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는 마을사람-133화 (133/171)

# 133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6권 10화

10. 미쳐 버린 셋째(2)

"그런가, 아직 이야기를 들어 보는 것까지인가......."

호야와 인사를 나눈 권현우는 잠시 고뇌에 잠겼고 호야도 그와 비슷하게 생각에 잠겼다.

'이 사람이 주군.......'

권일우의 막냇동생인 권현우, 그는 호야가 읽었던 책에는 어릴 적 사고로 머리를 다쳐 정신 연령의 성장이 멈춰 버려 이상한 행동을 반복한다고 적혀 있었다.

자라지 않는 어린 황자, 미쳐 버린 대군 등 이러한 것들이 그를 칭하는 단어였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이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호야가 여러 가지 이유로 권현우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자 그가 생각에 잠겨 감고 있던 눈을 뜨고는 호야를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내 이야기를 부디 긍정적으로 들어 주었으면 하네."

"그건 내용에 따라 달라요."

"크큭, 그건 그렇지. 이야기는 대충 들었을 거네. 조 장군에게 어떻게 이야기를 전해 들었나?"

"......반역을 꾀한다고 들었어요."

호야의 대답에 권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는 돌려서 표현하지 않는군. 그래, 나는 형님을 쳐 내고 내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려 하고 있다. 아마 그대도 나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있을 거다. 몸만 자라는 황자, 미쳐 버린 대군. 그리 좋은 수식어들은 아니지. 자네가 보기에 지금의 내가 어떻게 보이는가? 내가 미치고 정신이 자라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가?"

"아뇨."

"그래, 나는 미치지 않았지. 오히려 머리가 좋다고 자부할 수 있다. ......머리가 좋았기에 미쳐 버리는 길을 택했지."

그의 말에 호야는 속으로 의문을 품었다.

그리고 그런 호야의 의문을 읽은 권현우는 싱긋 웃고는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을 이야기해 주었다.

"내가 네 살 때의 일이었다. 첫째 형님...... 그러니까 권일우의 계략에 의하여 둘째 형님께서 오명을 뒤집어쓰고서 모습을 감춘 일이 있었지. 어린 나는 처음에는 정말로 둘째 형님이 흉계를 꾸몄던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첫째 형님이 그를 벌한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1년도 안 되어 그것이 첫째 형님의 계략으로 인해 뒤집어쓴 오명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다."

권현우는 살짝 슬픈 듯한 눈빛을 띠어 보였다.

"그것을 안 순간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더구나. 형님이 황위를 계승하기 위해 자신보다 계승권에 가까운 다른 후보를 없애려고 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눈치챌 수 있었다. 그 안에는 나도 있었지."

"잠시만요. 먼저 태어난 아들이 계승권이 더 높지 않나요?"

"아아, 첫째 형님은 후궁의 자식이었고 나와 둘째 형님은 황후의 자식이었다. 그래서 계승권은 나와 둘째 형님이 더 높았지. 둘째 형님이 백성들의 인망도 더 두터웠고 말이다."

만약 자신이 조금 더 나이가 있었다면 곧바로 둘째 형님과 같은 길을 걸었을 것이라고 권현우는 생각했다.

자신의 나이가 어렸기에 유예 기간이 생겨났던 것이다.

"어리고 나만의 사람이라 할 것도 없던 나는 어떻게 해서든 살기 위해서 계승권에서 멀어져야만 했다. 하지만 내가 계승권을 그냥 포기한다고 해도 형님은 나를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지."

권현우가 목을 만지작거리자 최도가 그에게 물 한 잔을 건네었다.

"그래서 아바마마의 입에서 형님을 태자로 책봉한다는 말이 직접 나오도록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었고 나는 그 방법으로 스스로가 미쳐 버리는 것을 택했다."

황후의 아이라고는 하나 미쳐 버린 아이를 태자로 올릴 수는 없을 테니까.

권현우는 자신의 바람대로 자신에게 있던 계승권을 없앨 수 있었다.

권일우도 겨우 갓 다섯 살이 된 아이가 그러한 일을 계획하고 연기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권현우는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자신의 안전을 확보했다고 기뻐하던 것도 잠시, 아바마마께서 붕어하신 뒤 황제의 자리를 물려받고 나에 대한 경계를 완전히 푼 형님은 가끔 나에게 찾아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털어놓고는 했다."

권현우는 처음부터 말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연기했다.

그리고 그것을 믿은 권일우는 권현우를 자신의 생각을 맘 놓고 털어놓을 수 있는 살아 있는 인형 정도로 취급하고는 했다.

