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8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7권 21화
외전 1. 바두 이야기(1)
"와옹......."
오르도의 마을 중앙에 있는 작은 광장, 그곳에서 바두는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린 채 힘없이 꼬리를 흔들거리고 있었다.
호야가 접속하지 않은 지 벌써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러 있었다.
매일 와 주었던 그가 일주일씩이나 자리를 비우자 바두는 호야의 빈자리를 느끼고 있었다.
호야가 바두에게 오랫동안 오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었었고 바두도 그것을 받아들였지만 그리운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어째서인지 오늘따라 호야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졌고 자신을 방치해 두는 그에게 괜스레 자그마한 원망까지 생겨났다.
"아직 일주일이다. 벌써부터 호야가 그리운 게냐?"
그때 미호가 바두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바두는 그녀의 말에 모순을 느꼈다.
'아직' 일주일이 아니라 '벌써' 일주일인 것이다.
바두에게 일주일은 충분히 긴 시간이었다.
중간중간에 짧게 돌아오기는 한다지만 어떻게 2년에 가까운 시간을 기다리라는 것인가.
"2년은 너의 생각보다 매우 짧은 시간이란다."
미호가 그리 말해 주었지만 바두는 아직 기운이 없어 보였다.
바두도 미호가 자신을 위해서 그리 말해 주는 것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긴 것은 긴 것이다.
미호가 100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온 것에 비해서 바두는 1년을 넘긴 지 얼마 안 된 참이었다.
호야를 기다려야 하는 시간은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보다 긴 시간인 것이다.
'와옹(그걸 어떻게 기다려).......'
바두가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근처를 지나가던 모안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바두야, 왜 그러고 있어?"
"끼잉......."
"벌써 호야를 그리워하는 것 같구나."
"뭐? 벌써?"
모안이 바두에게 건넨 질문에 답한 것은 미호였다.
그리고 그녀도 미호와 같은 말을 해 왔다.
'왕(그러고 보니 모안은 미호 누나보다 더 나이를 먹었지).'
"바두야, 방금 뭔가 이상한 생각 하지 않았니?"
모안의 질문에 흠칫한 바두는 고개를 격하게 양옆으로 흔들어 보였다.
다른 것은 몰라도 나이에는 매우 민감한 여자라고 바두는 생각했다.
나이가 그렇게 민감한 주제인 것인가 하는 의문도 있었다.
"벌써 호야가 그립다면 호야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밖에서 신나게 뛰어놀다가 와. 너희 셋 다 호야가 가고 나서 계속 마을에만 박혀 있었잖아."
모안의 말에 바두와 미호, 새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안하지만 그건 무리일 것 같구나. 나라면 몰라도 이 마을 바깥의 숲은 바두와 새미에게는 너무 위험한 곳이다. 나가기에는 아직 일러."
"누가 숲에서 놀래? 내가 워프 시켜 줄 테니까 어디든지 말만 해."
"왕!"
모안의 말에 바두가 눈을 빛내며 격하게 꼬리를 흔들었다.
호야의 빈자리가 오늘따라 크게 느껴졌던 이유가 어쩌면 마을에 있는 것이 지루해서였을지도 모른다.
바두는 지금 당장이라도 뛰어나갈 듯한 기세였다.
하지만 그런 바두의 마음에 미호가 찬물을 끼얹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우리가 자율적으로 이곳에 돌아올 방법이 없지 않나. 시간을 정해서 당신이 데리러 오는 것은 불가능할 테고 말이다."
"끼잉......."
미호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바깥에 나가는 것은 좋지만 마을에 돌아올 수 없는 것은 싫었기에 바두의 꼬리가 축 늘어졌다.
그 모습을 본 모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그냥 너희들이 돌아오면 되잖......, 아!"
그러고는 이내 무언가 아차 싶은 듯한 표정을 짓더니 아공간을 열어 그곳에서 익숙한 모양의 육각형 돌이 걸려 있는 목걸이를 꺼내었다.
"그건...... 호야가 사용하던 아이템이 아닌가."
"맞아, 가기 전에 나한테 맡기고 갔거든. 나머지 하나는 내 집 앞쪽에 달아 놨어. 내가 살짝 손을 봤으니까 너희들끼리도 사용이 가능할 거야."
모안은 그렇게 말하며 목걸이를 바두의 목에 걸어 주었다.
