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는 마을사람-140화 (140/171)

# 140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6권 17화

17. 새로운 하늘(2)

"안녕하세요, 미호 님."

"그래, 오랜만이구나."

컨서누는 미호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었고 미호도 자연스럽게 그 인사를 받아 주었다.

"둘이 아는 사이예요?"

"네, 딱 한 번 봤을 뿐이지만요. 모안에게서 이야기는 미리 들었지만 설마 싶었어요."

컨서누는 미호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그의 미소에서는 살짝 아련함이 엿보였다.

그때 호야가 컨서누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물어보고 싶다는 게 뭐예요?"

"아, 그게 말이죠...... 지금 권나라가 어떤지 궁금해서 그걸 물어보려고 한 거예요."

'지금 권나라가 어떠한가라.......'

솔직히 그리 좋다고 할 만한 상황은 아니다.

앞으로는 좋아지겠지만 지금은 아니니까.

호야가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고민하던 때 단탈스가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러고 보니 컨서누는 그 나라의 황자였다고 했었지. 역시 옛날이 그리운 거냐?"

"네? 아뇨, 그게...... 그러니까......."

"정 그렇다면 한번 다녀와라. 괜히 쌓아 두고 있다가는 속에서 곪는다."

"......."

컨서누는 단탈스의 말에 뭐라 답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본 호야는 컨서누에게 지금 권나라의 상황에 대하여 스스럼없이 말해 주었다.

단탈스의 질문으로 인해서 그의 가슴속에 있는 망설임을 읽었기 때문에 그의 선택에 도움을 주기 위함이었다.

* * *

황제의 침소가 지하로 무너지며 일어났던 일들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조정 대신들의 일부가 조심스레 한방으로 모여들었다.

현 조정 대신들은 크게 세 개의 파로 나뉜다.

첫 번째는 황제 권일우의 편에 서서 그에게의 아첨을 서슴지 않으며 그에게서 떨어지는 콩고물을 받아먹는 친황제파.

두 번째는 황제 권일우의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인지하고 있지만 그의 보복을 두려워해 자신들의 의지를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친백성파.

세 번째는 득도 없는 대신에 피해도 없기를 바라며 친황제파와 친백성파의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중립.

그들의 비율은 친황제파가 5, 친백성파가 2, 중립이 3이다.

조심스레 모여든 이들은 친황제파의 인물들이었다.

"권일우 폐하께서 훙거하셨다. 앞으로의 일에 대하여 자네들의 의견을 듣고 싶군,"

그들이 모인 이유는 구출된 궁녀들의 증언과 권일우의 행적으로 인하여 그의 사망이 확정되었기에 앞으로의 일을 도모하기 위해서였다.

권일우가 죽어 친황제파의 가장 큰 힘이 사라진 상황이었기에 언제 친백성파가 날개를 펴고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은 이들이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한시라도 다시 힘을 키워야 할 필요가 있었고 그 방법을 정해야 했다.

하지만 모두가 눈치를 보느라 쉽사리 입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황제가 죽은 것은 차라리 잘된 일 아닙니까."

그때 남익현 관리가 입을 열었다.

거리낌 없는 그의 말에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이 겉으로 동요를 내보였다.

"모두 저와 같은 생각이시지 않습니까. 우리 사이에 이렇게 눈치 보며 입 다물지 말죠."

"크흠, 조금 입조심하는 편이 좋을 것 같네만."

"제 말이 틀린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황제는 조금씩 우리의 손을 벗어나고 있었습니다. 말을 듣지 않는 인형이 사라진 것은 좋은 일이지요."

남익현은 말을 끊고서 눈동자만을 굴려서 좌중을 둘러보았다.

모두가 입을 열기를 꺼리고 있었지만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것을 확인한 그가 살짝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 말을 잘 듣는 새로운 꼭두각시를 올리면 될 일입니다. 우리에게는 황족의 유일한 핏줄이 남아 있지 않습니까?"

"끄응......, 그렇긴 하지만 그 미현은 황제의 말이 아니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좋은 겁니다. 다들 그거 아십니까? 미현은 황제가 직접 한 말이 아니라고 해도 다른 이가 황제가 한 말이라고 하면 그 말을 믿고 따라 줍니다. 어차피 황제가 죽은 것도 모르고 있고 앞으로도 모를 테니 우리에게는 좋은 인형이 될 것입니다."

