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6권 7화
7. 찾았다, 황제의 개(1)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오자 호야는 마을을 나서서 조제연과의 약속 장소로 향했다.
직전까지 호야가 사 준 음식에 만족한 것인지 바두와 새미의 얼굴에는 행복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입이 세 배로 늘어난 덕분에 인벤토리에 챙겨 놓는 바두의 간식도 빠르게 줄어드는 추세여서, 호야는 민드기 마을에서 가지고 있던 전을 거의 다 사용해 셋의 간식을 구입하였다.
간식을 구매한 후 인벤토리에 모아 놨던 몬스터의 소재를 조금 정리하였기에 주머니 사정이 빈곤해지지는 않았다.
낮에 왔던 것처럼 산을 걸어서 폐가에 도착한 호야는 미리 확인했던 대로 지하실로 향하는 문에 열쇠를 꽂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는 낮과는 다르게 듬성듬성하게 놓여 있는 횃불들이 빛을 밝혀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 달린 문의 안쪽에서 기척 하나가 느껴지고 있었다.
끼익-.
조심스레 문을 열자 조그마한 방 한가운데에 있는 작은 테이블이 보였다.
그리고 테이블을 둘러싸듯이 해서 놓여 있는 의자들 중 하나에 조제연이 눈을 감고 팔짱을 낀 채 앉아 있었다.
호야가 발을 한 걸음 안으로 들여놓자 그가 천천히 눈꺼풀을 열었다.
"......머리 색이 바뀌었군."
"네? 아......."
조제연의 말에 호야는 이곳으로 오기 전 다시 머리 색을 바꾸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가면도 쓰지 않았고 만일에 대비하여 민드기 마을에서 옷도 새로 구입했기에 어제 그가 보았던 호야와는 매치가 되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그는 기척만으로 호야가 어제와 동일인이라는 것을 파악했다.
"뭐, 그 이야기는 넘어가도록 하지. 자네가 이곳에 왔다는 것은 이야기를 할 의향이 있다는 것이겠지."
"네."
"편한 곳에 앉거라."
[조제연의 호감도가 소폭 상승하였습니다.]
조제연의 권유에 호야는 그와 마주 보는 자리의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호야가 앉은 것을 확인한 조제연은 팔짱을 풀고 그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우선 어제 했던 행동을 다시 한 번 사죄하지. 외부인이 보고 있었기에 싸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가볍게 넘겨 주는 호야의 배포에 조제연은 감사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죄를 받아 주어서 고맙다. 그럼 이야기에 앞서 내 소개를 하겠다. 나는 흑룡대를 이끌고 있는 장군 조제연이다. 편한 대로 불러라."
"저는 호야라고 합니다. 서대륙의 모험가입니다."
"방금 모험가라고 했나?"
호야의 말에 조제연이 큰 반응을 보여 왔다.
그때 호야는 첫 마을에서의 반응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네. 저기, 그렇게 크게 반응할 일인가요?"
"당연하지. 신의 부름을 받아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자들, 죽어도 다시 되살아나며 시작은 미약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강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자들, 그것이 모험가가 아닌가. ......설마 모험가들은 모두 서대륙에 있는 건가?"
"그, 그렇죠......."
"역시. 무녀들을 통해 이야기가 전해진 것에 비해서 지금까지 목격 정보가 전혀 없는 것이 의아했는데 그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구나."
모험가라면 생각보다 더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죽지 않는 자들이니까.
그렇게 머리를 굴리던 조제연이 헛기침을 한 뒤에 말을 이었다.
"흐흠, 미안하다. 본론으로 돌아가지. 서대륙 사람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우리 동대륙의, 권나라의 마을들은 어떻게 보였었나?"
"어음, 건물이라든가 의복 같은 것이 크게 달라서 신기했어요."
"아니, 내가 물어보고 있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생활수준이라네. 서대륙 사람의 눈에는 우리 백성들의 생활 모습이 어떻게 비쳤나."
조제연이 호야에게 이러한 질문을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자신들을 돕는 쪽으로 생각을 기울게 하기 위해서.
다른 하나는 서대륙의 상황이 자신들과 같은지 다른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자신들의 나라와 서대륙의 모습이 비슷하다면 호야에게 도움을 구해 봤자 큰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조제연은 생각했다.
"......."
조제연의 질문에 호야는 자신이 동대륙에 와서 방문했던 마을의 모습들을 떠올렸다.
