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는 마을사람-142화 (142/171)

# 142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6권 19화

19. 축복받을 날(2)

"저기 이모님들, 저희 엄마가 신부 대기실에서 목이 빠져라 이모님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데 슬슬 가 주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어머! 나도 모르게 주인공 얼굴을 보는 걸 깜빡하고 있었네!"

"이 팀장님 한번 삐지면 길게 가니까 얼른 가죠."

신부 대기실로 향하는 이예숙의 직장 동료들에게 인사를 건넨 호야는 살짝 숨을 내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웨딩 홀의 곳곳에는 하객들이 결혼식의 시작을 기다리며 자신들끼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예숙과 백재건이 정말 친한 지인들만을 초대했기에 하객들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웨딩 홀 바깥의 상황은 안쪽과는 조금 달랐다.

바깥에서는 안쪽이 보이지 않도록 코팅이 되어 있는 유리벽을 통해 아래를 내려다본 호영은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엘리시아 웨딩 홀의 정문과 지하 주차장의 입구에 커다란 카메라를 든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10년 전부터 갑자기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백성 그룹 백윤택 회장의 둘째 아들 백재건의 결혼식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 10년간 백재건에게 향했던 대중들의 관심은 많이 옅어져 있었지만 그가 백윤택과 화해한 것을 시작으로 결혼식에 관한 이야기가 새어 나간 것으로 인해 관심이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다행히 웨딩 홀 측에서 정문과 지하 주차장 입구에서 기자들을 막고 있기에 안으로 들어오지는 못하고 있었다.

또한 예식장 자체도 층 하나를 통째로 빌리는 단독 홀의 형태였기에 엘리베이터의 앞에 가림막을 설치하고 가드들이 청첩장을 가진 이들만 통과시켜 주고 있었기에 외부인이 들어올 걱정은 없었다.

하지만 기자들로 인해서 다른 층에서 식을 올리고 있을 신랑신부들과 그들의 하객들에게 간접적으로 피해가 가고 있다는 것이 괜스레 미안하게 느껴졌다.

"안녕하세요, 형님!"

그때 방금 막 도착한 백호민이 호영에게로 달려와 밝게 인사를 건네었다.

"그래, 안녕."

"오늘 결혼식 끝나면 바로 저희 집으로 오는 거예요?"

"아니, 필요한 짐은 챙겨야 하니까 우리 집에 들렀다가 갈 거야."

"필요한 물건이라면 칫솔이나 뭐 그런 거죠?"

"응? 응."

"저희 집에 새거 많아요! 그냥 몸만 오시죠!"

"아니, 그건 좀......."

"야, 백호민. 괜히 난처하게 만들지 마."

백호민이 호영에게 눈을 빛내고 있자 백설영이 다가와 백호민을 말렸다.

"그리고 지금 이러고 있지 말고 오늘의 주인공들에게 인사를 해야 되지 않아?"

"아! 맞다! 저 작은엄마한테 인사하러 가 볼게요!"

백호민은 손을 크게 흔들어 보이며 곧바로 신부 대기실로 걸음을 옮겼고 백설영도 호영에게 손을 살짝 흔들어 보이고는 백호민의 뒤를 따랐다.

셋의 그런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백재한과 강은영의 얼굴에는 푸근한 미소가 가득했다.

"그 뒤로 한 번도 연락을 주고받지 않은 것 같아서 저 아이가 우리 애들을 어색해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조금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건 아닌 모양이네요."

"그러게 말이야. 꼭 예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 같지 않아?"

"그러게 말이야, 형."

"응?"

둘의 대화에 끼어든 목소리에 백재한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머리를 왁스로 자연스럽게 고정시키고 검은색 예복을 차려입은 채 둘을 게슴츠레한 눈으로 바라보는 백재건이 있었다.

"형하고 형수님. 거 너무한 거 아닙니까? 식장에 오셨으면 오늘의 주인공을 먼저 찾아와 주셔야지 축의금만 넣고 끝이에요? 예?"

"어머, 호호호호호. 그럴 리가 있겠어요. 원래 주인공은 늦게 등장하는 법이라잖아요. 안 그래요?"

"그래, 그 말이 맞아."

"능청은......."

게슴츠레한 눈을 하고 있던 백재건은 이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괘씸하기는 했지만 이번은 특별히 넘어가 주기로 했다.

