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0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7권 3화
3. 충성!(1)
띠리리리리리-.
"아오! 전화 소리 좀 안 나게 해 봐라 진짜!"
네오워즈 본사 유저 관리 팀 팀장실에서 팀장인 이석훈이 자신의 책상을 강하게 내리치며 크게 소리쳤다.
이놈의 유리 벽은 공간만 나눌 뿐 방음 처리가 전혀 안 되어 있어 바깥에서 쉴 틈 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들이 그대로 안에 파고들고 있었다.
전화벨 소리가 쉴 틈 없이 울리고 있는 것은 그의 책상에 놓여 있는 전화도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후우......, 네, 안녕하세요, 고객님. 네오워즈의 이석훈입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저기 있잖아요. 예선전 정말 히어로 아니면 참가 못 하나요? 참가 보상을 주면서 참가 조건이 그렇게 빡세면 저희 95%의 유저는 그냥 손가락이나 빨고 있으란 거예요? 이거 형평성에 문제가 있지 않아요?
"예에, 고객님. 영웅 대전 예선 참가 조건이 히어로 등급인 것은 원활한 진행을 위해 불가피하게 정해진 사항입니다. 또한 예선에 참가하지 못하는 다른 플레이어들을 위한 이벤트도 따로 진행 중이며 참가하지 못해도 소속 국가 선수의 실적에 따라 보상을 받으실 수 있으니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를 참조해 주세요. 지금까지 네오워즈의 이석훈이었습니다."
탁!
수화기를 강하게 내려놓은 이석훈은 솟아오르는 짜증에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왜 팀장인 나까지 고객 상담을 해야 하는 건데, 젠장!"
"그거야 팀장님이 유저 관리 팀이니까요....... 고객 상담 팀에서 대응을 다 못 하니 우리 팀으로 일부 전화 회선이 넘어왔잖아요. 보너스도 챙겨 준다는데 뭐가 그렇게 불만이세요?"
"그걸 누가 몰라서 물어!"
이석훈은 보고서를 들고 팀장실에 들어온 사원의 말에 소리를 내지르고는 이내 고개를 휘저어 정신을 차렸다.
"하아......, 소리쳐서 미안하다. 문의 내용은 죄다 같은 것뿐이고 했던 대답을 다시 하려니까 답답해서 그래. 고객 상담 팀은 도대체 이걸 어떻게 버티는 거냐."
이석훈이 사원에게 하소연을 하는 와중에도 그의 책상에 올려진 전화가 울리고 있었다.
영웅 대전에 대한 정식 공지가 나간 지도 벌써 열흘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영웅 대전에 관한 문의가 끊이지를 않아 사원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는 상태였다.
문의량이 너무 많아 고객 상담 팀이 모두 감당할 수가 없어 여러 팀에 보너스를 미끼로 고객 대응 매뉴얼과 회선이 나눠진 상태였다.
고객, 즉 유저들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유저 관리 팀은 당연히 그 매뉴얼을 받았고 회선이 나눠진 뒤로 전화벨 소리가 시끄럽게 울리고 있었다.
"그래도 조금만 있으면 점심시간이잖아요. 힘내세요."
"그래. 너도 여기서 은근히 땡땡이치지 말고 보고서 넘기고 자리로 돌아가서 전화나 받아라."
"아하하하하......, 들켰나요?"
"그래, 인마!"
사원을 돌려보낸 이석훈은 그 뒤로 일곱 통의 전화를 더 받은 뒤에야 점심을 먹으러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사원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고 미소 짓는 이가 있었으니 그 사람의 정체는 네오워즈의 회장인 이태성이었다.
그는 회사의 상황을 보고가 아닌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돌아다니면 사원들이 괜히 긴장할 것을 알기에 보안실에 내려와 보안용 CCTV를 통해 몰래 확인을 하고 있었다.
그 결과는 대만족, 하지만 예상보다 너무 큰 만족이었기에 사원들의 건강을 고려해 나중에 호텔의 고급 장어 도시락이나 돌리자고 속으로 생각했다.
-아버님, 기분이 좋아 보이시네요.
"응? 티가 나?"
-네.
싱글벙글하게 웃으며 회장실에 돌아온 이태성은 스피커를 통해 나온 이브의 목소리에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어 보였다.
