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는 마을사람-148화 (148/171)

# 148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7권 1화

1. 재회(2)

"무슨......."

권현우는 지금 자신의 눈에 비치고 있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자신과 아주 닮았지만 자신보다 젊은 청년, 그를 보자 머릿속에 희미하게 남아 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조금씩 선명해졌다.

수십 년 전 기억 속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은 모습인 것이 의아했지만 지금은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혀......, 혀, 혀, 형님......?"

권현우가 머릿속에 싹튼 혹시나 하는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자 컨서누는 작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권현우의 옆에서 같이 상황을 보고 있던 조제연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으려 하는 몸을 겨우 지탱하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남자가 진짜가 아닐 가능성도 존재했다.

호야가 자신들을 속이려고 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본능은 눈앞에 있는 남자가 과거에 헤어졌던 그라고 말해 오고 있었다.

그때 컨서누가 조제연을 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제가 일곱 살 때 궁녀가 깬 항아리를 제가 깬 것으로 해 사실을 숨기었다가 조 장군에게 들킨 일이 있었어요. 다행히 조 장군은 아바마마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아 주었고요."

그다음에는 권현우를 보았다.

"어릴 적부터 조신했던 아우님께서는 네 살 때 바지에 실례를 하고는 펑펑 운 적이 있었죠."

"내, 내가 언제......!"

권현우는 큰 목소리로 부정했지만 그것은 권현우가 선명하게 기억하는 어릴 적의 추억이었다.

자신과 아무 말 없이 웃으며 정리를 도와주었던 둘째 형님만이 알고 있는 일이었다.

눈앞에 있는 남자는 진짜가 맞았다.

컨서누가 말한 서로만이 아는 추억으로 인해서 권현우와 조제연에게 작게 남아 있던 경계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것을 느낀 호야는 셋이서 대화를 할 수 있도록 조용히 그곳을 빠져나와 문에 등을 기대었다.

그러자 호야에게 퀘스트의 완료를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가 발생되었다.

[퀘스트 '그리운 과거와의 재회'를 클리어 하였습니다.]

[경험치가 상승합니다.]

[권현우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권현우의 호감도가 일정 수치에 달하여 스탯 '친화력'이 1 상승합니다.]

[조제연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조제연의 호감도가 일정 수치에 달하여 스탯 '친화력'이 1 상승합니다.]

[컨서누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스킬 '초급 컨서누파 무투술'의 숙련도가 5% 상승합니다.]

* * *

그러한 일이 있은 후에 컨서누는 호야에게 조금이라도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에 서대륙에 돌아가지 않고 동대륙에 남아 그의 일을 돕고 있었다.

컨서누가 서대륙에서 하던 일과 호야의 퀘스트 내용은 사람들을 돕는다는 면에서 그리 큰 차이가 없었기에 컨서누는 일을 무리 없이 해 나가고 있었다.

"거기 모험가 씨! 손이 비어 있으면 이거 나르는 것 좀 도와줘!"

"아, 네! 컨서누 그럼 저는 가 볼게요."

"네, 저는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아요."

컨서누와 대화를 나누던 호야는 이슬촌 주민의 부름에 그곳으로 달려갔고 호야의 뒤를 대형견 정도의 크기를 유지한 바두와 인간의 모습을 한 미호가 따라왔다.

새미는 컨서누의 머리 위가 마음에 든 것인지 줄곧 그 위에 엎드린 채였다.

호야와 계약 관계이기는 하나 아직 어리니 어쩔 수 없다.

바두와 미호의 손을 빌려서 마을의 일을 돕기를 한참 호야의 눈에 익숙한 인물이 들어왔다.

그 인물을 발견한 호야는 바로 그자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저 기억하세요?"

"그래, 기억하고 있지. 옷들은 도움이 좀 되었나?"

"물론이죠."

이전에 호야와 로열 나이츠에게 옷을 주었던 할아버지였다.

호야의 말에 할아버지는 입가를 다 가릴 정도로 풍성하게 자라 있는 수염을 손으로 훑으며 웃음을 흘렸다.

"껄껄껄껄, 그거참 다행이구나."

"그때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때 성함을 듣지 못했었는데 혹시 지금 성함을 알려 주실 수 있나요?"

