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는 마을사람-144화 (144/171)

# 144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6권 21화

21. 떨칠 수 없는 과거(2)

퍽! 쿠당탕-!

이대현의 발길질에 호영이 바닥을 구르자 이대현이 혀를 찼다.

"쯧, 이 자식 이제는 아무런 반응도 없네. 야, 네가 시체냐? 나 아직 살인자 아니니까 반응 좀 보여 봐."

"대현아, 이제 이 짓도 재미없다. 얘는 이미 친구라는 놈들도 다 배신 때렸는데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냐? 솔직히 나는 점심시간 지나가는 게 아깝다."

이대현의 무리 중 한 명이 그리 말하자 이대현은 호영을 툭툭 차던 발길질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너 지금 나한테 명령하는 거냐?"

"어?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면 얘랑 자리 좀 바꾸고 싶어?"

이대현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호영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그는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아니, 전혀! ......미안, 내가 잘못했어."

"알면 됐어."

그들의 사이에서 그러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을 때 호영은 얼른 점심시간이 끝나기를 바라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끝나면 10분이라는 짧은 쉬는 시간에 끌려 나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니까.

점심시간만 되면 이대현에게 끌려왔었기에 학교에서 점심을 먹지 못하게 된 지도 꽤나 오래되었다.

이대현과 그의 무리들은 쓰러진 호영을 보며 매점 햄버거를 먹었지만 말이다.

그때 지루해하고 있는 이대현의 눈에 바닥에 깔려 있는 보도블록의 라인을 따라 지나가고 있는 지네가 들어왔다.

그와 동시의 그의 머릿속에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다.

"아아, 그러고 보니까 우리 호영이 배 많이 고프겠네? 혼자서 밥을 못 먹어서 어쩌냐?"

"엉? 대현아, 너 뭐 잘못 먹었어? 갑자기 무슨 소리야."

"크크큭, 가만있어 봐. 호영아, 내가 맛있는 거 먹게 해 줄게."

이대현이 그리 말하며 바닥을 기어가고 있는 지네를 손으로 잡아 들더니 무방비하게 쓰러져 있던 호영의 입에 지네를 집어넣었다.

"으읍!"

"야, 너희들도 얘 못 움직이게 잡아라."

"우와......, 너 장난 아니다."

입에 무언가가 들어오자 호영이 그것을 뱉어 내려 하였지만 이대현이 그의 입을 손으로 막아 뱉어 내려는 것을 막았다.

그 손을 떼어 내고 싶었지만 이대현의 무리들이 자신의 손을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눌렀기에 그럴 수가 없었다.

입안에서 살아 있는 지네가 움직이는 것이 느껴져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요 며칠간 내보이지 않던 눈물까지 맺혔다.

그때 강당 2층의 교무원실의 창문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체육 선생님과 호영의 눈이 마주쳤다.

호영은 눈빛으로 체육 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그는 아무것도 못 봤다는 듯이 커피를 홀짝이고는 창가에서 떨어져 모습을 감추었다.

호영은 그 모습에 자신이 누워 있는 바닥이 무너져 내려 끝이 없는 땅속으로 추락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때 호영의 몸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목젖을 움직였다.

꿀꺽.

"어! 야, 야. 얘 방금 목젖 움직였어!"

"이제 손 놔, 놔."

이대현과 그의 무리들이 손을 놓자 호영은 바로 헛구역질을 강하게 토해 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속이 매스꺼웠다.

헛구역질을 반복하자 위산과 함께 아직도 꿈틀거리고 있는 지네가 바닥에 떨어졌다.

지네는 나왔지만 호영은 헛구역질을 멈추지 못했다.

무언가가 목구멍을 기어 다니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가 겨우 진정된 것은 시간이 꽤나 흐른 뒤였다.

"으읍......, 허억, 허억."

주변이 조용해 시선을 굴려 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주머니에서 액정이 깨진 스마트폰을 꺼내어 시간을 확인해 보니 이미 5교시 종이 친 뒤였다.

호영에게서 원하던 반응을 얻어 낸 이대현이 종이 치자 그냥 교실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이대현이 없다는 것에 속으로 안도하고 벽에 등을 기대자 그제야 호영의 귓가에 강당 안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도 신경을 안 쓰네."

체육 수업 때의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강당에는 작은 방음 처리가 되어 있지만 완벽하지는 않다.

자신의 헛구역질 소리를 분명히 들었을 터인데 아무도 와 주지 않았다는 현실에 호영은 속에서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것을 느꼈다.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겨우 진정시킨 호영은 몸을 비틀거리며 겨우 교실로 돌아갈 수 있었다.

