 어쩌면 분위기 싸해지게 또 왜 혼자 저러냐고 또치와양치와 다 같이 뒷말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 모르겠다….
찬영은 그냥 다 허무했다.
사실 또치와양치가 그렇게 티를 냈는데 순진하게 kin이 몰랐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다 같이 친구고 같은 길드원이니 비꼬는 말도, 시비도 어느 정도는 봐 왔을 거다. 또치와양치가 따로 귓속말을 했던 것도 아니니까. 찬영은 가끔 귓속말로 대답했어도.
그래도 그간 아무 말이 없었던 것은 kin의 의외로 무관심한 성격 탓도 있겠지만 아마… kin이 암묵적으로 또치의 편이었기 때문이겠지. 다른 길드원도 마찬가지였다. 언젠가부터 길드 채팅창에 인사를 하거나 말을 걸어도 kin이나 두치팡이 몇 번 대꾸해 준 걸 제외하면 아무도 받아 주지 않았으니까.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기분이 처졌다.
멘탈이 터져 장비나 아바타는 고사하고 잡 아이템조차 처리하지 못하고 도망치듯 에이나인의 계정을 정리하면서, 찬영은 다시는 게임 내 인간관계를 맺지 말자고 생각했었다. 게임은 즐겁자고 하는 거고. 스트레스받는 건 현실의 사회생활만으로 충분하니까. 그래서 그 지키지도 못할 세 가지를 다짐했다.
결국은 게임을 시작해 친구도 만들었고, 길드도 가입한 데다 보스 트라이 파티까지 들어갔다. 나이트메어 트라이 파티야 좋은 사람들과 즐겁기만 했으니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하지만 길드에서 또치와양치에게 질질 끌려다닌 건 후회됐다. 다 제 선택이니 자업자득이긴 하지만.
에이나인뿐만 아니라 레비아에서도 길드원들 사이에서 겉돌기만 하다 추방당했다면 사실은 찬영 스스로가 문제 아닐까? 나댄다고 욕먹더라도 친목에 좀 더 적극적으로 껴들었어야 했나? 또치가 친한 길드원들과 함께 길드 내부에서 은근히 찬영을 몰기 전에.
계속 이런 식이라면 아예 게임 자체를 정리하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 * *
그날은 그대로 접속을 종료했다. 한 시간마다 반복해서 뜨는 길드 가입 및 생성 제한 메시지를 보고 있으려니 게임을 더 할 맛도 나지 않았다.
하루 동안은 죽어도 이 게임 생각 안 해 본다.
찬영이 굳게 다짐했다. 원래 RPG는 특유의 손해 보는 느낌 때문에 하루 안 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하루를 버틸 수 있다면 일주일이나 한 달을 버티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다음 날이 하필 주말이었다. 시간은 많은데 할 것도 없는. 몇 년 전 상경한 탓에 찬영은 서울에는 당일치기로 약속을 잡을 정도로 친한 친구도 없었다.
밥을 먹고, 그동안 밀렸던 웹툰을 정주행하고, 알고리즘에 의지해 십 년 전에 업로드된 누군가의 학예회 영상을 보고, 주변에서 열리는 행사나 축제도 찾고….
마지막엔 의자에 앉아 멍하니 있다가 ‘아, 일퀘는 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을 했다. 사냥도 해야 하고 보스도 잡아야 하고 이벤트 참여 보상도 얻어야 하고 또.
아니, 이런 것들도 게임 접으면 아무 상관 없는 것들 아닌가? 보상이 다 무슨 소용이라고.
이벤트 보상이라 해 봐야 솔직히 대단한 건 아니었다. 어차피 거래도 안 된다. 말 그대로 게임 서버만 닫히면 사라질 데이터 쪼가리일 뿐인데.
아직도 정신 못 차렸다 싶어 헛웃음이 났다. 당장 해야 할 것만 생각나는데 접을 수나 있을까? 심지어 한창 재미가 들리고 있던 이 시점에?
