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7권 4화
4. 충성!(2)
드디어 정식으로 발표된 영웅 대전 예선 참가자 명단에는 호야의 이름이 없었다.
참가 신청 마감 전날까지 대련 매칭에서의 목격 정보가 없었기에 어느 정도 예상된 상황이었지만 막상 그 사실이 눈앞에 다가오자 호야에 관한 관심이 크게 불타올랐다.
-유아 님이랑 도반 님도 참가했는데 왜 호야 님은 안 참가?
-셋이서 싸웠나?
-사실 엄청나게 중요한 퀘스트 수행 중이라서 참가 못 하는 거.
-나는 도반이랑 애서가가 영웅 대전에 정신 뺏긴 사이에 랭킹 1위 노리려고 참가 안 한다고 들었음.
-응, 너네 둘 다 아니야.
-위에 말들 다 구라다. 믿는 사람 없지?
-그냥 영웅 대전 참가하기 싫은 거겠죠. 왜 이렇게 소설들을 쓰시나.
-하......, 호야 오빠 참가하는 거 엄청 기다렸는데....... 온라인 예선만 통과하시면 오프라인 예선 때 호야 오빠의 실물을 영접할 수 있었을 텐데ㅠㅠ!
전투 계열의 직업이 아닌 보조 계열이나 제작 계열의 직업을 가진 랭커들은 참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호야는 확실한 전투 계열의 직업이었다.
그리고 예선 참가만 해도 보상이 주어지기에 전투 계열 직업의 랭커들 거의 모두가 히어로에 발을 들여 참가 신청을 마친 상태였다.
그렇기에 호야의 불참에 관한 여러 의문과 소문들이 생겨나고 있었지만 그중 정답은 없었다.
그 뒤로 시간이 흘러서 영웅 대전은 무사히 진행되었고 이미 끝난 일이기에 호야의 불참에 관한 이야기가 수그러들었을 때쯤 호야에 관한 이야기에 다시 한 번 불이 붙었다.
-님들 호야 님 몇 달째 레벨 업 1도 안 하는데 어떻게 된 건지 알아?
-요 몇 달 동안 호야 머리카락이라도 봤다는 이야기도 없음.
-접은 거 아니야?
-랭커들이 버는 돈이 얼만데 그 최상권이 게임을 접겠냐? 생각 좀 하고 말해라.
-돈 다 벌었다고 생각하면 접을 수도 있겠지. ㄹㅇ로 그런 거면 좀 실망이다, 진짜.
-뭔가 큰 사고라도 당한 거 아닐까? 호야 님 다치면 안 되는데ㅠㅠ
-죽은 거 아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마세요;; 호야 님 펫은 간간히 보이고 있으니까 접은 건 아니겠죠;;
계속해서 상승세를 보이던 호야의 랭킹이 3위에서 멈춰 섰고 이 몇 달간 단 하나의 레벨도 오르지 않고 있었다.
그로 인해서 레벨 업을 통해 상승 중인 랭커들에게 랭킹도 밀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랭킹이 떨어져 본 적이 없는 호야였기에 그에 대해서 별의별 말이 다 나오고 있었지만 정작 본인은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군대에 있던 호영도 싸지방과 새로 들어온 신병들을 통해서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접해 알고 있었지만 굳이 반박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에 상황을 가만히 두고 있었다.
호영이 휴가를 통해 부대를 나왔을 때에도 휴가 대부분을 가족들과 보냈고 게임에 접속해도 주로 오르도에서만 시간을 보내었기에 목격 정보가 없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가 휴가 때 접속을 하고 있는 것을 아는 것도 친구 목록에 있는 사람들뿐이었고 그들은 단 한 명을 제외하고 그가 군대에 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굳이 말하고 다니지는 않았다.
그가 군대에 갔다는 사실을 모르는 단 한 명인 이수아는 궁금해서 미칠 노릇이었지만 말이다.
* * *
"선 병장님, 지금까지 수고하셨습니다. 제가 제대하면 사회에서 술이나 한잔 사 주시죠."
"그래, 정수 너도 남은 군 생활 잘 보내라."
"군 생활을 어떻게 잘 보냅니까, 그냥 보내는 거지."
21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 제대를 한 호영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부대를 나왔다.
군대에서 생활하던 동안 말로만 들어 봤던 어이없는 일들을 직접 경험하기도 했지만 한두 명을 제외하면 부대의 사람들은 딱히 모난 곳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에 무사히 군 생활을 마칠 수 있었다.
부대를 완전히 빠져나오자 백호민이 팔을 크게 흔들며 호영을 맞이해 주었다.
"형님! 제대 축하드려요!"
