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6권 18화
18. 축복받을 날(1)
권현우의 황제 즉위식이 거행된 뒤로 열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미쳐 버린 대군이 황권에 올랐다는 사실에 백성들의 얼굴에는 앞으로의 일에 대한 걱정으로 근심이 가득했지만 의외로 이 10일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것이 백성들에게는 폭풍 전 고요함처럼 느껴졌지만 궁궐에서는 이미 폭풍이 불어닥치고 있는 상황이었다.
황제에게 빌붙어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던 친황제파의 면면들이 조용히 숙청되었고 권현우가 평소에 눈여겨보았던 사람들을 관직에 임명하여 그 자리를 채웠다.
또한 백성들의 혈세를 깎아 먹는 국법들의 개정을 추진 중에 있으며 마을 관리 체제의 강화를 진행 중이었고 기타 여러 가지 일들을 김청도의 도움을 받아 차근차근히 진행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권현우가 제일 신경을 써 가며 진행 중인 일은 세금의 문제와 루제로스와의 동맹이었다.
권현우가 황제에 오른 직후 제프리노의 뜻으로 인하여 호야의 통신 수정구가 조제연을 통해 그에게 전해졌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권현우와 제프리노는 지도자와 지도자의 위치에서 서로의 의견을 조율해 나갔다.
그들이 해야 할 것은 서로의 동맹을 양국의 백성과 국민들에게 알리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었다.
조정 대신들은 처음에 자신들이 알지도 못하는 나라와 동맹이 이미 이루어졌다는 것에 혼란과 불안이 있었으나 권현우가 보인 행보로 인하여 그들은 서대륙과의 동맹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권현우가 그 짧은 시간에 진행하고 이루어 낸 일들로 인해서 그가 진심으로 백성들을 위해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 것이다.
게다가 자신들에게 우호적이고 동등한 위치에서의 동맹이라면 실이 아닐 것이라 여긴 것도 있다.
에반이 은근히 보여 준 서대륙의 기술들은 꽤나 도움이 될 것 같은 것들이었으니까.
황제의 결정에 반기를 들 수 없다는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권현우의 개혁을 탐탁지 않아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개혁이 완전히 이루어지면 자신들의 생활도 끝이라 생각했기에 권현우의 암살을 시도했으나 에반과 조제연의 힘으로 인해 암살 시도는 수포로 돌아갔고 그들은 한 방울의 피가 되어 사라졌다.
이제 조정 대신들의 머릿속에서 권현우는 미쳐 버린 대군이 아닌 제대로 나라를 이끌어 가 줄 황제 폐하가 되어 있었다.
수십 년간 발톱을 숨기고 지금까지 견뎌 왔다는 것에 감동과 경외를 보인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얼마 뒤 권현우가 짧은 시간 동안 이루어 낸 것과 서대륙과의 동맹 사실이 벽보를 통해 백성들에게 알려졌다.
다른 나라와의 동맹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백성들이 걱정을 보일 법도 했지만 그것과 같이 알려진 것들로 인하여 그 걱정들은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다.
"세상에나! 세금이 거의 반절이나 줄어들었어!"
"그게 다가 아니야. 관아에 신청하면 지금까지 낸 세금의 일정량을 돌려준대!"
"진짜? ......헉! 진짜네!"
"루제로스라는 나라에서 지원도 온다고 하는디?"
세금의 감소 및 반환, 일부 국법의 개정 등 백성들에게 좋은 이야기만 담겨 있는 것에 일부 백성들은 혹시 뒤에 구린 게 있을지도 모른다며 의심을 표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 * *
그 뒤로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동대륙의 서쪽 바다에 수 척의 배가 정박하였다.
제일 높고 커다란 돛대의 위에 걸려 펄럭이는 깃발에는 호야가 한동 문고의 주인에게 건네었던 금화에 새겨져 있는 문장과 같은 것이 그려져 있었다.
권현우와의 동맹 체결을 위해 동대륙에 찾아온 제프리노가 타고 있는 루제로스의 배였다.
이미 동맹은 맺어진 상태이나 정식적인 자리에서 동맹을 체결하는 모습을 겉으로 보여 줄 필요가 있었기에 제프리노가 직접 배를 타고 건너온 것이다.
에반의 안내로 동대륙으로 오기 위하여 지나오는 해역들에는 암초와 거친 파도, 희뿌연 안개와 몬스터 등의 위험이 넘실거렸지만 지나오지 못할 길은 아니었다.