에이나인 때처럼 사사게에 박제된 것도 아니고, 혼자 꽁해서 접어 봐야 연어처럼 돌아올 텐데. 또 하나 배운 것뿐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인 것 같기도 했다.
갓말이: 다들 오늘 10시 시간 어떠심?
갓말이: 당일에 말씀드리는 거 좀 그렇긴 한데
갓말이: 안 되심 말씀해주세여..
딜프리: ?
딜프리: 오히려 좋아.입니다
도텐: 원래 이런 건 오히려 당일에 말하는 게 모이기 쉬움ㅋㅋ
도텐: 할 때 계속 달려야지
비테마죽: 저도 가능이여
사격: 맑음님은 괜찮으신가요
앞으로맑음: 아
앞으로맑음: 네 오늘 괜찮아요
복잡한 생각으로 앉아 있는데 노말 나이트메어 단체 채팅방 알림이 울렸다. 오늘 트라이가 가능한지를 묻는 갓말이의 연락이었다. 고민하는 사이에 저를 빼고는 모두 가능하다고 한 것 같아 찬영도 그냥 가겠다고 대답했다. 어쨌든 앞으로 접을지 어떨지 아직까지는 알 수 없었으니까. 게다가 연습은 다 같이 해야 한다.
* * *
<오늘 왜 이렇게 빡세냐. 피 거의 안 까이는 느낌인데?>
<그러게요. 좀 오반데.>
전원 생존으로 2페이즈에 들어간 건 이번이 두 번째였다. 대부분의 나이트메어 공략 글에서 노말 2페이즈는 오르골 연주를 제외하면 어려운 패턴이 없다고 했으니 금방 클리어할 줄 알았는데 파티는 생각보다 고전 중이었다.
<맑음님 혹시 신념 써주실 수 있나요?>
“아…. 죄송합니다. 다음 딜 타임 때 바로 쓸게요.”
<괜찮아요. 저도 오늘 딜 평소보다 못 넣은 것 같거든요.>
<아, 오늘 실수 왜 이렇게 많이 하지 진짜. 데카 몇 개 안 남았는데.>
정신이 딴 데 가 있어서 그런가. 오늘따라 유독 실수가 잦았다. 개인 버프는 둘째치고 파티 전체에 적용되는 버프를 쿨 타임마다 넣지 않는다거나, 다 같이 인형을 없애고 자명종을 깨야 할 때 가만히 서 있는다거나. 자잘한 패턴들은 피하지도 못해 게이지 폭발에 죽은 것도 많았다.
결국 2페이즈에 들어가고 얼마 되지 않아 아웃당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집중이 안 되는 건 다른 사람들도 비슷해 보였다. 찬영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대기 맵은 파티원들의 캐릭터로 가득 찼다.
<우리 나올 때 피통 몇 줄 남았었죠? 누구 보신 분?>
[친구] 사격: 35줄 정도
<미친. 오늘 진짜 얼마 못 깠네.>
딜하는프리가 경악하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으로 2페이즈에 진입했을 때도 서른 줄은 넘겼었는데 35줄은 좀 오바긴 하다. 가장 중요한 패턴인 오르골 연주도 스무 줄에 나오는데 한 번도 못 봤고.
[친구] 갓말이: 님들 저 양심 고백 하나 할게요
[친구] 갓말이: 1페 때 사냥세팅하고 감 ㅎㅎ;;
[친구] 빨강색: 왜 갑자기 채팅 치나 했더니만 ㄹㅇ 양심고백이네
<너 빨리 가서 저기 엎드려.>
<아 2페 땐 바꿨어요 그래도.>
<전 사실 길드 스킬 한 개 안 썼어요. 2페 때 앎.>
<보뎀이요?>
<네.>
[친구] 빨강색: 갑분 단체 고해시간
아, 맞다. 길드 스킬.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추방당한 것 때문에 부차적인 문제까지는 신경 쓰지 못했지만, 당분간은 길드 스킬도 쓸 수 없다.
