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
랭킹 1위는 마을사람
- 5권 23화
23. 산의 주인(1)
"으아아아아악! 들어가자마자 몬스터 수십이 달려드는 건 조금 너무하지 않아? 도망치느라 죽는 줄 알았네!"
사도봉을 빠져나와 숲에 몸을 숨긴 강남불주먹이 같이 사도봉에 들어갔던 루나에게 하소연을 쏟아 냈다.
로열 나이츠는 인원을 나누어 서로 정보를 수집하는 한편 각자 따로 행동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게 해서 강남불주먹과 루나가 한 팀이 되었고 둘이서 정보를 수집하던 중에 우연히 연계 퀘스트가 발생되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병사들 몰래 사도봉의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수월했다.
하지만 들어가고 나서가 문제였다.
난폭해져서 몰려드는 몬스터의 수가 상상 이상으로 너무 많았다.
마치 산에 있는 모든 몬스터들이 자신들을 노리고서 달려드는 느낌이었다.
'이게 깨라고 만들어 놓은 퀘스트냐!'
그것을 뚫고 원인을 알아내라니, 운영자한테 직접 해 보라고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일단 그 몬스터들을 어떻게 할 필요가 있겠어요."
"이건 우리 둘만으로는 절대로 안 돼. 절대! 길드원들에게 도와 달라고 해야겠어."
루나의 머리에는 로열 나이츠의 길드원들보다 먼저 떠오른 사람이 있었다.
'호야 님......한테 도와 달라고 하는 건 너무 염치가 없겠지?'
역시 도움을 요철할 곳은 길드원들밖에 없었다.
루나와 강남불주먹이 그렇게 결론지었을 때 둘에게 같은 시스템 메시지가 발생되었다.
[퀘스트 '사도봉의 비밀'을 먼저 클리어 한 이가 있어 퀘스트를 진행에 필요한 완료 조건을 달성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퀘스트 '사도봉의 비밀'을 실패하였습니다.]
"하하, 이게 무슨......."
자신과 루나가 동시에 퀘스트를 받은 것에서 중복 퀘스트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선수 필승, 먼저 클리어 한 이가 독점하는 구조였다.
강남불주먹은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하아......, 우리 왜 그 고생을 했던 거예요?"
"그러게....... 후우, 일단 다 지난 일이니 깔끔하게 미련은 버리자."
그나저나 자신들 보다 먼저 클리어 한 사람이 누구지?
지금 동대륙에 있는 플레이어는 자신이 속한 길드인 로열 나이츠의 길드원과 호야의 16명이 전부였다.
만약 퀘스트가 나왔다면 자신들처럼 길드 채팅으로 말을 해 놨을 테니 길드원들이 클리어 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퀘스트는 호야 님이 가져갔나 보네."
"그렇겠죠."
퀘스트를 클리어 한 것은 아마 호야일 것이다.
* * *
처음에는 또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그 인간들이 다시 들어온 것인가 싶었다.
하지만 그 인간들과 같이 있는 아이의 존재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과 같은 그분의 아이와 함께하고 있는 인간이란 사실이 자신에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인간을 믿어 보라고 설득해 왔다.
그래서 미호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인간을 믿어 보기로 했다.
자신의 소중한 것을 빼앗아 간 그 인간과는 다를 것이라고 말이다.
"......인간이여, 내 부탁을 하나 들어주었으면 한다."
"부탁이라니, 어떤 부탁인지 알 수 있을까요?"
"나에게 걸린 구속을 풀고 내 아이를......, 내 새끼를 구해다오."
미호가 그렇게 말하자 호야에게 시스템 메시지가 발생되었다.
[퀘스트 '사도봉의 비밀'을 클리어 하였습니다.]
[경험치가 상승합니다.]
[퀘스트 '사도봉의 주인'이 발생되었습니다.]
[사도봉의 주인]
사도봉의 주인인 십미호에게는 얼마 전에 낳은 자식이 하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십미호의 자식이 한동 마을 관리의 계략에 의하여 납치당한 상태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십미호는 한동 마을 관리의 거짓말에 속아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 결과 십미호의 인간을 향한 분노는 커질 대로 커진 상태이며 그 영향을 받은 사도봉의 몬스터들이 인간을 먼저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십미호의 새끼를 되찾아 그녀의 품으로 돌려보내 주고 그녀에게 걸린 구속을 해제해 주세요.
