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7권 10화
10. 가면 아래에는(1)
온라인 예선전이 끝난 뒤, 호야는 오프라인 예선의 참가 권한을 획득하고서 필드를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호야는 오프라인 예선 참가의 기쁨을 느낄 새도 없이 유아에게 불려 가야만 했다.
"호야, 이 자식이야! 얘가 나를 죽였어!"
유아의 귓속말에 그가 있는 곳으로 향하자 유아가 방금 막 도착한 호야의 등 뒤로 몸을 숨기며 앞에 있는 도반을 향해 손가락질하였다.
그 모습이 마치 아버지에게 동네 형이 자신을 괴롭혔다 이르는 어린애같이 느껴졌다.
'아빠, 이 형이야! 이 형이 날 괴롭혔어! 같은 건가.'
"어쩔 수 없었어."
"어쩔 수 없기는! 놔줄 수도 있었잖아, 이 매정한 자식아!"
"으음......, 일단 무슨 일인지 말해 주면 안 될까? 이야기에 끼지를 못하겠는데."
호야가 난처한 듯이 말을 뱉자 유아가 격양된 목소리로 말을 해 왔다.
"아니, 글쎄 도반이 말이야!"
이야기를 들어 보니 온라인 예선전에서 둘이 같은 필드에 이동되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시간이 30분도 채 흐르지 않은 시점에서 둘이 마주해 버렸고 서로 떨어져서 다른 사람들을 먼저 쓰러트리려 하는 자신을 도반이 끈질기게 쫓아와 쓰러트렸다는 것이 유아의 말이었다.
"너무한 거 아니냐! 덕분에 제대로 된 보상도 못 받았다고!"
"그건 미안해."
"그런 사과로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흑흑흑."
유아가 양손으로 눈을 가리며 과장된 울음소리를 내 보였다.
일부러 티를 내는 것인지 가짜 눈물이라는 것이 훤히 보였다.
"......."
"......."
"......칫, 재미없기는."
도반과 호야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유아가 얼굴에서 손을 떼며 밝게 웃었다.
유아의 완전히 뒤집어진 태도에 방금 전에 그가 화를 내던 일이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뭐, 방금 전 일은 없던 걸로 하고. 너희 둘 다 온라인 예선 통과 축하한다."
"고마워."
"나는 편성 운이 더럽게 없어서 이 꼴이지만."
셋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오프라인 예선을 주제로 해서 이어졌다.
유아와 도반이 경험했던 두 번의 오프라인 예선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다음으로 이어진 것은 올해부터 바뀐 규칙으로 인하여 도반과 유아에게 단체전 참가의 러브 콜이 쏟아졌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둘 다 관심이 없고 성향상 맞지 않았기에 거절했지만.
자연스레 호야가 권유를 받았던 이야기도 나왔다.
그리고 그것은 곧 에리먼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카피길이면 그 녀석이 있는 길드의 길드 마스터지? 한국인이고. 그렇다면 그 팀엔 당연히 걔도 있겠네."
"응, 있었어."
"역시나. ......뭐, 나쁘게 생각하지는 마라. 그 사람은 너랑 그 녀석의 관계를 모르니까 말이야."
"알고 있어."
유아의 말에 호야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딴 녀석한테 꺾이지 말고!"
"그래, 알았어."
"아니면 아예 우리가 예선을 보러 갈까?"
"그래, 알았......, 응?"
호야가 무심코 내뱉던 긍정의 말을 멈추고 눈을 껌뻑이며 유아와 시선을 맞췄다.
"방금 뭐라고 했어?"
"네 예선전 보러 한국으로 가겠다고."
"......그래도 돼?"
"뭐 어때. 어차피 나는 이미 끝났고, 도반이 아직 예선이 남아 있지만 미국 예선은 한국 예선보다 빨리 시작하고 빨리 끝나니까 예선을 보고 넘어가기엔 충분하잖아? 게다가 어차피 올해 본선 장소는 한국이니까 미리 가 있는 셈 치면 되지. 도반 너도 상관없지?"
"상관없어."
유아의 말에서 자신을 생각해 주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기에 호야는 살짝 웃음을 흘렸다.
이전에 처음 둘에게 이대현과의 일을 털어놓았을 때 둘이 보였던 분노는 거짓이 아닌 것이다.
