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는 마을사람-170화 (170/171)

# 170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7권 23화

외전 3. 작은 친구(1)

"엄마, 나는 왜 아빠가 없어요? 태수랑 예린이는 다 있던데."

네 살 아이의 질문에 어머니는 들고 있던 숟가락을 식탁에 내려놓고 아이의 눈을 바라보았다.

아이의 눈이 한 점의 먹구름도 없이 빛나고 있는 것을 보아하니 같이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에게 악의 없는 괴롭힘을 당한 것 같지는 않았다.

아이의 질문은 그저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언젠가 이러한 질문을 해 올 것이라 예상은 했었지만 그 시기가 생각보다 너무 빨랐다.

그만큼 아이가 빠르게 자라고 있다는 뜻이겠지.

"지한아, 지한이한테도 아빠는 있단다. 아빠가 없었다면 엄마는 지한이를 낳지 못했을 거야."

"거짓말, 나는 아빠가 없는데요?"

"......우리 지한이, 엄마가 조금 어려운 이야기를 할게."

문지한의 순수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질문에 문다인은 아직 어린 그에게 사실을 이야기해 주었다.

아빠는 엄마를 사랑해 주었지만 친할아버지가 그렇지 않았다는 것.

친할아버지가 엄마를 사랑하지는 않았지만 싫어하지는 않았다는 것.

그저 엄마보다 자신의 아들인 아빠가 우선이었다는 것.

엄마도 아빠가 우선이었기에 그를 위해서 그와 떨어지는 것을 택했다는 것.

문다인은 문지한에게 모든 것을 말해 주었지만 문지한은 계속해서 물음표를 그릴 뿐이었다.

아이는 아직 이해하기 어려운 어른의 사정이었다.

'그럼 결국 아빠가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그리고 문지한 역시 문다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아빠를 실제로 본 적이 없기에 자신은 아빠가 없는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아빠가 있든 없든 딱히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 해에 유치원 입학한 문지한은 교실에서 혼자 떨어져 놀고 있는 아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아이는 매일같이 혼자서 놀았다.

'혼자서 노는 걸 좋아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했었지만 바깥놀이를 할 때 아이들이 모여서 숨바꼭질을 하는 것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 무렵에 화장실에 혼자 다녀오던 문지한은 교무실에서 선생님들이 얘기하는 소리를 몰래 엿들을 수 있었다.

"요즘 호영이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호영은 혼자 떨어져 있던 아이의 이름이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세요, 강 선생님?"

"호영이가 감정 표현도 적고......, 아이들하고 벽을 치고 있는 것 같아요. 유치원에 들어오기 전에 동네 아이들한테 상처를 많이 받은 모양이에요."

"상처요? 아, 그러고 보니 호영이는 어머니밖에 안 계셨죠."

그 이야기를 엿들은 문지한은 속으로 크게 놀랐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신 말고 아빠가 없는 아이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으니까.

호영이라는 아이에게 호기심이 생겨났다.

문지한은 그길로 곧장 교실로 돌아가 점심을 다 먹고 남은 시간을 이용해 서로 어울려 놀고 있는 아이들의 틈에서 홀로 놀고 있는 호영을 발견하고는 그에게 다가갔다.

"야, 너 엄마밖에 없다며."

동질감에 내뱉은 말이었지만 나중에 커서 생각해 보니 호영에게 너무 모진 말을 했었던 것이라는 걸 문지한은 뒤늦게 깨달았다.

* * *

"그때는 정말 뭐 하는 녀석인가 싶었어."

"하하하! 그때는 다섯 살이었잖아. 나도 많이 반성하고 있다고."

유치원에서부터 시작된 문지한과 호영의 우정은 중학교 3학년이 된 지금까지도 아주 질기게 유지되고 있었다.

문지한과 호영은 딱히 다른 일이 있지 않은 한 항상 호영의 집에서 이예숙이 만들어 준 아침을 먹고 같이 등교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학교가 끝나면 항상 같이 학교를 나왔다.

지금도 여느 때와 같이 둘이서 하교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교할 때에 타는 버스가 달랐기에 버스 정류장까지만 같이 가지만 말이다.