"그래, 고맙다. 그런데 마중 와 준 거는 고마운데 대학생이 이 시간에 여기에 와 있어도 괜찮은 거야?"
"오늘 공강이에요. 그리고 삼촌이랑 작은엄마 두 분 다 못 오시니 저라도 와야죠."
호영이 제대하는 날 꼭 마중을 오겠다고 말해 오던 이예숙과 백재건이었지만 갑작스레 일이 바빠져 둘 다 도저히 월차를 낼 수가 없어 결국 오지 못했다.
그래서 그 둘을 대신하여 수업이 없던 백호민이 호영을 마중 나온 것이다.
백호민이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하고는 입을 열었다.
"빨리 올라가면 점심은 서울에서 먹을 수 있을 것 같네요. 얼른 돌아가죠."
"그래."
백호민의 말에 호영은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 역이 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려 했다.
하지만 그런 호영의 발걸음을 백호민이 멈춰 세웠다.
"아, 형님. 그쪽이 아니에요."
"응? 지하철역은 이쪽이잖아?"
"저 차 끌고 왔는데요?"
백호민의 말에 호영이 몸을 흠칫 떨었다.
이전 휴가 때 멋모르고 백호민의 차에 탔다가 겪은 아찔한 경험들이 떠오른 것이다.
"진짜?"
"네, 진짜."
"......그냥 지하철 타면 안 될까?"
"형님이 무슨 걱정을 하시는 건지 잘 압니다. 하지만 저는 더 이상 초보 운전이 아니라고요! 요 한 달 동안 사고 한 번 안 냈어요!"
백호민이 당당하게 가슴을 펴며 하는 말에 호영은 속으로 크게 고민했다.
자신을 위해서라도 타기 싫었지만 성의를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 차 타러 가자."
다행스럽게도 호영은 무사히 서울로 올라올 수 있었다.
* * *
"와옹!"
"우왁! 잠깐......!"
제대한 첫날을 가족들과 보낸 호영은 다음 날에서야 이니티움에 접속했다.
그러자 오르도에서 호야를 기다리고 있던 바두가 꼬리를 흔들며 달려들어 호야를 쓰러트린 후 그의 얼굴을 핥아 댔다.
항상 매일 같이 있다가 거의 2년 동안 몇 달에 한 번꼴로밖에 보지 않았기에 호야에 대한 애착이 강해진 것이다.
그동안 미호하고 새미와 함께 즐거운 일들도 많았지만 역시 주인인 호야의 품이 가장 좋았다.
"잠......, 바두야, 이제 어디 안 갈 테니까 진정해."
"헥, 헥."
"크흐흑, 마두도 네가 그리웠기에 그러는 것이다. 보기에도 좋으니 당분간만 그렇게 있어 주거라."
"뀨우! 뀨!"
그리고 그러한 모습을 보며 미호가 웃음을 흘려 보였다.
바두를 말려 줄 생각은 없는 듯했다.
결국 바두가 얌전해진 것은 10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 10분 사이에 호야의 제대를 축하하는 귓속말들이 쏟아져 있었다.
"......이제 다 풀렸어?"
"왕!"
호야의 머리 위에 자리 잡은 바두는 만족했다는 듯이 앞발로 호야의 머리를 톡톡 두들겼다.
그런 바두를 한번 쓰다듬어 준 호야는 자리에서 일어나 인벤토리에서 얇은 책 한 권을 꺼내어 펼쳤다.
지난 휴가 때 치빈의 도움을 받아서 이날을 위해 미리 만들어 놓은, 호야만이 달릴 수 있는 레벨 업 루트와 사냥터, 던전의 위치에 대한 설명이 적힌 안내 책이었다.
그 모습을 본 미호가 입을 열었다.
"바로 움직일 것이냐?"
"그래야지, 목표가 있으니까."
그의 목표는 세 달 후에 있을 제3차 영웅 대전의 예선 개최 전에 랭킹 1위를 달성하고 대련장 히어로 등급을 다는 것이었다.
현재 랭킹에 이름을 올린 자들의 레벨은 모두 300대, 호야가 군대를 갔던 사이에 랭킹 1위를 탈환한 애서가의 레벨은 381이었다.
지난 21개월 동안 플레이어들이 발견한 몬스터들 중 가장 높은 레벨을 보유한 것은 레벨 363의 동대륙의 어둑시니다.
그로 인해서 현재 최상위권의 랭커들 대부분이 어둑시니 혹은 그다음으로 강한 몬스터를 잡기 위해, 혹은 어둑시니보다 높은 레벨의 몬스터를 찾기 위해 동대륙에 몰려 있었다.
그렇지 않은 자들은 서대륙을 개척하며 몬스터를 찾고 있는 중이다.
