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랜선 연애 법칙 1권-1. 사사게 트라우마 (1/11)

랜선 연애 법칙 1권

목차

1. 사사게 트라우마

2. 빌드업

3. 초심자의 행운 (1)

1. 사사게 트라우마

[아비가일] 아비가일섭 가루다 하드 숙코(숙코: 숙련 코스프레의 줄임말로, 숙련이 아니면서 숙련인 척하는 유저. 여기서 숙련은 게임 내 특정 콘텐츠에 숙달된 유저를 의미.) ‘취준생그만’ 박제 [336]

채팅창 캡처.jpg

[공격대] 숙코칼처단: 아니

[공격대] 숙코칼처단: 뭐함?

[공격대] 밥은먹고다니냐: ?

[공격대] 성기사가다함: 체력 왜 늘어난거임?

[공격대] 도우넛: 11시 동선 겹친 듯

[공격대] 취준생그만: 아

[공격대] 취준생그만: 죄송합니다

[공격대] 취준생그만: 다음번엔 넘길게요

[공격대] 밥은먹고다니냐: 이딴게...숙련팟...?

[공격대] 전국헌터협회: ㄹㅇ;;

[공격대] 숙코칼처단: *같네 진짜

[공격대] 숙코칼처단: 시계 볼 줄 모름?

[공격대] 숙코칼처단: 지 자리만 가서 서있으면 되는 건데

[공격대] 숙코칼처단: 이걸 못해서 시간낭비ㅋㅋㅋㅋㅋㅋㅋ

[공격대] 취준생그만: 죄송합니다

공익 목적으로 숙코 박제요

1,2페[1]에서도 평타[2] 몇 번 처맞길래 좀 쎄했어도 넘겼는데 3페 때 자기 자리도 제대로 못찾음

들어가기 전에 물어봤을 때 파장도 분명 숙련팟이라고 함

초기화 전 마지막 날이라 걍 이 파티로 깨긴 했는데 개빡침

크러시 길드 취준생그만님 반숙인지 반숙도 안 되는지 모르겠지만 겜생 좀 그렇게 살지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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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데 인겜에서 사과도 했는데 박제까지 해야하나... 좀 예민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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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련팟에서 숙코한테 예민한 건 당연한 거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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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초에 패턴도 모르는 개씹버러지들이 숙련을 왜 쳐오는걸까? 지 하나 편하자고 시간 땅바닥에 갖다버려야 하는 나머지는 뭔 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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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사사게 거의 일름보게시판 다 됨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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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발숙련방엔숙련만와주세요제발숙련방엔숙련만와주세요제발숙련방엔숙련만와주세요제발숙련방엔숙련만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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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루다 하드 공팟[3] 가보면 인간 혐오 제대로 느낄 수 있음 사람도 아닌 새끼들이 너무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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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결국 몇트한거? 숙련이라도 한 번은 실수할 수 있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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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수 한 번도 안 하는 게 숙련인데;; 실수하는 순간 쌍욕 박아도 합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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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사람 입장 나올 때까지 일단 중립 박음 ㅇ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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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다 어렵지 않나 숙련팟 가도 리트[4] 한두 번은 기본이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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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숙코 새끼 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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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레이드 할때마다 몇번 클만 하면 바로 숙련팟으로 기어들어오는 새끼들 많아서 ㅈㄴ 스트레스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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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빡숙[5]팟은 실수 한 번만 해도 토할 것처럼 눈치주던데 ㅋㅋㅋ 뭐 그런 파티면 잘못하긴 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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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니들이 빡숙팟이라매 시발럼들아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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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만 하면 사사게 박제하는 박제충들 존나 피곤하다 진짜 이러니까 뉴비들이 겁먹어서 안오지 고인물끼리도 저격하는데 누가 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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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두... 접어야 할까 싶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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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 꼬우면 접어~ 님 없어도 게임 안 망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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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이나인에서 가장 믿으면 안 되는 그 단어 “숙련” “빡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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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팟은 누구든 믿으면 안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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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색해보니까 취준생이랑 파장이랑 같은 길드인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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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드원 업어주러 온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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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ㅁㅊ 지금 보니까 파장 ㄷㅌㅅ이누 ㄷㄷㄷ 해명은 해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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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충 아웃벤 머법관이 유저를 소환 중입니다 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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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ㅋㅋ 이래서 길드팟 지인팟 숙련 믿거해야한다는 거임

쉬고 있던 어느 날, 찬영은 에이나인 사건 사고 게시판에 박제되어 있는 제 닉네임을 발견했다. 종합해 보면 반숙 워리어가 숙련 코스프레를 하며 숙련팟에 들어와 민폐를 끼쳤으며, 파티장은 그 워리어의 지인이어서 반숙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던전을 강행했다는 내용이었다.

[수다] 속보) 오늘 사사게 올라온 크러시 반숙 파장이랑 웨딩했나봄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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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여미새[6]임?ㅋㅋㅋㅋㅋㅋㅋㅋ 진심 개역겹다

[수다] (구)크러시 길드원이었던 사람임 길드 채팅 보면 알겠지만 길마 편파 좀 있었음 [19]

채팅창 캡처.jpg

저 채팅 보자마자 길탈함 좆같아서

판단은 님들의 몫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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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단력 지렸다 ㄷㄷ

[수다] 그 숙코 워리어 남자같은데 [95]

보니까 아웃벤은 안하는 듯 하고 초록창 카페에 몇 번 글 올린듯

거기 나오는 아이디로 서치 돌려보니까 옛날 ㅂㅂ 뜸

글쓴 거 보니까 무조건 남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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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ㄹㅇ 소름;; 이런 건 대체 어떻게 찾는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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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인 척 사기 치다 걸린 놈vs그걸 속아서 다 퍼준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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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강두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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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 다 뒤져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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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닉부터 좋게 말해 취준생이지 걍 방구석 백수새끼자너 ㅋㅋㅋㅋㅋㅋ

[웃긴글] 크러시 길드원 숫자.jpg [17]

길드창 캡처.jpg

길드창 캡처.jpg

어제 92명

오늘 43명

남은 사람들도 얼른 탈주하시길~

[수다] 크러시 길마 대투신입니다. [284]

우선 숙련이 아닌 사람을 숙련팟에 넣어 파티원분들께 피해를 준 점 죄송합니다. ‘취준생그만(이하 취준)’을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호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다만 취준이 저와 가까운 사이였던 것과는 별개로 같이 레이드를 다녀본 적은 별로 없었습니다. 또 제게 먼저 본인이 숙련이라고 말한 적도 있어서, 취준을 믿었던 저는 당연히 그 말을 믿고 파티에 데려갔고, 파티원들에게 피해가 됨을 알고 있었음에도 취준의 마음이 혹시라도 상할까 감쌀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틀 간 많은 분들이 게임 내에서 쪽지를 보내주시고 아웃벤에서 화내시는 것을 보며 제가 정말로 잘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취준이 남자라는 것은 정말 몰랐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멍청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취준을 좋아했던 것만은 진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도 지금은 배신감이 너무 크네요...

오늘 모든 책임을 지고 부길마에게 권한 넘겼고, 이 글이 올라가고 나면 길드도 탈퇴 예정입니다. 나머지 크러시 길드원은 이 일과 전혀 관련이 없으니 더 이상 피해가 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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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신 같은 건 맞는데 글 보니까 불쌍하긴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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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빡대가리 여미새♥개쓰레기 넷카마(넷카마: 실제로는 남자이나 온라인에서 여자 행세를 하는 사람.) 천생연분인 듯 꼭 현실 결혼까지 ㄱ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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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과문은 잘 썼음 물론 앞으로 같이 파티하고 싶진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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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찐따가 쓴 글 같은데 뭘 잘 썼다는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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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적어도 지 잘못 인정은 함

2. 책임 지고 길드 탈퇴함

이 정도면 잘 썼지 뭘;; 억까도 적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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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투신님이랑 매칭팟(매칭팟: 랜덤 매칭 시스템을 통해 구성된 파티. 파티 구성 완료와 동시에 콘텐츠에 입장하게 됨.)으로 몇 번 가봤는데 컨 괜찮고 매너도 좋던데... 그냥 이번 일은 실수하신 걸로 보이네여 전 다음부터는 조심하세요 경험 상 사람 나락가는 거 한순간임 특히 여자 엮인 문제면 더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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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저씨 현실 여자 안 만나본 거 다 티나요 집에 처박혀서 에이나인만 하지 말고 밖에도 나가보고 사람도 만나보고 하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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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딴 여미새새끼를 부둥부둥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뭔 여자 문제 이새끼가 문제임 이새끼랑 니같은 새끼 때문에 내가 아는 여자애들 다 성별 숨기고 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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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준을 좋아했던 것만은 진심이었습니다” 올해의 로맨티스트 상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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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도 삭제하고 접어라 그냥 메인에 떠있던데 같은 게임하는 것도 쪽팔림 애초에 이런 놈 없으면 넷카마 같은 것도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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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이미 하꼬 사이버렉카들 출동해서 박제 완료됨

인기 글은 찬영의 일로 도배가 되어 있는 수준이었다. 넷카마가 어쩌고 하는 내용을 보자 머리가 새하얘졌다.

언급된 글이 워낙 많아 일일이 다 읽어 본 것은 아니지만, 인게임에서 요 며칠 쪽지가 쏟아졌기 때문에 찬영도 이번 주 레이드 문제로 사사게에 올랐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뭔가 오해가 있겠다 싶긴 한데 그래도 사과는 해야 할 것 같아 길드에 알리고 아웃벤에 가입하려고 했다.

그런 찬영에게 굳이 안 좋은 말 보지 말라고, 본인이 알아서 해명하겠다며 가입을 말린 건 대투신, 이탁이었다.

어쩐지 말없이 길드에서 추방당한 게 이상하다 했는데.

헛웃음이 났다. 사사게 글을 보자마자 접속했더니 길드 이름은 날아가 있지, 쪽지로는 아웃벤 링크와 함께 ‘뭔 연놈이다’ ‘개쓰레기 새끼다’ 같은 내용만 몇십 통이 와 있어서 그중 아무 링크나 눌러 봤더니 당장 보이는 게 저따위 글이다. 그럼 찬영을 추방한 건 이전 부길드마스터일 테고.

왜? 대체 왜? 변명을 해도 굳이 저딴 식으로 멍청하게…. 차라리 편의를 봐준 건 맞지만 친한 남자 지인일 뿐이라고 하든가. 게임에서 웨딩을 하는 게 꼭 실제로 사귄다는 의미도 아니고 둘러댈 수 있는 말은 많았다. 이탁 본인이나 찬영은 물론이고 심지어 같은 길드원들에게도 아무 이득이 없는 변명이었다. 다들 똑같은 생각이니 애써서 키워 온 길드가 실시간으로 터지고 있지.

머리끝까지 열이 올라 라톡을 계속 썼다 지웠다. 찬영은 여미새와 넷카마는 물론이고 게임에서 성별을 따지는 것 자체를 혐오하는 유저였다. 이탁에게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남자라고 계속 말해 왔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다는 말은 더더욱 거짓말이다. 그 전부터 호감이야 있었지만, 관계에 이름을 붙인 건 적어도 세 번을 만나고 나서였다. 길드마스터와 길드원 사이라 길드 채팅에서 과하게 친하게 보이는 것도 꺼려져서 말도 거의 하지 않았고, 이탁이 길마로서 길드원 전부에게 퍼다 준 아이템 하나조차 받은 적 없었는데.

결정적으로 먼저 고백했던 건 저 새끼였다. 그런데 배신감이 든다고?

이쯤 됐으면 더 이상 마주할 가치도 없어 보였지만, 이 사태에 대해 대체 뭐라고 할지는 들어 보고 싶었다. 이를 꽉 문 찬영이 핸드폰 번호 열한 자리를 눌렀다. 전화를 받지 않을 것까지 각오했는데 예상외로 신호는 그리 오래 들리지 않았다.

“지금 이게 다 뭐예요?”

인사도 생략하고 대뜸 붙인 말에 이탁은 한참 동안 대꾸가 없었다. 미안하다. 뒤늦게 작은 소리가 들렸다.

“아니 미안하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이러면 나만 쓰레기 되는 거잖아요.”

「흥분한 것 같은데 일단 진정 좀 해.」

“형 같으면 진정하게 생겼어요?”

이 상황에서 진정할 수 있으면 그게 부처나 호구지 사람인가.

“변명이라도 좀 해 보든가요.”

화를 꾹꾹 누르며 말했는데 침묵이 길어지더니 전화가 그대로 끊겼다.

이렇게 전화를 끊는다고? 여기서? 미친놈인가? 황당함에 찬영이 입도 제대로 다물지 못하는 사이, 메시지 하나가 날아왔다.

손이탁♥: 그만하자 나도 지친다

미친놈은 이제 아주 혼자 드라마를 찍고 있었다.

정찬영: ㅋㅋㅋ

정찬영: 아니 대체 뭘 감당했다고 지치는데요?

손이탁♥: 그만하자고

손이탁♥: 헤어지자

정찬영: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찬영: 이렇게 헤어지자고? 나만 남들한테 미친놈 만들어놓고?

정찬영: 그 말은 꺼내도 내가 꺼내야지 형이 뭔데?

정찬영: 지친다 어쩐다 할 거면 수습이라도 좀 해주시든가

정찬영: 길드에선 추방 당했지 게임엔 욕 쪽지 테러 와있지 나는 뭔데요? 나는 뭐 병신인가? 다 캡처해서 보내줘요?

손이탁♥: 말좀...

정찬영: 이제 게임도 못하게 생겼는데

정찬영: 형이 뭔 말을 한 건지 알기는 해요?

손이탁♥: 됐다 그냥 차단할게

정찬영: ㅋㅋ 차단이요?

차단한다는 말 이후로는 아무리 기다려도 메시지 옆의 1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전까지만 해도 보내자마자 사라졌던 숫자가.

그제야 진짜 끝이구나 싶어 허탈해졌다.

정찬영: 야

정찬영: 개새끼야

정찬영: 진짜 나 차단했냐?

어떻게 끝이 나더라도 이렇게까지 한심하고 찌질하게 나는데.

머리에 피란 피가 다 몰린 것처럼 열이 끓었다. 살면서 이렇게 화가 나고 서러웠던 적은 처음이다. 스스로 사람 보는 눈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만났다는 게 겨우 이딴 놈이라니. 세상에서 가장 치사하고 비겁한 새끼. 욕이란 욕은 다했고, 그다음엔 눈물이 좀 나왔는데 억울해서 우는 거래도 고작 이런 인간 때문에 운다는 게 더 억울했다.

