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는 마을사람-145화 (145/171)

# 145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6권 22화

22. 떨칠 수 없는 과거(3)

지하철 승강장에서 시작되었던 화제는 3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진압되었다.

아무런 장비 없이 3시간이나 매캐한 연기와 불 속에서 버틸 수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기에 화제 당시 불이 난 곳을 중심으로 하여 바깥에 있던 150여 명의 사람들만이 목숨을 건졌다.

승강장 안과 들어오던 열차에 있던 200여 명의 승객들은 불과 연기에서 도망칠 수 없었고 문지한도 도망치지 못한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처음 뉴스를 통해 희생자의 이름이 하나씩 불렸을 때 호영은 문지한의 이름이 호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믿고 싶지 않았다.

동명이인일 것이라고 자신을 세뇌시켰다.

하지만 새하얀 국화들 사이에 다른 희생자들의 사진과 함께 놓여 있는, 환하게 웃고 있는 문지한의 사진을 보자 현실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합동 장례식 현장에는 희생자들의 유족들과 그의 친구들, 그리고 이 현장을 보도하기 위해 촬영을 온 방송국과 인터넷 신문의 기자들 등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했지만 호영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문지한의 영정밖에 없었다.

주변이 소란스러웠지만 호영의 귀를 파고들지는 못해 그에게는 자신이 있는 곳이 고요하게만 느껴졌다.

문지한의 사진 앞에 국화 한 송이를 올린 호영은 장례식장 구석에 털썩 주저앉아 소리 없이 울었다.

'다......, 다 나 때문이야.......'

문지한이 자신에게 찾은 CCTV 영상을 보여 주러 오지 않았더라면.

문지한에게 자신이 괴롭힘 당하고 있다는 것을 털어놓지 않았더라면.

애초에 자신이 괴롭힘 당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그 지하철을 탈 일이 없었을 텐데.......

자신 때문에, 자신이 원인으로 문지한이 죽었다는 생각이 크고 무거운 죄책감이 되어 호영의 가슴에 큰 짐을 지웠다.

아니라고 애써서 부정해 보려고 해도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나면 자신을 탓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 * *

장례식이 있던 뒤로 많은 시간이 흘렀다.

문지한을 잃은 충격 때문인 것인지 호영은 학교에서의 괴롭힘에 이전보다 큰 외로움과 괴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로 인해서 이예숙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해 그녀의 앞에서 웃는 가면을 쓰는 것도 점차 힘들어져 학교 숙제가 많다는 이유로 방에 틀어박히는 시간이 많아져 갔다.

다행인 것은 호영의 가면이 살짝 벗겨서 새어 나오는 우울함을 이예숙이 문지한의 일로 인한 것으로 착각해 주었다는 것이다.

"차렷, 경례. 안녕히 계세요."

"안녕히 계세요."

평소와 같이 학교가 끝난 하굣길, 호영은 이대현에게 끌려가 폭행을 당해야만 했다.

점심시간에만 행해지던 폭행이 방과 후까지 더해지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었다.

그때마다 호영은 주변에 벌레가 없기를 빌어야 했다.

그날도 평소와 다를 것 없던 날이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면 갑작스레 외로움이 커져 이대현이 돌아간 뒤에 한참이나 그 자리에 앉아서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다.

왜 자신이 이렇게까지 하면서 학교에 나오고 있는 것인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몸을 웅크린 채 한참을 울고 있자 무언가가 발목을 핥는 것이 느껴졌고 그 느낌에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웬 강아지가 눈에 들어왔다.

흰 바탕에 갈색 얼룩무늬를 가진 작은 강아지였다.

"웬 강아지지......?"

"멍!"

호영이 고개를 들어 호영의 몸과 다리 사이에 공간이 생기자 강아지가 호영의 품속으로 파고들어 자리를 잡았다.

"......풋."

그 모습이 퍽이나 귀여워 호영은 오랜만에 학교에서 웃음을 흘릴 수 있었다.

호영이 홀린 듯이 조심스레 등을 쓰다듬자 강아지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 보였다.

손으로 강아지를 만져 보니 강아지는 겉보기와 다르게 몸이 매우 가늘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가방에 들어 있던 편의점 삼각 김밥을 쌀 부분만 떼어 내어 손위에 올려 입 주변으로 가져다주자 강아지가 밥을 게 눈 감추듯이 허겁지겁 먹어 치워 버렸다.