"맞아, 지금 기분이 매우 좋지. 영웅 대전의 반응이 이리 크다는 것은 그만큼 이니티움이 큰 호응을 받고 있다는 소리이니까 말이야. 게다가 곧 그를 공식적인 자리에서 당당하게 만날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상대방이 영웅 대전에 참가해야 한다는 전제가 걸려 있지만 말이다.
예선에서 떨어질 자는 아니니 예선만 통과한다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태성은 그가 영웅 대전에 참가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는 그리 생각하며 책상 한편에 올려진 작은 액자를 바라보았다.
그 액자에는 이태성의 사진이 끼워져 있었는데 지금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것을 보아하니 최소 20여 년도 전에 찍은 사진 같았다.
그 사진에는 이태성뿐만이 아닌 다른 남자도 같이 찍혀 있었다.
이태성과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그 남자는 이태성과 함께 이브의 초기 모델이 띄워져 있는 노트북을 들고서 이를 보이며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지?'
이태성은 사진에 찍힌 남자가 호영의 참가를 원할 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 * *
이니티움 최초 오프라인 행사인 영웅 대전은 모든 플레이어들의 주목을 받았으며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영웅 대전을 주제로 한 이야기는 끊이지를 않고 있었다.
플레이어들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어느 플레이어들이 예선전에 참가하며 어느 플레이어들이 온라인과 오프라인 예선을 뚫고 본선에 진출하느냐였다.
-일단 히어로들은 다 예선 참가하겠지? 참가 보상도 주니까 말이야.
-참가 안 하면 멍청한 거지.
-근데 만약 예선 신청하고 나서 등급 마스터로 떨어지면 어떻게 돼요? 히어로는 이틀에 한 번 이상 매칭 안 하면 바로 등급 박탈이잖아요. 히어로 끄트머리들은 똥줄이 타들어 가고 있을 텐데.
-참가 신청 자동 취소임. 접수 기간 동안 마스터로 강등됐다가 접수 기간 끝나고서 다시 히어로로 올라서도 신청 불가.
-어차피 예선 탈락할 히어로 끄트머리들이 어떻게 되든지 나는 관심 없고. 것보다 누구누구가 본선 올라갈 것 같음?
-애서가는 반드시 올라갈걸. 랭킹 2위로 떨어졌어도 실력은 어디 안 가니까.
-그렇게 따지자면 도반 님이 먼저지!
-나는 호야 님 한 표!
⋮
유명한 랭커들의 이름이란 이름은 다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유명하다고 해서 예선전에 모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야, 너네들이 말한 사람들 중에는 무등급도 있어. 히어로가 아니라고.
이니티움의 대련장에는 브론즈, 실버, 골드, 플래티넘, 다이아, 마스터, 히어로의 총 일곱 개의 등급이 존재한다.
그리고 우스갯소리로 대련 매칭을 한 번도 이용하지 않아 등급이 없는 사람들을 무등급이라 불렀다.
-그래도 배치 고사 잘 보고 연승하면 접수 마감 전에 히어로 달성할 수 있는 실력들이잖아. 실제로 애서가는 양민 학살하고 있다던데.
-무등급이던 랭커들 대부분이 대련장에 뛰어들어서 지금 히어로 지각 변동 장난 아님. 내가 아는 누나도 바로 마스터로 강등됐다더라.
-그래도 지원계 랭커는 힘들겠지.
그리고 현재 무등급 랭커들이 평소에 이용하지 않던 대련 매칭 시스템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사람을 상대하는 것과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은 확실히 달랐지만 PK의 경험이 많거나 적응력이 뛰어난 이들은 빠른 속도로 히어로의 자리를 노리며 올라오고 있었다.
하지만 대련 매칭을 통한 목격 정보가 나오지 않고 있는 무등급의 랭커들도 몇 있었는데 호야도 그중 한 명이었다.
사람들은 호야의 영웅 대전 참가 여부에 큰 관심을 보였고 알고 싶어 했지만 그가 현재 있는 곳은 동대륙이다.
기자들이 궁금하다고 해서 다가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또한 동대륙에서 퀘스트를 수행 중인 플레이어들의 말에 따르면 그는 다른 플레이어들과 따로 떨어져 행동하고 있는 상태였기에 동대륙에 있는 플레이어들에게 부탁할 수도 없었다.
그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호야의 친구 목록에 이름을 올려 그와 귓속말이 가능한 사람들뿐이었다.
그리고 언론 관계자 중 유일하게 호야와 친구 추가가 되어 있는 이수아는 기자들에게 시달려야 했다.