처음 방문했던 이름 모를 마을, 그다음으로 갔던 한동 마을, 그리고 낙정 마을과 민드기 마을.
"......부익부 빈익빈, 잘사는 마을의 사람들은 잘살지만 못 사는 마을의 사람들은 제대로 된 생활이 불가능해 보였어요. 나라한테 버림받았다고 말하는 마을도 있었고요. 솔직히 말해 좋게 보이지는 않았어요."
호야는 조제연에게 자신의 감상을 털어놓았다.
처음 방문했던 마을의 사람들은 가난해 보이는 형편 속에서도 병사들에게 꽤나 많은 양의 식량들을 바치고 있었다.
한동 마을은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듯 보였지만 마을 관리의 집 비밀 지하실에는 상당한 양의 재화와 쌀이 쌓여 있었다.
낙정 마을의 주민들은 모두가 삐쩍 말라 있었으며 나라에 대한 기대를 버린 상태였다.
민드기 마을의 사람들도 생활수준은 한동 마을과 비슷해 보였지만 어딘가 통제받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잠깐, 자네가 어째서 마을 관리의 지하실 같은 것을 알고 있는 건가?"
"아......."
조제연의 질문에 호야가 자신의 말실수를 인지했지만 이미 늦은 시기였다.
조제연의 눈빛이 묘하게 날카로워지는 것이 보였기에 호야는 순순히 한동 마을에서 있던 일을 털어놓았다.
"그렇게 해서 이쪽이 그 십미호입니다."
"호야, 나를 바두를 들듯이 들지 말거라."
"......역시 그때 잘못 느낀 것이 아니었군."
미호는 힘을 억눌러 숨기고 있었지만 조제연은 미호에게서 미약하게나마 어제 보았던 거대한 여우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미호 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래, 그사이에 네 녀석은 많이 늙었구나."
"어? 둘이 아는 사이야?"
조제연의 공손한 모습에 호야가 미호에게 의문을 던지자 그녀는 콧방귀를 뀌었다.
"흥, 이전에 한번 우연히 만나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이다. 그때 그 꼬맹이는 잘 지내고 있느냐?"
"......잘 모르겠습니다."
미호의 말에 답하는 조제연의 얼굴에는 슬픔이 엿보였다.
"그래, 사정은 이해했다. 관리의 집에 침입한 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오히려 호야는 칭찬받고 한동 마을의 관리가 질책과 벌을 받아야 할 일이었다.
조제연의 말에 호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한테 우호적인 것 같지만 일단은 나라 소속의 장군이니 살짝 긴장됐던 것은 사실이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자네도 백성들의 삶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느꼈을 거다. 자네의 생각 이상으로 낙정 마을 같은 생활을 이어 가는 마을은 무수히 많다."
조제연은 테이블 위에 있던 물 잔으로 목을 축이고는 호야에게도 잔을 내밀어 물을 따라 주었다.
"자네가 처음 갔었던 마을도 낙정 마을과 다를 바 없는 상태일 것이다. 마을의 세금은 병사들이 아닌 마을 관리가 걷어 가는 것이니 말이다. 그곳은 마을 관리가 없는 버려진 마을, 자네가 본 것은 마을 보호라는 명목으로 마을 근처에 있을 주둔지의 병사들이 식량을 약탈해 가던 것일 거다. 그리고 그것은 세금으로 인정되지 않으니 계속해서 버려진 마을인 채지."
"......."
호야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자 조제연은 물 잔을 다시 테이블에 내려놓고 그와 눈을 마주쳤다.
"지금 이 나라의 상황은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다. 가난에 허덕이는 마을은 이곳저곳에 창궐해 있고 나라는 그것을 관리하지 않는다. 하늘에 닿는 이들만이 부를 쌓아 가고 그들이 부를 쌓는 만큼 땅의 사람들이 가난해지는 구조인 것이 지금의 권나라다."
선대 황제까지는 전 대륙에 선정을 펼쳐서 가난한 이는 있어도 굶어 죽는 이는 없도록 했었다.
하지만 그것이 권일우가 황제의 자리에 앉은 뒤 수십 년 만에 완전히 뒤집혀 버렸다.
"나는, 우리 흑룡대는, 그리고 나의 주군은 지금의 권나라를 바꾸고자 한다. ......우리는 하늘을 떨어트릴 것이다."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한 것인지는 아느냐?"
조제연의 말에 제일 먼저 반응을 보인 것은 미호였다.