레비아에서 길드 스킬은 무기와 보조 무기 옵션에서만 얻을 수 있는 보스 공격 시 데미지, 방어력 관통을 일정 시간 올려 줘 스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편이었다. 길드 가입 제한 시간은 끝났으니, 만약 앞으로도 계속 트라이를 할 거라면 다른 길드라도 들어가 둬야 할 것 같았다.
이번에는 친목 없는 길드를 찾는 게 맞겠지. 마음이 무거웠다.
<이 상태로 깼으면 그게 더 레전드네. 지난번보다 나아진 게 없는데 이게 맞나 싶기도 하고…. 손은 어디서 못 바꾸지?>
[친구] 사격: ㄴㄴㄴ 스트레스 받지 마 충분히 잘하고 있음 원래 다 이것보다 더 걸려
[친구] 사격: 전에도 말했잖아 트라이 때 절대 스트레스 받으면 안 됨
전체적으로 다운된 분위기에 내내 말이 없던 사격이 위로하듯 말을 얹었다.
<그렇긴 해.>
동명은 또 금방 수긍한다.
[친구] 갓말이: 아니 형
[친구] 사격: ㅇㅇ?
[친구] 갓말이: 노말 2페는 쉽다면서요 ㅡㅡ 하나도 안 쉬움
[친구] 사격: 아니 쉬웠음 ㄹㅇ...
[친구] 딜하는프리: 길마님 솔직히 본인도 재수없는 거 아시죠?
[친구] 빨강색: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ㅇㅈ
[친구] 도텐: 쟤는 나올 때부터 하드했어서 노말이 쉽다고 하는 거라니까 그냥
[친구] 사격: 그러게
[친구] 사격: 노말 갈 때는 이미 하드 패턴에 익숙해져서 그랬나봄 ㅎㅎ
[친구] 빨강색: 줏어온 변명 안 받는다
[친구] 사격: ㅠ
[친구] 갓말이: 하루 입장 제한 개빡침 진짜루
[친구] 갓말이: 오기 생겨서 또 가고 싶다
[친구] 도텐: 진짜 ㄱ? 연습모드는 갈 수 있자늠
[친구] 갓말이: ㄴㄴ 집안일 때문에 안될 듯
[친구] 딜하는프리: 사람 많아지니까 시간 맞추는 것도 일이네
[친구] 빨강색: 다들 게임에 덜 진심이라 그럼 반성해 길마
[친구] 사격: 이것도 내 탓이야?
[친구] 빨강색: ? 당연하지 그럼 누구탓임
[친구] 사격: ㅇㅋ;;
[친구] 갓말이: 이게 이렇게 되네 ㅋㅋㅋㅋㅋ 맞아 무조건 형 탓
폭풍 같던 채팅들이 지나가고 딜하는프리가 묻는 소리가 들렸다.
<저희 오늘은 여기서 쫑이죠?>
찬영은 그 소리를 듣고서야 오늘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버프를 넣어 달라는 갓말이의 말에 대답한 걸 제외하면.
<네, 그래야 할 것 같아요.>
<오늘은 그럼 쉬는 걸로 하시죠. 다들 피곤해 보이시고….>
평일 밤이라 그런지, 파티원들은 트라이가 끝나자 바로 정리하고 나가려는 기색이었다. 길드 때문에 따로 파 놓은 방으로 가는 걸 수도 있고. 보이스 코드가 종료되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마이크가 꺼져 있는 사격과 찬영만 있는 보이스 코드 채널은 조용했다.
“저도 나가 보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찬영이 접속 종료를 누르려던 차에, 사격이 갑자기 귓속말을 걸어왔다.
[귓속말] 사격>> 혹시 오늘 무슨 일 있으셨나요
“네?”
[귓속말] 사격>> 나메에서 평소랑 좀 다르시길래
아. 찬영이 키보드를 두드리려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사격이 따로 물어볼 정도면 오늘 심하긴 했나 보다. 그래도 저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실수가 꽤 있어서 어느 정도는 묻혔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튀었나?
