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는 마을사람-124화 (124/171)

# 124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6권 1화

1. 그 남자의 고백

"너무 급하게 진행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네요."

카페의 테라스에서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백재건과 함께 커피를 마시던 이예숙이 나이에 맞지 않게 배시시 하고 웃었다.

그녀의 앞에는 자바칩 프라푸치노가, 백재건의 앞에는 캬라멜 라떼가 놓여 있었다.

"걱정돼요?"

"으응, 전혀요."

둘은 방금 전에 막 결혼을 위한 준비의 대부분을 끝내 놓은 참이었다.

사진 촬영을 할 스튜디오와 메이크업, 결혼식 때 입을 드레스도 결정했다.

신혼집은 결혼 선물이라며 호영이 마련해 주었다.

한사코 말려 보기는 했지만 평소에 쓸 일이 없는 돈이니 이런 때 아니면 언제 써 보겠느냐고 우겨댔기에 어쩔 수 없었다.

신혼 생활을 방해할 수 없다며 이 기회에 호영이 독립을 하겠다고 한 것은 겨우 말렸다.

그리고 신혼여행은 보라보라 섬으로 결정해 예약까지 끝내 놓았다.

한복까지 맞추고 예식장도 결정하여 결혼식 날짜도 이제 한 달 뒤로 잡힌 상황이다.

다른 신혼부부들에 비하면 너무나도 빠른 진행이었지만 불안함은 없었다.

이제 남은 준비는 주변 이들에게 청첩장을 보내고 마지막 점검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이 있다면.......

"우리 부모님들 자리는 어떻게 할까요?"

이예숙의 부모님은 이예숙이 막 사회로 나왔던 때에 돌아가셨고 형제자매는 없다.

백재건이 여태까지 부모님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도 부모님을 일찍이 여읜 것 같았다.

라는 것이 이예숙의 생각이었다.

둘 다 예식장에 따로 준비되어 있는 부모님의 자리에 앉을 인물이 없었다.

"재건 씨는 형님이 계시다고 했으니 형님 부부가 앉으시면 될 것 같긴 한데......, 저는 어떻게 할까요?"

이예숙은 정 안 되겠다 싶으면 지금 일하는 회사에 자리를 잡을 때 많은 도움을 주었던 거의 친언니 같은 선배님의 부부에게 부탁할 생각이었다.

"......."

"재건 씨?"

이예숙의 말에 백재건이 입을 다물었다.

지금까지 이예숙에게 말하지 못한 비밀이 그의 가슴을 억눌러 왔다.

하지만......,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더 이상 비밀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예숙 씨, 예숙 씨에게 꼭 해야 할 말이 있어요."

"무슨 얘기이길래 그렇게 뜸을 들여요?"

"저 사실, 아버지가 계세요."

"......네?"

백재건의 말에 이예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 그게 무슨 말이에요?"

"어머니만 조금 일찍 돌아가시고...... 아버님은 아직 살아 계세요."

"......."

"지금까지 말 못 해서 미안해요......."

백재건은 이예숙에게 지금까지 말하지 못했던 아버지와의 일을 털어놓았다.

마치 죄를 지었다는 듯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말하는 백재건의 이야기를 이예숙은 아무 말 않고 묵묵히 들어 주었다.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어떻게 아버지의 사과를 받아야 할지, 아버지와의 관계를 어떻게 다시 되돌려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버지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가 두려웠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예숙에게 말하지 않았었다.

괜히 그녀에게 짐을 지워 주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녀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이제는 숨길 수 없다.

백재건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맞은편에 앉아 있는 이예숙을 바라보았다.

이예숙은 화가 난 것인지 자바칩 프라푸치노가 든 잔을 양손으로 붙들고서는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시선은 테이블을 향해 백재건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백재건은 결국 올 것이 오고 말았구나 하고 생각했다.

"화......났어요?"

"네, 화났어요."

이예숙의 단호한 목소리와 함께 들어 올려지는 그녀의 오른손에 백재건이 눈을 질끈 감았다.

이런 중요한 사실을 지금까지 숨겨 왔으니 뺨을 맞더라도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오른손은 백재건에게 가지 않고 그녀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고 있었다.

"하지만 먼저 말해 줬으니 이번은 용서해 줄게요. 다음은 없어요."

"예숙 씨......."

