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는 마을사람-129화 (129/171)

# 129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6권 6화

6. 안녕하세요, 선호영입니다

"야, 백호민! 언제 나올 거야! 아버지랑 어머니는 이미 주차장으로 내려가셨어!"

"잠깐만! 1분만! 아니, 30초만!"

백호민의 방문을 두드리던 백설영은 깊게 한숨을 내쉬며 팔짱을 꼈다.

'내가 그렇게나 미리 로그아웃 하고 있으라고 말을 했는데. 발등 위에 불똥이 떨어지니 급하게 난리지, 진짜!'

백호민이 나갈 준비를 하겠다고 방에 들어간 지 벌써 30분이나 지나 있었다.

화장도 안 하는 녀석이 준비에 왜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 뒤로 10분 정도가 더 흘렀을 때, 백호민이 방문을 열고 복도로 나왔다,

"......야, 설마 그거 입는 데 시간이 이렇게 걸린 거야?"

"너무 그렇게 보지 마. 고르고 고른 옷이야! 첫인상이 중요한 거니까 신경 좀 썼지!"

백호민의 등 뒤로 보이는 방 안의 모습을 슬쩍 바라본 백설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는 옷들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하고 싶은 말도 많았고 재킷이 하늘색인 것이 자신의 치마 색이랑 똑같아서 꼭 맞춰 입은 것 같아 영 맘에 들지 않았지만 시간이 빠듯했기에 백설영은 백호민의 손목을 낚아채고서는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할아버지한테 혼나면 다 네 책임인 줄 알아."

"윽......! 내가 미안해. 혼나면 같이 좀 혼나 주라......."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에 도착한 둘은 유일하게 시동이 켜져 있는 차의 뒷좌석의 문을 열고 몸을 실었다.

그 차의 운전석에는 둘의 아버지인 백재한이, 그 옆의 보조석에는 둘의 어머니인 강은영이 앉아 있었다.

"늦어서 죄송해요."

"죄송해요!"

"하하하, 나는 괜찮은데 너희 할아버지가 괜찮을지는 모르겠다."

"윽!"

백재한은 백호민의 반응에 크게 웃으며 차를 운전해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네 명이서 약속 장소로 향하는 길, 백설영이 문득 무언가가 생각났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아버지, 그러고 보니까 저희는 아직 그쪽 가족에 대해서 아무것도 못 들었는데요. 이름이라든가, 하고 있는 일이라든가. 그런 건 미리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응? 내가 말 안 해 줬었나?"

"그러고 보니 나도 못 들었어요, 여보."

"아, 저도요!"

"진짜?"

백재한은 세 명의 말에 자신이 백재건의 혼인 상대에 대해서 세 명에게 자세히 말해 준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하하하, 미안해. 말하는 걸 깜빡했네."

"그래서 어떤 분들이에요?"

"재건이 혼인 상대인 이예숙 씨는 지금 재건이가 일하고 있는 회사의 거래처의 팀장이야. 그 아들의 이름은 선호영, 나이는 딱 설영이 너하고 동갑이고."

"선호영이요?"

백재한의 말에 백설영은 머릿속으로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호야 님의 통장 명의도 선호영이었는데. ......우연이겠지?'

호영이라는 이름 자체도 흔한 이름이니 말이다.

선이라는 성씨는 흔하지 않지만 선 씨 중에 호영이 단 한 명일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던 백설영의 정신을 일깨운 것은 백호민이었다.

"좋은 이름이네요, 완벽한 호 자 돌림!"

백호민의 두 눈은 기대감으로 인해서 별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 뒤로 도로를 조금 더 달리자 그들은 레스토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애초에 준비를 일찍 시작한 덕분인 것인지 다행히 약속 시간에 늦지 않을 수 있었다.

레스토랑 직원에게 발레파킹을 맡긴 넷은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가 예약했던 이름을 말했다.

"일행분들은 먼저 와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쪽으로 안내해 드릴게요."

직원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곳은 가게 안쪽에 위치한 개인 룸이었다.

직원이 노크를 한 뒤에 문을 열자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백윤택과 백재건의 가족들이 보였다.

