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는 마을사람-161화 (161/171)

# 161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7권 14화

14. 어디에 붙는 것이 이득인가(1)

한국말을 모르는 도반과 유아는 호영과 김희반이 무슨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호영의 반응으로 인하여 둘의 사이가 그리 좋지 않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호영이 지금까지 자신들에게 보여 준 적이 없는 싸늘한 표정을 하고 있었으니까.

"아, 아니...... 내가 너를 버렸다니 무슨 소리야?"

"......지금 네가 한 그 말이 진심으로 내뱉은 거라면 나는 너라는 사람을 처음부터 잘못 보고 있었던 모양이야."

호영의 싸늘한 표정을 처음 본 것은 김희반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기억 속 호영은 항상 웃는 얼굴이었으며 오늘 본 무대 위에서도 그러했으니까.

그렇게 생각한 김희반이 호영에게 무어라 말하려 했다.

하지만 그때 도반이 둘의 사이에 끼어들어 자신을 벽처럼 해 호영을 자신의 뒤에 숨겼다.

조금이라도 더 이 상황이 이어졌다가는 호영이 무언가를 폭발시킬 듯이 주먹을 꽉 쥐고 있었기에 한 행동이었다.

"이제 가라."

"네?"

"가라고 했어. 우리도 간다."

그렇게 말한 도반은 호영의 팔목을 붙잡은 채 장내를 벗어났고 유아도 그 뒤를 따랐다.

김희반은 셋이 장내를 빠져나가는 것을 망연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 잠깐......! 아악! 나 어떡하지!"

셋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김희반은 머리를 강하게 긁적였다.

답답함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이미 큰소리를 쳐 놨는데!'

그는 호야가 호영이었다는 것을 알자마자 편집장인 정문석에게 다이렉트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호야의 정체가 자신의 동창이었다는 것을 알렸다.

중간에 그가 자퇴하기는 했지만 동창은 동창이라는 것이 김희반의 생각이었다.

그런 김희반의 말에 정문석은 크게 놀라며 기뻐했다.

그의 반응에 김희반도 반드시 자신들만의 독점 기사가 될 만한 것을 따 가겠다며 큰소리를 떵떵거렸다.

김희반에게 호영은 큰 기회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 기회가 멀리 떠나가 버렸다.

이제는 기회가 아니라 자신의 발목을 붙잡을 일이 되어 있었다.

김희반은 괜히 편집장에게 큰소리를 쳤다고 속으로 후회했다.

'어떻게든 독점 기사가 될 만한 것을 만들어야 해!'

그러지 못하면 겨우 쌓았던 신뢰를 한순간에 잃게 된다.

지금 당장이라도 호영에게 달려가야 하나?

그러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의 반응과 도반의 반응을 보아서는 이제는 접근조차 어려울 것 같았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그때 피하지 말걸.'

지금 와서 후회해 봤자 이미 늦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자 김희반의 머리는 좋지 않은 쪽으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차라리 이 일을 기사로 만들까?'

호야라는 사람의 인성, 유명해졌다고 옛 친구 무시해.

같은 제목을 짓는다면 사람들의 시선은 아주 강하게 끌 것이다.

아예 거짓 기사를 쓰는 것도 아니다.

그가 그렇게 판단을 내리자 때맞춰 그의 스마트폰에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액정에 뜬 이름을 확인하니 편집장인 정문석이었다.

지금은 별로 받고 싶지 않은 전화였지만 받지 않아도 되는 전화는 아니었기에 김희반은 눈을 딱 감고서 전화를 받았다.

"네, 편집장님. 말씀하세요. ......네?"

* * *

김희반에게 전화를 걸기 전 정문석은 자신의 사무실에 앉아서 마우스를 드래그 하며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가 현재 보고 있는 것은 이니티움 커뮤니티에 올라온 한 게시 글이었다.

[나 호야 님이랑 같은 학교에 재학 중인데 뭔가 이상하다.]

나는 호야 님이 눈물남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오늘 그 일을 처음으로 알았다.

그리고 호야 님이 입고 있는 교복이 내가 다니고 있는 영지 고등학교의 교복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기분이 엄청 째졌지.

에리먼 님도 영지 고등학교 출신이고 호야 님도 영지 고등학교 출신이라니, 엄청나지 않아?

아무튼 이 이야기는 짧게 넘기고 말이야.

내가 그걸 알자마자 학교 도서관으로 달려갔어.

