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8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6권 5화
5. 쫓아오는 검은 용(2)
'설마 이자의 말이 사실이었을 줄이야.'
조제연은 자신의 부하의 허리를 붙잡고 말 위에 타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저 남자가 자신이 찾고 있는 자로 보이는 인물을 안다고 했을 때에는 반신반의했다.
그래도 그자가 말한 장소는 자신이 쫓고 있는 이의 예상 진로 방향에 있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곳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그러던 중에 문고 주인이 말했던 인상착의와 거의 똑같은 자와 마주친 것을 보면 남자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대답해라. 이 물건을 본 적이 있나?"
호야는 그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속으로 고민했다.
그리고 곧 자신이 했던 실수를 깨달았다.
자신에게 옷을 건네주었던 할아버지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을 들키지 말라고 했었다.
조심한다고 했었건만 설마 골드 때문에 발목이 잡힐 줄은 몰랐다.
'특이하기는 해도 서대륙과 연관 지을 수는 없을 텐데.......'
아무래도 이전부터 저 골드가 서대륙의 통화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동대륙으로 넘어온 플레이어는 자신들이 최초이니 아마 NPC를 통해 알려졌을 확률이 크다.
호야가 고민하던 때에 루나에게서 다시 귓속말이 도착했다.
[루나: 그러니까 마을로 가시면 안 돼요! 가실 거면 머리 염색하고 가세요!]
[호야: 이미 늦은 것 같아요.]
[루나: 네?]
호야는 고개는 가만히 둔 채 눈을 굴려 주변을 확인했다.
분위기를 보아 자신이 대답을 하지 않은 것으로 인해서 병사들은 답을 얻은 것 같아 보였다.
'......도망쳐야겠지.'
호야가 그렇게 생각하던 때였다.
쐐액-! 카앙!
어느 틈엔가 말에서 내려온 조제연이 호야를 향해 검을 내질렀다.
그를 따라서 그의 부하들도 말에서 내려왔다.
다 대 다수의 싸움이 아닌 다 대 일의 싸움, 그것도 상대가 말을 타지 않았다면 말을 타고 있는 것보다 땅에 내려서는 것이 틈이 적었다.
그들이 내려오자 훈련이 잘되어 있는 말들은 한곳으로 질서 정연하게 모여들었다.
"크읏......."
"대답하지 않겠다면 억지로라도 입을 열도록 해 주겠다."
조제연의 공격을 검으로 쳐 낸 호야는 그대로 조금 뒤로 물러났다.
'공격이 빠르기는 하지만 못 막아 낼 정도는 아니야.'
공격을 주고받다가 틈을 보고 빠져나가자.
호야는 그리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그러한 생각이 바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카강!
"호오, 이것도 막아 내는 것인가. 그럼 이것도 막아 봐라."
쐐액-! 캉!
"반응 속도는 내 부하 못지않구나."
호야가 공격을 막고 피해 낼 때마다 조제연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공격의 속도와 강도를 올리며 호야를 서서히 몰아넣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호야의 실력을 가늠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조제연 혼자만으로도 이렇게 벅차니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이들까지 가세한다면 호야는 그들의 공격을 모두 막아 낼 수 없을 것이다.
'마을 귀환을 사용할 틈도 없어!'
자신 혼자서는 무리다.
호야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가방 속에 있던 바두와 미호가 밖으로 나와 몸을 키웠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호야에게 바짝 붙은 조제연이 그의 오른쪽 소매 안에 무언가를 넣으면서 호야에게만 들릴 정도로 그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도망쳐라."
"무슨......."
쿠웅-! 쿵!
"크아아악!"
"크르르르륵!"
무거운 소리와 함께 호야의 양옆에 내려선 바두와 미호가 주변을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거대화가 증감으로 변화한 바두는 이전보다도 거대하게 몸을 키웠고 미호 또한 처음 만났을 때처럼 몸을 키웠다.
그런 둘의 적의에도 아랑곳 않고 자세를 유지하는 병사들의 모습을 보아하니 조제연 장군의 부하들은 훈련을 제대로 받은 듯했다.
하지만 호야에게 가까이 다가오지는 못하고 있었다.
조제연도 마찬가지였다.
미호의 존재 때문이었다.
"어째서 저분이 이곳에 있는 것이냐......."
호야에게 속삭이고 뒤로 물러났던 조제연이 미호를 알아보고 말을 흘렸지만 미호는 그것에 답하지 않고 주변 이들이 다 들으라는 듯이 호야에게 크게 물었다.