"일권일세. 그냥 일권 할아범이라 불러. 마을 사람들도 다 그렇게 부르니까."

"그럼 일권 할아버지라고 부를게요. 다시 한 번 정말 그때는 감사했습니다."

호야가 다시 감사를 보이자 일권이 손사래를 쳤다.

"그렇게까지 감사받을 일은 아닐세. 아. 아니다. 역시 감사받을 일이 맞지, 암. 그러니까 그 보답으로 나 좀 도와주게나."

"네? 네."

금방 바뀐 일권의 태도에 호야는 의아함을 보이면서도 그의 뒤를 따라갔고 그를 따라 도착한 장소에는 마을과 비슷한 크기의 밭이 일구어져 있었다.

밭에 도착한 일권이 어딘가로 모습을 감추더니 나무통을 여러 개 들고 와 하나를 호야에게 건네었다.

"저 숲을 5분 정도 걸어가면 얕은 강이 하나 있다네. 그곳에서 물을 길어 와 주지 않겠나?"

"물 말인가요?"

"그래, 물. 밭에 물을 다 주려면 꽤나 많은 양이 필요하니 조금 여러 번 왔다 갔다 해야 될 거야. 원래는 마을 젊은이들이 날라 줬는데 지금은 다른 일로 바쁘니 원."

"그런 일이라면 당연히 도와 드려야죠."

나무통이 인벤토리에 들어갈 수 있다면 일이 좀 더 쉬웠겠지만 살짝 확인해 본 결과 예상대로 나무통은 인벤토리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도 나무통을 미호와 자신이 양손에 하나씩, 바두의 입에 하나를 물리면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호야가 움직이려고 할 때 미호가 호야에게서 받았던 나무통을 바닥에 내려놓으면서 낮은 웃음을 흘렸다.

"후후후후후......, 이러한 것은 필요 없다. 드디어 도움이라 할 만한 도움을 줄 수 있겠구나. 뭐, 이 정도로는 영 성에 차지 않지만 말이다."

"미호?"

"보고 있으면 알 것이다."

그리 당당하게 선언한 미호가 오른손을 살짝 쥐었다 펴자 그녀의 손 위에 회색의 솜사탕 같은 것이 생겨났고 미호가 그것을 하늘로 살짝 던지자 회색 솜사탕이 하늘 위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그 직후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임에도 불구하고 머리 위로 물방울들이 하나씩 떨어져 내렸고 그것은 곧 굵은 장대비가 되어 이슬촌 전체를 뒤덮었다.

그 광경에 미호는 양손으로 허리를 짚으며 당당하게 가슴을 폈다.

"후후후, 호야, 나의 힘이 어떠하냐. 이걸로 일을 단숨에 끝냈다!"

"......."

"호야?"

호야에게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미호는 뒤를 돌아서 호야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온몸이 홀딱 젖은 채 난처하게 웃으며 볼을 긁적이는 호야와 몸을 작게 만들어 잽싸게 호야의 다리 사이로 비를 피한 바두가 보였다.

일권은 그 옆에서 수염의 물을 짜고 있었고 셋의 뒤 건물 너머로 마을을 보수하는 데에 사용하는 재료들이 젖어 못 쓰게 될까 봐 허겁지겁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보였다.

"갑자기 웬 비야!"

"구름 한 점도 안 떴다고, 젠장!"

"주민분! 그거는 여기에 모아 둘게요!"

"덮어 두게 천막 가져와! 빨리 움직여!"

그 모습을 보자 당당했던 미호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어......, 그것이......, 그러니까....... 미안하구나, 내가 생각이 짧았다."

"아하하하, 뭐, 이미 저지른 건 어쩔 수 없다 치고, 이거 멈춰 줄 수 없을까? 밭에 물도 다 준 것 같은데."

"......앞으로 10분은 더 내릴 게다."

미호의 말대로 맑은 하늘에서 내리던 비는 10분이 지난 뒤에야 모습을 감추었다.

하지만 10분 동안 내린 장대비로 인해서 흙바닥이 질척해져 더 이상 일을 진행할 수 없게 되어 오늘의 일이 끝나 버렸다.

그 사실을 전해 들은 미호가 은연중에 죄책감을 흘리자 일권이 젖은 상의를 벗으며 그녀를 달래었다.

