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는 마을사람-165화 (165/171)

# 165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7권 18화

18. 영웅 대전(1)

"그 자식이 그 새끼였어?"

경호원들의 도움을 받아 기자들과 호영을 위해서 예선전 내내 참아 왔던 울분을 풀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일부 관객들을 겨우 뿌리치고 차에 오른 이대현은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스마트폰을 통해 그들이 왜 그런 것인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매우 놀라웠다.

예선전 결승에서 자신에게 허무한 패배를 안겨 주었던 호야, 선호영의 정체가 자신이 고등학생 때 가지고 놀았던 녀석과 동일 인물이었다.

"그래, 확실히 이런 이름이었어. 왜 진즉에 눈치채지 못한 거지?"

이대현은 자신의 기억력에 감탄했다.

그리고 동시에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자신의 발아래에 있던 녀석에게 당했다는 분노와 지금까지 관리해 왔던 이미지가 한순간에 무너져 내려 생긴 짜증, 허탈감 등 여러 감정들이 동시에 생겨나고 있었다.

그중 가장 큰 감정은 두려움이었고 그다음이 짜증이었다.

이전에는 엄마 하나밖에 없는 집 자식이었지만 지금은 백성 그룹의 양손자라는 호영의 신분이 원인이었다.

그것도 백성 그룹의 회장인 백윤택의 사랑을 크게 받고 있는 양손자.

2년 전 결혼식장에서 호영에게 푸근한 미소를 지어 주던 백윤택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했다.

"X발......."

이대현은 자신의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이제는 자신이 실력도 집안도 가진 인망과 힘도 그의 아래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띠리리리리리-.

그때 그의 스마트폰에 전화 한 통이 걸려 왔고 액정에 표시된 이름을 본 이대현은 침을 꿀꺽 삼키며 양손으로 공손하게 전화를 받았다.

"......예, 할아버지."

-대현아, 내 짧게 말하마.

난진 그룹의 회장 이혁구의 목소리를 들은 이대현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을 부르는 호칭이 '우리 손자'가 아닌 '대현이'가 되었다는 것은 지금 그가 큰 화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예, 예. 말씀하세요."

이대현은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다.

강자에게는 앞에서 허리를 숙이지만 뒤에서는 침을 뱉는 것이 그다.

그는 지금 재판장에 세워진 죄인의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 상황이 진정될 때까지 제주도에 있는 별장에 내려가서 자숙하고 있거라. 게임도 접속하지 말고. 그게 내가 너에게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자비다.

"......."

자숙이라고 표현하지만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말고 틀어박혀있으란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내가 일을 저지를 거면 아무런 증거도 남기지 말고 증거가 남더라도 들키지 말라고 했을 텐데 말이다. 백성 그룹에 겨우 붙였던 줄이 이렇게 끊어지게 되었구나. 덤으로 네 아비가 학교에 잔디를 깔아 줬던 덕에 입막음용 뇌물이냐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

-그래서 대답은? 자숙이 하기 싫다면 군대라도 다녀오너라.

"......예, ......자숙할게요."

이대현은 주먹을 꽉 쥐면서 이혁구의 물음에 답했다.

그 며칠 뒤 난진 그룹에서 사과문이 발표되었다.

난진 그룹이 그냥 모든 이야기를 부정하는 것도 방법 중 하나였겠지만 그 상대가 나빴다.

근거 없는 부정은 오히려 독이 될 확률이 컸기에 난진 그룹은 이대현의 잘못을 깔끔하게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이대현은 아무도 모르게 제주도의 별장에 갇혀 지내야 했다.

* * *

단체전 예선까지 모두 끝나고 나서 일주일 뒤 서울 스타디움 앞에는 영웅 대전의 관람을 위한 관객들과 취재를 위해 나온 기자들로 인해 북적거리고 있었다.

3년 전에 리모델링을 거쳐 한 번에 약 8천 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게 된 서울 스타디움이 제3회 영웅 대전의 본선 경기장이었다.

그리고 스타디움의 안쪽, 각 나라별로 준비된 선수 대기실에서 본선 참가 선수들이 개막식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기 설영아, 나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뭐가?"

