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6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7권 19화
19. 영웅 대전(2)
애서가는 자신이 호야를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애서가가 그렇게 생각하는 데에는 도반의 영향이 컸다.
지난 2년 동안 이전보다 도반과의 사이가 좁아진 애서가는 그와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가끔씩 만나 힘을 겨루거나 짧게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리고 호야의 스트리밍이 있고 일주일 뒤, 애서가는 도반과 만났고 그에게 한 가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
"그래. 내 감이기는 하지만."
"......."
지금의 자신과 너는 2년 전 호야와 비슷하거나 약하다.
호야에 대해 물어본 애서가의 질문에 도반이 꺼낸 답이었다.
도반이란 사람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하고 있던 애서가는 그가 말을 흐렸으면 흐렸지 거짓말을 할 인물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가 그렇게 말한다면 진짜 그러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순순히 패배할 생각은 없었다.
이렇게 일찍 만날 줄은 몰랐지만 애서가는 영웅 대전에서 호야와 마주하게 될 상황을 대비하여 준비를 해 왔었다.
호야는 원거리와 근거리 공격이 모두 가능하며 회복과 광역 버프까지 가지고 있는 올라운더다.
올라운더의 경우 하나의 능력만이 특출하거나 평균보다 떨어지는 능력이 있어서 틈이 있기 마련이지만 호야는 그렇지 않다.
그렇기에 애서가는 속성 간의 상성을 이용하여 그를 공략해 볼 생각이었다.
그래, '대련'이 아닌 '공략'인 것이다.
호야의 속성이 얼음이라는 사실은 그에게 조금의 관심이라도 가지고 있는 플레이어라면 누구나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애서가는 그와 상극인 불 속성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커다란 빙하와 촛불이 만난다면 아무리 속성이 상극이라 하여도 빙하가 이긴다.
그렇지만 애서가는 제3회 영웅 대전이 시작되기 한 달 전에 빙하보다도 거대한 불꽃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온전히 손에 넣은 것이 아니었기에 약간의 제약이 존재하고 대가를 필요로 했지만 말이다.
"이화 님, 힘을 빌려주십시오."
-좋아, 대신 내 너와의 계약에 따라 대가를 가져가겠다.
[신수 불사조 '이화'가 계약에 의해 당신의 부름에 응합니다.]
['이화'와의 계약이 온전치 않아 그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대가가 필요합니다.]
[플레이어의 전체 스탯에서 5의 수치가 랜덤하게 영구 하락합니다.]
[힘 1, 마력 3, 민첩 1이 하락하였습니다.]
['이화'와의 계약이 온전치 않아 그의 힘을 온전하게 빌릴 수 없습니다.]
끼에에에엑-!
애서가의 부름에 그의 등 뒤에서 불꽃의 깃털을 흩날리는 한 마리의 거대한 새가 스타디움을 가득 울리는 울음소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애서가는 여기저기에 쪼개져서 숨겨져 있던 단서들을 모아서 겨우 이화와 계약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호야와 미호와 같은 완벽한 계약 관계는 맺지 못했기에 항시 옆에 같이 있지 않았고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꽤나 커다란 대가를 필요로 했다.
'다행히 이번에는 마력 위주군.'
그렇기에 애서가는 지금까지 그의 도움을 단 한 번만 받아 보았었다.
그마저도 외부에 노출된 적이 없었기에 거대한 불꽃의 새를 처음 보는 관객들은 자신들의 눈앞에 펼쳐진 엄청난 광경에 열광했다.
깃털이 바람을 타고 관객석 쪽으로 날아오기라도 한다면 투명한 벽에 가로막힐 것을 알면서도 움찔거리고는 했다.
"대박......, 이런 걸 보게 될 줄이야."
"비싼 티켓 사서 온 보람이 있었어. 모니터로 보는 거랑은 역시 다르네!"
"우와악! 깃털! 깃털!"
그리고 호야 또한 이화의 등장에 크게 놀란 상태였다.
가면으로 눈을 가렸음에도 겉으로 보이는 호야의 반응에 애서가는 그에게 이화의 존재가 통했음을 알고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신수 불사조의 열기가 쏟아집니다,]
[상태 이상 '화상'에 걸렸습니다.]
