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6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7권 9화
9. 권유(2)
"작년까지는 개인전과 단체전의 중복 참가가 불가능했지만 올해부터는 규칙이 바뀌었어요."
제1회, 제2회 영웅 대전까지만 해도 개인전에 참가 신청을 한 플레이어는 단체전에 참가 신청을 할 수 없었고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러한 규칙이 영웅 대전의 전체적인 경기 수준을 조금 더 높이고자 하는 취지로 인해 없어졌다.
개인전에 참가 신청을 해도 팀을 꾸려 단체전에 참가가 가능해진 것이다.
"호야 님은 한국인이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국적도 저와 같으시고 참가 보상은 중복되지 않지만 온라인 예선 통과 보상은 개인전과 중복 지급이 가능하니 손해는 없으실 거라 생각해요."
"으음......."
카피길의 물음에 호야는 속으로 그의 권유를 수락할지를 고민했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참가를 한다고 해도 자신이 손해를 보는 것은 없었다.
그러한 이유로 인해서 수락 쪽으로 살짝 기울어졌던 호야의 생각은 이어진 카피길의 말에 완전히 뒤집어지고 말았다.
"팀원 수준이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거예요. 유명한 한국 플레이어들을 집중적으로 섭외했으니까요. 에리먼도 있어요."
"......권유는 거절하겠습니다."
"네?"
그와 같은 팀을 이루라니, 죽어도 싫었다.
게다가 호야가 백재건과 함께 계획한 시나리오대로 일이 진행된다면 에리먼이 속해 있는 팀은 폭풍을 피해 가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한 사실을 모르는 카피길은 호야가 자신의 권유를 거절한 것에 크게 당황했다.
"어, 어째서죠? 이유를 알려 줄 수 있나요?"
"지금은 말 못 합니다. 그것보다 카운트다운도 옛날 옛적에 끝났으니 대련이나 하죠."
호야는 바닥을 가볍게 박차며 카피길에게 달려들었다.
* * *
시간이 흘러서 영웅 대전 예선 신청이 마감되었고 예선 신청자 명단이 공개되었다.
-있다! 호야 님이 있어!
-당연히 있겠지 바보야! 참가를 안 할 거면 등급은 왜 올렸겠어?
-호야 님 닉네임이 한국 쪽 명단에 있어! 호야 님은 한국인이었던 거야!
-그것도 이미 옛날에 알려진 거야, 바보야.
-호야 님 개인전만 참가하셨네. 단체전도 나오셨으면 좋았을 텐데ㅠㅠ.
그와 동시에 호야의 영웅 대전 참가도 기정사실이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한 가지 기대를 품기 시작했다.
-몇 주만 지나면 호야 님 맨얼굴을 볼 수 있겠네.
-오프라인 예선도 가면 쓰고 나올지도 모르지.
-그걸 주최 측에서 허락해 줄까?
-님들, 아직 호야 님이 온라인 예선을 통과한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김칫국이 너무 심하신데요.
-위 님은 호야 님이 온라인 예선에 떨어질 사람으로 보이나 봐요?
-한국 상위권이 한 조에 몰려서 다구리 한다면 혹시 모를 일이죠.
-응, 아니야~. 만약 호야 님이 온라인 예선 탈락하면 내가 손에 장을 지진다.
항상 가면으로 가려져 있는 호야의 얼굴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였다.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에 따르면 그가 쓰고 있는 가면은 그냥 장식품이 아닌 디버프 효과를 보유한 아이템이다.
그렇기에 호야가 얼굴을 가리기 위하여 일부러 쓰는 것이 아니라는 의견이 강했다.
즉 잘생겼을 확률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이들도 있었지만 이미 여럿 플레이어들이 기대감으로 인해 들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예선 참가 명단이 발표 된 다음 날, 온라인 예선이 시작되었다.
* * *
온라인 예선 당일, 예선 시작 10분 전이 되자 호야는 사냥을 멈추고 근처 마을로 이동해 대련 매칭 대기 방으로 이동했다.
대기 방은 안전 구역에서만 입장이 가능하며 예선이 시작될 때 캐릭터가 대기 방에 있어야 온라인 예선용으로 제작된 필드로 이동된다.
만약 예선이 시작할 때에 캐릭터가 대기 방에 없으면 자동으로 탈락 처리가 되며 참가 보상도 받을 수 없다.
대기 방에 도착한 호야는 속으로 기도했다.
'제발 에리먼과 같은 조가 되지 않기를.......'