“티 안 내려고 했는데 잘 안 됐네요. 실수가 너무 많아가지고….”
[귓속말] 사격>> 아뇨 그런 것보다는
[귓속말] 사격>> 좀...말씀이 없으신 것 같아서
[귓속말] 사격>> 불편하시면 말씀 안 하셔도 괜찮고요
세 번의 귓속말 사이에는 몇 초간의 공백이 있었다. 평소와 달라 일단 찬영에게 물어보긴 했는데, 오지랖일 수도 있겠다 싶어 조심스러운 모양이었다.
사실 찬영이 불편할 건 없다. 오히려 사실대로 말했다가 부담스러워지는 건 사격이겠지.
찬영은 애꿎은 헤드셋 마이크만 몇 번이고 만지작거리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어차피 조만간 파티원들에게 말할까 했던 내용이고, 그러면 보이스 코드나 단톡에 같이 들어가 있는 사격도 자연스레 알게 될 테니까.
“그냥 접을까 싶어서요.”
[귓속말] 사격>> ㅠㅠ
[귓속말] 사격>> 어떤 사정이 생기신 거예요?
[귓속말] 사격>> 게임? 아니면 현실적으로?
아주 친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대뜸 접는다고 하면 당연히 대화가 적당히 끊길 줄 알았다. 보통은 다 그러니까.
그런데 사격은 오히려 자세하게 물어왔다. 마치 섭섭하다는 것처럼 이모티콘도 써 가면서.
“사정이라기보단 그냥….”
찬영이 얼버무렸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자칫 말을 잘못 골랐다간 길드에서 추방당하고 앙심을 품어 일방적으로 뒷말하는 꼴로 비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계속 머뭇거리고만 있는데, 보이스 코드 창 좌측 사격의 이름 옆에 떠 있던 마이크 음 소거 표시가 사라졌다.
<저 그냥 마이크 켤게요. 잠시만요.>
사격이 마이크를 켠 건 처음이었다.
목소리도 좋으시네.
처음 들은 사격의 목소리는 또렷했고 짧은 말에서도 다정함이 느껴졌다. 꼭… 평소에 하던 채팅처럼.
“네.”
찬영이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라도 나이트메어 트라이 때문에 스트레스받으신 건 아니죠? 그런 거면 신경 안 쓰셔도 돼요.>
“그건 절대 아니에요.”
<다행이네요. 저번에 보조 사신 것도 그렇고 제가 괜히 보스 트라이 말씀드려서 너무 달리신 걸까 봐…. 주변에 보면 그렇게 현타 와서 접기도 하더라고요.>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그 보조는 제가 사고 싶어서 산 거였어요. 파티원들이랑 같이 보스 하는 게 재밌어서요.”
엄밀히 말하면 그것도 관련이 있긴 했다. 상위 보스 트라이를 계속하다 보면 결국 새 보조 무기를 마련하기야 했겠지만, 또치와양치만 아니었다면 그 정도로 급하게 보조를 바꾸진 않았을 테니까.
그러나 사격이 저 때문인가 걱정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때문에 찬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큰 문제는 아니구요. 길드 문제인데….”
<네.>
타인에게 게임 내 문제로 찡찡거리는 게 얼마나 쪽팔린 행동인지 찬영도 자각은 있었다. 그런데도 한번 시작한 말은 계속해서 나왔다. kin의 제안으로 처음 뉴비 길드에 들어갔을 때부터, 또치와양치와 드러내 놓고 싸우게 되기까지. 따지고 보면 결코 적지 않은 일들이었다.
찬영이 말하는 속도는 느렸고 중간중간 끊어지기도 했기 때문에 끼어들려고만 했다면 얼마든지 끼어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격은 많은 말을 하지 않았고, 대부분은 듣고만 있었다. 신중하게 말을 고르려는 것 같기도 했다.
“결론은 그렇게 길드에서 추방당했어요. 바로 며칠 전에.”
