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7권 12화
12. 눈물남(1)
"32칸의 대진표 중에 남은 자리는 이제 1번과 27번의 두 자리! 남은 두 선수의 운명이 최미령 선수의 손에 달렸습니다! 자, 최미령 선수. 앞으로 나와서 공을 뽑아 주세요."
미나의 말에 머리를 위로 올려 묶은 여자가 추첨기 옆으로 다가가 섰다.
추첨기 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공들도 모두 뽑혀 나가 이제는 두 개의 공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최미령의 뽑기 운에 따라서 그녀와 호영의 자리가 결정된다.
추첨기의 버튼 위에 손을 올린 최미령은 크게 침을 삼켰다.
'제발......, 처음은 너무 부담감이 커요! 27번 뽑게 해 주세요!'
그녀가 속으로 간절히 염원하며 버튼을 강하게 눌렀고 열린 구멍을 통하여 공 하나가 굴러 나왔다.
그 공을 잡아 숫자를 확인한 미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금 제 손안에 최미령 선수와 선호영 선수의 운명을 결정지을 공이 들어 있습니다. 어허, 최미령 선수. 추첨기 안에 남아 있는 공을 보려고 하시면 안 되죠! 자, 추첨기는 얼른 치워 주시고요."
미나가 손을 휘적거리며 그리 말하자 스태프 두 명이 무대 위로 올라와 추첨기를 끌고 사라졌다.
"관객 여러분들은 지금 제 손안에 어떤 숫자가 있었으면 하시나요?"
"1버어어언!"
"27번! 언니 제발 27번!"
"27! 27!"
"1번 가자, 미령아아아악!"
미나의 질문에 객석에서 큰 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그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던 미나는 웃으며 손에 꽉 쥐고 있던 공의 숫자를 공개하였다.
"최미령 선수가 뽑은 숫자는 27번! 선호영 선수의 자리는 자동적으로 1번으로 정해집니다!"
"와아아아아-!"
미나의 말에 체육관 안에 함성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번 영웅 대전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2년 만에 돌아온 호영과 지난 두 번의 영웅 대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 주었던 이대현이다.
이대현의 자리는 20번이었기에 이변이 없는 한 둘이 결승에서 만나는 구조가 되었기에 함성은 그 어느 때보다 거대했다.
겨우 장내를 진정시킨 미나는 첫 대결을 하게 될 호영과 그 상대 선수인 장예혁을 제외한 모든 선수들을 선수 대기실로 보내었다.
선수들이 내려가자 무대 양옆의 바닥이 열리며 그 아래에 준비되어 있던 캡슐이 위로 올라왔다.
"그럼 지금 바로 제3회 영웅 대전 한국 오프라인 예선전의 첫 번째 경기를 시작......! 하기에 앞서 선수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는 시간을 가져 보겠습니다. 선수분들 아직 캡슐에 들어가지 마시고 앞으로 나와 주세요."
미나의 말에 진행 스태프의 설명을 듣고서 캡슐에 들어가려던 호영과 장예혁이 그녀의 옆으로 다가갔다.
미리 사전에 건네받은 진행 대본에는 쓰여 있지 않던 일이기에 둘의 얼굴에서 물음표가 보이는 듯했다.
진행 스태프에게서 마이크를 받은 장예혁이 입을 열었다.
"미나 님, 대본에는 이런 거 안 쓰여 있었는데요?"
"일부러 안 적어 놨습니다. 미리 대비할 시간을 주지 않아야 진솔한 대답이 나올 테니까요. 그럼 장예혁 선수가 먼저 입을 연 김에 그에게 먼저 질문을 해 보겠습니다. 작년 오프라인 예선전 때......."
사전 인터뷰를 간단하게 했기에 따로 질문을 받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운이 좋게 두 번째 순서로 밀려난 호영은 미나가 장예혁에게 하는 질문을 옆에서 들으며 얼굴을 살짝 굳혔다.
그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서려 있었다.
질문의 수위가 꽤나 높았던 것이다.
평소에는 하지 못하는 질문들을 영웅 대전이라는 상황의 힘과 도망칠 수 없는 관객이라는 벽에 기대어 기회다 생각하고 물어보는 것 같았다.