좀 훌쩍이고 나자 이렇게 되면 정말 개쓰레기 넷카마로 끝나겠다는 데 생각이 닿았다. 하필 또 요즘에는 몇 되지 않는 친분도 거의 다 접어 달리 도와줄 사람도 없었다.

찬영은 눈에 불을 켜고 아웃벤에 가입해 그 망할 놈의 글에 댓글을 남겼다.

- 취준생그만입니다. 대투신이 작성한 글 보고 댓글 남깁니다. 우선 저는 대투신에게 하드 가루다 숙련이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숙련팟이라고 들은 적도 없고, 출발 전에 패턴 미숙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는데 다들 아무 말씀이 없으셔서 숙련팟이 아닌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명확히 확인 못한 점은 사실이기 때문에 이 부분은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게임하면서 친한 사람도 별로 없었어서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한 번도 제가 여자라고 말한 적 없습니다 뭘 받은 적은 정말 더더욱 없습니다. 대투신과 실제로 만난 적도 여러 번인데 왜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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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카마 어서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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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들은 이걸 사과가 아니라 변명이라 함

아니 변명이 아니라 진짜라고. 사과하고 싶은 게 아니라 해명하고 싶은 거니까 당연히 사과가 없지.

↳ ㅈㄴ 이 악물고 적었네 한 글자 한 글자마다 부들부들하는 게 느껴짐 한 대 칠 기세 ㄷㄷ

그럼 억울해 죽겠는데 제가 지금 이라도 안 악물게 생겼겠어요? 잇몸 안 내려앉은 게 다행이다.

↳ 사과는 단 한마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지 억울한 부분은 증거도 못 대면서 변명만 대체 몇 마디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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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발 전에 패턴 미숙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는데” 이 부분만 인증하면 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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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샷 캡처는 따로 안 했는데 로그 같은 거 받아볼 수 있는지 고객센터 문의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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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고 소리소문없이 사라질 듯 ㅋㅋㅋ 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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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딴 새끼들 때문에 주말에 대여섯시간씩 시간 날리는 거임 숙코새끼들 걍 다 뒤져 ㅈ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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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구절절 쓰지말고 다시는 에이나인 기어들어오지 마셈 대투신도 등신이지만 지금 님 댓글 단 게 더 추함

저 저… 상황도 모르면서 일침 남겼다고 뿌듯해하고 있을 일침충 새끼. 찬영이 울분에 차 마우스를 내팽개쳤다. 좆목질 사사게에 미친 이딴 망겜 안 하고 말지. 오늘 이후로 게임을 하면 개다, 개. 게임 없이도 십몇 년은 살았으니 별 어려울 것도 없었다.

* * *

그렇게 찬영은 얼마 못 가 개가 되었다.

일 번. 게임 하지 않기.

이 번. 게임에서 파티플레이 하지 않기.

삼 번. 게임에서 만난 사람과 죽어도 연애하지 않기.

접으며 세웠던 원칙이다. 정신 차려 보니 대전제인 일 번부터 어긴 후였다.

애초에 이 번과 삼 번에 조건을 단 것부터가 지킬 생각이 없었단 소리다. 그래도 사사게 일로 충격을 먹었던 건 사실이라 실제로 접기는 했었다. 마침 타이밍 좋게 회사에서도 같은 부서 대리급 한 명이 퇴사했고, 남은 일을 다 넘겨받은 찬영은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집에 오면 쓰러지기 바빠 한동안은 에이나인 생각도 못 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겜창은 곧 죽어도 겜창인가 보다. 근 한 달 야근을 거치고 업무에 익숙해졌더니 바로 게임 생각부터 났다.

솔직히 모른 척 에이나인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찬영은 이탁의 게시글만 떠올리면 아직도 밤에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치가 떨렸다. 게다가 이탁이나 그 지인들이 게임을 대충 하는 것도 아니고 나름 랭커 위치에 있는 인간들인데 에이나인을 계속하다 보면 어떻게든 마주칠 게 뻔하다.

다른 게임이라도 도전해 봐?

머릿속으로 몇 개의 게임이 지나간다. ROL, 고급시계, 배틀 로얄….

그러나 찬영은 태생적으로 피지컬이 약한 데다 누구보다 어그로에 쉽게 흥분하는 쫄보였다. 반응 속도가 중요한 데다 남들과 겨루기까지 해야 하는 FPS[7]나 MOBA[8] 같은 건 멀쩡하게 할 자신이 없었다.

속은 쓰리지만 RPG[9]충은 어딜 가나 RPG에서 썩어야 하는 모양이었다. 몇 년을 했는데 시야 멀미 때문에 자리 하나를 못 찾고 그 사달을 낸 걸 보면 3D는 길이 아니었는지도 모르지.

MMORPG[10] 장르만 죽어라 뒤졌는데도 개중 정착할 만한 게임은 드물었다. 마지막 업데이트가 이 년 전이라 버려졌다고 불리는 게임도 들어가 보고, 서버 불안정과 발적화로 유명한 게임도 도전해 봤는데 초보자 사냥터를 지키고 서서 뉴비를 학살하고 있는 썩은물을 마주하고 바로 뛰쳐나왔다. 역시 고인물 망겜은 다 똑같았다.

동명이 형: 뭐하냐

같은 길드원이었던 동명으로부터 연락이 온 건 그러던 와중이었다.

거의 반년 만인가. 예전에는 길드 정모는 물론이고 둘이 따로도 봤을 정도로 친했지만 반년도 더 된 동명의 길드 탈퇴 이후 서로 연락한 적은 없었다. 연락처는 그대로 남겨 놓았어도.

애초에 나간 이유가 이탁과의 싸움 때문이었으니 이탁과 친한 입장에서는 먼저 연락하기도 곤란한 상황이었다. 그보다 여러 가지로 미안하기도 했고.

동명도 아직까지 게임을 하고 있었다면 아마 그 게시글을 봤을 것이다. 그러니까 대뜸 연락했겠지. 생각보다 좀 늦긴 했지만.

일단 찬영은 모른 척하기로 했다.

정찬영: 뭐야 ㅋㅋㅋㅋㅋㅋ

정찬영: 나 형 번호 있었던 것도 까먹었어

동명이 형: 간만에 만나서 저녁 ㄱ?

정찬영: ;; 형 불금에 설마 약속도 없음?

동명이 형: 응 너도 없는 거 다 암

정찬영: 들켰네

그러나 동명은 거기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찬영은 머뭇머뭇 엄지손가락으로 핸드폰 액정을 자꾸 비볐다. 에이나인과 조금이라도 관련된 것이라면 다시는 엮이지 않을 작정이었다. 게다가 이탁 때문에 서로 끝이 좋았던 것도 아닌데, 가서 뭐 좋은 얘기가 나오겠다고…. 당연히 거절하는 게 맞다 싶었지만, 그래도 동명과는 마지막이 흐지부지된 게 있으니까 한 번쯤은 이야기해 보는 게 좋을 것 같기도 했다.

정찬영: 밥만?

동명이 형: 오 술까지? 좋지

동명이 형: 어디서 볼까

정찬영: 형 아직도 범계 쪽 사나?

동명이 형: ㅇㅇ

정찬영: 그럼 깔끔하게 사당 어때 ㅎㅎ

동명이 형: 안 그래도 사당 물어볼 생각이였음 ㅋㅋㅋㅋㅋ

동명이 형: 2호선 4호선은 무조건 사당이지

여전하네. 이 형은. 동명은 다 좋은 사람인데 맞춤법을 가끔 틀리곤 했다. 예를 들면 지금처럼 ‘이었’을 ‘이였’이라고 한다거나, ‘돼’를 ‘되’라고 한다거나. 어떻게 그동안 변한 게 없나 싶어서 웃음이 나왔다.

정찬영: 그래 그럼 사당역 4번출구에서 봐 ㅋㅋ

동명이 형: ㅇㅋ~

* * *

퇴근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여섯 시 사십 분에서 오십 분 사이 언저리의 시간. 2호선에서 파김치가 된 찬영이 사람들 사이에서 떠밀리듯 내렸다.

버스를 기다리는 줄 뒤쪽으로 낯익은 형상이 눈에 들어온다. 누가 공대 출신 아니랄까 봐 입고 온 체크무늬 셔츠는 둘째치고, 그 기다란 허우대만 봐도 동명이었다. 왔냐. 웃는 얼굴은 반년 만에 만났는데도 바로 어제도 본 것마냥 친근한 모습을 하고 있다.

“뭐 먹을래?”

“사당에 왔으면 부삼 먹어야지.”

“부추삼겹살?”

“아니면 뭐 다른 거 먹고 싶은 거 있어?”

잠시 생각하던 찬영이 고개를 저었다. 부추삼겹살이 이 근방에서는 가장 베스트인 메뉴 같았다.

“아니. 그걸로 가.”

동명이 설렁설렁 이끈 가게는 시대에 맞지 않는 촌스러운 색감의 간판을 달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게 믿음직스러웠다. 동명은 보다 구석 쪽으로 자리를 잡고 안이 비어 있는 동그란 의자 아래로 제 짐을 던져 넣었다.

“소주 깔 거지?”

“삼겹살엔 당연히 소주지.”

“고기는 냉삼 괜찮고?”

“어.”

“사장님, 여기 냉동 삼 인분에 소주 한 병이요.”

고기 접시가 놓이자마자 동명이 자연스레 집게를 잡았다. 뭐든 귀찮은 일은 막내 시키고 보는 사회 생활에서는 눈치 받을 만한 행동이었다. 찬영이 이크 하며 집게를 제 쪽으로 당겼다. 동명은 어허, 하면서 엄한 표정을 짓는다.

“너 저번에 보니까 고기 진짜 못 굽더라.”

“저번이 언젠데. 한 일 년 전 정모 때 얘기 아니야?”

“그래서? 일 년 사이에 고기 굽는 트레이닝이라도 한 거 아니면 집게 놔라.”

“그동안 내가 고기를 몇 번 구웠을지 형이 어떻게 알아?”

“그렇게 뭐가 하고 싶으시면 물이나 따르고 수저부터 놓으세요.”

동명이 고갯짓으로 수저통과 물통 쪽을 가리켰다. 형이 진짜 내 상사면 좋겠다. 정말로 고기 굽기엔 여전히 자신 없었던 찬영이 중얼거렸다. 동명은 기가 찬다는 듯 웃었다.

“나 에이나인 접으려고.”

어차피 같이 계산할 테니 팍팍 좀 먹으라며 고기를 던지듯 찬영의 그릇에 놓던 동명은, 그 말을 듣자마자 움직임을 멈췄다.

“그러든가.”

당황한 거 다 티 나는데. 물어보고 싶은 것도 분명 이것저것 많을 텐데 고르고 골라서 그러라는 말만 달랑 하는 거다. 동명 나름의 배려였다. 거기서 새삼 동명이 좋은 사람이라는 게 느껴져 찬영은 킥킥 웃었다.

동시에 모든 긴장이 풀렸다. 미안한 감정은 오히려 더 커지긴 했지만. 처음으로 손이탁 욕을 마음껏 같이 해 줄 사람도 있겠다, 더는 거리낄 것도 없고.

그래서 대놓고 먼저 물었다.

“아웃벤은 봤어? 내 얘기로 한창 시끄러웠는데.”

“뭐….”

동명이 어물쩍거렸다. 반응을 보니 정말로 다 본 모양이다. 찬영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난 진짜 다 봤어.”

“넌 그런 걸 뭘 쓸데없이 다 보고 앉아 있어.”

“솔직히 그거 보고 있으니까 내가 문제가 아닌가 생각하게 되더라.”

“야, 뭔 말도 안 되는 소릴,”

“아, 형이 뭔 말 하려는지 알겠는데, 일단은 들어 봐. 대투신 글이 제일 문제인 건 알지. 아는데. 이렇게까지 일방적으로 몰린 건 내 잘못이기도 하다 싶어서.”

이탁과 그런 사이가 된 지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고, 아무도 모르는 비밀 연애였으니 동명도 자세한 내막은 모를 게 분명했다. 그런데도 찬영을 믿어 준다는 게 고마웠다.

술이 들어가서인지 한번 털어놓기 시작하니 생각보다 말이 길어졌다. 나중엔 찬영이 조금 창피해질 정도였다. 학교에서 속상한 일이 있었다고 부모님한테 구구절절 털어놓는 초등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처음엔 황당해하다 못해 열까지 받은 것 같던 동명의 얼굴빛이 점차 가라앉았다. 곰곰이 생각하는가 싶더니 이내 차분하게 말한다.

“그냥 다 필요 없고. 너랑 친한 사람들이 다 접어서 그래. 길드 터졌을 때 기억나지? 지금 말고 딱 나 나갔을 때쯤에.”

“어.”

“대투신이랑 사이 틀어진 사람들 그때 다 탈퇴하거나 추방당하고 아예 게임 접었잖아. 그때 너도 같이 데리고 나왔어야 했는데. 이렇게 된 거는 내 잘못도 크다.”

“아냐. 그때 생각하면 오히려 내가 미안해해야지. 이제 와서….”

찬영이 민망하게 대꾸하며 목 뒤를 긁었다. 그 새끼가 생각보다 더 개새끼였다고 해서 동명이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전혀 없었으니까.

서로 미안하기만 하다 분위기가 더 무거워지기 전에 찬영은 화제를 돌렸다.

“아무튼 그래서, 결론은 에이나인 접을 건데. 형은 뭐해 요즘? 형도 접었잖아.”

“나? 난 아직도 알피지 하지.”

“무슨 게임? 나도 좀 공유해 주라. 뭔 할 만한 게임이 하나도 없어.”

“너도 알걸? 그. 레비아라고.”

헐. 찬영의 입이 떡 벌어졌다. 레비아라면 레비아 온라인이라는 MMORPG 하나밖에 없었다. 출시한 지 이미 한 십오 년 정도는 된… 너무 오래되어 아예 염두에 둔 적도 없는 게임이었다. 예전에 했을 때를 떠올려 보면 그래픽도 별거 없었던 것 같아 화려한 스킬 이펙트를 선호하는 찬영은 시작부터 거르기도 했고.

“그거 완전 옛날 게임 아냐? 초딩 게임.”

“야, 그 초딩들 벌써 다 이삼십 대 됐다. 나처럼.”

“하기야…. 나도 너무 옛날에 했었으니까.”

혼자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인 찬영이 동명과 소주잔을 다시 쨍 부딪치며 물었다.

“요즘도 비싼 코디 안 하면 길드 안 끼워 주고 막 그래?”

“아니. 그거 하나도 의미 없어. 어차피 이벤트로 공짜 캐시템 존나 많이 뿌려.”

“재밌어? 에이나인하다 가기엔 게임이 너무 아기자기하지 않아?”