"어때? 호야 네가 '너무너무 긴장이 돼서 참을 수 없으니 제발 보러 와 주세요~.'라고 한다면 가 줄 수 있는데 말이야."
"그래, 그래. 너무 긴장이 돼서 참을 수가 없으니까 제발 보러 와 주세요, 유아 님, 도반 님."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우리가 특별히 가 주도록 하지!"
* * *
그로부터 며칠 뒤 경기도에 위치한 고양 체육관은 제3회 영웅 대전의 개인전 예선을 보기 위해 온 관람객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유아와 도반도 섞여 있었다.
"이 치사한 자식, 마중도 안 나와 주고 말이야!"
"공항에는 와 줬었잖아. 그리고 지금쯤이면 안에서 사전 인터뷰 중이겠지."
"아아, 그렇게 말하니까 뭐라 말을 못 하겠네."
현재 고양 체육관에 몰려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이니티움의 플레이어이거나 혹은 사적이나 일적으로 이니티움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러한 이들이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있다고는 하나 도반의 남다른 체격과 익숙한 투 샷을 못 알아볼 일은 없었다.
오히려 얼굴을 가리려고 쓴 모자와 마스크 때문에 시선이 한 번 더 가서 둘을 알아보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저기에 저 두 명, 도반이랑 유아 맞지?"
"어디? 헉! 진짜 맞는 것 같은데. 가서 사인이라도 해 달라고 할까?"
"너 영어 할 줄 알아?"
"아니, 그래도 기브 미 사인! 이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에효, 내가 말을 말아야지."
하지만 도반의 무뚝뚝한 성격은 매우 유명했기에 둘에게 직접 다가가는 이들은 없었다.
그저 주변에서 힐끔거리며 쳐다볼 뿐이었다.
그래도 항상 예외는 있는 법.
"실례합니다, 잠시 시간 되시나요?"
한 남자가 둘에게 약간 어설픈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얼룩 하나 보이지 않는 새하얀 셔츠와 검은색 정장 바지를 입고 있었으며 돌아다니는 일이 많은 것인지 신발은 검은색의 운동화를 신고 있었고 옆으로 맨 노트북 가방과 목에 건 카메라가 인상 깊은 젊은 남성이었다.
"누구......?"
"아아, 죄송합니다. 먼저 자기소개를 해야 했는데 깜빡했네요.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남자가 노트북 가방에 달린 작은 주머니를 열어 안을 잠시 뒤적거리더니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오는 작은 종이를 꺼내어 유아에게 내밀었다.
형태를 봐서는 명함 같았지만 유아는 그 명함을 읽을 수 없었다.
"미안하지만 저는 한국어를 읽을 줄 몰라요."
"네? 잠시만 다시 명함 좀......, 아!"
유아의 말에 남자가 다시 명함을 돌려받아 확인하고는 죄송하다고 사과하며 주머니에서 이름 아래에 영어가 작게 적혀 있는 명함을 다시 꺼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불량 명함을 드렸네요. 다시 한 번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명함에는 그의 이름과 기자라는 직함, 그가 소속된 언론사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뉴스 선데이의 킴......히반 기자?"
"네, 뉴스 선데이의 기자 김희반이라고 합니다.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몇 가지 질문을 드려도 될까요? 아, 사진도요."
김희반은 도반과 유아를 향해 씨익 웃으며 카메라를 들어 올려 보였다.
* * *
"사전 인터뷰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편집 잘 좀 부탁드려요."
"에이~, 경기 직전에 바로 내보내야 하는 거라서 그냥 자를 뿐인데 편집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죠. 아무튼 걱정은 하지 마세요."
제3회 영웅 대전 한국 오프라인 예선의 스태프 중 한 명인 장혜영은 인터뷰를 끝마친 참가 선수가 인터뷰실을 나갈 때까지 밝게 웃으며 배웅을 해 주었다.
끼익-, 탁.
"흐아~, 죽겠다."
인터뷰를 마친 선수가 문을 닫고 완전히 눈앞에서 사라지자 장혜영은 의자에 축 늘어지며 앓는 소리를 밖으로 흘렸다.
그러자 카메라로 영상을 찍던 최영진이 그에게 생수 한 통을 건네었다.
생수를 건네받은 장혜영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뚜껑을 따 물을 그대로 입에 들이부었다.