이예숙의 말에 백재건이 눈물을 글썽이자 그녀는 살짝 힘없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신에게 그러한 일을 숨긴 것이 괘씸하기는 했지만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용기를 내어 이제라도 말해 주었으니 이번 한 번만큼은 용서해 주기로 했다.

이예숙은 양손을 뻗어 백재건의 손을 부드럽게 잡으며 쓰다듬어 주었다.

"재건 씨는 어떻게 하고 싶어요?"

"네......?"

"저한테는 용기를 내서 이렇게 말해 줬잖아요. 아버지한테는 어떻게 하고 싶어요?"

"......."

"혼자 갈 용기가 부족다면 제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게요. 언제든지 그럴 마음이 든다면 제가 같이 가 줄게요. 이제는 가족이잖아요?"

"예숙 씨......."

이예숙의 말에 백재건은 한동안 그 자리에서 계속 울었다.

주변 사람들이 쳐다봤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 * *

"-라는 일이 있었어. 재건 씨가 호영이 너한테도 얘기해 달라고 하더라고."

"그렇구나......."

이예숙의 말에 호영은 속으로 고민했다.

'그걸 말해 줘야겠지......?'

이전에 백윤택이 자신의 집에 찾아왔던 일, 호영은 그것을 백재건과 이예숙에게 말하지 않았었다.

말할 타이밍을 놓쳤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금이라도 말해 주는 편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사실 엄마한테 말 안 했던 게 있는데요."

"응? 뭔데?"

"할아버지, 그러니까 아빠의 아빠가 얼마 전에 우리 집에 찾아왔었어요."

호영은 이예숙에게 이전에 있던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 * *

"자, 우리 새미는 할 수 있다!"

"와옹!"

"겁먹지 말거라, 아가!"

"뀨......, 뀨우......."

도반은 눈앞의 광경을 보며 호야에게 질문을 던졌다.

"......지금 뭐 하는 거야?"

풀숲 뒤에 앉아서 얼굴만 내밀고 있는 호야와 그의 머리 위에 앉아서 앞발을 허공에서 휘적거리는 바두, 그 둘의 옆에는 인간형의 모습을 하고 있는 미호가 호야와 마찬가지로 쭈그려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몸을 숨긴 수풀의 앞에는 새미가 두 개의 꼬리를 치켜세운 채 맞은편에 있는 화관을 쓴 고라니를 째려보고 있었다.

몬스터의 이름은 화고라니, 동대륙에도 비교적 레벨이 낮은 몬스터들이 있는데 화고라니도 그중 하나다.

도반이 잠시 일이 있어서 짧게 로그아웃을 했다가 돌아오니 지금 이 상황이 되어 있었다.

"아, 도반. 도반도 얼른 이쪽으로 와서 숨어!"

"그게 숨은 거였어?"

"어쨌든 빨리!"

호야의 말에 도반은 그의 옆으로 가 쭈그려 앉았다.

"지금 중요한 순간이야."

"중요한 순간?"

......뭐가?

도반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냥 새끼 여우와 고라니가 서로 노려보고 있는 것뿐이었다.

뭐가 중요한 순간인지 모르겠다는 듯한 도반의 눈빛을 읽은 미호가 그에게 소리쳤다.

"자네, 방금 속으로 시시하다고 생각했구나?"

"아니, 그렇게까지는......."

"우리 아가의 첫 싸움! 그것도 승패를 좌우할 중요한 순간이다! 이게 뭐가 시시하다는 거냐!"

미호가 그리 말하며 벌떡 일어나자 새미와 대치하고 있던 화고라니가 깜짝 놀라 전력으로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아......, 도망갔다."

"와옹......."

[상태: 이게 다 미호 탓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강해지기 위해서 천천히 발을 내딛고 있는 중입니다.]

"크윽......, 내 불찰이다."

"뀨우......."

화고라니가 도망가 버리자 새미가 터덜터덜 걸어오더니 호야의 가방 속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아, 아아. 아가야. 이 어미가 미안하다!"

미호도 그 뒤를 따라 호야의 가방 속으로 들어갔다.

가방 안에서 새미에게 변명하는 미호의 목소리와 새미의 콧방귀가 들려왔다.

"이거 아무래도 새미 기분이 풀릴 때까지는 시도도 못 하겠네."