“뭐… 그렇긴 한데. 나쁘진 않더라. 나름 보스 패턴 보는 맛도 있고. 몇 개는 좀 운빨이긴 해.”

“형 거기서는 에이나인보다 더 썼어?”

에이나인은 무과금과 과금의 격차가 큰, P2W[11] 형태의 게임이었다. 찬영도 쓴 돈이 백 단위를 넘겼지만 주로 랭커였던 주변 사람들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수준이었는데, 동명은 가성비를 중요시했기 때문에 찬영보다 더 적게 썼다. 애초에 게임에 정도 이상의 과금을 하지 않는 스타일이기도 했고.

“에이나인보다 더 안 썼지. 지금까진 이백도 안 쓴 것 같은데.”

“오래된 알피지라 훨씬 많이 깨질 줄 알았는데…. 그 정도 쓰면 할 만해?

“욕심 없고 천천히 갈 거면 나보다 더 적게 써도 될걸? 최상위 컨텐츠는 당연히 다른 세상 얘기고.”

“그건 어느 알피지나 마찬가지니까 뭐.”

별생각 없이 대답하던 동명의 눈이 좁혀졌다.

“왜. 너도 하게?”

“몰라. 게임은 하고 살아야겠으니까.”

찬영이 말끝을 흐렸다. 동명이 픽 웃었다. 그럼 그렇지, 하는 반응이었다. 다 아는 사람들끼리 어디서 모르는 척이야. 결국은 한다는 소리잖아. 대충 그런 의미겠지.

“할 거면 미리 말해. 내가 있는 서버 오면 조금 도와줄게.”

“됐어.”

망설이던 찬영이 끙, 이마를 짚고 다시 물었다.

“어디 서번데?”

“거봐, 할 거면서 또.”

“아 아니라니까…. 일단 말이나 해 봐.”

“레전드라고 그냥 망한 서버 하나 있어.”

“그런 델 왜 갔는데? 접을 때 회수하려면 사람 많은 데가 무조건이라더니.”

“그냥, 뭐. 사람 없는 것도 나름 장점은 있더라.”

동명이 얼버무렸다. 저 형도 지금까지 겪었을 일을 생각해 보면 그럴 만도 하지. 찬영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냉동 삼겹살을 먹어 치우고 밥까지 볶고 나자 찬영의 생각보다 술자리는 일찍 정리되는 분위기였다. 하기야 동명은 몰라도 주량이 그리 세지 않은 찬영이 이렇게 빨리 소주 한 병을 넘겼으니 오래 끌진 못했을 거다. 지금도 머리가 조금 알딸딸했다. 그래도 오늘 간만에 기분 좋은 술자리였고, 새롭게 시도해 볼 만한 게임도 찾았으니 나름의 성과는 있었다.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선 찬영이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는 사이, 동명이 선수를 쳐 직원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얼마 나왔어?”

가게 밖으로 나오자마자 묻자 동명은 어깨를 으쓱거리기만 했다.

“얼마 안 나왔어.”

“말을 해 줘야 돈을 보내지. 아깐 같이 계산하자며.”

“됐어. 그냥 한 말이지. 그거 얼마나 한다고 너한테 돈을 받냐, 받길.”

“그래도.”

“집에 가서 발 닦고 잠이나 자. 너 얼굴 벌겋다. 내가 하는 게임 할 거면 말하고.”

휘휘 손을 내저으며 말하는 동명을 보며 찬영은 생각했다. 스킬 그래픽이 화려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동명 같은 지인이 있으면 할 만하지 않을까?

벌게진 얼굴로도 찬영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인터넷을 켰다. 그동안은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레비아 온라인도 아웃벤에 따로 게시판을 두고 있는 게임이었다. 오히려 에이나인보다 더 활발한 곳이기도 했다.

그때 이후로 아웃벤은 다시는 안 들어간다고 다짐했었는데. 먼저 자유 게시판의 인기 글 목록부터 클릭했다.

[수다] 레전드 아군 길드원 모집 [67]

서버 이동[12]의 날이 밝았습니다

레전드 서버 아군 길드에서 신규 길드원을 모집합니다.

<가입 조건>

본캐 160 이상 성인

뉴비&복귀 유저 환영

스펙 안 봅니다 길드에 이미 격수 충분해서 상관 X

세에레 트라이 가능하신 분은 별도로 문의 주세요 모시러 가겠습니다

길드 콘텐츠 완전 자율 참여

안 한다고 눈치 받는 사람 길마밖에 없음

현재 길드 스킬 두 개 모두 매주 만렙 유지 중

길드 보이스코드&라잇톡 운영(필참 아님)

밥도 안 먹고 게임하는 길드원 다수 보유

다른 조건 다 필요 없고 레전드 서버에서 오래오래 같이 하실 분을 찾습니다

물론 대탈출 시즌 2 열리면 같이 탈출 가능합니다

+ 장난 아니고 진짜 구하는 글

세에레 트라이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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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67) 등록순 최신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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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드에 이미 격수 충분해서”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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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아직 뉴비라 잘 모르는데 저게 무슨 말인가요? 아웃벤 찾아봐도 이해가 안됩니다.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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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벌전이라고 길드끼리 경쟁하는 게 있는데... 입장하면 패턴 아무것도 없는 허수아비 같은 애가 있어요

길드원들이 일주일에 한 번 시간 될 때 들어가서 때리면 그 데미지 다 합해서 서버별로 등수를 매기는데 이게 높을수록 길드 스킬 레벨도 높아짐

길드에 격수 충분하다는 건 지금 있는 길드원만으로 상위권 등수 충분히 가능하다는 얘기인 듯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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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하 답변 감사합니다 대단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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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버가 레전드인 게 레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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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동행님 이번 기회에 레전드로 오시죠 새로 키우시는 것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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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도 비테라서 그건 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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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똥믈리에들끼리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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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리에서 비테하기VS레전드에서 파이터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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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파이터가 사기래도 레전드를 누가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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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ㄹㅇ 템 주문서 다 퍼줘도 아무것도 모르는 뉴비 아니면 절대 안 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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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지어 사격은 파이터도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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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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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좀...너무 좆목 아닌가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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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전드 거기 유배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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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서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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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리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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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글로리라니까 사격 댓글 더 안 다네 개불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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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우냐?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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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부터 궁금했는데 서버 왜 레전드신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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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지인이 같이 가자고 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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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 보니까 지인한테 돈 안 갚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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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도 연락하시는 지인인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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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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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격님은 세에레 트라이 안하시나요ㅋㅋ 못하시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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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ㅈㄴ 심하네 사격은 혼자라도 깰 거임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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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이 더 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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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같이 갈 사람이 없네요 ㅎㅎ 체력이나 패턴 문제 때문에 솔플[13]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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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ㅎㅎ 에서 이 악문 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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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에레 5인팟 격수 컷이 몇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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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리섭 기준 빨간 허수아비 딜 최소 1분 10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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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 ㅁㅊ; 그 정도면 ㄹㅇ 서버급 격수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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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란 허수아비랑 빨간 허수아비랑 차이 심한가요? 왜 딜 잴 때 다 빨간 허수아비로만 재는 것 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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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스들이 다 뎀감이라 그럼 빨간 허수아비가 보스 실전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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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전드섭 촌장님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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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전드 전설 등급 업데이트하면서 나온 서버 아님? 그때 골드 시세 억당 만오천까지 올라갔었던 거 기억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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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오천이 뭐임 ㅋㅋㅋㅋ 만칠천까지 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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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격이 다른 섭이었으면 트라이는 무슨 이미 퍼클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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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데 사격님은 왜 서버이동 때 안 나가신 거임? 다른 사람들은 그때 다 나갔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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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 전에 대탈출 열렸을 때 빠져나가는 사람 너무 많아서 반나절만에 바로 닫히고 사과문 올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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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사격 일하느라 게임 접속 못했다는 게 정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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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진짜 세 시간만에 닫힐 줄은 몰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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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는 시골섭 -> 도시섭은 절대 안 열릴 거임 장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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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드 홍보 글인데 망했네 서버 얘기밖에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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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초에 사격도 기대 안 함 ㅋㅋㅋㅋ 자게에 쓴 거부터가 증거임

[웃긴글] 레전드의 필드 보스 문화를 알아보자.jpg.txt [38]

채팅창 캡처.jpg

[메가폰] HIENC: 다스 << 여기 스틸 길드인가요? 간부 찾음

[메가폰] 코튼: ? 제가 다스 길마인데요

[메가폰] HIENC: 귓말 받아주시죠 다스 길드원이 스틸함

[메가폰] 치킨왕: 엥 다스 매너길드 아닌가 뭔 스틸을 했길래...

[메가폰] HIENC: 분명히 기다려달라고 했는데 허락도 없이 필보 잡았습니다

[메가폰] 코튼: 아...넵

[메가폰] 빨강색: 필ㅋㅋㅋㅋㅋㅋㅋ보ㅋㅋㅋㅋㅋㅋ허락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메가폰] 빨강색: 보셨나요???????? 보셨나요??????????? 족망섭 꼰대 문화?????????????

[메가폰] HIENC: ? ㅋㅋ 왜 웃으시는 건지

[메가폰] HIENC: 필보 한번 잡히면 그 뒤로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 하는데 당연히 기다려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메가폰] HIENC: 코튼님 왜 귓말 거부하신거임? 대답좀

[메가폰] 쓰로우: 형 1절만 해 쫌.... 내가 더 쪽팔려 나 같아도 차단하겠다

[메가폰] 두번다시안함: 그러지마 너네 그럴 때마다 서버 나가고 싶단 말임 ㅠㅠ

ㅇㅋ 그만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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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8) 등록순 최신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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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은 레전드도 안 이래요 쓸랬는데 오늘 일이라네...... 하 ㅅ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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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 저걸로 싸우는 거임? ㄹㅇ 싸대기 마렵누 한 시간마다 젠[14]되는 걸 갖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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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저렇진 않음 캡처만 봐도 욕먹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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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ㅈㄴ 등신같다 다른 섭도 이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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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ㄴ 글로리 저딴 말 하는 사람 한 명도 못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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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걍 망섭임 글로리랑 통합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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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전드 인구X10 해도 글로리 인구 수도 안 되는 게 레전드임 진짜

대충 읽어 보니 사격이라는 사람이 꽤 유명한 유저인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동명의 서버가 레전드라고 한 것 같은데, 이 분도 레전드 서버이신가 보네.

온튜브에서 레비아 보스를 검색하자마자 뜬 영상 목록에도 사격이 나왔다.

[하드 나이트메어 윈런 솔플(도핑[15] O, 보조[16] X)]

조회수 84,862회

사격(개인기록저장용)

구독자 374명

별다른 편집이나 제목 어그로도 없이 정직하게 올린 이십오 분짜리 영상은 그런 것 치고는 무려 조회 수 8만을 넘겼다.

화면에 보이는 보스는 생판 모르는 초짜의 눈에도 하드 콘텐츠로 보였다. 위에선 작은 구슬 같은 게 떨어지고, 아래로는 장판이 터지고, 이상하게 생긴 몬스터들도 나오고…. 사격은 그런 와중에도 일 초도 쉬지 않고 딜을 넣었다.

찬영이 접은 이후로 나온 직업인지 사격이 쓰는 스킬은 죄다 처음 보는 형태였다. 예전에 알고 있던 레비아와는 완전히 결이 다르다. 그때는 끽해 봐야 빨간 구 한 개가 날아가는 마법사 스킬이나 화살 위로 파란색 효과가 덧씌워진 궁수 스킬 정도가 다였는데.

좀 더 찾아보자 그사이 각성이라는 최종 전직 개념도 생긴 것 같았다. 화면을 다 뒤덮던 스킬은 각성 스킬이라는데, 최근에 출시되었는지 이펙트가 엄청나게 화려했다.

댓글 17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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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미지 미쳤다 ㄷㄷ 내 엘레나 딜이랑 비교하면...엘레나 사기라고 해서 키운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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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뭔소리임 엘레나 ㅈ사기 맞음 님이 레린이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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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 말하는 거 보니까 보통 한줄뎀에서 0 두 개 빼면 쓴 돈 나온다던데 ㄹㅇ 영수증 그 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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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격님 혹시 템 공개도 가능하신가요 윈런 세팅하는데 참고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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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로 말한 건 없는데 지금까지 한 번도 안 하신 거 보면 앞으로도 공개 안 하실듯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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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내가 사격이라도 템셋 공개 안 함 얘가 무슨 방송하는 것도 아니고 공개해봐야 타직업 몰려와서 비교질하고 윈런 불 날 텐데 좋을 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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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ㅠㅠ 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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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알던 레비아가 아니네 궁수 맞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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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레비아에 궁수 법사 도적 전사 이런 거 없음 스킬 보면 죄다 법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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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비들아 이거 보고 윈런할 생각 하지 마라 직접 하면 씹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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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격 템, 사격 손 갖고도 이 모양인데 뉴비들이 하면 데스 아이 가기도 전에 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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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스아이는 무슨 당장 샐러맨더에서 키보드 샷건 치고 꼬접할 듯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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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런이 그렇게 구림? 영상 보면 전혀 아닌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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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급 스펙 비제이나 온튜버들만 봐도 별로임 일단 초고자본 기준으로 딜부터 딸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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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격 스펙이면 진짜.... 진짜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는데 윈런이라서...하필 윈런이라서 ㅠㅠ 심지어 레전드섭이라 세에레 솔플도 못하고 파티플도 못함

윈런? 줄임말인가. 영상 제목이나 댓글 내용을 보면 직업 종류인 것 같은데.

- 사격 템 그렇게 좋은지는 모르겠는데; 약간 과대평가된 것 같아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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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템 보여준 적도 없는데 그렇게 좋은지는 모르겠는데 ㅇㅈㄹㅋㅋㅋㅋㅋㅋㅋ 현실에선 고급 둘둘인 내가 댓글창에선 하드 나메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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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라노벨 세계관이니까 ㄹㅇㅋㅋ만 치라고 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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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 그런 말은 본캐 스펙 인증하고 해야 하는 거 알지? 나도 온튜브에선 하-바드 졸업하고 고글 다녀

온튜브 어디든 그렇듯 열등감에 찬 댓글도 눈에 들어왔다. ‘현실에선 고급 둘둘’이라고 비꼬는 걸로 봐선 이 게임에서는 고급이 낮은 등급인 모양이다.

레비아 공식 홈페이지에서 찾아보니 일단 윈런은 궁수 직업군 중 하나인 윈드 러너를 뜻하는 듯했다. 온튜브 말고도 이것저것 서치해 본 결과로는 영상과 달리 사격만큼의 컨트롤과 과금력이 아니면 별로인 직업으로 보였다.