*구속의 해제법은 그녀가 알고 있습니다.
성공 조건: 십미호의 새끼를 그녀의 품에 안겨 준다. 십미호에게 걸린 구속을 해제한다.
완료 보상: 경험치, ???
실패 패널티: 십미호의 분노가 일대를 위협합니다.
"내가 새끼를 낳은 것을 어떻게 알아낸 것인지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한동 마을의 관리라는 작자가 내 새끼를 납치해 갔네. 처음에는 그저 집을 나가서 산에서 길을 잃어버린 것인 줄 알았어."
그래서 크게 걱정하지 않았었다.
산에 있으면 어디에 있든 바로 찾아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새끼의 기운은 산 그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한동 마을의 관리가 곤란한 일이 있다면 지금까지 그녀에게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도 도움을 주고 싶다며 찾아왔었다.
"새끼가 없어져 내 잠시 판단력이 흐려진 것이 문제였지."
그 관리가 자신의 새끼를 데려간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그의 함정에 빠지고 나서야 깨달았다.
평소와 같았으면 걸리지 않았을 함정이었지만 그때는 판단력이 너무 흐려져 스스로 발을 들여놓고 말았다.
"준비를 아주 철저히 했던 것 같네. 움직임만을 막는 구속이라고는 하지만 이 내가 이렇게 완벽하게 걸려들다니 말이야. ......어떠한가? 내 부탁을 들어주겠나? 내 상응하는 보상을 주도록 하겠다."
"당연히 들어 드려야죠."
호야는 왕리를 통해 퀘스트가 발생한 그때부터 이어지는 연계 퀘스트를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리고 지금 그녀의 심정은 이전에 메이글린이 납치당했을 때 자신이 느꼈던 감정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그 전에 미호 님의 구속을 풀 방법을 가르쳐 주세요."
"그냥 편하게 미호라고 부르거라. 존대도 필요 없다. 나에게 걸린 이 구속은 관리가 가지고 있을 주술의 매개체를 부수면 풀릴 것이다."
"알았어. 그리고 혹시 새끼가 잡혀 있을 곳이라 짐작 가는 장소 같은 거 있어?"
"아마 그 관리의 집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이 정도밖에 몰라서 미안하구나."
"아니야. 그 정도면 충분해."
미호를 향하고 있던 호야의 시선이 자신의 옆에 있던 도반을 향해 돌아갔다.
"도반은 어떻게 할래? 이제는 몬스터도 없는데."
"으음."
퀘스트의 수행은 아마 한동 마을 안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마을 안에 몬스터가 존재할 리 없었으니 이번에야말로 도반에게 득이 될 것이 없었다.
도반 자신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 넓은 곳에서 홀로 행동하는 것은 내키지 않았다.
"아! 혹시 이러면 어떨까?"
도반이 고민하던 그때 호야가 한 가지 제안을 꺼내 왔다.
* * *
"어? 뭐예요? 도반 님이 왜 여기에 있어요?"
루나에게 귓속말로 연락해 도반을 그녀에게 데리고 가자 격한 반응을 보여 왔다.
그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옆에 있던 강남불주먹도 마찬가지였다.
동대륙에 오는 방법은 지하 땅굴을 통과하는 방법밖에 없고 그 던전은 1인으로는 절대 돌파가 불가능하다.
그러니 도반이 이곳에 왔다는 것에 놀라는 것이 당연했다.
호야가 짧게 경위를 설명하자 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그런 스킬이 있으셨지."
"그런데 왜 갑자기 연락하신 거예요? 그냥 도반 님이 왔다는 걸 알리려고 오신 건 아닌 것 같은데."
"도반 좀 맡길 수 있을까 해서요."
루나의 말에 답한 호야는 자신의 말이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꼭 갑작스레 일이 생겨 옆집에 아이를 맡기는 것 같다는 생각에 호야는 말을 정정했다.
"그게 아니라 제가 일이 좀 있어서 도반이랑 같이 못 있거든요. 여기까지 왔는데 혼자 두는 게 조금 그래서......."
뱉고 보니 왠지 이 말도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강남불주먹은 그 말을 정확히 알아들었다.
"할 일이요? 아아! 역시 사도봉의 비밀 클리어 한 거 호야 님 맞죠?"
