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는 마을사람-123화 (123/171)

# 123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5권 25화

25. 산의 주인(3)

그 대신에 그곳에 있던 것은 하얀색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새하얀 머리의 여인이었다.

움직이기 편하도록 무릎 바로 아래까지 내려오는 짧은 치마와 시스루로 된 저고리의 소매에는 꽃무늬의 자수가 수놓여 있었고 달빛을 받아 빛나는 새하얀 머리카락은 날개 뼈까지 내려와 있었으며 앞머리 사이로는 얼음처럼 차가워 보이는 푸른 눈동자가 보였다.

호야는 직감적으로 여인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미호?"

"정답이다."

미호의 목소리에 호야의 품에 안겨 있던 새끼 여우가 귀를 쫑긋하더니 그의 품에서 뛰어내려 미호에게 달려가 그녀의 품에 안겼다.

"끼잉."

"그래, 이 어미가 미안하구나."

자신의 품에 안긴 새끼를 쓰다듬으며 바라보던 미호가 고개를 들어 호야와 눈을 맞췄다.

"나의 아이를 구해 주어서 정말 고맙구나.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으마."

미호가 고개를 살짝 숙여 감사를 표하자 호야에게 퀘스트의 완료를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가 발생했다.

[퀘스트 '사도봉의 주인'을 클리어 하였습니다.]

[경험치가 상승합니다.]

[신수 십미호 '미호'가 당신과의 계약을 원합니다.]

[신수 십미호 '미호'와의 계약을 받아들이겠습니까? 예/아니오]

"그리고 이 은혜, 네 곁에서 갚고 싶구나."

"응?"

"널 따라가고 싶다고 말하고 있는 거다."

[신수 십미호 '미호'가 당신과의 계약을 원합니다.]

[신수 십미호 '미호'와의 계약을 받아들이겠습니까? 예/아니오]

호야가 반문을 보이자 시스템 메시지가 다시 발생되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미호에게서 새하얀 실들이 가닥가닥 뽑혀 나와 호야의 주위를 원형으로 맴돌기 시작했다.

"설마 싫은 것이냐?"

"어? 아니, 아니. 그건 아닌데."

설마 물음표로 가려져 있던 보상이 미호와의 계약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싫은 것이 아니라 잠시 놀랐던 것뿐이다.

호야가 계약의 수락을 표하자 호야의 주변을 떠다니던 새하얀 실들이 호야의 왼 손등으로 몰려와 여우 얼굴 모양의 문장을 그려 넣었다.

[신수 십미호 '미호'와의 계약이 완료되었습니다.]

[스킬 '미호의 수호'가 생성되었습니다.]

[미호와의 계약의 증표가 왼 손등 위에 새겨지며 이는 지울 수 없습니다.]

[미호의 수호]

신수 십미호 '미호'와의 계약이 이루어졌습니다.

미호의 힘을 빌릴 수 있으며 그녀는 항시 당신의 곁에서 함께할 것입니다.

시스템 메시지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신수와의 계약에 성공하여 '중급 레이나의 신성 마법'의 숙련도가 15% 상승합니다.]

예상치 못한 수확이었다.

스킬을 확인하니 레이나의 신성 마법의 숙련도가 모안의 마법 술식을 거의 뒤따라오고 있었다.

이 상태라며 두 개를 비슷한 시기에 상급으로 올릴 수 있을 것 같다.

"고맙구나."

호야와의 계약을 완료하자 미호는 푸근하게 웃어 보였다.

"나야말로 고맙지. 그런데 정말 나랑 가도 괜찮겠어? 계속 여기서 살아왔던 거잖아."

"괜찮다. 아니, 오히려 너를 따라가는 편이 여기 있는 것보다 훨씬 좋다."

미호의 푸근했던 표정이 차가운 조소로 바뀌었다.

"지금까지 이 일대의 몬스터들을 통제하여 안전하게 오갈 수 있게 해 준 은혜를 갚지는 못할지언정 원수로 되돌려준 녀석들의 곁에 있을 정도의 의리는 없다. 이제는 저들을 믿지 못하겠구나."

호야는 갑자기 한기가 도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미호가 자신의 새끼를 되찾았기에 분노가 가라앉아 난폭해진 몬스터가 현대 원래대로 되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사도봉을 떠나게 된다면 비선공이었던 몬스터들이 선공 몬스터가 될 것이다.