양념이 뭍은 부분은 자신이 먹고 양념이 묻지 않은 부분을 강아지에게 넘겨주다 보니 삼각 김밥 세 개를 다 먹는 것은 아주 순식간이었다.

"잘 먹네......."

"와옹!"

"미안하지만 이제 더는 없어."

호영이 손바닥을 펼쳐 흔들어 보이자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을 알아들은 것인지 강아지의 꼬리가 바닥으로 축 처졌다.

그 모습에 피식 웃어 보인 호영은 가방을 메고 강아지를 안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강당 뒤편을 벗어나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곳에 강아지를 숨겼다.

"대신에 내일은 더 맛있는 걸 갖다 줄게. 알았지?"

"오웅......."

"그러니까 여기서 얌전히 있어야 돼."

"왕!"

강아지는 호영이 시야에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 주었다.

* * *

호영은 그 뒤부터 아침저녁으로 강아지에게 먹이를 가져다주었고 바둑이라는 이름도 지어 주었다.

바둑이는 아주 영리하고 호영을 잘 따르는 아이였다.

'손'과 '앉아'는 아주 간단히 마스터하였고 호영이 총을 쏘는 시늉을 하면 뒤로 넘어지며 배를 드러내 보였다.

이예숙이 개 알레르기이기에 바깥에서 몰래 키우고 있는 상태였지만 바둑이는 호영의 학교생활에 큰 빛이 되어 주었다.

바둑이의 존재가 문지한을 대신해 호영의 기댈 곳이 되어 주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그맘때쯤 호영은 방과 후에 상담실로 불려 왔다.

호영을 상담실로 부른 것은 위클래스의 선생님이었다.

"미안해, 호영아. 선생님이 호영이 이야기를 지금에서야 들어 버렸어. 조금 더 일찍 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네?"

"이미 학교에 많은 실망을 했겠지만 선생님만은 호영이 편이야. 선생님이 지금 상황을 어떻게든 해결할 방법을 찾아볼게. 그러니까 선생님을 믿고 조금만 버텨 줄 수 있겠니? 응?"

"아......."

위클래스의 선생님은 호영의 손을 따듯하게 잡아 주면서 그를 도와줄 것을 약속하셨다.

자신의 편이 되어 주지 않을 것 같은 학교에 자신의 편이 되어 주겠다는 이가 나오자 호영은 고립되어 있는 어둠 속에서 자신을 향해 뻗어진 온기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바둑이가 나타난 이후로 호영의 생활에 밝은 색체가 더해지고 있었다.

이대현의 괴롭힘도 이전보다 굳센 마음으로 버틸 수 있었다.

바둑이가 있었고 위클래스의 선생님이 있었으니까.

호영은 조금씩 심연을 벗어나 위를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그것이 거짓되어 있는, 다시 떨어질 길이라는 것을 모르고.

* * *

위클래스의 선생님은 이대현과 호영을 분리하기 위하여 이상해 보이지 않을 정도로만 호영에게 심부름을 부탁하고는 했다.

하지만 그것이 쌓이고 쌓일수록 이대현은 호영에게 한 번에 많은 폭력을 가하고는 했고 그날도 그런 날 중 하루였다.

그리고 그날에는 머리를 어딘가에 잘못 부딪친 것인지 호영의 기억이 잠깐 끊겨 버렸다.

욱신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기억이 끊긴 때로부터 30분 정도가 흐른 뒤였다.

상체를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자 자신의 교과서와 필통 등 가방 안에 있어야 할 것들이 찢어지고 부서져서 바닥에 널브러져있는 것이 보였다.

'물건을 망가트린 적은 지금까지는 없었는데.......'

아무래도 오늘은 작정을 한 모양이었다.

그대로 둘 수 없었기에 떨리는 손으로 바닥에 널브러진 물건들을 집어 가방 안에 쑤셔 넣었다.

'교과서......, 위클래스 선생님한테 말하면 구해다 주실까?'

호영은 바닥에 널브러진 물건들을 챙기다가 몇 가지 물건은 아예 사라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부수다 못해 아예 갖다 버린 모양이었다.

바둑이에게 주기 위해 챙겨 온 간식들도 작은 봉지 하나만이 남아 있었다.

어딘가 위로받을 곳이 필요했기에 호영은 이것만이라도 주고자 하여 평소에 바둑이가 자신을 기다리는 곳으로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겼다.

바둑이가 있는 곳에 도착한 호영은 믿고 싶지 않은 광경에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 으아......."