암만 MMORPG는 하고 싶은 캐릭터를 하는 거고 본캐는 애정이라지만, 찬영은 남들에게 개사기 OP캐[17]라고 불리는 직업이 좋았다. 레비아에서는 그게 아수라라는 캐릭터라고 했다. 폭주와 제어 두 가지 모드를 오가며 스킬을 사용하는 직업인데, 신 직업 버프까지 받아서 딜이고 유틸[18]이고 모자란 게 없다고.

파악은 대충 됐으니 우선 게임 다운로드부터 받았다. 메인 화면에서 계정을 생성하고 넘어가자 열댓 개의 서버가 보였다. 오래된 게임들이 보통 서버 두세 개를 겨우 유지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예상 이상이다. 서비스를 시작한 지 채 삼 년이 되지 않은 에이나인보다도 많으니까.

정확히 몇 명이 접속했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위쪽의 서버는 대부분 혼잡이라고 쓰여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무조건 사람이 가장 많은 서버를 찾았겠지만, 찬영은 이제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서 최대한 교류 없이 살고 싶었다.

접속자 비율을 표시하는 바가 삼 분의 일 이상 차 있는 서버를 모두 거르자 남은 건 레전드 서버 하나였다. 어쩐지 동명이 신신당부를 하더니 정말로 인구수가 가장 적다.

찬영은 바로 레전드 서버에 접속해 아수라 캐릭터를 생성했다. 동명도 레전드고, 그 사격이라는 사람도 같은 서버인 것 같으니까.

레비아는 한때 국민 초딩 게임 소리를 들었던 게임이니만큼 찬영도 예전에 한 적이 있었다. 물론 십오 년 전과 비교하면 지금은 강산도 변했고 그때의 지식도 아무 쓰잘데기 없을 것이다. 서버 이름만 봐도 죄다 처음 보는 것들뿐이다.

쌓인 세월이 있으니 진입 장벽이 없진 않겠지만 이런 장르 게임을 한두 번 해 보는 것도 아니고, 고인물들이 몇 년간 만들어 놓은 스펙이나 노하우를 바로 따라잡으려는 생각은 없었다. 그 정도로 높이 올라갈 것도 아니고. 남들 다 가는 보스를 적당히 솔플 할 수준이면 충분하다…. 정도가 튜토리얼까지만 해도 찬영이 했던 생각이었다.

그런데 정보도 기반도 없는 뉴비가 보스는 무슨 얼어 죽을. 당장 사냥부터 문제가 생길 줄은 몰랐지.

어려운 사냥터도 아니고 모두가 뉴비에게 추천하는 사냥터였다. 무려 레비아 공식 홈페이지 가이드에도 나오는 지역이란 말이다.

사실 뉴비는 N년 전에 졸업해서 기억도 나지 않는 ~아 레비아 개노잼 할 거 존나 없네 컨텐츠가 부족하네~ 토끼공듀(LV.2000)들 기준이었나?

몬스터들에게 비빔 당해 유령이 된 지 세 번째가 되었을 때, 찬영은 멍하니 그런 생각을 했다. 공식 홈페이지 가이드야 사실 대충 작성하거나 예전 버전에서 업데이트도 안 하는 게임사가 수두룩한 데다 추천을 받은 사이트가 아웃벤이란 걸 감안해 보면 충분히 일리는 있다.

필드 드롭 장비를 끼고 스킬을 대여섯 번 갈겨야 죽는 몬스터를 아득바득 잡아대던 찬영은 결국 게임 시작 이틀 만에 십만 원을 지르고 골드로 바꿔 장신구와 방어구, 무기를 샀다. 어설프게나마 장비 슬롯을 채우자 드디어 원킬이 났지만 생각만큼 만족스러운 데미지는 아니었다.

뭐가 문제지….

꼴랑 십만 원에 너무 많은 걸 바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템 세팅을 할 때 참고한 온튜브 영상에 보이는 데미지와는 간극이 심했다. 직업도 같고 장비 수준이나 레벨도 비슷한데.

고인물과의 내실[19] 차이인가?

찬영은 아웃벤과 온튜브를 다시 뒤졌다. ‘레비아 뉴비 가이드’, ‘레비아 템 세팅’을 수차례 검색한 끝에 하나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팁과 노하우] 찍먹 뉴비+복귀 유저분들을 위한 템 세팅 가이드(마법석 편) [38]

찍먹 뉴비+복귀 유저분들을 위한 템 세팅 가이드(장비 세팅 편)

https://www.outven.co.kr/board/labia/tip/38125

이번에는 마법석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이것도 특별할 건 없고요. 대충 마법석은 낮은 단계라도 꼭 껴야 한다는 것 정도만 기억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간단하게 정리해드리자면

1. 마법석이란?

장신구 캡처.jpg

+12 설레는 모험의 귀걸이

영웅 등급

요구 레벨 110

직업 공용

거래 5회 가능

힘 +95

민첩 +95

지력 +85

행운 +85

체질 +85

추가 옵션

힘 +10%

행운 +7%

힘 +7%

초월 옵션

힘 +5%

방어력 +3%

소켓

● 물리 공격력 +16(4단계 마법석 장착)

● 물리 공격력 +16(4단계 마법석 장착)

마법석은 110제 이상 장신구의 소켓을 뚫으면 장착할 수 있는 특수 장비인데요.(소켓 뚫으시려면 NPC 오드에게 가시면 됩니다. 장신구 레벨에 따라 약간의 골드가 필요합니다.)

합성을 통해 최대 7단계까지 등급 상승 가능합니다. 장신구 하나당 소켓 2개를 뚫을 수 있어서 모든 장신구의 소켓을 뚫으면 총 8개까지 장착할 수 있습니다.

낮은 단계라도 꼭 장착해야 하는 이유는 보시는 것처럼 마법석이 물리 공격력이나 마법 공격력을 깡으로 올려주기 때문입니다. 1단계 마법석 한 개는 물마 5라 끼고 안 끼고 별 차이가 없지만 8개 풀로 장착한 기준으로는 물마 40 차이가 납니다. 이 차이는 단계가 올라갈수록 더 커지고요.

물론 나는 이런 거 없이 장비로만 세지고 싶다 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마법석은 교환 불가 아이템이라 경매장에서 사거나 본캐 마법석을 부캐로 옮기는 게 불가능하고, 무조건 직접 만들어야 합니다.

2. 7단계 마법석 만드는 법

높은 단계의 마법석을 만들기 위해서는 낮은 단계의 마법석을 계속 합성해야 합니다. 이 때 마법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1) 보스 클리어 보상

- 주 1회 보스를 돌면 클리어 보상으로 나오는 1단계 마법석 상자를 모아 합성

-> 7단계 풀로 채우는 데 걸리는 시간: 최소 318일~최대 820일

2) 캐시샵 패키지 구매

- 스타터 패키지 50,000(리턴 중복 구매 안 됨)

- 리턴 패키지 50,000(스타터 중복 구매 안 됨)

- 마법석 패키지 50,000

- 마법석 패키지(월간 한정 판매) 40,000

-> 7단계 풀로 채우는 데 드는 비용: 대략 4~500만원

꾸준한 노가다냐 현질로 빠르게 얻냐의 차이라서 각자가 편한 방법대로 하시면 됩니다.

개인적으로 뉴비나 복귀 유저분들은 스타터 패키지나 리턴 패키지를 구매하셔서 3단계 마법석 4개를 얻으신 다음 천천히 7단계까지 올리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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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8) 등록순 최신순

- 마법석 하나에만 4~500만원 ㅁㅊㅋㅋㅋ 뉴비들 도망가는 소리 여기까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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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질 대신 노가다로 때운다 쳐도 존나 오바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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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 즐기려면 7단계가 필수인 것도 아닌데 이건 좀;; 애초에 7단계 풀은 지금 고인물 중에서도 거의 없음... 시간 지나면 알아서 완화될 듯 이벤트 때 뿌린다던지

* * *

↳ 마법석 패키지로 출시한 거 보면 절대 안 해줄 것 같은데 ㅋㅋㅋ

* * *

- 이렇게 보면 스타터 패키지가 가성비 ㅆㅅㅌㅊ긴 함 근데 필수는 아니니까 이거 보고 시작하자마자 5만원 지르는 뉴비는 없었으면

* * *

↳ 사실상 패키지 팔이하려는 온더넷의 수작

* * *

- 이거 얼마 전에 길드 상점 개편되면서 마법석 파편 상자 추가됐어요 뉴비나 복귀분들은 꼭 아무 길드라도 들어가서 보상 챙기시길

뻔히 보이는 수작이라도 상관없다. 그길로 찬영은 캐시샵 메인에 걸려 있는 오만 원짜리 스타터 패키지를 구매했다. 스타터 패키지라기엔 부담스러운 가격이었지만 구성품 목록을 보면 죄다 필요한 아이템들이긴 했다.

무엇보다 3단계 마법석 4개가 급했다. 뚫을 수 있는 소켓 8개 중에서 4개의 소켓이 바로 채워지는 것이다. 수치로만 따져도 물리 공격력이 48이나 증가했다.

순식간에 치킨 여덟 마리가 날아갔지만 에이나인에서도 몇백은 썼다. 이 정도야 초창기 편안함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면 나쁘지는 않았다.

동명에게 도와 달라 했으면 훨씬 간단했겠지만, 얼마나 오래 할지도 모르는데 양심도 없이 지원부터 해 달라 할 수는 없었으니까.

충동적으로 시작했어도 찬영은 아기자기하지만 있을 건 다 있는 2D 그래픽도, 각 마을이나 던전마다 있는 자잘한 퀘스트도 다 마음에 들었다. 직업별 캐릭터 카드 효과와 카드 세트 효과가 본캐릭터 스펙에 영향을 끼쳐 십여 개 이상의 부캐릭터 육성이 강제되는 점도 오히려 장점이었다. 앞으로 퇴근하고 들어와서 할 게 많다는 거니까.

문제는 서버였다. 아웃벤에서 사격의 서버를 놓고 놀렸을 때 바로 튀었어야 했는데.

망했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캐릭터 카드 효과를 위한 부캐릭터들까지 어느 정도 키워 놓은 후였다.

레전드 서버는 사람이 적은 수준이 아니라 그냥 없었다. 메가폰 목록에 뜨는 닉네임 중 3분의 2는 친분은 없어도 다 아는 이름이었다. 마을 맵에서는 익숙한 닉네임들이 화면을 왔다 갔다 하며 정신없이 더블 점프를 해댔다.

이 좁다란 서버는 일정 레벨이나 스펙을 넘긴 유저라면 굳이 한 다리를 건널 필요도 없이 서로 다 알고 있었다. 특정 지역의 원활한 사냥과 보스 클리어를 위해 꼬박꼬박 해야 하는 일일 평판 퀘스트나 대형 이벤트 참여도 지인 없이는 꼬박꼬박 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결국은 동명에게 SOS를 쳐야 했다. 정작 동명은 왜 이렇게 늦게 말했냐며 아쉬워했지만.

지금 고민하는 것도 비슷한 문제였다. 서비스를 시작한 지 십오 년이 넘었다지만, 늘 PC방 점유율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이 게임은 여름과 겨울마다 대형 패치를 했다.

최근에도 신규 보스와 성별 전환권, 썸머 위시 이벤트가 간격을 두고 차례로 업데이트되었다. 물론 신규 보스인 세에레는 엔드 콘텐츠라 업데이트된 지 한 달은 지났어도 찬영과는 먼 얘기였고, 일부러 남캐를 골랐으니 성별 전환권을 살 생각도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썸머 위시 이벤트도 할 수 있는 만큼만 대충 참여하다 말았을 거다.

최근 레비아의 이벤트에는 주간 보스를 잡으면 드롭되는 핑크 별로 아이템을 구매할 수 있는 핑크 별 전용 상점이 등장했는데, 이번에 그 상점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요정의 윙’ 코디 아이템이 나왔다는 게 문제였다.

막상 얻으면 한 번 끼워 보고 곧장 인벤토리에 처박아 둘 거 안다. 지금은 다들 ‘와! 보는 눈이 있으시구나! 겁.나.아.름.답.습.니.다.’ 하고 있어도, 그러고는 그런 걸 얻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겠지. 세상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져야만 하는 게 있는 법이었다. 있는데 안 끼는 것과 없어서 못 끼는 건 엄연히 다르다.

하지만 핑크 별은 보스를 잡아야만 얻을 수 있었고, 가뜩이나 다니는 보스가 몇 개 되지 않는 뉴비 찬영은 혼자 잡기 힘들어 평소 돌리지 않는 보스까지 돌리지 않으면 요정의 윙을 얻는 게 불가능했다.

그냥 파티로 가자.

고민 끝에 찬영은 결단을 내렸다. 에이나인을 접으며 세웠던 원칙? 어차피 일 번부터 어긴 거 이 번 몇 번 어긴다고 문제 될 게 있나? 중요한 건 삼 번이고. 지금 찬영이 가려는 샐러맨더는 초반 한정 딜로 찍어 누르면 그만인 보스여서 에이나인 때마냥 긴장할 필요도 없었다.

다만 레비아에서 파티 보스를 하는 건 처음이고 혹시 모르니 패턴은 미리 봐 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메가폰] 보틀: 빨강색 사기꾼입니다 거래 ㄴ

[메가폰] 보틀: 빨강색<< 강돌 주면 파티 추방하고 잠수 탐

[메가폰] 빨강색: 보틀<< 무통[20] 사기꾼임 오늘 길드 추방함

[메가폰] 궁수상향필수: 레축[21] 있나 보는데 잡소리 ㅈㄴ 심하네 시골섭 ㅈ목 수준;

[메가폰] 빨강색: 궁수님 레축 필요하시면 뿌려드림 8채 영전 ㄱㄱ

[메가폰] 궁수상향필수: 제가 개소리를 했네요 ㄱㅅㄱㅅ 바로 갑니다

[메가폰] 쓰로우: 자낳괴가 또...

[메가폰] 꿀덕꿀떡: 하드 샐러맨더 버스[22] 오실 분 구함 블크뱉[23] 강돌 3 선받[24] 본인 귓

게임을 창 모드로 바꾼 찬영이 화면 옆으로 샐러맨더 패턴 설명 온튜브 영상을 켰다. 친구 채팅창인지 메가폰 창인지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친목 채팅이 가득한 화면을 뚫어져라 본다.

찾고 있던 내용이 보이자 바로 귓속말을 날렸다.

[귓속말] 꿀덕꿀떡<< 혹시 다 구하셨나요?

[귓속말] 꿀덕꿀떡>> ㄴㄴ 님만 오면 끝 샐러맨더 오셔서 교환 ㄱ

[귓속말] 꿀덕꿀떡<< 넵

버스 파티든 격수 파티든 어차피 시골 서버에서는 파티를 구할 수만 있다면 장땡이다. 샐러맨더 수준의 보스라면 더더욱.