랭커들의 레벨에 비해 몬스터의 레벨이 낮고 몬스터의 수에 비해서 많은 수의 랭커들이 제한된 수의 몬스터를 잡기 위해 몰려 있는 상태였기에 현재 랭커들의 레벨 업은 매우 더뎠다.
그렇기에 미세한 경험치 차이로 인해서 랭킹이 뒤바뀌고 있었고 레벨을 하나라도 올리면 랭킹 상승 폭이 큰 상황이다.
호야가 치빈의 도움을 받아 만든 안내 책을 따라 바두와 미호의 도움을 받아 쉬지 않고 움직인다면 21개월의 공백을 메꾸는 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옛것이 되어 버린 장비들도 새로 맞춰야 했다.
단탈스가 추천한 재료들의 입수는 치빈의 루트를 따라 움직이면 가능하기에 크게 걱정은 없었다.
"바로 마계로 넘어가자. 잘 부탁할게."
"나만 믿어라."
"와옹!"
"뀨, 뀨뀨!"
* * *
호영에게 랭킹 1위 달성이라는 목표가 생기게 된 것은 2차 정기 휴가 때 백재건과 마셨던 술이 원인이었다.
성인이 되어서 한 번도 술을 마셔 본 적이 없다는 호영의 말을 들은 백재건이 호영에게 첫술은 집안 어른들과 먹어야지 이상한 술버릇이 들지 않는다며 호영을 술집으로 데리고 간 것이다.
백재건이 호영을 데리고 간 술집은 유명인들도 많이 찾는 곳이었기에 모두 개인실로 분리가 되어 있었다.
술집에 도착하자마자 백재건은 가볍게 맥주와 안주를 시켰고 처음으로 맥주를 마셔 본 호영은 겨우 두 잔 만에 취해 버리고 말았다.
"흐윽, 흑."
"호영아......?"
호영의 술버릇은 눈물이었다.
호영은 술에 취하자 잔을 두 손으로 꼬옥 쥐고는 닭똥 같은 눈물을 연신 흘려 댔다.
"흐윽. ......아빠, 저 요즘 너무 화가 나고 억울해서 미칠 것 같아요."
"응?"
술에 취한 호영은 술기운에 백재건에게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았다.
영웅 대전이 두 번이나 치러지는 동안 나라별 개인전 예선에서 우승을 차지하여 개인전 한국 대표의 자리를 차지한 것은 두 번 다 에리먼, 이대현이었다.
그 두 번 모두 본선에서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준결승과 결승까지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기에 그는 한국 최고의 플레이어임과 동시에 세계에서 인정받는 플레이어가 되어 있었다.
한국 플레이어들은 아주 죽을 쑤고 있는 단체전 대표들에 비하여 높은 성적을 올리는 그에게 열광하고 영웅으로 추대했으며 다음번에는 반드시 우승할 것이라 믿고 큰 관심과 호감을 보내고 있었다.
가해자인 그가 그런 식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이 호영은 탐탁지 않았다.
이대현은 그렇게 받들어질 종류의 인간이 아니었으니까.
"지금은 괜찮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거가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에요....... 그러니까, 크흡, 그러니까 걔는 벌을 받아야 해요.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요......."
호영은 과거의 흔적을 많이 벗어던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슴속에 응어리진 감정이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이대현에게 복수하고 싶다.
그가 대가를 치르게 해 주고 싶다는 생각은 여전히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존재해 있었다.
그것이 술기운에 밖으로 튀어나온 것이다.
"......."
백재건은 호영의 고백에 속으로 고민을 하였다.
학교 폭력의 경우 시효가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는 경우에는 가해자가 발뺌할 수 있으며 오히려 가해자 측에서 무고로 피해자를 신고할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현재 백재건의 손에는 확실한 증거가 존재했다.
그렇지만 그것이 불법적인 증거라는 문제가 있다.
만약 백재건이 가진 증거가 정식적으로 증거로 인정이 된다고 해도 그 일이 기사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기사화가 된다고 해도 찌라시 취급당할 확률이 크겠지.'
현재 이대현에 관한 사람들의 인식은 매우 좋은 편에 속했다.
그렇기에 호영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신고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이대현의 겉모습에 조금씩 흠집을 내어 그 흠집을 서서히 벌려 갈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호영에게 흠집이 나거나 오물이 묻는 일은 없어야 한다.
"......호영아, 만약 네 상처를 들쑤시는 일이 되어도 복수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어떻게 할래?"
"흐윽......, 네에?"
그러기 위해서는 밑 준비와 시나리오가 필요했다.
랭킹 1위 달성과 영웅 대전 예선 참가를 위한 히어로 등급 달성은 진짜 목적을 위한 밑 준비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