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7권 13화
13. 눈물남(2)
"눈물남......이요?"
-그래.
한지철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은 백재건이 그가 했던 말에 반문을 표했다.
"그게 뭐예요, 형님?"
-응? 설마 몰랐어? 아아, 그렇지. 네가 진즉에 알고 있었다면 나한테 그렇게 위험한 길을 제시하지는 않았겠지.
한지철은 백재건의 반응을 듣고서 그에게 눈물남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와 동시에 현재 커뮤니티 상황을 말해 주면서 메신저를 통해 벌써부터 생겨난 추측성 기사들의 링크 또한 보내 주었다.
백재건은 그가 보내 준 기사들의 링크를 눌러 내용을 확인했다.
[랭킹 1위 호야 얼굴 공개! 하지만 무언가 이상한 것이 같이 공개되었다?]
오늘 진행되고 있는 제3회 영웅 대전 오프라인 예선전의 회장에서 호야가 얼굴을 공개했다.
본명 선호영인 그는 예상 이상의 뛰어난 외모로 시선을 잡아끌었다.
하지만 그와 함께 그의 손목에 있는 이상한 흔적이 포착되었다.
무언가 날카로운 물건으로 인해 생긴 듯한 그 흉터는.......
[랭킹 1위의 정체는 눈물남, 그에게서 수상한 과거가 엿보인다.]
오늘 제3회 영웅 대전 오프라인 예선전을 통해 공개된 호야(본명 선호영)의 정체가 이전 서울 지하철 화재 사고 때에 일부에게 관심을 받았던 '눈물남'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또한 우연히 사진 한구석에 포착된 우는 모습으로 인해 눈물남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그의 손목에서 수상한 과거의 흔적이 엿보여.......
[호야, 지난 2년간 군대 다녀와.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그에게는 비밀이 있다.]
지난 2년간 모습을 감추었던 호야(선호영)가 오늘 진행된 오프라인 예선전에서 그 이유를 밝혀 화제를 모았다.
지난 2년간의 행방을 묻는 미나의 질문에 군대에 다녀왔다고 답한 그는 당당한 목소리로 같은 부대 출신들에게 영상 메시지를 전하였다.
하지만 그에게도 비밀이.......
"허......."
지하철 화재 사고가 있었던 당시에는 문지한까지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정신이 온전치 않아 몰랐던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된 백재건은 탄성을 흘렸다.
동시에 상황 파악도 끝마쳤다.
"상황이 이러니 우리 쪽에서 나설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형님도 그렇게 생각하시고 전화 주신 거죠?"
-그래, 우리는 뒤에서 핸들링만 제대로 하면 될 것 같다.
원래는 생중계를 통해 호영을 본 고등학교의 관계자가 죄책감에 모아 두었던 자료를 이용해 익명으로 사회 고발을 한다는 방식으로 CCTV의 영상을 이용해 시나리오의 물꼬를 틀려고 했었다.
그렇게 되었다면 이야기의 시작점은 한림 일보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호영이 백성 그룹의 양손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백성 그룹이 한림 일보와의 친분을 통해서 난진 그룹을 깎아내리기 위하여 일을 꾸민 것이라는 이야기가 작게라도 나왔을 확률이 크다.
그 크기는 크지 않겠지만 그러한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나온다면 백성 그룹에는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위험 부담을 끌어안고서라도 호영을 위해 일을 진행하려고 했다.
회장인 백윤택에게도 그 사실을 알리고 미리 허락을 구했었다.
백윤택은 죽어 버린 친손자에게 온전히 주지 못했던 애정을 호영에게 주고자 하여 그러한 백재건의 일을 고민 끝에 흔쾌히 허락해 주었었다.
그런데 그 허락이 무색하게도 다른 곳에서 물꼬를 틀어 주었으니 한림 일보가 시발점이 되어 의심을 받을 일은 없어진 것 같았다.
* * *
"감사했습니다....... 저는 호야 님한테 대미지 한번 못 줬네요......."
"아니에요. 저도 그때 순간적으로 발을 뒤로 빼지 않았다면 위험했을 거예요."
"호야 님......."
오프라인 예선전의 첫 시합이었던 호영과 장예혁의 승부는 호영이 3판 2선승제에서 깔끔하게 2연승을 따내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호영에게 위험했던 순간 따위는 없었다.