채널을 맞추고 샐러맨더 입장 맵으로 이동한 찬영이 꿀덕꿀떡에게 교환 신청을 걸고 강화의 돌 세 개를 올렸다. 강화의 돌은 150레벨 이후 각성 스킬을 강화할 때 쓰는 재료인데, 대부분의 서버에서 시세가 일정해 지금은 화폐처럼 쓰이고 있었다.

파티는 찬영이 들어가자 딱 다섯 명 풀인 상태였다. 샐러맨더 앞에서 마지막 파티원을 기다리며 모두 대기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파티] 꿀덕꿀떡: 10초뒤에 갈게여

[파티] 체리피커: 네

데스 카운트[25]가 여러 개이긴 하지만 입장하자마자 죽는 건 안 되니까 무적기를 두르고…. 포션이야 차고 넘칠 만큼 뒀고. 어차피 버스팟이면 아무리 늦어도 오 분 안으로 끝날 테니 늦게 살아나기만 해도 아웃할 일은 없을 거였다. 패턴도 길어지지 않을 테니까.

아니 분명히 그렇게 생각했는데. 왜 또 고통 받고 있는 거지? 다들 누워서 뭐 하는 건데? 처음 온 나도 한 번밖에 안 죽었는데.

찬영은 살아난 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죽어 버려 유령 상태인 파티원들을 허망하게 바라보았다.

[파티] 체리피커: 숫자님 맑음님은 왼쪽으로 가주세요

[파티] dfgh: 넵

[파티] 체리피커: ㄴㄴ

[파티] 체리피커: 영어님은 거기 그대로 계셔야 돼요 숫자님만

[파티] 941111: 아 죽었네...

[파티] 941111: ㅈㅅ요 브레스 맞음

[파티] 앞으로맑음: ㄱㅊㄱㅊ

아무래도 이 파티는 망한 것 같다. 맵은 몇 분 전부터 계속 불바다였다.

[파티] 체리피커: 꿀덕님 딜 넣고 계세요?

[파티] 꿀덕꿀떡: 네

[파티] 체리피커: 혹시 장비 제대로 끼셨는지 확인해주실 수 있을까요

[파티] 체리피커: 딜이 너무 안 들어가는 것 같은데

[파티] 꿀덕꿀떡: 아니

[파티] 꿀덕꿀떡: 제대로 꼈음 당연히; 그만 좀 보채세요 진짜

[파티] dfgh: ㄷㄷ...

[파티] 체리피커: 보채는 게 아니라

[파티] 체리피커: 파티원들 데카 다 써가는데 피가 안 까이니까 그렇죠 ㅋㅋ

꿀덕꿀떡은 딜도 컨도 딸렸고 두 명은 패턴을 아예 몰랐다. 버스를 받으러 온 사람들이야 당연히 딜찍누[26]를 예상했을 테니 그럴 수도 있다 치는데, 적어도 꿀덕꿀떡은 저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개판이 난 가운데 부캐로 보이는 블레이더 유저 혼자서만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패턴을 파훼하고, 피하기 바쁜 꿀덕꿀떡 대신 딜을 계속 넣고, 채팅으로 어떻게 하면 되는지 오더해 주고…. 이게 그 게임 내 조별 과제라는 건가? 근데 조원이 아니라 조장이 탈주한 거고? 혹시나 해서 패턴 영상을 보고 온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샐러맨더는 속박 스킬 적용 시간 내로 클리어하지 못할 경우 HP가 3분의 1가량 남았을 때부터 더럽게 구는 보스였다. 유저들이 더럽다고까지 표현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일단 분화구가 파티원 숫자에 따라 한 번에 최대 다섯 개까지 두 번 생성되는데, 이때 생성된 분화구를 플레이어가 제한 시간 내 파괴하지 못하면 폭발했다. 다만 폭발하고 끝이 아니라 분화구가 있던 자리가 그대로 사라지는 게 문제였다. 밟을 수 있는 발판의 개수가 줄어들면 캐릭터의 움직임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럼 뻔히 보이는 패턴에도 플레이어는 오도 가도 못 하다가 그대로 데스 카운트를 날려야 했다.

게다가 샐러맨더는 이때부터 주요 패턴 중 하나인 브레스를 거의 상시 수준으로 날렸다. 시전 범위도 이전보다 훨씬 넓어지는데, 브레스에 맞으면 체력 비례 70%의 데미지가 들어왔고 ‘화상’이라는 상태 이상도 걸렸다.

화상은 짜증을 유발하는 온갖 상태 이상 중에서도 가장 치명적인 상태 이상이었다. 화상에 걸리면 무려 십 초 동안 일 초마다 체력 비례 10%의 데미지가 들어오기 때문이었다. 정화 물약[27]으로 풀 수는 있었지만 파티원들이 정화 물약을 챙겨 왔을 것 같진 않았다. 애초에 버스팟은 정화 물약이 필요할 만큼 이 구간을 오래 끌 일도 없었다.

차라리 솔플이었다면 분화구 개수라도 적었을걸. 그 와중에 영어는 또 죽어 버리셨고….

[파티] dfgh: 저 아웃ㅠ

영어의 채팅이 뜬 동시에 숫자도 파티원 목록에서 희미해진 걸 보니 둘이 거의 동시에 데스 카운트를 다 쓴 모양이었다. 우왕좌왕하던 꿀덕꿀떡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사라졌다.

[모두] 체리피커: ;;

찬영은 눈치껏 채팅창 모드를 모두로 전환하고 체리피커에게 채팅을 쳤다.

[모두] 앞으로맑음: 다 나가셨네요

[모두] 앞으로맑음: 저희도 파탈할까요?

[모두] 체리피커: 아뇨 피 얼마 안남았고 맑음님 딜 되실 것 같은데 그대로 가죠

[모두] 앞으로맑음: 근데 저 이 보스 오늘 처음이라 잘 못할 수도 있어서

[모두] 체리피커: ㅋㅋㅋㅋㅋㅋ 괜찮아요 처음인데 지금까지 4데카시면 잘하셨어요

[모두] 체리피커: 어차피 저 분들이 죽어서

[모두] 체리피커: 못 깨면 어쩔 수 없을 것 같아요

[모두] 앞으로맑음: 넵 알겠습니다

아까 오더해 줄 때도 느꼈지만, 체리피커는 RPG에서 보기 드문 유저 유형이었다. 나머지 파티원은 모르겠고 이 사람이 껴 있었으니 파티에도 나름 행운이 따른 것 같았다. 고인물 부캐 느낌만 아니었어도 이따 친구 추가가 가능할지도 물어봤을 텐데.

[파티] 꿀덕꿀떡: 님들 파탈하세요 뭐함?

[파티] 꿀덕꿀떡: 파티 반 이상이 죽었는데

그러니까 강화의 돌 받은 값도 못 하고 아웃당한 꿀덕꿀떡 같은 사람 말고….

이거 싸움 각인가? 긴장한 찬영은 숨을 죽이고 화면만 들여다봤다. 레비아에 만약 사사게가 있었다면 지금까지 일어난 일만 가지고도 박제 감이었다.

에이나인 같았으면 꿀덕꿀떡이 한 번 죽자마자 모두 나갔을 거다. 그리고 그중 한두 명쯤은 그날 새벽 안에 사사게 게시판에 글을 올렸겠지. 제목은 ‘[레전드섭] 꿀덕꿀떡<< 버스 전복 박제합니다’ 정도.

꿀덕꿀떡의 파티 탈퇴 요구에 체리피커는 아무 말도 없었다.

레비아는 처음 파티를 결성해 입장한 파티원 중 단 한 사람만이 살아남아 깼다고 하더라도 해당 파티 전체의 클리어로 취급했다. 개인별 보상도 처음 입장한 인원의 N분의 1만큼 나왔다. 먼저 아웃당한 파티원이 파티 탈퇴를 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어쨌든 깨 주기만 하면 좋은 거 아닌가?

쌩뉴비 시절에는 찬영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꿀덕꿀떡이 저렇게까지 예민하게 구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레비아에서 보스 클리어 보상을 얻기 위해서는 보스 처치 후 떨어진 골드와 아이템을 직접 주워 먹어야 했다. 그런데 데스 카운트를 다 쓴 사람은 이때도 부활 불가였다. 시스템상 클리어 처리가 됐는데 보상은 먹을 수 없는 것이다. 보스 당 주 1회만 잡을 수 있었기 때문에 억울하든 뭐든 그 주의 보상은 이미 날아가 버린 셈이었다.

해결 방법은 클리어를 포기하고 파티원 전원이 탈퇴해 보스 맵을 벗어나는 방법뿐이었다. 하드 샐러맨더는 1일 1회 입장 가능이라 다시 가려면 날을 넘겨야 한다는 문제가 있어서 그렇지.

그런데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체리피커가 파티 탈퇴를 해 줄 것 같지는 않았다.

[모두] 체리피커: 이쪽에서 패시면 돼요

[모두] 앞으로맑음: ㅇㅎ 감사합니다

[파티] 꿀덕꿀떡: 아니ㅋㅋㅋ 뭐하냐고요 챗 안 보임?

[모두] 체리피커: 저 사람 말 그냥 무시하세요 무슨 일 생기면 제가 알아서 할게요

[모두] 앞으로맑음: 넵

체리피커가 알려 준 자리에 서니 패턴이 덜 와서 훨씬 편했다. 샐러맨더를 집중해서 보고 있던 찬영은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지치지도 않는지 계속 올라오는 꿀덕꿀떡의 채팅이 좀 신경 쓰이긴 했지만…. 레비아에서 파티 플레이는 이번이 처음이고, 체리피커는 경험이 많아 보이니 저 사람 말대로 하면 되겠지.

[모두] 체리피커: 저 극딜[28] 하나도 없는데 있으시면 써주실 수 있나요

[모두] 앞으로맑음: 바로 갈게요

어차피 체리피커가 거의 다 잡아 놓은 상태라 극딜 한 번이면 바로 클리어될 것 같았다. 찬영은 샐러맨더에게 대상의 방어력 약화 효과가 있는 디버프 스킬을 먹이고, 쿨[29]이 돈 극딜 스킬을 썼다.

하드 샐러맨더 처치 1/1

‘불 태워라’ - 하드 샐러맨더 최초 처치 업적 클리어

화면을 뒤덮은 스킬들과 보스가 사라진 뒤로 블루 크리스탈과 1단계 마법석 상자를 비롯한 아이템, 핑크 별, 골드가 떨어졌다. 클리어였다.

[모두] 체리피커: 수고요

[모두] 앞으로맑음: 수고하셨습니다

체리피커의 인사에 답을 했을 뿐인데, 하필 아웃당한 파티원들이 기다리는 대기 맵에서 채팅이 쳐졌다. 찬영의 의도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게 꿀덕꿀떡의 심기를 폭발시킨 모양이었다.

[모두] 꿀덕꿀떡: 님들 왜 계속 잡음? 그 상태로 깨면 나머지 보상 없는 거 아실 거 아님 파티 챗 무시함?

[모두] 체리피커: 인당 강돌 3개씩 받고 중간에 나간 사람이 할 말은 아닌 듯

개쎄다 진짜….

아까 전부터 불쾌한 티를 내긴 했지만, 지금 체리피커의 말투는 거의 싸우자는 것처럼 들렸다. 물론 꿀덕꿀떡이 욕먹을 만한 짓을 한 건 맞았다. 찬영도 버스팟을 간 건 처음이었지만 공짜나 지인팟도 아닌데 중간에 데카아웃을 하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모두] 꿀덕꿀떡: 아까 먼저 아웃된 사람들이 트롤해서 죽은 건데ㅋㅋㅋ

[모두] 체리피커: 피할 수 있는 것도 다 맞으시던데요

[모두] 체리피커: 애초에 잡는 시간 5분 넘어가면 버스 기사 하시면 안됨

[모두] 꿀덕꿀떡: 원래 이정도로 안걸려요; 손 꼬인거

[모두] 체리피커: ㅋㅋ

[모두] 체리피커: 다음부터 버스는 안하시는 게 좋을 듯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영어와 숫자는 이미 사라진 후였다. 자존심이 상했는지 자리에 없는 파티원 탓을 하는 꿀덕꿀떡은 엄청나게 구질구질해 보였다.

막말로 암만 손이 꼬이든 발이 꼬이든 딜 수준만 됐으면 누구 하나 아웃되는 일 없이 깼을 거다. 체리피커도 어이가 없는 듯 웃는다.

우겨댄 게 쪽팔리기는 했는지 꿀덕꿀떡은 별다른 인사도 없이 사라졌다.

메가폰 급조 파티라 고생을 좀 하긴 했지만 어쨌든 찬영은 살아서 보상을 받았다. 좀 조마조마하긴 했어도 크게 싸움도 안 났고. 레비아는 사사게도 없으니 이대로 별 탈 없이 마무리될 것이다. 하지만 다음에도 이런 식이라면.

또… 가야 하나? 이 짓을 더 하라고?

찬영은 요정의 윙을 얻기 위해서 앞으로 몇 번이나 더 파티 보스를 다녀야 하는지 계산했다. 다섯 번. 무려 5주다. 와, 절대 못 하겠는데.

아무리 봐도 메가폰 파티는 개노답 자체였다. 샐러맨더 패턴도 할 만하고, HP가 그렇게 높은 것도 아니니 차라리 시간이 걸려도 솔플을 연습할까? 생각하고 있을 때쯤 체리피커의 채팅이 보였다.

[모두] 체리피커: 사실 아까 용맹의 증표 떴어요 그래서 환불해달라고 안했음

[모두] 체리피커: 이거 팔리면 분배해드릴게요

용맹의 증표라면 보스 장신구 중 하나였다. 보스 장신구라고 해서 다 비싼 건 아니지만, 용맹의 증표는 마땅히 대체할 만한 아이템도 없는 데다가 드롭률까지 낮아 특히 비쌌다.

체리피커는 꿀덕꿀떡이 갖고 튄 강화의 돌 3개 대신 용맹의 증표 값을 분배해 주겠다고 하는 거다, 지금. 어느 모로 봐도 지나치게 남는 장사였다. 가격으로 따지자면 강화의 돌 250개가 용맹의 증표 하나와 비슷한 수준이니까.

[모두] 앞으로맑음: 저 얼마 때리지도 못했는데... 분배는 좀

[모두] 체리피커: ㄴㄴ 가져가셔도 돼요 마지막에도 딜 다 넣으셨고

[모두] 체리피커: 오늘 버티신 거 보면 직접 버스 운영하셔도 아까 그 사람보단 나을 듯

[모두] 앞으로맑음: 근데 저분한테 말 안해도 괜찮나요 ㅋㅋ

[모두] 체리피커: 어차피 분석[30] 켜보니까 제가 다 패서 괜찮아요

[모두] 앞으로맑음: 그...혹시

[모두] 앞으로맑음: 버스팟이 다 이런 건 아니죠?