[칭호 '땅끝 마을의 주민'의 효과로 인해 저항하였습니다.]
[상태 이상 '탈수'에 걸렸습니다.]
[칭호 '땅끝 마을의 주민'의 효과로 인해 저항하였습니다.]
⋮
이화가 소환됨과 동시에 호야를 적이라 판단하여 쏟아 낸 열기로 인해 호야에게 수많은 시스템 메시지가 발생되었다.
시스템 메시지가 아니더라도 느껴지는 열기 자체가 대단했다.
'이거 평범한 플레이어나 몬스터라면 상태 이상만으로도 잘 움직이지 못할 것 같은데.......'
호야는 자신에게 화살처럼 날아오는 깃털들을 피하며 그리 생각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이 있었다.
'아, 새미!'
바두는 소환되어 있지 않았기에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미호도 힘을 생각해 보면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문제는 새미였다.
미호의 새끼여서 그녀와 같은 힘을 타고났지만 새미는 상대적으로 볼 때 아직은 나약한 존재였다.
이 열기를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새미가 걱정되어 호야가 허리에 있는 가방에 손을 가져가자 얼어붙은 것처럼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지금 당장 열기를 거두거라."
그때 가방이 열리고 미호가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내며 몸집을 키워 꼬리로 호야를 감쌌다.
호야가 아닌 새미를 열기로부터 지키기 위한 행동이었다.
호야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리고 새미의 등장과 동시에 이화가 내뿜던 열기를 바로 거둬들이고 몸집을 줄였다.
"켁......! 아줌마가 왜 여기에 있어!"
미호가 모습을 드러내자 이화의 근엄하던 불꽃의 새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늑대 앞에 놓인 양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줌마?"
"아, 아니......, 아주머......니가 아니라 누님. 누님이 왜 여기에 있어요?"
"이 아이가 이전에 말했던 내 계약자다."
순한 양이 된 이화의 모습에 애서가는 크게 놀라면서도 당황해 어처구니가 없었다.
순간 자신의 어깨에 앉아 있는 작은 붉은색의 참새가 자신이 스탯을 5개나 소모해 가면서 불러낸 그 강력한 신수가 맞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 *
호야와 애서가의 시합은 갑작스레 괴수와 괴수의 대결 같은 느낌이 되었고 호야는 애서가에게서 승리를 쟁취해 낼 수 있었다.
애서가의 히든카드였던 신수 이화는 미호에게는 어린아이나 다름없었다.
애서가는 그것에 무언가 허무한 느낌을 받았지만 불만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호야와의 시합으로 생각지 못한 이익을 챙길 수 있었다.
이화가 애서가와 제대로 된 계약을 하지 않고 그에게서 힘을 빌려주는 것에 대한 대가를 받고 있다는 것을 미호가 눈치채고서는 이화에게 신수로서 애서가와 제대로 된 계약을 하라 윽박지른 것이다.
그 덕에 애서가와 이화의 관계는 호야와 미호와 같은 관계가 되었다.
이화는 항상 붉은 깃털을 가진 참새의 모습으로 애서가의 어깨에 앉아 있게 되었고 더 이상의 대가도 필요 없어졌다.
'이거 아무래도 나중에 감사 인사라도 해야겠군.'
"켄타로 씨, 선호영 씨와의 경기를 통해서 영웅 대전 참가 최초로 2 대 0으로 패배를 하시고 우승 또한 하지 못하게 되셨는데 그에게 분하다는 생각은 안 드시나요?"
속으로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던 애서가, 사카나시 켄타로는 기자의 질문에 상념을 깨고 입가에 호선을 그려 보였다.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이번 기회에 그에게서 받은 것이 많기에 딱히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승은 단체전에서 하면 될 일입니다."
켄타로의 눈에서 자신감이 엿보였다.
* * *
영웅 대전의 본선 일정은 개막식과 폐막식을 포함해 총 6일간 이루어진다.
첫날은 저녁에 개막식이 이루어지며 둘째 날에는 개인전 32강의 시합이, 셋째 날에는 단체전 32강의 시합이 치러진다.