"너는 뭘 했길래 지금 와? 앞으로는 빠릿빠릿하게 다녀라."

"......죄송합니다."

"수업 방해하지 말고 얼른 자리에 앉아."

교실에 들어온 호영에게 관심을 주는 것은 선생님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호의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 * *

김포 국제공항 국외선 입국장 게이트 앞.

이날 호영은 평소와는 다르게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곧장 집으로 가지 않고 옆으로 새 공항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안 있어서 입국장 게이트가 열렸고 호영은 그곳을 통해 안에서 빠져나오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기다리던 이를 찾을 수 있었다.

상대방도 호영을 발견했는지 그를 향하여 팔을 크게 흔들어 보이며 다가왔다.

"우리 호! 잘 지냈냐!"

"그래, 잘 지냈다."

문지한은 캐리어를 끌고 있지 않은 빈 팔을 호영의 어깨에 감아 반가움을 표했다.

그가 여름 방학을 맞아 한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래, 키 차이는 이 정도가 적당한 거지, 암."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아무것도 아니야. 것보다 얼른 놀러 가자!"

"집에 짐은 안 풀어?"

"나중에 풀면 되지! 너도 교복 차림 그대로잖아."

문지한은 한 손으로는 캐리어를 끌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호영의 손을 잡고서 빠르게 공항을 빠져나갔다.

몇 달 만에 한국에 돌아온 그는 하고 싶은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아줌마는 아직 퇴근하시기 전이지?"

"응, 아직이지."

"흐음, 그럼 아줌마 얼굴 보는 거는 제일 나중으로 미루고......, 일단 맨 처음은 목적지는 코노다! 저쪽에서 쌓아 온 내 실력을 뽐내 주마!"

문지한은 방금 비행기에서 내린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쌩쌩함을 보이며 코인 노래방부터 시작하여 게임 센터까지 또래의 남자아이들끼리 할 수 있는 놀이란 놀이들은 오늘 안에 모두 해 두겠다는 듯이 호영과 캐리어를 끌고 다녔다.

그래도 배꼽시계는 무시할 수 없던 것인지 저녁 시간이 되자 밥을 찾아서 근처 국밥집으로 들어갔다.

"아이고, 학생. 가게가 좁아서 그렇게 큰 캐리어는 조금 곤란한데."

"헤헤헤, 이번 한 번만 봐주세요. 대신에 주문 많이 할게요! 제가 이래 보여도 기본으로 2인분은 먹는다고요."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가게 주인에게 허락을 구한 문지한은 호영과 함께 가게 제일 안쪽에 자리를 잡았다.

"갑자기 웬 국밥집이야? 거리에 햄버거 가게도 많은데."

"호야, 내가 어디서 살다가 돌아온 건지 잊었어? 햄버거는 질리도록 먹어 봤다고!"

"어? 아......, 내가 생각이 짧았네."

"알면 됐어."

잠시 기다리자 문지한과 호영이 주문했던 소머리 국밥 두 그릇과 순대 한 접시가 둘의 앞에 놓였다.

자기 취향대로 부추를 양껏 넣은 문지한이 숟가락을 몇 번 들다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이짜나, 호야."

"다 삼키고 나서 말해."

"꿀꺽. 있잖아, 호야. 아까부터 궁금했던 건데 쿨 토시는 왜 끼고 있는 거야?"

"어......?"

"너 원래 그런 거 안 꼈잖아."

문지한의 질문에 호영의 눈동자가 아주 잠깐 떨림을 보였다.

아누 짧은 찰나의 떨림이었지만 문지한은 호영의 눈동자가 떨린 것을 볼 수 있었다.

"아아, 그냥 기분 전환이야. 우리 학교에서 꽤 유행이다 이거?"

"......그래?"

거짓말.

호영의 표정을 보고 그렇게 생각한 문지한은 예의가 아닌 것을 알면서도 께름칙한 느낌 때문에 손을 뻗어서 호영의 팔을 낚아채 그의 쿨 토시를 걷어 버렸다.

그러자 쿨 토시에 가려져 있던 멍으로 얼룩진 호영의 팔이 모습을 드러냈다.

"......야, 너 이거 뭐야?"

"......."

호영은 문지한의 물음에 답할 수 없었다.

문지한에게 김희반의 모습이 겹쳐 보였기에, 자신이 괴롭힘 당하고 있어 친해지면 피해가 될 인물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처럼 자신을 버릴까 봐 두려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호영의 생각이 겉으로 드러난 것인지 문지한이 먼저 입을 열었다.