하지만 병사들의 힘과 에반의 마법이 걸려 있는 배 덕분에 가능했던 항해인 것이지 일반 배로는 도저히 지나다닐 곳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양국의 대륙 간의 교류는 시간이 좀 더 걸릴 듯하다.
에반이 알려 준 땅굴을 이용하면 조금 더 안전하고 빠른 이동이 가능할 것이지만 그곳을 사용하는 것은 여러 의미로 위험할뿐더러 이러한 일은 오고 가는 형태가 중요했다.
제프리노와 권현우의 동맹을 체결하는 모습은 마탑이 준비해 온 아이템들을 통해서 허공에 그 모습을 비춰 백성들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그 영상을 통해서 권현우의 모습을 처음으로 본 백성들은 머릿속에서 미쳐 버린 대군이라는 선입견을 지워야 했다.
표면적인 동맹의 의식이 끝나자 서대륙에서 다시 한 번 배가 건너왔다.
그 배에 타고 있는 것은 권현우와 약속했던 지원을 위한 인력들이었고 그중에는 NPC들만이 아닌 플레이어들도 섞여 있었다.
"설마 이런 식으로 동대륙으로 넘어오게 될 줄이야......."
"큭큭큭, 그러게 말이야. 그래도 동대륙과 서대륙을 오고 갈 수 있는 길을 찾은 게 아니라 일 끝나고 돌아가면 끝이지만. 복귀까지가 퀘스트잖아."
"하지만 너는 워프 사용하면 다시 올 수 있지 않냐?"
"어? ......생각해 보니 그러네."
항구에 배를 대기를 기다리며 갑판에서 동대륙을 바라보던 종기는 페드라의 말에 자신의 손바닥을 주먹으로 약하게 내려쳤다.
확실히 워프를 배운 자신이라면 스킬을 사용하여 오고 갈 수 있었다.
"거기 둘! 공주님이 슬슬 내릴 것 같다고 모이란다!"
"아, 예."
"옛써!"
그때 아르코가 소리를 쳐 종기와 페드라를 불렀다.
그의 말에 선내로 들어가자 설백호의 간부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현재 그들이 타고 있는 배에 있는 플레이어들은 설백호와 아카하네, 기타 제작 계열 직업을 가진 이들뿐이었다.
아레나와 도반, 유아를 포함한 다른 플레이어들은 다른 배에 나눠서 탄 상태였다.
배가 항구에 정착한 뒤 배에서 내리자 호기심으로 인해 그들을 보기 위해서 모여든 항구 마을의 주민들이 모여서 벽을 이루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에 로열 나이츠와 호야가 있었다.
로열 나이츠도 호야를 통하여 에반에게 배를 타고 넘어온 플레이어들과 같은 퀘스트를 받은 상태였고 그것은 호야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 퀘스트의 원인을 만든 것이 자신이라는 사실은 숨긴 채.
"호야 니......."
"호야 니이이이임!"
종기가 오랜만에 보는 그의 얼굴에 반가워서 달려가려던 순간 옆 배에서 내린 플레이어 한 명이 그보다도 빠르게 호야를 향해 달려갔다.
호야의 앞에 도착한 그녀는 호야의 손을 잡으며 인사를 건네 왔다.
"아, 안녕하세요! 스트리머인 바니라고 해요! 유아 오빠의 여자 친구예요! 평소에 호야 님 팬이에요! 정말 좋아해요!"
"아, 네. 안녕하세요."
"꺄악! 호야 님이 내 인사를 받아 줬어!"
그러고는 상기된 얼굴로 그의 손을 위아래로 세차게 흔들었다.
"저기, 저기! 같이 스샷 하나만 찍어 주실 수 있을까요?"
"네? 네에."
"꺄악! 감사합니다!"
바니는 호야의 승낙에 그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 스샷 하나를 찍었고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둘의 모습을 본 유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허허......, 너 너무한 거 아니야?"
"응? 오빠, 뭐가?"
"네가 호야 팬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남자 친구의 바로 앞에서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꺼내는 건 너무하지 않아?"
"응? ......아하."
유아의 반응에 바니가 씨익 웃어 보였다.
"오빠, 지금 질투하는 거지? 막 걱정되고 그래?"
"따, 딱히 걱정은 무슨! 그냥 그렇다는 거지......."
유아의 반응에 싱글싱글 웃던 바니는 조금씩 유아에게로 다가가 그의 허리를 꼬옥 끌어안아 주었다.
"호야 님은 그냥 팬심으로 좋아하는 거고 우리 오빠는 세상에서 제일 제에에일! 사랑하고 있는 거니까 걱정하지 마. 그래도 걱정된다면 다음부터는 안 그럴게. 응? 나한테는 오빠밖에 없는 거 알잖아?"