또한 넷째 날과 다섯째 날에 각각 개인전과 단체전의 16강과 8강이 이루어지며 여섯째 날에 단체전과 개인전의 준결승과 결승이 치러지고 그날 밤에 화려한 조명과 함께 수상과 폐막식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영웅 대전의 본선은 아무 탈 없이 진행되어 6일째의 날을 맞이했다.
준결승을 승리로 끝낸 호영은 결승을 기다리며 선수 대기실에서 혼자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모니터에는 단체전 준결승의 첫 번째 경기를 치르게 되는 팀들의 로고가 띄워져 있었다.
일본 대표 팀인 레드와 한국 대표 팀인 경력직 뉴비의 로고였다.
레드의 로고는 세련되게 디자인된 반면 경력직 뉴비의 로고는 마치 그림판에 마우스로 그린 듯한 아이의 낙서 같은 로고여서 서로가 대비되는 것이 인상 깊었다.
로고도 팀명과 마찬가지로 최강남이 그린 것이었다.
그 덕에 한국 대표인 경력직 뉴비 팀은 지난 두 번의 영웅 대전에서보다 높은 성적을 보이고 있는 것과 희한한 로고로 인해서 여러 의미로 큰 주목을 받고 있었다.
-그럼 단체전 준결승 첫 번째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자 해설가가 준결승의 시작을 알려 왔고 첫 번째 선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설영이 쪽이 질 거야.'
그 모습을 본 호영은 그리 생각했다.
단체전은 조금 특이한 룰이 추가된 승자 연전 방식으로 치러진다.
그렇기에 경기가 짧을 경우 최소 다섯 시합, 길어질 경우에는 최대 아홉 시합까지 이어지고는 한다.
그리고 호영은 이변이 없는 한 첫 번째 준결승은 다섯 시합 안으로 끝날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레드에서 첫 번째 선수로 애서가가 나온 것이 호영이 그렇게 생각하게 된 원인이었다.
* * *
"레드 팀은 처음부터 리더인 애서가가 나왔군요. 이거 그만큼 자신감이 있다는 뜻이겠죠."
"그에 비해 경력직 뉴비...... 큽, 아, 이거 죄송합니다. 영웅 대전 마지막 날인데도 불구하고 영 익숙해지지가 않네요. 경력직 뉴비 팀의 첫 번째 선수는 강남불주먹이네요."
"둘 모두 불 속성의 스킬들을 사용한다는 점이 이번 시합에서 주목해야 할 점 같습니다."
해설가들이 그렇게 자신들의 의견을 말하고 있을 때 강남불주먹과 애서가는 간단한 인사를 나누었다.
"설마 애서가 님이 첫 번째일 줄은 몰랐어요. 그만큼 자신이 있으시다는 소리겠지만 생각대로는 안 될 거예요!"
"과연 그럴까."
애서가는 강남불주먹의 말에 연하게 미소 지어 보였다.
둘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카운트다운이 모두 끝났고 시작 신호가 울리자 강남불주먹이 바로 애서가를 향해서 땅을 강하게 박차고 뛰어나갔다.
'최대한 많은 피해를 줘야 돼!'
단체전은 승자 연전 방식으로 치러지지만 보통과는 다르게 한 가지 룰이 추가되어 있다.
바로 승자가 다음 두 번째 상대와 시합을 진행하게 될 경우 첫 번째 상대와 시합을 치렀을 시 입었던 피해가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이다.
즉 HP와 MP가 깎여 있어도 회복은 없으며 스킬의 재사용 대기 시간도 그대로 유지되었기에 스킬을 남발하는 빠른 전투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애서가도 마찬가지, 어째서 그가 마지막이 아닌 첫 번째 순서로 나온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강남불주먹은 그의 스킬을 최대한 빼 둘 생각이었다.
애서가가 스킬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자신에게 그만큼 HP가 크게 깎일 것이다.
"팍팍 갑니다!"
하지만 그런 강남불주먹의 생각은 애서가에게 통하지 않았다.
호야와의 시합을 마지막으로 애서가의 어깨에 가만히 앉아 있어서 무언가 제약이 있을 것이라 예상되었던 붉은 참새가 몸집을 키워서 처음 보여 주었던 커다란 불꽃 새의 모습을 내비쳤다.
제약이 있기는 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호야 덕분에, 정확히는 미호의 덕분에 없어진 지 오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