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는 마을사람-126화 (126/171)

# 126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6권 3화

3. 독 길(2)

"그런데 이상하지 않아?"

"뭐가?"

퀘스트를 클리어 하는 데에 필요한 거대 맹독 지네를 찾기 위해 산속을 뒤지고 있을 때 호야가 자신의 의문을 표해 왔다.

"우리는 지금까지 화야산을 꽤 돌아다녔었잖아. 그런데 지네처럼 생긴 몬스터는 조금도 보지 못했어."

거대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을 보면 평범한 지네의 크기는 아닐 것이다.

한데 호야와 도반은 쿠로에를 만나기 전까지 화야산을 돌아다니며 지네의 흔적은커녕 그림자조차 보지 못했었다.

"게다가 그 어머니의 설명을 들어 보면 거대 맹독 지네는 필드 보스 같은데 퀘스트 내용에 그냥 보스 몬스터라고 표시된 것도 조금 그렇고."

호야의 말에 도반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상하기는 했다.

그때 둘의 대화에 가방 속에 있던 미호가 의견을 보태 왔다.

"그냥 간단하게 생각하거라. 집에서 쉬고 있던 것일 수도 있지 않느냐?"

"으음, 그런 걸까."

미호의 말도 일리가 있지만 너무 형편 좋은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와옹!"

그때 먼저 앞서 나가고 있던 바두가 호야에게 돌아오더니 앞발로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상태: 아까 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이상한 구멍을 발견했습니다. 강해지기 위해서 천천히 발을 내딛고 있는 중입니다.]

"바두가 뭔가 발견했나 봐. 가 보자."

"그래."

바두가 안내해 준 곳은 이전에도 지나치면서 슬쩍 본 적이 있는 폭포의 뒷길이었다.

그곳에는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거대한 동굴이 생겨나 있었다.

"이거 분명히 아까 전에는 없었지?"

"그랬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구멍 안으로 발을 들여놓자 호야와 도반에게 시스템 메시지가 발생되었다.

[독 길]

[입장 제한: 퀘스트 '화야산의 불청객'을 수행 중]

[던전 '독 길'에 입장하시겠습니까?]

[던전 진입 후 클리어에 실패할 시 자동적으로 퀘스트 '화야산의 불청객'이 실패 처리됩니다.]

호야는 시스템 메시지들 덕분에 자신이 가졌던 의문들을 해소할 수 있었다.

입장 제한이 대놓고 '화야산의 불청객을 수행 중'이니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도반, 이 안에 거대 맹독 지네가 있을 것 같지?"

"거의 확실하다고 본다."

만약에 없다고 해도 관련된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둘은 그렇게 확신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던전에 무작정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시간이 부족하겠는걸."

호야가 인터페이스에 표시되어 있는 시간을 보면서 말하자 도반이 고개를 끄덕였다.

던전은 종류에 따라 수십 분 만에 끝낼 수 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접속 시간을 거의 다 쏟아부어야 클리어 할 수 있는 것들도 존재한다.

접속 제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안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도 모르는 던전에 들어가는 것은 시간 낭비나 다름없었다.

던전을 진행 중인 상황에서 접속 제한 시간에 걸린다면 강제 로그아웃이 되어 퀘스트가 실패 처리될 것이다.

그렇기에 호야와 도반은 내일 아침 일찍 던전에 도전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 * *

[던전 '독 길'에 입장합니다.]

다음 날 접속하자마자 들어온 던전의 안은 거의 평범한 동굴에 가까웠다.

드문드문하게 녹색 액체의 웅덩이와 썩은 화고라니의 사체만 없었더라면 말이다.

호야는 확인을 위해서 수상해 보이는 녹색 웅덩이에 손가락을 가져가 보았다.

[맹독 지네의 독이 당신의 피부를 통해 흡수됩니다.]

[상태 이상 '중독'에 걸렸습니다.]

[칭호 '땅 끝 마을의 주민'의 효과로 인해 저항하였습니다.]

"역시, 이거 독이야."

"흙도 마찬가지다."

장갑을 벗고 흙을 만지작거리던 도반은 자신에게 큐어를 사용했다.

도반의 말에 호야가 흙을 만져 보자 녹색 액체를 만졌을 때와 비슷한 시스템 메시지가 발생되었다.