* * *

"역시......."

다음 날 날이 밝아서 다시 접속한 호야는 마을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말을 흘렸다.

마을 관리의 병사들이 종이 하나를 든 채 마을 여기저기를 이 잡듯이 뒤지며 다니고 있었다.

그들이 들고 있는 것은 전날 밤 관리의 집에 침입했던 도둑의 몽타주였다.

"이러한 자를 보지 못했나요?"

"이거 진지하게 그린 거 맞아? 죄다 새까만데 내가 어떻게 알아?"

"저도 모르겠네요."

"병사 아저씨, 그거 그림 문제인 거예요? 정답은 바닥에 쏟은 먹물! 맞죠?"

"끄응......."

검은 선이 그려져 있을 뿐이어서 도저히 몽타주라고 할 만한 것은 되지 않았다.

유일하게 도둑의 모습을 제대로 보았던 마을 관리가 그린 것이었지만 그는 그림에 재능이 없었다.

그래도 굳이 도둑의 특징을 그림에서 찾자고 한다면 검은색 머리라는 정도였다.

동대륙에는 머리 염색약을 파는 곳이 없기에 그들은 머리를 염색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이미 머리를 녹색으로 되돌린 그 범인은 조용히 마을을 나왔다.

"아무래도 저기에는 못 있을 것 같네."

"흥, 저런 마을 따위 어서 떠나 버리면 된다."

호야의 말에 그가 등에 메고 있는 가방 안에 작은 여우의 모습으로 들어가 있던 미호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하하, 안 그래도 더 있으면 위험할 것 같으니까 떠나려고 했어."

"이유가 뭐든지 나는 어서 저 마을에서 멀리 떨어지고 싶구나."

"뀨우!"

그때 미호의 옆으로 새미가 고개를 내밀었다.

새미는 지난 밤 호야가 구해 준 새끼 여우의 이름이다.

아직 이름이 없어서 부르기 애매하다는 호야의 말에 미호가 그에게 이름을 직접 지어 줄 것을 권했고 호야는 새끼 여우에게 새미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미호의 새끼니까 새미다.

왠지 수학을 잘할 것 같은 이름이었다.

새미도 호야와의 계약을 끝냈기에 그의 왼 손등에는 하얀색의 작은 원이 하나 더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이냐."

"지하 땅굴이라는 곳으로 가고 있어. 거기에 갔다가 내일모레에 마을 근처에서 한 사람을 데리고 다른 마을로 향할 거야."

한동 마을에서 벗어나게 된다면 자연스레 지하 땅굴과도 멀어진다.

그렇게 되면 바두의 두 번째 퀘스트를 언제 클리어 할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이 꽤나 걸릴 것이다.

다른 마을로 향하기 전에 그것부터 완료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 * *

"드디어 다른 마을로 가는 것이냐."

"그 전에 먼저 사도봉 근처 숲에서 사람 한 명을 데려갈 거야."

2일이라는 시간이 지나서 바두의 두 번째 퀘스트의 완료에 필요한 조건을 모두 채운 호야는 도반과의 약속 장소로 향하고 있었다.

다른 마을을 찾아 이동하게 되었으니 그 전에 도반을 데려가야 할 필요가 있었다.

자신 때문에 와 준 것인데 그냥 두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을에서 만나기에는 상황 때문에 조금 꺼려졌기에 이전에 사도봉에 들어가기 전에 산의 입구를 살피던 부근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정했다.

약속 장소로 가는 길, 호야는 퀘스트를 클리어 하면서 바두에게 생성된 스킬을 확인했다.

[응원]

소환되어 있는 동안 주인 플레이어의 모든 능력치를 10% 상승시킵니다.

스킬 이름인 응원이 주인인 자신한테 하는 응원이었다는 사실에 호야가 살짝 미소 지었다.

'이거, 아무래도 바두랑 항상 같이 있어야 하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인가 약속 장소에 도착해 있었다.

"의외로 빠르게 끝났네."

"응,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약속 장소에 도착한 호야에게로 향했던 도반의 시선이 그의 어깨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미호에게로 향했다.

"호오, 데려가야 한다는 사람이 이 인간이었구나."

"호야, 그거는 설마?"

"하루 만에 다시 보는구나. 반갑다."