"그나저나 도련님, 오늘의 진짜 주인공인 신부님 얼굴은 보고 오셨어요?"

"네? ......아하하하하하. 이야~ 막상 당일에 보려니까 떨려서 아직 못 봤어요. 그리고 원래 좋은 거는 나중에 본다고들 하잖아요? 식장 안에서 보려고 아끼고 있는 중입니다."

지금까지 드레스 투어를 다니며 이미 많이 보았던 모습이지만 막상 당일이 되어 보려고 하니 가슴의 두근거림부터가 달랐다.

지금 미리 보았다가는 나중의 기쁨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백재건의 가슴속에서 그에게 경고를 보내오고 있었다.

"후후후, 그래. 내가 그 기분 잘 알지. 그때만큼 은영이가 예쁘게 보였던 적이 없었거든."

"여보, 그렇다는 건 지금은 제가 예쁘지 않다는 소리인가요?"

"응? 아, 아니. 지금도 충분히 예쁘지! 그때가 제일 예뻤었다는 소리야."

"......백재한 씨, 식 끝나고 저랑 일대일로 면담 좀 하시죠,"

"예, 예......?"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얼른 백재한과 강은영에게서 벗어나야 한다는 경고도 보내오고 있었다.

'아...... 이건 형이 잘못했네.'

"그럼 저는 가 볼게요, 형수님."

"어? 야! 날 두고 가지 마! 아악! 은영아, 귀! 귀!"

"호호호호, 어서 가 보세요, 도련님."

백재한의 귀를 잡아당기면서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손을 흔드는 강은영의 인사를 받으며 백재건은 바로 둘의 곁을 이탈하여 손님들을 맞이하러 갔다.

벌써 식이 시작하기 20분 전, 이미 초대한 하객들의 대부분이 도착해 있는 시점이었다.

그때 예상치 못한 손님이 홀에 도착했다.

"뭐야...... 쟤가 왜 여기에 온 거야?"

그 예상치 못한 손님이 향한 곳은 가슴에 코르사주를 꽂고 면장갑까지 끼고 있는, 누가 보기에도 오늘의 주인공들의 가족 같아 보이는 차림을 한 호영이었다.

원래라면 백재건에게 찾아갔어야 했지만 호영이 백재건보다 엘리베이터와 가까운 위치에 있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

뒤에서 자신에게 건네져 오는 인사 소리에 자동적으로 웃는 얼굴로 상대방을 향해 고개를 돌린 호영은 얼굴에 그렸던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지워져 버렸다'라는 표현이 더 옳을지도 모른다.

호영에게 인사를 건네 온 이는 호영이 웃음을 지어 보이며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니었으니까.

* * *

"팀장님, 청첩장도 없는데 통과시켜도 괜찮았던 걸까요?"

7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청첩장의 검사를 맡고 있던 가드 중 한 명이 같이 일을 하고 있던 가드 팀 팀장에게 우려를 표했다.

"괜찮아. 딱히 수상한 사람도 아니잖냐. 오히려 유명한 사람이고."

"하지만 그래도 초대받은 손님이 아니잖아요."

"괜찮으니까, 걱정 마. 나만 믿어라."

"괜찮지 않아요!"

팀장은 그리 말했지만 전혀 괜찮은 상황이 아니었다.

그 증거로 가드에게 방금 입장한 이의 청첩장의 유무를 물어보기 위해 재빠르게 다가왔던 백재건이 둘의 대화를 듣고 팀장에게 속삭이듯이 소리쳤다.

"제가 뭐라고 했었죠? 청첩장을 가진 사람들만 통과시키라고 했을 텐데요."

"예? 아니, 그게......."

"아무리 유명인이라고 해도 청첩장이 없으면 저희 손님이 아닙니다. ......이 일은 위에 잘 전달해 놓을 테니 그렇게들 알고계세요."

가드 팀에게 못을 박은 백재건은 걱정 어린 눈동자로 호영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둘 사이를 떼어 놓고 싶었지만 이미 둘에게 하객들의 시선이 몰린 상황, 억지로 둘을 떼어 놓는다면 이야기가 나돌 것이 뻔했다.

'호영아.......'

지금은 호영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왜 여기에.......'

