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3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7권 6화
6. 돌아온 마을사람(2)
접속 제한 시간을 모두 채운 뒤 로그아웃 한 호영은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며 살짝 굳은 몸을 풀었다.
그때 캡슐 옆의 작은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던 호영의 스마트폰의 액정이 빛을 발하며 전화벨 소리를 울렸다.
액정에 쓰여 있는 발신자의 이름을 확인한 호영은 망설임 없이 전화를 받았다.
-호야! 너 아직도 귓속말 꺼 두고 있지?
스마트폰의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 말은 영어였다.
그도 그럴 게 전화의 발신자가 뉴욕에 살고 있는 유아였으니 영어가 흘러나오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군대에 들어가기 전에 호영이 유아와 도반에게 전화번호를 알려 준 것이다.
그리고 그것과 같이 이대현과의 일도 털어놨었다.
"응, 꺼 뒀어."
-확인도 안 하고 나왔지?
"응."
-역시나. 내가 몇 번이나 말하지만 꺼 두고 있어도 로그아웃 전에는 켜서 확인하라고 말했지?
"아......, 깜빡했어. 그런데 그건 갑자기 왜?"
호영은 간단한 대화 정도의 영어 회화는 가능했기에 살짝 말을 더듬으며 유아의 말에 계속해서 답했다.
그나마 몇 번 통화를 해 본 경험이 쌓였기에 이 정도인 것이지 2년 전에 처음으로 통화했을 때에는 제대로 된 대화가 되지 않았었다.
유아도 호영이 영어에 완전히 능통하지 않다는 걸 알기에 일부러 간단한 단어들만을 사용해 대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말로 하기에는 조금 길어지니까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직접 확인해 봐. 미리 내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자면 이건 입 다물고 넘어가면 이상한 쪽으로 부풀어질 것 같다.
"그게 무슨 말이야?"
-확인해 보면 알아. 잘 해결해 보고. 나랑 도반이 도와줄 일이 있으면 말해.
유아 쪽에서 먼저 통화를 끊었다.
통화가 끊긴 뒤 유아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린 호영은 우선 그의 말대로 커뮤니티에 들어가 보았다.
그러자 페이지 상단에 위치한 베스트 게시 글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HOT!] 호야 님의 레벨 업에 관한 지극히 개인적인 의구심을 말해 본다.
[HOT!] 너네 솔직히 지금 호야의 레벨 업이 말이 된다고 보냐?
[HOT!] 이니티움 스트리머들 개인적으로 평가해 봄.
[HOT!] 현재 호야 님의 레벨 업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수치적 근거를 토대로 한 반박 글.
"......예상외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은데."
베스트 게시 글에 자신에 관한 언급이 많은 것은 그가 바라던 것이기는 했다.
하지만 호영은 제목을 보고서 그 내용이 자신이 원하던 종류의 언급들이 아니라는 것을 단번에 짐작할 수 있었다.
호영은 바로 게시 글들을 클릭하여 내용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호야 님의 레벨 업에 관한 지극히 개인적인 의구심을 말해 본다.]
일단 미리 호야 님을 무작정 비방하기 위한 글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둠.
호야 님이 요즘 하루에 최소 1 업, 많으면 3 업까지 한다는 사실은 대부분이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함.
그런데 그렇게 말도 안 되는 레벨 업을 보이고 있는데 목격 정보가 없다는 것이 과연 말이 되는 일일까?
만약에, 진짜 만약에 신규 사냥터를 발견했다고 해도 그 이야기가 하나도 새어 나오지 않는 것이 말이 된다고 봄?
⋮
[너네 솔직히 지금 호야의 레벨 업이 말이 된다고 보냐?]
나는 안 된다고 본다.
백 퍼 부정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근거는 내 감이기는 한데 일단 내 생각을 말해 볼게.
⋮
글들의 대부분이 그가 보이고 있는 레벨 업에 대해서 부정적인 방법을 사용한 것이라 주장하는 것이었다.
호영은 자신이 이전에도 몇 번 지금과 비슷한 일을 벌인 적이 있었고 그때에는 긍정적인 반응이 압도적으로 많았었기에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그때와 지금 호영에게 향하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 차이와 압도적인 레벨 업이 예전보다 길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 원인인 듯했다.
자신을 옹호해 주는 글들도 있었지만 반응은 미미했다.
유아가 한 말처럼 자신이 입을 다물고 있게 될 경우 이야기는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확률이 커 보였다.