우리 학교는 1회 졸업생들 졸업 앨범부터 시작해서 작년 졸업생들 졸업 앨범까지 다 도서관에 보관하고 있거든.

여기서 눈치챘겠지만 나는 호야 님의 사진이 실린 졸업 앨범을 찾으러 갔던 거야.

유명인들 졸업 앨범이 프리미엄 붙어서 팔리고는 하잖아?

솔직히 훔쳐서 팔려는 의도로 간 거였어.

그런데 그 계획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지.

아무리 졸업 앨범을 뒤적거려도 호야 님의 사진이 없는 거야.

누가 먼저 가져갔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빠져 있는 연도는 없었거든.

그래서 마침 교무실에 10년이나 근무하신 선생님이 나와 있길래 대놓고 호야 님의 사진을 보여 주면서 몇 기 졸업생인지 물어봤어.

그런데 선생님이 깜짝 놀라더니 계속 말을 돌리는 거야.

이거 뭔가 이상하지 않아?

-너어는 진짜 못됐다. 훔칠 게 없어서 졸업 앨범을 훔쳐서 팔려고 했냐?

-도둑질하려고 했단 걸 잘도 당당히 말한다.

-님들, 지금 주목해야 할 거는 글을 쓴 녀석이 도둑질을 하려고 했단 게 아니라 호야 님의 사진이 실린 졸업 앨범이 없다는 거임. 이거 중간에 자퇴했다는 소리 아니야?

-야 씨, 나는 왜 안 좋은 생각밖에 안 드냐;;

영지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한생이라 주장하는 이가 쓴 글은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글은 정문석에게도 닿았다.

게시 글의 댓글들의 반응을 확인한 그는 마우스에서 손을 떼고 팔짱을 끼고 푹신한 의자에 등을 기대며 고민에 빠졌다.

'그래, 너희들의 짐작대로 눈물남은 자퇴했어. 그것도 극심한 학교 폭력으로 인해서 말이야.'

그도 이전에 눈물남이 관심거리로 올라왔을 때 영지 고등학교에 취재를 위해 나갔던 기자들 중 한 명이었다.

지금은 편집장의 자리에 있지만 그때는 말단 기자에 불과했기에 무엇이든지 기삿거리가 필요해 그러한 선택을 했었다.

하지만 그때 그는 교문에서 출입을 제지당했었다.

그렇지만 몰래 교내에 침입하는 것에 성공했다.

교내에는 들어왔으나 대놓고 복도를 돌아다닐 수는 없었기에 적당히 몰래 돌아다니며 눈물남을 찾아다녔었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되었을 때, 정문석은 강당의 뒤편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서 소리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그곳으로 다가갔었고 눈물남이 폭행을 당하는 현장을 포착할 수 있었다.

눈물남과 학교 폭력을 엮는다면 조회 수를 크게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었다.

그 가해자가 유명한 난진 그룹의 손자이니 그 영향도 엄청날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데스크에 제출하지 않았다.

아니, 아예 기사를 작성하지도 않았다.

어떻게 안 것인지 난진 그룹에서 정문석에게 그가 찍은 영상과 사진을 큰돈을 주고 사겠다는 연락을 취해 온 것이다.

돈을 받고 입을 다물라는 뜻이었다.

난진 그룹의 태도에 정문석의 기자로서의 신념이 잠시 꿈틀거렸지만 난진 그룹이 제시한 돈은 거절하기에는 너무나 큰돈이었다.

결국 정문석은 난진 그룹에게 영상과 사진의 원본을 넘겼다.

물론 만일에 대비하여 복사본을 남겨 놓고서.

그리고 지금 그 만일의 상황이 온 것이다.

눈물남과 학교 폭력이라면 이제 와서 화제가 될 만한 내용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 큰 주목을 받고 있는 호야와 엮이게 된다면 큰 화제가 될 것이다.

고맙게도 네티즌들이 이미 판을 달궈 준 상태였기에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하지만 위험 부담이 더 커.......'

그렇지만 그 가해자가 무려 난진 그룹의 손자 이대현이다.

그리고 이미 뒷돈까지 받은 상태였기에 그 일을 지금 기사화했다가는 자신에게 큰 후폭풍이 몰아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 학교에 침입하여 영상을 획득하여 난진 그룹으로부터 뒷돈을 받고서 입을 다문 기자는 자신을 제외하고도 여럿 존재했다.