그 질문이 사적인 일부터 공적인 일까지 가릴 것 없이 대답을 하기에도 안 하기에도 애매한 수준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것이 더 악질적이었다.
그렇기에 장예혁은 미나에게 탈탈 털려 버리고 말았다.
어째서인지 호영은 미나가 큐 카드를 넘기며 자신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이 무섭게 느껴졌다.
"그럼 선호영 선수에게 질문하겠습니다."
미나가 그리 선언하자 큰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자, 그럼 우선 크게 하나 가 볼까요? 선호영 선수, 지난 2년간 어디서 무얼 하다가 오신 건가요?"
"예?"
"항간에서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큰 사고를 겪었다, 게임을 아예 접었다가 좋지 못한 의도로 돌아온 것이다 등등 말이 많은데요. 진실은 어떠한가요?"
미나의 질문에 호영의 대답을 원하는 관객들이 그의 닉네임을 외치며 그가 입가에 마이크를 가져가기를 고대했다.
미나의 질문을 들은 호영은 속으로 크게 안심했다.
장예혁의 인터뷰를 보고서 크게 각오를 품었었는데 별것 아닌 질문이었다.
호영이 싱긋 웃으며 마이크를 입가에 가져갔고 그 행동을 본 관객들이 그의 대답을 듣기 위해 목소리를 줄였다.
"군대 다녀왔습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대답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오자 장내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아아, 오빠......, 오빠도 결국 피할 수 없었구나......."
"아, 그래서 그랬던 거구나......."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대답인데."
그 소란스러움이 조금씩 커지자 그제야 잠시 나갔던 정신을 붙잡은 미나가 현장 관리자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대답이었기에 어떻게 끌어나가야 할지가 막막했던 것이다.
-동기나 선후배에게 한마디 하라고 해.
그때 인이어를 통해서 미나에게 지시가 떨어졌다.
현장 관리자는 그녀를 향해 엄지를 척 치켜들고 있는 상태였다.
그 모습에 고개를 끄덕인 미나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와아! 그럼 이 기회에 군대 동기나 선후배들에게 한마디 하시죠!"
"네? 으음."
미나의 말에 짧게 고민을 한 호영은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
"서홍석 병장님, 백승주 병장님. 외박 나와서 같이 캡슐 방에 가자고 한 거 가상 현실 멀미라고 거짓말하며 거절한 거 죄송합니다! 차마 막 레벨 200을 넘겼다며 좋아하시는 두 분에게 캐릭터를 공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잘 챙겨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언제 연락이라도 한번 주시면 밥 한 끼라도 사겠습니다!"
호영의 말에 커다란 웃음소리와 박수 소리가 그에게 동시에 쏟아졌다.
짧은 질문이 조금 더 이어졌지만 호영은 무사히 질문들에 답할 수 있었다.
질문이 끝나자 호영과 장예혁이 웃으며 악수를 주고받은 뒤 캡슐에 들어가 등을 기대었다.
그때 전광판에서는 둘의 사전 인터뷰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 * *
-호야 님 진짜 잘생겼다.
-호야 님이 못생겨서 얼굴 가리고 다니는 거라 했던 놈들 다 어디로 튀었냐? ㅋㅋㅋㅋㅋㅋ
-호야 코인 떡상!!
제3회 영웅 대전 한국 온라인 오프라인 예선이 생중계되고 있는 방송 채널의 채팅 창은 호영에 대한 이야기로 인해 채팅이 마를 줄을 모르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나비 효과를 불러일으키게 될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나 호야 님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아.
-응, 게임에서 봤었겠지.
-아니, 그게 아니라 저 얼굴을 어디서 본 것 같다고.
-님도 그래요? 나도 그런데.......
-와 씨,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었네.
호영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는 이들이 다수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이 긴가민가한 태도를 취했기에 별거 아닌 소란으로 치부되려고 했다.
그때 호영을 어디선가 본 것인지를 기억해 낸 이가 물꼬를 틀었다.
-아아! 눈물남이다!
-아!! 진짜 눈물남이야!
-눈물남? 그게 뭔데?
-어떻게 눈물남을 모를 수가 있어요?!
-아니......, 모를 수도 있는 거지 뭐.
이전 서울 지하철 화재 사고 때 우연히 찍힌 사진 한 장으로 시작된 이야기가 있다.