"호야, 어떻게 하고 싶으냐. 이 녀석들을 모조리 씹어 먹어 버렸으면 하느냐. 아니면 산 채로 얼려 주었으면 하느냐. 어느 쪽이든 말만 하거라. 내 저 자식이 괘씸해서 가만히 두지 못하겠구나."
미호의 말에 호야는 자신의 오른쪽 소매를 붙들고서 작게 읊조렸다.
"......마을 귀환."
호야는 일단 조제연이 자신의 소매 안에 넣은 것이 무엇인지 확인해 보기 위하여 그의 말에 따라 지금 상황에서 도망치는 것을 택했다.
* * *
"이곳은 어디냐. 아니, 것보다 왜 도망친 것이냐."
호야를 따라 오르도에 오게 된 미호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방금 전과 같은 위협이 없다는 것을 느낀 것인지 몸의 크기는 작게 줄인 채였다.
"혹시 내 힘을 믿지 못하는 것이냐."
"그건 아니야."
미호가 살짝 침울한 목소리로 말해 왔기에 호야는 바로 그것을 부정하고서 오른쪽 소매 안에 왼손을 집어넣었다.
"확인해야 될 게 있어서 그랬어. 미호 너를 못 믿는 게 아니야."
"흐음......, 일단 그 말을 믿어 주마."
"고마워."
조제연이 호야의 소매 안에 넣었던 것은 쪽지와 열쇠였다.
호야는 접혀 있는 쪽지를 펼쳐 그 안에 적혀 있는 것을 읽어 내렸다.
"서대륙의 사람이여......."
서대륙의 사람이여, 지금 당신이 이 쪽지를 보고 있다는 것은 당신이 어떤 방법으로든 나에게서 도망쳤다는 것이겠지.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먼저 나의 무례를 사과하마.
나는 당신을 보자마자 공격을 가했을 것이다.
이 점, 상황상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해 주길 바란다.
본론으로 들어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당신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다른 이들의 시선을 피하고 만일에 대비하여 서신에 자세한 이야기를 써 두지 못하는 점 미안하게 생각한다.
우선 당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분이 계시다는 것만 알아주기를 바란다.
자세한 이야기를 하고 싶으니 다른 이들의 시선을 피해서 단둘이 이야기를 했으면 한다.
의향이 있다면 이 서신을 전해 받은 뒤 일주일 안으로 아래 지도에 표시된 장소로 밤에 찾아와 주었으면 한다.
표시된 장소에 폐가가 하나 있을 것이며 같이 넘긴 열쇠는 폐가 안에 숨겨진 지하실의 열쇠다.
당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겠다.
쪽지의 아래에는 꽤나 자세한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여기가 어디인지를 모르겠네.......'
쪽지의 내용을 모두 읽고 지도의 확인까지 마치자 호야에게 퀘스트가 발생되었다.
[퀘스트 '조제연 장군의 부름'이 발생되었습니다.]
[조제연 장군의 부름]
흑룡대의 대장, 조제연 장군은 당신과 이야기하기를 원합니다.
쪽지에 표시되어 있는 장소로 가 그와 대화를 나누세요.
완료 조건: 조제연과 대화를 나눈 뒤 그의 요청을 받아들인다.
성공 보상: 경험치, 조제연의 호감도 상승, 퀘스트 '찾아라, 황제의 개'
실패 패널티: 조제연의 호감도 하락
"할아버지 이름이 조제연이었구나."
호야는 발생된 퀘스트를 수락했다.
일부러 자신에게 도망치라고 말했던 것과 발생된 퀘스트를 보아 함정은 아닐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문제는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장소가 어디인가 하는 것이었다.
지도의 끄트머리에 민드기라는 마을이 표시되어 있지만 호야는 그곳이 어디인지를 모른다.
이정표 역할을 하기 위해 그려 넣은 것이겠지만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흐음......, 일단 나중에 생각하자.'
로열 나이츠가 동대륙에서 활발하게 돌아다니는 중이니 아마 그들에게 물어보면 뭔가 알지도 모른다.
호야는 먼저 모안에게 물어본 뒤에 그녀가 이 장소를 모르고 있다면 로열 나이츠에게 힘을 빌려 보기로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그 전에 오르도에 온 김에 알아보고 싶은 일이 있었다.
바두의 네 번째 퀘스트의 완료 조건인 신과의 대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레이나에게 지혜를 빌려 볼 생각이었다.
마음이 풀린 미호와 어느 틈엔가 가방 속에서 나온 새미는 조금 몸집을 키운 바두의 등에 타서 마을을 구경하고 있었기에 그냥 그대로 두었다.
바두가 함께라면 아마 마을 바깥으로 나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레이나, 있어요?"