호야는 군대에 들어가기 전에 마을에 남게 될 바두와 미호, 새미를 생각하여 셋이서 마을을 오갈 수 있게 해 주기 위하여 모안에게 에반이 주었던 귀환석을 셋이 사용할 수 있도록 손봐 주기를 부탁했었다.
모안은 호야의 부탁을 바로 이루어 주었지만 그가 군대에 간 뒤에 지금까지 귀환석 목걸이를 건네주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모안이 그 사실을 솔직히 털어놓으며 목을 긁적이자 셋은 게슴츠레한 눈으로 모안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아하하하하, 미안, 진짜 미안. 그래서 어디로 가고 싶어? 말만 해, 이 모안 님이 어디든지 데려다줄 테니까!"
* * *
"어머, 렌시아. 호야 님은 어디에 두고 바두만 데리고 온 거야. 처음 보는 분도 계시네."
"호야는 조금 길게 여행을 갔다. 이쪽은 미호와 새미, 내 손님이다."
"그래? 안녕하세요, 미호 씨랑 새미 양. 편히 있다 가세요. 아, 바두야, 오미 열매 먹을래? 마침 오늘부터 수확을 시작했거든."
"왕!"
셋이 모안의 도움을 받아서 도착한 곳은 엘프들이 사는 곳인 위그드라실의 마을이었다.
막상 바깥에 나가자니 가고 싶다고 생각되는 곳도 없었기에 오랜만에 마을에 돌아가는 렌시아를 따라온 것이다.
엘프에게서 사과같이 생긴 오미 열매를 받은 바두는 그것을 한 번에 입에 모두 물고서는 입안에서 돌리며 씹어 먹기 시작했다.
그때 강하면서도 친절한 바람이 불어와 그들을 덮쳤고 바람과 함께 푸른색의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실피드는 곧장 렌시아의 품에 달려들었다.
"렌시아, 오랜만이야!"
"그래, 오랜만이다."
렌시아는 자신의 품에 매달린 실피드를 살포시 안아 주었다.
그 모습을 본 바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위그드라실의 마을에 올 때마다 항상 실피드와 함께 달려 나와 주던 히에로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 원인이었다.
"와옹?"
"응? 히에로스라면 집에 있어. 어째선지 요즘 좀 풀이 죽어 있더라고."
"히에로스가?"
"뀨우?"
셋은 히에로스의 풀 죽은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에 실피드의 말에 의아한 한편 걱정도 되었다.
항상 어린아이 같은 장난기 어린 미소를 입에 걸고 있던 그가 풀이 죽어 있을 정도면 뭔가 일이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한 셋은 위그드라실 옆의 정령들이 모여 사는 숲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무들이 비슷비슷하고 정령들의 숲에 와 본 지도 꽤 오래되어서 히에로스의 집이 어디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셋은 어려움 없이 그의 집을 찾을 수 있었다.
암울한 기운이 검게 흘러나와 정령들이 근처에서 걱정스러운 듯이 쳐다보고 있는 나무가 있던 것이다.
그 위를 확인하니 히에로스가 무릎에 얼굴을 묻은 채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히에로스."
"뀨우!"
"......."
"왕!"
"으응......?"
여러 번 이름을 부르자 히에로스가 그제야 무릎에 묻고 있던 얼굴을 들고서 셋을 바라보았다.
"어! 너희들......! 흐윽....... 다행이다. 흐아아앙~!"
그러고는 눈물을 터트리며 바두를 끌어안았다.
"뭐가 말이냐."
"나 버려진 게 아니었구나......."
"뀨우?"
"버려지다니? 누구한테 말이냐?"
"호, 호야한테......."
"뭐?"
히에로스의 대답에 미호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흘렸다.
"아니, 호야가 너를 버릴 리가 없지 않느냐."
"그치만! 아무 말도 없이 일주일이나 안 부르잖아!"
"호야는 군대에 가지 않았느냐."
"뭐?"
호야가 앞으로 약 2년 동안 가끔씩밖에 돌아오지 못한다는 미호의 말에 히에로스가 볼을 크게 부풀렸다.
그런 중요한 사실을 자신에게만 알려 주지 않았다는 것에 화가 난 것이다.
"나 이번에는 진짜 삐질 거야! 호야가 사정사정해도 용서 안 해 줄 거라고!"
"......분명 2주 전에 호야가 말해 주었을 텐데?"