"이래서 독 길이구나."

던전 안은 완전히 독으로 된 길이었다.

확인 결과 피부에 직접 닿지만 않으면 상태 이상에 걸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호야의 머리 위에 있는 바두와 가방 속에 있는 미호와 새미였다.

이 셋은, 특히 바두가 머리에서 내려온다면 발바닥을 통해 그 즉시 중독이었다.

도반이 큐어의 사용이 가능하기는 했지만 성기사의 한계로 인해 남발은 하지 못한다.

"바두야, 가방 속에 들어가 있을래?"

"아옹......."

호야의 말에 바두가 불만스럽다는 듯이 볼을 부풀렸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에 순순히 가방 속으로 들어갔다.

그때 미호가 가방 속에서 튀어나오더니 작은 여우가 아닌 인간형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이리 내거라. 새미도 바두도 내가 품에 안고 있으마."

"그래도 괜찮겠어?"

"어차피 전투에 들어가면 네 등보다 내 품속이 더 안전하다."

미호의 말에 호야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호야의 가방 속에서 새미와 바두를 꺼내 품에 안았다.

그 후 독에 주의하며 조금씩 앞으로 이동하자 흙으로 된 벽과 바닥이 끊기고 반짝거리는 돌이 박힌 듯이 알알이 빛을 내고 있는 벽과 바닥이 저 멀리 보였다.

그곳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간 호야는 몸에서 소름이 돋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반짝거리는 돌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돌이 아닌 살짝 커다란 지네들의 갑각이었다.

재빠르게 바닥과 벽을 기어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수십 개의 더듬이와 다리들은 공포 그 자체였다.

"홀리 레이!"

호야는 그 즉시 벽을 달리고 있는 지네들을 향해 스킬을 사용했다.

몬스터들의 명칭은 '맹독 지네', 레벨은 250 언저리.

퀘스트에서 요구하는 것은 이 맹독 지네들의 대장일 것이다.

"심판."

도반이 그렇게 말하자 그의 망치와 홀리 레이에 맞지 않고 살아남았던 맹독 지네들의 위에 하얀색 마법진이 생겨났다.

콰앙!

그 직후 도반이 망치로 도장을 찍듯이 바닥을 강하게 내리치자 맹독 지네에게 붙어 있던 하얀색 마법진들이 빛을 내며 폭발을 일으켰다.

그 뒤로도 소름이 끼칠 정도의 장면들이 계속해서 연출되었다.

한 번은 참다못한 호야가 익스플로전을 사용해 한 번에 맹독 지네들을 날려 버렸고 그 여파로 인해 벽과 천장이 무너져 내려 길이 막히는 일이 발생해 버렸다.

다행히도 막힌 길은 미호의 힘을 빌려 다시 뚫을 수 있었고 그 외길의 동굴을 쭉 나아간 끝에 커다란 공동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공동의 중앙에서 한 마리의 거대한 지네가 몸을 둥글게 말고 있었다.

갑각의 넓이만 해도 2m는 되어 보였으며 길이는 짐작도 되지 않았다.

"으......, 너무 사실적이잖아, 저거......."

"그래서 포기할 거야?"

"그건 아니지."

호야는 던전에 들어와 처음 맹독 지네를 보았던 때부터 옛 트라우마가 되살아나 입안에서 지네가 기어 다니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게임일뿐더러 지금까지 봐 왔던 맹독 지네도, 눈앞에 있는 거대 맹독 지네도 입에 들어올 만한 크기는 되지 않는다.

호야는 이번 기회를 오히려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받아들이기로 했다.

처음 이니티움을 시작했을 때처럼.

"도반, 스킬은 쿨 타임은 다 돌아왔어?"

"아니, 3분만 더."

3분의 시간이 흐르고 도반이 고개를 끄덕이자 호야는 몸을 숨기고 있던 동굴에서 공동으로 튀어 나가 곧바로 거대 맹독 지네에게 다가갔다.

호야와 도반의 접근을 눈치챈 거대 맹독 지네가 머리를 들어 더듬이를 살랑거렸지만 둘의 공격을 막지는 못했다.

"성역."

"신의 가호, 섬광."

맹독 지네는 독 속성의 몬스터였다.