[모두] 체리피커: 네 방금이 이상했던 거

[모두] 앞으로맑음: 아하

[모두] 앞으로맑음: 사실 생각보다 너무 오래 걸려서 당황했거든요

[모두] 앞으로맑음: 저도 버스팟 온 건 처음이라

[모두] 체리피커: 처음부터 고생하셨네요

[모두] 체리피커: 혹시 친추 괜찮으신가요?

[모두] 체리피커: 지금 분배금이 없어서 나중에 팔리면 드려야 할 것 같은데

[모두] 앞으로맑음: 넵 저야 좋죠

[모두] 체리피커: 오 그럼 바로 본캐로 들어가서 친추 드릴게요 ㅎㅎ

예상은 했지만 체리피커는 정말로 부캐였던 모양이다. 패턴도 빠삭하고. 이벤트 때문에 일시적으로 하는 거겠지만 부캐를 하드 샐러맨더 버스까지 돌린다면 엄청나게 열심히 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모르긴 몰라도 본캐는 최소한 찬영보다는 레벨도 스펙도 높겠지.

[친구] 사격 님이 친구 추가를 요청하셨습니다.

그런데 도착한 알림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헐. 찬영의 눈보다 손이 먼저 움직여 수락을 클릭했다. 반사적이었다.

사격이 네임드 유저라는 건 계정을 생성하기 전부터 예상할 수 있었다. 레비아 관련 커뮤니티라면 윈상필 사하필[31]이라는 밈도 심심찮게 보였을 정도니까. 사격의 데미지가 다른 윈드 러너 유저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살벌하다는 의미였다.

컨트롤이야, 미쳤다 못해 저 정도면 그냥 변태 아니냐는 온튜브나 아웃벤 궁수 게시판 댓글만 봐도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 정도는 감이 왔다. 첫날 하드 나이트메어 솔플 영상에서 본 무호흡 딜링이 인상적이기도 했고.

그러나 레비아의 콘텐츠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다시 본 사격은 겨우 그 정도가 아니었다.

찬영은 그제야 그 제목 어그로 없이 정직하던 영상이 어떻게 조회 수 8만을 넘길 수 있었는지 깨달았다. 그냥… 이 사람은 찬영 같은 애매한 즐겜러와는 아예 다른 세계 사람이었다.

아직 전 서버에 몇 없는 만렙이라거나 의미 없는 두 글자 닉네임에 목숨을 거는 게임에서 뜻도 있고 직업과 관련도 있는 레어 닉네임인 건 둘째치더라도, 사격은 레전드 서버 랭킹과 직업 랭킹에 레벨이든 한계의 탑 기록이든 매번 1위로 박혀 있는 유저였다.

밸런스 패치 시즌마다 윈드 러너 개선안을 논문 수준으로 들고 올 정도로 직업 이해도도 높았다. 현재 윈드 러너 유저 대다수가 사용하는 딜 사이클을 만든 것도 사격이라고 했고.

사격의 직업인 윈드 러너는 생존 유틸은 나쁘지 않았지만, 깡딜 자체가 약한 데다 주력기 중 일부가 가끔 다 나가지 못하고 증발하는 현상까지 있어 솔플에 특화된 직업은 아니었다. 온튜브 댓글에 암만 ‘내 직업만 망직업임 암튼 그럼’ 무새가 많다고 해도 윈드 러너는 실제 고인물 유저들 사이에서도 구리다는 평이 압도적이었다.

사격은 그 윈드 러너를 들고 수많은 보스 타임 어택 기록을 세웠다. 물론 직업이 직업이라 기록 중 대부분이 금세 깨졌어도.

찬영이 레전드 서버에 정착한 건 동명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격의 영상에 꽂힌 것도 없잖아 있었는데.

[친구] 앞으로맑음: 사격님 안녕하세요

[친구] 앞으로맑음: 방금 그 분이신가요?

[친구] 사격: 네 체리피커요

[친구] 사격: 혹시나 해서 여쭤보는데

[친구] 사격: 성인분 맞으시죠?

[친구] 앞으로맑음: 넵 스물일곱 남자입니다

굳이 물어보지도 않은 성별까지 먼저 말해 주는 건 사사게 사건의 흔적이었다.

[친구] 사격: 일단 용맹의 증표는 최저가에 올려놨고 팔리면 바로 분배해드릴게요

[친구] 앞으로맑음: 감사합니다

사격의 캐릭터는 찬영이 있는 맵까지 쪼르르 와 있었다. 지금은 피스당 몇백만 원을 줘도 못 구한다는 극 초창기 한정판 헤어와 한 벌 옷, 무기와 망토를 낀 상태였다. 똑같은 아이템을 다른 유저가 끼고 마을을 돌아다니는 걸 볼 때는 아무 생각도 없었는데, 저 캐릭터를 보니 갑자기 구매 욕구가 생긴다.

그동안 관심이 없었던 거지 돈이 없었던 건 아니니까. 찬영이 이미 단종된 코디 아이템들의 가격을 검색해 보고 있을 때였다.

[친구] 또치와양치: ?

[친구] 또치와양치: 맑음님 사격님 친추하심? 그 분 맞나

[친구] 또치와양치: ㅋㅋ;; 그 분 친추 잘 안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아…. 저거 또 시비 털러 왔네.

익숙한 닉네임이 보이자마자 짜증부터 났다. 어쩐지 오늘은 웬일로 조용하다 했다. 또치와양치의 말투는 띠껍다 못해 시비조에 가까웠다. 둘만 보는 것도 아닌 친구 채팅으로 저런 식으로 말하는 것도 속 보이고. 어차피 길드 채팅이 아니고서야 제 평판만 깎아 먹는 짓거리겠지만.

또치와양치는 같은 길드원이었다.

사실 친구야 그렇다 치더라도 길드는 정말 안 구하려 했다. 에이나인 사사게 일이 커진 이유도 길드 내부에서 찬영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사람들이 쓴 글 탓이었으니까. 그 시점에 찬영은 이미 길드마스터이자 사귀는 사이였던 이탁을 제외하고는 길드 내에서 친한 사람이 없었고, 이탁마저 돌아서자 찬영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아웃벤에 올라온 글들의 대다수가 일방적으로 왜곡돼 있거나 아예 허위이긴 했다. 그래도 글의 진위 여부를 떠나 그동안 저를 고깝게 보고 있던 사람이 그렇게나 많았다는 건 충격이었다. 처음부터 시골 서버를 고려한 것도 가급적 많은 사람들과 부딪히고 싶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아이템 시세도 사기 유형도 모르는 순진한 뉴비에게 시골 서버는 그리 녹록지 않았다. 메가폰으로 열심히 구한 친구들은 친해질 만한 계기가 없어서인지, 현생에 찌들어서인지 ‘같이 OO 하실 분?’ 하면 대부분 대답해 주지 않았다. 사실 한 명도 없는 경우가 다수였다.

그렇다고 접을 수도 없고.

허한 마음은 중독 같은 소비로 이어졌다. 게임 내에서 3개월 동안 사용한 캐시액을 바탕으로 매긴 찬영의 등급은 최고 등급인 VVIP였다. 그 보상 중 하나인 레비아의 축복만 혼자 주야장천 뿌리고 있던 찬영을 kin이라는 고인물 유저가 주워 갔는데, kin이 길드마스터로 있던 길드가 바로 지금 속한 길드인 뉴비였다.

알고 보니 kin은 원래 서버에서 뉴비를 챙겨 주는 것으로 유명한 유저였다. 사사게 트라우마 때문에 그때까지 보스라면 필드 보스조차 피했던 찬영을 설득해 버스로 여기저기 데려가 주기도 했다. 피통이 크거나 아주 어려운 보스들은 아니었지만 kin이 딱 한 대만 쳐도 바로 클리어되는 건 좀 멋져 보였다.

그 이후 찬영의 목표도 kin이 되었다. 길드에 들어오지 않겠냐는 kin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던 건 그에 대한 동경과 호의 반, 외로움 반이었다.

딱 길드 가입까진 좋았는데.

뉴비의 길드원들은 별 공통점 없이 kin 때문에 모인 사람들이었다. 그게 문제였다. kin은 길드원들 간에 사이가 어떻든 별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았다.

게임에서나 뉴비지 현실도 뉴비는 아닌 사회 생활 해 본 청년으로서 찬영은 당연히 kin이 쫓아다니며 챙겨 주길 기대하진 않았다. 다만 뉴비 특화 친목 길드를 표방하고 있음에도 아무 구심점 없이 초면인 사람들만 멀뚱멀뚱 모아 둔 곳에 남아 있기란 생각보다 큰 고역이었다. 별것도 아닌 일에 자꾸 텃세를 부리려고 드는 간부들도 짜증 났고.

사정이 이렇다 보니 kin이 데려온 길드원 중에는 개복치 멘탈이라 채 삼 일을 채우지 못하고 접거나 길드를 탈퇴한 사람도 많았고, 시답잖은 이유로 사이가 껄끄러워진 사람들도 존재했다.

후자의 대표적인 예가 찬영과 또치와양치였다.

찬영이 또치와 사이가 나빠진 건 그놈의 버스 때문이었다. kin은 데스 아이를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다는 찬영을 데리고 노말 데스 아이를 갔다. 당연히 패턴이고 뭐고 하나도 몰랐던 찬영은 1페이즈에서 바로 아웃당했다.

또치는 kin 한정 관심 종자였는데, 아무래도 그날 얼마 버티지 못하고 데스 카운트를 모두 소모해 버린 찬영에게 (또치의 표현을 빌리자면) ‘kin이 신경을 써 준’ 게 거슬렸던 모양이었다.

하필 괜히 첫날 친구 신청을 수락해선. 그때는 사근사근하니 착한 애인 줄로만 알았지….

길드 채팅에서 찌질하게 구는 것까진 무시하면 그만이니 넘기겠는데, 친구 채팅에서까지 계속 시비질인 건 슬슬 참아 주기 힘들었다.

[귓속말] 또치와양치<< 아 네 사격님 맞아요

[귓속말] 또치와양치<< 저도 놀람

[귓속말] 또치와양치>> 좋으시겠네영 ㅋ

[귓속말] 또치와양치>> 님은 VIP라 그런가

[귓속말] 또치와양치>> 무자본은 친구도 안받아주실 듯

[귓속말] 또치와양치<< ??? 그런 분은 아닐 것 같은데요

뭐야, 미친놈인가….

자격지심도 적당히 티를 내야 넘길 만하지. 고작 저 하나 시비 걸겠다고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까지 깎아내리는 건 선 넘었다.

물론 레비아에서는 VIP 등급 달성 시마다 보상으로 옵션이 괜찮은 칭호를 줬고, 한 번 획득한 칭호는 남들도 볼 수 있었으니 관심만 있으면 이 사람이 과금러인지 아닌지 알 수 있긴 했다. 그렇다고 그것 때문에 친구를 받아 줬을 거라는 비약을 한다? 혼자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굳이 귓속말까지 해 가면서?

길드에서 정치질하는 스타일만 아니었어도 바로 친구도 끊어 버렸을 텐데.

이러다 정말 한 번은 싸우겠다 싶어 찬영은 또치와양치가 뒤에 뭐라 떠들든 무시하고 채팅창을 내렸다. 사냥이나 해야지. 이 게임은 레벨 업이 가장 큰 스펙업이다. 입장 레벨 180인 세펠리오에 온 지 며칠은 지났으니 얼른 185를 찍어 다음 지역인 콘피니움으로 넘어가야 했다.

* * *

진천에 있는 제조 공장에 출장을 다녀오는 날이면 항상 이른 시간에 퇴근했다. 가서 옷도 갈아입어야 하는 데다 회사 차로 왔다 갔다 하는 게 좀 피곤하긴 했지만, 그 정도 대가로 집에 두 시간이나 일찍 귀가할 수 있다면 매일 출장을 갈 수도 있었다. 두 시간이면 온갖 경험치 도핑을 다 한 기준으로 10%는 올릴 수 있으니까.

찬영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치킨 배달을 시키고 게임을 켰다.

[친구] 갓말이: 맑하~

[친구] 도텐: ㅎ2ㅎ2

[친구] 비테마죽: 하이염

[친구] 사격: 어서오세요

[친구] 앞으로맑음: 다들 안녕하세요~

[길드] 앞으로맑음: 안녕하세요

[길드] kin: 하이요

추가된 친구는 한 명뿐인데 어쩐지 전보다 훨씬 채팅창이 복작복작해진 기분이었다. 이제 들어와도 kin을 제외하고는 인사 한마디 없는 길드는 논외로 치고, 여름 대형 이벤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인지 친구 창의 접속률이 많이 늘었다. 일일 평판 퀘스트부터 하려고 캐릭터 카드 세트 효과를 바꾸고 있는데 채팅으로 사격의 말이 보였다.

[친구] 사격: 맑음님 이번 주도 샐러맨더 가세요?

[친구] 앞으로맑음: 넵

파티로 갈지 연습을 해서 솔플을 할지 아직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친구] 사격: 혹시 따로 가실 분 있나요

[친구] 앞으로맑음: 아뇨 메가폰이나 친창(친창: 친구 목록 창. 또는 친구 목록 창에 있는 사람.)으로 찾아보려구요

[친구] 사격: 그럼 저랑 바로 가실래요?

[친구] 사격: 길드원이 버스 태워주는 거라

[친구] 사격: 저번 같은 일은 없을 거예요 시간은 길어야 1분 정도?

[친구] 앞으로맑음: 헐

[친구] 앞으로맑음: 저야 그래주시면 감사하죠

솔직히 만난 지도 얼마 안 됐고 굳이 챙겨 주지 않아도 되는 상황인데. 찬영의 입장에서는 얼떨떨할 정도로 고마운 제안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사격의 인맥이라면야 저번 꿀덕꿀떡 같은 사태도 없을 거고.

[친구] 사격: 바로 올게요

사격이 채팅을 친 지 얼마 안 되어 체리피커가 들어왔다. 오른쪽 하단 화면으로 파티 참가 수락 알림이 뜨자, 찬영이 수락을 눌렀다. 파티에는 체리피커와 찬영의 캐릭터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껴 있었다. 방금 말했던 사격의 길드원인 것 같았다.