"형님은 백성들을 개, 돼지라 칭했고 백성들이 아닌 자신을 위한 법안이 처리된 것을 자랑스럽게 말하고는 했다. 그리고 궁녀를 납치하여 그 아이의 살점과 피는 맛있었다는 등의 소름 끼치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지. 그럴 때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 연기를 한다는 것을 들킬 뻔한 일도 여럿 있었다."

나라의 정세도 어지러워져 백성들의 상소가 계속해서 올라왔지만 권일우는 자신에게 도움이 될 상소들만 받아들일 뿐, 진심으로 바라보아야 할 상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나는 조금씩 나라가 굴러가는 상황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이대로 있으면 안 된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자신이 살고자 하는 마음에 황제로 만들어서는 안 되는 자를 황제로 만들어 버렸다.

"처음에는 그저 자신 혼자 살아남고자 하는 생각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라의 상황을 알고 백성들의 처지를 알고서는 생각이 바뀌었지. ......나는 황가의 일원임에도 불구하고 비겁하게도 백성들이 아닌 나 개인만의 안위를 바라고 있었다."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던 권현우가 돌연 자세를 움직이더니 호야를 향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그 행동에 놀란 최도가 그를 말리려 하였으나 권현우가 그의 행동을 제지했다.

"지금이라도 나라를 바로잡아야 한다. 이렇게 부탁하마. 우리 권나라를 위해서, 지금도 고통받고 있을 백성들을 위해서 힘을 빌려 다오."

한 나라의 정점에 가까이 서 있는 인물이 무릎을 꿇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권현우가 그만큼 호야에게 큰 기대와 희망을 걸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 기회를 잡지 못한다면 좀 더 멀고 어려운 길을 돌아가야 한다는 판단도 있어 그는 필사적이었다.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 준 굵은 동아줄을 놓치기는 싫었다.

"지난 20년 동안 나는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 계속해서 준비를 해 왔다."

호야가 대답이 없자 권현우는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과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행해 왔던 준비들을 그에게 말해 주었다.

다른 이였다면 위험 부담으로 인해서 이만큼의 정보를 주지는 않았겠지만 호야의 칭호와 친화력의 효과로 가능했던 일이었다.

"......제가 무엇을 하면 될까요?"

호야는 고민 끝에 수락의 의사를 내비쳤다.

그러한 호야의 대답에 권현우가 눈동자를 빛냈고 시스템 메시지가 발생되었다.

[퀘스트 '미현'을 클리어 하였습니다.]

[경험치가 상승합니다.]

[조제연의 호감도가 상승하였습니다.]

[칭호 '역모꾼'을 획득합니다.]

"정말 감사한다."

큰 목소리를 낼 수 없었기에 권현우는 호야의 양손을 잡고서 작은 목소리로 감사를 표했다.

[권현우의 호감도가 상승하였습니다.]

"자네에게 첫 번째로 부탁하고 싶은 것은 이것을 서대륙의 왕 중 하나에게 전달해 주는 것이다."

권현우는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책들 중 하나를 꺼내어 빠르게 페이지를 넘기더니 그 사이에서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 흰 봉투를 호야에게 건네었다.

[퀘스트 '하늘을 바꾸기 위해서 1'이 발생되었습니다.]

[하늘을 바꾸기 위해서 1]

권현우는 나라를 바꾸기 위하여 황제의 자리에 오르려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겉으로 미친 척 연기를 하며 자신의 본모습을 숨기던 그에게 자신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은 흑룡대와 소수의 조정 대신들밖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상태로 황제가 되어 봤자 힘이 없는 그는 다수의 조정 대신들의 꼭두각시가 될 뿐입니다.

그가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정치를 펼치기 위해서는 그를 지지해 주고 그를 뒤에서 보호해 주며 그의 검이 되어 줄 수 있는 세력이 필요합니다.

권현우는 서대륙의 왕이 자신의 검과 방패가 되어 주기를 원합니다.

그를 위해서 서대륙의 왕에게 서신을 전달해 주세요.

*서신을 전달하는 데에 소모하는 시간이 줄어들수록 획득하는 경험치의 양이 상승합니다.

완료 조건: 서대륙의 왕에게 서신을 전달해 긍정의 대답을 받으세요.

성공 보상: 경험치 상승, 권현우의 호감도 대폭 상승, 퀘스트 '하늘을 바꾸기 위해서 2'

실패 패널티: 권현우의 호감도 하락, 권일우의 호감도 하락 및 적대감 상승

"큰 힘을 가지고 있으면 있을수록 좋다. 하지만 왕을 그리 쉽게 만날 수는 없겠지. 몇 주...... 아니, 몇 달이 걸려도 좋다. 그것을 꼭 전해 주기를 바란다."