그녀의 눈은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반역을 꾀하고 있다고 선언한 것이라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느냐?"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선언한 것을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한 가지 더, 이야기의 방향을 본다면 네 녀석은 지금 호야에게 반역을 도와 달라고 손을 뻗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만."
"지금 당장 결정해 달라고 하지는 않겠다."
조제연은 미호의 말을 부정하지 않고 호야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라를 위해서, 백성들을 위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 이런 이야기 이 자리에서 바로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이다. 거절하고 싶은 마음이 크겠지. 그래도 주군을 만나 그분과 대화를 나누어 보고 결정을 해 주지 않겠나?"
"......알았어요, 대화는 해 볼게요."
"어려운 결정을 내려 주어 정말 고맙다."
[퀘스트 '조제연 장군의 부름'을 클리어 하였습니다.]
[경험치가 상승합니다.]
[조제연의 호감도가 상승하였습니다.]
반역이라는 단어가 조금 걸리지만 조제연이 말하고 있는 주군이라는 사람과 대화를 나눠 보고 이 나라를 바꿔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생긴다면 반역에 가담하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닐 것이다.
조제연도 지금 당장의 선택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았으니까.
'그런데 연계 퀘스트의 황제의 개는 뭐지?'
설마 조제연이 주군이라 부르는 자가 황제의 개라는 소리인가.
호야가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조제연이 다른 이야기를 꺼내 왔다.
"그리고 이건 다른 이야기다만, 지금 나의 흑룡대에 황제의 개가 하나 들어와 있는 것 같다. 회유되었다는 표현이 더 걸맞겠군."
흑룡대는 겉으로 보았을 때에는 황제의 말에 따라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이기 위한 소수 부대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설립부터가 조제연의 주군을 위해 움직이고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부대다.
소속 병사들 중 최도를 제외한 다른 병사들은 조제연 자신이 직접 황위에 올라 나라를 바꾸기 위해 흑룡대를 구성했다고 알고 있지만 말이다.
그렇기에 흑룡대 소속 병사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조제연이 직접 대상을 관찰하고 뒤를 확인한 뒤에 영입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전에 일이 있어 수도 탄양의 궁궐에 살짝 길게 머물렀던 뒤로 흑룡대 내부에 무언가 이질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기분 탓이라 생각했지만 곧 그 이질감을 확신하게 되었다.
치운다고 치웠겠지만 조제연의 짐과 잠자리를 누군가가 뒤졌던 흔적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잠자리는 항상 흑룡대의 병사들의 잠자리에 둘러싸이는 형태로 결정된다.
그들을 뚫고서 소리 없이 침입할 수 있는 이는 없을 테니 그 범인은 내부에 있다는 것이었다.
아마 조제연이 반역을 꾀한다는 심증만 있고 물증이 없는 상태이니 물증을 찾기 위해 행동했던 것일 거다.
하지만 '뒤졌다'라는 흔적만이 있을 뿐 그 인물에 대한 단서는 남아 있지 않았기에 아직까지 황제에게 회유되어 그의 개가 된 병사를 특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황제의 개가 내부에 있는 상태로 이 호야라는 자가 우리에게 힘을 보태 주게 된다면 그것이 곧 물증이 된다. 얼른 쳐 내야 할 필요가 있어.'
"혹시 그 황제의 개를 찾는 것을 도와줄 수 있겠나?"
[퀘스트 '찾아라, 황제의 개'가 발생되었습니다.]
[찾아라, 황제의 개]
조제연 장군의 요청에 따라 그의 주군과 대화를 나누어 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조제연 장군이 자신의 부대에 있는 황제의 개를 찾는 것을 도와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만약 황제의 개를 찾지 않은 채 조제연의 주군을 만나러 가게 된다면 그 소식은 곧바로 황제에게 알려져 주군은 참수되고 흑룡대는 해산 및 반역 도모로 인한 수배범의 길을 걷게 됩니다.
플레이어 또한 동대륙에서 움직이기 어려워질 것입니다.
조제연의 주군을 만나러 가기 전에 흑룡대 안에 있는 황제의 개를 찾아 주세요.
성공 조건: 황제의 개를 특정하여 그를 흑룡대에서 내보내세요.
완료 보상: 경험치 상승, 조제연의 호감도 상승, 퀘스트 '미현'
실패 패널티: 조제연의 호감도 하락, 칭호 '수배범' 획득
"......저기, 한 가지 제안할 게 있는데요."
퀘스트를 수락한 호야는 조제연에게 한 가지 방책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