"방금 뭘 하던 거야?"

"새미의 훈련. 이제 슬슬 움직이자."

도반의 말에 답한 호야는 다시 그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지금 그들이 걷고 있는 산은 화고라니 정도의 약한 몬스터밖에 나오지 않는다.

큰 경험치가 되지 않았기에 둘은 웬만하면 다음 마을로의 빠른 이동을 위해 몬스터들을 지나치고 있었다.

하지만 호야와 도반에게 있어서 약한 것이지 몬스터들의 레벨은 200의 앞뒤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기에 일반 NPC들의 입장에서는 약한 것이 아닐 것이다.

새미에게도 그러했고 말이다.

방금 전의 화고라니도 호야와 미호가 열심히 능력치를 낮추고 HP를 내려놓은 상태였었다.

"호야,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았느냐?"

"소리?"

그때 가방 속에 들어갔던 미호가 고개를 내밀었다.

"흐음......, 잘못 들은 것이 아니다, 웬 비명 소리가 들리는구나. 저쪽이다."

호야와 도반에게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었다.

하지만 미호가 앞발로 한 방향을 가리켰기에 우선 그 방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얼마 걸어가자 그제야 호야와 도반에게도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누, 누가......! 누가 좀 살려 주세요!"

거친 숨소리와 몬스터의 울음소리에 호야와 도반이 재빠르게 그 방향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자 나무에 등을 대고 떨고 있는 소녀와 소녀를 포위하고 있는 화고라니 수 마리가 보였다.

호야와 도반은 망설임 없이 달려가 화고라니에게 무기를 휘둘렀다.

높은 레벨 차이에 화고라니들은 둘의 공격을 버티지 못했다.

호야의 가방 속에 있는 미호가 도움을 줄 필요도 없었다.

"괜찮아요?"

"네, 네에....... 가, 감사합니다....... 흑."

긴장이 풀린 것인지 소녀가 바닥에 주저앉아 작게 울기 시작했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울음을 멈춘 소녀가 바닥에 떨어트렸던 바구니를 주우며 인사를 건넸다.

"구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제 이름은 쿠로에라고 해요."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에요. 저는 호야라고 해요."

"도반."

"와옹!"

"얘는 바두예요. 그나저나 왜 이런 산속에 혼자 계신 거예요?"

호야의 물음에 쿠로에가 우물쭈물하며 답했다.

"그게......, 어머니가 많이 아프셔서 그 약초를 구하러 마을 앞산을 오른다는 것이 너무 깊숙하게 들어와 버렸어요......."

"근처에 마을이 있어요?!"

쿠로에의 말에 호야가 크게 반응하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근처에 저희 마을이 있어요."

호야는 그녀의 말에 밝게 웃었다.

한동 마을을 벗어난 뒤로 몬스터를 잡으며 가기 위해 길을 벗어나서 움직였더니 며칠째 마을이 보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말은 호야에게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다가왔다.

"혹시 마을까지 안내해 주실 수 있을까요? 며칠째 산속을 헤매고 있거든요."

"네, 그럼요! 저도 은혜를 갚고 싶으니까 안내해 드릴게요."

호야의 말에 긍정을 표한 쿠로에는 넘어지느라 바구니에서 쏟아졌던 약초들을 모두 주워 담고서 앞장을 서 걷기 시작했다.

마을까지 가는 길, 쿠로에는 호야와 도반에게 말을 걸어왔다.

"오빠들은 어디서 온 거예요?"

"한동 마을에서 왔어요."

원래는 서대륙에서 온 것이지만 전에 있던 마을이 한동이니 거짓말은 아니다.

호야의 대답에 쿠로에는 크게 반응했다.

"좋은 마을에서 오셨네요! 아, 그래도 사람끼리의 정은 저희 마을이 훨씬 더 좋아요! ......크기는 조금 작기는 하지만. 헤헤."

웃으며 머리를 긁적거리던 쿠로에가 앞을 가리켰다.

"저어어기가 우리 마을이에요."

쿠로에가 가리킨 방향 끝에 나무로 된 울타리가 보였다.

판자와 진흙으로 만들어진 집들이 마치 동대륙에서 처음 갔었던 이름 모를 마을을 연상케 했다.

상태로만 따지자면 지하 땅굴 근처에 있는 그 마을이 조금 더 상태가 양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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