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6권 24화
24. 재회(1)
이예숙과 백재건의 결혼식은 아무런 탈 없이 마지막까지 무사히 진행되어 수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마무리되었다.
결혼식이 끝난 뒤 밥도 먹지 않은 채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이대현은 차 뒷좌석 시트에 등을 기대며 짜증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내보이고 있었다.
"하아, 내가 도대체 이런 데를 왜 와야 하는 건데. 꼬리를 치고 싶으면 지들이 직접 기어올 것이지 나한테 시키고 지X이야. 지들도 초대받지 않고 굳이 찾아오는 게 쪽팔린 짓이라는 거는 아나 봐?"
난진 그룹의 회장 이혁구의 명령에 오고 싶지도 않은 결혼식에 참석해야 했던 이대현의 속은 많이 뒤틀린 상태였다.
부동의 재벌가 1위인 백성 그룹 일가에게 눈도장을 찍어 놔야 한다며 이혁구가 결혼식장에 이대현을 억지로 보낸 것이다.
그들과 비교하기도 어려운 재벌가의 끄트머리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난진 그룹이니 그들에게 눈도장을 찍을 수 있을 때 찍어 놔야 나중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야, 너도 뭐라고 말 좀 해 봐."
"......죄송합니다. 회장님의 지시 사항이 있기에......."
뒷좌석에 앉아 있던 이대현이 운전석의 등받이를 발로 툭툭 차며 말하자 그의 운전기사인 나지훈은 사무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아나, 진짜. 또 그 할배야? 내 운전기사를 왜 지가 관리하는 거야, 도대체."
이놈이나 저놈이나.
이거나 저거나.
모든 것이 다 마음에 안 들었다.
* * *
결혼식이 무사히 끝이 난 뒤 이예숙과 백재건은 곧장 비행기를 타고 일주일의 신혼여행 길에 올랐다.
신혼여행치고는 짧은 일정이었지만 사정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로 인해서 일주일간 호영이 혼자 집에 남게 될 예정이었지만 이예숙이 호영이 혼자 있으면 밥도 잘 안 챙겨 먹을 것 같다고 걱정을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일주일만 백재한의 집에서 신세를 지게 되었다.
'하하하, 나는 어린애가 아닌데 말이지.......'
백재한의 집에 신세를 지기 전에 짐을 챙기기 위해 집에 들른 호영은 그러한 생각을 하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주민 등록증도 나온 어엿한 성인이지만 이예숙의 눈에 호영은 아직 어린아이로 비치고 있었다.
그것에 더해서 오늘 그러한 일도 있었기에 이예숙이 꼭 백재한의 집에 신세를 지라고 당부했기에 몰래 안 갈 수도 없었다.
칫솔과 치약, 갈아입을 간단한 옷가지 등을 챙긴 호영은 택시를 타고 이동해 강남구에 위치한 백재한의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서 오세요, 형님!"
"안녕, 당분간만 신세 좀 질게."
"영원히 신세 지셔도 상관없습니다! 것보다 얼른 안으로 들어오세요!"
호영이 입구에 선 채 말하자 백호민이 그의 손을 잡고서 안으로 이끌었다.
안으로 들어오자 호영의 몸에 살짝 어색함이 흘렀다.
대리석으로 마감된 실내는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고 벽 한 면을 모두 차지한 커다란 창을 통해서 강남구 일대와 한강이 보이고 있었다.
고급스러운 분위기만큼 넓은 공간을 뽐내고 있었기에 평범한 아파트에서 생활하던 호영에게는 허들이 너무 높은 공간이었다.
'아직 이사를 하기 전이니까 말이지.......'
백재건과 이예숙의 신혼집으로 호영이 마련해 준 타운 하우스도 꽤 좋은 곳이지만 아직 입주는 하지 않았기에 익숙하지가 않았다.
그리고 타운 하우스보다 이곳이 조금 더 고급스러운 느낌이 있었다.
그래도 그 덕에 이사를 간 뒤에 집에서 어색할 일은 없을 것 같다.
"형님이 지내실 방은 2층의 손님용 방이에요. 안내해 드릴게요. 아, 그리고 어머니랑 아버지는 일 때문에 밖에 나가 계세요."
백호민의 안내에 따라 들어간 손님용 방에는 캡슐 또한 준비되어 있었다.
원래 호영은 캡슐 방을 오고 갈 생각이었지만 백설영이 자신의 예비용 캡슐을 호영을 위하여 꺼내 준 것이다.
'나중에 고맙다고 말해야겠네.'
