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는 마을사람-135화 (135/171)

# 135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6권 12화

12. 하늘을 바꾸기 위해서(2)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공간.

그곳을 밝혀 주고 있는 것이라고는 권일우가 들고 있는 작은 등잔불이 유일했다.

자신의 발아래 정도밖에 밝혀 주지 못하는 작은 불이었지만 권일우의 발걸음에는 거침이 없었다.

걸음을 옮기던 권일우가 불현듯 걸음을 멈추고는 등잔불을 들고 있는 왼손을 움직여 자신의 바로 옆을 비추었다.

등잔불이 비친 곳은 습기로 인해서 이끼가 가득 자라나 있는 돌벽이었다.

그곳에 손과 발이 구속되어 있는 여자가 벽에 고정된 쇠사슬에 묶인 채 흙바닥에 축 늘어져 앉아 있었다.

마치 영혼이 나간 것처럼 멍을 때리고 있던 그녀는 불현듯 권일우의 기척과 등잔불의 불빛을 느끼고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정신을 차린 그녀의 눈은 절망과 공포로 물들어 떨리고 있었다.

"아......, 아아....... 사, 살려 주, 세요......."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지만 눈물샘은 이미 옛 저녁에 말라 있었기에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런 여자의 행동에 권일우는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등잔불의 불을 입으로 불어 껐다.

등잔불이 꺼지자 여자가 더 격하게 몸을 떨어 왔다.

불이 꺼지면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지금까지 그가 등잔불을 껐을 때 앞에 있던 자가 어떠한 일을 당했는지를 알고 있었으니까.

자신의 앞에서 그랬다는 것은 이번은 자신의 차례라는 뜻이었다.

"제, 제발......!"

그녀의 목소리는 그것을 끝으로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둠 속에서 종소리가 작게 울려 퍼졌다.

누군가 자신의 침소에 다가왔을 때 알기 위하여 권일우가 해 놓은 장치였다.

지금 시간을 봐서는 자신의 아침잠을 깨우기 위하여 오고 있는 것일 거라고 그는 판단했다.

"시간 한번 딱딱 지키는군."

권일우는 불이 꺼진 등잔을 들고서 이곳을 빠져나가 위로 올라가기 위하여 걸음을 옮겼다.

빛을 밝혀 주는 불빛이 하나도 없는 어둠투성이인 곳이었지만 권일우는 마치 앞이 보이기라도 한다는 듯이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보였다.

그가 바깥으로 통하는 문을 열자 틈새로 들어오는 옅은 빛이 권일우의 모습을 비추어 주었다.

그의 새하얀 잠옷은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 * *

'보스 몬스터?'

퀘스트의 성공 조건에서 권일우를 보스 몬스터라 칭하고 있는 것이 원인이었다.

NPC를 잡아야 하는 퀘스트가 뜬 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이전에 마교 간부의 토벌로 인해서 드하이와 피아의 토벌 퀘스트가 뜬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 퀘스트는 둘을 보스 몬스터라고 칭하지 않았다.

그 둘은 NPC이고 몬스터가 아니니까.

'설마......, 권일우가 몬스터?'

퀘스트에 쓰여 있는 증거가 있었기에 허무맹랑한 가설은 아니었다.

"호야?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어?"

그때 에반이 호야의 정신을 바깥으로 끄집어내었다.

"네? 아뇨, 아무것도."

"그래? 방금 내가 뭐라고 했었는데?"

"어......, 죄송해요. 못 들었어요."

"그럴 것 같았어."

에반은 호야에게 자신은 제프리노에게 회담의 결과를 전하기 위해서 돌아갈 것이라는 걸 전하고는 호야에게 총 세 가지의 아이템을 건네었다.

"이쪽은 나랑 연락을 하기 위한 수정구, 우리 쪽의 준비가 다 되면 연락할게. 현우 님도 받으세요."

"나는 괜찮다. 오히려 본 적도 없는 물건을 내가 가지고 있다면 괜히 의심만 사게 될 것이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아, 그리고 이쪽 두 개는 귀환석이야. 여기는 워프 스크롤이 없어서 불편할 거 아냐."

에반이 건넨 것은 모안이 가끔 내보이던 것과 비슷하게 생긴 수정구 하나와 육각형의 작은 돌 두 개였다.

호야는 아이템들의 정보를 확인했다.

[통신 수정구]

NPC들이 원거리 통신을 하기 위하여 만든 아이템이며 플레이어도 사용이 가능합니다.

극소수의 NPC들만이 보유하고 있는 아이템입니다.

[귀환석 A-1]

마탑장 에반이 워프 마법을 새겨 넣은 아이템입니다.