남익현의 말이 맞는다면 그보다 더 황제의 자리에 어울리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리 생각했기에 친황제파는 권현우를 황제의 자리에 올리는 것을 지금의 목표로 잡았다.

"김청도의 일당들이 반대를 표할 가능성이 있지만 어차피 수는 우리가 더 많습니다. 그러니 일단 미현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것은 기정사실. 그러니 지금은 황제의 죽음을 알릴 이야기를 지어내야 할 때입니다. 황제가 흡혈귀였다는 사실을 그대로 알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날 밤에 구름을 뚫고 땅으로 내려왔던 빛의 기둥은 백성들의 눈에도 들어갔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지금 백성들의 사이에서는 여러 가지 추측이 나돌고 있는 중이었다.

조정 대신들은 그것의 정체가 황제를 죽였던 자의 힘이라는 사실을 궁녀들을 통해 알아내었지만 그 사실을 그대로 공표할 수도 없는 법이다.

아마 나돌고 있는 추측들 중 하나를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이용한다면 빛의 기둥에 대해서는 얼버무릴 수 있을 것이다.

"저기, 이러한 것은 어떠할까요?"

그때 한 명이 조심스레 의견을 내보였다.

* * *

그로부터 며칠 뒤, 원래라면 두 달의 일정으로 화회 마을에 있었을 터인 권현우가 급하게 탄양으로 불려 왔다.

그리고 권현우가 궁에 입궐함과 동시에 벽보가 붙어 권일우의 사망이 백성들에게 알려졌다.

벽보에는 빛의 기둥이 하늘에서 내려진 날에 권일우가 지병으로 사망했으며 빛의 기둥은 하늘이 그를 인도해 주기 위해 내린 길이라 쓰여 있었다.

그리고 권일우의 사망만큼 중요한 사실이 그 아래에 쓰여 있었다.

"뭐라고......? 권현우 대군을 황제로 추대해?"

"조정 대신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결정을......."

"그 자식들의 대부분은 권일우 황제의 파벌이었어. 자신들의 사욕을 채우기 위해 꼭두각시를 앉히려는 것이 분명해!"

"아아, 지금보다 살기 더 힘들어지는 거 아니야?"

그 내용은 비어 버린 황제의 자리를 채우기 위하여 권현우의 황제 즉위식을 거행한다는 것이었다.

어린아이보다 못한 권현우를 황제의 자리에 올린다니.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고 바꾸고 싶은 현실이지만 바꿀 수 없는 현실이었다.

백성들의 불만이 조금씩 커져 가기 시작했지만 벽보가 붙은 지 이틀 후 권현우의 황제 즉위식이 예정대로 거행되었다.

겉으로는 권일우가 병으로 인해 사망한 상황이었기에 즉위식은 사위(嗣位)의 형태로 간략하고 장중하게 이루어졌다.

그런 분위기에 맞지 않게 권현우는 상복을 입은 채 즉위식 내내 배시시한 미소를 얼굴에 그리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의 그런 미소를 보고 그를 안타깝게 여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몰래 조소를 흘리는 자들도 있었다.

"대군, 이쪽으로 오시지요."

궁궐의 중심, 성정전의 안으로 권현우가 인도되었다.

이제 옥새를 받아 의식을 치른 뒤 권현우가가 옥새를 들고 옥좌에 앉는 것으로 즉위식의 중요 의식은 끝이 난다.

그 뒤에 황제가 즉위사를 말할 시간이 준비되어 있지만 권현우에게는 필요치 않은 시간이라 그들은 생각하고 있었다.

"자, 대군, 오른손을 내밀어 주십시오."

권일우를 모시던 환관 종명이 날카로운 바늘 하나를 들어 보이며 말하자 권현우는 배시시한 웃음을 지우고 살짝 겁먹은 표정으로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괜찮습니다, 대군. 살짝 따끔할 뿐입니다. 황제 폐하께서 원하시는 일인데 그래도 싫으십니까."

종명의 입에서 황제 폐하라는 말이 나오자 권현우가 미간을 찌푸린 채로 눈을 굴리며 잠시 고민하더니 눈을 질끈 감고 오른손을 그에게 내밀었다.