호야가 바로 레이나의 집으로 가 문을 두드려 봤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안에서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 아예 자리를 비운 것 같았다.
"호야, 안 들어가고 뭐 해?"
그때 모안이 그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레이나 찾아온 거지? 안에 있을 테니까 얼른 들어가, 길 막지 말고."
"안에 없는 것 같은데요."
"뭐? 에이, 그럴 리가....... 진짜로 없네."
집 안에서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모안은 문을 열고 들어가 안을 확인했다.
레이나의 집 거실 테이블 위에는 아직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는 찻잔 두 개가 올려져 있었다.
"이상하네, 방금 전까지 나랑 같이 차 마시고 있었는데. 과자 가지러 간 사이에 어디 간 건가?"
모안이 테이블 위에 들고 온 과자 바구니를 내려놓더니 그 옆에 있던 의자에 앉았다.
"레이나를 만나러 온 거면 잠깐 기다릴래? 아마 금방 올 거야."
"그럼 실례할게요."
모안의 말에 호야가 의자를 가져와 앉아서 레이나를 기다렸지만 차가 식을 만큼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레이나는 나타나지 않았다.
"얘가 진짜 어디에 갔길래 이렇게 안 와?"
모안이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 있자 문에서 가벼운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어 보니 문 앞에서 바두가 꼬리를 살랑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무래도 과자의 냄새에 이끌려 온 듯했다.
호야의 뒤에서 그 모습을 빼꼼히 내다본 모안의 눈동자가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그러고는 이내 손을 뻗어 미호를 자신의 품에 안아 들었다.
"뭐야, 뭐야. 이 새하얀 아이들은 누구야?"
"이거 놓거라. 나는 이렇게 안겨 있을 나이가 아니다!"
"에이~, 그렇게 말하지 말고~. 나한테는 다 애기야."
"나는 이렇게 보여도 100년을 넘게 살았다!"
"애기 맞네. 나는 그 배를 살았단다, 애기야. 아, 물론 나이는 영원한 청춘 10대야."
"크으......."
모안이 자신에게 얼굴을 비벼 대자 미호는 달갑지 않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반항을 하지는 않았다.
미호가 도와 달라는 듯한 얼굴로 호야를 쳐다봤지만 호야는 그저 웃어 보일 뿐이었다.
그때 호야의 시야 한구석에 노란색 종이 나타나 진동을 하기 시작했다.
-아들~ 잠깐만 나와 줄래~? 엄마랑 외식하러 가자!
호야는 호출 버튼을 통해 들려온 이예숙의 목소리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평소대로라면 이예숙은 지금부터 2시간 정도 뒤에나 퇴근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퇴근을 했다는 사실이 의아했다.
'것보다 갑자기 외식이라니?'
호야는 궁금증에 모안과 미호에게 인사를 하고 로그아웃을 했다.
* * *
"엄마, 갑자기 무슨 외식이에요?"
캡슐을 열고 나온 호영이 물어보자 이예숙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금 그녀는 옷장에 넣어 두고만 있던 검은색 바탕에 하얀색으로 자연스럽게 포인트를 준 H 라인의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외식이라고 하기에 평범하게 감자탕집이라도 가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어디에 가려는 거길래 그렇게 차려입었어요?"
"레스토랑! 재건 씨 친가랑 같이 밥을 먹기로 약속했거든. 아들도 얼른 옷 갈아입어."
"그렇구......, 누구랑 먹는다고요?"
"재건 씨 친가, 정확히는 시아버님이랑 아주버님네 부부랑 그 아들과 딸. 아! 아주버님의 자식들은 너랑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래."
같이 식사를 하는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왜 이렇게 갑자기?
호야가 그런 의문을 내보이자 이예숙이 평범하게 대답했다.
"예정은 시아버님을 만나러 갔던 날에 이미 정했었지."
"그런데 왜 나한테는 지금 알려 주는 거예요?"
"호호호, 서프라아아이즈~!"
팔을 벌리며 익살스럽게 말하는 이예숙의 행동에 호야는 가볍게 한숨을 흘렸다.
자신이 못 나오는 상황이면 어쩌려고 비밀로 했던 걸까.
호야는 그런 생각을 하며 이예숙에게 등을 떠밀려서 옷을 갈아입기 전 샤워를 하기 위해 욕실로 들어갔다.
그때 호야의 머릿속에 문득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잠깐만......, 아빠의 형의 자식들이라는 것은 할아버지의 손자, 손녀들이라는 거잖아? 게다가 내 또래라고 한다면.......'
호야는 두 명의 얼굴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