[파티] 내이름은빨강: 맑음님 하여 ~_~

[파티] 앞으로맑음: 넵 안녕하세요

[파티] 내이름은빨강: 저번에 버스 터져서 사격이랑 같이 고생하셨다고 들었는데

[파티] 내이름은빨강: 오늘은 제가 풀 코스로 대접해드림

[파티] 앞으로맑음: 아... 좀 걸리긴 했는데

[파티] 앞으로맑음: 감사합니다ㅋㅋ

[파티] 체리피커: 나 분화구 패턴 1년 만에 봄 답답해죽는 줄

[파티] 내이름은빨강: 걍 버스가 뭔지도 모르는 뉴비 아님?

[파티] 체리피커: 패턴 모르는 건 당연히 이해하는데

[파티] 체리피커: 자기 딜 안 돼서 망한 건데 파탈하라고 말하는 게 별로;;

[파티] 체리피커: 남탓 하는 것도 그렇고

[파티] 내이름은빨강: 흠... ㅇㅋ 내가 순삭해준다 딱 기다리셈

하드 샐러맨더 처치 1/1

‘뭐 타는 냄새 안 나요?’ - 하드 샐러맨더 30초 이내 처치 업적 클리어

내이름은빨강은 그 말을 지켰다. 오히려 사격은 일 분 정도라고 했었는데, 실제로는 이십 초도 걸리지 않았다. 가만히 맵에 서 있던 찬영이 놀랄 만큼 빨랐다. 생각지도 못한 업적도 깨졌다.

[파티] 체리피커: 빠르네 굿

[파티] 앞으로맑음: ㄷ 감사합니다

[파티] 앞으로맑음: 강돌 몇개 드리면 되나요?

[파티] 내이름은빨강: 엥ㅋㅋ

[파티] 내이름은빨강: 안 주셔도 됨여

[파티] 내이름은빨강: 쟤한테는 받을 건데 맑음님은 공짜

[파티] 체리피커: ?

[파티] 체리피커: 나는 왜..

[파티] 앞으로맑음: 그래도 강돌 드릴게요 그냥 받기는 좀ㅠ

[파티] 내이름은빨강: ㄱㅊㄱㅊ 이거 보상 얼마나 한다고 ㅋㅋㅋ

[파티] 내이름은빨강: 사격한테 받는다는 것도 농담임 어차피 이벤 기간 아니면 귀찮아서 잘 안 해요

[파티] 체리피커: 혹시 다음 주에도 잡아줄 수 있음?

[파티] 내이름은빨강: ㅇ 가능

[파티] 체리피커: ㅇㅋㅇㅋ

진짜 그냥 안 드려도 문제가 없는 건가? 상대적 뉴비에게 베푸는 시골 서버 특유의 인심인가? 아니면 정말로 샐러맨더 보상 같은 건 상관없어서일까. 그래도 오백만 골드 보상이면 그렇게 적지도 않은데.

[파티] 내이름은빨강: 맑음님

뻘쭘하게 핑크 별을 주워 먹고 있을 때 내이름은빨강이 찬영을 불렀다.

[파티] 내이름은빨강: 저도 본캐 가서 친구 신청 넣어도 되나여

[파티] 앞으로맑음: 넵 괜찮습니다

아마 저쪽도 부캐겠지. 하드 샐러맨더 클리어 속도를 봤을 때 부캐치고는 엄청나게 세긴 하지만.

역시나 내이름은빨강이 사라진 후 친구 추가를 요청한 닉네임은 메가폰에서 자주 보이는 이름이었다. 빨강색. 아마 사격이 길드마스터로 있는 아군 길드의 부길드마스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친구] 빨강색: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친구] 앞으로맑음: 넵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친구] 도텐: 뭐임 둘도 친창됨?

[친구] 빨강색: 불만?

[친구] 도텐: ㄴㄴ 물도 있음

[친구] 빨강색: 진짜

[친구] 빨강색: 도텐 저럴 때마다 진심으로 극1혐이다

[친구] 도텐: ㅋ^^

[친구] 빨강색: 킹받네

[친구] 갓말이: 순간 길챗인줄

[친구] 갓말이: 다 아는 사람들이구먼

[친구] 비테마죽: 진짜 이 서버는 레전드다...

[친구] 비테마죽: 한다리 건널 필요조차 없음; 그냥 다 아는 사람

[친구] 사격: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야. 순간 확확 올라가는 채팅창을 보고 어이없어진 찬영이 웃었다. 다 아는 사람들이었어? 누가 시골 서버 아니랄까 봐.

* * *

새벽 한 시면 주말치고 늦게 잔 것도 아닌데 자꾸 하품이 난다. 늘어진 찬영이 책상 위에 뺨을 기댄 채 지속 광역기 단축키를 눌렀다. 화려한 이펙트가 터지며 캐릭터 일러스트와 함께 화면 전체를 덮었다.

일일 평판 퀘스트만큼 귀찮은 것도 없었다. 맵 별로 기준치 이상의 평판을 달성하면 추가 데미지가 들어가는 탓에 해당 지역에서 사냥을 하거나 보스를 잡으려면 필수기도 하고, 일정 평판을 달성하면 주는 영구적인 스탯 보상도 레비아에서는 혜자라고 불렸지만 그건 다 상대적인 거다. 찬영이 하루에 해야 하는 일일 퀘스트만 해도 다섯 개였다. 개당 오 분만 잡아도 무려 이십오 분이나 걸린다. 따로 경험치를 주는 것도 아닌데.

아무리 맵이 예쁘고 BGM이 좋대도 다 한순간이지, 맨날 보고 듣고 있으면 아무런 감흥도 생기지 않았다. 옆에 온튜브 영상을 켜 두고 점프 단축키인 ALT와 주력기 단축키인 Q, A, S, D, F만 반복해서 누르고 있으면 남들에게 취미를 소개할 때 온튜브 감상이라고 해야 하는지 리듬 게임이라고 해야 하는지 헷갈릴 만도 했다.

그냥 오늘은 때려치울까. 그런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오를 때쯤 미니 맵으로 다른 캐릭터 표시가 보였다.

설마 자리 뺏으러 온 스틸범인가?

잠이 확 깨 찬영은 일단 스크린 샷부터 찍었다. 콤보는 582면 충분하겠지. 제발 길드 분쟁만 일어나지 마라. 제발. 가뜩이나 지금은 미운 오리 새끼 신세인데 눈치 보이니까.

몸을 일으키고 들여다본 닉네임은 다행히 사격이었다. 만렙이니 여기서 사냥할 리는 없고, 아마 평판 퀘스트를 하러 왔나 보다.

[모두] 앞으로맑음: 사격님 안녕하세요

[모두] 사격: 안녕하세요

남아 있던 광역기 이펙트 사이로 줄당 데미지가 그대로 보였다. 사격이 사출기[32]를 켜 두었는지 몬스터들이 리젠되자마자 파란색 화살 모양 이펙트가 박혔다. 24억, 32억. 극딜기도 아닌데 데미지가 찬영의 열 배다. 쓴 돈도 낀 아이템도 다를 테니 당연한 거고 막상 사격은 신경도 안 쓸 텐데 괜히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모두] 사격: 잠시만요 사출기 켜져 있었네요;;

[모두] 앞으로맑음: ㅋㅋㅋㅋㅋㅋㅋ 순간 스틸하시려는줄

[모두] 사격: ㅠ 바로 끌게요

화면 오른쪽 아래로 교환 신청 알림이 뜬다. 갑자기? 일단 수락을 누르자 교환 창에 골드가 올라왔다. 일, 십, 백, 천, 만…. 무려 3억 6300만 골드였다. 샐러맨더 때 드롭된 용맹의 증표가 팔린 모양이었다.

액수를 본 찬영이 기겁했다. 분배라더니 진짜 정확히 2분의 1을 해 버리시네.

[사격: 그때 용맹의 증표 팔려서]

[앞으로맑음: 아니 근데]

[앞으로맑음: 분배 반은 진짜 너무 많아요...; 저 얼마 때리지도 못했고]

[사격: 괜찮아요 ㅋㅋㅋ 그냥 교환 받으세요]

그래도…. 찬영이 좀처럼 받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답답했는지 한마디가 더 왔다.

[사격: 팔 떨어짐 ㅠㅠ]

레비아가 VR게임도 아닌데 떨어질 팔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이렇게까지 말하는 걸 계속 거절하기도 뭐하다. 결국 찬영이 교환 완료하기 버튼을 눌렀다.

[모두] 앞으로맑음: 감사합니다 무럭무럭 크겠습니다ㅠ

[모두] 사격: ㅎㅎ

도움받은 (상대적) 뉴비가 되돌려 줄 수 있는 건 그런 것뿐이다. 비록 뭔 짓을 해도 사격만큼 크지는 못하겠지만.

교환도 끝났는데 사격의 캐릭터는 가지 않고 맵을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

[모두] 사격: 맑음님 지금 재비[33] 드셨나요

[모두] 앞으로맑음: 아뇨 그냥 일퀘중이에요

[모두] 사격: 혹시 평소에 보스 어디까지 다니세요?

[모두] 앞으로맑음: 저 타락안드까지만요

[모두] 사격: 노말 데스아이는 안 가시나요

[모두] 앞으로맑음: 그건 못 깰 것 같아서...사실 아직 혼자선 안 가봤어요

[모두] 사격: 그때 보니까 데아는 충분히 하실 수 있을 것 같은데

[모두] 사격: 그럼 오늘 저랑 같이 가보실래요? 입장 안 하셨으면

뜬금없이 데스 아이? 찬영은 어리둥절해졌다.

[모두] 앞으로맑음: 입장은 안 하긴 했어요

[모두] 앞으로맑음: 근데 저 패턴도 잘 모르고 손도 그닥이라

[모두] 앞으로맑음: 중간에 죽으면 보상도 다시 못 돌려드리지 않나요

[모두] 앞으로맑음: 그러면 오반데

[모두] 사격: 죽으셔도 괜찮아요

[모두] 사격: 보상도 필요 없고... 그냥 경험 삼아 간다고 생각하세요

[모두] 사격: 길드에 데스아이 데려가기로 한 사람이 있는데 맑음님도 같이 가면 좋을 것 같아서 ㅎㅎ

[모두] 사격: 보상은 그냥 가져가시면 되고요

아니 맨날 필요 없고 그냥 가지시래. 지난번 빨강색도 그랬다. 고인물들은 원래 다 그런가? 아니면 아군 길드 특성인가.

사실 노말 데스 아이 보상이 아주 큰 의미는 아닐지 모른다. 그 정도는 사냥 한두 시간만 해도 충분히 벌 수 있으니까. 그런데 사냥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솔직히 사격이 보조 격수가 필요한 스펙도 아닐 텐데 굳이 찬영까지 데려가면서 보상을 줄일 필요는 없단 얘기다.

게다가 다른 사람도 데려가기로 했다면 최소한 한 명은 더 있다는 뜻이다. 사격은 부담 갖지 말라는 의도였겠지만 인원이 늘어난다는 말에 찬영은 오히려 더 긴장됐다.

하드 샐러맨더 버스팟을 별생각 없이 다녀올 수 있었던 건 평소에 노말 샐러맨더를 다녔기 때문이었다. 물론 노말의 HP가 비교도 안 되게 적었으니 이렇다 할 패턴을 본 적이 없긴 했지만, 그때는 분화구 패턴을 못 넘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조차 안 했다. 온튜브 공략 영상에서 최근 유저들의 스펙 인플레이션 때문에 파티 플레이라면 하드 샐러맨더에서도 분화구 패턴을 볼 일이 거의 없다고 적어 놨었으니까.

[모두] 앞으로맑음: 아... 저 오늘 해야 할 게 좀 있어서

[모두] 앞으로맑음: 그냥 먼저 가셔도 돼요 잠깐 자리도 비울 것 같아요

[모두] 사격: 오늘 시간 많아서 괜찮아요

[모두] 사격: 다녀오세요

안 가겠단 말이었는데.

돌려서 말해서 그런지 제대로 뜻이 전달되지 않은 것 같았다. 아니면 일부러 모른 척하는 걸 수도. 시간이 많다는 말에는 뭐라고 더 대꾸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그 와중에 날아온 파티 초대도 엉겁결에 수락해 버렸다. 일단 자리를 비우겠다는 핑계를 댔으니 캐릭터의 위치는 마을로 옮겨 놓았다. 파티원 목록을 보니 그나마 도텐, 동명의 캐릭터다. 이 멤버면 진짜 괜찮긴 한데. 찬영이 망설였다. 그래도….

그렇게 다 같이 무려 삼십 분을 기다렸다.

이제 찬영은 의자에 가시방석이라도 깔린 것처럼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아니 왜 안 가시는데요? 왜 기다려주는 거냐고.

[파티] 도텐: 얘 아직도 안옴?

[파티] 사격: ㅇㅇ 안 오시네

[파티] 도텐: 뭐지;

[파티] 도텐: 따로 일 생긴 거 아님? 물어봐줘?

[파티] 사격: 그러신 거면 어쩔 수 없긴 한데...

[파티] 사격: ㄴㄴ 그냥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파티] 사격: 형 바쁘면 먼저 가도 되고

[파티] 도텐: 됐어ㅋㅋ 걔랑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나도 오늘 시간 많음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솔직히 삼십 분이면 상대가 애인이나 가족이 아닌 이상 먼저 갔을 것 같은데. 그랬어도 갔겠다. 심지어 지금 찬영은 사격에게 언제 돌아올 거란 확답도 주지 않고 사라진 상태였다.

그런데도 사격과 동명이 그렇게 말하는 걸 눈앞에서 보고 있자니 이제 와서 못 가겠다고 할 수가 없었다. 양심이 너무 찔렸다.

심호흡을 한 찬영이 채팅을 쳤다.

[파티] 앞으로맑음: 저 왔어요 넘 오래 걸려서 ㅈㅅㅈㅅ

[파티] 사격: 오

[파티] 앞으로맑음: 저 근데 진짜 데스아이 버스로 한 번 밖에 안 가봤고

[파티] 앞으로맑음: 그때도 1페에서 아웃 당해서

[파티] 앞으로맑음: 진짜 잘 못하는데 괜찮나요

[파티] 사격: 그럼 오늘 2페 가시는 것만 목표로 하시죠 ㅎㅎ

[파티] 사격: 부담 갖지 마시고 패턴 영상 한 번만 보고 오시면 될 듯

[파티] 사격: 1페는 얼마 안 걸리니까 2페만 ㄱㄱ

[파티] 앞으로맑음: 넵

대답한 찬영은 온튜브를 켜 데스 아이 패턴을 검색했다. 슬로우나 스턴[34]을 걸고 상하좌우로 레이저를 난사하는 패턴, 특정 안전지대를 제외한 모든 바닥을 뒤엎어 버리는 패턴, 보스의 눈이 하얗게 빛날 때 파티원 전원에게 석화를 걸고 제한 시간 내 일정 데미지를 입히지 못하면 모조리 즉사시키는 패턴….

