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는 마을사람-127화 (127/171)

# 127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6권 4화

4. 쫓아오는 검은 용(1)

권나라의 수도 탄양에 위치한 궁궐의 안, 대신과 내관, 궁녀를 뒤에 거닐고서 길을 걷고 있던 권일우가 무언가 불만스러운 듯이 혀를 찼다.

"쯧, 조 장군을 보낸 지가 언제인데 왜 아직도 아무런 소식이 없는 것이냐."

권일우는 며칠 전에 있던 일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그날도 평소와 다를 것이 없는 날이었다.

평소처럼 정식 조회를 본 뒤에 신료들과 경연에 참석하고 상소를 검토하는 등의 집무를 보았었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 각 마을에서 올라온 헌상품의 목록을 환관 종명이 불러 주어 확인하고 있을 때, 권일우의 귓가에 꽂힌 말이 있었다.

"잠깐, 방금 무어라 했느냐."

"예, 폐하. 한동 마을에서 올라온 깃발 모양의 장식이 화려하게 새겨진 황금의 패라 하였사옵니다."

"그것을 지금 당장 가져오거라."

종명이 내관을 시켜 가져오게 한 물건을 확인한 권일우는 자신의 눈을 믿지 못하였다.

기록으로만 남겨져 있는 백 년도 전에 자신이 서대륙에서 넘어왔다고 주장하던 치빈이라는 남성이 내보였다는 서대륙의 통화, 그것과 완전히 같은 물건이었다.

이것이 지금 한동 마을에서 올라왔다는 것은 그곳에 서대륙의 사람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해상의 경계망을 피해서 동대륙으로 넘어올 수 있는 길이 어딘가에 있다는 것이었다.

이전에 자신의 둘째가 모든 감시를 피해 모습을 감추었던 것처럼 말이다.

만약 그 길을 찾을 수만 있다면 생사가 불분명한 둘째를 처리하여 불안 요소를 제거하는 것은 물론이고 침략을 꾐 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판단한 권일우는 조제연 장군을 불러 그에게 금 통화의 원주인을 찾으라는 명을 내렸다.

하지만 그 이후 이렇다 할 소식이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조 장군의 흑룡대만을 보낸 것이 실수였나......."

조금 더 인원을 늘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권일우가 고민하고 있자 종명이 그에게 첨언을 해 왔다.

"걱정 마시지요, 폐하. 인물의 특정은 완료했다고 하니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것입니다. 신하에 대한 믿음을 키우는 것도 황제의 덕목 중 하나라고 사료되옵니다."

"과연 그러할까......."

믿음을 주는 것도 상대방 나름이다.

권일우는 그렇게 생각하며 뒷말을 흐리고는 정원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정원에 있는 연못 위에는 연꽃들이 자신의 존재를 뽐내고 있었고 그 연못의 중앙에는 긴 다리로 이어져 있는 팔각정 하나가 존재했다.

그 팔각정 위에 독수리를 어깨에 얹고 쭈그려 앉아 있는 남자를 본 권일우의 입가에 호선이 그려졌다.

그는 지체 없이 연못 위의 다리를 건너 남자에게로 다가갔다.

"현우야, 무얼 하고 있는 게냐?"

권일우가 말을 걸어오자 권현우는 붓을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는 그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그러고는 곧 먹물이 잔뜩 묻은 얼굴로 어린아이처럼 배시시한 웃음을 그에게 지어 보였다.

서른이 다 되어 이제 마흔에 가까워지고 있는 남자의 주책없는 행동에 주변 이들 중 하나가 뭐라고 할 법도 했지만 그 누구도 이상하다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권현우가 이리된 것은 벌썬 수십 년 전의 일, 이제 와서 딱히 이상할 일도 아니었다.

배시시 웃던 권현우가 자신이 먹을 칠하던 종이를 권일우에게 내밀어 보였다.

종이에는 삐뚤삐뚤한 원의 반이 먹으로 검게 채워져 있었고 원의 비어 있는 부분에 두 개의 점과 가로선 한 줄이 그어져 있었다.

그 아래로 일부러 붉은 염료를 사용해 그림을 그린 것이 마치.

"이것은 나를 그린 것이냐?"

항상 붉은 옷을 입고 다니는 자신을 그린 것 같다고 권일우는 생각했다.

그의 생각이 맞았던 것인지 권현우는 다시 배시시 웃어 보이며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그의 행동에 권일우는 씨익 웃으며 그를 양팔로 안아 주었고 권현우의 어깨에 있던 독수리는 조심스레 바닥으로 내려왔다.

"폐하! 어의에 먹이 묻사옵니다!"

"괜찮다. 어차피 세탁을 하면 사라질 얼룩이다. 내 지금은 이리하고 싶구나."

권현우의 행동이 퍽이나 귀여워 손이 먼저 뻗어졌다.