미호는 도반을 기쁘게 맞이해 주었다.

* * *

호야가 도반을 데리고 다른 마을을 찾아서 떠난 지 이틀이라는 시간이 흐른 날 밤, 마을 관리는 자신의 손톱을 깨물며 분노를 곱씹고 있었다.

"젠장할......!"

생각하면 할수록 이가 갈렸다.

겨우 잡은 십미호의 새끼를 정체 모를 누군가에게 도둑맞아 버렸고 그 범인은 아직까지 찾지 못하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사도봉에 묶어 놓았던 십미호까지 사라졌다.

그리고 십미호가 사라지자 사도봉의 몬스터들은 난폭함을 지우기는 했지만 예전과는 다르게 사람들을 먼저 공격하고 있었다.

사도봉은 더 이상 일반인들이 지나다닐 수 없는 길이 되었다.

그로 인해 상인들도 산길을 이용하지 못하게 되어 생긴 손해는 꽤나 컸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예정대로라면 자신은 지금쯤 황제에게의 헌상품을 들고 가 그에 대한 상을 받고 있어야 한다고 관리는 생각했다.

자신의 생각처럼 흘러가지 못한 상황에 그가 이를 갈고 있던 때였다.

쿠당탕-!

"무슨 일이냐?"

"과, 관리님! 지, 지, 지금 밖에......!"

"짜증 나게 더듬지 말고 말 똑바로 해라."

병사 한 명이 급히 들어와 그에게 소식을 전했다.

"허억, 허억. 지금 관리님을 만나 뵙자는 분이 오셨습니다."

"감히 누가 이 시간에 미리 약속도 없이 찾아온다는 말이냐."

"그, 그게......."

"뭐, 뭐라고?!"

이어진 병사의 말에 눈을 주먹만 하게 치켜뜬 관리가 옷매무새를 다듬고 정문을 향해 재빠르게 뛰어갔다.

그러자 횃불의 빛을 받으며 정문을 통과해 들어오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선두에 서 있는 날카로운 인상에 기백이 넘치는 눈동자를 가진 노년의 남자.

징이 박혀 있는 검은색 융(絨)에 하얀 털 장식이 달린 두정갑을 입고 있으며 그것을 몸에 고정시키기 위하여 두른 붉은색 허리띠 아래에는 한 자루의 검이 매달려 있었다.

원래 자신의 집에 들어오는 손님들은 모든 무장을 해제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눈앞에 있는 남자와 그 일행은 자신이 감히 그런 말을 꺼낼 수 있는 남자가 아니었다.

관리도 딱 한 번만 얼굴을 볼 수 있었던 인물.

"조, 조제연 장군님께서 여기는 어떤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흑룡대의 대장, 장군 조제연.

관리는 그와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어려웠다.

"황명을 수행하기 위해 왔다. 자네의 집에서 잠시 신세를 지도록 하지."

"여, 여부가 있겠습니까. 자신의 집이라 생각하시고 편안히 있어 주십시오."

그 거만한 관리가 쩔쩔매는 모습에 주변에 있던 이들이 놀랐지만 겉으로 내색을 보이지는 않았다.

조금이라도 겉으로 내색을 보였다가는 나중에 무슨 꼴을 당할지 몰랐다.

"하, 한데 황명이라 함은......."

관리의 물음에 조제연이 그를 바라보았다.

"사람을 하나 찾으러 왔다."

"그, 그렇군요. 저는 장군님에게 큰 힘이 되어 드리고 싶습니다. 어, 어떠한 자를 찾고 계시는 것인지 알려만 주신다면 제가 성심성의껏 돕겠습니다......."

관리의 말에 못 미덥다는 듯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던 조제연이 자신의 품속을 뒤적거려 한 물건을 꺼내었다.

"이것을 맨 처음 소지하고 있던 자를 찾고 있다."

"그, 그것은 무엇인가요?"

"네놈이 그것까지 알 필요는 없다."

그가 품에서 꺼낸 것은 금색의 작은 패(牌)였다.

깃발 같아 보이는 문장이 아주 정교하고 화려하게 새겨져 있는 것이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 물건이었다.

그것의 정체는 호야가 문고에 들어가기 위해 문고의 주인에게 입장료 대신에 건네었던 골드였다.

조제연 그는 황명을 받아 이 물건의 첫 주인을 찾으러 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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