"그렇게 신경 쓰지 말게나. 어차피 앞으로 당분간은 삶이 바빠질 테니 오늘 하루 쉰다고 생각하면 될 일일세, 껄껄껄."

일권이 옷의 물기를 짜내며 그리 말했지만 미호의 표정은 아직 석연치 않아 보였다.

그때 호야의 눈에 일권의 가슴에 사선으로 커다랗게 새겨져 있는 오래된 흉터가 눈에 들어왔다.

"일권 할아버지, 그 상처는 어쩌다 그러신 거예요?"

"응? 아아, 이거 말이냐? 으음......."

호야의 질문에 일권은 한참 동안 속으로 질문에 대한 답을 고르다가 이내 씁쓸한 눈빛을 하고서 입을 열었다.

"내 인생의 전환점이자 부끄러운 과거의 흔적일세."

호야에게 그리 답한 일권은 오랜만에 속으로 과거의 일을 떠올렸다.

그의 가슴에 새겨진 흉터는 수십 년 전에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던 자의 흔적이었다.

수도로 돌아가는 길, 야영 중이던 때에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하여 호위들의 시선을 피해서 바람을 쐬러 숲속으로 들어갔을 때 그는 적의 습격을 받아야 했다.

붉은 눈알을 빛내며 날카로운 손톱을 휘둘러 왔던 흡혈귀, 그 녀석에게 큰 상처를 입은 직후에는 피가 온몸에서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에 죽음을 직감해 주마등까지 스쳐 지나갔었다.

하지만 추위 속에서 눈을 감았던 일권이 다시 눈을 뜬 곳은 저승이 아닌 어딘지 모를 민가의 안이었다.

그가 눈을 떴던 마을의 의료 시설은 매우 열악했기에 그가 흡혈귀에게서 입은 상처가 완전히 아물어 움직일 수 있게 될 때까지는 꽤나 많은 시간이 걸렸었다.

상처를 치료한 일권은 자신이 갑자기 사라져 걱정하고 있을 이들에게, 혹은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이들에게 자신이 살아 있음을 알리기 위하여 수도로 걸음을 옮겼었다.

가마도 마차도 말도 없어 도보로만 이동했기에 다리가 아프지 않던 순간이 없었지만 그는 끝내 자신을 걱정할 이들이 있는 수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자신의 자리를,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자신과 똑 닮은 남자가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제야 큰 상처로 인해 눈을 감기 직전 흡혈귀가 자신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네 인생, 앞으로는 내가 잘 살아 줄게. 그러니까 잘 가라.

그리고 직감적으로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서 자신의 자리에 있는 남자가 그 흡혈귀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를 보자마자 그때의 공포가 되살아나 몸이 잘게 떨려 온 것이다.

그 되살아난 공포에 그는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 흡혈귀가 가짜임을 주장하고 증명하여 자신의 자리를 되찾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번 일어난 일이 두 번은 없을 것이라 장담은 하지 못한다.

자신의 자리를 되찾았다가는 같은 일이 또다시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처음 겪어 본 두려움은 그에게 실체보다 더욱 크게 다가왔었다.

그래서 그는 발걸음을 돌려 이 마을 저 마을을 떠돌아다니며 삶을 이어 갔다.

이전까지의 삶의 방식과는 너무나도 차이가 나는 삶이었기에 적응하지 못하여 처음에는 힘든 일도 많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점차 익숙해져 갔다.

그때 둘째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모른 척했다.

떠돌아다니던 그는 결국 이슬촌에 정착하였다.

그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이슬촌에 닿았다.

하지만 그는 그때도 수도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 뒤로도 많은 이야기가 들려오고 많은 것이 바뀌어 갔지만 그는 그것들을 방관하며 자신만의 안위를 바랐다.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의 위치에서 도망쳤었다.

'도망친 나와는 다르게 현우 너는 현실과 마주해서 나라를 바꾸어 주었구나.'

그는 그동안의 고생으로 인하여 나이에 비해 자글자글하게 주름진 손등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는 직접 백성이 되어 살면서 백성들의 삶을 알고 느꼈음에도 바꾸려 시도도 하지 않은 자신이 부끄럽기만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제 와서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자신은 이제 공식적으로 죽은 사람이었으니까.

이슬촌의 주민인 우일권, 그것이 지금 그의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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