둘째와 쏙 빼닮은 얼굴로 자신에게 이리 순종적이니 옛날 일이 생각나 귀엽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네가 멀쩡했더라면 네 형님처럼 손을 썼을 터인데......."

권일우가 권현우의 귀에 작게 속삭이듯이 말했지만 권현우는 그저 배시시 웃기만 할 뿐이었다.

권일우는 요즘 모든 일이 자신의 뜻대로 풀려 기분이 매우 좋았다.

이제 두 가지 일만 자신의 뜻대로 흘러가면 모든 것이 순탄대로일 것이다.

하나는 서대륙에서 온 사람을 찾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조 장군도 얼른 꼬리를 드러내면 좋으련만.'

그리 속으로 생각한 권일우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권현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번에는 궁인들 힘들게 하지 말고 편히 쉬다 오거라, 현우야."

그의 말에 권현우는 배시시한 얼굴로 웃어 보였다.

* * *

퀘스트는 자동적으로 완료가 되었지만 거대 맹독 지네의 퇴치 사실은 낙정 마을에 직접 알려야 했다.

던전을 나와 다시 낙정 마을로 향하는 길, 호야는 상급으로 성장한 크라우스식 검술의 스킬을 확인했다.

[상급 크라우스식 검술]

숙련도 0%

전설의 기사 크라우스의 오리지널 검술입니다.

그의 검은 누구보다도 정확하고 강력했으며 누구보다도 재빨랐습니다.

전설 달성 시 크라우스를 통해 ???을 배울 수 있습니다.

[제6장 - 일격]

스킬을 사용한 뒤 스킬이나 일반 공격으로 공격을 가할 시 한 번에 한하여 상대방의 방어력의 50%를 무시하고 치명타를 발생시키며 이는 회피가 불가능합니다.

사용 MP: 1,500

재사용 대기 시간: 2일

[제7장 - 양화(揚花)]

검기를 꽃잎과도 같은 빛의 칼날 조각으로 만들어 플레이어의 의지대로 움직여 적을 공격합니다.

힘 스탯 10당 하나의 칼날 조각을 만들어 내며 칼날 조각들은 각각 기본 공격력의 40%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칼날 조각들을 자유로이 움직이기 위해서는 꾸준한 훈련이 필요합니다.

*스킬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검기를 지속 중인 상태여야 하며 스킬을 사용할 시 검기는 자동으로 해제됩니다.

사용 MP: 2,000

재사용 대기 시간: 5시간

스킬을 확인한 호야는 제6장인 일격을 일회성 버프라고 받아들였다.

제7장인 양화는 검우의 상위 호환 판이다.

검우가 그저 위에서 아래로 공격을 떨어트린다면 양화는 설명만을 본다면 곡선으로 궤적을 그리며 이동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다.

그리고 각각의 칼날이 가지는 공격력은 검우보다 작지만 전체를 놓고 보면 검우보다도 강력한 공격력을 보였다.

재사용 대기 시간도 더 짧고 말이다.

일단 나중에 확인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때 호야의 눈에 이상한 것이 들어왔다.

'숙련도가 아직도 있네?'

모든 스킬은 전투 스킬이 상급, 제작 스킬은 고급이 끝이다.

그 끝을 달성하게 되면 더 이상 성장할 것이 없으니 숙련도가 사라지는 것이 당연한 일. 하지만 호야의 스킬에는 어째서인지 아직도 숙련도가 남아 있었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 스킬을 살피던 호야의 눈에 스킬의 마지막 문장이 들어왔다.

[전설 달성 시 크라우스를 통해 ???을 배울 수 있습니다.]

크라우스식 검술은 상급이 끝이 아니었다.

그 위의 단계인 전설이 존재했다.

'잠깐만, 크라우스의 검술이 상급이 끝이 아니라는 건 설마.'

문득 모안과 레이나, 컨서누의 스킬도 상급이 끝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거의 확실했다.

호야가 그렇게 생각하며 미소 짓고 있을 때 도반이 입을 열어 왔다.

"......나 가 봐야 할 것 같아."

"어? 갑자기 왜?"

"유아와 약속한 게 있었어."

도반이 이전에 유아와 약속한 일이 있었는데 그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도반은 그것을 완전히 잊고 있었고 약속 시간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 도반에게 유아가 계속 귓속말을 보내고 있었다.

[유아: 도반~! 귓속말 켜 둔 거 맞지~?]

[유아: 대답 좀 해 주시죠~?]

"그럼 어쩔 수 없지. 어차피 퀘스트는 완료됐으니까 마을에는 나 혼자 가면 될 거야."

"미안."

도반은 유아의 성화에 못 이겨 호야에게 사과를 한 뒤 바로 스킬을 사용해 유아에게로 날아갔고 혼자 남은 호야는 바로 낙정 마을로 향했다.