그리고 그들도 자신처럼 복사본을 남겨 놨을 확률이 컸다.

만약 그들이 위험 부담을 안고서 그 일을 먼저 기사화한다면 자신에게 손해가 클 것이다.

정문석은 위험 부담과 자신이 취할 수 있는 이득의 사이에서 큰 갈등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득이 위험 부담을 감수할 만큼 큰 이득일까?

'아예 난진 그룹에 지금 상황과 함께 복사본이 있다고 말해서 돈을 더 뜯어내는 것이 나을 수도 있어.'

정문석이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자 그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스마트폰의 액정에 뜬 상대방의 이름을 확인한 그는 화들짝 놀라며 아주 공손하게 상대방의 전화를 받았다.

"예, 예. 안녕하신가요, 한 회장님."

전화의 발신인은 한지철이었다.

거대한 언론사인 한림 일보와 영세 언론사인 뉴스 선데이는 하늘과 땅 같은 관계였기에 공손할 수밖에 없었다.

"저한테는 무슨 일로 전화를......?"

-자네 성격에 돌려 말하는 건 싫을 테니 본론부터 말할게. 정문석이 자네, 선호영......, 눈물남의 영상을 가지고 있지?

"영상이라니, 무슨 말씀을......?"

-호영이가 이대현에게 폭행당하는 영상 말이야.

"네?"

정문석은 피가 싸늘하게 식는 것을 느꼈다.

도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그런 의문이 들었다.

'잠깐, 방금 분명 호영이라고.......'

정문석이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자 한지철이 말을 이었다.

-자네 성격상 지금쯤 어떠한 행동을 하는 것이 더 큰 이득인지를 고민하고 있겠지. 내 말이 틀려?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군요."

-내 말이 맞는 모양이야.

스피커를 통해서 한지철의 웃음소리가 정문석의 귀에 꽂혔다.

-내가 자네에게만 특별히 한 가지를 알려 줄게. 아마 내가 해 주는 말이 자네의 고민을 끝내 줄 거야.

'이 아저씨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정문석은 그러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 생각을 입 밖으로는 내지 않은 채 한지철의 말을 기다렸다.

그는 자신과 쓸데없는 통화를 해 주지 않으니 분명 무언가 중요한 말이 이어질 것이라 정문석은 확신했다.

-자네도 백재건이 잘 알지?

"예, 잘 알죠. 2년 전에 결혼한 백성 그룹의 둘째잖아요. 사라졌던 사람이 갑자기 결혼한다는 소리에 저희 애들 몇도 그리로 보냈었지만 선팅이 기가 막히게 잘된 웨딩 카 사진 하나 건진 게 다였죠. 그런데 갑자기 그 얘기는 왜 꺼내시는 건가요?"

-그 결혼 상대의 아들이 호영이야.

"네?"

-호영이가 백성 그룹의 양손자라고. 그리고 회장님의 사랑 또한 듬뿍 받고 있지.

한지철의 폭탄 발언에 정문석이 머릿속 계산기의 자판을 두들겨 댔다.

한림 일보와 백성 그룹은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두루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고 한지철 역시 이러한 거짓을 말할 됨됨이가 아니었기에 거짓일 가능성은 없었다.

-자네에게만 해 주는 이야기야. 이 정보를 어떻게 사용할지 부디 잘 선택하길 바라.

한지철 정문석의 대답을 듣지 않은 채 전화를 끊었다.

정문석은 아직도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는 중이었다.

백성 그룹과 난진 그룹 중에서 누가 더 위상이 높은지를 고르라면 당연히 백성 그룹이었다.

백성 그룹과 난진 그룹 중 어디가 더 청렴한지를 고르라고 한다면 역시 이번에도 당연하게 백성 그룹이었다.

백성 그룹과 난진 그룹을 놓고서 어디에 잘 보여야 이득인지를 고른다면 그 역시 백성 그룹이었다.

그런 결론에 도달한 정문석은 스마트폰을 들어 김희반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편집장님. 말씀하세요.

"김희반, 너는 지금부터 익명의 고발자 동창 K다."

-네?

"선호영이 이대현에게 학교 폭력을 당하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두려워서 말리지는 못하고 죄책감에 만일을 위해 자료를 모아 왔던 거다. 그것을 이번 일을 계기로 인해서 유리 뉴스 선데이에 제보한 거지.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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