아마 거대 맹독 지네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성역으로 인한 지속 대미지는 들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성기사인 도반의 공격력은 올릴 수 있다.

츠악-.

거대 맹독 지네의 몸을 따라 새하얀 선이 그어지더니 빛을 내뿜으며 대미지를 안겨 주고서는 그대로 모습을 감추었다.

[거대 맹독 지네]

레벨: 320

샤아아아아악-!

거대 맹독 지네는 자신에게 먼저 공격을 가한 도반을 먼저 처리해야 할 적으로 인식하고 그에게 독니를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타앙-!

"크읍!"

도반은 방패를 들어 독니를 막아 내었고, 그로 인해서 호야에게서 완전히 등을 돌린 것이 거대 맹독 지네의 실수였다.

"버프, 힘. 검기. 신속."

몸이 굵고 긴 거대 맹독 지네는 신속을 사용하기에 아주 최고의 상대였다.

"가시나무."

그래도 방어력이 꽤나 높았던 것인지 거대 맹독 지네는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호야의 신속이 끝난 그때, 거대 맹독 지네가 몸통을 앞으로 내밀고 머리를 뒤로 빼었다.

거의 죽기 직전의 맹독 지네들이 보였던 독을 뿜기 위한 행동이었다.

호야와 도반에게는 그런 걸 뿜게 기다려 줄 의리는 없었다.

"검우."

"심판."

공동의 천장에서 생겨난 얼음의 칼들과 함께 거대 맹독 지네의 몸 곳곳에 하얀색 마법진이 생겨났다.

그 바로 직후 호야가 검을 내리긋고 도반이 바닥을 망치로 내려찍자 큰 굉음과 함께 공동 전체를 삼킬 정도의 큰 먼지구름과 한기가 일었다.

['독 길'의 보스 몬스터 '거대 맹독 지네'를 처치하였습니다.]

['독 길'을 모두 클리어 하여 경험치의 정산이 진행됩니다.]

[경험치가 상승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퀘스트 '화야산의 불청객'을 클리어 하였습니다.]

[경험치가 상승합니다.]

['낙정 마을 주민'의 호감도가 상승합니다.]

[스킬 '독기'를 획득합니다.]

[독기]

10분간 일반 공격으로 타격을 가할 시 30%의 확률로 상대방에게 독을 흩뿌립니다.

스킬로 인해 발생된 독에 중독되었을 시 상태 이상의 지속 시간은 10초이며 이는 해제 가능합니다.

사용 MP: 700

재사용 대기 시간: 12시간

호야는 던전을 클리어 하면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거대 맹독 지네의 사냥과 함께 자동으로 완료된 퀘스트를 통해서 스킬을 얻었다.

그 과정에서 사용한 스킬들 덕분에 숙련도를 모두 채워 크라우스식 검술을 상급으로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호야의 신경이 쏠린 것은 그것들이 아닌 독 길을 클리어 하면서 받은 경험치로 인해 상승한 레벨이었다.

호야의 레벨은 305, 그는 랭킹 표를 열어 그 위에 적힌 자신의 닉네임을 확인했다.

7위 레벨 305 호야

8위 레벨 304 에리먼

처음 동영상으로 보았던 그가 자신감 넘치게 웃고 있는 모습이 호야의 머릿속에 다시 떠올랐다.

그때 느꼈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게 계기가 되어 그보다 강해지고 싶다는 일념으로 크라우스의 검술을 배우기 시작했었다.

그 뒤로 여러 가지 일을 거치며 무력만으로 따지자면 그를 예전에 넘어섰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런 감흥도 느껴지지 않았었다.

눈으로 보이는 증거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눈으로 보이는 증거가 생겨난 지금에도, 호야는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기쁨, 통쾌함, 성취감, 쾌감, 그 무엇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

어째서일까.

그동안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존재가 자신의 안에서 작아진 것일까.

아니면...... 아직 마음속 깊은 곳에 응어리가 남아 있는 것일까.

'......모르겠어.'

왜 이런 허무감을 느끼고 있는 것인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아마도 아직 가슴속 깊이 원하고 있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서일지도 모른다.

에리먼...... 아니, 이대현은 숨어 살던 자신과는 다르게 아직 멀쩡하게 미소 지으며 생활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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