이수아가 호야와 친구 상태라는 것이 슬쩍 새어 나가 그 사실을 소수의 기자들이 입수한 것이다.
"아니, 수아 양. 서로 공유 좀 하고 삽시다. 저 이대로 돌아가면 데스크한테 제대로 까인단 말이에요!"
"솔직히 귓속말로 은근슬쩍 물어봤었죠? 호야 씨가 뭐라고 해요? 예선 참가한대요? 앞으로의 포부는?"
"나도 몰라요!"
출입 카드가 없어 방송국 게이트를 지나지 못하는 이들은 이수아의 출퇴근길을 노려서 그녀에게 끈질기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이수아는 그러한 이들에게 진절머리가 난 상태였다.
스트레스를 받은 것인지 아침에 머리를 빗었을 때 빠진 머리카락의 양이 장난 아니었다.
"수아 씨, 솔직히 모른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공유 좀 해요, 진짜. 수아 양 그렇게 안 봤는데 정이 없네."
"아 진짜 안 물어봐서 모른다고요! 그리고 우리가 언제 봤다고 그렇게 안 봤다는 소리를 해요? 게다가 저도 작가예요, 방송 작가! 만약 진짜 알고 있다고 해도 그런 정보를 넘겨줄 것 같아요?"
"수아 씨네 프로는 토크 쇼잖아. 본인이 출연 안 하면 어차피 못 써먹는 거니까 공유 좀 해 달라는 거지."
"글쎄 모른다고요!"
이수아는 기자를 피해 출입 카드를 사용해 방송국 안으로 대피했다.
도대체 어디서 이야기가 새어 나간 것인지 골치가 아파 왔다.
'......그런데 진짜 어쩌시려는 걸까?'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수아 자신도 호야의 예선 참가 여부에 대한 궁금증을 키우고 있었다.
귓속말을 통해 물어볼 수는 있겠지만 만약 그 질문을 원인으로 호야가 불편함을 느껴 친구 관계를 끊기라도 했다가는 큰일이었다.
"살짝 운이라도 띄워 볼까?"
이수아가 속으로 고민하고 있을 때 그녀의 고민을 행동으로 옮긴 이가 있었다.
* * *
[유아: 호야, 너는 영웅 대전 어떻게 할 거야? 나랑 도반은 이미 히어로 찍고 예선 신청해 놨는데.]
유아의 귓속말을 받은 호야는 어떻게 답해야 할지 속으로 고민하다가 이내 숨김없이 모든 것을 말하자고 결정했다.
어차피 먼저 말을 해 놔야 하는 일이었다.
[호야: 나는 참가 못 해.]
[유아: 응? 왜? 혹시 등급 때문에 그래? 등급이라면 금방 올릴 수 있지 않아?]
[호야: 아니, 그게 아니라.......]
호야가 부정의 말 뒤에 이유를 설명하자 유아의 귓속말이 잠시 끊겼다.
이전부터 정해져 있는 일이었기에 지금에 와서 바꿀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잠시 후 다시 이어진 유아의 귓속말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유아: 어......, 그...... 잘 다녀와라.]
* * *
며칠 뒤 충청남도 논산시, 그곳에서 이예숙이 호영을 강하게 끌어안은 채 눈물을 훌쩍이고 있었다.
"흐윽,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아, 엄마. 주변 사람들이 다 한 번씩 우리 쳐다보고 가는데......."
이예숙의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기에 힘으로 그녀를 떨쳐 낼 수 없었던 호영은 이예숙이 진정할 수 있도록 그녀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휘이이잉-.
그때 갑자기 바람이 강하게 불어 호영이 쓰고 있던 모자가 날아가 그의 짧게 깎인 머리가 드러났다.
모자를 주우러 갈 수 없던 호영을 대신해 백재건이 모자를 주워 왔고 호영의 머리에 다시 모자를 씌워 주었다.
"예숙 씨, 슬슬 마음 추슬러야죠.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면제가 아니면 다 한 번씩은 가야 되는 곳이에요."
"그치만......, 아들은 공익으로도 갈 수 있었잖아......."
이예숙의 말에 호영은 머쓱하게 자신의 볼을 긁적였다.
셋이 지금 있는 곳은 충청남도 논산, 호영의 뒤로 '호국 요람'이라고 적힌 입구가 보였다.
그들이 지금 있는 곳은 논산 육군 훈련소의 앞이었다.
호영은 오늘 훈련소에 입대한다.
"건강하게 다녀올게요,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