피해자의 유족들의 사진 구석에 상체만 작게 찍힌, 눈물을 흘리는 남자의 모습을 우연찮게 발견한 이를 시작으로 해 그 이야기는 널리 퍼져 나갔다.
그러면 안 되고 그런 일을 하면 안 될 사회 풍조였지만 우수에 찬 그의 얼굴은 여럿 여성의 가슴에 강하게 박혔고 관심을 모았다.
그리고 꽃사슴처럼 눈물을 흘리는 모습으로 인해 '눈물남'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기자들은 사람들의 관심사에 따라 그를 포착하기 위해 교복을 힌트로 해 그의 학교에 찾아갔었지만 눈물남에 관한 이야기를 기사로 내보내는 기자들은 없었다.
일반인들 중에서도 그에게 큰 관심을 가진 이들 몇몇이 등굣길을 노려 눈물남을 보기 위해 드문드문하게 학교를 찾았지만 등교하는 눈물남을 발견한 이들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의 호영은 고개를 들고 등교한 적이 없을뿐더러 앞머리도 호야만큼 길었기에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 이상 그를 알아보기는 어려웠다.
발견하는 것이 이상했다.
그렇게 해서 이야기가 끊긴 눈물남은 조금씩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혀 갔다.
그것이 지금 부활한 것이다.
한 명이 호야가 구석에 찍힌 예전 기사를 찾아내어 링크를 올리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우는 얼굴도 잘생겼다, 하.......
-어음......, 이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호야 님한테는 가슴 아픈 기억일 거 아니야.
-맞아. 저렇게 서럽게 우는데.
-누군가 소중한 사람이 지하철 화재 사고로 죽은 걸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조심스럽기도 했다.
호영이 애처롭게 울고 있는 모습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상상을 하게 해 주고 있었다.
그렇기에 조심스러워진 것이다.
호영도 당연히 나중에 인터넷 반응을 확인할 터였고 그때 자신들이 대화를 나눈 흔적을 보고 그가 가슴이 아렸을 과거를 떠올릴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배려는 이니티움의 커뮤니티에 올라온 한 게시 글로 인해서 이루어질 수 없게 되었다.
[호야 님 손목에서 이상한 걸 발견했다.]
아까 엘리안이 인터뷰 중일 때 옆에 작게 호야 님이 잡혔었잖아.
나 솔직히 엘리안한테는 관심 없어서 호야 님만 보고 있었거든.
그때 호야 님이 관객석 쪽으로 손을 흔들었어.
그런데 그 순간 호야 님 손목에서 이상한 게 보인 거야.
영상을 뒤로 되감아서 확인해 보니까 호야 님 손목에 뭐가 그려져 있더라?
나는 뭐 문신인가 했는데 그 장면 캡처해서 확대해 보니까 문신이 아니라 흉터였어.
꽤 크고 오래되어 보이는데......, 나만 안 좋은 생각이 드는 거냐?
영상을 캡처해서 확대한 사진이 함께 올려져 있는 게시 글의 내용은 빠른 속도로 확산되었다.
사진은 픽셀이 약간 깨져 있어서 글의 작성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흉터로 보이지 않아 추측성 글로 치부되는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서 예선전 현장에 있던 사람이 게시 글을 확인하고 올린 호영의 개인 캠 영상으로 인해서 추측은 확신이 되었다.
그 영상에서 호영이 손을 흔들던 장면에 살짝 박시하게 제작된 후드 재킷의 소매가 살짝 내려가서 보인 그의 손목 흉터가 그대로 찍혀 있었던 것이다.
장비를 좋은 것을 사용한 것인지 화질은 매우 뛰어났다.
-뭐야? 뭐야?
-군대에서 뭐 힘든 일이라도 있어서 그은 건가.
-흉터가 조금 오래되어 보이는 걸 보면 최근은 아니라서 군대가 원인은 아닐 듯. 아까 질문에서도 잘 챙겨 줘서 고맙다고 했잖아.
-그럼 도대체 뭐가 원인인 거지?
-오빠......, 뭔가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그것을 계기로 하여 호영이 생각지 못한 곳에서 네티즌 수사대의 손을 빌려 그가 생각했던 일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