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는 마을사람-162화 (162/171)

# 162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7권 15화

15. 어디에 붙는 것이 이득인가(2)

아직 예선이 끝나기도 전, 인터넷에 호영의 예상보다도 빠르게 큰불이 붙어 버렸지만 호영은 아직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도반 덕분에 머리를 식힐 수 있었던 호영은 아무런 탈 없이 예선전 첫날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자신을 제외한 15명의 선수들과 함께 관객들에게 인사를 한 뒤 무대에서 내려온 호영의 스마트폰에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발신자는 백재건이었다.

"여보세요?"

-호영아, 지금 어디니? 아직 체육관 안이지?

"네? 네, 지금 막 선수 대기실 앞을 지나가고 있는 중이에요."

-사람이 너를 데리러 갈 거니까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 체육관에서 나오지 말고!

백재건의 말에 호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빠, 굳이 마중은 필요 없어요. 아빠도 도반이랑 유아 알죠? 공항에서 같이 봤었잖아요. 그 둘만 호텔까지 바래다주고 들어갈게요."

-아냐, 아냐. 너 지금 마중 필요해. 상황이 그래.

백재건은 호영에게 영상에 호영의 손목 흉터가 잡혔다는 것과 그로 인해 달궈진 커뮤니티와 인터넷 기사들에 대하여 설명해 주었다.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이 그렇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던 호영은 백재건의 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소매가 긴 옷을 입고 있었기에 조금 방심하고 있었다.

-지금 모든 출구에 기자들이 아주 진을 치고 있어. 기자들이 다른 선수들에게도 달려들겠지만 아마 호영이 네가 주목적일 거다.

"그럼...... 저는 언제까지 여기에 있어요?"

-사람이 도착하면 전화 줄게. 친구들한테는 미안하겠지만 따로 움직이는 게 너한테나 그 친구들한테나 편할 거야.

백재건과 충분히 통화를 한 뒤에 전화를 끊은 호영은 바로 도반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했다.

-그래, 그러는 게 좋을 것 같다.

"정말 미안해."

-괜찮아, 내일 봐.

도반과의 전화가 끊기고 몇 분의 시간이 흐르자 백재건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

-호영아, 정문으로 나오면 검은색 조끼를 입고 있는 인상 험악한 형 두 명이 길을 터 줄 거야. 그 형들의 안내에 따라서 아빠 차까지만 오면 돼.

"네, 알겠어요."

-나올 때에 기자들이 여러 가지를 물어보겠지만 아무런 대답도 하지 말고 그냥 당당하게 웃기만 해. 절대 움츠러들지 말고. 약한 모습을 보이면 좋은 먹잇감만 될 거야.

"네."

호영은 백재건의 말에 따라서 정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이 기자님, 정말 정문으로 나올까요?"

"응? 뭐가 말이야, 최 기자?"

이 기자라 불린 남자는 최 기자의 말에 카메라에서 눈을 떼고 그를 바라보았다.

"호야 말이에요. 저 같으면 후문으로 나갈 것 같은데 말이죠. 그쪽이 더 편하잖아요."

"아니, 호야는 반드시 정문으로 나올 거다."

"그걸 이 기자님이 어떻게 확신해요?"

"그냥 감이야."

최 기자가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자 이 기자는 씨익 웃어 보였다.

"뭐, 감뿐만은 아니지. 지금 상황에서 후문으로 도망친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들한테 물어뜯길 거다. 기자들에게서 도망쳤다는 이유로 호야를 약하게 그린 온갖 추측성 기사가 남발하겠지."

"흐음."

"만약 내가 호야였다면 그렇게 되는 걸 원치 않을 거야. 랭커도 결국 이미지 싸움이거든. 약한 모습을 보이면 랭킹은 남아도 지위는 떨어지기 마련이야. 그렇게 될 바에는 차라리 정문으로 당당하게 걸어 나오는 것을 택할 거다."

"과연 그럴까요?"

이 기자의 말은 그럴듯했지만 최 기자는 반신반의했다.

그래도 이 기자의 예상이 맞기를 속으로 바라고 있었다.

지금 와서 후문으로 자리를 옮길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옮긴다고 해도 지금같이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는 없을 테니까.

거의 모든 선수들의 사진을 찍었으니 이제 호영의 사진을 찍고 몇 마디라도 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나왔다!"