다른 귀환석과 연결한 상태에서 사용할 시 연결된 귀환석이 있는 장소로 이동할 수 있으며 재사용에 12시간의 대기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현제 연결되어 있는 귀환석은 '귀환석 A-2'입니다.

[귀환석 A-2]

마탑장 에반이 워프 마법을 새겨 넣은 아이템입니다.

다른 귀환석과 연결한 상태에서 사용할 시 연결된 귀환석이 있는 장소로 이동할 수 있으며 재사용에 12시간의 대기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현제 연결되어 있는 귀환석은 '귀환석 A-1'입니다.

"수정구는 일이 끝나면 회수해야 하지만 귀환석은 가져도 좋아. 솔직히 막 만든 녀석이라서 사용 결과가 필요하거든. 나중에 후기를 알려 줘."

"네, 감사합니다!"

루제로스에는 각 마을마다 워프 스크롤이 존재했지만 모험가가 없던 동대륙에는 모험가들만이 사용 가능한 워프 스크롤이 존재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동대륙은 마을과 마을을 오고 가는 데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하지만 이것이 있으면 갈 때에는 몰라도 돌아올 때에는 빠른 이동이 가능할 것이다.

호야에게 아이템들을 건넨 에반은 워프를 사용해 서대륙으로 돌아갔고 호야와 최도도 권현우에게서 종이 두 장을 받은 뒤에 비밀 통로를 통하여 그곳을 빠져나왔다.

다음에 권현우와 만나는 것은 아마 그가 황제의 자리에 오른 뒤일 것이다.

* * *

다음 날 다시 접속한 호야는 최도의 안내에 따라 권나라의 수도인 탄양을 향했다.

미호의 발을 빌리면 더 빠른 이동이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수도의 주변은 다른 마을에 비하여 병사들의 경계가 강하기 때문에 거대하고 새하얀 여우는 금방 발견되어 버린다는 최도의 의견으로 인해서 호야는 그와 함께 땅을 달리고 있었다.

탄양이 보이는 위치까지 도착한 호야는 머리 염색약을 사용해 머리색을 다시 검은색으로 바꾸고 가면을 벗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최도에게도 사용을 권해 보았지만 머리 염색약은 플레이어 전용의 아이템이었기에 그는 사용할 수 없었다.

"정문으로 통과하는 것은 저 때문에 무리일 겁니다. 수도를 출입할 때에는 얼굴을 가릴 수 없으니까 말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죠?"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애초에 정문으로 들어갈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설마......, 수도에도 그게 있어요?"

"있습니다."

탄양의 성벽과 조금 떨어진 숲속의 나무뿌리의 아래에 지하 땅굴과 비슷한 작은 통로가 있었다.

화회 마을과 달리 일직선이었던 그 길을 통과하니 집과 집사이의 어두운 골목으로 나올 수 있었다.

흑룡대는 수도에도 비밀 통로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곧바로 저희 주둔지로 이동하겠습니다."

호야는 길가로 나서며 모자를 꺼내어 깊게 눌러쓴 최도를 따라서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레 섞여들었다.

원래는 주둔지 아래까지 비밀 통로를 이어 놓고 싶었으나 그렇게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아 중간을 끊어서 짧게 두 개의 통로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호야는 그것도 대단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수도의 경비가 이래도 되나 하는 걱정도 들었다.

자그마한 집 안에 연결해 놓은 비밀 통로를 통해 다시 이동한 그들이 나온 곳은 흑룡대가 주둔지에 있는 훈련장으로 사용하는 정원이었다.

후웅-, 쐐액-!

최도가 그곳으로 나오자 황제의 명령으로 인해 복귀를 해 주둔지에 박혀 훈련을 하고 있던 흑룡대의 병사들이 각자 들고 있던 무기를 휘둘러 왔다.

하지만 최도의 얼굴을 알아본 그들은 곧장 공격을 멈추었다.

먼저 위로 올라온 최도가 병사들에게 손짓을 하여 무기를 거두라는 신호를 보내었다.

"올라오시기 바랍니다."

최도를 따라서 통로 위로 머리를 내민 호야는 자신에게 꽂히는 병사들의 수많은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어......, 안녕하세요."

최도와 조제연을 제외한 흑룡대와 호야의 첫 인사는 호야가 땅속에서 위로 상체만을 내민 상태로 이루어졌다.

"이분이 우리를 도와주고 계시는 서대륙인인 호야 님이다."

그 상태에서 최도가 흑룡대의 사람들에게 호야에 대해 알려 주었다.

'아니, 일단 나가고 해 주시면 좋겠는데.......'