그들 중 백재건이 자리에서 일어나 백재한의 가족을 반겼다.

"형, 어서 와. 오느라 고생했지? 형수님도 오랜만이에요."

"그래, 길이 막혀서 고생 좀 했다."

"오랜만이에요, 도련님. 아, 이제는 서방님인가."

"우리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가족 될 사람들 소개해 줘야지?"

백재한이 백재건을 따라서 일어난 둘을 보며 말하자 백재건은 그들에게 둘을 소개해 주었다.

"서로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지? 이쪽은 예숙 씨."

"안녕하세요, 이예숙이라고 해요. 재건 씨한테서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그리고 이쪽이 우리 아들인 호영이."

"......안녕하세요, 선호영입니다."

호영의 인사를 들은 백설영이 눈을 끔뻑였다.

호영의 목소리가 어째선지 익숙하게 느껴진 것이다.

'에이, 설마.......'

백설영은 속으로 혹시나 하는 생각에 슬쩍 오른손을 들어 손가락으로 그의 눈을 살짝 가려 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세상이 참 좁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 *

이예숙으로부터 백재건의 아버지가 백성 그룹의 회장임을 들었을 때부터 언젠가는 맞닥트릴 거라고 얼추 예상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갑작스럽게 상황이 올 줄은 몰랐기에 호영은 속으로 내심 많이 당황한 상태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백호민이라고 해요! 형님이라고 불러도 되나요?"

그때 백호민이 호영에게 다가와 그의 손을 잡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아, 응."

'얘는 게임 속이나 바깥이나 똑같구나.......'

호영은 속으로 그리 생각하면서 어떻게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속으로 고민했다.

'안녕하세요, 사실 제가 호야입니다.'

'어머나 이런 우연이? 여기서 볼 줄은 몰랐네요.'

'어? 설마 백설 님이랑 킹 아닌가요? 우와~.'

호영은 속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것도 저것도 모든 말이 다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냥 가만히 있을까?'

호영이 그렇게 생각하던 때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백설영이라고 해요. 동갑이라 들었는데 편하게 말을 놔도 될까요?"

"아, 네. 아니, 응."

"그럼 그럴게."

백설영이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호영에게 악수를 청해 왔다.

그날 식사는 무사히 끝이 났지만 호영의 마음은 편치만은 않았다.

* * *

다음 날 아침 일찍 이니티움에 접속한 호야는 다시 동대륙으로 넘어가기 위해서 곧바로 어둠의 숲으로 이동했다.

그러고는 루나가 접속해 있는 것을 확인하고서 그녀에게 민드기라는 마을을 아는지에 대하여 물었다.

[루나: 민드기라면 마침 저희가 있는 마을 이름이에요. 것보다 괜찮으신 거예요? 안 잡혔어요?]

[호야: 네, 바로 도망쳐서 괜찮아요.]

[루나: 휴우, 다행이네요. 이미 늦은 것 같다고 해서 얼마나 놀랐는데요. 것보다 무슨 일을 하셨길래 병사들이 호야 님을 찾아다녀요?]

[호야: ......여러 가지 일이 있었죠. 것보다 거기까지 가는 길을 알려 주세요.]

호야는 루나의 질문을 얼버무린 뒤에 그녀에게 한동 마을을 기준으로 해서 민드기 마을까지 가는 길을 알아내었다.

로열 나이츠가 지도의 작성을 충실히 했기에 꽤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었다.

민드기 마을로 가는 길은 이전 호야의 진행 방향과 거의 일치했다.

그것을 확인하고 지하 땅굴로 들어선 호야는 미호에게 자신을 태워 줄 것을 부탁했다.

"좋다, 오랜만에 실컷 달려 보겠구나."

미호의 정확한 스탯은 모르겠지만 아마 자신과 바두보다 훨씬 높으리라는 것은 예상할 수 있었다.

약속 시간은 밤이었고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있었지만 호야는 밤이 되기 전에 도착하여 만약을 대비해 주변을 살필 생각이었다.

조제연 장군의 부름의 연계 퀘스트의 이름에 있는 '황제의 개'라는 표현이 마음에 걸린 것이다.