"꿀꺽, 꿀꺽. 크으~!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네가 수고한다, 혜영아."
"그러니까 말이에요. 역시 3시간 안에 32명의 인터뷰를 따는 건 무리가 있어요. 질문이 세 개밖에 안 된다지만 이게 사람이 할 짓이냐고요!"
"그래, 그래. 네 마음 다 이해한다."
"하아....... 오빠, 이제 누구누구 남아 있어요?"
"어디 보자, 이제 딱 한 명 남았네. 선호영 선수."
"선호영? ......아."
처음 들어 보는 이름에 장혜영이 최영진이 들고 있던 명단을 확인하자 본명 옆에 쓰여 있는 닉네임이 눈에 들어왔다.
[선호영(호야)]
"주인공은 늦게 등장한다는 건가......."
"방금 뭐라고 했어?"
"아무것도 아니에요."
여러 가지 이유로 현 영웅 대전에서 제일 큰 주목을 받고 있는 플레이어.
그 여러 가지 이유들 중 사람들이 제일 궁금해하는 것은 가면으로 가려져 있는 그의 얼굴이었다.
위에서 얼굴을 가려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졌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었으니 그는 아마 맨얼굴로 나타날 것이었다.
'솔직히 내놓을 만한 얼굴이었으면 가면 벗은 모습이 한 번이라도 공개가 됐었겠지.'
하지만 장혜영은 그것에 큰 기대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호야를 조금 삐딱한 시선으로 보는 부류였다.
"그나저나 늦네요. 대회 시작 40분 전인데."
"지각은 아니잖아. 너무 얼굴 찌푸리지 마라."
"그래도 편집에 시간이 걸릴 거 아니에요. 빨리빨리 와 주는 게 예의인 거죠!"
"그건 핑계고 네가 빨리 쉬고 싶은 거뿐이잖아."
"솔직히 그것도 조금 있어요."
똑, 똑-.
장혜영이 불만을 토로하고 있자 누군가가 인터뷰실의 문을 두드려 왔다.
"열려 있으니까 들어오세요~."
"실례합니다."
문을 열고 얼굴을 내민 것은 처음 보는 잘생긴 남자였다.
그것도 딱 장혜영의 취향인 얼굴이었기에 그녀는 남자의 얼굴을 보고서 선수들의 인터뷰를 하느라 쌓였던 피로가 순식간에 날아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우와......, 우리 스태프 중에 저런 미남이 있었나?'
장혜영은 그를 스태프 중 한 명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목에 걸려 있는 출입증의 끈이 스태프용의 노란색이 아닌 선수용의 파란색인 것을 보고서 생각을 바꿔야 했다.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선호영이라고 합니다."
"호야?!"
장혜영은 아까 자신이 했던 생각을 철회했다.
내놓을 만한 얼굴이 아니기는 무슨, 오히려 그 반대였다.
"진짜 잘생겼다......."
"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크흠, 사전 인터뷰 때문에 오신 거죠? 저쪽 카메라 앞 의자에 앉으시면 돼요."
지금 당장 번호라도 따고 싶었지만 장혜영은 사적인 일과 공적인 일을 구분할 줄 아는 여자였다.
호영이 카메라를 보며 앉자 그녀는 카메라 옆에 준비되어 있는 의자에 착석했다.
호영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은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업무용의 눈빛이 아닌 진심이 담긴 눈빛이었다.
"32강에서 자신의 차례 바로 직전에 짧게 나가는 영상이니까 너무 긴장하지 않으셔도 되고요. 16강에 올라가시게 된다면 다시 한 번 더 찍으실 거예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먼저 의례적으로 하는 질문입니다만, 영웅 대전에 참가하게 되신 계기나 이유가 있으신가요? 보상이 탐나서, 우승하고 싶어서 등의 가벼운 대답도 괜찮으니까 너무 깊게 고민하지 않으셔도 돼요."
"으음, ......과거에서 자유로워지고자 해서 참가했습니다. 계속해서 과거에 묶여 있는 것은 저나 가족들한테도 좋지 않으니까요."
"네?"
"이유도 말해야 하나요?"
"아뇨. 뭔가 철학적인 대답 같아서 의미심장해서 좋네요. 반응이 좀 있겠는데요."
장혜영이 들고 있던 종이에 무언가를 끄적이더니 질문을 이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