그때 한 명의 외침과 함께 정문을 향해 카메라의 플래시가 터졌고 기자들이 정문을 향해 달려들었다.

"호야 씨, 첫 영웅 대전 참가이신데 소감 한마디만 말씀해 주세요!"

"지금 인터넷에 호영 씨의 손목 흉터에 관한 여러 가지 추측이 나돌고 있는데 진실은 어떻습니까!"

"고등학교는 자퇴하신 건가요!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기자들은 호영에게 달려들어 그를 향해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다.

기자라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벽은 그 상황에 익숙한 유명인들이라고 해도 뚫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억지로 뚫고 지나가려다가 기자 한 명이라도 밀려 넘어진다면 그건 곧 좋은 기삿감이 된다.

유명인들도 가끔가다 실수를 하는 것이 기자들의 벽인데 이런 일을 처음 경험할 호영은 오죽할까.

기자들이 원하는 것을 내뱉기 전에 호영이 그들에게서 풀려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최 기자와 이 기자도 호영에게 다가가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기자들은 곧바로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검은색 셔츠와 검은색 바지에 검은색 조끼를 걸친 두 명의 남자가 호영을 자신들의 사이에 두듯이 하며 그 안으로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신기하게도 그 둘이 중앙으로 들어오는 과정에 밀쳐서 쓰러지거나 다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지나가겠습니다."

"비켜 주십시오."

그들이 호영을 데리고 현장을 빠져나가자 기자들은 방금 일어난 일에 대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뭐, 뭐야? 경호원이야?"

"와......, 처음부터 경호가 붙다니. 원래 어디 부잣집 도련님인가?"

"사비로 불렀을 수도 있죠. 그리고 대회 때 경호를 붙이고 나오는 선수들이 흔하지 않은 것도 아니잖아요. 이대현만 해도 여섯 명은 붙었던데."

"솔직히 걔는 조금 과한 면이 있지."

경호원들의 개입으로 인하여 기자들은 호영의 당당한 표정이 찍힌 사진을 제외하고는 그 아무것도 건질 수 없었다.

나올 선수들은 다 나왔기에 기자들은 자리를 떴고 최 기자도 자리를 뜰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의 카메라를 뚫어져라 들여다보고 있는 이 기자가 눈에 들어왔다.

"이 기자님, 뭐 하세요? 얼른 돌아가서 기사 작성 안 하면 조회 수를 많이 뺏길 거예요."

"......최 기자 먼저 들어가 봐. 나는 나중에 들어갈 테니까."

"네?"

최 기자는 이 기자의 울라간 한쪽 입꼬리를 보고서 그가 자신과는 다른 무언가를 건졌다는 것을 눈치챘다.

"이 기자님, 거 좋은 거 알아냈으면 공유 좀 해 주시죠? 직계 후배한테도 못 넘겨주겠다는 겁니까?"

"그래, 그래. 내가 특별히 최 기자에게만 알려 줄게. 우선 이걸 봐 봐."

최 기자가 보여 준 것은 호영을 경호했던 검은색의 경호원들이 찍힌 사진이었다.

"이게 왜요? 여기에 뭐 있어요?"

"너 이쪽 이마에 흉터 있는 경호원이 누군지 못 알아보겠어?"

"유명한 사람이에요?"

"유명하다면 유명하지. 백성 그룹 경호 팀인 BS 캡스의 팀장이니까."

"진짜요? 그런데 왜 거기가 호야의 경호를 해요? 업체도 아니고 소속 팀이니 외부인은 절대 경호를 안 할......, 아."

최 기자의 반응에 이 기자의 입꼬리가 더욱 높게 올라갔다.

"그래, 호야, 선호영이 백성 그룹 내부 인물이란 소리지."

이 기자는 호영의 뒤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 * *

다음 날 영웅 대전을 위해 다시 체육관을 찾은 호영은 자신이 들어오자마자 선수 대기실에 흐르는 어색한 기류에 볼을 긁적였다.

어색한 기류는 첫날 예선전을 끝낸 후 선수들이 호영에 관련된 기사를 본 것이 원인이었다.

그들은 호영에게 말을 거는 것에 첫날보다 더 큰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무엇이라 말을 걸어야 실례가 아닐지 감이 서지 않았기에 그들은 조심스러웠다.

'뭐야, 갑자기 왜 이래?'