<길드 탈퇴는 알고 있었어요. 맑음님 캐릭터 아래쪽에 길드 명이 없어져 있어서. 추방인 것까진 몰랐지만.>
하기야 캐릭터 바로 아래 닉네임과 나란히 붙어 있던 길드가 사라졌는데 무슨 일인지 전혀 모르는 게 더 이상했다.
그런데도 사격은 찬영에게서 직접 듣기 전까지 모른 척해 준 것 같았다. 그게 고마우면서도 조금 창피해졌다. 그러니까 대충은 짐작하고 있었다는 건데….
<뉴비 길마나, 그 싸웠다는 사람 박제할 생각은 없으신 거예요?>
“박제요?”
<네. 억울한 일 당하신 건데.>
레비아는 사사게도 없지 않나? 의문을 표현하기도 전에 사격이 눈치챈 듯 먼저 말했다.
<레비아도 사사게만 없는 거지, 이상한 사람 있으면 자유 게시판에서 다 박제해요.>
“그건 진짜로 몰랐어요. 그러면 오히려 사사게에 올리는 것보다 더 시끄럽긴 하겠네요.”
사사게가 있는 게임보다 박제 자체는 덜할 수 있어도, 자유 게시판에 박제하는 순간 화력이 더 몰릴 것 같았다. 같은 게임의 커뮤니티더라도 자유 게시판의 이용자 수가 훨씬 많으니까.
“근데 이런 것도 다 박제가 돼요? 레이드 도중도 아닌데.”
<생각보다 길드나 유저 박제하는 사람 많아요. 화제가 되는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기는 한데, 길드 추방까지 된 거라 문제가 안 되진 않을 거예요.>
“아.”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아웃벤 아이디는 게임이나 게시판 구분 없이 사이트 전체 공용 사용이다. 에이나인 때의 일이 어쩌면 다시 화두에 오르는 게 아닐까?
오히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던 넷카마 놈이 레비아에서 ‘참교육’을 당했다며 신나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아이디를 새로 생성할 수도 없었다. 분탕이 하도 많아지면서 최근 아웃벤에서 신규 유저의 경우 일정 수의 댓글을 달지 않으면 게시글 작성을 할 수 없도록 권한을 막았기 때문이었다.
어떤 방법을 쓰는 건지, 새로운 아이디나 닉네임으로 글을 써도 귀신같이 기존 아이디나 닉네임을 알아내 다시 박제하는 사람들도 있고.
에이나인 고객센터에 몇십, 몇백 개의 글을 썼지만 로그는 끝내 받지 못했다. 뒤늦게 제 성별을 말하고 다녔던 캡처본이라도 올리려고 했을 때는 이미 상황이 종료된 후였고 아무도 그 일에 관심이 없었다.
그나마 올린 글은 금방 여러 번의 신고를 먹어 자동으로 내려갔다. 아무래도 이탁과 지인이거나 그 편을 드는 사람들이 신고까지 하고 다니는 듯했다.
<아니면 제가 올려드릴까요?>
찬영의 침묵이 길어지자 사격이 다시 물었다. 고마운 발언이었지만 그것도 망설여졌다.
레비아 아웃벤을 하드하게 하진 않았다. 팁 정도는 정리가 잘되어 있으니 들어가서 몇 번 눈팅 하는 정도였다. 그래도 처음엔 관심을 가지던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돌아서는지, 또 얼마나 쉽게 지겨워하는지 정도는 알았다.
사격이 글을 써 주면 분명히 불은 지펴질 것이고, 소위 말하는 ‘빼박 증거’ 같은 게 없어도 사격이라는 이름 하나로 편을 들어주는 사람들도 생길 것이다. 비교하긴 싫지만 이탁 때도 그랬던 것처럼.