상황이 어찌 되었든지 간에 흑룡대와 간단하게 인사를 마친 호야는 최도를 따라서 건물 안쪽으로 들어갔다.

호야가 안내된 방에는 조제연이 최도에게서 미리 연락을 받고 둘을 기다리고 있었다.

* * *

조제연과의 이야기가 끝나고 밤이 되자 호야는 흑룡대의 주둔지의 제일 깊숙한 방에 귀환석 하나를 설치하고서는 인벤토리에서 권현우가 주었던 종이 두 장을 꺼내었다.

하나는 궁궐의 지도였고 다른 하나는 그가 직접 그린 권일우의 초상화였다.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강한 인상의 남자, 어머니가 달라서 그런 것인지 권현우하고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엄청 잘 그리시네."

권일우의 얼굴을 다시 한 번 확인한 호야는 밤의 어둠 속에서 움직이기 편하도록 이전에 토윤이 주었던 검은색 도복으로 갈아입었다.

지도로 보는 것과 실제로 가 보는 것은 다르다며 미리 궁궐내의 지리를 직접 파악하는 것이 좋다는 조제연의 말에 따라 궁궐로 사전 답사를 하러 갈 생각이었다.

궁궐로 향하기 전, 호야는 미호와 새미를 최도에게 맡겼다.

"내가 같이 가지 않아도 괜찮겠느냐?"

"그냥 둘러보러 가는 것뿐이니까 괜찮아. 게다가 너랑 새미는 하얘서 눈에 띄니까."

"흐음, 그럼 어쩔 수 없지."

바두는 품속에 넣는다면 머리 정도는 내밀어도 괜찮았기에 응원 스킬의 효과를 받기 위하여 호야와 같이 가게 되었다.

"그럼 다녀올게요."

"예."

호야는 최도에게 인사를 하고 비밀 통로를 통해서 성벽 바깥의 멀리 떨어져 있는 숲으로 향했다.

숲에 도착한 호야는 제일 높은 나무를 타고 올라가 플라이를 사용해 구름 속에 숨어들었다.

한동 마을 관리의 집에 들어갔던 것처럼 하늘을 통해 침입할 생각이었다.

궁궐을 지키던 병사들의 눈을 피해 침입에 성공한 호야는 건물 그림자에 몸을 숨기고 인벤토리에서 지도를 꺼내어 지금 자신이 있는 위치를 확인했다.

'현재 위치는 궁궐 중앙의 편전, 황제의 침소는 조금 더 뒤쪽인가.'

편전과 황제의 침소 사이에는 이렇다 할 차폐물이 없어서 길을 크게 돌아서 가야만 했다.

호야는 병사들의 눈을 피하며 기척을 죽여서 궁궐을 크게 돌아 아무 일 없이 황제의 침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불빛이 하나도 없고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황제는 아직 침소에 들기 전으로 보였다.

황제의 침소는 제법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금이 입혀져 있지 않거나 보석 장식이 달리지 않은 가구를 찾기는 매우 어려워 보였다.

호야는 방을 둘러보며 어떻게 퀘스트를 수행해야 할지에 대하여 생각했다.

'황제가 침소에 들어오면 주변 경비가 강해질 거고 지금보다 들어오기 힘들어지겠지.......'

호야는 경비가 비교적 적을 때 침소에 숨어든 뒤에 권일우가 침소에 들어오면 타이밍을 보다가 퀘스트를 수행하자고 속으로 결론을 내렸다.

아직 퀘스트가 어째서 권일우를 보스 몬스터라고 칭하고 있는지가 의문이었지만 퀘스트를 완료한다면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호야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 그의 품속에 있던 바두가 그의 가슴을 앞발로 톡톡 쳐서 호야에게 신호를 보냈다.

"응? 왜 그래?"

"와옹."

[상태: 어디선가 약하게 풍겨져 오는 피 냄새를 맡았습니다. 강해지기 위해서 천천히 발을 내딛고 있는 중입니다.]

"피......?"

바두의 상태를 본 호야가 주변 냄새를 맡았지만 피 냄새 같은 것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바두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정말로 소량이라는 뜻이거나 꽤나 먼 장소에서 피 냄새가 나고 있다는 뜻이었다.

피 냄새를 맡은 바두가 앞발로 가리킨 곳은 낮은 계단 위에 놓여 있는 침대의 머리맡이었다.

"여기서 피 냄새가 난다는 거야?"

"왕."

바두의 말에 따라서 그 근처를 살펴보자 침대 머리맡의 아래 단에 거미줄같이 아주 미세하게 가 있는 금을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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