호영은 굳은 얼굴로 눈앞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 좋은 웃음을 얼굴에 그리고 있었지만 전혀 그렇지 못한 사람.

설마 이러한 곳에서 마주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

게임 속에서 봤을 때와 실제로 봤을 때는 생각보다 큰 차이가 있었다.

굳어서 움직임이 없는 얼굴 근육과는 반대로 호영의 가슴은 세차게 펌프질을 해 대는 중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대현이라고 해요."

하지만 이대현의 한마디에 호영은 격하게 뛰던 자신의 심장과 머리가 싸늘하게 식으면서 무언가가 가슴속 깊이 가라앉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희 처음 만나는 건가요?"

"예, 이리 잘생기신 분과 구면이었다면 제가 잊을 리가 없잖아요. 하하하."

이대현의 말에 호영은 그에게 보이지 않도록 해서 주먹을 강하게 말아 쥐었다.

'그렇구나, 너한테 나는 기억에 조차 남지 않을 사람이었구나.......'

자신한테는 떨칠 수 없는 기억이 되어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데.

피해자인 자신은 그 기억으로 인해서 세상을 두려워하며 떨고 지냈는데.

가해자인 너의 머릿속에는 기억조차 남아 있지 않구나.

'......너한테 있어서 네가 나에게 했던 일은 잊어버릴 수 있는 가벼운 기억이었구나.'

호영은 지난 시간이 억울하게 느껴졌다.

동시에 낮은 분노가 그의 마음속에서 작은 싹을 피웠다.

그런 호영은 굳은 얼굴을 풀고 입으로 호선을 그려 보이며 이대현이 내밀었던 악수를 받아 주었다.

"그러네요. 처음 뵙겠습니다. 선.호.영이라고 합니다."

"멋진 이름이시네요."

호영의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그렇지 않았다.

* * *

"태양 중학교에서 온 선호영이라고 합니다. 크게 잘하는 것은 없지만 크게 못하는 것도 없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짝짝짝짝짝.

호영이 커다란 목소리로 자기소개를 하자 큰 박수 소리가 교실에서 터져 나왔고 호영은 큰 박수 소리에 멋쩍은 듯이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에 앉았다.

선호영 나이 17세, 3월 1일인 오늘은 고등학교의 입학식 날이었다.

"이 녀석 이거, 은근히 자기 자랑을 하시고 앉았네? 뭐든지 잘한다는 걸 돌려 말하는 거냐?"

"아니, 그냥 진심을 말한 것뿐인데."

호영이 자리에 앉자 그의 옆자리의 주인인 같은 태양 중학교 출신의 친구 김희반이 호영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장난을 걸어왔고 둘이 장난을 치고 있는 중에도 자기소개 시간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안녕하세요, 모곡 중학교에서 온 양희성입니다."

"태양 중학교에서 온 오희연입니다. 자, 잘 부탁드려요!"

호영은 반 친구들의 얼굴을 익히기 위해서 자기소개를 하는 아이들의 얼굴을 쫓으며 시선을 움직였다.

그런 호영의 시선이 이번에 자기소개를 할 소년의 얼굴에서 멈춰 섰다.

가지런히 정리된 머리와 훈훈한 외모를 가지고 있는 남자.

"안녕하세요, 영문 중학교에서 온 이대현입니다. 모두 잘 부탁해."

그가 허리를 살짝 숙이자 호영 때만큼이나 큰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크으~ 쟤랑 같은 반이라니, 이 1년은 편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응? 그게 무슨 소리야?"

김희반의 말에 호영이 의문을 표하자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호영의 귓가에 속삭였다.

"야, 너는 그것도 모르냐? 이대현 쟤 할아버지가 난진 그룹 회장이잖아. 쟤랑 같은 중학교 출신인 애들 말에 따르면 선생들이 쟤가 있는 반에는 찍소리도 못 했다더라."

"그래?"

그게 그렇게 좋은 건가?

호영은 그러한 생각이 들었지만 기뻐하고 있는 김희반의 기분을 망치기 싫었기에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그때 자기소개를 마치고 자리에 앉는 이대현과 호영의 눈이 마주쳤고 이대현이 웃으며 호영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의 인사를 무시할 수 없었기에 호영도 이대현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선호영과 이대현의 좋지 않은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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