그중에서 유일하게 어색해진 기류의 원인을 알지 못하는 이가 있었다.

이대현이었다.

그는 호영에게 집중되어 있을 것이라 예상되는 인터넷의 상황을 보기가 싫어서 예선전이 시작된 이후로 단 한 번도 인터넷에 접속하지 않았다.

자신이 결승에서 호영을 꺾고 예선전이 완전히 끝난 뒤에나 인터넷의 반응을 확인할 생각이었다.

그때 사람들의 관심은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을 테니까.

그렇기에 호영에 관한 이야기를 몰라 그는 사람들이 왜 호영이 들어오자마자 이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리고 굳이 알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계속해서 어색한 기류가 흘렀지만 호영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얼굴에 미소를 그렸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축 처져 있다면 어색한 기류가 길게 이어질 것이라는 게 호영의 생각이었다.

그 뒤 시간이 얼마 흐르자 진행 스태프가 호영과 그의 16강 상대인 양규리를 무대 위로 불러내었다.

* * *

다 쓰러져 가는 오래된 유적지의 정중앙에 위치한 거대한 광장, 호야는 그곳에서 16강의 상대인 양규리, 스브브와 마주 보며 서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사이에는 대련의 시작을 알리는 카운트다운의 숫자가 떠 있었다.

'자 그럼, 어떻게 할까?'

호야는 32강이 끝난 후 무대에서 내려와 이대현과 마주치고 도반과 유아를 찾아서 관객석으로 향하고 있을 때 잠시 현장 관리자라는 남자에게 붙잡혔었다.

호야를 붙잡았던 현장 관리자는 그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해 왔다.

"이런 말 하면 실례인 거는 알지만 시합을 좀 더 길게 끌어 줄 수 있을까요?"

"네?"

지금까지 영웅 대전의 예선전의 한 판의 평균 시합 시간은 7분에서 10분, 2연승을 한다고 해도 결과가 나기까지는 최소 15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호야는 두 판을 2연승으로 따내며 5분도 채 지나지 않고서 32강에서 승리를 쟁취했다.

진행 측에서는 그것을 매우 아쉬워했다.

"관객들은 당신의 시합을 길게 보고 싶어 하고 있어요. 그러니 16강에서만이라도 한 판마다 4분, 아니 3분만 채워 주세요. 강요는 아니고 부탁이니 예선전의 흥행을 위해서라도 조금만 고민해 주세요."

현장 관리자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될 경우 이미 32강에서 힘을 보여 줬었기에 16강에서 그보다 약한 모습을 보여 준다면 호야가 상대를 가지고 논다는 인상을 심어 줄 우려가 있었다.

'역시 그냥 평소대로 가자.'

현장 관리자가 그런 부탁을 해 온 이유는 볼거리가 부족해서일 것이라 호야는 예상했다.

그렇다면 오래 끄는 시합보다 더 좋은 볼거리를 제공해 준다면 그도 불만은 없을 것이다.

2, 1, Fight!

스브브의 직업명은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으나 근거리 전투를 하는 마법사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하지만 마법사는 마법사다.

상대방에게 가깝게 달라붙기 전에 미리 마법을 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에 그녀는 대련이 시작되자마자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그녀가 물러나자마자 호야는 스킬을 사용했다.

"검기."

그의 검에 푸른 빛이 깃들었고.

"양화."

이윽고 검에 깃들었던 푸른 빛은 유리처럼 산산조각이 나 호야의 주변에 100개가 넘는 빛의 꽃잎들을 생성해 내었다.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양화를 공개하는 순간이었다.

"우와......, 예쁘다......."

그 모습을 전광판을 통해 지켜보던 이들은 아름다운 광경에 탄성을 흘렸다.

푸른 빛을 은은하게 흩뿌리는 꽃잎들이 허공을 유영하는 모습이 마치 작은 정령들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광경에 넋을 잃은 것은 스브브도 마찬가지였다.

"와아......."

그녀가 마법직을 택한 것도 화려한 스킬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녀가 원하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났으니 그녀가 잠시 넋을 빼앗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갑니다."

호야가 그렇게 선언하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스브브가 방어 마법을 사용했다.

하지만 그녀의 마법이 사용되는 것보다 빛의 꽃잎들이 그녀를 휘감는 것이 더 빨랐고 빛의 꽃잎이 작은 원을 이루었다가 사라진 자리에 그녀는 남아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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