각 조마다 오프라인 예선에 올라갈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에리먼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높이 올랐다가 추락해야 했기에 예선에서 같은 조에 편성되어서는 안 되었다.
같은 조가 될 확률은 32분의 1밖에 되지 않지만 기도해서 나쁠 것은 없다.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자 괜스레 왼쪽 손목이 아려 오는 것만 같았다.
* * *
"안녕하세요, 바니 TV 시청자 여러분! 당신들의 영원한 멋쟁이 누님 바니! 여러분께 인사드립니다~!"
바니가 허공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지금 그녀가 있는 곳은 그녀가 골드를 모아 바텐쿠아에 마련한 자그마한 개인 주택의 안이었다.
그 안에서도 스트리밍을 할 때 사용하기 위하여 자그마한 테이블과 의자만을 놓아 일부러 조촐한 분위기를 낸 방이었다.
그녀의 뒤쪽으로 보이는 벽에는 마치 프로젝터로 비추듯이 하여 이니티움의 로고가 대문짝만 하게 그려져 있었다.
바니는 네오워즈로부터 온라인 예선의 중계권을 따낸 스트리머들 중의 한 명이었다.
그것도 중계권 경쟁률이 남달랐다는 소문이 파다한 한국 예선의 중계권을 말이다.
그녀의 뒤에 있는 로고는 예선전의 상황을 보여 주기 위한 장치로 인해 비치고 있는 것이다.
프로젝터와 비슷한 형태를 한 이 아이템은 온라인 예선이 끝남과 동시에 자동적으로 회수될 예정이다.
"영웅 대전 온라인 예선 시작까지 앞으로 5분! 바니 TV는 온라인 예선 상황을 생생하게 전해 드리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냥 솔직히 덕질 하려는 방송이라고 말하세요.
-덕업 일치. 일로 사심을 풀려고 하죠.
-작년이랑 재작년은 미국 예선 중계권을 땄으면서 이번에는 한국 예선 중계권을 딴 것을 보면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죠? 그쵸?
-삐져 버린 남친은 어떻게 풀어 주려나.
-2년 동안 한결같이 기다린 것이 드디어 빛을 보네.
"에헤헤......, 들켰어요?"
바니가 머쓱하게 볼을 긁적이며 말하자 채팅 창에 긍정의 말들이 쉼 없이 생겨났다.
그 모습을 본 바니는 헛기침을 한 뒤에 말을 이었다.
"으흠! 그래도 중계는 제대로 할 거예요. 우선 영웅 대전을 처음 접하실 분들을 위하여 규칙의 설명부터 해 드릴게요."
영웅 대전의 온라인 예선은 우선 각 나라별로 신청자들이 분리가 되고 거기서 다시 한 번 더 32개의 조로 나뉜다.
각 나라의 신청자의 수에 따라 한 조에 편성되는 인원의 수는 다르지만 평균 900~1,300명이 한 조를 이루게 된다.
그렇게 한 조가 된 플레이어들을 예선을 위해 따로 구축된 필드로 이동시킨 뒤 각 필드마다 최후의 1인을 가리는 서바이벌 형식으로 예선이 진행되며 진행 시간은 총 3시간이다.
"시간이 10분씩 지날 때마다 필드가 점점 좁아져 예선 종료 10분 전이 되면 필드가 양키 스타디움 정도의 넓이밖에 남지 않게 되죠. 즉 한곳에 계속해서 숨어 있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필드의 외곽에 있는 붉은 홀로그램의 벽이 10분에 한 번씩 움직이며 활동 가능 구역을 좁히는 방식이다.
만약 제시간에 움직이지 못해서 홀로그램의 벽을 넘어가게 되었을 때에는 1초마다 HP가 2%씩 감소되는 패널티가 부여된다.
"홀로그램 벽을 잘만 넘어 다닌다면 회복 스킬을 가지신 분들은 기습도 가능하겠지만 그들도 MP는 무한하지 않으니까 말이에요. 아! 그리고 지금 막 영웅 대전 온라인 예선이 시작되었습니다!"
로고의 뒤로 검이 교차해 꽂히며 화면이 다 무너져 내린 마을을 상공에서 비추었다.
아무래도 이번 예선의 필드 테마는 폐허가 된 도시인 듯했다.
"어디 있지, 어디 있지......."
화면이 바뀌자마자 바니는 화면을 비추고 있는 아이템의 버튼을 조작해 필드를 뛰어넘으면서 호야를 빠르게 찾기 시작했다.