호영이 그러한 생각을 하며 캡슐을 보며 웃고 있자 호민이 입을 열었다.
"이니티움을 하고 계셨다면 미리 말씀해 주셨으면 좋았잖아요! 치사하게 누나한테만 알려 주고! 미리 말해 주셨다면 제가 캐릭터 육성을 도와 드렸을 텐데......."
"응?"
"제가 이래 보여도 랭커라고요!"
"어......, 마음만 감사히 받을게."
백호민의 말에 호영은 난처한 마음에 뒷목을 긁적였다.
백설영이 말했던 대로 백호민은 아직 호영의 정체를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사양하실 것 없어요! 제가 도와 드릴게요! 아, 하지만 오늘은 이미 선약이 있으니까...... 3시간 후에 이즈바론트의 광장에서 만나죠! 기다리고 있을게요!"
"아니, 잠깐만......!"
자신이 할 말을 끝낸 백호민은 호영의 대답을 듣지 않고 웃으며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그 모습을 본 호영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어떻게 해야 하는 상황인 거지?'
귓속말로 얘기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할 수 없이 3시간 후에 이즈바론트로 향하기로 정한 호영은 들고 온 짐을 한쪽에 정리한 뒤에 캡슐에 몸을 눕혔다.
호야가 마지막으로 로그아웃 한 장소는 동대륙에 와서 처음 들렀던, 얼마 전까지는 이름도 모르던 마을인 이슬촌의 앞이었다.
하지만 로그인 한 호야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이슬촌이 아닌 새하얀 공간과 허공에 떠 있는 이니티움의 타이틀 로고였다.
호야가 그 사실을 인식하자 커다란 북소리가 한번 울리더니 타이틀 로고의 뒤쪽으로 검 두 자루가 교차되어 꽂혔고 그 아래에 문구 하나가 나타났다.
Initium
[영웅 대전]
"영웅 대전......?"
호야가 그런 의문을 품자 타이틀 로고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영상 하나가 재생되기 시작했다.
마치 로마의 콜로세움을 연상케 하는 장소, 그곳에서 두 명의 남자가 창과 검을 휘두르며 스킬을 사용해 서로를 공격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영상에 나오는 장소가 바뀌며 창과 검을 휘두르던 남자들도 소환술사와 암살자로 바뀌었다.
그 뒤로도 장소와 영상에 찍히는 인물들이 빠르게 바뀌었고 마지막에 와서는 2배속으로 빠르게 재생된 영상의 끝에 다시 한 번 타이틀 로고와 함께 짧은 글들이 떠올랐다.
Initium
[영웅 대전]
위대한 영웅들의 참가를 기다립니다.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의 공지 사항을 참고해 주세요.
글이 모두 나타나고 5초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영상과 함께 하얀 공간이 깨지며 이슬촌의 입구가 눈앞에 나타났다.
하지만 호야는 곧장 마을로 들어가지 않고 방금 전 영상의 정체를 알기 위하여 이니티움 홈페이지에 접속하였다.
이니티움의 홈페이지의 최상단 정중앙에 박힌 타이틀 로고의 뒤에도 교차하고 있는 검들과 그 아래에 영웅 대전이라는 문구가 떡하니 적혀 있었다.
가장 최근에 게시된 공지 사항을 확인하자 호야는 그 영상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이니티움의 전 세계적인 게임 대회 '영웅 대전'의 개최와 한 달 후에 있을 온라인 예선전에 관한 내용이 공지 사항에 적혀 있었다.
대회는 토너먼트 형식의 개인전과 단체전으로 진행이 되며 예선 신청을 위한 최소 조건은 대련장 등급의 최상위인 히어로 등급의 달성이었다.
호야는 지금까지 연습방을 이용한 적은 있어도 등급에 영향을 주는 매칭 시스템을 이용한 적은 없었기에 무등급이었다.
커뮤니티를 슬쩍 확인해 보니 커뮤니티는 이미 대회의 개최로 인해서 뜨겁게 달궈져 있는 상태였다.
-미친! 미친! 대박 사건!
-하......, 참가 커트라인 너무 높다! 히어로가 뭐냐, 히어로가! 우리같이 라이트 한 유저들은 구경이나 하라는 소리냐!
-그러니까 영웅 대전이고 세계 대회인 거지. 그리고 자신이 속한 나라의 플레이어가 본선에 진출하거나 우승하면 우리 같은 라이트 한 유저한테도 혜택이 있잖아.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기대할 만한 플레이어가 없단 말이야.......
-이 히어로 형님은 지금 예선 신청하러 간다.