얌전히 개막식의 식전 행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던 호영은 문득 한 가지가 떠올라 옆에 앉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던 백설영에게 질문을 하나 던졌다.

"왜 팀 이름이 경력직 뉴비야?"

호영의 질문에 백설영의 몸이 순간적으로 움찔거렸다.

단체전 대표 팀의 이름은 나라의 이름이 붙지 않고 각 팀마다 자율적으로 정하게 된다.

즉 한국 대표 팀의 이름인 '경력직 뉴비'는 단체전 선수들이 직접 정했다는 뜻이다.

호영은 백설영이 그런 팀 이름을 정한 것이 희한해서 질문을 던진 것이다.

"......묻지 마."

"응?"

"네, 네, 네! 제가 알려 드릴게요!"

그런 호영의 질문에 경력직 뉴비 팀의 선수인 강남불주먹, 최강남이 끼어들어 답했다.

"팀 이름은 팀원들을 모두 모은 다음에 투표로 정했거든요. 그런데 각자가 원하는 팀명이 달라서 계속 1의 동률을 유지했기에 후보들 중에서 그냥 뽑기로 정한 것이 바로 경력직 뉴비입니다! 아, 참고로 제가 후보로 냈던 팀명이에요."

최강남의 이야기를 들은 호영이 고개를 돌려 백설영을 바라보자 그녀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한숨을 내쉬는 것이 보였다.

"내가 미쳤었지 진짜....... 그냥 내가 정했어야 했는데......."

앞으로 본선이 진행되는 동안 그녀가 '경력직 뉴비 팀의 백설영'이라고 불릴 것을 상상한 호영은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카피길의 권유 다음에 들어왔던 그녀의 권유를 거절한 것이 다행이라고 호영은 속으로 생각했다.

"한국 개인전 대표 선호영 님, 단체전 대표 경력직 뉴비 팀 선수님들 입장 준비할게요."

그때 때맞춰 진행 스태프가 한국 대표 선수들을 데리러 대기실로 찾아왔다.

그의 안내에 따라 이동하자 스타디움 중앙으로 나가는 출구 앞 복도에 선수들이 입장 순서대로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복도 끝 출구 쪽에서 이니티움의 공식 주제가가 가사 없이 커다랗게 울리는 것이 들려왔다.

사전에 리허설을 진행했던 대로 선수들의 입장이 진행되었고 한국 선수들은 제일 마지막 순서로 스타디움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와아아아아아-!"

스타디움으로 나오자 중앙을 원형으로 둘러싸듯이 하여 계단형식으로 놓인 관객석에서 터져 나오는 함성 소리가 귓가에 그대로 박혀 왔다.

이미 하늘에 별이 떠 있는 시간, 관객석에는 넘어지지 않기 위한 계단과 의자에 설치된 작은 전등들을 제외하고는 조명이 비치지 않아 관객들의 모습은 선수들에게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열기와 울려 퍼지는 함성 소리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와 있는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선수들이 스타디움 중앙에 실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은 개막식과 폐회식 때로 한정되어 있기에 개막식의 티켓 쟁탈은 꽤나 치열했었다.

지금 관객석에 앉아 있는 이들은 모두 그 쟁탈전의 승리자들인 것이다.

선수들이 모두 입장하자 제3회 영웅 대전 본선의 개막이 선언되었고 네오워즈의 회장인 이태성의 개회사가 이어졌다.

* * *

개막식이 진행되었던 다음 날 아침, 호영은 시합 전 적응을 위하여 스타디움을 일찍 찾았다.

예선전과 같이 대련장의 맵들을 그대로 가져와 하는 경기라면 적응이라 할 것도 없었겠지만 영웅 대전의 본선은 조금 독특하게 진행되었다.

스타디움 자체가 맵이 되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스타디움을 그대로 본뜬 맵이 구현되어 있다.

그것을 증강 현실 시스템을 이용해 관객들이 입장할 때 스태프들이 나누어 주는 안경을 통해서 시합을 전광판이 아닌 마치 게임 속으로 들어가 직접 보는 것처럼 보여 주는 것이다.

"오오......."