"무언은 긍정의 표시라고도 하지. ......너, 무슨 일 있어?"

"......."

"......나는 네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몰라.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말해 줄 수 있어. 나는 절대적으로 네 편이고 절대로 너를 배신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내가 너를 도울 수 있게 해 줘."

그 순간 문지한에게 겹쳐 보이던 김희반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러자 호영은 물길을 막고 있던 돌담이 무너져 내린 것처럼 눈물과 함께 문지한에게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이예숙에게도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그 XXX들이. 호야, 아니 선호영, 내가 그 자식들한테 대가를 치르게 해 줄게."

"......아마 안 될 거야. 교육청에도 신고한 적이 있었지만 학교에 왔다가 그냥 바로 돌아갔어......."

"그런 자식들한테 그런 방법은 안 통해. 다룬 길로 확실하게 묻어 줘야지. 그래서 몇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

"저기 학생."

문지한이 가방 속에서 수첩을 꺼내어 호영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려던 순간 가게 주인이 둘에게 다가왔다.

"너무 오래 앉아 있는 것 같은데 이제 그만 일어나 주면 안 될까? 우리도 자리가 비어야지 뭘 팔든가 하지."

가게 주인의 말에 가게 바깥을 바라보자 길게 늘어선 줄이 보였다.

아무래도 우연찮게 들어왔던 집이 맛집이라도 되었던 모양이다.

"아아, 이거 죄송해서 어쩌죠. 바로 일어날게요. 호야, 뒷이야기는 나가서 하자. 잘 먹었어요, 할머니."

음식값을 지불한 뒤 호영과 같이 가게를 나온 문지한은 그 근처에서 적당히 캐리어를 세워 두고 수첩을 꺼내어 다시 질문을 이었다.

"너 지금 다니는 고등학교가 어디였지? 영지 고등학교였나?"

"응......."

"그리고 주로 강당 뒤편에서 당했다고 했지......."

"......저기, 지한아. 도대체 뭘 하려고 그러는 거야?"

"뭘 할 거냐고?"

호영의 물음에 문지한이 수첩을 접었다.

"뭘 하기는. 해킹 배우러 유학 떠났던 학생의 힘을 보여 줘야지. 내가 괜히 과제 하면서 밤을 새웠던 게 아니라고. 이 형님만 믿어라, 고등학교 CCTV 정도는 제대로 털어 줄 테니까."

문지한은 호영에게 호언장담을 해 보였지만 그는 호영과 한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

* * *

문지한과 호영이 만났던 날의 바로 다음 날의 일이었다.

"아들, 지한이 만나러 가는 거지? 오늘도 저녁 먹고 들어올 거야?"

"으음, 글쎄? 만약 그럴 것 같으면 전화할게.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다녀와."

오랜만에 진심이 담긴 밝은 목소리로 이예숙에게 인사를 하고 집을 나오자 얼마 안 있어 호영에게 전화가 한 통 걸려 왔다.

문지한의 전화였다.

-호야, 지금 어디쯤이야?

"아아, 나 아직 집 앞인데. 방금 막 나왔어. 너는 어딘데?"

-나? 나는 두 역 정도 남았어. 내가 먼저 도착할 것 같네. 역 안의 카페카페 알지? 거기서 기다리고 있을게. 후후후, 기대하고 와라, 내가 아주 싹 털어 왔으니까!

"......그래."

호영은 자신을 위해 이렇게까지 해 주는 문지한에게 큰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괴롭힘을 당하기 시작한 이후로 처음 받아 보는 호의였기에 그 마음은 어느 때보다 커다랬다.

그런 만큼 잃어버렸을 때의 상실감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약속 장소인 역에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것이 느껴졌고 그가 향하고 있는 방향에서 기다란 회색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뭐지......?'

"들었어요? 역 안에서 누가 불을 질렀대요."

"세상에....... 안에 있던 사람들은요?"

"불도 다 안 꺼졌는데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

역으로 향하던 호영은 주변 소음에 섞여 있던 대화 내용에 최대한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설마......, 아니지......?'

불안한 생각이 계속해서 떠올랐지만 그것을 애써 부정하고 직접 확인하기 위해 역을 향했다.

역 입구 근처에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벽이 세워져 있었고 그 사이를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자 새까만 연기가 빠져나오고 있는 역 입구가 보였다.

호영이 문지한에게 전화를 걸어 봤지만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불안한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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