그때 그들의 옆으로 버스 한 대가 지나갔고 그 버스를 본 문지한은 크게 놀라며 발에 땀이 나도록 뛰었다.

문지한이 타야 하는 버스였다.

"아! 저거 놓치면 안 되는데! 나 먼저 간다!"

"그래! 아주머니한테 안부 좀 전해 주고! 나중에 엄마랑 같이 찾아갈게!"

"그래!"

문지한은 전속력으로 달려서 정류장에 멈춰 있는 버스에 간신히 올라탈 수 있었다.

겨우 버스에 올라탄 문지한은 자리에 앉아서 거칠어진 숨을 돌렸다.

'흐억, 헉. 선생님이 종례를 늦게 끝내서 이게 무슨 꼴이야.'

문지한이 탄 버스가 향하는 곳은 그가 방과 후의 시간과 주말 시간의 대부분을 사용하는 장소였다.

30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문지한은 교통 카드를 단말기에 찍은 뒤 버스에서 내려 맞은편을 바라보았다.

그가 바라본 곳에는 깔끔하고 거대한 건물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병원, 그곳의 5층에 위치한 1인실이 약 반년 전부터 그의 어머니인 문다인이 누워 있는 곳이었다.

반년 전, 문다인은 운 나쁘게도 신호를 위반한 화물 차량에 치였고 그대로 공중을 날았다.

그리고 그 뒤로 지금까지 눈을 뜨지 않고 있었다.

현장에서 그 광경을 직접 목격했던 이들은 문다인이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살아 있다고 해도 깨어나지 않는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의사는 문다인이 뇌사 상태에 가까워서 깨어날 가능성은 거의 0에 가깝다고 말해 주었다.

하지만 문지한은 포기하지 않았고 그 뒤로 문다인이 깨어나기를 바라면서 학교가 끝나면 곧장 병원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학교가 끝난 뒤 면회 시간이 끝날 때까지 문다인의 옆에서 학교의 숙제를 하면서 그녀에게 계속 말을 거는 것이 문지한의 하루 일과였다.

"안녕하세요, 누나."

"안녕, 지한아."

문지한은 문다인이 입원해 있는 병실로 향하면서 오랫동안 봐 와 얼굴을 익힌 간호사들이 보이는 족족 인사를 했다.

자신이 그녀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면 조금 더 문다인을 잘 챙겨 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렇게 인사를 하며 복도를 걷다가 문다인의 병실이 있는 모퉁이를 도니 병실의 앞에 처음 보는 뒷모습을 가진 남자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순간 자신이 병실을 잘못 찾은 건가 했지만 그것은 아니었다.

문다인은 1인실에 입원해 있기에 병실 안에 문다인을 제외한 다른 환자는 없다.

그렇다는 것은 그는 문다인을 찾아온 손님이라는 뜻이었다.

"누구세요?"

"......?"

문지한이 병실에 들어가기 위하여 남자에게 다가가자 그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역시, 처음 보는 남자였다.

그의 얼굴에는 눈물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문지한을 바라보았던 남자는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이내 시선을 내려 그의 왼쪽 가슴에 달린 명찰을 바라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그 눈에서는 놀라움과 죄책감 등의 여러 복잡한 감정들이 엿보였다.

"너, 너는......."

"문지한이라고 합니다. 아저씨는 누구세요? 혹시 엄마 친구 분?"

"......백재건이라고 한단다."

아저씨, 엄마.

그 두 개의 단어가 백재건의 가슴속에 날카롭게 박혀 왔다.

그는 미간을 구기며 지금 당장이라도 다시 흘러내릴 것만 같은 눈물을 속으로 삼켰다.

그런 그에게 문지한이 밝은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엄마 친구분이신 거죠? 아마 엄마도 아저씨가 찾아오신 걸 알면 좋아할 거예요."

문지한은 그렇게 말하며 병실의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 산소 호흡기를 낀 채 침대에 누워 있는 문다인의 모습이 백재건의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보자 백재건은 가슴속에서 무언가 쿵 하고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까지 찾지 못한 것이 너무나도 미안했다.