"알겠습니다."

호야는 권현우의 서신을 받아 인벤토리에 넣었다.

"정말 감사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지금부터 하는 말은 서신의 전달을 성공하고 그들이 나의 요청을 받아들였다는 가정하에 말하는 것이다."

호야가 고개를 끄덕이자 권현우가 말을 이었다.

"그때 형님의 암살을 자네에게 부탁하고 싶다."

"......네?"

"형님만 없어진다면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조정 대신들은 나를 황위에 앉히는 것에 거리낌이 없을 것이다. 미쳐 버린 황자는 그들에게 좋은 꼭두각시가 될 테니까."

"왜 하필 저인가요......? 조제연 장군님이 저보다 더 강하실 텐데."

"조 장군은 할 수 없는 일이다."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야 했기에 얼굴이 알려진 이에게 부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황제와 병사들에게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으며 경비를 뚫고 궁궐에 들어갈 수 있는 실력자라는 조건에 걸맞은 이는 호야밖에 없었다.

"물론 궁궐 안의 지도는 그려 주겠다."

"......네, 알겠습니다."

어차피 이미 한배를 탄 이상 호야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까라고 한다면 까야 하는 것이 지금 호야의 입장이었다.

아니면 동대륙에 편히 발을 붙일 수 없을 테니까.

'혹시 이걸 일부러 나중에 말한 건가?'

호야가 그러한 생각에 권현우를 쳐다보았고 호야의 시선에 그는 미소로만 답해 줄 뿐이었다.

분위기를 봐서는 일부러 그런 것이 틀림없었다.

호야가 그렇게 생각하던 것에 그가 권현우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궁금하던 것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 현우 님, 몇 가지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응? 그래, 뭐든 물어보거라. 내 답할 수 있는 것이라면 대답하겠다."

"둘째 형님이라는 분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둘째 형님에 대해서?"

호야의 질문에 권현우가 의문을 보이자 호야는 말을 덧붙였다.

"네, 이름이라든가 어떠한 사람이었는가 하는 그런 거요. 제가 이곳에 와서 읽은 책에는 '둘째'라는 호칭밖에 없어서요."

"둘째 형님의 이름은 권선우다. 어떠한 사람이었는가는 글쎄......,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에 흐릿하게 남아 있는 것이 전부라서 말이다. 그래도 매우 친절하고 좋은 형님이라는 느낌은 아직 남아 있다."

"그렇군요."

호야는 속으로 컨서누를 떠올렸다.

'이자가 둘째 형님이라 말하는 것은 역시 컨서누가 맞아.'

컨서누, 권선우.

발음을 바꾼다면 이름부터가 같았다.

거기에 더해서 권현우는 둘째인 권선우가 모습을 감추었다고 했지 죽었다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았다.

게다가 컨서누와 빼닮은 권현우의 얼굴이 무엇보다 큰 증거였다.

권현우의 대답에 호야가 다른 질문을 하려 하자 그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의 말은 호야의 생각에 확신을 심어 주는 말이었다.

"아, 주변 이들의 말로는 내가 둘째 형님과 아주 똑같이 생겼다고 했다. 이제는 초상화가 남아 있지 않아 나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권현우의 말에 호야는 속으로 고민했다.

'컨서누가 서대륙에 있다고 알려 줘야 할까?'

하지만 이내 그 고민을 가슴속 깊은 곳으로 집어넣었다.

호야는 가족과 다시 재회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컨서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만약에 정말로 그렇다면 자신의 오지랖이 괜히 권현우와 컨서누의 과거의 상처를 후벼 파는 일이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기에 호야는 입을 다물었다.

"그래서 더 궁금한 것은 무엇이냐. '몇 가지' 물어볼 것이 있다고 들었다만."

"아, 네. 혹시 미현이라는 게 무슨 뜻인지 아시나요?"

"뭐? ......크큭."

호야의 질문에 권현우는 소리 죽여 한참을 웃었다.

"자네가 그 단어를 알고 있을 줄은 몰랐군. 별로 큰 뜻이 있는 단어는 아니다. 줄임말에 불과하지."

"무슨 줄임말인가요?"

호야가 퀘스트를 받았을 때부터 궁금해하던 것이었다.

"미친 권현우, 일부 조정 대신들이 나를 흉보며 칭하는 단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