그것은 호영이 원하는 일이 아니었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해명의 글을 올린다고 해도 그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다.
또한 사람들이 이해하고 좋은 쪽으로 받아들이게 할 때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간단하면서도 빠르고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보여 줘 지금의 반응들을 바꿀 방법이 필요했다.
* * *
커뮤니티가 호야의 이야기로 소란스러워져 있을 때 한 플레이어가 소리 소문 없이 스트리밍 채널을 열었다.
그 스트리머의 홈페이지 닉네임은 호수였다.
그리고 이니티움 홈페이지에서 그 닉네임을 사용하는 것이 호야라는 것은 2년 전부터 이니티움을 플레이 해 온 플레이어들이라면 대부분이 아는 사실이었다.
스트리밍은 채널만 열려 있을 뿐이라서 화면에는 검은색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스트리밍의 소식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로 인해 채팅 창은 금세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호야 님이 스트리밍 켜는 걸 보게 될 줄이야.
-그런데 왜 갑자기 이 시기에 스트리밍?
-척 보니 지금 상황에 대해서 뭐라고 말이라도 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그걸 어떻게 믿어?
-아 거참, 초 치지 말고 걍 닥치고 있으세요.
-골드 쪼들려서 골드 날름 하려고 킨 거 아님? ㅋㅋㅋㅋㅋㅋ
-호야 오빠ㅠㅠㅠㅠ, 이 누나가 오빠 사라졌을 때부터 엄청 기다렸어요ㅠㅠ!
-누나인데 어떻게 호야 님이 오빠가 돼......?
-호야 님 스트리밍 언제 시작하나요?? 채널만 열고 종료 튀 하면 안 됩니다ㅠㅠ!
시간이 조금 흘러 사람들이 어느 정도 모이자 새까맣던 화면에 색이 입혀지면서 화면 중앙에 머리 위에 바두를 얹고 있는 호야의 뒷모습이 비쳤다.
그는 처음 사람들에게 알려진 뒤로 한 번도 바꾼 적이 없던 크로커게일의 로브가 아닌 검은색의 레더 아머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 형태가 언뜻 보기에는 초보자의 장비처럼 보일 정도로 매우 간단해 보였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세밀한 세공들이 엿보였으며 윤기가 전혀 흐르지 않는 검은색 가죽은 자신이 평범한 물건이 아님을 넌지시 알려 주고 있었다.
그리고 화면에 비친 그가 바라보고 있는 장소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공활한 황무지가 펼쳐져 있었고 그 위로 잿빛의 하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호야 니이이이임!
-오빠아아악!
-호야 님 인사 한번 해 주셔야죠!
-호야 님 지금 어디에 계신 거예요? 네?
⋮
화면에 색이 들어오자 채팅 창에서 격한 반응을 보였지만 호야는 그것에 반응하지 않고 인사도 하지 않은 채 아무 말 없이 황무지를 달렸다.
-아무 말도 없이 갑자기 시작이야??
-선생님, 일단 인사부터 하고 시작하는 것이 모든 스트리밍의 매뉴얼 아닙니까?
-호야 님 골드 드릴 테니까 제 닉네임 한 번만 불러 주세요!
-골드를 주기는 어떻게 줘, 지금 호야 님이 설정에서 골드 선물을 막아 놓은 건지 안 보내짐.
-헐, 진짜네.
-나한테 골드가 있는데 왜 가져가지를 못하니!!
-그런데 저기 어디야?
호야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채팅 창이 무서운 기세로 올라갔지만 호야는 아예 채팅 창을 꺼 둔 것처럼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1분 정도를 달리던 호야는 황무지 한가운데에서 멈춰 섰다.
그러자 호야가 허리에 차고 있던 가방이 꾸물대더니 뚜껑이 열려 새하얗고 작은 여우가 귀를 쫑긋거리며 모습을 드러내고는 얼굴을 털었다.
그러한 새미의 모습에 여성 시청자들이 비명을 질러 대고 있었다.
-꺄아아아악! 뭐야 저 귀여운 생물은!!
-왜 나만 귀여운 거 없어ㅠㅠㅠㅠ!
-저도 없어요.......
그러한 반응을 알 리가 없는 새미는 입을 크게 벌리더니 커다란 소리를 질러 댔다.
"뀨우우우우우-!"
음파가 퍼지듯이 새미의 울음소리가 넓게 퍼져 나가자 주변의 메마른 땅들이 조금씩 꿈틀거리더니 이윽고 수십 마리의 몬스터가 튀어나왔다.