진행 스태프에게서 시험 삼아 안경을 받아서 써 본 호영은 눈앞에 보이는 풍경에 순수하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스타디움의 안에서 먼저 접속하여 맵을 확인 중인 선수들의 게임 속 캐릭터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 꽤나 생생하게 비치고 있었다.

동작이 평범하다면 그냥 코스프레라고 생각했겠지만 안경을 통해 보인 그들은 게임 속처럼 빠르게 달리고 도저히 뛸 수 없을 것 같은 높이를 뛰었으며 스킬을 사용했다.

안경에 달린 마이크를 통해서 관객들의 함성 소리도 선수들에게 그대로 전해진다고 한다.

"와아......, 진짜 대단하네요. 그런데 이 안경 꽤 비쌀 것 같은데 분실되지 않을까요?"

"스타디움에서 퇴장할 시 안경을 반납하지 않거나 파손할 시 안경의 제작비만큼의 분실금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일반 관객들이 입장하는 입구에도 그 사실을 크게 써 놨고요."

"그렇구나."

"이제 적응에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1시간밖에 남지 않았으니 선호영 선수도 슬슬 접속해 보셔야죠?"

"네."

호영은 스태프의 안내에 따라서 캡슐이 준비되어 있는 방으로 이동해 게임에 접속했다.

그러자 눈앞에 방금 전에 안경을 통해서 보았던 스타디움의 모습이 그대로 펼쳐져 있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관객석에 사람 상체 모양의 푸른색 홀로그램들이 세워져 있다는 것이다.

호야는 스타디움을 돌아다니며 여러 가지를 확인했고 예상대로 몇 가지 제한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선 중앙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관객석과 내부로 이어진 복도의 입구에 투명한 벽이 세워져 활동 범위가 제한되어 있었다.

플라이를 사용해 높이에 걸린 제한을 확인해 보니 딱 천장 높이까지 이동이 가능했다.

'그럼 스킬 범위도 여기까지라는 거겠지.'

높다고 하면 높고 낮다고 하면 낮은 높이였다.

확인할 것을 모두 확인한 호야는 땅으로 내려왔다.

그러자 호야에게 한 인물이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오늘 잘 부탁한다."

"저도 잘 부탁해요."

호야는 그가 내민 손을 거부감 없이 잡아 주었다.

호야에게 다가온 인물은 일본 개인전 대표인 아카하네의 길드 마스터인 애서가였다.

그는 호야의 본선 첫 시합 상대였다.

* * *

호야와 애서가의 시합은 14번째 시합이었기에 대기실에서 모니터를 통해 이전 시합들을 보며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어제는 경력직 뉴비 팀의 선수들과 같이 있었던 대기실에 혼자 있으려니 약간 쓸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도 모니터를 통해서 본 시합은 꽤나 흥미진진했다.

세 번째 시합에서 도반이 스페인 대표에게서 승리를 따냈을 때에는 호야는 그를 향해 박수를 쳐 주었다.

시합이 끝난 뒤 진행되었던 인터뷰에서 도반이 한 단답형 대답들은 꽤나 웃음을 자아내었다.

그렇게 모니터를 통해 시합을 지켜보며 차례를 기다리자 진행 스태프가 선수 대기실에 찾아와 시합의 준비를 위해 호영을 캡슐이 있는 방으로 데려갔다.

캡슐에 엉덩이를 붙인 호영은 진행 스태프가 신호를 줄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의 신호에 맞추어 접속을 시작했다.

화면이 검게 물든 뒤 여러 색들이 검게 물든 도화지 위에 칠해지자 그와 동시에 안경에 달린 마이크를 통해 전해지는 사람들의 환호 소리가 들려왔다.

-제3회 영웅 대전 본선 14번째 경기! 그 선수들을 소개합니다!

이미 두 번의 영웅 대전 경험이 있던 애서가는 허공에서 들려오는 해설가의 소개에 따라서 홀로그램이 떠 있는 관객석을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호야도 자신의 호명되자 관객석을 향해 약간 어색하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호야와 애서가가 인사를 하는 동안에도 환호는 그칠 줄 몰랐고 커다란 환호 속에서 해설가가 시합의 시작을 알리자 허공에 카운트다운의 숫자가 생겨났다.

-그럼 제3회 영웅 대전 본선 14번째 경기를 지금!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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