하지만 지금 당장 자신과 관계된 일은 아니었기에 호야는 커뮤니티 창을 끄고서 퀘스트를 위해서 마을로 향했다.
동대륙의 지원 퀘스트를 받은 플레이어들에게는 저마다 담당 마을이 정해져 있는데 마을의 크기에 따라 배정되는 플레이어의 수에 차이가 있다.
그렇기에 마을이라고 하기에도 초라한 크기인 이슬촌의 지원을 위해 배정된 플레이어는 호야 한 명뿐이다.
호야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NPC인 것이다.
"어디 있지......."
그런 NPC들 사이에서 호야는 한 인물을 찾아 마을을 돌아다녔고 마을이 작아 찾던 인물을 금방 발견할 수 있었다.
바두와 미호, 새미와 함께 건물의 보수를 돕고 있는 가면을 쓴 검은 머리의 남자였다.
호야가 그에게 다가가자 그의 기척을 느낀 남자가 뒤를 돌아보았다.
"아, 호야. 오늘은 조금 늦게 왔네요."
"네, 일이 조금 있어서 말이에요. 그런데 겨우 하루가 지난 것뿐인데 마을 상황이 꽤나 좋아졌네요."
"마을이 작은 것도 있어서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으니까요. 서대륙에서 배를 타고 넘어오신 분들이 많이 노력해 주고 있는 덕도 있어요."
"컨서누도 도와줘서 고마워요."
"굳이 고마워하지 않아도 돼요. 제가 하고 싶어서 하겠다고 한 일이잖아요?"
가면을 쓴 남자의 정체는 컨서누였다.
* * *
호야가 컨서누에게 동대륙에 대해 말해 주었던 날, 호야의 이야기를 듣고서 속으로 한참이나 고민하던 컨서누는 무언가 결심을 한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호야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호야, 제가 현우와 조제연 장군을 몰래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퀘스트 '그리운 과거와의 재회'가 발생되었습니다.]
[그리운 과거와의 재회]
전설의 무투가 컨서누, 그는 수십 년 전 모습을 감춘 권나라의 둘째 황자 권선우입니다.
수십 년간 동대륙을 외면하며 살아온 그는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서 깊은 향수를 느꼈습니다.
그가 마음을 정리할 수 있도록 과거의 인연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도와주세요,
컨서누의 존재를 동대륙의 다른 이들이 알아서는 안 됩니다.
완료 조건: 컨서누가 권현우와 조제연과 대화할 수 있도록 돕는다.
성공 보상: 경험치 상승, 권현우의 호감도 대폭 상승, 조제연의 호감도 대폭 상승, 컨서누의 호감도 대폭 상승, 초급 컨서누파 무투술의 숙련도 5% 상승
실패 패널티: 컨서누의 호감도 대폭 하락, 초급 컨서누파 무투술의 숙련도 10% 하락, 컨서누가 30일간 우울 상태에 빠집니다.
"그래, 잘 생각했어. 한 번은 풀어내야지 속에서 곪지 않을 거야."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단탈스가 컨서누의 결정에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 뒤에 시간이 흘러 플레이어들이 배를 타고 넘어오기 전날, 에반이 동대륙에 있던 호야를 찾아와 권현우가 자신을 만나 보답을 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전했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호야는 에반의 도움을 받아 곧바로 궁궐로 이동해 다른 이들에게는 비밀로 한 채 권현우와 만남을 가졌다.
호야에게 뒤늦게 직접 감사를 전한 권현우는 그에게 다시 한 번 보답하기 위해 원하는 것을 말해 보라 하였다.
권현우의 그 말에 호야가 그에게 부탁한 것은 딱히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 조제연 장군과 같이 사람 한 명만 만나 주실 수 있을까요? 다른 이들에게는 비밀로 하고서."
"그러한 것으로 만족하나?"
"네."
권현우는 호야의 부탁에 의아해하면서도 그의 부탁을 수락하여 조제연을 불러왔고, 조제연이 도착한 뒤 사람을 모두 물리자 분명히 아무도 없을 기둥 뒤에서 인영 하나가 나타났다.
갑작스러운 인영의 등장에 조제연이 검의 손잡이를 쥐며 경계를 취했지만 인영이 망토의 후드를 벗고 둘에게 얼굴을 보이자 그는 금세 경계를 풀어 버렸다.
그의 등장을 머리가 이해하지 못하여 잠시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여 경계가 풀어져 버린 것이다.
"오랜만이에요, 둘 다."
인영의 정체는 컨서누.
그는 호야에게 퀘스트가 발생된 뒤로 모습과 기척을 가리고서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쭉 호야를 따라다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