그렇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사격에게 피해가 갈 게 뻔했다. 여기가 시골 서버라는 점도 마음에 걸렸다. 분명 서버 내에도 사격의 뒷말을 하는 사람들이 나올 거였다. 친분이 있는 사람이 그 사이에 엮여 있다면 곤란해질 수도 있고.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건 안다. 또치와양치나 뉴비 길드가 망하길 바라는 마음은 지금도 갖고 있었다. 스스로 답답하게 구는 것도 알았지만 현실은 사이다를 터뜨린다고 해서 바로 해결되는 곳은 아니었다. 그걸로 지금까지 내내 도와주었던 사격에게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그게 더 싫을 것 같았다.
서글픈 말이지만 넷카마로 낙인까지 찍혔던 에이나인 때를 고려한다면 길드 추방 정도야 사소한 이슈인 것 같기도 하고.
“엿 먹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닌데…. 그래도 박제는 안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그러니 찬영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별개로 왜냐고 물어보면 대답하기는 곤란하다. 일단 화제부터 돌렸다.
“근데 생각해 보니까 길드 때문에 접는다 만다 한 건 쪽팔리네요. 나이가 어린 것도 아니고. 사실 그냥 제가 먼저 나왔으면 될 문젠데.”
<저도 그랬어요.>
쑥스럽게 붙인 말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당사자의 어조는 담담했지만 들은 찬영은 놀랄 만한 얘기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사격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저도 예전에 다른 길드에 있을 때는 여러 일들이 많았거든요. 아시겠지만… 남들이랑 같이 하는 알피지 하다 보면 다 비슷하잖아요. 여기도 사람들 모이는 데니까.>
“그건 그렇죠.”
<원래 있던 데가 레전드였어요.>
“거기 이 서버에서 제일 유명한 길드 아니에요?”
1위 길드라고 매번 길드원들의 자랑이 메가폰에 올라오는 길드기도 하고. 길드 스킬로 따지자면 현 시점에서는 아군이 위지만, 어쨌든 인지도 쪽은 아직까지 레전드긴 했다. 길드 이름이 서버 이름과 같은 것도 인식에 한몫했다.
<네, 맞아요. 아무튼 길드에 불만은 그 전부터 있었는데… 참고 넘기다가 나중에 좀 큰 문제가 생겼어요. 그때 레전드에서 마음 맞는 몇 명만 데리고 나와서 세운 게 여기예요.>
찬영을 제외한 모든 파티원들이 아군 길드였지만 처음 듣는 내용이었다.
<좀 많이 티엠아이긴 한데, 계속 들어오시라고 할 거면 미리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그래서 저희 레전드랑 지금도 사이 많이 안 좋아요.>
사격이 멋쩍은 듯 말했다. 찬영은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닌데 손을 내저으며 부정했다.
“티엠아이 아니에요. 저도 제가 너무 과몰입하는 것 같았는데 말씀하시는 거 들으니까 위로가 됐어요.”
<그래요? 그럼 지금 다시 여쭤봐야겠다. 아군에 들어오실래요?>
키보드 옆에 두었던 물을 마시다 놀란 찬영이 기침을 했다. 또 틈새 영업이었다.
“아, 이거는. 치고 들어오는 타이밍이 너무 치사하시잖아요.”
<치사한 건가? 파티원들도 다 같은 길드라 적응도 쉬우실 텐데. 진짜로 잘해 드릴게요.>
제안이 아직 유효하다면 가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 지 오래지만, 그래도 모르는 척 물었다.
“이게 마지막 제안인 거예요?”
설마 진짜 마지막 제안은 아니겠지?
마지막이라고 하고 싶은데…. 사격이 나직하게 웃는 소리가 났다.
<제가 쫄려서 그게 안 되네요. 몇 번은 더 여쭤볼 수도 있어요. 맑음 님이 싫어하시지만 않으면요.>
“…….”
<다른 좋은 길드 소개해 드릴 수도 있고.>
“아니, 왜 갑자기 기가 죽으세요.”