"잘하셨습니다."

종명이 관례상 예와 함께 옥체가 될 몸에 상처를 내는 것에 대한 사죄를 고한 뒤 권현우의 검지를 바늘로 가볍게 찔렀다.

이는 원래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본인이 직접 해야 할 일이었지만 권현우는 그럴 상태가 아니었기에 그가 대신 행한 것이다.

권현우의 검지에서 붉고 작은 핏방울 하나가 튀어나오자 종명은 그의 손목을 잡고서 옥새의 위로 핏방울이 떨어질 수 있도록 그의 손을 기울였다.

핏방울 하나가 권현우의 손가락을 짧게 타고 옥새 위로 떨어지자 옥새에 조각되어 있는 황금용의 눈동자가 금빛을 버리고 붉은 눈을 빛내었다.

권일우가 사망하면서 비워졌던 옥새의 주인의 자리를 권현우가 제대로 이어받았다는 표시였다.

권나라 최초의 황제가 만들었다 전해 내려오는 옥새는 권나라와 황제의 권위의 상징이다.

"대군, 이제 이것을 들고 저 의자에 앉으시면 됩니다."

종명의 말에 오른손 검지를 빨던 권현우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에게서 옥새를 받아 들어 옥좌로 향하는 낮은 계단을 올랐다.

권현우가 옥좌에 앉는 순간 그는 더 이상 대군이 아닌 황제 폐하가 된다.

그것이 자신들을 위한 새로운 황제, 이전과 같은 걱정이 없을 꼭두각시의 탄생이라고 친황제파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들의 착각이었다는 것을 그들은 바로 깨닫게 되었다.

친백성파인 김청도가 권현우를 황제로 올리는 것에 큰 반대를 보이지 않았던 때에 그들은 눈치를 챘어야 했다.

털썩.

권현우가 옥좌에 앉은 것을 확인한 종명이 즉위식의 끝을 알리기 위하여 입을 열려고 했다.

"내 한마디 하겠다."

하지만 그때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그의 말을 가로막은 목소리가 있었다.

고요한 성정전의 안에 울려 퍼진 목소리의 주인을 찾아 시선을 굴려 목소리가 생겨난 방향을 바라본 이들 중 김청도와 친백성파의 일부를 제외한 모든 이들은 크게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전혀 상상치 못한 모습이 펼쳐져 있으니까.

목소리가 들려온 곳, 그곳에는 평소와 같은 배시시한 미소가 아닌 호랑이와 같은 지도자의 눈빛을 빛내고 있는 권현우가 있었다.

"무, 무슨......."

"황제의 말이 곧 법이며 하늘의 말씀이나 다름없으니."

놀라움을 숨기지 못하는 이들의 반응을 무시한 채 권현우가 그들의 앞에서 완벽한 문장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이를 부정한다는 것은 곧 하늘을 부정한다는 것. 권나라 그 자체를 부정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하늘의 말이나 다름없는 황제의 말은 절대적 권위와 강제성을 지닌다."

"도, 도대체 무슨......."

권현우의 행동에 누구보다도 크게 놀란 남익현이 목소리를 흘리자 권현우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권현우의 시선을 받은 그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찔거렸다.

"무엇이냐니. 자네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국법의 첫 구절이다."

뒤늦게나마 퍼뜩 정신을 차린 남익현은 눈알을 굴려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든 이들의 표정이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이에 손톱만큼의 놀라움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옅은 호선을 입에 그리고 있는 자가 있었다.

친백성파의 수장 김청도.

그의 얼굴은 마치 이러한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고 말해 주는 것만 같았다.

'김청도 네 이놈......!'

남익현이 김청도를 노려보자 그 시선을 느낀 김청도가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이내 소리는 내지 않고 입만을 뻥끗거려서 남익현에게 말을 전했다.

지금까지 백성들을 쥐어짜 내어 네 녀석들이 채운 사리사욕들, 그것들을 모두 뱉어 내는 것은 물론이고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황제가 되어 첫 번째로 자네들에게 소개할 이가 있다."

그때 권현우가 그리 말하자 옥좌의 계단 바로 앞에 한 인물이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형태의 복식을 입고 있는 남자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루제로스의 사자 에반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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