그렇기에 장예혁은 호영이 자신을 챙겨 주기 위해 일부러 그런 말을 해 줬다는 것을 알아채고 그에게 살짝 고마움을 느꼈다.
허무하게 져 버렸다는 타이틀보다는 위협을 주었지만 실패했다는 타이틀이 더 나았으니까.
호영과 장예혁이 악수를 나누자 장내에 함성 소리가 울려 퍼졌고 둘은 두 번째 시합을 치르는 선수들과 교대하듯이 하여 무대를 내려가 선수 대기실로 이어진 복도로 들어왔다.
"호야 님도 마지막 경기 끝날 때까지 선수 대기실에서 기다리실 거죠? 저랑 같이 들어가실래요?"
오프라인 예선전은 개인전 단체전 모두 이틀에 걸쳐서 진행된다.
첫날은 32강만이 진행되며 둘째 날에 16강과 8강, 준결승과 결승이 진행된다.
그렇기에 둘째 날의 티켓이 첫날의 티켓보다 비싸며 첫날이 둘째 날과 이어지기에 32명의 시합이 모두 끝나면 살아남은 16명이 첫날 예선전의 마지막 순간에 모두 무대 위로 올라와 인사를 하는 차례가 있다.
그렇기에 그 전까지는 선수 대기실이나 혹은 체육관 안에서 대기할 필요가 있었다.
패배한 장예혁은 돌아가도 괜찮았지만 그는 남은 시합을 선수 대기실에서 보면서 다른 선수들과 친분을 쌓기 위해 남아 있을 셈이었다.
호영과 같이 선수 대기실로 들어간다면 아마 다른 선수들에게 다가가기가 더욱 쉬울 것이다.
"죄송해요. 선약이 있어요."
하지만 호영은 선수 대기실에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자신을 위해 한국까지 날아와 준 도반과 유아를 계속 관객석에 두고 찾아가지 않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기에 사전에 자신의 시합이 끝나면 관객석 뒤쪽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었다.
"선약이요? 누구랑......."
"오랜만이에요, 호영 씨."
호영의 대답에 장예혁이 궁금증을 물어보려고 할 때 선수 대기실 쪽에서 걸어온 남자가 호영에게 알은체를 해 왔다.
그로 인해서 호영의 발걸음이 멈추었고 그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한 장예혁은 눈앞에 있는 남자가 선약의 주인공이라 생각하고 자리를 비켜 주었다.
"에리먼 님이랑 아는 사이셨어요?"
"......조금."
"그렇군요. 그럼 마저 대화하세요!"
장예혁이 자리를 벗어나고 호영과 이대현만이 복도에 남았다.
호영을 바라보는 이대현의 입가에는 호선이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 미소가 가식으로 칠해진 가짜라는 것을 아는 호영은 그에게 미소로 답해 주지 않았다.
"설마 호영 씨가 호야일 줄은 생각도 못 했어요. 정말 깜짝 놀랐다니까요."
호영이 입을 열지 않아 복도에 정적이 흐르자 이대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는 겉으로는 놀라움과 반가움을 그리고 있었지만 속은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을 호영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지금 이대현의 머릿속은 그리 깨끗하지 않았다.
'호야가 저 자식이었을 줄이야. 건들지를 못하잖아.'
이대현은 호영이 백성 그룹의 양손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는 더러운 찌라시를 흘려 사람들을 선동하여 그를 끌어내리려던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워야만 했다.
피는 이어지지 않았다고는 하나 백성 그룹의 일원을 건드렸다가 그 사실을 들킨다면 좋지 않은 후폭풍을 맞게 될 확률이 컸다.
이대현이 호영에게 한 수 접고 들어가야 했다.
그러한 생각을 원인으로 하여 생겨난 짜증을 이대현은 놀라움으로 포장하여 숨기고 있었다.
"우리가 만나는 건 결승 때겠네요. 아무쪼록 그때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이대현이 웃으며 악수를 청하듯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호영은 덤덤한 얼굴로 이대현의 얼굴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처음 그와의 인연이 시작되었을 때에는 저 미소에 속았었다.
하지만 한번 이대현이라는 사람의 본성을 경험했었기에 지금은 속지 않는다.
"......."
호영은 이대현의 말에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입으로 호선을 그려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대현의 손도 잡지 않은 채 그를 지나쳐 도반과 유아에게로 향했다.