"누, 누가 언제 걱정을 했다고 그래!"
유아는 부정의 말을 내뱉었지만 표정을 보아하니 방금 바니가 한 말이 썩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가만 보면 유아는 참 단순하다니까.'
호야는 그런 생각을 하며 둘의 모습을 보고 살짝 웃어 보였다.
유아의 그런 면을 호야는 좋아한다.
바니를 시작으로 호야와 안면이 있던 이들이 그에게 인사를 건네 왔고 안면이 없던 이들도 허락을 구하듯이 그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네었다.
호야는 그런 이들을 모두 성심껏 상대해 주었다.
"인기 많네."
전체적으로 인사가 끝난 뒤 모두가 처음부터 정해진 그룹으로 퀘스트를 시작하기 위해 서로 모여들고 있을 때 백설이 호야에게 다가왔다.
"아하하하......, 그렇지는 않아요."
"흐음. 그래, 그런 걸로 칠게. 그것보다 말이야, 나랑 번호까지 교환했으면서 여태까지 연락 한 번을 안 하더라?"
"네?"
"설마 내가 먼저 연락하기를 기다렸던 거는 아니지? 그리고 한 가지 더, 우리 말 놓기로 했던 거 아니었어?"
백설의 말에 호야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때 눈치챈 낌새가 보이기는 했지만 이렇게 확신을 받으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호민이는 알아요? 아니, 알아?"
"응? 뭐가? 그렇게 형님, 형님 노래를 부르던 사람이 진짜 형님이 됐다는 거?"
"......그래, 그거."
"아직 모를걸? 걔가 이상한 데서 은근히 눈치가 없거든. 아마 알고 난 뒤에 반응 좀 볼만할 거야."
백설은 그리 말하며 약간 사악하면서 짓궂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낮게 웃었다.
"그럼 오늘은 퀘스트 열심히 하고 내일 식장에서 봐."
"......그래, 내일 봐."
호야와 인사를 주고받은 백설은 설백호의 길드원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그리하여 혼자 남게 된 호야에게 유아가 히죽거리는 얼굴로 다가와 팔로 호야의 목을 휘감았다.
"뭐야, 뭐야~? 저 얼음 공주님이랑 뭔가 있는 거야? 그렇고 그런 사이인 거야~?"
"그렇고 그런 사이라니?"
"사귀는 사이."
유아의 말에 호야가 잠시 가면 아래로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큰 웃음을 터트렸다.
"크흐흐흑...... 아, 아니야. 그런 사이 아니야."
"흐음, 아닌데. 둘 사이에 뭔가 끈이 이어져 있는 게 보이는데."
유아의 추측대로 둘 사이에 끈이 이어져 있었지만 유아가 생각한 끈과는 다른 끈이었다.
유아가 생각한 끈으로 이어지면 절대로 안 되는 사이이기도 했다.
* * *
서울 강북구에 위치한 엘리시아 웨딩 홀의 7층은 오늘 식을 올리는 신랑 신부를 축하해 주기 위해 모인 하객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어머, 어머! 네가 예숙이 아들이니? 몇 년 안 본 사이에 많이 컸다 얘!"
"이모 기억하니? 예전에 야근하고 퇴근길에 막차가 끊겨서 너희 집에 자주 신세 지고 그랬는데 말이야."
"아....... 네, 기억나요."
"와...... 이 팀장님한테 이렇게 잘생긴 아들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얘, 혹시 여자 친구는 있니?"
"아서라, 얘 너랑 띠동갑이다. 어디서 도둑질을 하려고 그래?"
"선배님 그거 몰라요? 요즘은 12살 차이는 아무것도 아니라고요!"
"하하하하......."
그 웨딩 홀에서 하객을 맞이해 주고 있는 호영은 아주 죽을 맛이었다.
하객들의 관심으로 인해서 식이 시작되기도 전인데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큰 피로가 느껴져 왔다.
하지만 그 피로들도 한곳을 바라보면 곧바로 사라지고 있었다.
호영은 피로를 풀기 위하여 한곳으로 시선을 보내었고 그곳에는 단어 몇 개가 쓰여 있었다.
신랑 백재건, 신부 이예숙.
그렇다.
오늘은 이예숙과 백재건의 결혼식이 있는 아주 뜻깊은 날이었다.
'결혼 축하드려요, 엄마, 아빠.'
호영의 얼굴에 온화한 미소가 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