낙정 마을로 향하고 있자 산의 초입 부근에 쿠로에가 나와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무언가 불안에 떨고 있는 듯이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서는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쿠로에?"

"아! 호야 님!"

호야가 쿠로에의 이름을 입 밖으로 내자 호야를 발견한 그녀가 호야에게로 뛰어와 그의 등을 떠밀었다.

"왜, 왜 이러세요?"

"마을로 돌아오시면 안 돼요, 호야 님!"

"아니, 그러니까 왜."

"얼른요! 다 호야 님을 위해서니까요!"

"일단 진정해요!"

쿠로에는 호야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인지 그의 등을 무작정 떠밀었다.

호야는 그녀의 행동에 난처함을 느꼈지만 악의는 느껴지지 않았기에 대처하기가 애매해 당황스러움에 미간을 찌푸리기만 할 뿐이었다.

"얼른 가세요!"

"아, 알았어요. 갈게요."

호야는 영문도 모른 채 등을 떠밀려 낙정 마을을 떠나야 했다.

"아, 지네는 처리했으니까 아마 더 이상 나타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갈 때 가더라도 퀘스트의 완료는 알려야 했기에 호야는 그녀에게 거대 맹독 지네의 퇴치를 알려 주고서는 마을을 벗어났다.

그리고 쿠로에는 떠나는 호야의 등을 보며 죄스러운 듯이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그녀의 머릿속에 어제 아버지가 했던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우리가 일하는 마을에서 병사들이 녹색 머리에 가면을 쓴 남자를 찾고 있었다.

-발견에 도움을 준다면 아마 큰 상을 내리실 거야.

-무른 소리 하지 마라, 쿠로에! 나는 은인과 가족들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가족을 선택할 거다!

쿠로에는 자신의 아버지를 말리지 못했다.

아마 지금쯤이면 아버지는 일을 하던 마을에 거의 다 와 가고 있을 것이다.

마을에 호야가 들어온다면 이미 아버지와 합심한 마을 주민들이 그가 떠나지 못하도록 붙잡을 것이 뻔했다.

그 전에 그를 보내 주는 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보답이었다.

* * *

"계집애가 손 한번 맵구나. 가방 속에 있던 우리 셋은 무슨 죄냐."

"하하하."

호야는 가방에서 고개를 내민 미호의 말에 웃으며 답해 주었다.

겉은 웃고 있었지만 그의 속은 지금 매우 복잡했다.

'왜 가라고 한 거지?'

자신이 싫어서 쫓아낸 것은 아닐 것이다.

호감도가 내려갔다는 시스템 메시지는 발생한 적이 없었고 쫓아내질 만한 일을 한 적도 없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때 쿠로에의 표정을 통해 자신을 위해서 한 행동이라는 것을 호야는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일단 고민은 그만하고 다음 목적지를 찾기로 했다.

호야는 낙정 마을에 들어갈 수가 없게 되었으니 다른 마을을 찾거나 혹은 화고라니 같은 것이 아닌 경험치가 될 만한 몬스터의 서식지를 찾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나아가기를 한참, 어느 이름 모를 산 정상에 오르자 저 멀리 지평선에 걸쳐서 마을이 조그맣게 시야에 들어왔다.

마을로 가기 위해 산길을 따라 내려가고 있을 때 루나에게서 귓속말이 날아왔다.

[루나: 호야 님, 지금 어디예요?]

[호야: 으음, 마을을 발견해서 산을 내려가고는 있는데 정확한 이름을 몰라서 뭐라 말할 수가 없네요. 마을에 들어가서 이름을 알아내면 그때 말해 드릴게요.]

[루나: 마을로 가시면 안 돼요! 절대!]

'왜 이러시지?'

호야가 루나의 말에 의문을 품고서 산을 거의 내려와 답장을 보내려던 때였다.

호야는 멀리서부터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말발굽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소리에 본능적으로 호기심이 일어 내다본 곳에는 역사책이나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검은색 두정갑을 입은 사람들이 말을 타고 있었다.

[호야: 왜 그러시는 거예요?]

호야가 루나에게 답신을 보낼 때 말을 탄 두정갑의 무리들이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아니, 스쳐 지나갈 줄 알았다.

그들이 돌연 말의 고삐를 강하게 당겨 말을 멈추더니 재빠르게 호야를 둘러쌌다.

[루나: 저희가 방금 막 마을에 도착해서 들은 이야기인데 지금 녹색 머리에 가면을 쓴 사람을 병사들이 찾고 있어요.]

그 직후 호야를 둘러싼 사람들 중 노인이 살짝 앞으로 나오면서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었다.

"자네, 이 물건을 본 적이 있나?"

그것은 호야가 문고의 주인에게 건네었던 골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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