기다란 입과 으르렁거리는 입 사이로 보이는 송곳처럼 날카로운 이빨들,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이상한 무늬들이 그려져 있었다.
피부는 지렁이처럼 반들거렸으며 네 개의 발에 자라나 있는 발톱에서는 흉흉한 기운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키기기기기긱-."
"키기기기-."
방금 전 새미가 보였던 울음소리는 몬스터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어그로 스킬이었다.
그로 인해서 숨어서 기회를 엿보고 있던 몬스터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또한 계약 관계인 새미의 스킬이 적용됨에 따라 호야에게도 몬스터들의 이름과 레벨 정보가 보이고 있었다.
[오염된 밴더스내치]
레벨: 370
[오염된 밴더스내치]
레벨: 373
⋮
시청자들은 처음에는 이빨을 드러내며 이상한 울음소리를 내는 수십 마리의 몬스터들의 흉흉한 광경에 놀랐다.
그리고 뒤를 이어서 보인 몬스터의 정보에 한 번 더 놀랐다.
호야가 스트리밍의 설정을 조작하여 몬스터의 이름은 물음표로 가려져 있었지만 레벨만큼은 똑똑히 보이고 있었다.
지금 보스 몬스터들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레벨의 몬스터로 알려진 어둑시니보다 10가량이 높은 레벨이었다.
호야가 새로운 사냥터를 발견했다는 추측이 기정사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사냥터의 위치를 물어보는 말들로 채팅 창이 도배되었지만 호야는 채팅 창이 보이지 않도록 설정을 해 놓은 것인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묵묵히 사냥을 해 나갔다.
그리고 호야가 계속해서 사냥을 이어 갈수록 채팅 창은 조금씩 조용해져 갔다.
-와.......
-저게 사람이냐.
-저러니까 레벨 업이 빠를 수밖에 없지.......
-오빠ㅠㅠ!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ㅠㅠ!
-꼭 매크로 돌리는 것 같다.......
-가상 현실 게임인데 매크로가 있겠냐?
호야는 쉼 없이 무기를 휘두르고 스킬을 사용해 몬스터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그의 검이 몬스터에 박혀 있지 않을 때가 없었다.
파티를 짜서 상대해야 할 몬스터의 무리를 몇 시간 동안 혼자서 사냥하고 있었다.
아니, 파티를 짜서 사냥할 때보다 더 많은 수의 몬스터를 쉼 없이 잡고 있었다.
여러 명이 나눠 가질 경험치를 혼자 독식하고 그 속도도 레벨이 낮은 적정 레벨이 아닌 몬스터를 잡는 것보다 빨랐으니 레벨이 오르지 않으면 이상한 상황이었다.
또한 호야의 사냥 속도는 새미의 어그로 스킬로 인해 알아서 몰려오는 몬스터들의 덕이 컸기에 다른 파티가 지금 호야가 잡는 몬스터들을 상대한다고 해도 같은 속도가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연발해서 쓸 수 있는 어그로 스킬이 흔한 것은 아니니까.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호야의 강함이었다.
-호야 님 지금 애서가보다 강한 것 같은데......?
-아 씨......, 부정을 못 하겠네.
-2년의 공백이 있다는 게 말이 돼? 2년 전에 접기 전에도 지금과 비슷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는 게 되잖아.
-생각해 보면 호야가 어느 정도로 강하다! 라고 하는 이야기는 못 들어 본 듯. 추측들만 있었지.
2년이라는 공백이 무색하게도 호야의 강함은 특출했다.
그리고 지금 호야가 보이는 강함이 상급 스킬들과 미호의 존재라는 힘을 숨긴 채라는 것을 시청자들이 안다면 아마 기겁을 할 것이다.
호야가 접속한 직후부터 켰던 스트리밍은 중간에 호야가 밥을 먹기 위해 로그아웃 했던 20분을 제외하고서 접속 제한 시간이 다 될 때까지 계속해서 이어진 끝에야 종료되었다.
그리고 그 뒤로 호야의 말도 없이 사냥만 하는 이상한 스트리밍이 다시 켜지는 일은 없었다.
사람들은 그 사실에 아쉬워했지만 동시에 납득도 했다.
호야가 자신에게 보내지는 의혹을 부정하기 위해 스트리밍을 켰다는 것은 스트리밍을 시청했던 자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 의혹을 부정하는 것에 완벽하게 성공했으니 다시 켤 일이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