"네? 네."
"역시!"
혼자서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인 강남불주먹이 말을 이었다.
"도반 님만 괜찮다면 저희도 상관없어요. 그렇지?"
"네, 둘보다는 셋이 더 사냥도 빠를 테니까요."
"도반도 괜찮지?"
"그래."
호야는 나중에 퀘스트가 끝나면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줄 것을 강남불주먹과 루나에게 약속하고 도반을 둘에게 맡기고 자리를 벗어났다.
그의 목적지는 마을 관리의 집이었다.
* * *
반듯하게 쌓아 올린 돌담의 위에 세워진 3층 구조의 건물의 지붕에는 잿빛에 가까운 기와들이 올려져 있었고 그 아래에 나 있는 복도에는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곳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길로 보이는 돌담의 계단 아래에는 두 명의 병사가 경비를 서고 있었으며 경비는 계단 위의 문 앞에도 존재했다.
아마 계단 말고 만약의 경우에 중요 인물들을 탈출시키기 위한 숨겨진 출입구가 존재하겠지만 어디에 있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문의 안쪽의 연못이 놓인 정원과 나무로 만든 훈련용 인형이 세워져 있는 훈련장 등에도 병사들이 순찰을 돌고 있었다.
"이건 뭐 그냥 성인데....... 빌려줘서 고마워."
"별말씀을."
호야는 빌렸던 광대한 시선의 모노클을 히에로스에게 돌려주고서는 플라이를 사용해 올라갔던 하늘 위에서 구름 사이로 몸을 숨기며 산 위로 이동해 눈에 띄지 않게 땅으로 내려왔다.
관리의 집은 꽤나 경비가 단단해 보여 몰래 들어가는 것은 힘들어 보였지만 자신 혼자서 밤에 들어가면 어떻게든 될 것이라고 호야는 판단했다.
호야의 첫 목표는 관리의 집의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겉보기로는 보이지 않는 지하나 숨겨진 방 같은 곳에 미호의 새끼가 있을 확률이 높았다.
'떡하니 보이는 곳에다 잡아 놓고 있지는 않겠지.'
아니면 관리 본인의 침실 같은 사용인들이나 병사들이 마음대로 출입할 수 없는 장소라거나.
일단 구조를 파악해 숨겨져 있을 장소를 특정한다.
만에 하나 그 과정에서 새끼를 발견한다고 해도 그대로 대리고 도망치면 안 된다.
찾아야할 것은 새끼뿐만이 아니었으니까.
현재 미호를 구속하고 있는 주술의 매개체인 물건을 찾아 부술 필요가 있었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검은색 팔주령(八珠鈴)이 주술의 매개체일 것이다.
둘 중 무엇을 먼저 발견하든지에 상관없이 둘을 동시에 처리해야했다.
호야는 잠입을 위해 우선 밤을 기다리기로 했다.
* * *
"크르으으으......."
"쯧, 끈질긴 것. 역시 그 여우의 새끼라는 건가."
한동 마을의 관리인 그는 눈앞에 있는 새하얀 새끼 여우를 보며 혀를 찼다.
여기저기 자잘한 상처투성이인 새끼 여우, 바닥으로 축 늘어진 두 개의 꼬리가 보통의 새끼 여우가 아님을 알려 주고 있었다.
"이렇게 반항적인 상태로는 폐하에게 보내지도 못하는데......."
얼마 전에 우연히 사도봉의 주인인 여우가 새끼를 낳았다는 것을 알아냈다. 먼 과거부터 한동 마을을 포함한 일대를 수호해 주던 여우의 새끼는 그에게 있어서 너무나 탐나는 존재였다. 만약 그 새끼를 빼앗아 황제에게 헌상한다면 자신에게 큰 상이 떨어질 것은 거의 확실했기에 틈을 타 새끼를 납치했다.
그 여우가 분노를 보이면 어떠하리, 자신은 황제에게 다른 마을의 관리로 보내 달라 간청해 이곳을 벗어나면 그만이었다.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이후에 어떻게 되든지, 그것은 자신이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새끼의 성격이 너무나 반항적이었다. 그래서 폭력을 사용함으로써 교정을 시도하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큰 성과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쯧, 이봐, 일단 이것의 상처를 치료해 놔라. 폐하께 보낼 물건에 흠집이 남아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예, 관리님."