그의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그렇지 못해 싸늘하다는 것을 이대현은 눈치채지 못했다.
"허......, 뭐야?"
설마 자신이 내민 손이 무시당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이대현은 호영의 반응에 헛웃음을 흘리며 그의 등을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하층민이 상류 사회에 들어오면서 눈에 뵈는 게 없어졌나. 사람 대하는 꼬라지 좀 봐라. 쯧.'
* * *
화장실 이용을 위해서 회장과 복도의 출입은 티켓과 출입증이 있다면 비교적 자유로웠기에 호영은 간단하게 회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와아아아아-!"
"아아악! 거기서 뒤로 빠지면 안 되지!"
"떨어지면 시간만 주는 꼴이라고!! 전판에 당해 놓고 같은 수법에 또 걸리냐!"
"힘내요, 누나아아악!"
무대 위에서 느끼는 열기와 관객석에서 느끼는 열기는 꽤나 큰 차이가 있었다.
관객석에서 느끼는 것이 보다 뜨겁고 크게 느껴졌다.
호영은 그 열기를 느끼며 유아와 도반을 찾아 관객석의 뒤쪽을 두리번거렸다.
무대 위에서 봤을 때 둘은 꽤 앞쪽에 있었지만 자신의 시합이 끝나면 뒤로 빠져나올 약속을 했었기에 근처 어딘가에 있을 터였다.
"와악-!"
"흐악!"
그때 귓가에 강하게 꽂힌 목소리에 깜짝 놀란 호영이 뒤를 돌아보자 큭큭거리며 웃고 있는 유아와 그 뒤에 서 있는 도반이 보였다.
"큭큭큭, 반응 한번 장난 아닌데? 흐악!"
"놀리지 마. 그것보다 도대체 어디에 있었던 거야?"
유아가 자신을 따라 하는 시늉을 하자 호영이 말을 돌렸다.
유아와 도반이 나타난 곳은 호영이 둘러봤던 곳이었다.
"문 바로 뒤에 숨어 있었지. 네가 들어왔을 때부터 계속 뒤에 따라다녔는데 몰랐지? 하하하!"
"미안, 말리지 못했어."
유아를 대신하여 도반이 호영에게 놀라게 한 것을 사과해 왔다.
그런 도반에게 호영은 괜찮다며 손사래를 쳐 보였다.
이 둘은 게임 속이나 현실이나 전혀 다른 것이 없었다.
그렇게 느낀 호영이 대화를 위해서 둘과 힘께 시끌벅적한 회장을 빠져나가려고 하던 때에 예상치 못한 인물이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호영아!"
자신을 친근하게 부르는 목소리에 호영이 뒤를 돌아보자 자신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남자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어쩐지 낯이 익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누구인지는 떠오르지가 않았다.
"누구......?"
"나 희반이야, 김희반."
그의 말에 호영이 얼굴을 굳혔다.
"어? 아까 그 기자 아니야?"
"안녕하세요, 다시 뵙네요. 하하."
유아가 자신을 알아보자 김희반이 밝게 웃었다.
유아와 도반을 발견한 뒤로 계속 주시하고 있었던 보람이 있었다.
둘이 한국까지 올 이유는 호야밖에 없다고 생각했었기에 둘을 주시하고 있다 보면 호야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김희반은 지금 이 순간이 호야가 선호영임을, 자신의 친구임을 알았을 때만큼 기뻤다.
"이게 도대체 몇 년 만이야? 네가 호야 님이라는 걸 알았을 때는 깜짝 놀랐어. 혹시 짧게 인터뷰 좀 가능할까? 내가 몇 달 전에 기자로 취직을 했거든."
"......야, 네가 나한테 이렇게 친근하게 다가올 입장이 돼?"
호영은 김희반의 태도에 속이 울렁거리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는 과거의 일은 생각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하는 것인지 자신에게 다가오면서도 전혀 죄책감을 드러내 보이지 않았다.
만약 김희반이 호영을 발견했을 때 작은 사과 한마디라도 했었다면 호영의 신경이 이렇게까지 날카롭게 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응? 왜, 왜 그래, 호영아? 우리 친했었잖아......."
"그래, 친했었지. 하지만 다 과거형이야. 난 한번 버려졌고......, 우리 사이는 그때 이미 끝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