사격은 한 번만 보고 와도 된다고 했지만 두 번, 세 번을 봐도 솔직히 잘해 낼 자신은 없었다. 애초에 데스 아이는 각종 버그와 판정 오류, 시도 때도 없는 반격[35] 사용과 수많은 상태 이상으로 악명이 자자한 보스였다. 괜히 레비아 아웃벤에 데스 아이를 검색하면 ‘데스 아이가 존나 좆같은 이유’ 같은 제목의 게시글들이 줄줄 나오는 게 아니었다.

그나마 노말은 하드보다 훨씬 덜하다고 해서 다행이지.

의도하진 않았어도 저 때문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 것 같아 찬영은 바로 데스 아이 입장 맵으로 향했다. 사격의 딜이 있으니 찬영이 도핑해 봐야 별 의미는 없겠지만 길드 스킬을 쓰고, 경매장에서 급하게 사 온 데미지 상승 물약을 먹고….

소비 창을 뒤적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생일 축하 노래가 들리며 화면에 네모난 문구 메시지가 떴다. 같은 맵에 있는 모든 캐릭터에게 물리 공격력과 마법 공격력을 올려주는 뿌리기 버프였다.

[사격 님의 메시지: 긴장하시지 말고 화이팅~]

[파티] 앞으로맑음: ㄷ

[파티] 앞으로맑음: 솔직히 긴장 안 된다면 거짓말인데 그래도 ㄱㅅ합니다

[파티] 앞으로맑음: 지금 심장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아요

[파티] 도텐: 카드 효과는 생존 위주로 다 바꿈?

[파티] 앞으로맑음: 엉ㅠ

[파티] 도텐: 굿 나도 처음이니까 긴장 ㄴㄴ

[파티] 도텐: 쟤가 알아서 해주겠지

[파티] 사격: ㅋㅋㅋㅋㅋ 눈 감았다 뜨면 끝나게 해줌

[귓속말] 사격>> 혹시 죽더라도 괜찮으니까 천천히 살아나세요

잔뜩 쫄아 있는데 따로 그런 귓속말이 왔다.

감사하다고 대답할 틈도 없이 바로 화면이 까매졌다가 밝아지며 가운데 데스 아이가 등장했다. 죽지 말아야지, 죽지 말아야지. 찬영이 키다운[36] 무적기를 누르고 있는데 삼 초 만에 보스가 요동치며 괴로워하는 소리가 들렸다. 1페이즈가 끝났단 뜻이었다.

[파티] 앞으로맑음: ?

이게 뭐지? 말이 되는 속도인가?

[파티] 도텐: 딜 ㅈㄴ 살벌하네

[파티] 사격: ㅎㅎ 잘했어요 둘 다

아니 동명 형이라면 몰라도 난 진짜 냅다 무적기 쓴 거밖에 없는데.

잘했다는 말을 듣기도 민망했다. 1페이즈도 길어지면 좀 짜증 난다는 말은 있었어도, 원래 데스 아이는 2페이즈부터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들었다. 그러나 사격은 2페이즈가 시작하자마자 버그로 즉사기가 튀어나온 와중에도 여유롭게 채팅을 쳤다.

[파티] 도텐: ;; 입장렉 걸려서 서 있다가 끝났는데

[파티] 도텐: 아무튼 ㅇㅋ

어쨌든 처음으로 2페이즈를 와 봤으니 다 이뤘다 생각하던 찰나.

이번에도 오 초도 안 되어 2페이즈가 끝났다. 대단한 극딜기를 쓴 것 같지도 않은데 어떻게 이게 되냐고. 죽을 시간조차 없이 워낙 빠르게 진행돼서인지 데스 카운트는 아직 5였다.

이 속도면 가장 악명 높다는 3페이즈라고 해도 죽을 일은 없겠다. 입장 전의 귓속말은 찬영이 너무 긴장한 것 같아 배려 차원에서 해 준 게 분명했다. 데카아웃을 걱정한 것부터 말이 안 됐구나 싶어 헛웃음이 났다.

하드 샐러맨더 때 체리피커가 꿀덕꿀떡을 보고 왜 그렇게 답답해했는지 알 것 같았다. 본인이 이 정도 속도로 버스를 태워 주는데 꿀덕꿀떡한테 쌍욕을 안 한 것만 봐도 인성 증명이다.

혹시나 해서 찬영이 주력기로 데스 아이를 때려 보자 HP가 쥐똥만큼 까였다. 그나마 눈에 보이게 까이기는 하네. 연습하면 솔플이 될 것 같기도 했다.

아니, 그러면 사격 저분은 얼마나 센 거야, 대체?

암만 노말이라지만, HP를 깎는 시간보다 페이즈 별로 띄워 주는 일러스트가 로딩되는 시간이 더 길다는 게 말이 되는 딜인가?

[파티] 도텐: 속도 미쳤네

[파티] 사격: 형이랑 맑음님 3페 연습시켜줘? 딜 중지?

[파티] 도텐: ㄴㄴ 어차피 다음 주부터 바로 혼자 갈 거라

[파티] 도텐: 알아서 따로 연습하겠음

[파티] 앞으로맑음: 저도 바로 깨도 괜찮을 듯요

[파티] 사격: ㅇㅋ 맑음님

[파티] 앞으로맑음: 넵

[파티] 사격: 혹시 쿨 되시면 신념의 굴레 한 번만요

[파티] 앞으로맑음: 바로 쓸게요

아수라도 부캐이신가. 아니면 워낙 최근 인기 직업이어서 그런가. 사격은 스킬 이름까지 정확히 댔다.

원래 찬영의 직업인 아수라가 가진 버프 스킬은 각 공격 스킬들에서 나오는 사출기를 몬스터에게 적중시켜야만 효과가 발동했다. 그걸 강화해 주는 게 신념의 굴레였는데, 극딜 주기에 맞춰 쓰면 본인에게는 1.5배의 버프 효과를 적용하고 근거리에 있는 파티원들에게도 원래만큼의 버프 효과를 주는 스킬이었다.

커다란 회오리바람이 맵 전체를 덮으며 노말 데스 아이 처치 1/1 메시지와 함께 보스 계정 내 최초 클리어 업적이 떴다. 남은 시간은 29분대였다. 입장한 지 일 분도 지나지 않은 것이다. 심지어 3페이즈는 여유롭게 깼는데도.

문득 찬영은 kin과 노말 데스 아이를 갔다가 1페이즈에서 아웃당했을 때의 자괴감과 또치와양치의 눈칫밥에 시달렸던 기억을 떠올렸다. 데스 아이를 살아서 깰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해 봤는데. 물론 사격 버스를 받은 거지만…. 취향에 딱 맞는 코미디 액션 영화를 봤을 때처럼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래서 다들 보스를 가는구나.

[친구] 앞으로맑음: 감사합니다 처음으로 깨봐요

[친구] 비테마죽: 엥

[친구] 갓말이: ㄷㄷ 맑음님 탑 오르심?

[친구] 앞으로맑음: ㄴㄴ 데아요ㅠ

[친구] 비테마죽: ㅇㅎ ㅊㅊㅊㅊㅊㅊㅊ

[친구] 앞으로맑음: 사실 사격님한테 업혀간 거긴 한데

[친구] 앞으로맑음: 이제 접어도 여한이 없을 듯

[친구] 사격: ??

[친구] 사격: 접지 마시라고 같이 간 건데

[친구] 사격: 이제 시작인데 접어도 여한이 없으시다니 ㅠㅠ

아. 들떠서 좀 오버했나 싶어 민망해진 찬영이 귀를 매만졌다. 그러고 보니 사격에게 제일 먼저 고맙단 말을 했어야 했는데. 삼십 분씩이나 기다려 주고, 쫄아 있는 거 달래 주고.

[귓속말] 사격<< 바로 말씀 드려야 했었는데

[귓속말] 사격<<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진짜로

[귓속말] 사격>> ㅎㅎ 아니에요 잘하실 거라고 했죠 제가

[귓속말] 사격<< ㄴㄴ 이건 사격님이 세셔서 얼마 안 걸려서 버틴 거 같아요

[귓속말] 사격<< 감사합니다 골드 나온 건 다시 드릴게요

[귓속말] 사격>> 안주셔도 돼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로

[귓속말] 사격>> 왜자꾸 안받으시고 주려고만 하세요... 이 정도는 그냥 받으시면 됩니다

[귓속말] 사격<< 제가 죄송해서 안돼요 오늘 용맹증표 분배도 완전 과함 ㅠㅠㅠㅠ

[귓속말] 사격<< 이번에도 1페이즈에서 아웃될까봐 완전 쫄아있었는데

[귓속말] 사격>> 아웃될 수도 있죠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ㅋㅋㅋ

[귓속말] 사격>> 그리고 오늘 진짜 잘하심 아까 한줄 뎀 봤는데 솔격 딜도 충분히 나올 것 같아요

[귓속말] 사격>> 샐러맨더하실 때 보면 삼트 안에 클리어 예상

[귓속말] 사격>> 버스해주셨다는 그 분도... 솔직히 1페이즈에서 데카아웃될 정도면 버스하면 안 될 딜인데

[귓속말] 사격>> 요즘 버스 기사 기준이 많이 낮아졌나보네요 샐러맨더도 그렇고

[귓속말] 사격<< 그런 건 아녜요ㅠ 제가 못했음

[귓속말] 사격>> 일단 못하시는 것 같지도 않고

[귓속말] 사격>> 또 못하면 어때요 잘하실 때까지 잡아드리면 되죠

[귓속말] 사격>> 저 시간 많아요 ㅋㅋ

저 시간 많아요.

저 시간 많아….

저 시간….

찬영은 몇 번이고 마지막 말을 곱씹었다. 진짜 개멋있다….

겜창은 정말 어쩔 수 없나 보다. 남들 들으면 우스울 일인데 찬영은 게임 잘하는 사람만 보면 척수반사 반응마냥 그냥 가슴부터 뛰었다. 이탁의 일을 겪고도 그렇다.

지금 와서 칭찬하기는 죽기보다 싫었지만, 이탁의 컨트롤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서버 내 퍼스트 클리어를 목표로 하는 공대에도 종종 참여하곤 했으니 날고 기는 고인물 유저 중에서도 잘하는 편이었다. 게임에 돈도 많이 써서 스펙도 좋았고. 다른 건 다 취향 밖이었는데도 그걸로 충분했다. 그래서 그 사달이 났지.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탁의 일은 이탁의 일일 뿐이다. 잘하고 싶은 분야에서 잘하는 사람을 보면 동경하게 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리고 그런 의미로 좋아하지만 않으면 되잖아. 실제로 얼굴을 볼 일도 없는데. 찬영은 게임을 접으며 다짐했던 원칙 중 삼 번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겼다.

그래 내가 쓰리디에 멀미가 있지 투디 횡스크롤을 못하나? 개찌질했던 이탁의 글과 찬영이 남긴 댓글 아래 달렸던 욕 따위는 머릿속에서 지워진 지 오래였다. 대신 레비아에 대한 애정이 그 자리를 비집고 무럭무럭 솟아올랐다.

니들은 좆망겜 에이나인이나 해라. 난 대가리 깨져도 레비아다.

[친구] 앞으로맑음: 도텐 형도 기다려줘서 ㄱㅅㄱㅅ

[친구] 도텐: 고마우면 오백원

[친구] 앞으로맑음: 언제적 개그임 대체

[친구] 갓말이: 걍 석기 시대 사람임 저 형은

[친구] 도텐: ;;석기 시대는 좀

[친구] 갓말이: 크흠

[친구] 갓말이: 근데 맑음님도 평소에 걱정하신 거 생각하면 진짜 잘하신듯

[친구] 앞으로맑음: 넹?

[친구] 갓말이: 전에 손 때문에 안 간다고 하시지 않으셨나여

[친구] 갓말이: 암만 버스래도 하드 데아 끝까지 살아남아 계실 정도면 괜찮은 것 같은디

[친구] 앞으로맑음: 아 저 노말갔어요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사격이 껴 있어 다 같이 하드 데스 아이를 간 걸로 착각한 모양이었다.

[친구] 갓말이: 엥 저 형이 노말이여?

[친구] 앞으로맑음: 네 노말이요

[친구] 갓말이: ㄷㄷ

[친구] 빨강색: 맑음님이 처음이라 노말로 가준 거 아님? 솔딜로 하드 갔으면 좀 걸렸을 것 같은데

[친구] 갓말이: 와 그래도 그렇지 어케 하드 솔플보상을 두고 노말을 감?

[친구] 갓말이: 뉴비 사랑 ㅁㅊㄷ

[친구] 갓말이: 보상 열 배도 차이 날 듯

아.

생각해 보니 버스만 아니었다면 사격은 당연히 하드 모드를 갔을 것이다. 하드에 비하면 쥐꼬리겠지만 역시 찬영이 먹은 보상이라도 돌려주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친구] 사격: ㄴㄴ

[친구] 사격: 동명 형도 같이 데려가야 했는데 둘 다 처음이라

[친구] 사격: 걍 노말 갔음 반격 때 치면 골치 아파서 ㅋㅋㅋ

[친구] 빨강색: ㅇㅋ 그런 걸로 인정해줌

[친구] 사격: ;;

[친구] 사격: 맑음님 길드 데려오려고 빌드업 중이니까 조용좀

[친구] 앞으로맑음: ??

길드에 데려가려고 한다고? 나를?

찬영은 어리벙벙하게 화면 속 닉네임 아래를 보았다. 새싹 모양의 길드 마크 옆 뉴비라는 이름은 여전히 잘 박혀 있었다.

[친구] 사격: 아

[귓속말] 사격>> 맑음님 방금 친창 말

[귓속말] 사격>> 부담드리는 게 아니고 지난번 샐러맨더 때 좋은 분 같아서요

[귓속말] 사격>> 길드 있으신 거 알고 다음에 혹시 기회 되시면 고려만 해달라는 뜻입니다

한참 찬영의 대답이 없자 아차 싶었는지 사격의 귓속말이 쏟아졌다.

레비아에서 이미 길드에 소속된 지인에게 길드 가입을 제안하는 게 드문 일도 아니고, 지금 뉴비 분위기도 개판인 데다 등록된 친구 대부분이 아군 길드원이기까지 하지만.

고민하던 찬영이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귓속말] 사격<< 아니에요 오해 안 했어요 ㅋㅋ

[귓속말] 사격<< 근데 지금은 뉴비에 있고 싶어서

[귓속말] 사격<< 제안만으로도 정말로 감사합니다

[귓속말] 사격>> ㅠㅠ 넵 진짜로 부담 갖지 마시구요

누군가는 답답하다 할지 모르지만 아직은 레린이 시절 kin이 도와준 것들이 마음에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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