찬영이 웃음을 터뜨렸다. 나이트메어가 끝났을 때까지만 해도 축 가라앉아 있던 기분이 순식간에 유쾌해졌다.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의리 지킨답시고 거절했던 게 아까울 만큼 찬영에게 아군보다 좋은 선택지도 없었다. 단순히 뉴비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좋게 볼 만한 건덕지가 있었던 건지 가입을 계속 권하는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일단 길드마스터인 사격이 찬영에게 호의적인 데다, 아군이라면 아는 사람들도 많으니 들어가서 소외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고.
다만 동명이 마음에 걸렸다.
처음 레비아를 시작했을 때 아무 도움도 받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동명에겐 캐릭터 이름도 말해 주지 않았다. 얼마 되지 않아 SOS를 치면서 들키긴 했지만.
찬영의 의도는 아니었고 지금과는 상황도 달랐어도, 동명이 아군으로 들어오라고 말했을 때는 차일피일 미루다가 사격의 제안에 바로 들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건 좀 신경 쓰이는 문제였다.
“잠시만요. 바로 다시 말씀드릴게요.”
<네.>
사격은 얌전히 대답했다. 고민하던 찬영이 친구 목록 창을 켰다. 다행히 동명은 아직 접속해 있었다.
[귓속말] 도텐<< 형 나 아군 가도 돼?
[귓속말] 도텐>> ㅇㅇ?
[귓속말] 도텐>> 그냥 오면 되지 왜
[귓속말] 도텐>> 오 드디어 들어오기로 함?
[귓속말] 도텐<< 들어가는 걸로 얘기 중이긴 한데
[귓속말] 도텐<< 사격님 때문에 들어가는 것처럼 보여서 형이 서운할까봐 ㅎㅎ
[귓속말] 도텐>> ㅡㅡ 생각해보니까 좀 서운하다?
[귓속말] 도텐<< ㅜㅜ
[귓속말] 도텐>> ㅋㅋㅋ 농담임 너 오면 좋지
[귓속말] 도텐>> 여기 사람들 다 좋아 간부들도 그렇고
[귓속말] 도텐<< 엉 그런 것 같더라고
동명도 그 좋은 사람 중 하나다. 찬영은 약간 들뜬 기분으로, 마이크로 말하는 대신 일부러 친구 채팅창을 켰다.
[친구] 앞으로맑음: 사격님 아직 아군에 자리 비어 있나요?
[친구] 앞으로맑음: 가입하고 싶어요
어차피 지금 접속 중인 친구 중에 아군 길드인 사람도 수두룩하니까. 미리 말해 두려는 의도기도 했다.
[친구] 사격: 몇 자리 필요하세요?
[친구] 사격: 필요하신 자리만큼 쫓아내서라도 만들어드릴게요
[친구] 갓말이: ?
[친구] 갓말이: 일단 길마 쫓아내면 적어도 n자리 만들기 가능할 듯요
[친구] 빨강색: 쟤도 너무 오래 해먹긴 했음
[친구] 빨강색: 이제 내려올 때 됐다
[친구] 사격: 아니 당연히 농담이지 ㅎㅎ;;
[친구] 갓말이: 으휴 으휴
[친구] 앞으로맑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친구] 도텐: ㅋㅋ 지금 길드에 자리 많던데 얼른 오셈
[친구] 도텐: 드디어 길드팟 되겠네
<맑음님, 혹시 길드 창에 아군 검색하셔서 가입 신청 넣어 주실 수 있으세요? 그럼 제가 바로 받을게요.>
“네, 잠시만요.”
길드 검색창에서 아군을 검색하고, 신청을 넣자 얼마 되지 않아 캐릭터 닉네임 아래 방패 모양의 길드 마크와 아군이라는 길드 명이 달렸다.
그와 동시에 채팅창 스크롤이 위로 훅훅 올라가기 시작했다.
[길드] 앞으로맑음 님이 길드에 가입하셨습니다.
[길드] 보틀: 아니 아직 맑음님 가입 안돼서 채팅 못본다니까 바보들인가 진짜
[길드] 갓말이: 저 형이 될 수 있는대로 환영 많이 해달라 하긴 했음 ㅋㅋㅋㅋㅋㅋ
[길드] 도텐: 길마뭐하냐 가입 빨리 안 받고
[길드] 갓말이: 가입은 되신 거 같은데요? 방금 알림 뜬 거 봄
[길드] 도텐: 그래?