곁에 있어 주지 못한 것이 너무나도 죄스러웠다.

우여곡절 끝에 그녀를 찾아내어 이렇게 시야에 두게 되었지만 과연 자신이 그녀에게 다가가도 괜찮은 걸까.

그런 생각이 들자 겨우 참았던 눈물이 그도 모르게 서럽게 흘러내렸다.

"흐윽, 흑......."

"......."

그 모습을 본 문지한은 백재건의 손을 잡고 그를 이끌어서 침대 옆에 있는 의자에 앉혀 주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대로 두면 병실에 들어오지도 않고 발걸음을 돌릴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었다.

그리고 여기서 돌려보내면 안 될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문지한은 구석에서 의자를 하나 더 끌어와 백재건의 옆에 앉았다.

"엄마, 백재건이라는 친구분이 찾아와 주셨어요. 이렇게 잘생기신 친구분이 계셨다면 진즉에 소개 좀 시켜 주지, 지금까지 꽁꽁 숨기신 건 너무한 거 아니에요?"

"......."

문다인은 문지한의 말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친구분께서 하실 이야기가 많아 보이시니까 저는 잠시 바깥에 나가 있을게요. 아저씨, 저는 1층 로비에 앉아 있을 테니까 이야기가 끝나면 말해 주세요."

문지한이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를 피해 주려던 때였다.

딸랑-.

병실 안에 방울 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문지한의 움직임이 우뚝 하고 멈추었다.

지금 이 병실에 있는 방울은 단 두 개.

문지한이 자신이 숙제를 하느라 문다인에게서 시선이 떨어졌을 때 혹여나 그녀가 조금이라도 움직임을 보인다면 바로 알 수 있도록 그녀의 양손 새끼손가락에 끼워 놓은 방울 반지들이다.

문지한이 문다인의 손을 쳐다보자 다시 한 번 방울 소리가 울리며 그녀의 손가락이 움찔거리는 것이 똑똑히 보였다.

잘못 본 것이 아니다.

"엄마? 엄마! 나 지한이야! 엄마!"

문지한은 백재건의 존재도 잊은 채 그녀의 손을 쥐고서 계속해서 문다인을 불러 댔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다.

문다인의 눈이 조금 움찔거리더니 그녀가 천천히 눈을 뜬 것이다.

잠시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던 그녀는 눈을 굴려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문지한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이내 손을 천천히 힘겹게 들어 올려 문지한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쓰다듬어 주고 싶었지만 팔이 제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지한아......."

목소리도 메말라서 갈라진 소리가 흘러나왔다.

침대에 누워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동안 문다인은 계속해서 문지한이 걸어오는 말들을 듣고 있었다.

그 말들이 그녀에게 힘이 되어 주었고 그것이 백재건의 방문으로 인해서 꽃을 피운 것이다.

"재건, 씨......."

"다인 씨....... 미안해, 내가...... 정말로 미안해......."

문다인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백재건이 울며 그녀에게 대뜸 사과를 해 왔다.

"뭐가...... 미안해요......."

"내가......, 내가 아버지의 생각을 사전에 알았더라면......."

백재건이 문다인의 손을 양손으로 살포시 잡자 병실에 맑은 방울 소리가 울려 퍼졌다.

태풍으로 인해서 무너져 내린 둑을 타고 넘어오는 파도처럼 계속해서 내뱉어지는 백재건의 고해 성사에 옆에 있던 문지한은 크게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네가 나를 버린 줄 알았어, 그래서.......

미안해, 정말 미안해. 아버지를 막지 못했어.

이제야 찾아와서 정말 미안해.

좋은 남편이 되어 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남편, 문지한은 그 단어에 휙 고개를 돌려 문다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희미하게 웃음 지으며 자신과 눈을 맞추고 있는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지금까지 서로에게 기대며 살아온 세월이 얼마인가.

문다인은 문지한이 품었던 의문을 바로 알아보았으며 문지한도 그녀의 대답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문지한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백재건을 바라보고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빠......?"

문지한의 말에 백재건이 그와 눈을 마주쳤다.

그러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가, 너에게 아빠라고 불려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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