호야를 찾는 것이 주목적이었지만 스트리밍을 하는 중이었기에 시점을 옮기다 주목할 만한 모습이 보였을 때에 코멘트를 다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계속해서 시점을 바꾸다가 20분 정도가 지났을 즈음에 드디어 화면에 호야를 포착할 수 있었다.
"찾았다!"
* * *
"으으......, 왜 하필 같은 조야......!"
"감사했습니다."
"저도요, 젠장!"
스걱!
호야와 마주쳤던 플레이어가 그의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사망 판정을 받아 빛 알갱이가 되어 사라졌다.
예선전이 시작한 지도 이제 1시간 정도가 흘러 필드의 크기는 3분의 1 가까이가 줄어들어 있었다.
그리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반이 채 되지 않을 것이다.
일찌감치 떨어질 사람들은 모두 떨어졌기에 지금부터는 서로가 서로를 경계할 것이다.
'그리고 아마 내가 경계 1순위겠지.'
지금까지 호야가 쓰러트린 이들은 모두 호야가 찾아내거나 우연히 마주친 자들뿐이지 먼저 호야를 찾아온 이가 없었다.
그러한 상황은 호야에게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플레이어들이 호야를 피한다 해도 어차피 마지막에는 좁아진 필드로 인해서 서로가 마주치게 되어 있었다.
그때 모두를 쓰러트린다고 해도 오프라인 예선 진출은 가능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겉보기에는 그리 좋지 않을 것이다.
방관하다가 모두가 지쳐 있는 마지막에 승리를 낚아챈 플레이어.
호야는 그런 평가를 받기 싫었다.
그러니 상대가 찾아오지 않는다면 자신이 지금까지보다 더 적극적으로 상대를 찾아 움직여야 했다.
[10분 경과]
[벽이 움직입니다.]
호야가 그렇게 생각하던 때에 타이밍 좋게 시스템 메시지가 필드의 축소를 알려 왔다.
그로 인해서 벽이 움직일 것을 대비해 안쪽으로 들어가던 호야는 자신처럼 안쪽으로 향하던 익숙한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강남 님!"
"응? 어! 호야 님......."
자신을 무르는 목소리에 호야 쪽을 바라본 강남불주먹의 얼굴에 반가움이 서렸다.
하지만 지금 있는 장소가 장소라는 것을 깨닫자 반가움은 곧바로 경악이 되었다.
"아악! 왜 같은 필드야!"
같은 필드에 있다는 것은 서로가 적이라는 말이었다.
같은 필드에 배정되지 않기를 바랐던 사람이었는데 시작 직전에 했던 기도가 잘못된 것인지 떡하니 마주치고 말았다.
호야의 가면 아래로 보이는 입가가 매우 밝아 보여서 그 충격은 더욱 컸다.
"이런 곳에서 다 만나네요. 반가워요."
"저도 반갑긴 한데 말이죠! 여기서 만나고 싶지는 않았는데!"
강남불주먹은 자신의 감정을 숨김없이 과감하게 드러내 보였다.
"것보다 왜 쫓아오시는 거예요!"
"응? 그야......."
강남을 발견한 뒤로 계속 달리는 그의 옆을 가볍게 같이 달리던 호야가 그의 말에 씨익 하고 웃었다.
"적이잖아요."
"대! 화염 주먹!"
콰앙-!
호야가 답하자마자 강남불주먹은 아껴 두고 있던 스킬을 사용해 그를 공격했다.
영웅 대전의 온라인 예선전 참가 보상의 수준은 등수에 따라 다르다.
아직 1시간 살짝 넘은 시간만이 흐른 지금 사망을 맞이한다면 그리 좋은 보상은 받지 못한다.
처음 온라인 예선전에 참가했을 때에는 오프라인 예선까지는 반드시 나갈 작정이었지만 호야를 만난 이상 목표를 바꿔야 했다.
온라인 예선전 돌파가 아닌 오래 살아남는 것으로.
이전에는 오랜만에 돌아온 호야가 자신보다 약할지도 모른다 생각한 적이 있었지만 대련 매칭에서 이미 호야와 싸워 본 적이 있는 그는 호야와 자신의 차이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호야가 방심한 틈에 공격한 것이지만 그리 큰 효과는 없어 보였다.
아니, 얇은 얼음벽이 강남불주먹의 화염을 완전히 막아 주었기에 호야는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나중에 봐요, 강남 님."
"으아악!"
호야의 집요한 공격으로 인해 사망 판정을 받고 만 강남불주먹은 필드에서 벗어나기 직전에 호야의 어깨 너머로 새하얀 여우가 자신을 향해 코웃음을 치는 것을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