무어라 말을 바깥으로 쏟아 내고 싶었지만 아기로 돌아간 것처럼 말이 마음대로 나오지 않았고 바깥으로 나오지 못하는 말을 대신하여 눈물만 하염없이 쏟아져 나왔다.

호영이 올 때마다 항상 꼬리를 흔들며 그의 다리에 매달리던 바둑이가 피를 흘리며 바닥에 축 늘어져서 쓰러져 있었다.

바둑이의 귀 한쪽은 잘려 있었고 다리는 뼈까지 자르려다 그만둔 것인지 살이 깊게 잘린 채 하얀 뼈가 겉으로 드러나 있었으며 배는 개복 수술이라도 한 것처럼 길게 갈라져 있었다.

그리고 바둑이의 주변에는 조각난 커터 칼날이 박힌 먹이들이 날이 짧은 커터 칼과 함께 흩뿌려져 있었다.

호영이 바둑이를 주기 위해 준비해 온 간식과 호영의 필통 속에 들어 있던 커터 칼이었고 동시에 방금 전의 일로 가방 속에서 사라진 것들이었다.

찰칵-.

스마트폰의 촬영 소리에 그 방향을 돌아보니 이대현과 그의 무리들이 스마트폰을 든 채 입가를 씰룩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우리 선물이 어때? 마음에 드냐?"

이대현의 말에 무언가가 머릿속에서 끊어지는 것을 느낀 호영은 괴롭힘을 당하기 시작한 뒤 처음으로 이대현에게 달려들었다.

저 얼굴에 한 대라도 먹여 줘야지 지금의 분노가 조금이나마 누그러질 것 같았다.

호영은 손바닥에서 피가 새어 나올 만큼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하지만 그런 호영의 주먹은 이대현에게 닿지 못했다.

지속적인 폭력으로 인해 몸이 만신창이인 한 명과 주먹을 휘두를 줄 아는 건장한 몸의 다수.

누가 이길 것인지는 안 봐도 뻔했다.

이대현은 호영이 달려든 것도 여흥이라 생각한 것인지 그저 웃기만 했다.

"성격 한번 거치네, 이 자식. 그래서 친구는 어떻게 사귀려고 그러냐?"

호영에게 발길질을 계속하던 그들은 호영이 더 이상 반응을 보이지 않자 할 일을 끝냈다는 듯이 자연스러운 걸음으로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그들이 사라지자 호영이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후회였다.

'이기지도 못할 거면서 왜 달려든 거야.......'

이대현에게 반항했다는 것에 대한 후회였다.

그가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한 보복을 반드시 해 올 것이라고 호영은 생각했다.

내일이 두려워졌다.

그것과 동시에 그런 생각밖에 못 하는 자신이 너무 한심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한참을 울던 호영은 이미 죽어 버린 바둑이를 바라보았다.

바둑이를 저대로 놔두고 싶지 않았다.

몸을 움직이자 방금 맞아서 생긴 멍들과 오래된 멍들이 비명을 질러 왔지만 호영은 바둑이를 찢어진 교과서로 감싸서 학교와 이어진 뒷산 부근에 묻어 주었다.

호영의 가슴속에는 문지한을 잃었을 때만큼 커다란 구멍이 다시 생겨나 있었다.

"......집에 가자."

얼마 안 있으면 이예숙이 돌아올 시간이었다.

그 전에 집에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고 교복을 세탁기에 돌려야지 그녀가 자신을 걱정하지 않을 터였다.

그렇게 생각한 호영은 힘없이 발걸음을 옮기며 빠르게 집으로 가기 위해서 학교 건물을 가로질렀다.

그때 우연찮게 1층에 있는 교무실에서 선생님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휴우, 호영이 일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이 목소리는......?'

그 목소리들 중 하나는 위클래스 선생님의 목소리였다.

"그러니까 말이에요. 걔 때문에 애들 분위기도 안 좋고. 아주 골칫덩이예요. 진짜."

"고등학교 때는 1학년이 3학년만큼 중요한 시기인데 그 시기에 이런 일이 일어나서 애들이 너무 걱정되네요."

"에효, 뭐 별수 있나요. 애들이 버틸 수 있기를 바라야죠. 하여튼 호영이가 최 선생님에게 많이 기대는 것 같으니까 최 선생님이 올해만 호영이 컨트롤 좀 해 주세요. 2학년 때는 대현이랑 다른 반으로 보내 주면 되겠죠."

"네, 저만 믿으세요. 애들 학업에 방해 안 되게 잘해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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