호야는 딱 자신을 태울 수 있을 정도로 몸집을 키운 미호의 등에 올라타 그의 목덜미의 털을 고삐처럼 꽉 움켜쥐었다.

"떨어질 것 같으면 말하거라."

"알았어."

미호가 달리기 시작하자 호야는 곧바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그녀의 등에 몸을 바짝 붙여야 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속도가 매우 빨랐다.

그 덕분에 빠른 시간 안에 반대편 출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출구에 도착한 미호는 호야가 미리 말했던 것에 따라서 들키지 않도록 조심스레 땅굴을 나와 출구와 멀리 떨어진 뒤에야 다시 속도를 높였다.

거의 날아다니다시피 하고 있는 속도와 높이 덕분에 눈에 띌 확률이 높았지만 한동 마을 근처만 크게 돌아서 간다면 지금 당장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새하얗고 커다란 여우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조제연과의 일로 인해서 조금씩 알려지고 있는 상황일 테니까.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들 사이로 루나가 말해 주었던 길을 확인해 가며 달리기를 수시간, 호야는 도착도 전에 민드기 마을이 어디인지를 알아챌 수 있었다.

조제연과 마주치기 직전에 보았던 마을이 민드기 마을이었다.

"하긴, 쪽지를 전해 준 직후부터 일주일이니까 먼 장소로는 정하지 않았겠지."

"호야, 이제는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느냐."

"아, 11시 방향으로 쭉 달려 줘. 거의 다 왔을 테니까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부탁할게."

"알겠다."

가는 길 중간중간에 새미를 위해서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었기에 민드기 마을이 보이는 산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제일 높은 곳에 떠 있을 때였다.

미호의 등에서 내려온 호야는 미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는 인벤토리에서 머리 염색약을 꺼내어 자신의 머리를 검게 물들였다.

오르도가 아니면 항상 쓰고 다니던 가면도 벗어서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그러고서는 미호와 만약을 대비해 바두까지 가방 안으로 숨긴 뒤에 산에서 길을 잃은 사람을 연기해 지도에 표시된 장소로 향했다.

"마을로는 안 가는 것이냐?"

"마을은 나중에. 마을보다는 이쪽이 먼저야."

지도에 표시되어 있던 장소까지 가는 길은 매우 복잡했다.

잘못하면 진짜로 길을 잃어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쯤 호야는 폐가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문은 다 낡아 떨어지고 지붕도 반이 주저앉아 집의 역할을 하지 못할 것 같은 곳이었지만 뭔가 미묘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집 안 한편에 열쇠 구멍이 달려 있는 지하실로 향하는 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철컥-.

조제연이 주었던 열쇠를 꽂아 돌려 보니 무언가가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딱 손을 넣을 수 있을 정도의 틈이 생겨났다.

손을 넣어 바닥에 달린 문을 들어서 확인해 보니 안에서는 열쇠 없이 잠그거나 열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안에서 느껴지는 기척은 없었고 폐가 주변에도 기척이 없는 것을 보아하니 이곳을 감시하는 인원은 없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이곳에 지금 당장의 위험은 없어 보였다.

"그럼 이제 밤까지 뭘 한담......."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다 확인했기에 밤이 될 때까지 굳이 이곳에 계속 있을 이유가 없었다.

호야가 그렇게 생각하던 때에 가까운 곳에서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와옹......."

"뀨우......."

바두와 새미의 배에서 나온 소리였다.

호야는 그제야 오늘 하루 종일 셋에게 먹을 것을 하나도 주지 않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개를 살짝 돌려 보자 가방 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자신에게 원망과 애처로움이 섞인 눈빛을 보내고 있는 바두와 새미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 미안해."

"와옹!"

"뀨우웃!"

호야가 그 즉시 인벤토리에 있는 것들을 꺼내 주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성이 풀리지 않는 것인지 바두와 새미는 앞발로 호야의 뒤통수를 두들겨 대었다.

"왕! 와옹!"

"나도 조금 배가 고프구나."

[상태: 사과의 의미로 새로운 간식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강해지기 위해서 천천히 발을 내딛고 있는 중입니다.]

호야는 그 즉시 민드기 마을로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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