"응?"
볼을 부풀렸던 히에로스가 미호의 말에 눈물을 닦으며 머리 위로 물음표를 그렸고 그의 반응에 미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음식에 정신이 팔려 있다 싶더니만 전혀 이야기를 듣지 않았던 모양이구나."
"음식이라니......, 아아!"
히에로스는 미호 덕분에 2주 전에 있던 일을 떠올릴 수 있었다.
마을에 소환되었을 때 어째서인지 사리반이 맛있는 음식들을 상을 가득 채울 정도로 해 놨었기에 한 입씩 먹어 보느라 정신이 없던 날이었다.
그때 분명 호야가 자신에게 무슨 말을 했지만 음식에 정신이 팔려 있던 터라 제대로 듣지 않고 호야의 말을 기억 속 한구석에 몰아넣어 두었었다.
그게 지금에서야 떠오른 것이다.
호야는 분명히 자신에게 군대라는 곳에 간다는 사실을 알려 왔었다.
그것을 떠올리자 히에로스는 멋쩍게 자신의 머리를 긁었다.
"아하하하......, 그랬네. 말을 했었네."
그런 히에로스를 바두와 미호는 눈을 반달 모양으로 만들어 쳐다보았고 새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 * *
호야가 군대라는 곳으로 떠난 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바두와 미호, 새미는 그동안 수많은 장소를 돌아다녔다.
에반을 만나러 마탑에 찾아갔다가 로비에서 쫓겨나 모안이 에반에게 연락을 해 주어 당당하게 마탑장의 방에도 들어가 보았다.
에반이 직접 자신들을 데리러 내려왔을 때 깜짝 놀라던 마법사들의 표정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아리아도 만나러 갔었다.
중앙 신전에서는 레이나와 함께 아리아의 방으로 곧장 찾아갔기에 로비에서 쫓겨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리아는 여전히 사람들 앞에서는 자애로운 미소를 지우지 않으면서 자신들끼리만 남게 되었을 때에는 몸에 힘을 빼고 침대에 추욱 늘어져 뒹굴거리고는 했다.
왜 레이나를 옆에 두고서 기도를 하며 레이나를 이브라는 이름으로 찾는 건지는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리아에게 왜 그러는지를 물어보려 하였지만 레이나가 말하지 말라 하였기에 그 질문은 몸속으로 삼켰다.
그리고 레이나의 도움을 한 번 더 받아 마계에 메이글린을 보러 가기도 했다.
마계에 처음 갔을 때 미호와 새미가 잠시 움찔거리며 경계를 하기는 했지만 레이나가 잘 설명해 주자 고개를 끄덕이고는 경계를 풀었다.
오랜만에 만난 메이글린은 자신들을 매우 기쁘게 반겨 주었다.
한동 마을에서의 일로 사람을 향한 의심과 경계가 많아졌던 미호지만 그녀도 메이글린의 귀여움에 한 꺼풀 경계를 벗고 메이글린과 가까워질 수 있었다.
셋은 정말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그 모습이 마치 호야의 빈자리를 채우려 하는 발버둥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짓도 슬슬 한계가 오고 말았다.
"오웅......."
바두는 앞발의 손톱을 세워서 오르도 마을 광장 바닥에 호야의 얼굴을 그리고는 바닥에 풀썩 누워서 그림을 바라보았다.
호야가 오려면 아직 시간이 한참이나 남아 있었다.
주인이 올 때까지 어떻게 버텨야 하는 걸까.
"......."
아니, 그동안 이렇게 놀기만 해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바두의 머릿속에 슬며시 싹을 피웠다.
'왕, 와옹(그래, 지금보다 많이 강해져서 주인이 돌아오면 깜짝 놀라게 해 주자)!'
그렇게 생각한 바두는 치빈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호야가 강해지기 위해서 몬스터를 사냥하러 다닐 때에 그에게서 조언을 구했던 것이 생각난 것이다.
"왕!"
"......."
"아오옹~!"
"......."
치빈의 집 앞에서 그를 불러 보았지만 대답이 없었다.
창문에 매달려 안을 확인해 보니 사람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고 기척 또한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오늘도 자리를 비운 듯했다.
치빈이 없을 경우를 생각해 두지 않았던 바두는 꼬리를 추욱 늘어트린 채 한숨을 내쉬었고 그런 바두를 본 이가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