[길드] 맛업는라면: 맑음님 어서오세요~! 그동안 길드 형 누나들한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길드] 빨강색: 신입받아라~신입받아라~신입받아라~신입받아라~신입받아라~신입받아라~신입받아라~신입받아라~신입받아라~신입받아라~신입받아라~신입받아라~신입받아라~신입받아라~신입받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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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드] 도텐: 와우 쟤 채팅 보니까 점심 나가서 먹을 것 같네...
[길드] 보틀: 넌 조용히 좀 해봐
[길드] 빨강색: ? 어쩔티비
[길드] 빨강색: 안물티비
[길드] 보틀: 맑음님 오셨는데 너 때문에 말도 못 꺼내시는 중이래잖아 지금
가입한 지 이제 30초도 안 된 것 같은데 채팅창 상태가 벌써부터 어질어질하다. 몇몇을 제외하면 친구로도 등록된 사람들인데, 길드 채팅에서 백 배는 더 시끄러운 것 같았다. 아직 가입 초반이라 그런가?
[길드] 앞으로맑음: 어우 정신 없네요ㅋㅋㅋㅋㅋㅋ
[길드] 앞으로맑음: 안녕하세요 이미 길드에 저 아시는 분들도 계시고 모르는 분도 계실 텐데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길드] 사격: 어서오세요 ㅎㅎ
[길드] 빨강색: 맑음님 하이여~
[길드] 딜하는프리: 오 잠깐 자리 비우고 나가려고 했는데 그 사이에
[길드] 갓말이: 근데 생각해보니까 나메 트라이 끝나고 저희 보코 다 나온거 아님? 어케 데려오신 거지
[길드] 사격: 둘만의 시간이 있었음 ㅋㅋㅋ
[길드] 갓말이: ㄷ 둘만의 시간이요?
[길드] 갓말이: 보코 보니까 두 분만 계시긴 하네
실제로 둘만의 시간이긴 했지만, 보통 그걸 그렇게 말하나? 제법 낯간지러운 표현이었다.
[길드] 보틀: 쟤 입 찢어지는 거 봐
[길드] 사격: 드디어 데려왔다
[길드] 도텐: ㅋㅋㅋ 전부터 공 많이 들이긴 했지
[길드] 사격: 당연하지
[길드] 사격: 이 섭에서 맑음님 같은 뉴비가 얼마나 귀한데
[길드] 보틀: 그럼 우리도 한 때 뉴비였는데 귀하다 해주나요?
[길드] 사격: ?
[길드] 사격: 진짜 해줘? 진심이야?
[길드] 보틀: 엥;
[길드] 보틀: 너 언제부터 농담이랑 진담이랑 구분도 못하는 사람이 된 거야? 난 그런 길마 둔 적 없다
[길드] 맛업는라면: 형이 뉴비 기준이시면 길드원 절반은 뉴비일 것 같은데요
[길드] 보틀: 뭔 소리야 나 ㅈㄴ 약함;;
[길드] 딜하는프리: ?
[길드] 빨강색: 그 약이 다른 약이면 ㅇㅈ
[길드] 갓말이: 아니 보틀 형도 하드 나메 다니시잖아요 ㅋㅋㅋㅋㅋ
[길드] 갓말이: 뺏어갈 게 없어서 이걸?
[길드] 보틀: 어차피 사격 앞에선 다 평등함
뉴비에 속해 있을 때는 길드 채팅에서 한 번도 좋게 언급된 적이 없다. 에이나인 때도 길드가 1차로 터지고 난 이후부터는 마찬가지였고.
[길드] 사격: 나?
[길드] 빨강색: 쟨 그냥 미1친 놈이고
그래서 찬영은 처음 겪어 보는 이 시끄러움이 결코 싫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